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63

갈 길 잃은 내면화된 영성의 탐욕 한종호의 너른 마당(11) 갈 길 잃은 내면화된 영성의 탐욕 오늘날 우리사회는 “정신적 권위”를 가지지 못한 지경에 처했다. 원로의 존재만 생각해봐도 예전 같지 않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해 한국사회가 난마처럼 얽히고 여전히 진상 규명의 실마리조차 풀고 있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귀 기울여 경청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뭔가 혼란스럽고 문제가 충격적으로 터지면 이걸 중심잡고 수습해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힘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사회가 위기에 직면할 경우 대단히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가 그런 상황을 이겨내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도리어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판국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답을 생각해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어떤 종교인가의 .. 2015. 2. 25.
소리 홍순관의 노래 신학(9) 소리 홍순관 글 곡 - 1990년 만듦, ‘춤추는 평화’ 음반수록 - 꽃이 열리고 나무가 자라는 그 소리 그 소리 너무 작아 음∼∼ 나는 듣지 못했네 이 노래에 글을 쓰고 곡을 진 시간은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 곡을 제 몸에 오래 품고 있었나봅니다. 이것은 무언가 도모하고 이루려는 꿈과, 자연을 스승삼아 기다리는 인내가 가슴과 머리에서 맞서고 있을 때 만들어진 글입니다. 일상의 물결과 바다가 만나지는 심정이라고 할까요. ‘소리’는 개인적으로 큰 화두였고 숙제였습니다. 성서 안, 잠언 말씀을 만나 더욱 그렇게 되었습니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언 21:13). 이웃의 소리를 듣지 못.. 2015. 2. 25.
‘독부 이승만’의 반민족ㆍ반민주행적 김삼웅의 광복 70주년 역사 키워드 70(10) ‘독부 이승만’의 반민족ㆍ반민주행적 제헌국회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여운형이 암살되고, 김구와 김규식은 단독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하여 그의 집권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이승만의 독재가 절정을 이루던 자유당 말기, 절세의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은〈이승만 대통령 하야 촉구 공개장>에서 ‘독부(獨夫) 이승만’이라 지적했다. ‘독부’란 “민심을 잃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곳이 없게 된 외로운 남자”를 말한다. 이승만은 독부였다. 자유당 말기뿐만 아니라 미국 망명기나 귀국하여 단독정부를 세우고, 12년 동안 1인 독재 권력을 유지할 때까지 다르지 않았다. 독재ㆍ독부ㆍ독선ㆍ독점 등 그에게는 홀로 독(獨) 자가 유독이 많았다.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 2015. 2. 24.
소주병 꽃꽂이 한희철의 두런두런(18) 소주병 꽃꽂이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 설교 시간에 들어온 광철 씨의 손엔 꽃병이 들려 있었다. 기도도 드리지 않은 채 성큼 제단으로 나온 -사실은 두어 걸음이면 되지만- 그는 “전도사님, 여기 꽃 있어요.” 하며 꽃병을 내밀었다. 산에 들에 피어난 꽃을 한 묶음 꺾어 병에 담아온 것이었다. 잠시 설교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 순박한 마음을 웃음으로 받아 제단 한 쪽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올려놓고 보니 꽃을 담아온 병이 다름 아닌 소주병이었다. ‘백합 소주’였다. 모두들 악의 없이 웃었다. 혹 광철 씨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좋게 말하며 나도 함께 웃었지만 마음 찡하니 울려오는 게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꽃꽂이는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시골 전도사 한 달 생활비.. 2015. 2. 24.
장욱진과 슈베르트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9) 장욱진과 슈베르트 슈베르트(1797-1828)를 자기주장이 강했던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보통 음악가들에게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신경질적 예민함이나 신념이 강한 사람의 과격함보다는 수줍음, 청순함이 더 잘 어울려 보이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 음악은 나쁘게 말하면 소녀취향이고, 좋게 말하면 투명하게 아름답다는 평이 우세합니다. 하지만 그가 쓴 종교 음악을 들여다보면 그런 통념에 슬그머니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이 슈베르트하면 떠올리는, 짝사랑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용기 없는 사람이란 통념이 절반만 맞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슈베르트는 짧은 31년을 살다 가면서 1000여 곡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 종교 음악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 2015. 2. 24.
우리 시대의 순교자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0) 우리 시대의 순교자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선자들의 기념비를 장식해 놓고는…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마태복음 23:29-33). 신앙인에게 남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두 개의 눈 말고 또 하나의 눈, 신앙의 눈인 셋째 눈이 달린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유다인 예수를 우리는 “그리스도”로 섬긴다. 한낱 정치범을 “구세주”로 모신다. 죽어 버렸으니까 모두 끝장났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분이 부활하셨다!”고 선포한다. 누구나 십자가에서 죽음의 공포를 보는데 우리는 인류의 새 생명을 보고 그 고상을 성당 지붕에 설치하고 방안에 걸고 가슴에 달고 다닌다. 이야말로 신앙의 신비이다. “너희가 예언자의.. 2015. 2. 23.
단순함, 작음, 더불어 함께 이진오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4) 단순함, 작음, 더불어 함께 - 건강한 작은 교회의 세 가지 핵심 가치 - “건강한 작은 교회”는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할까? 성경은 우리에게 끝임 없이 “바알과 아세라”로 대표되는 “풍요와 번영”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 즉, “사랑과 평화, 공평과 정의”를 따를 것인가?를 물으며 선택을 요구한다. 이는 내 욕망과 욕심으로 점철된 자기 중심성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중심성을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선택이다. 에덴 동산 이후 인간은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자연 만물과 더불어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어 전적으로 타락하게 된 “원죄”는 인간이 선악의 기준이신 하나님 중심성을 떠나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2015. 2. 23.
한국교회와 샤머니즘(1)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9) 한국교회와 샤머니즘(1) 한국교회와 샤머니즘은 여러 모로 자주 연결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누구의 분석, 혹은 진단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교회의 샤머니즘화’는 거의 정설처럼 되었고 또 마치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에서 파생된 많은 문제의 시발점인양 ‘이해’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판단과 분석 뒤편에는 ‘우리’(한국 교회)는 본디 좋은 것인데 ‘나쁜 저것’(샤머니즘)이 은연 중 들어와 우리의 반듯하고 깨끗함을 흐려버리고 오염시켰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자리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한국교회가 샤머니즘을 닮았다고 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기준과 근거로 사람들은 편안한 자세를 하고 한국교회는 샤머니즘에 오염되었다고 선언하듯이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적지 않.. 2015. 2. 22.
롯의 두 딸, 모성 본능으로 살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8) 롯의 두 딸, 모성 본능으로 살다(1) 1. 롯의 두 딸.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그들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혹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아닌가? 하마터면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낳지 못한 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뻔한 여인들. 예기치 못한 비극적 상황에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모성 본능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되는 것. 그것만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죽기 직전에 수많은 솔방울을 맺는 소나무처럼, 그들은 그렇게 강력한 모성 본능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버텨냈다. 2. 아무도 일이 그렇게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 룻은 데라가 이끄는 가나안 이주 희망자 .. 2015.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