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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살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7) 교각살우 여러 해 전이었다. 교회학교 아이들과 함께 단강을 찾았다. 손으로 모를 심으며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아이들과 함께 단강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을 어른 한 분이 괜찮다면 소로 밭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마침 산에 있는 밭을 갈 일이 있는데, 도시 아이들이 언제 소로 밭을 가는 걸 보았겠느냐며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겠다 싶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섬뜰마을 꼭대기에 있는 저수지를 끼고 산길을 올라 밭에서 일하고 있는 마을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 섬뜰 반장을 지낸 김사식 씨였다. 아이들은 쟁기질을 멈추고 자신들 앞에 선 마을 어른을 박수로 맞았다. 김사식 씨는 도시에서.. 2019. 6. 19.
주파수를 맞추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6) 주파수를 맞추면 “주파수를 맞추면 잡음이 사라집니다.” 이성복 시인의 를 읽다 만난 한 구절이다. 거듭 밑줄을 치고는 한참을 생각했다, 맞구나! 잡음과 씨름을 한다고 잡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잡음만 커진다. 잡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주파수를 맞추는 것, 잠시 잡음에서 벗어나 주파수를 맞추면 슬그머니 잡음은 사라진다. 2019. 6. 18.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5)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 원로 장로님 한 분과 이야기를 하며 그분이 장로로 세워질 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30대 후반, 나이며 신앙이며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피했지만 담임목사님이 몇 번인가를 찾아와 설득하며 권했다고 한다. 새벽에도 밤중에도 찾아왔다니 교회나 목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겠다 싶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요즘의 세태로 이어졌다. 자격 없다 싶은 이들이 자리를 탐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믿음도 믿음이지만 많은 이들을 이끌려면 성품이 중요한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자리에 욕심을 내고, 그 직분을 얻기 위해 애를 쓸 때가 있다. 그 결과로 빚어지는 일은 본인은 물론 교회나 다른 이들에게도 불행한 모습으로 나타나고는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2019. 6. 16.
오디가 익는 계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4) 오디가 익는 계절 피기도 전에 잘리는 담배 꽃 이야기를 듣고는 담배 꽃엔 예수님의 십자가와 어머니의 희생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아직 본 적이 없다는 꽃을 보기 위해 시골을 찾았을 때, 담배 밭 초입에 선 뽕나무에는 오디가 잔뜩 달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까만 오디가 종알종알 가지마다 가득했다. 바닥에도 떨어진 것이 까맣게 널려 있었으니 오디는 익을 대로 익은 것이었다. 보기로 한 담배 꽃은 뒷전, 우리는 오디를 따먹기 시작했다. 손과 입이 금방 까맣게 변했는데,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 같이 웃어댔다. 오디를 따먹다 보니 어릴 적 소리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소리가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오더니 물었다. “아빠, 뽕나무를 보지 않고도 오디가 익은.. 2019. 6. 16.
한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3) 한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창 피었던 난 꽃이 졌다. 붉고 진한 향기를 전하더니 이제는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언제 향기를 전했냐고 시치미를 떼듯이 누렇게 말라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더 마를 것이 있다는 듯이 꽃의 형체로만 남았다. 시든 꽃에서는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는다. 묵중하면서도 코끝을 찌르던 향기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향기의 근원을 찾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었던 향기이기도 했다. 누군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열정의 탱고 춤을 추듯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 어둠 속에서 세월을 잊고 포도주 빛깔을 익히듯이 향기는 그렇게 은은히 전해졌다. 분명 지는 꽃과 함께 향기는 사라졌다. 시든 꽃에서는 어떤 향기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향기는 마음 끝에 남아 .. 2019. 6. 15.
골 빠지는 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2) 골 빠지는 일 오랜만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였다. 무엇 그리 바쁘다고 자주 연락도 못 드리며 산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 대답을 하는데, 어머니가 물으신다. “한 목사님, 요즘도 교차로에 원고 써요?”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도 말을 높이신다. 세월의 고개 아흔이 넘자 모두가 고맙고, 모두를 존중하고 싶으신 것 같다. 요즘에도 쓰고 있다고 대답을 하자 무슨 요일에 실리는지, 몇 년째 쓰고 있는지를 다시 물으신다. “수요일에 실리고요, 원고 쓴 지는 23년쯤 된 것 같은데요.” 길을 가다 만나게 되는 생활정보지 중에 가 있다. ‘아름다운 사회’ 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쓴다. 전국적으로 발행이 되고, 한국인이 많이 사는 외국의 대도시에도 발행이 되는 정보지로, 일.. 2019. 6. 14.
더는 못 볼지도 몰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1) 더는 못 볼지도 몰라 심방을 하며 교우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간다. 어찌 삶이 평온하기만 할까, 고되고 험한 삶도 적지가 않다. 높은 곳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달동네라는 말은 낭만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실상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사전에서는 달동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허가 주택과 노후 불량 주택이 밀집된 도시 저소득층 밀집 지역을 말하며, 산동네라고도 한다. 6 · 25 전쟁에 따른 이재민들에게 무허가 건축 지대의 지정을 시작으로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이농으로 생긴 도시 저소득층을 도시 외곽의 구릉 지대에 집단으로 이주시킴으로써 만들어졌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있는 언덕 위 긴 골목 끝에 있는 권사님 집도 그랬다. 세상 한쪽 구석에.. 2019. 6. 13.
어느 날의 기도 2019. 6. 11.
사람이 소로 보일 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0) 사람이 소로 보일 때 전해져 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사람이 이따금씩 소로 보일 때가 있었다. 분명 소로 알고 때려 잡아먹고 보면 제 아비일 때도 있고 어미일 때도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 번은 한 사람이 밭을 갈다가 비가 쏟아져 처마 밑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데, 웬 송아지가 따라 들어오더란다. 돌로 때려 잡아먹고 보니까 웬걸, 자기 아우였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엉엉 울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괴로운 마음에 보따리를 싸들고 길을 떠났다. 사람이 소로 보이지 않고 사람으로만 보이는 곳을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넓은 세상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느라 강물에 떠내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고, 깊은 .. 2019.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