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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297

숨은 하느님 신동숙의 글밭(304) 숨은 하느님 날숨으로 날 비우는 빈탕마다 들숨으로 들어오시는 숨은 하느님 태화강변을 산책하며뭉텅뭉텅 날 덜어내는 정화(淨化)의 순간마다 가지산을 오르며 활활활 날 태우는 회심(灰心)의 순간마다 그 어디든숨쉬는 순간마다숨은 하느님을 찾다가 호젓한 오솔길에아무도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는겨울나무 곁에 나란히 서서엎드려 하늘을 우러르는 가슴으로 가지끝 마른잎을 떨구듯입을 가리운 마스크를 벗으면깊숙이 들어오는 숨은 2021. 1. 5.
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신동숙의 글밭(303) 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꽃을 꽃이라 부르지 않고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별을 별이라 부르지 않고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사람을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른다 이 아름다운 마음을우리는 세상이라 부른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우리는 마음이라 부른다 2021. 1. 3.
밤이 되면, 나의 두 눈을 눈물로 씻기시며 신동숙의 글밭(302) 밤이 되면, 나의 두 눈을 눈물로 씻기시며 아침이 되면태양의 빛살로 내 심장을 겨누시며 밤새 어두웠을내 두 눈의 초점을 조율하신다 한 점 한 점 바라보는 곳마다 내 심장의 빛살로 이 땅의 심장을 비추신다 빙판길에 오토바이를 버티는 발살얼음이 낀 폐지를 줍는 손 몸이 아픈 이웃들의 소리마음이 아픈 이웃들의 침묵 하루해를 따라서그 빛을 따라서 그저 모르고 살아간다 밤이 되면나의 두 눈을 눈물로 씻기시며 빛을 거두어 가시니내 몸은 밤이 된다 ... 유주일연오심지등혜 惟主一燃吾心之燈兮이계오목지몽 而啓吾目之矇 야훼께서 내 마음의 등을 밝혀주시니내 어둔 눈을 밝히 보게 하시네 ( 18:28) 2021. 1. 2.
하루가 익으면 밥이 되지 신동숙의 글밭(300) 하루가 익으면 밥이 되지 저녁 노을에 두 눈을 감으며쌀알 같은 하루를 씻는다 하루가 익으면밥이 되지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가슴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쌓인 게 많을 수록나누어 먹을 밥이 한 가마솥 너무 오래 끓이다 태워서가슴에 구멍이 나면 하늘을 보고 가슴에서 일어나는 건눌러붙은 밑바닥까지버릴 게 하나도 없어 시래기처럼 해그늘에 널어서웃음기 같은 실바람에 말리는 저녁답 피어오르는 하얀 밥김은오늘 이 하루가 바치는 기도 하루가 익으면 밥이 되지 2020. 12. 30.
창문을 선물하고 싶어 신동숙의 글밭(298) 창문을 선물하고 싶어 하늘 한 쪽만 보면 닫혔던 마음이 열릴 텐데 햇살 한 줄기만 쬐면얼었던 마음이 녹을 텐데 집밖으로 못 나가서두 발이 있어도 못 나가서 몸이 아프거나마음이 아프거나 그럴 수만 있다면작은 창문 하나 선물하고 싶어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하늘이 보이는 햇살이 내려앉을 낡은 창틀이라도 좋은 집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때론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너의 맑은 두 눈을 닮은투명한 창문 하나 2020. 12. 28.
자작나무숲 신동숙의 글밭(296) 자작나무숲 사진: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숲, 김동진님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길 은총의 길 땅에서 올라가는 하얀 길 평화의 길 2020. 12. 26.
공생의 탁밧(탁발) 신동숙의 글밭(291) 공생의 탁밧(탁발) 그림: 루앙프라방의 , 황간역의 강병규 화가 루앙프라방의 새벽 시장을 여는 탁밧 행렬찰밥, 찐밥, 과자, 사탕을 조금씩 덜어내는 손길들 가진 손이 더 낮은 자리에 앉아서 무심히 지나는 승려들의 빈 그릇에 올리는 공양 승려들의 빈 그릇이 가득 채워지는행렬의 맨 끝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모여 있다 혼자 먹을 만큼만 남기고 비우는 발우고여서 썩을 틈 없는 일용할 양식 아무리 가난해도 구걸하는 자 없고 아무리 부유해도 베푸는 자 없는 나눔과 공생의 땅에서착한 이들이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라오스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교회 그러고 보니 나눔과 공생의 탁밧을한국의 사찰과 교회당에서도 본 적이 있다 아침밥을 굶던 참선방에서 내 무릎 앞에 떡을 놓아 주시던 보살님.. 2020. 12. 14.
첫눈으로 하얗게 지우신다 신동숙의 글밭(290) 첫 눈으로 하얗게 지우신다 첫 눈으로세상을 하얗게 지우신다 집을 지우고자동차를 지우고길을 지우고 나무를 지우고 먼 산을 지우고사람을 지우신다 첫 눈 속에서두 눈을 감으며하얀빛으로 욕망의 집을 지우고떠돌던 길을 지우고한 점 나를 지운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보이는 건 하얀빛 오늘 내린 첫 눈으로 세상을 하얗게 지우시고아침햇살로 다시 쓰신다 2020. 12. 13.
엄마의 집, 종량제 봉투 신동숙의 글밭(285) 엄마의 집, 종량제 봉투 앞으로 2주 동안 엄마의 집은 빈 집입니다.냄비에 남은 찌게를 버릴까 하다가 냉장고로 보냅니다. 수저 한 벌, 밥그릇 하나, 작은 반찬 접시아침 밥그릇이 담긴 설거지통을 비웁니다. 엄마가 여러 날 동안 우겨 담으셨을 종량제 봉투에화장실 쓰레기통 휴지까지 마저 눌러 담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를 지내오면서도엄마의 아파트 종량제 봉투 버리는 데를 모릅니다. 문을 나서며 처음 마주친 아주머니께 여쭈니"앞쪽에 버려도 되고, 뒷쪽에 버려도 되는데,이왕이면 가까운 뒷쪽에 가세요." 하십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 하며 뒷쪽으로 가니태우는 쓰레기통, 안 태우는 쓰레기통이 나란히 두 개 태우는 쓰레기통 손잡이를 위로 당기니 열리지 않아서 아파트는 쓰레기통도 비밀번호를 .. 2020.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