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4 이상한 마라톤 한희철의 얘기마을(98) 이상한 마라톤 단강으로 목회를 떠나올 때 몇몇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첫 목회지이기도 하고 첫 목회지가 농촌이기도 한지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중 아직도 기억하는 말이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다’라는 말입니다. 농촌목회를 하고 있던 한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농촌목회를 마라톤에 빗대었습니다. 단거리는 잠깐만 뛰면 되니까 있는 힘을 다한다, 그렇지만 마라톤은 다르다, 한참을 뛰어야 한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이 체력안배다, 무엇인가를 단 번에 해내려고 덤비다간 자칫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만다, 그런 뜻이었습니다. 햇수로 4년, 그동안 농촌에서 목회를 한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다’라는 말은 .. 2020. 9. 29. 밤 서리 한희철의 얘기마을(97) 밤 서리 동네 형, 친구와 같이 장안말 산에 오른 건 밤을 따기 위해서였다. 가을 산에는 먹을 게 많았고 그건 단순히 먹을 걸 지나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신나게 밤을 털고 있는데 갑자기 “이놈들!” 하는 호령 소리가 들려왔다. 산 주인이었다. 놀란 우리들은 정신없이 도망을 쳤다. 하필 주인 있는 밤나무를 털었던 것이다. 한참을 산 아래로 내려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잡히지 않은 것과 제법 자루를 채운 밤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정신없이 도망을 치느라 친구가 신발 한 짝을 어디엔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검정고무신이었지만 신을 잃고 가면 집에서 혼날 거라며 친구는 울먹울먹했다. 그때 동네 형이 제안을 했다. 내가 가서 신발을 찾아오겠다, 대신 오늘 딴 밤은 .. 2020. 9. 28.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 청도 운문사 신동숙의 글밭(242)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 청도 운문사 가을 하늘이 좋은 토요일 정오인데, 가족들이 저마다 다 일이 있다고들 합니다. 은근히 기대하던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모처럼 혼자서 길을 나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훌쩍 혼자서 집을 나서기 전에 "같이 갈래요?"하고 자녀들과 친정 엄마에게까지도 전화를 걸어서 일일이 다 물어보았기에,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홀가분하기만 합니다. 가뜩이나 온라인 등교로 두 자녀와 매일 집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그립기까지 했던 차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멀리까지 가지는 못하고 차로 달려서 한 시간 이내에 있으면서 조용히 책도 읽고, 숲길 산책도 하고, 침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면 좋은 것입니다. 분도 명상의 집, 통도사, 석남.. 2020. 9. 28. 어느 날의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96) 어느 날의 기도 외로운 영혼을 이젠믿습니다.숨 막히는 이유빈틈없는 소유뿌리 없는 비상보다는아무것도 아니어서 텅 빈외로운 영혼들외로워도 외롭지 않은외로워서 외롭지 않은아무것도 없어꾸밈없는 영혼을축복하소서,주님. - (1993년) 2020. 9. 27.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신동숙의 글밭(241)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초가집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스케치북에 그리고 그리던 제 마음의 고향집입니다. 어린날의 그림 속에는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있고, 오른편엔 초가 지붕을 훌쩍 넘는 나무 한 그루, 왼편엔 장독대가 있고, 둘레에 싸리와 나무로 엮은 울타리는 키가 낮으며 성글고, 집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감싸고, 집 앞으로는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 그런 마음속 풍경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져오면서 평화로웠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의 성지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좋아하는 그림을 따라서 비록 혼자서 걸어온 길이지만, 그 길에 만나게 된 벗님들에게서도 나와 같은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2020. 9. 27.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한희철의 얘기마을(95)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어릴 적 교회학교는 따뜻한 교실이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다가도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놀던 것을 그만 두고 교회로 향했다. 믿음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린 때다. 이제쯤 생각하기로는 성경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회에 가면 언제라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책도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흔치 않던 시절, 우리들 가슴엔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여름이었다. 마침 그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요란하게 내렸다. 빗소리에 가려졌는지, 선생님이 안 계신 건지 예배시간이 되었는데도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교회로 갔다. 검정 고무신에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쫄딱 맞은 채였다. 뚝뚝 빗물을 떨구.. 2020. 9. 26.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한희철의 얘기마을(94)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지금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이야기합니다. 안갑순 속장님이 담배를 대한 건 놀랍게도 일곱 살 때부터였습니다. 충(회충)을 잡기 위해 담배를 풀어 끓인 물을 마신 것이 담배를 배운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 옛날,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속장님은 시집을 갈 때에도 담배를 챙겨갔다 합니다. 끝내 고집을 부려 풀지 않는 보따리 하나를 두고선 모두들 땅문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담배꾸러미였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담배를 핀다는 것을 우연히 눈치 챈 시아버지는 노발대발하는 대신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담배를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시아버지가 어디 밖에 나갔다 오신 날 서랍을 열면, 말없이 약속된 서랍을 열면, 거기엔 언제나 담배 몇 갑이 있었다는 것.. 2020. 9. 25. 낭독(朗讀) 신동숙의 글밭(240) 낭독(朗讀) 곁에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밀려올 때 묵상 중에도 흔들려서 말 한 마디 건져올릴 수 없을 때 책을 펼쳐보아도글이 자꾸만 달아날 때 책을 소리내어 읽어줍니다내가 나에게 읽어줍니다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다독이고 다독이듯이 2020. 9. 25. 그날은 언제인지 한희철의 얘기마을(93) 그날은 언제인지 “축제의 모임 환희와 찬미소리 드높던 그 행렬. 무리들 앞장서서 성전으로 들어가던 일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어집니다.”(시 42:4) 말씀을 읽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시인의 마음 충분히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간 이들 모두 돌아와 함께 예배할 그날은 언제일지, 이 외진 땅에서 그려보는 그 날이 옛 일 그리는 옛 시인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1991년) 2020. 9. 24. 이전 1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