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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와 먼지 창틀에 낀 먼지를 닦으려고 보니 바람결에 날려온 풀씨 한 톨 손끝으로 입바람으로 후 후 땅으로 먼 하늘로 어느 곳에서 나의 몸이 먼 땅으로 먼지 한 톨로 이 땅에 온 첫날을 오늘의 숨을 쉰다 2021. 5. 14.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년 9월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년 9월 - 첫째로 손 군은 우리 학교의 생도요, 우리도 일찍이 동경-하코네 간역전경주의 선수여서 마라톤 경주의 고(苦)와 쾌(快)를 체득한 자요, 손군이 작년 11월 3일 동경 메이지 신궁 코스에서 2시간 26분 41초로써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할 때는 ‘선생님 얼굴이 보이도록 자동차를 일정한 거리로 앞서 모시오’ 하는 요구에 ‘설마 선생 얼굴 보는 일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 하면서도 이 때에 생도는 교사의 심장 속에 녹아 합일되어 버렸다. 육향교 절반 지점부터 종점까지 차창에 얼굴을 제시하고 응원하는 교사의 양 뺨에는 제지할 줄 모르는 열루(熱淚)가 시야를 흐리게 하니 이는 사제 합일의 화학적 변.. 2021. 5. 14.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릴 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 주님의 은총과 평강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입하와 소만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떡갈나무 잎이 넓게 퍼지고 뻐꾹새와 꾀꼬리 울음소리가 자주 들려올 때입니다. 시인 정현종 선생은 ‘올해도 꾀꼬리는 날아왔다’는 시에서 “5월 7일 오전 9시 43분/올해 첫 꾀꼬리 소리”가 들려왔다고 적었습니다. 청명한 대기를 울리는 꾀꼬리 울음소리는 아득한 그리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소리의 품 안에 안기고 또 안긴다고 말합니다. “번개처럼 귀밝히며/또한 천지를 환히 관통하는/이 세상 제일 밝은 光音.. 2021. 5. 13.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 , 1940년 3월호 - 해가 바뀌는 즈음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보니 어느 덧 안산 하늘공원이다. 가늘게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홀로 서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앞에 마주했다. 한 이름, 한 얼굴씩 눈에 새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기도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움이 클수록 또 분했다. 어이없는 죽음이라서, 너무 어린 죽음이라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직함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라서,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납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덧 저 아이들은 마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처럼 .. 2021. 5. 13.
어느 날의 기도 아니라 하십시오. 동정이나 연인으로, 안쓰러움으로 내 손을 잡질랑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딛고 일어나겠습니다. 견디다 견디다 힘 부치면 쓰러지고 말겠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원망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저 저만치서 지켜봐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너무 쉽게 손을 주진 마십시오. 주님. 1988년 2021. 5. 13.
사람 그리워 52쪽, 어느 날 찾아 든 는 52쪽 분량이었고 내용도 쪽수만큼이나 무겁고 신선했다. 박성용, 그는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 3권과 86년 소년중앙 문학상 동화부문 자신의 당선작인 ‘하늘빛 꿈’을 복사해서 보내준 손진동님. ‘그리고 고맙습니다. 정말입니다’로 끝났던, 동화보다도 먼저 읽은 그의 당선 소감. 2월호에 실린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의 동화. 고집스레 우직한 걸음 고집하는 가끔씩 친구가 쓰는 ‘사람들 얘기‘ 모두들 어딘가를 바라보며 산다. 살아있는 한 흐름이고 싶다. 한 흐름으로 방향을 잡는다는 건, 그 흐름 아닌 모든 것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난 지금 잡다한 많은 것에 눈을 주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의 굳어진 굴레를 벗어야 한다. 코미디 대사를 되뇌며 그 웃음을 따라.. 2021. 5. 12.
우리집 복순이가 무서운 쿠팡맨 우리집 대문에는 열쇠가 없다. 대신 못 쓰는 비닐 포장지를 꼬깃꼬깃 접어서 문틈에 끼워두면, 아무렴 태풍이라 해도 대문을 덜렁 열지 못한다. 바로 옆집과 앞집에는 cctv까지 설치해 두고서 대문을 꽁꽁 걸어 잠궈두고 있지만, 우리집 마당에는 낯선 낌새만 채도 복순이와 탄이가 골목이 떠나가라 시끄럽게도 집을 지킨다. 이 점이 이웃들에겐 내내 미안한 마음이지만, 다들 별 말씀은 안 하신다. 대문을 열쇠로 잠그지 않는 이유는 배송 기사님들이 다녀가시기 때문이다. 부재시 따로 맡길 장소가 없다 보니, 예전엔 담을 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대문을 열쇠로 잠그지 않고, 그 옛날집들처럼 엉성한 잠금 장치를 둔 것이 비에 젖어도 괜찮은 비닐 포장지인 셈이다. 기사님들은 그냥 대문을 살째기 밀고서 들어.. 2021. 5. 12.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시편 5편 1, 2절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모르는 체 마소서(《공동번역》) 鑑我默默情(감아묵묵정) 聆我哀哀號(영아애애호) 침묵으로 말씀드리는 저를 살피시고 저의 간절한 호소 들어주소서(《시편사색》, 오경웅) 소리에 앞서는 것이 침묵이지요. 누군가의 고백처럼 당신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 말씀이 침묵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들을 떠벌리거나 제 사정을 하소연하기 전에 이미 당신이 다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침묵에 젖어들고 싶습니다. 그 침묵이 입술의 침묵으로만 그치는 것이면 안되겠지요? 입술의 침묵이 몸의 침묵이 되고 몸의 침묵이 삶에서 일어났던 온갖 생각과 감정을 고요해지기까지 좀 더 시간도 들이고 뜸도 들여야겠지요? 그렇게 .. 2021. 5. 12.
마음의 객토작업 늘 그랬지만 설교 준비하기가 요즘은 더욱 어렵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할 때가 많다. 한 주일을 보내며 늘 설교 생각이 머리에 남아 있으면서도 주보를 다 만들 때까지 본문과 제목을 정하지 못해 애태울 때가 있다. 삶과 유리된, 생활과 거리가 있는 그럴듯한 말을 찾자면 야 그런대로 쉬울 것도 같은데, 현실을 이해하고 그 현실에 필요한 말씀을 찾으려니 쉽지 않을 수밖에. 지금의 난 성경도 제대로 모르고 농촌의 현실 또한 모르고 있다. 교인들의 표정 뒤에 있는 속마음의 형편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빈 말은 삼가고 싶은데 떠오르는 말이 없는 것이다. 지난 주일 저녁 설교 제목은 ‘마음의 객토작업’이었다. 이번 겨울을 보내며 동네에선 대부분 객토작업을 했다. 탱크처럼 생긴 15t .. 2021.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