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92 방애 저녁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김정옥 집사님이 교회에 들렸렀니다. 밥 해 날랐던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었고, 손엔 들꽃을 한 다발 꺾어 들었습니다. 집사님은 제단의 꽃을 방금 꺾어온 꽃으로 갈았습니다. 때를 따라 다르게 피어나는 들꽃을 꺾어 집사님은 즐겨 제단을 장식하곤 합니다. 그 일을 당신의 몫으로 여기며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제단에 놓이는 들꽃은 그 수수함 하나만으로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제단에 꽃을 갈은 집사님이 예배당 마당으로 내려서더니 “어휴, 개똥!” 하며 벽돌 몇 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곳이다 보니 예배당 마당엔 동네 개들도 적지 않게 모이고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개똥이 널리기 일쑤입니다. 며칠만 안 치워도 티가 날 정도입니다. 집사님은 벽돌을 가.. 2021. 4. 27. 한 점의 꽃과 별과 씨알 한 점의 꽃 한 점의 별 꽃밭에서 눈 둘 곳 잃을 때 어디 한군데 마음 둘 곳 없을 때 머리위 한 점의 별을 찾듯 발아래 한 점의 꽃을 찾는다 여기 흔한 한 점의 꽃은 낮아지고 작아진 가장 가까운 얼벗 이 땅에 흩어놓으신 별자리 오늘도 하루를 걷다가 마음이 길을 잃으면 한 점의 꽃과 별 그 사이에 사는 나를 지운다 숨으로 나를 지우며 나도 한 점이 된다 한 점의 숨으로 머문 한 점의 빛, 씨알 2021. 4. 27. 얼벗 햇살에도 찌푸릴 줄 모르는 얼굴 곱디 고운 나의 오랜 얼벗 한적한 길을 걷다가 작디 작은 얼굴이 보이면 모른 체 쪼그리고 앉아 벗님과 같은 숨으로 나를 지운다 같은 데를 바라보면 빈탕한 하늘이 있다 2021. 4. 26. 대나무도 벼과지 거제도로 떠나기 위해 가방을 꾸리며 시집 한 권을 챙겨 넣었다. 황동규의 이었다. 떠날 때마다 짐을 줄이자고, 가능하다면 불필요한 짐을 넣지 말아 가볍게 떠나자 하며 웬만한 짐은 빼 버릇하면서도, 거꾸로 챙겨 넣는 것이 시집 한 권쯤이 되었다. 잠시 짬이 날 때 끊어 읽기가 좋았고, 툭툭 끊긴 듯 이어지는 시의 이미지가 여행 분위기와 걸맞을 때가 많았다. 얼핏 서점에서 훑어본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아(사실 황동규의 시는 거의 빼놓지 않고 읽는 셈이지만) 사서 책상에 꽂아 뒀던 책이었다. ‘몰운대행’, 떠남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더욱 쉽게 빼들었다. 차를 타고 오가며 이따금씩, 혹 날 밝아오는 새벽녘 거제의 장승포 포구를 내려다보며 베란다에 앉아 읽기도 했다. 그중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대나무도 벼과(科).. 2021. 4. 26.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넘나들며 무지개 꽃을 피워낸다. 꽃천사 루루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꽃”은 오늘 우리가 만난 햇살을 잠시 바라볼 여유만 있어도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테를링크의 책 ‘파랑새’에서도 주인공 틸틸은 결국 자신의 집에서 파랑새를 찾지 않았던가. 1코스는 접근성이 좋고 지리산 둘레길의 시작인지라 걷는 이들이 많다. 혼자 걷는 이부터 수십 명의 산악회까지 가족, 연인, 직장동료 등 길을 걷는 이들의 관계도 다양해보인다. 100년도 못사는 인생에서 우리는 참 다양한 인연의 거미줄을 치고 산다. 그 중 대부분은 돌보지 못한 세월에 사라지고, 일부는 크고 작은 풍랑에 끊기고, 남은 몇 가닥 거미줄만이 오.. 2021. 4. 25.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시편 3편 2절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공동번역》 彼無神助 其命幾何(피무신조 기명기하) 하느님이 저를 돕지 않으시니 그 목숨 앗는 것쯤이야 저들은 큰 소리치지요. 저들의 소리가 이 땅의 현실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 땅은 당신의 도우심을 우습게 아는 흙으로 되돌아가려는 중력과 어둠의 힘이 더 강합니다. 그렇기에 당신을 의지한다는 것은, 믿음의 여정을 걷는다는 것은, 눕고 일어나는 것이 다 당신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순간순간 무(無)로, 흙으로 돌아가려는 중력의 무게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어나게 하시고 당신을 소망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모두 당신의 은총 덕분임을 알게 해주십시오. 당신 장중에 잡혀 있는 이 순간.. 2021. 4. 25. 사랑의 고춧대 지난겨울 박수철 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론 누구보다도 아주머니가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몸 한쪽 편을 못 쓰는 남편 온갖 뒷바라지 하랴, 어떻게든 고쳐보려 천근같은 몸을 기대 오는 남편을 부축해 멀리 횡성까지 침 맞으러 다니랴, 치료비라도 보태려 틈틈이 농사지으랴 정신이 없습니다. 몸이 서너 개라도 쉽지 않을 일을 아주머닌 혼자 감당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자식보다는 자신이 겪겠다며 고통의 한계를 몸으로 정해놓고 힘든 내색 없이 온갖 일을 꾸려갑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담보로 고통을 홀로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찾는 아주머니의 마음은 절박할 수밖에 없어 기도 끝엔 늘 눈물입니다. 어느 날 박수철 씨 집을 찾아 아주머니와 함께 마루에 앉았을 때였습니다. 이렇게.. 2021. 4. 25. 손 꽃봉오리는 꽁꽁 움켜쥔 조막손 손안에 힘이 풀리면 다섯 손가락 꽃이 핀다 2021. 4. 25. 어떤 결혼식 결혼식 주례를 하며 신랑 신부를 군(君)과 양(孃)이라 부르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면서도 왠지 군과 양이라는 호칭이 어색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신랑 49세, 신부 46세. 늦을 대로 늦은 결혼이었다. 자칫 만남이 어렵지 싶은 나이에 두 사람은 우연히 그러나 기막힌 인연으로 만나 잡다한 상념을 털기라도 하려는 듯 이내 약속의 자리에 섰다. 단강교회가 세워진 이래 교회에서 하는 첫 번째 결혼식이었다. 주일예배에 잇대어 잡은 시간, 그래도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이도 연소하고 해서 원하는 분 있으면 주례자로 모시라 했지만 굳이 주례를 내게 부탁했다. 뜻밖의 부탁은 더욱 거절할 수 없는 법, 주례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양가 가족만 모여서 단출한 식을 올렸음 했던 처음 바람과는 달리 적잖은 동네잔.. 2021. 4. 24. 이전 1 ··· 64 65 66 67 68 69 70 ··· 30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