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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 꽃꽂이 한희철의 두런두런(18) 소주병 꽃꽂이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 설교 시간에 들어온 광철 씨의 손엔 꽃병이 들려 있었다. 기도도 드리지 않은 채 성큼 제단으로 나온 -사실은 두어 걸음이면 되지만- 그는 “전도사님, 여기 꽃 있어요.” 하며 꽃병을 내밀었다. 산에 들에 피어난 꽃을 한 묶음 꺾어 병에 담아온 것이었다. 잠시 설교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 순박한 마음을 웃음으로 받아 제단 한 쪽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올려놓고 보니 꽃을 담아온 병이 다름 아닌 소주병이었다. ‘백합 소주’였다. 모두들 악의 없이 웃었다. 혹 광철 씨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좋게 말하며 나도 함께 웃었지만 마음 찡하니 울려오는 게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꽃꽂이는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시골 전도사 한 달 생활비.. 2015. 2. 24.
장욱진과 슈베르트 지강유철의 음악 정담(9) 장욱진과 슈베르트 슈베르트(1797-1828)를 자기주장이 강했던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보통 음악가들에게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신경질적 예민함이나 신념이 강한 사람의 과격함보다는 수줍음, 청순함이 더 잘 어울려 보이기 때문입니다. 슈베르트 음악은 나쁘게 말하면 소녀취향이고, 좋게 말하면 투명하게 아름답다는 평이 우세합니다. 하지만 그가 쓴 종교 음악을 들여다보면 그런 통념에 슬그머니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이 슈베르트하면 떠올리는, 짝사랑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용기 없는 사람이란 통념이 절반만 맞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슈베르트는 짧은 31년을 살다 가면서 1000여 곡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 종교 음악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 2015. 2. 24.
우리 시대의 순교자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0) 우리 시대의 순교자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선자들의 기념비를 장식해 놓고는…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마태복음 23:29-33). 신앙인에게 남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두 개의 눈 말고 또 하나의 눈, 신앙의 눈인 셋째 눈이 달린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유다인 예수를 우리는 “그리스도”로 섬긴다. 한낱 정치범을 “구세주”로 모신다. 죽어 버렸으니까 모두 끝장났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분이 부활하셨다!”고 선포한다. 누구나 십자가에서 죽음의 공포를 보는데 우리는 인류의 새 생명을 보고 그 고상을 성당 지붕에 설치하고 방안에 걸고 가슴에 달고 다닌다. 이야말로 신앙의 신비이다. “너희가 예언자의.. 2015. 2. 23.
단순함, 작음, 더불어 함께 이진오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4) 단순함, 작음, 더불어 함께 - 건강한 작은 교회의 세 가지 핵심 가치 - “건강한 작은 교회”는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할까? 성경은 우리에게 끝임 없이 “바알과 아세라”로 대표되는 “풍요와 번영”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 즉, “사랑과 평화, 공평과 정의”를 따를 것인가?를 물으며 선택을 요구한다. 이는 내 욕망과 욕심으로 점철된 자기 중심성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중심성을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선택이다. 에덴 동산 이후 인간은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자연 만물과 더불어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어 전적으로 타락하게 된 “원죄”는 인간이 선악의 기준이신 하나님 중심성을 떠나 자기가 선악의 기준이.. 2015. 2. 23.
한국교회와 샤머니즘(1)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9) 한국교회와 샤머니즘(1) 한국교회와 샤머니즘은 여러 모로 자주 연결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누구의 분석, 혹은 진단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교회의 샤머니즘화’는 거의 정설처럼 되었고 또 마치 그것이 지금 한국교회에서 파생된 많은 문제의 시발점인양 ‘이해’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판단과 분석 뒤편에는 ‘우리’(한국 교회)는 본디 좋은 것인데 ‘나쁜 저것’(샤머니즘)이 은연 중 들어와 우리의 반듯하고 깨끗함을 흐려버리고 오염시켰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자리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한국교회가 샤머니즘을 닮았다고 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기준과 근거로 사람들은 편안한 자세를 하고 한국교회는 샤머니즘에 오염되었다고 선언하듯이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적지 않.. 2015. 2. 22.
롯의 두 딸, 모성 본능으로 살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8) 롯의 두 딸, 모성 본능으로 살다(1) 1. 롯의 두 딸.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그들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혹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아닌가? 하마터면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낳지 못한 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할 뻔한 여인들. 예기치 못한 비극적 상황에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모성 본능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되는 것. 그것만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죽기 직전에 수많은 솔방울을 맺는 소나무처럼, 그들은 그렇게 강력한 모성 본능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버텨냈다. 2. 아무도 일이 그렇게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 룻은 데라가 이끄는 가나안 이주 희망자 .. 2015. 2. 22.
유대인의 안식일(4)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6) 유대인의 안식일(4) 모쩨 샤밧 토요일 저녁 해질 무렵이 되면 샤밧이 끝났음을 알리는 사이렌이 우린다. 샤밧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을 가리켜 ‘모쩨 샤밧’이라고 부른다. 문자적으로는 ‘샤밧에서 빠져나옴’을 뜻한다. 모쩨 샤밧이 되면 다시 차를 탈 수 있으며 버스도 다닌다. 그리고 시내의 극장들도 샤밧을 끝내고 나온 인파들로 붐빈다. 우리 가족도 몇 번 모쩨 샤밧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관람한 경험이 있다. 많은 이스라엘의 젊은 남녀들은 모쩨 샤밧에 데이트 약속을 한다. 토요일 저녁부터 이스라엘 사회는 다시 기지개를 켜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음 샤밧까지 이스라엘은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샤밧 음식 흰 샤밧 빵, 물고기 요리, 포도주, 이 세 가지는 샤밧 저녁을 빛내는 가장 전통적.. 2015. 2. 22.
참으로 인간이고자 김기석의 톺아보기(1) 참으로 인간이고자 - 지금 여기 정의로운 생명 평화 - 오늘의 세상 “참 고운 얼굴이 없어?/하나도 없단 말이냐?/그 얼굴만 보면 세상을 잊고,/그 얼굴만 보면 나를 잊고,/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밥을 먹었는지 아니 먹었는지 모르는 얼굴,/그 얼굴만 대하면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그 얼굴만 대하면 가슴이 큰 바다 같애,/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맘 파도처럼 일어나고,/가슴이 그저 시원한,/그저 마주앉아 바라만 보고 싶은,/참 아름다운 얼굴은 없단 말이냐?/저 많은 얼굴들 저리 많은데,/왜 그리 다 미울까, 다 더럽기만 할까!”(함석헌, 중) 무정한 세월은 변함없건만 인간사는 어지럽기 이를 데 없다. 인간뿐인가. 인간이 지구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후 만물이 다 신음하고 있다.. 2015. 2. 21.
우리는 모르는 만큼 말한다 한희철의 두런두런(5) 우리는 모르는 만큼 말한다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고 있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한 문장을 읽을 터이니 그것이 무엇을 두고서 한 말인지를 알아 맞춰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뒤 아내가 읽어주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탄광의 본고장 뉴캐슬에 석탄을 지고 가는 기분이요, 네덜란드 사람의 표현대로라면 ‘올빼미 천지인 아테네에 가면서 올빼미를 데리고 가는 격’이며, 프랑스 사람의 말로는 ‘물을 들고 강에 가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동병상련 때문이었을까, 아내가 읽어주는 문장을 들으며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강론(설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헨리 나우웬이 온종일 사전을 들여다보면서 다음날 해야 할 강론에 필요한 단어를 찾으며 썼던 글이었다... 2015.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