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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숙제 한희철의 얘기마을(108) 틀린 숙제 은진이가 숙제를 합니다. 맞는 답을 찾아 선으로 연결하는 문제입니다. 1+4, 2+1, 4+3 등 문제가 한쪽 편에 있고 3,5,7 등 답이 한쪽 편에 있습니다. 은진이는 답을 찾아 나란히 선을 잊지 못합니다. 답이 틀린 게 아닙니다. 찍찍 어지러운 선으로 은진이는 아예 그림을 그렸습니다. 불안기 가득한 커다란 두 눈 껌뻑이며 아직 말이 서툰 1학년 은진이. 은진이의 숙제를 보며 마음이 아픈 건 우리 삶 또한 수많은 관계와 관계, 만남과 만남, 과정과 과정으로 연결된 것일 텐데, 은진이의 경우 그 모든 것들을 차분히 잇지 못하고 어지러이 뒤엉키고 말 것 같은 걱정 때문입니다. 휑하니 무관심 속에 버려진, 누구하고도 나란히 선으로 연결되지 못한 은진이.은진이가 틀린 숙.. 2020. 10. 8.
떠도는 물방울 하나 신동숙의 글밭(249) 떠도는 물방울 하나 망망대해(茫茫大海) 망망대천(茫茫大天)떠도는 물방울 하나 깜깜한 밤이래도 걱정 없어요돌고 돌아서 제자리길 잃을 염려 없어요 연약하여 부서진대도 상관 없어요부서지면 더 작은 물방울더 가벼울 터이니 언제든 고개 들면해와 달과 별이 그 자리에서한결같이 지켜보고 있으니 2020. 10. 8.
글숲 신동숙의 글밭(248) 글숲 글숲에서 길을 찾기도 하지만종종 길을 잃기도 하지요 키 큰 나무와 무성한 수풀 속에서길이 보이지 않으면 가만히 눈을 감지요달과 별이 어디 있나 하고요 고요히 눈을 떴을 때 나뭇잎 사이로 해가 빛나면맘껏 해를 마주보기도 하고 햇살에 춤추는 먼지 한 톨에 기뻐하지요 2020. 10. 7.
효험 있는 청소 한희철의 얘기마을(107) 효험 있는 청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동구 밖과 집, 지집사님은 연신 동구 밖과 집을 왔다 갔다 합니다. 종종걸음으로 동구 밖으로 나와 신작로를 바라보다가 누가 부르기라도 한 듯 다시 집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그런 집사님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부천에 나가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교제하는 여자와 인사드리러 온다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집과 동구 밖을 오가는 것으로 봐선 집사님은 집 아궁이에 찌개를 올려놓은 게 분명합니다. 오랜만에 오는 아들도 아들이지만 새 며늘아기 될 아가씨에게 오는 대로 따뜻한 상을 차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녁 해가 기울고 산 그림자를 따라 땅거미가 깔릴 때에야 기다리던 아들과 예비며느리가 왔습니다. 첫 번째로 부모님을 찾아뵙는 떨림과 부끄러움.. 2020. 10. 7.
동틀 녘 참선방에서 쫓겨나다 신동숙의 글밭(247) 동틀 녘 참선방에서 쫓겨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앉을 자리가 어디인가 하고 찾다 보면, 예수가 이 세상에 머리 둘 곳 없다 하시던 말씀과 살포시 겹쳐집니다. 잠시 앉을 자리야 얼마든지 있지만, 제가 찾는 건 잠시 앉을 자리가 아닌 오래 앉을 자리입니다. 오래 앉을 자리로 치자면 제 집도 오래 앉을 곳이 못 됩니다. 집안 살림이란 것이 있어서, 때가 되면 끼니를 챙겨야 할 자녀들이 눈 앞에 어른거리고, 세탁 바구니엔 빨랫감이 쌓이고, 설거지거리가 쌓이고, 먼지가 쌓이고,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살림살이 속에서 과연 홀로 앉았는 일이란 널뛰기와 같습니다. 차 한 잔을 우려내는 3분의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았는 일도 일상 속 가족들에겐 게으름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3분이.. 2020. 10. 6.
어디까지 떠밀려야 한희철의 얘기마을(106) 어디까지 떠밀려야 어렵게 한 주일이 갔습니다. 작은 농촌엔 별다른 일도 드물어 그저 그런 일들이 꼬리 물 듯 반복되곤 했는데, 이번 주 있었던 두 가지 일들은 무척이나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봉철이가 퇴학을 맞았습니다. 막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한참 신나게 공부하고 뛰어놀 때인 중학교 1학년. 봉철이가 더 이상은 학교를 못 다니게 되었습니다. 며칠인지도 모르고 계속 결석을 했던 것입니다. 공부가 싫다고, 학교 가기 싫다고 봉철이는 아침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는 했습니다. 그걸 안 주위 분들이 야단도 치고 달래기도 하면서 노력했지만 끝내 봉철이 마음을 학교로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봉철이가 야단을 맞을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 아픈 데가 없지는 않습니다. 돌아가.. 2020. 10. 6.
순간 신동숙의 글밭(246) 순간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기 짙은고요히 깊어질수록 아름다운 매 순간이 꽃이더라모든 순간이 사랑이더라 슬픔은 눈물꽃으로 피우고아픔은 앓음앓음 한숨꽃으로 피우고 어린아이의 눈물웃음꽃으로 다시 피어나는햇살 머금은 아침이슬의 웃음꽃으로 빛나는 그러한 순간이 되는 길을고독과 침묵의 귀 기울임 말고는 나는 알지를 못한다 2020. 10. 5.
망초대 한희철의 얘기마을(104) 망초대 지집사가 또 울먹이며 기도를 했다. 며칠인지 모르고 장마가 지고 또 빗속 주일을 맞아 예배드릴 때, 지집사 기도는 눈물이 반이었고 반은 탄식이었다. “하나님 모든 게 절단 나고 말았습니다. 무 당근은 썩어가고, 밭의 깨는 짓물러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불어난 물에 강가 밭이 잠기기도 했고, 그칠 줄 모르는 비, 기껏 자라 팔 때가 된 당근이 뿌리부터 썩기 시작해 팔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제법 많은 당근 밭을 없는 선금 주고 미리 사들인 부론의 오빠가 몸져누운 데다가, 송아지 날 때가 지났는데도 아무 기미가 없어 알아보니 새끼를 가질 수 없는 소라는 우울한 판정을 받은 것이 곡식 절단 난 것과 맞물려 지집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2020. 10. 5.
끊어진 이야기 한희철의 얘기마을(103) 끊어진 이야기 옛날, 어떤 사람이 소를 잃어버렸어요. 소가 여간 귀해요? 큰일 났다 싶어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으러 다녔죠. 어떤 동네에 이르러 보니 저기 자기 집 소가 있더래요. 어떤 집 외양간에 매어 있는데 분명 자기 소더래요. 집주인을 만나 사정 얘기를 하고선 소를 돌려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집주인이 펄쩍 뛰더래요. 우시장에서 사왔다는 것이죠. 문제가 시끄럽게 되자 할 수 없이 관청에 알리게 되었는데, 소는 한 마리에 서로가 주인이라니 소더러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한 일이었죠. 그런데 원님이 참 지혜로웠어요. 소에 쟁기를 매게 하고선 한 사람씩 소를 부려보라 한 거예요. 자기 외양간에 소를 매 놓은 사람이 “이랴, 이랴” 아무리 소를 부려도 소가 꿈쩍도 않더래요. 회초리로.. 2020.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