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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우리 모두’와 ‘저와 여러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4) ‘우리 모두’와 ‘저와 여러분’ 언젠가 몇 몇 목회자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때였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이 흔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 시간이 주어지면 즐겁고 유익하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아들 목사를 둔 원로 목사님이 당신이 들은 아들 목사의 설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설교 중에 ‘우리 모두에게’라고 표현하는 것은 좋다고 여겨져요.” 설교자가 설교 중에 사용하는 용어, 특히 인칭대명사를 보면 그것만으로도 설교자가 갖는 태도나 마음가짐을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 모두’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설교자가 회중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어서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2019. 5. 13.
폭력 혹은 무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3) 폭력 혹은 무례 정릉에 와서 당황스러웠던 것이 있다. 설교를 하고 나면 설교 영상이 곧바로 페이스북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먼젓번 교회에서도 설교를 홈페이지에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오랫동안 거절하다가 음성만을 올리는 것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자마자 SNS에 오르다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게 관례였다니 받아들이기는 받아들였지만 불편한 마음은 적지 않았다. 우선은 조금씩 조정을 했다. 주일1,2부 설교 모두를 올리던 것을 하나만 올리기로 하고, 안 하던 페이스북에도 가입을 했다. 혹 누군가의 반응이나 의견이 있다면 모르고 지나갈 수는 없겠다 싶었다.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 아예 홈페이지를 바꾸기로 했다. 운영비를 줄이느라 교회 홈페이지를 페이스북과 연.. 2019. 5. 13.
말씀의 과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2) 말씀의 과잉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었으니 오래 전의 일인 셈이다. 해마다 전교인수련회를 가졌는데, 한 해는 수련회를 준비하며 엉뚱한 제안을 했다. 특강을 할 강사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기독교인을 아닌 이를 강사로 정하자고 했다. 밖에서 본 교회, 밖에서 생각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유익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히려 그것이 정직한 거울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준비위원들이 동의를 했고, 우리는 그야말로 엉뚱한 강사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한인회장을 하고 있는 이였는데, 이야기를 듣고는 몹시 당황스러워했지만 얼마든지 편하게 평소의 생각을 이야기해 달라는 청을 마침내는 받아들였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지금껏 남아 있는 이.. 2019. 5. 11.
붓끝에서 핀 꽃송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1) 붓끝에서 핀 꽃송이 지나는 길에 잠깐 인우재에 들렀을 때, 소리가 찾아낸 것이 있었다. 네잎클로버였다. 누가 아빠의 딸 아니랄까 그랬는지, 소리도 네잎클로버를 잘 찾았다. 네잎클로버는 책갈피에 넣어두지 않으면 금방 시들고 만다. 책을 찾기 위해 서재 방문을 열었다. 무슨 책을 꺼낼까 망설일 때,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였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좋겠다 싶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책이다. 유담(劉惔)이 강관(江灌)을 평했다. "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잘 한다." 달변이나 능변의 재주는 없지만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그것을 눈여겨 바라보는 사람이나 모두 경지에 든 사람이다 싶다. 를 두고 ‘촌.. 2019. 5. 11.
나는 누구일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0) 나는 누구일까? 큰 딸 소리가 다시 독일로 돌아갈 날이 가까이 오면서 함께 연극을 보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 싶다. 정릉에서 대학로는 버스 한 번만 타면 되는 가까운 거리,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내와 소리가 정한 연극이 , 나는 처음 듣는 제목이었다. 요즘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했던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다. 전좌석이 매진이었고, 좌석을 따로 지정하지를 않아 줄을 선 순서대로 입장을 해야 했다. 무대는 한 눈에 보기에도 단순했다. 평범한 의자들이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고, 공사장에서 쓰는 듯한 둥근 쇠파이프가 울타리처럼 둘러쳐 있었다. 설치된 무대만 봐서는 연극이 무척 단조롭거나 지루할 것처럼 여겨졌다. 연극의 상황은 단순했고 .. 2019. 5. 9.
씨앗과 같은 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0) 씨앗과 같은 말 마음에 떨어져 씨앗처럼 남은 말들이 있다. 동네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느꼈으면 싶어 논농사를 시작하던 해, 논에 물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를 병철 씨에게 물었을 때였다.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농사꾼은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돼요.” 마을 사람들이 거반 다 나와 강가 너른 밭에서 일하던 날이었다. 아예 솥을 가지고 나와 강둑에서 밥을 짓는 김영옥 집사님께 일일이 짐을 다 옮겨야 했으니 고생이 많았겠다고 인사를 했을 때, 예전에는 물이 맑아 강물을 길어 밥을 지었는데 이젠 어림도 없게 되었다며 툭 한 마디를 했다. “다 씨어(씻어) 먹어두, 물은 못 씨어 먹는 법인데유.”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된다는, 어떤 것이든 물로 씻으면 되지만 물이 더러워지.. 2019. 5. 8.
그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9) 그냥 후둑후둑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오래된 흙집 흙벽 떨어지듯 견고하다 싶었던 마음이 허물어질 때가 있다. 태연하던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어디에도 뿌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미동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손을 휘저어도 무엇 하나 잡히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어떤 것도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도, 음악도, 책도, 커피도, 세상 풍경도, 전해지는 이야기도,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뒷걸음을 친다. 한 순간 내가 낯설고 세상이 낯설다. 모래알 구르듯 시간이 지나가고, 어둠이 깊도록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침내 향방이 사라진다. 그럴 때면 발버둥을 치지 않는다. 고함을 지르지도,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미끄러지.. 2019. 5. 8.
50밀리미터 렌즈처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7) 50밀리미터 렌즈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송진규 선생님이 있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강원도에서 살며 강원도의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이시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모습 속에는 강원도의 이미지가 담겨 있지 싶다. 원주에 있는 육민관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교장으로 은퇴를 하신 뒤, 지금은 고향 호저에서 살고 계시다. 어느 핸가는 동네 이장 일을 보았다고도 들었다. 이장이라는 직함도 잘 어울리신다 싶었다. 선생님의 성품과 삶과 글과 사진을 나는 두루 좋아한다. 언젠가 선생님께 들은 사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선생님은 50mm 렌즈로만 사진을 찍는데,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50mm 렌즈가 사람의 눈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자.. 2019. 5. 7.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6)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 “악마가 영혼을 거칠게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반대로 영혼을 과도하게 섬세하게 하는 데 주력한다. 그리하여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은 ‘죄가 없는 곳에서도’ 끊임없이 모든 것을 죄로 보고, 결국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참소(讒訴)한다.” 예수회의 창시자 로욜라가 한 말이다. 내면을 성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영혼의 방에 등불을 밝힌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은 섬세해진 자신을 과신하여 정작 바라보아야 할 것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2019.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