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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합장 한희철의 얘기마을(176) 할머니의 합장 한 달에 한 번씩 헌금위원이 바뀝니다. 헌금위원은 헌금시간이 되면 예배당 입구에 있는 헌금함에 담긴 헌금을 헌금 바구니에 담아 제단에 바치는 일을 합니다. 지난 달 헌금위원은 허석분 할머니였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사이 할머니는 헌금함에 담긴 헌금을 바구니에 담아 제단으로 가져 왔습니다. 할머니가 전하는 바구니를 받던 나는 뜻하지 않은 할머니 모습에 순간적으로, 아주 순간적으로 놀라기도 했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헌금 바구니를 제단에 선 목사에게 전한 후 할머니는 두 손을 지긋이 모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던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지났던 건 그런 할머니 모습 대하는 순간 나도 할머니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었던, 나도 몰랐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머리 숙.. 2020. 12. 18.
어둠을 찢는 사람들 어둠을 찢는 사람들 “천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눅 1:28)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참 힘겨운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 있었던 당회는 zoom이라는 툴(tool)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모일 수 없었기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습니다. 낯선 소통의 창구였지만 많은 분이 동참해주셨습니다. 이렇게라도 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하겠습니다. 모처럼 보이는 얼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한 결정 사항은 없었지만,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얼굴을 맞대고 만날 시간이 자꾸 미뤄지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새벽 기도회조차 할 .. 2020. 12. 17.
한희철의 얘기마을(175) 빛 “한 쪽 눈을 빼서 주겠다고, 그것도 좋은 쪽 눈을 빼서 주겠다 했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오원례 성도님은 약해진 눈에는 안 좋다는 눈물을 연신 흘리며 계속 그 얘기를 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해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와 드리는 심방 예배를 마쳤을 때, 어려웠던 순간을 회고하던 이상옥 성도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내의 시력을 걱정하자 얘길 듣던 오원례 성도님이 끝내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당뇨 후유증으로 생긴 시력 감퇴 현상이 교통사고로 더욱 심해져 시력을 거의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한평생 고생한 아내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일부러 눈을 감고도 지내 봤다는 말에 이어, 당신 한쪽 눈을 빼 아내에게 주겠다고, 그것도 좋은 쪽 눈을 주겠다고, 의사에게.. 2020. 12. 17.
당근 한희철의 얘기마을(174) 당근 근 한 달 동안 계속 되어온 당근 작업이 이제야 끝이 났다. 강가 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당근, 장마가 겹쳐 힘들었지만 그나마 뙤약볕보다는 비가 나았고, 덥다고 작업을 미루다간 밭에서 썩히기 십상인 일이었다. 당근 작업은 정확히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제법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당근 작업을 위해 새벽 4시가 되면 일할 사람을 데리러 차가 온다. 말이 새벽 4시지 4시에 출발하기 위해서는 새벽 두세 시도 여유 있는 시간이 아니다. 소죽도 써 줘야 하고 밥 한 술이라도 떠야 한다. 당근 캐고, 캔 당근 자루에 담고, 차에 날라 싣기까지의 일은 빠르면 오후 1시 늦으면 서너 시까지 계속된다. 시장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당근이지만 그 당근 속엔 새벽 고단한 잠을 일으킨 주.. 2020. 12. 15.
공생의 탁밧(탁발) 신동숙의 글밭(291) 공생의 탁밧(탁발) 그림: 루앙프라방의 , 황간역의 강병규 화가 루앙프라방의 새벽 시장을 여는 탁밧 행렬찰밥, 찐밥, 과자, 사탕을 조금씩 덜어내는 손길들 가진 손이 더 낮은 자리에 앉아서 무심히 지나는 승려들의 빈 그릇에 올리는 공양 승려들의 빈 그릇이 가득 채워지는행렬의 맨 끝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모여 있다 혼자 먹을 만큼만 남기고 비우는 발우고여서 썩을 틈 없는 일용할 양식 아무리 가난해도 구걸하는 자 없고 아무리 부유해도 베푸는 자 없는 나눔과 공생의 땅에서착한 이들이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라오스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교회 그러고 보니 나눔과 공생의 탁밧을한국의 사찰과 교회당에서도 본 적이 있다 아침밥을 굶던 참선방에서 내 무릎 앞에 떡을 놓아 주시던 보살님.. 2020. 12. 14.
파스 한희철의 얘기마을(173) 파스 남편이 제약회사에 다니는 아내의 친구가 파스를 한 뭉치 보내 왔다. 어떻게 쓸까 생각하다가 혼자 사는 할머니들에게 나눠 드리기로 했다.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작실로 올라갔다. 늦게야 끝나는 일. 할머니들을 만나려면 그 시간이 맞다. 다리 건너 첫 번째 집인 김천복 할머니네 들렀을 때, 형광등 불빛을 등지고 두 분 할머니가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엄마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두 분은 그렇게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한 지아비와 함께 살았던 두 분이 이젠 두 분만 남아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산다. 두 분 할머니는 일을 마치고 막 돌아온 길이었다. 손이며 얼굴에 묻은 흙이 그대로였다. 얼른 씻고 저녁 상 차려야 함에도, 그러고 있으면 누가 상이나 차려올 것처.. 2020. 12. 14.
첫눈으로 하얗게 지우신다 신동숙의 글밭(290) 첫 눈으로 하얗게 지우신다 첫 눈으로세상을 하얗게 지우신다 집을 지우고자동차를 지우고길을 지우고 나무를 지우고 먼 산을 지우고사람을 지우신다 첫 눈 속에서두 눈을 감으며하얀빛으로 욕망의 집을 지우고떠돌던 길을 지우고한 점 나를 지운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보이는 건 하얀빛 오늘 내린 첫 눈으로 세상을 하얗게 지우시고아침햇살로 다시 쓰신다 2020. 12. 13.
기도 덕 한희철의 얘기마을(172) 기도 덕 “사실 비가 안 와 애가 탈 땐 비 좀 오시게 해 달라고 기도도 했습니다만, 하나님, 이젠 비가 너무 오셔서 걱정입니다. 비 좀 그만 오시게 해 주시면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며칠째 많은 비가 쏟아지고 그칠 줄 모르는 빗속에서 수요저녁예배를 드릴 때, 김영옥 집사님의 기도에 솔직함이 담긴다. 지긋이 하나님도 웃으셨으리라. 그날 이후 장마 곱게 지나간 데에는 집사님 기도 덕, 하나님의 웃음 덕 적지 않았으리라. - (1992년) 2020. 12. 13.
만병통치약 한희철의 얘기마을(171) 만병통치약 풀 타 죽는 약을 뿌렸는데도 풀이 잘 안 죽었다고 남철 씨는 묻지도 않은 마당 풀에 대해 변명을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일 마치고 돌아온 광철 씨 동생 남철 씨를 언덕배기 그의 집에서 만났다. “요새는 이 약 먹는데....” 남철 씨는 호주머니에서 웬 약을 꺼냈다. 알약들이 두 줄로 나란히 박혀 있었다. 보니 게보린이었다. “이가 아파요?” 물었더니 “아니요. 농약 치고 나면 어질어질 해서요. 잠 안 올 때도 이 약 먹으면 잠이 잘 와요. 히히히.” 이야기를 마치며 남철 씨는 버릇처럼 든 웃음을 웃었다. 이집 저집, 이 동네 저 동네 품 팔러 다니는 남철 씨. 그때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비상약처럼 들어 있는 게보린 알약. 농약치고 어질하면 알약 하나 꺼내 먹.. 2020.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