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3 신앙은 투기요 모험이다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2) 신앙은 투기요 모험이다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시라서…”(마태복음 25:14-30). 성서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라 한다. 머리를 끄덕거리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금언명구가 아니라 하느님과 나 사이에 일대일의 시비(是非)를 붙이는 말씀이다. 따라서 어디에다 인용을 하고 사람을 훈계하기 위해서나 겨우 성경을 뒤적거리는 일은 매우 어리석다. 더구나 누구한테나 찍어 붙여 욕하고 비난하고 단죄하려고 성경 말씀을 끌어대는 일은 너무도 위태하다.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는 예수님 말씀은 공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이다. 나는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다. 그래도 .. 2015. 7. 5. “어부사시가”의 즐거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0) “어부사시가”의 즐거움 윤선도의 “어부사시가”의 여름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궂은 비 멈추고 시냇물 맑아 온다 낚싯대를 둘러매니 깊고 깊은 흥겨움 금할 길이 없구나 안개가 자욱한 강은 누가 그려 냈는가 연잎에 밥 싸두고 반찬일랑은 장만하지 마라 대삿갓을 쓰고 있다, 도롱이를 가져왔느냐? 무심한 갈매기야, 내가 저를 쫓아가는가, 아니면 저가 나를 쫓아오는가? 물결이 흐리다고 그에 발을 씻은 듯 어떠하리 오강을 찾아가려하니 천년의 노여움이 슬프구나 두어라 초강으로 가자하니 고기 뱃속의 충혼으로 사라진 굴원의 넋을 낚을까 두렵구나” 주위의 풍경을 가만히 응시해보면 아무런 풍파도 없고 다만 비가 내린 후 해가 떠오를 뿐입니다. 하여 어부는 흥겨움에 몸을 들썩거리며 .. 2015. 7. 5. 여는 글 - 다윗 이야기의 처음과 끝, 미갈 다윗 이야기(1) 여는 글 - 다윗 이야기의 처음과 끝, 미갈 편집자 주/지난번에 실린 첫 회 “사무엘, 양다리 걸치다”는 다윗 이야기의 두 번째 글이었습니다. 이번 첫 글을 읽어보시면 앞으로 ‘다윗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1. 그녀를 박복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팔자가 드세다고 해야 할까. 사울의 둘째 딸이자 다윗의 두 번째 아내였던 미갈 말이다. 다윗에 대한 얘기를 왜 느닷없이 미갈에 관한 에피소드로 시작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겠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녀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다윗 이야기의 성격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 미갈이 처음 등장하는 때는 사울의 자녀들을 소개하는 사무엘상 14장 49절이다(이하 책 이름이 지칭되지 않으면 모두 의 인용이다).. 2015. 7. 5. 십보라, 기지(機智)로 남편을 살리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5) 십보라, 기지(機智)로 남편을 살리다(2) 1. 도망자 모세. 그는 미디안으로 와서, 어느 날 한 마을에 들어가, 우물곁에 앉아있었다(출애굽기 2:15). “우물가의 여인"이 아니라 "우물가의 모세"이다. 모세가 우물가에 앉았다는 것은, 한낮에 우물로 물 길러온 사마리아 여인이 실제로는 영적으로 목말라했던 것처럼, 우물가에 앉아 있는 모세도 무엇인가에 목말라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모세의 목마름. 2. 그런데 성경기자는 갑작스럽게 미디안의 제사장에게 딸이 일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출애굽기 2:16). 미디안의 한 딸 부잣집 이야기이다. 미디안 제사장에게 딸이 일곱이 있다는 이 엉뚱한 말돌림이 "최진사댁에 딸이 셋 있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노래처럼, 그리고 그 노래의.. 2015. 7. 4. 하늘은 빛을 잃고 땅은 흔들리고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4) 하늘은 빛을 잃고 땅은 흔들리고 “내가 땅을 본즉 혼돈(混沌)하고 공허(空虛)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山)들을 본즉 다 진동(震動)하며 작은 산(山)들도 요동(搖動)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空中)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荒蕪地)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城邑)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猛烈)한 진노(震怒) 앞에 무너졌으니”(예레미야 4:23~26). 멸망으로 기울어진 절망의 시대, 예언자가 세상을 둘러본다. 어둠의 시대, 그나마 어둠 속에서 잠들지 않고 어둠을 응시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일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보이느니 어둠 밖에 없는데 하릴없이 어둠을 바라보느냐며 절망하지 않는 사람, 절망.. 2015. 7. 2.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26)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영혼이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다면 성령이 그 영혼을 자신의 근원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어느 해인가, 새해 벽두에 귀인을 맞이한 적이 있다.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우리는 의기가 통해 곧 벗이 되었다. 국전 심사까지 한 널리 알려진 서예가인데, 그는 자기 글씨체를 ‘막가파체’라고 부르며 파격을 즐기는 위인이다. 햇닢, 무아 등의 여러 아호를 가진 그는 허름한 바랑에 한지와 붓과 먹과 낙관과 인주까지 싸 짊어지고 다닌다. 그는 청하지도 않았는데, 소위 ‘신년축시’를 써주고 가겠다며 시를 내놓으란다. 나는 내 시 가운데서 비교적 짧은 ‘쥐코밥상’이란 시를 내주었더니, 이내 붓을 들고 한바탕 묵희(墨戱)를 즐긴다. .. 2015. 7. 1. 박근혜의 콧바람, 왕의 콧김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0) 박근혜의 콧바람, 왕의 콧김 예레미야애가 4장 2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 곧 “왕”을 달리 “우리의 콧김”(개역개정), “우리의 숨결”(공동번역)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루아흐 압페누”를 번역한 것이나 아무래도 석연하지 않다. 즉 히브리어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와 우리말 번역으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을 것 같다. “콧김”이라고 하면 그것은 콧구멍에서 나오는 더운 김을 뜻한다. “콧김을 쐬다”라는 말은 어떤 물체를 코 가까이 가져다 대고 거기에 콧구멍에서 나오는 김을 받게 하는 것이다. “콧김이 세다”라는 말은 관계가 가까워서 영향력이 세다는 말이다. “죽은 놈의 콧김만도 못하다”라고 하면 난로나 화로에 불기운이 없어져.. 2015. 7. 1. 표절의 시궁창에 핀 장미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6) 표절의 시궁창에 핀 장미 - 진회숙, 《음악사를 움직인 100인》- 저는 술을 못합니다. 최근에는 예의 차원에서 맥주 한 잔 정도는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이때까지 살아오며 한 번도 술에 취해 보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을 불량 청소년 소굴인 밴드부에서 보냈고, 박정희의 피살과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을 자행한 그 어간에 군에 입대해 최전방 부대에서 만기 제대했지만 누구의 회유나 압력에 굴해 술을 입에 댄 적이 없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내 신앙을 지키는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두들겨 맞든 고문관 취급을 당하든 겁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로 알았고, 그것이 은근한 제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근본주의 신앙과 결별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도 .. 2015. 6. 30. 무섭다 못해 기괴한 말, 말, 말 한종호의 너른마당(27) 무섭다 못해 기괴한 말, 말, 말 신앙인으로서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훈련 가운데 하나가 ‘말의 훈련’일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는지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 그런 상처를 입어보면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처럼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말의 훈련에 조심스러움이 없는 것일까? 말의 정의는 무엇인가? 대체로 의사소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정의는 말이 가진 귀중한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의사소통 속에는 욕설과 분노, 그리고 저주도 포함되지 않는가? 그렇게 될 때 말은 이미 말이 아니라 ‘독이 묻은 비수’일 따름이다. 말의 형체는 있으되, 말의 진실한 역할을 상실해 버.. 2015. 6. 30. 이전 1 ··· 253 254 255 256 257 258 259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