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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눈물로 얼싸안기 한희철의 얘기마을(64) 눈물로 얼싸안기 “제가 잘못했습니다.” 편히 앉으라는 말에도 무릎 꿇고 앉은 집사님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였고, 그렇게 말하는 집사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작은 일로 다른 교우와 감정이 얽혀 두 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집사님, 작실 속회예배를 드리러 나설 즈음 집사님이 찾아왔다. 사이다 두 병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전에도 몇 번 감정이 얽힌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찾아가 권면하곤 했지만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잘못 버릇 드는 것 같아서였다. 빈자리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나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그만큼 기도할 땐 그분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나오지 않는데도 심방해 주지 않아 처음엔 꽤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2020. 8. 25.
이상한 병 한희철의 얘기마을(63) 이상한 병 어떤 사람이 몸이 이상해 용한 의원을 찾았다. 이리저리 맥을 짚어 본 수염이 허연 의원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거 묘한 병이구먼, 말로만 듣던 그 병이야.” 의원의 표정과 말을 듣고 자기 병이 심상치 않음을 안 그가 다그쳐 물었다. “무슨 병입니까?”“한 걸음에 하루가 감해지는 병이라네.”“무슨 약은 없습니까?”“없네. 다만 자네 마음이 약이 될 걸세.” 의원을 만난 뒤 그의 삶은 달라졌다.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한 걸음에 하루가 감해진다니 줄어드는 하루와 바꿀만한 걸음이 어디 쉽겠는가. 일도 다 그만두고 밥도 대소변도 방에 앉아 해결했다. 그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몸져눕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생각.. 2020. 8. 24.
나무 광이 차야 한희철의 얘기마을(62) 나무 광이 차야 허름한 흙벽돌 집, 광 안에 나무가 차곡차곡 가득합니다. “할머니, 나무가 많네요.” 심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할머니께 말했더니 “올 봄에 사람 사는 재워 놨어유. 나무 광이 차야 맘이 든든하지, 그렇잖으면 왠지 춥구 허전해서유.” 광에 나무를 재워두고 든든한 맘 가지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나무 가득한 광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할머니가 갖는 든든한 맘의 이유를 들으며, 노인이 갖는 삶의 단순함과 지혜를 배웁니다. 채울 걸 채워야 맘이 든든하다는 것은 삶의 지혜요, 그 채운 것이 나무였다는 것은 지극한 단순함입니다. 나도 텅 빈 광이 되어 그 단순함과 지혜를 배울 수 있었으면, 문득 마음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1990년) 2020. 8. 22.
땀방울 한희철의 얘기마을(61) 땀방울 “빨리 빨리 서둘러! 늦으면 큰일 난단 말이야!” 하루 종일 내린 비가 한밤중까지도 계속되자 숲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점점 불어난 물이 겁나게 흘러 산 아래 마을이 위태로워진 것입니다.그칠 줄 모르는 장대비에 마을이 곧 물에 잠길 것만 같습니다. 깨어있던 나무들이 잠든 나무와 풀을 깨웠습니다. “뿌리로부터 가지 끝까지 양껏 물을 빨아들여! 빈틈일랑 남기지 말고.” 나무마다 풀마다 몸 구석구석 물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좀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숨쉬기초차 어려울 만큼 온몸에 물을 채웠습니다.한밤이 어렵게 갔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개울물 소리가 요란했을 뿐 마을은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아침 햇살은 거짓말처럼 찬란했.. 2020. 8. 21.
이중 잣대 한희철의 애기마을(60) 이중 잣대 어린 딸 소리와 함께 들로 나갔다 오는 길이었습니다. 곳곳에 들국화가 참 곱게 피어 있었습니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여전히 피어나 대지를 수놓는 들꽃의 아름다움, 방에 꽂아둘까 하여 그 중 몇 개를 꺾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아빠, 그럼 꽃이 아야야 하잖아!” 눈이 동그래진 소리가 꽃 꺾는 날 빤히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예전에 소리가 교회 주위의 꽃을 꺾을 때, 그렇게 꽃을 꺾으면 꽃이 아파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어린 딸 앞에서 내가 꽃을 꺾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내 이중 잣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관대한, 드물긴 하지만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한 이.. 2020. 8. 20.
아픔 배인 삶 한희철의 얘기마을(59) 아픔 배인 삶 “이적지 살아온 얘기 전부 역그문 책 서너 권도 넘을 게유. 근데 얘기 할려문 자꾸 자꾸 눈물이 나와. 그래 얘기 못 허지.” 뭉뚝 뭉뚝 더듬어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팔십여 평생, 굽이굽이 아픔 배인 삶입니다. 어쩌면 그리도 삶은 할머니 한 평생의 삶을 눈물과 한숨으로 물들였는지. 진득한 기쁨으로부턴 늘 그만한 거리로 격리돼 온 백발의 삶이 아립니다. “그래도 할머닌 밝게 사시잖아요?”“속상한 일 있을 적마다 꿀꺽 꿀꺽 삼켜 썩혔지. 이적지 남 미워하지 않구 살았어.” 삶이 얼마나 단순한 것이며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덤덤한 이야기 끝 끝내 소매로 눈물 훔치는 할머니를 통해 배웁니다. - (1990년) 2020. 8. 19.
늙은 농부의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58) 늙은 농부의 기도 나의 몸은 늙고 지쳤습니다. 텅 빈 나뭇가지 위에 매달려 서너 번 서리 맞은 호박덩이 마냥어디 하나 쓰일 데 없는 천덕꾸러기입니다. 후둑후둑 벗겨내는 산 다랑이 폐비닐처럼 툭툭 생각은 끊기고 이느니 마른 먼지뿐입니다. 이제 겨울입니다. 바람은 차고 몸은 무겁습니다. 오늘도 늙고 지친 몸으로 예배당을 찾는 건까막눈 상관없는 성경책 옆구리에 끼고 예배당을 찾는 건그나마 빈자리 하나라도 채워 젊은 목사양반 허전함을 덜려는 마음 궁리도 있거니와볼품없는 몸으로 예배당을 찾는 건거친 두 손 모아 남은 눈물 드리는 건 아무도 읍기 때문입니다. 내 맘 아는 이 내 맘 아뢸 이아무도 읍습니다. 하나님 아부지. 여기엔 아무도 읍습니다. - (1992년) 2020. 8. 18.
은하수와 이밥 한희철의 얘기마을(57) 은하수와 이밥 서너 뼘 하늘이 높아졌습니다. 밤엔 별들도 덩달아 높게 뜨고, 이슬 받아 세수한 것인지 높아진 별들이 맑기만 합니다. 초저녁 잠시뿐 초승달 일찍 기우는 요즘, 하늘엔 온통 별들의 아우성입니다. 은빛 물결 이루며 강물 흐르듯 밤하늘 한 복판으로 은하수가 흐릅니다. 제각각 떨어져 있는 별들이 다른 별에게로 갈 땐 그 길을 걸어가지 싶습니다. 옛 어른들은 은하수를 보며 그랬답니다. 가만히 누워 은하수가 입에 닿아야 이밥(쌀밥) 먹을 수 있는 거라고. 교우들을 통해 들은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은하수를 보며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 즉 햅쌀을 먹을 ‘때’에 대한 가르침일 수도 있고, 은하수 흐드러질 만큼 맑은 날씨, 그래야 한낮엔 뜨거운 볕에 벼가 익어갈 .. 2020. 8. 17.
영원의 의미 한희철의 얘기마을(56) 영원의 의미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면 날 마주하는 두 개의 문자가 있습니다.알파(Α) 와 오메가(Ω), 처음과 나중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늘 그 사이에 앉게 됩니다.처음과 나중 그 사이의 어느 한 점.내 삶의 시간이란 결국 그뿐이며 그것이 내겐 영원입니다. - (1990년) 2020.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