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엄마 젖 한희철의 얘기마을(137) 엄마 젖 “아무리 추운 날 낳았다 해두 송아질 방으로 들이면 안돼유. 그러문 죽어유. 동지슷달 추운 밤에 낳대두 그냥 놔둬야지 불쌍하다 해서 굼불 땐 방에 들이문 오히려 죽구 말아유.” 송아지를 낳은 지 며칠 후, 속회예배를 드리게 된 윗작실 이식근 성도님은 이렇게 날이 추워 송아지가 괜찮겠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송아지는 낳아 어미가 털을 핥아 말려 주문 금방 뛰어댕겨유. 낳자마자 엄마 젖을 먹는데, 그걸 초유라고 하지유. 그 초유를 먹으문 아무리 추운 날이래두 추운 걸 모른대유, 초유 속에 추위를 이기게 해주는 그 무엇이 들어있대유.” 아무리 날이 추워도 갓 태어난 송아지가 어미 젖을 빨면 추위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신기하고도 귀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모두가 .. 2020. 11. 7.
어떤 축구 선수 한희철의 얘기마을(136) 어떤 축구 선수 가끔씩 떠올리는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중요한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영 자신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실수로 경기를 놓칠 것 같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 고민 하던 그가 그만의 방법을 생각해 냈고, 운동장에 들어간 그는 열심히, 어느 때 보다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이란, 공 없는 데로만 뛰어다니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이 자기 앞에 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미리 피하기 위해 그는 공 없는 곳으로만 열심히 뛰어다닌 것입니다. 그럴 수가 있냐며 웃지만, 사실 우리들의 삶이 그럴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실수가 두려워서 삶을 피해 다니는 안쓰러운 모습들. 실수를 두려워하여 삶을 외면하는 자는.. 2020. 11. 6.
밤은 모두를 재워 한희철의 얘기마을(135) 밤은 모두를 재워 오늘도 해는 쉽게 서산을 넘었다.말은 멍석 펼치듯 노을도 없는 어둠산 그림자 앞세우며 익숙하게 밀려왔다. 차라리 밤은 커다란 솜이불모두를 덮고 모두를 집으로 돌린다.몇 번 개들이 짖고 나면 그냥 어둠 뿐,빛도 소리도 잠이 든다. 하나 둘 별들이 하늘로 돋고대답하듯 번져가는 고만고만한 불빛들저마다의 창 저마다의 불빛 속엔저마다의 슬픔이 잠깐씩 빛나고그것도 잠깐 검은 바다 흐른다. 그렇다.밤은 모두를 재워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날마다살아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일으킨다.검은 바다를 홀로 지나 것들을. - (1992년) 2020. 11. 5.
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한희철의 얘기마을(134) 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막 수요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낯선 청년 세 명이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뒤편 한 구석에 배낭을 벗어 놓더니 나란히 뒷자리에 앉는다.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며, 설교를 하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짐작 가는 데가 없다. 누굴까, 누가 단강을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릴까, 궁금증이 들쑥날쑥 머릿속을 드나들었다. 설교를 마치고 성도의 교제시간, 소개를 부탁했다. 단강이 그리워서, 단강교회 교우들이 보고 싶어서 왔노라고 했다. 짧은 소개를 박수로 받았다. 예배를 마치고 모두들 난롯가에 둘러앉았다. 멀리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말보다는, 교우들을 소개 했을 때 익히 알던 분을 만난 듯 익숙한 이름을 되뇌는 청년들의 모습에 교우들이 .. 2020. 11. 4.
쉬운 삶 한희철의 얘기마을(133) 쉬운 삶 안갑순 속장님이 몸져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고 끝정자로 내려갔습니다. 아직껏 가슴이 뛴다는 속장님의 얼굴이 많이 부어있었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깟 강아지 두 마리에 웬 수선이냐 할진 몰라도 이야길 들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일 년 내내 번 돈을 아껴 집사님 내외분은 강아지 두 마리를 샀습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사람 주먹보다도 작은 귀한 강아지였습니다. 그림같이 인형같이 생긴 강아지 두 마리를 방안에 키우며 며칠 동안은 고놈들 귀여운 맛에 하루 해가 짧았습니다. 들인 거금이 아깝지 않을 만큼 강아지들은 귀여움 투성이였습니다. 자식 없이 살아가는 노년의 외로움을 그렇게 이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사고가 나던 날, 마침 바깥 볕.. 2020. 11. 3.
우리는 가난합니다 한희철의 얘기마을(132) 우리는 가난합니다 “우리는 가난합니다.” 더는 허름할 수 없는 언덕배기 작은 토담집, 시커멓게 그을린 한쪽 흙벽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또렷한 글씨, 5학년 봉철이었을까, 중학교 다니는 민숙이였을까, 누가 그 말을 거기에 그렇게 썼을까? 아까운 줄 모르게 던진 나뭇단 불길이 반딧불 같은 불티를 날리며 하늘 높이 솟고, 갑작스런 부음에 놀라 달려온 마을 사람들이 불가로 둘러섰을 때, 불길에 비친 까만 벽의 하얀 글씨. “우리는 가난합니다.” 보건소장님의 연락을 받고 작실로 올라갔을 땐, 이미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입으로 코로 흰 거품을 뿜으며 아무 의식이 없었다. 혈압 240-140. 손전등으로 불을 비춰도 동공에 반응이 없었다. 변정림 성도. 한동안 뵙지 못한 그를 난 그.. 2020. 11. 2.
별들의 잔치 한희철의 얘기마을(131) 별들의 잔치 늦은 밤, 마당에 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본다. 별들의 잔치, 별들은 ‘고함치며 뛰어내리는 싸락눈’ 같이 하늘 가득하다. 맑고 밝게 빛나는 별들의 아우성. 별자리들은 저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옆자리 별들은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느라 모두들 눈빛이 총총하다. 그들 사이로 은하가 굽이쳐 흐른다. 넓고 깊은 은빛 강물, 파르스름한 물결 일으키며 하늘을 가로질러 흘러온 은하는 뒷동산 떡갈나무 숲 사이로 사라진다. 이따금씩 하늘을 긋는 별똥별들의 눈부신 질주, 당신의 기쁨을 위해선 난 스러져도 좋아요, 열 번이라도, 백 번이라도. 남은 이들의 기쁨을 바라 찬란한 몸으로 단숨에 불꽃이 되는, 망설임 없는 별똥별들의 순연한 아름다움! 자리에 누워 별을 보다 한.. 2020. 11. 1.
썩은 세상 한희철의 얘기마을(130) 썩은 세상 “도둑놈을 잡아들일 놈들까지 썩었으니 퍽 썩었지? 다 썩었어.” 단강으로 들어오는 직행버스, 옆자리에 앉은 마을 노인이 장탄식을 한다. 높은 자리의 나리들은 부패로 썩고, 버려진 듯 살아가는 후미진 농부의 마음은 짓물러 썩고, 이래저래 썩은 세상, 다 썩은 세상.푸른 싹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 - (1992년) 2020. 10. 31.
끌개 한희철의 얘기마을(129) 끌개 벌써 며칠 째인지 모릅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소를 끌고선 아스팔트 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소 등엔 멍에가 얹혔고, 멍에엔 커다란 돌멩이를 올린 나무 막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끌개’를 끌며 소가 일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등 뒤에 늘어진 끌개의 무게를 견디며 소는 묵묵히 걸어갑니다. 일소가 되기 위해선 배워야 할 게 많아 일철 앞두고 소가 일을 열심히 배우는 것입니다. 일소가 되기 위해 등 뒤의 무게를 견디며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는 소, 며칠 동안 끌개를 끌며 일 배우는 소를 보는 마음이 숙연합니다. 내게 주어진 임의 밭을 갈기 위해 끌어야 할 끌개가 내게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무게를 견디며 많은 시간 끌개를 끌어야 합니다. 이 밭에서 저 밭으로 소가 함.. 2020.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