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87 ‘과거’ 이데올로기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30) ‘과거’ 이데올로기 해마다 두 차례, 여름과 겨울이 오면 강남 코엑스는 고등학생과 그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바로 수시와 정시를 위한 입시 박람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매년 백여 개 이상의 4년제 대학과 10만 명 가까운 수험생과 그 가족이 이곳을 방문한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생부를 든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자기 성적으로 입학 가능한 학과가 무엇인지를 상담하게 된다. 2015년도에도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수시입시박람회가 진행되었고, 총 137개의 대학이 참석하여서 열띤 홍보전을 벌였다. 사실 우리나라의 입시 과열은 정평이 나있다. 이런 행사도 그런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노린 것이라 하겠다. 그렇.. 2015. 7. 30. 살인하지 말라 영화와 함께 읽는 십계명(5) 살인하지 말라 - 어느 살인에 관한 이야기 살인의 정의 사람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마태복음 16:26)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공감할 거다. 그런데 십계명 중 가장 까다로운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라면 믿을 수 있겠나? 그건 다른 어떤 계명보다 이 계명에 ‘합법적’ 예외가 많기 때문이다. ‘살인’(殺人)은 사람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계명은 히브리어로 ‘살인하다’(to kill)와 ‘말라’(not)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누가 누구의 생명을 어떻게 빼앗느냐는 방식과 상관없이 모든 형태의 살인을 금.. 2015. 7. 29. “여름밤 기차의 행선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4) “여름밤 기차의 행선지” 흑판의 글씨처럼 쉽게 지우기를 거듭하면서 새로 쓰는 서툰 문장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념(想念)으로 뒤척이다가, 그만 때를 넘기고 미처 잠들지 못한 여름밤은 여느 때보다도 고독해집니다. 순간, 오후 내내 몰인정하게 작열하던 태양을 껴안고 간신히 열기를 식힌 적막(寂寞)을 불현듯 가르며, 홀로 그 긴 몸을 앞세워 어디론가 돌진하기 시작하는 기차의 움직임이 들리는 작은 창문은 “목표를 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의 무임승차(無賃乘車)”를 허용하는 출구가 됩니다. 마치 대단한 일을 벌일 것처럼 머리끝에서 흰 연기를 뿜으며 저 멀리 고갯마루를 넘어서야 비로소 흩어질 기적소리를 울리던 시절의 기차라야 비로소 기차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흑백사진 속의 안타까운 추억.. 2015. 7. 29. 권위 나눔, 소유 나눔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8) 권위 나눔, 소유 나눔 - 전집 4권 『성서 연구』 「산상수훈」 편 - 저 이의 입에서 어떤 말이 떨어질까?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배고픈 이들에게 떡을 먹인 이라는데, 저이가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가 아닐까? 예수를 따라 산 위에 오른(마태복음), 혹은 한적한 평지에 다다른(누가복음) ‘무리들’은 온 존재를 집중하여 예수의 입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필시 살리는 말을 할 것이니, 필시 숨통이 트이는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니, 그 첫 마디가 어찌 기대되지 않으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복스럽도다, 가난한 이여!” 어이없을 일이다. 1세기 팔레스타인 땅에서 ‘가난한’ 삶이 얼마나 비참한데, 어찌 가난한 이들이 복되다 하는가? “천국이 저희 것인 까닭이다.” .. 2015. 7. 29. 고삐 풀린 망아지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6) 고삐 풀린 망아지들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卑賤)하고 우준(愚蠢)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自己) 하나님의 법(法)을 알지 못하니 내가 귀인(貴人)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自己) 하나님의 법(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一齊)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結縛)을 끊은지라”(예레미야 5:4~5). 어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알면서도) 하나님을 등질 수가 있는 것일까, 예레미야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 법’(이사야 1:3)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짐승만도 못하단 말인가? 내남없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사는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예레미야는 이.. 2015. 7. 27. 영혼은 날고 싶다 김기석의 톺아보기(9) 영혼은 날고 싶다 -파커 J. 파머의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온전함은 완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온전함의 의미를 깨닫게 된 후 나는 우리가 참화를 새로운 생명의 온상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인간의—나의, 당신의, 우리의—온전성이 헛된 꿈은 아니라는 희망을 간직하게 되었다.” (파커 J. 파머) “무대 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하는 동안 내 참자아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가치와 믿음, 그 부서지기 쉬운 희망과 열망을 세상이 부숴버릴까 두려워 무대 뒤에 숨어 있었다.”(파커 J. 파머) 분리된 삶 구름이 짙게 드리운 도시의 뒷골목을 걷노라면 영화 의 주인공인 꽁스땅스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떠오를 때가 있다. 내면의 .. 2015. 7. 23. 부자는 누가 부자야?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3) 부자는 누가 부자야? “어린 친구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란 참으로 어렵구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마가복음 10:17-30). 젊은이는 슬픔에 잠겨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풀이 죽어 떠나갔다.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겉으로는 전보다 더 경건해지고 신심이 돈독해지고 기도를 더 많이 하고자 힘쓰며 정직하고 의롭고 곧은 사람으로 처신하고자 애썼다. 성전에 가고 헌금을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사도 많이 하여 참으로 경건한 인물로 흠모 받았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기분은 떨치지 못하였다. 만사가 전과 다르고 다 허전하였다. 자기가 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지, 왜 지금도 이처럼 마음이 무거운.. 2015. 7. 23. 인간이 꿀벌처럼만 산다면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29) 인간이 꿀벌처럼만 산다면 피조물 안에 있는 선(善), 피조물의 꿀 같은 달콤함은 모두 하나님 안에서 모아집니다. 친구시인 가운데 양봉을 하는 이가 있다. 그는 꿀벌의 생리를 잘 알 뿐만 아니라 꿀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꽃 피는 식물에 대해서도 잘 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사람이 꿀벌처럼만 산다면 세상이 오늘날처럼 망가지지는 않을 겁니다.”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오?” “제가 늘 산 가까이 살면서 보는데, 도시 아줌마들이 봄에 산나물을 캐러 오면 아예 산나물 종자까지 작살을 내고 갑니다. 꿀벌을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꿀벌은 꽃에 앉아 꿀을 따면서도 꽃을 해치지 않거든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하면서도 상대에게 유익을 끼치는.. 2015. 7. 23. 새벽(의) 날개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1) 새벽(의) 날개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개역개정),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공동번역), 여기 시편 139편 9절에 나오는 “새벽의 날개”란 무엇인가? 이것은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의 “칸페이 샤하르”의 직역이다. 찬송가 뒤 교독문에 인용되어 있는 본문이므로 예배 때 자주 만나게 된다. 일반적인 독자들의 경우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겠는 것이 아마도 “새벽의 날개”라는 표현일 것이다. 날이 밝을 녘을 일컫는 신간의 한 대목에 새나 곤충이 날 때에는 펴는 신체의 한 부분을 연결시키는 것이 우리말 독자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할 것이다. 시편 139편 8-10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현존을 피하지.. 2015. 7. 23. 이전 1 ··· 252 253 254 255 256 257 258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