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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감싸는 신동숙의 글밭(109) 온몸을 감싸는 온몸을 감싸는 따사로운 봄햇살이 안아주는 품인 것을 가슴을 스치는 한 줄기 봄바람이 홀가분한 날개인 것을 뼛속 깊이 들어 아려오는 봄비가 속 깊은 울음인 것을 없는 듯 있는 커다란 하늘이 살아있는 숨결인 것을 한순간도 멈춘 적 없는 한순간도 끊인 적 없는 경전의 말씀인 것을 굳어진 마음을 만지는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조물주의 손길인 것을 2020. 3. 14.
물 두 모금을 마신 사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4) 물 두 모금을 마신 사람 군 생활을 하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이야기가 있다. 가뜩이나 요령이 없는 터에 그 이야기는 요령을 필요로 할 때마다 떠올라서, 더욱 요령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게 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야기가 갖는 힘인지도 모른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 기차를 탔을 때였다. 우리를 인솔하던 장교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사막에서 전투를 벌이던 한 소대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물이 모두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사막에서 전투 중 물이 떨어지고 말았으니, 총알이 떨어진 것과 다를 것 없는 위기였다. 그때 한 병사가 어디론가 기어가 물을 구해왔다. 그가 구해온 물은 수통 하나였다. 지칠 대로 지친 30여 명의 소대원들에게는 턱없이.. 2020. 3. 13.
짬뽕을 먹으며 '가난'을 얘기했다가 신동숙의 글밭(108) 짬뽕을 먹으며 '가난'을 얘기했다가 딸아이는 제 방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고, 아들은 쇼파에 늘어져 텔레비젼을 보고 있고, 엄마는 책을 읽는 둥 페이스북을 하는 둥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아차 싶어서 거실로 나서며, "얘들아~ 우리 뭐 먹을까? 우리 이러다가 굶겠다. 다 모여봐." 방에서 튀어나온 딸아이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배달의 민족에서 자기가 주문을 할 테니, 매뉴를 정하자며 의견을 냅니다. 퇴근해서 돌아올 아빠 몫까지 모처럼 중국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짬뽕 곱배기, 볶음밥, 짬짜면, 탕수육 소자. 온 가족이 거실에 있는 원목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낮에 눈물을 흘리면서 본, '설악산의 짐꾼 아.. 2020. 3. 13.
기꺼이 잔을 받겠나이다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16) BWV 244 Matthäus-Passion/마태 수난곡 No.16 기꺼이 잔을 받겠나이다 마태수난곡 1부 27번~29번 마태복음 26:39 음악듣기 : https://youtu.be/ulO8S1ZrMcU 27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39. Und ging hin ein wenig, fiel nieder auf sein Angesicht, und betete und sprach: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대: 27 대사 예수 39. Mein Vater, ist's möglich, so gehe dieser Kelch von mir; doch nicht wie ich will, sondern wie du willst. 3.. 2020. 3. 12.
텅 빈 카페 신동숙의 글밭(107) 텅 빈 카페 몸이 늘어지도록 늦잠을 자던 중학생 딸아이가 방에서 나오며 대뜸, "엄마, 우리 카페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뭔가 얘기를 해옵니다. "엄마~ 코로나에 걸리면 치사율이 몇 프로인지 알아?" (계속 반말을 합니다. 이쯤 되면 존댓말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엄마로써 한마디 해줘야 하는데, 얘기가 재미나서 그냥 끝까지 들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딸아이는 자문자답을 합니다. 3%라며, 수능 시험 1등급 받을 확률이라면서, 친구들하고 카톡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는 걱정 안해도 된다."고 했다며, 환하게 웃으면서 카페를 가자고 합니다. 아직은 외출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러자고 했습니다. 마당에 하얀 목련꽃이 어제보다 조금 더 피어서 오후의 햇살을 듬뿍 받아 딸아이의 미소처.. 2020. 3. 12.
마스크 은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3) 마스크 은행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교우들을 위해 준비해 둔 마스크가 있었다. 알아보니 1100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교우들 중에는 몸이 약하여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분들이 있다. 그분들이 약국 앞에 줄을 서서 마스크를 구하는 일은 어려운 일, 필요한 교우들께 나누어 드리기로 했다. 양이 제한되어 있어 더 자주 더 많이 나눌 수 없는 것에 양해를 구하며 교우들께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마스크 은행을 개설하면 좋겠다 싶은 것이었다. 교우들께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냈다. “마스크 은행을 개설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시기, 이럴 때일수록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혹시라도 마스크를 교회에 기증을 하든지, 마스크를 .. 2020. 3. 12.
봄비, 얼마나 낮아지면('신의 날' Kol Nidrei) 신동숙의 글밭(106) 봄비, 얼마나 낮아지면('신의 날' Kol Nidrei) 온종일 봄비가 내립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비를 두고 떨어진다 하지 않고 내린다 합니다. 낮은 땅으로 가만가만 닿는 빗소리가 평온함을 줍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봄비는 말없이 가장 낮은 숨을 쉬며 이 땅을 하얗게 적십니다. 지난밤부터 마당으로 내리는 빗소리에, 온몸은 물기를 머금은 듯 아려옵니다. 그대로 마음이 가라앉으면 들뜨던 숨이 저절로 낮아집니다. 잔잔한 빗소리에 메마른 가슴에도 그리움이 흐르면, 앉은 자리 그대로 기도가 됩니다. 이 순간 쟈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의 첼로 연주곡인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Max Bruch, Kol Nidrei Op. 47)가 있다면 좋은 사우師友가 되어줍.. 2020. 3. 11.
엉뚱한 교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2) 엉뚱한 교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다 준 소소한 변화 중에는 건강에 관한 관심과 수칙도 있지 싶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기침을 할 때는 손이 아니라 팔등으로 가리고 한다. 독일에서 지낼 때 신기하게 바라보았던 그 모습이 잠깐 사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들은 재채기도 밖으로 내뱉지 않고 삼키는 형태로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강조된 것이 있다면 손 씻기가 아닌가 싶다. 손 씻기야 말로 건강을 지키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습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방송을 보다보니 한 출연자가 손 씻기에 대해 재미난 방법을 일러준다. 대충 씻지 말고 꼼꼼하게 씻으라며, 손을 씻을 때 ‘생일축하노래’를 두 번 부르라는 것이었다. 그 노래를 두 번 부를 만큼의 시간.. 2020. 3. 10.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1)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가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만, 예배가 중요하면 할수록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을 스스로 삼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굳이 예배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기도 하고, 이런 선택이 강요나 핍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배려하고 사회의 아픔에 동참하는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억압에 의해 누군가의 발을 닦으면 굴종이지만, 자발적으로 닦아주면 사랑이다. 모두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하여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서로의 선택을 비방하거나 조롱하는 일은 불필요한 소모전이라 여겨진다. 군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던 시절, 마음대로 예배할 수 없던.. 2020.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