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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저쪽 편이 부럽지 않은 사람들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8) 강 저쪽 편이 부럽지 않은 사람들 전철 교각 밑 포장마차에서는 튀김을 비롯해 익힌 어묵이 나무꼬치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습다. 빠르게 지나는 자동차의 먼지가 아랑곳없는 그곳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이 허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파는 사람이나 사먹는 사람이나 모두 힘겨워 보입니다. 팔지 못하고 남은 것들은 다 어떻게 할까? 저렇게 잔뜩 만들어 놓고 손님이 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서글픈 염려에 사로잡힙니다. 다른 한편에는 길가에 내놓은 탁자들이 즐비한 채, 횟집, 고기집, 맥주 집 등이 서민들의 휴식처를 만들어 놓습니다. 강남 도심에는 그리도 흔한 카페 하나 없는 초라한 동네에 마을 사람들이 귀가를 잠시 늦추고 아쉬운 한잔들을 기울입니다. 서울 타워 팰리스 부근의 풍경은.. 2015. 4. 2.
민족의 성 금요일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5) 민족의 성 금요일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누가복음 11:11-34).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예수의 제자들은 자기네의 운명에 무엇인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음을 예감하였다. 스승 가까이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불안한 시선으로 주님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성지 주일의 열띤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전에 사도들이 들은 말씀은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그 한마디였다. 그 다음은? 아무것도 모른다. 이 민족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정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의 눈앞에는 희망에 찬 미래가 열릴 것인가, 아니면 비극의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그에 따른 내 일신과 내 가족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역사라는 것은 전.. 2015. 4. 2.
새파랗게 질려버려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7) 새파랗게 질려버려라 “그러므로 내가 여전(如前)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後孫)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 같은 일의 유무(有無)를 자세(仔細)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神)을 신(神)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百姓)은 그 영광(榮光)을 무익(無益)한 것과 바꾸었도다 너 하늘아 이 일을 인(因)하여 놀랄지어다 심(甚)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백성(百姓)이 두 가지 악(惡)을 행(行)하였나니 곧 생수(生水)의 근원(根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貯蓄)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예레미야 2:9-13). 류연복 판화.. 2015. 4. 1.
‘위대한’ 인간의 품성에 대하여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4) ‘위대한’ 인간의 품성에 대하여 - 1940년 12월 - 어려서부터 고난주간에는 꼭 독한 감기를 앓곤 했다. 환절기에 치르는 몸살일 터인데, 올 해도 거르지 않았다. 끙끙 괴롭게 누워 ‘머리’는 차질을 빚은 글쓰기와 밀린 연구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누워 있는 상황이 비슷하다보니 마치 데자뷰처럼 ‘몸’은 작년 이맘때 고난주간의 괴로움이 떠올랐다. 2014년은 부활 주일이 꽤 늦은 편이어서 4월 중순도 훨씬 지나 고난주간을 맞았었다. 4월 16일, 세월호가 소중한 생명들을 304명이나 품고서 검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난 그 끔찍한 날 이후에, 우리는 고난주간을 맞았다. 이미 생존가능시간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제발 한 생명이라도 더 살아라, 살아서 구조되라,.. 2015. 4. 1.
트루에 오르겔과 함께하는 “요한복음 산책” 트루에 오르겔과 함께하는 “요한복음 산책” 바람 속에 담긴 풀 냄새, 빗방울이 머금은 들판의 소식, 나무줄기 가운데 흐르고 있는 아주 작고 작은 시냇물 소리, 그리고 흙을 뚫고 세상을 향해 춤을 추고 있는 꽃씨들의 귀여운 몸짓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꽃은 갑자기 피어나고 문득 돌아보니 풀은 들판에 자라나 거기 그렇게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나무는 어느새 푸른 잎사귀로 치장을 마친 듯이 보여집니다. 시인 신동엽은 어느 날 창가에서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창가에 서면 앞집 담 너머로 버들잎 푸르다 뉘집 굴뚝에선가 저녁 짓는 연기 퍼져 오고 이슬비는 도시 위 절름거리고 있다 석간을 돌리는 소년은 지금쯤 어느 골목을 서둘고 있을까? 바람에 잘못 쫓긴 이슬방울 하나가 내 코 잔등.. 2015. 3. 31.
민주적 운영이 신본주의다 이진오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9) 민주적 운영이 신본주의다 - 민주적 운영과 건강한 작은 교회 - 교회 정치구조는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은 반론이 교회는 ‘신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본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오해다. 교회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교회는 ‘신본주의’가 맞다. 그런데 하나님께 신본주의를 하려면 인간끼리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신본주의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간 중심 즉, ‘인본주의’다. 신본주의/인본주의는 생각 즉, 사상의 영역이다. 반면 ‘민주주의’는 생각과 사상을 구체화한 제도의 영역이다. 권력의 귀속과 행사에 따라 정치 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명이 다스리는 ‘왕정’, 소수 특권층이 다스리는 ‘귀족정’, .. 2015. 3. 31.
‘불임’인가 ‘불모’인가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2) ‘불임’인가 ‘불모’인가 같은 히브리어 본문에서 서로 다른 이해를 반영하는 두 가지 번역이 나올 때 일반 독자들은 퍽 의아해 한다. 그러나 같은 히브리어 문장이 그렇게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처음 느꼈던 그 의아함은 히브리어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해로 바뀔 것이다. 열왕기하 2장 19-21절을 과 이 어떻게 달리 번역하고 있는지 비교해 보고 그렇게 달리 번역된 배경을 살펴보자.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19절) …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21절)” “저희 성읍은 매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고장에.. 2015. 3. 31.
<조선일보>의 달관할 정도가 되었다? 한종호의 너른 마당(14) 의 달관할 정도가 되었다? 가 지난 2월 말부터 ‘달관세대가 사는 법’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내면서 이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달관이라니? 절망하고 있는데”라는 반론부터, “새로운 행복관을 가진 세대의 등장”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달관세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오늘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잃고 있는 청년세대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시선 문제가 놓여 있다. 그에 더해 어떻게 청년들이 뜻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인가라는 사회적 과제에 대한 문제제기다. 달관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차용한 개념으로, 사토리(さとり)란 ‘득도, 깨달음’으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일본에서 태어난 10대 후반~20대 중반의.. 2015. 3. 31.
베토벤의 짓물러진 엉덩이 지강유철 음악정담(14) 베토벤의 짓물러진 엉덩이 베토벤하면 사람들은 영웅과 천재 등의 단어를 떠올립니다. 그에게 그런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걸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순간, 그도 우리처럼 아프고, 괴롭고, 실수하고, 돈에 쪼잔 했던 인간이었다는 구체성은 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천재와 불굴의 영웅 베토벤 앞에 무릎을 꿇고 평생 그를 칭송하며 살아가느냐, 아니면 더도 덜도 아닌 인간 베토벤을 받아들이고 그와 ‘친구 먹으며’ 살아가느냐! 이 짧은 글에서 베토벤의 인간됨에 대해 두루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다른 인간적 면모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그가 수십 년 동안 달고 살았던 지긋지긋했던 병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이를.. 2015.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