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3 밥을 제대로 모시면 그것이 곧 예배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27) 밥을 제대로 모시면 그것이 곧 예배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만물을 사랑하시되 피조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으로 여겨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만물을 사랑하십니다. 임낙경 목사님이 섬기는 강원도 화천의 시골교회에서 소박한 밥상을 받았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수고가 어우러져 공들여 빚어진 밥상. 밥을 다 먹고 났는데도 입안에는 그윽한 산야채의 향이 고여 있었다. 빈 그릇을 부엌으로 가져가는데, 부엌 입구에 ‘밥’에 관한 글귀가 적힌 족자가 눈길을 끌었다. 이 밥이 우리에게 먹혀 생명을 살리듯 우리도 세상의 밥이 되어 세상을 살리게 하소서. 한 방울의 물에도 .. 2015. 7. 10. 애굽의 어머니들, 그들도 어머니였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6) 애굽의 어머니들, 그들도 어머니였다(1) 1.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다”(출애굽기 12:30). “부르짖음”은 울부짖음이다. 울부짖음은 절규(絶叫)이다. 그리고 그냥 부르짖음이 아니라 큰 부르짖음이란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울부짖는가? 울부짖음의 주체가 누구인가? 원래 애굽에 부르짖음이 있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출애굽기 2:23-24). 성경기자는 갓 낳은 아들을 나일 강에 던져야 했던 어머니들의 부르짖음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 울부짖음도 만만치 않.. 2015. 7. 9. 비만의 도시가 허기진 까닭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1) 비만의 도시가 허기진 까닭은 날이 갈수록 비만해져만 가는 도시를 남모르게 허기지도록 하는 것은, 결국 산과 나무와 강, 그리고 하늘의 별에서 그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일 수 있습니다. 그 고독은 무서운 속도로 시간을 삼키는 분주한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어느새 시(詩)를 잃어버린 시인의 영혼이자, 생계를 위해 화구(畵具)를 팔아버린 화가의 눈매를 닮아 있습니다. 때로 무엇으로도 좀체 갈증을 식힐 수 없는 여름의 난폭한 야만의 밤은 길들일 수 없는 맹수처럼 우리의 휴식을 소리 없이 습격하고, 동창(東窓)이 밝아오는 새벽녘에야 줄어드는 그림자를 이끌고 비로소 물러서는 기척을 냅니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인사도 없이 황망하게 사라져가는 밤의 뒷모습은 처음의 무례함과는 달리,.. 2015. 7. 9. 여호와를 아는 사람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6) 여호와를 아는 사람 - 전집 3권 『성서 개요』 「사무엘상」 편 - 어디나 높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사회생활의 무기가 된다. 사소한 일상의 일부터 죽고 사는 크고 긴급한 일까지, ‘내가 높은 사람을 안다’는 것은 더 쉽게, 더 빠르게, 나아가 나에게 더 유리하게 일을 처리하는 힘이 된다. 최근 어이없게 방역망이 뚫려 안타까운 생명들을 잃고 전 국민을 떨게 했던 ‘메르스 사태’만 보아도 그렇다. 1번 환자(그나저나 사람에게 1번이 뭐냐? 인격체를 호칭하는 방식으로는 참 별로다.) 스스로 ‘메르스 같다’고 자진신고 했다는데, 안이한 탁상행정에 콧방귀로도 안 듣던 보건당국 사람들은 ‘높은 사람을 안다’는 환자의 ‘협박’(?)에 움직였고, 덕분에 더 끔찍하게 확산.. 2015. 7. 9. 한 걸음 속에 인생이 있다 김기석의 톺아보기(7) 한 걸음 속에 인생이 있다 삶이 암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흐르는 모래 속에 빠져드는 것 같은 아득한 무력감, 마치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아스라한 공포가 밀려오면 세상은 아연 잿빛으로 변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호기롭게 지내던 시절은 가뭇없이 스러지고 늪과 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그 계기는 다양하다.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 이별의 쓰라림이나 실패가 가장 흔한 원인이지만 전혀 계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게오르그 잠자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 자기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늪과 같은 시간을 거쳐 온 한 젊은이의 고백을 들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밤마다 찾아.. 2015. 7. 8. 지리산가리산, 한국교회(?)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7) 지리산가리산, 한국교회(?) 인간은 시간의 동물이다. 많은 동물들 중 인간만이 유별나게 시간을 미리 느끼고, 그것을 궁금해 하며, 또 그 때문에 고민한다. 보통 우리 주변의 동물들은 지금의 생존을 가장 중시한다. 물론 몇몇은 내일의 먹을 것을 위해 음식을 저장한다. 나무 위에 걸쳐놓거나 땅 속에 묻어놓거나, 아예 몇 개의 위장에 나누어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이지 인간처럼 일주일, 한 달, 1년, 아니 그 이후까지 로드맵을 만들어 준비하고 고민하고 안타까워하는 동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이는 인간만이 지닌 특권이요 혹은 본질적 천형(天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요상한 버릇이 인간에.. 2015. 7. 8.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영화와 함께 읽는 십계명(3)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 어느 선택에 관한 이야기 - 내 이름을 불러다오! 동생 넷을 가진 젊은이가 결혼을 했다. 시집와서 나흘 밤을 지낸 후 신부는 신방에서 나와 죽을 끓여 시동생들에게 갖다 줬다. 그런데 시동생들은 죽 그릇을 받아 들고는 “우리 이름을 말해야 죽을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시집 온지 나흘 밖에 안 되는 새색시가 넷이나 되는 시동생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나. 그녀가 “나는 도련님들 이름을 모릅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우리 이름을 모르면 죽을 먹지 않겠습니다. 도로 가져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죽을 자기 방으로 가져가서 남편과 나눠 먹었다. 이튿날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신부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동생들.. 2015. 7. 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1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 나에게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나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답변해왔다. 말이 정중이지 내 사양은 신경질이었다. 나는 그 인터뷰어들이 내게서 원하는 것들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 말을 빙자하여 그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었거나 혹은 그들조차도 왜 그래야하는지에 관한한 여하간의 성찰도 없이 마치 서로의 역할이 그래야만할 것 같은 세상살이의 상투성으로 나의 신경질은 그 피곤함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에 동원되어야 한단 말인가. 혹은 이것이 누군가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2. 나의 장인은 지난 6월 1일 국가지정격리병동에서 돌아가셨다. 향년 71세. 공식적으로 메르스로 사망한 첫 번째 케이스였다. 언론들은 앞 .. 2015. 7. 7. 그럴 수 있다면 한희철의 두런두런(24) 이불 말리듯 예배당 옆 영안아파트 후문 담장을 따라 누군가 이불을 널어 말리는데 한낮의 볕이 이불 위에 맘껏 머문다 지나가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은 마음 널어 말릴 곳 보이지 않기 때문 눅눅한 마음 지울 곳 보이지 않기 때문 눈부신 볕에 온몸을 맡기고 단잠에 빠진 이불을 두고 그럴 수 있다면 너희들 이름 하나에 별 하나씩을 바꿔 이름 하나 부르는데 별 하나 사라지고 기억 하나 붙잡는데 별자리 하나 지워진다 해도 그러느라 우리 어둠에 갇히고 어둠 속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해도 그 어둠 견뎌야 하리 그 울음 울어야 하리 그래야 칠흑 같은 어둠 속 빛 다시 스밀 터이니 스민 빛 별자리로 모여 비로소 끊긴 길 이을 터이니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2015. 7. 7. 이전 1 ··· 252 253 254 255 256 257 258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