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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저를 몰라보셔도 괜찮아요” 오늘은 장애인 목욕봉사가 있는 날인데 아침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뭄 후 오랜만에 보는 봄비이니 단비인 것은 확실한데 혼자서 우산을 받쳐 들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단비도 씁쓸한 불편함이 될 수 있다. 목욕탕으로 이동하려니 횡단보도 앞에 휠체어를 잡고 계신 팔십이 넘은 어머니와 육십이 넘은 아들이 우산을 받쳐 든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익히 알던 분들인지라 나는 얼른 늙은 어머니대신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어머니는 봉사하러 온 고등학생의 우산을 같이 쓰고 목욕탕으로 따라오셨고 나는 아들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밀고 봄비 속을 앞서 걸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과 밀어주는 사람이 빗속을 함께 걸으면 한사람은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15분동안 비를 맞았지만 어머니는 20년 .. 2021. 5. 3.
햇살 돌틈에 누운 풀 한 포기를 비 걸음으로 달려와서 바람 손으로 부둥켜안고서 해맑은 웃음으로 일으켜 살리는 마음 2021. 5. 3.
이사 새로 지은 사택으로 이사를 했다. 미비한 점도 있었고, 아직 채 벽도 마르지 않았지만 곧 다가올 봉헌예배 행사를 위해 시간을 앞당겼다. 이번에도 동네 모든 분들이 수고를 하였다. 17평, 내 의견이 반영된 집이라 그런지 참 편안하다. 흩어져 있던 살림살이가 이제야 한군데로 모였다. 두 달여 허름한 담배건조실, 조그마한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형편없이 뒹굴며 주인의 무관심을 원망했을 몇 가지 짐들이 한군데로 모인 것이다. 그간 서너 번의 이사로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책을 쥐가 쏠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수도를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단칸방, 조그마한 마루에 부엌살림을 늘어놓고 찬바람 그대로 맞으며 식사를 마련했던 아내 보기가 영 미안했는데, 이제 .. 2021. 5. 2.
경건한 이를 특별히 마음에 두시네 시편 4편 3절 알아 두어라, 야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 주신다.(《공동번역》) 須知主公明 忠良是所秩(수지주공명, 충량시소질) 모름지기 알지니 주님 공정하시고 밝히 아시니 경건한 이를 특별히 마음에 두시네(《시편사색》, 오경웅) 주님, 당신을 따른다는 것은 하느님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지요? 환히 아시는 당신께서 때에 맞게 온전히 행하실 것을 믿는 거지요? 당신이 환히 아시고 공명정대하시다는 그 믿음이 저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盡心誠意)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지 싶습니다. 제 능력과 제 힘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싶습니다. 삶에서 제가 얼마나 자주 두 마음을 품는지 뻔히 아시지 않습니.. 2021. 5. 1.
삶의 구조 사흘간 열린 지방등급사경회에 단강에선 광철 씨 혼자 참석을 했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해마다 서너 명씩은 참석을 했는데 올핸 광철 씨 뿐이었다. 이번에 4학년에 올라가는 김천복 할머니와 3학년이 되는 김영옥 속장님이 설을 쇠러 자식네 다니러 가서 내려오지 않았고. 지금순 집사님은 설을 쇠러온 아들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광고를 잘 들어두었던 광철 씨가 아침 일찍 교회로 내려왔다. 늘 그런 셈이지만 광철 씨의 차림새가 남루했다. 날이 찬데도 입은 옷이 허술했고 그나마 때가 잔뜩 오른 옷이었다. 지난번 서울에서 고마운 손길을 통해서 보내온 옷을 이런 날 입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어디 갈 때 입는다며 아껴둔 옷을 이번에도 입지를 않았다. 광철 씨는 사흘 동안의 사경회를 빠지지 않고 참석을 했다. 고마운 일이.. 2021. 5. 1.
나뭇가지 손 마른 나뭇가지에서 꽃이 피고 잎이 피듯 어머니의 손끝이 갈라져서 연분홍 꽃이 피어나고 아버지의 손마디가 툭툭 불거져서 푸르른 잎이 피어난다 오늘도 찻잎을 매만지는 손이 나뭇가지를 닮아갈 무렵 저녁밥 먹으러 오너라 부르는 소리 없는 쓸쓸한 저녁에 나뭇가지가 나뭇가지에게 어진 손을 뻗는다 2021. 4. 30.
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애광원을 다녀오며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어요. 돌아설 수도 비켜갈 수도 없는 길이었어요. 내가 잡은 것 무엇인 줄 모르고 나를 잡은 것 무엇인 줄 모르는 길이었어요. 웃음이 무엇으로 소중한지 몰랐어요. 무엇으로 웃음이 터지는지도 몰랐고요. 버릴 수 없는 표정들을 버리지 않았을 뿐, 더는 몰랐어요. 이처럼 예쁠 수가 있을까요? 이처럼 고울 수가 있을까요? 아무 것도 없이 기막히게 없이 줄기도 가지도 없이 문득 문득 하늘로 피어나는 천상의 꽃.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하루처럼 걸어온 먼 길. - (1992년) 2021. 4. 30.
님께 바쳐지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엡 1:10) 주님의 평화와 은총을 빕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시절은 여전히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주말부터 주초께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가 싶어 기대를 품어 보지만, 주중에는 어김없이 늘어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희망 고문처럼 느껴집니다. 조금 무심해져 보려고 하지만 교회 문을 닫고 있는 입장에서 그럴 수가 없군요. 이 곤고한 시간이 속히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교우들 가운데는 병원에 입원하신 분들도 계시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도 계십니다. 주님께서 힘겨운 시간을 견딜 힘을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난 월요일 모처럼 아내와 용산가족공원을 천천히 걸었.. 2021. 4. 30.
처음 3분 라벤더의 연보라빛 곡우 무렵 찻잎의 연두빛 식물이 물과 만나 물들어가는 시간 처음 3분의 만남에서 태초의 우주를 본다 찻잎을 물에 넣고 3분을 우려내면 라벤더와 찻잎은 향이 좋고 단맛을 머금는다 하지만 3분을 넘기면 식물은 쓴맛과 불순함을 내뿜는다 한민족의 경전인 단군의 천부경 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그 하나 속에는 천지인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들어있는 3의 원리 우주 탄생 빅뱅의 처음 3분은 수소와 헬륨 원자가 결합하는데 걸리는 시간 한밝, 크고 밝은 민족 배달민족의 피 속에 각인된 숫자 3의 신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심 3일이라는 옛말과 겹쳐본다 사람의 마음은 3일이 지나면 변한다지만 하루에 수 십 번도 나는 그 3분의 고개.. 2021.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