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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 사형과 진보정치 압살 김삼웅의 광복 70주년 역사 키워드 70(18) 조봉암 사형과 진보정치 압살 6.25 한국전쟁이 겨우 정전협정으로 마무리 된 1950년대 중반, 한국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좌파 내지 진보적 색체를 띤 사람들은 철저히 학살당하거나 북으로 가거나 아니면 지리산으로 들어가 죽어버렸다. 분단과 전쟁과 학살이 휩쓸고 간 한반도 남쪽에는 멸균실 수준의 반공체제가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봉암은 ‘평화통일론’과 “노동독재도 자본독재도 거부하는” 민주사회주의 깃발을 내걸고 진보당을 창당하여 활동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이승만의 라이벌 제거와 ‘반공 히스테리’의 희생물이 된 것 이승만 대통령에게 현재적이든 잠재적이든 도전자는 죽음(죽임)이 따랐다. 제헌의원 선거 때 이승만과 대결한 독립운동가 최능진은 처형되고, 잠재.. 2015. 4. 15.
짧은 본문, 긴 본문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4) 짧은 본문, 긴 본문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아뢰었다. ‘오늘 소인에게 응답하지 않으시니, 웬일이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여, 만약 그 허물이 저나 제 자식 요나단에게 있다면 우림이 나오게 하시고, 그 허물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있다면 둠밈이 나오게 하십시오.’” 위에 인용된 본문운 사무엘상 14장 41절의 내용이다. 밑줄이 그어진 부분은 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의 것은 짧은 본문이고 은 긴 본문이다. 히브리어 원문 성서에도 밑줄 친 부분의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의 밑줄 친 부분은 히브리어 본문의 반영이 아니라 그리스어 칠십인역의 본문을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서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것으로서 그때 사용.. 2015. 4. 15.
분노사회와 세월호 참사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16) 분노사회와 세월호 참사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현대인의 삶에 별명붙이기를 즐겨하기 시작했다. ‘위기사회’, ‘단속사회’, ‘잉여사회’, ‘갈등사회’,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등. 그러다 최근엔 ‘분노사회’란 레테르까지 등장했다. 하기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에 기초한 많은 사건들이 우리 사회를 그렇게 부르기에 조금도 주저치 않게 할 정도이긴 하다. 원한 관계를 따져보기 곤란한 우발적 사고에 불특정 다수를 향한 울분의 폭력행위 등이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된지도 꾀되지 않던가. 이런 점에서 젊은 작가 정지우의 《분노사회: 현대 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는 매우 시의적절한 인문적 훈수라 하겠다. 본디 분노란 물리적 대상에 대한 행위 주체자의 생물학적 반응이다.. 2015. 4. 14.
씻을 수 없는 죄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8) 씻을 수 없는 죄 "주(主)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數多)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罪惡)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예레미야 2:22).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찬송가의 가사다. 부흥회나 기도회에서 그 중 즐겨 부르는 찬송으로 대개는 뜨겁게 박수를 치며 큰 목소리로 찬송을 부른다. 그렇게 간절하게 부르면 찬송가의 가사처럼 마치 우리의 죄가 씻어지는 것처럼. 이 찬송을 부를 때 우리가 갖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아프게 인정하는 마음이 있는 것일까? 나의 죄를 씻기 위해 내 대신 누군가가 당한 고통과 수치가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죄를 저질렀더라도 죄.. 2015. 4. 14.
직분(office)과 직책(position) 이진오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11) 직분(office)과 직책(position) - 건강한 작은 교회의 직분(1)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다스리심을 받는 곳이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직분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위임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함으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에베소서 4:12) 그럼으로 직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봉사하는 자 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직분자는 그리스도의 ‘일꾼’(고린도전서 4:1)이며, 하나님의 일꾼(고린도후서 6:4), 복음의 일꾼(에베소서 3:7), 새 언약의 일꾼(고린도후서 3:6)으로 주인에게 충성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직분.. 2015. 4. 13.
지는 싸움을 하라! 김영봉의 성서 묵상, 영성의 길(5) 지는 싸움을 하라! “그 밤에 야곱은 일어나서,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넜다. 야곱은 이렇게 식구들을 인도하여 개울을 건너 보내고, 자기에게 딸린 모든 소유도 건너 보내고 난 다음에,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 2015. 4. 12.
부활의 믿음으로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5) 부활의 믿음으로 - 1932. 5월 - “도대체 우리는 이 시간에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 출근시간이라 그 어느 때보다도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바쁜 광화문 한복판에 앉아 열심히 노란 리본에 고리를 달다가 한 지인이 내게 말을 건넸다. 그러게 말이다. 수업시간에 맞춰 10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유난히 손을 빨리 놀리며 노란 리본 고리를 달던 내게서도 한숨이 나왔다. 신학자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하고 있는 일로는 분명히 ‘낯선’ 장소 ‘낯선’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바로 앞에는 지난 1년 간 고행하는 수도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허리를 반듯하게 하고 앉아 계시다. 세월호 노숙자, 스스로를 이렇게 부르고.. 2015. 4. 12.
인문정신과 기독교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6) 인문정신과 기독교 - 기술이 아닌 삶 자체의 사랑을 위하여 - 1. 인문(人文)은 결국 삶에 대한 사랑 곧 인간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인문학을 한다면서 인간미가 없고 사람살이에 대한 너그러움이 없고 역사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그것은 결격이다. 아무리 깊다해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지식과 지성의 축적만으로는 인문이 될 수 없다. 태생적으로 우연히 획득한 고정된 신념과 그 연역적 목표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것도 인문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하물며 현세에 아부하고 권력을 탐하며 관청의 높은 자리와 연회의 상석에 앉으려 하면서 인문을 논하는 것은 말이 아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남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단지 필요에 의해서만 인문을 들먹이는 것은 그 인문을 낳으려 한 알.. 2015. 4. 10.
날마다 ‘시작하는’ 자의 영혼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14) 날마다 ‘시작하는’ 자의 영혼 누가가 말하는 ‘아이’는 맑은 공기와 같은 것, 티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영혼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이와 같이 영혼이 순결하고 티가 없어야 합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로렌츠 마티가 자기의 영적 스승 칼프리트 뒤어크하임 백작의 집을 찾아갔을 때, 백작은 이미 팔순의 나이인데다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로렌츠는 자기 스승에게, 높으신 연세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네.” 백작이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인간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질과 하나가 되려고 아무리 머리 터지도록 애를 써 봐도, 인간은 언제.. 2015.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