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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꽃 한 송이 신동숙의 글쓰기(105) 매화꽃 한 송이 한 잎의 얼굴 한 줄의 꽃술 기자와 목사와 신부와 스님과 음악가 꽃잎 한 장의 양심 다섯 잎이 모이면 어린 아이 노란 꽃술들 수두룩 안을 수 있다 매화꽃 한 송이 참 소복하다 2020. 3. 10.
만약에 우리집에 코로나19가 온다면 신동숙의 글쓰기(104) 만약에 우리집에 코로나19가 온다면 만약에 우리집에 코로나19가 온다면,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현 정부의 정직한 대응책으로 철저한 방역과 확진자 동선의 투명한 공개가 잘 이루어지고 있고, 병원 의료진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치료와 다양한 사회 시설 등으로부터 격리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전국에서 물심 양면으로 도움의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고,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와 기침 예절을 온 가족과 이웃들이 다함께 잘 지키고 있으며, 다들 작은 만남과 모임과 생계를 위한 영업과 예배도 참아가면서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고 있으며, 그런 정부의 발빠른 대응책에 든든한 믿음이 가다가도, 어디선가 불쑥불쑥 돌발 행동으로 계속해서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는 신천지 .. 2020. 3. 9.
그리운 오병이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0) 그리운 오병이어 그야말로 ‘대란’이다. 마스크를 구하는 것이 이리도 어렵고 소란스러운 일이 되고 말다니 말이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이 만들어지고, 사재기를 하고, 급기야 정부까지 나서 일주일에 두 장씩 사도록 통제를 하다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마스크 대란 또한 전에 없던 일이지 싶다. 문득 그리운 장면이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바로 그 순간이다. 말씀을 듣느라 가는 시간을 잊었던 사람들, 먹을 것이 필요했을 때 한 소년이 드린 도시락 하나, 그것을 들고 기도하신 뒤 나눠주자 먹고도 남았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오늘 이 땅에 필요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다면 마스크 기적이 아닐까. 조금 참아도 되는 사람.. 2020. 3. 9.
3월의 푸른 차나무 신동숙의 글밭(103) 3월의 푸른 차나무 머리가 무거울 때면 산으로 갑니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적이 드물고 그러면서도 안전한 곳으로 작은 암자만한 곳도 없습니다. 그럴 때면 암자가 있는 자리에 대신 작은 예배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산 속 오솔길을 걷다가 작고 소박한 예배당 십자가가 보인다면, 도시락을 넉넉히 싸들고서라도 부지런히 찾아갈 텐데 말이지요.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듯이 뒤죽박죽 세상 뉴스에 헝클어진 마음의 결을 고르기에는 자연이 좋은 처방전입니다. 아무런 말없이 고요히 앉았다가 오는 일입니다. 산에선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가슴에서 들려오는 작은 숨소리까지 귓전에 잔잔하게 울리면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먼 산 능선을 가만히 바라보기도합니다. 그렇게 바.. 2020. 3. 8.
십사만사천명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19) 십사만사천명 이단이나 사이비에서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가장 즐겨 애용하고 인용하는 것이 ‘십사만사천명’이 아닐까 싶다. 십사만사천명이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로, 인침을 받은 자들(7:4),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선 자들(14:1), 속량함을 받은 자들(14:3)에 해당된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어야 십사만사천명에 들 수 있다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십사만사천명에 들어갈지 말지 한다고 사람들을 겁박한다. 십사만사천명에 들어가기만 하면 영원히 왕노릇을 하게 된다고 현혹한다. 그런 유치한 겁박과 현혹이 어디 있을까 싶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십사만사천명에 들어가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기 전에 내가 들어.. 2020. 3. 8.
이렇다면 나도 신천지다 신동숙의 글밭(102) 이렇다면 나도 신천지다 14만4천 명의 구원수 안에 들기 위해서 이 세상과 가족에게까지 등 돌린 한탕주의 이기심. 전도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추수꾼이라는 거짓 사명을 따라서, 존엄한 인간을 진실과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 아닌, 거짓과 수단과 도구로 전락시킨 이기심.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일렬종대로 따닥따닥 맨바닥에 엎드린 사대주의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시절의 식민노예근성으로 구원 시험을 치르는 맹목적 구원의 이기심. 예수는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으라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예수가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사건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내가 너희를 이처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라, 하시며 전도 점수를 채우지 못하면 .. 2020. 3. 7.
언제간수밌나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18) 언제간수밌나요 ‘목사님교회언제간수밌나요’ 한 교우가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 내용을 보고 처음엔 이게 무슨 뜻일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짐작되는 게 있었다.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목사님, 교회는 언제나 갈 수 있나요?’ 울컥 괜히 목이 멘다. 2020. 3. 7.
촛불 하나 신동숙의 글밭(101) 촛불 하나 숨을 쉬는 평범한 일이 아주 특별한 일이 되었다 코와 입을 가리고, 눈빛으로만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봄날이다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도 사람들이 쳐다본다 밥을 먹은 후 잔기침만 해도 사람들이 떠나간다 숨을 쉬는 일이 삶에 생기를 누른다 갑갑증이 툴툴거리는 딸아이한테 가서 터졌다 "제발, 남 탓 하지 말고, 자신한테서 문제를 찾아"라고 그래놓고 후회가 밀려온다 바른말로 상처를 주고, 감싸주지 못한 것이 혹여 좁아진 가슴에 촛불 하나 없었다면 어떻게 견뎠을까 쳐다보는 사람도, 떠나가는 사람도 그래도 미운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주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촛불 하나 봄꽃처럼 피었기 때문이다 코와 입으로 마음껏 숨을 쉴 수 없다면 가슴으로 더 깊이 숨을 쉬면 된다 봄바람.. 2020. 3. 6.
이만희를 바라보는 '서글픔' 한희철의 히루 한 생각(417) 이만희를 바라보는 '서글픔' 서글펐다. 여러 감정이 뒤엉키며 한꺼번에 지나가서 그 말이 가장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내내 슬펐고 허전했고 그래서 서글펐다. 구십이 된 노인네가 마스크를 쓰고 나와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늘어놓을 때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절을 거듭 할 때에나, 절을 하는 손에 가득 잡힌 주름을 볼 때에나, 사과를 하는 중에도 여전히 아랫사람 대하듯 훈계를 하거나 호통을 칠 때에나, 귀띔을 해주는 여자가 뭔가를 조정하고 있어 그에게 의존하고 있는 이는 꼭두각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지날 때나 마음엔 서글픔이 가득했다. 말도 안 되는 한 사람 이야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젊은이들이 무릎을 꿇고 환호성을 지르며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이.. 2020.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