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한 줌 진실 한희철 얘기마을(147) 한 줌 진실 장에 다녀오는 길, 단강으로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듣게 된 이웃마을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이필로 속장님이 전했습니다. 기름 한 종지 더 얻자고 개치(부론)까지 갔다가 결국은 한 종지만 얻게 됐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옆자리에서 이야길 듣던 중년신사가 “아, 그것 참 재미난 얘기네요. 아주머니, 그 얘기 차근차근 다시 한 번 해 보세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얘길 글로 쓰면 좋은 글감이 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웃음이 다시 터졌던 건 속장님이 “우리 목사님 같은 분이 또 있드라구요, 글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헛간에 걸어놓은 못쓰게 된 살림 도구들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싶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 이야기를 시시.. 2020. 11. 18. 굽은 허리 한희철 얘기마을(146) 굽은 허리 변관수 할아버지의 허리가 더 굽었습니다. 곧은 ‘ㄱ’에서 굽은 ‘ㅈ’ 모양이 되었습니다.저렇게 저렇게 허리가 굽어 굽은 허리가 땅에 닿을 때쯤이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말 할아버지.땅에 닿을 듯한 허리로 할아버지가 길을 갑니다. - (1992년) 2020. 11. 17. 객토작업 한희철 얘기마을(146) 객토작업 객토작업을 합니다. 차라리 탱크를 닮은 15톤 트럭이 흙을 싣고 달려와선 논과 밭에 흙을 부립니다.땅 힘을 돋는 것입니다. 땅에도 힘이 있어 몇 해 계속 농사를 짓다보면 땅이 지치게 되어 지친 땅 힘을 돋기 위해 새로운 흙을 붓는 것입니다. 트럭이 갖다 붓는 검붉은 흙더미가 봉분처럼 논과 밭에 늘어갑니다. 객토작업을 보며 드는 생각 중 그중 큰 것은 고마움입니다. 그건 땅에 대한 농부의 강한 애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농사가 천대받고 농작물이 똥값 된다 해도, 그렇게 시절이 어렵다 해도 끝내 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는 땀 흘려 씨 뿌리겠다는 흙 사랑하는 이의 눈물겨운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흙먼지 날리는 객토작업을 불편함보다는 든든함과 고마움으로 바라봅니다. - (1.. 2020. 11. 16. 사랑의 안마 한희철 얘기마을(145) 사랑의 안마 어디서 배웠는지 어느 날 소리가 내 등을 두드립니다. 도닥도닥, 작은 손으로 아빠 등을 두드리는 어린 딸의 손길이 여간 정겹지를 않습니다. “어, 시원하다.” 한껏 딸의 수고를 칭찬으로 받아줍니다. 그 뒤로 소리는 이따금씩 등 뒤로 와서 내게 묻습니다. “아빠, 더워요?” - (1992년) 2020. 11. 15. 종일이 할머니 한희철 얘기마을(144) 종일이 할머니 김 집사님이 아파 심방을 갔더니 종일이 할머니가 와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종일이 할머니가 고맙다고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합니다. 지난 단강초등학교 졸업식에 종일이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부론중학교에서 올 입학생부터 입게 되었다는 교복 값이 없어 당신 혼자 맘고생이 많았는데 종일이가 뜻하지 않은 장학금을 타서 걱정을 덜었다는 것입니다. 일흔여덟,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쁜 몸으로 손자 셋을 돌보시는 할머니, 아들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며느리는 어디론가 새살림을 나가고, 그래서 할머니가 손주들을 돌봅니다. 모두가 한창 먹을 때고 한창 개구질 때입니다. ‘부모 읍는 자식 소리 안 듣길려구’ 찬이며 빨래며 할머닌 ‘아파도 아픈 .. 2020. 11. 14. 선아의 믿음 한희철 얘기마을(143) 선아의 믿음 이젠 선아도 무릎을 잘 꿇습니다. 심방을 가 처음 예배를 드릴 때만 해도 안 꿇리는 무릎 꿇느라 벌어진 두 발을 손으로 잡아당겨 끙끙 애쓰더니, 이젠 무릎 꿇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선아는 꼭 목사인 제 흉내를 냅니다. 무릎 꿇는 것부터 찬송 부르는 모습까지, 말씀을 전할 때의 손 모양까지를 그대로 따라 합니다. 요즘엔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 있으면 저 혼자 성경 찬송을 갖고 나와 책을 펼쳐들곤 흥흥 찬송도 부르고 뭐라고 뭐라고 설교도 합니다. 그러면 온 집안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식구들이 선아의 그런 모습을 ‘아멘’으로 받아 주기도 합니다. 선아가 교회에 나온 건 연초 새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 아빠를 따라서입니다. 처음엔 엄마 품에 안겨 교회에 .. 2020. 11. 13. 할머니의 바람 한희철 얘기마을(142) 할머니의 바람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얼었던 호박이 서너 번 녹은 꼴’이라고 빗대시는 김천복 할머니는 올해 일흔 일곱입니다. 참 고우신 얼굴에 이젠 정말 주름이 가득합니다. 장에 다녀오는 길, 양말 두 켤레 사가지고 사택에 들리신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그러십니다. “목사님, 딴데루 가면 안 돼. 내가 죽을 때 까정은, 목사님이 날 묻어줘야지.” 작고 주름진 할머니 손을 웃음으로 꼭 잡을 뿐 아무 대답을 못합니다. 나도 할머니의 바람을 꼭 이루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지를 아시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 (1992년) 2020. 11. 12. 우리를 필요로 하는 주님 한희철의 얘기마을(141) 우리를 필요로 하는 주님 매주 목요일마다 원주 자유시장 뒤편 ‘태자’라는 찻집에서 성서연구모임이 열립니다. ‘목요성서연구모임’입니다. 요즘은 마가복음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지난 주였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말씀을 읽고, 지금 나를 제자로 택한다면 뭘 보고 무엇 때문에 택하실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땅한 대답도 쉽지 않았고, 또 그런 대답이 은근히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도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같이 참석했던 한 군인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아마 나를 운전수로 쓰실 것 같아요. 그 당시야 걸어 다녔지만 지금은 차가 필요하실 테니까요.” 그 군인은 운전병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난처했던 질문을 쉽게 해 주었고, 말씀 속에서.. 2020. 11. 11. 창(窓) 한희철의 얘기마을(140) 창(窓) 단강에서 사는 내게 단강은 하나의 창(窓) 단강을 통해 나는 하늘과 세상을 본다. 맑기를따뜻하기를, 이따금씩 먼지 낀 창을 닦으며 그렇게 빈다. 하늘을 닦는 것, 세상을 닦는 것, 맑고 따뜻해 깊은 하늘을 맑게 보기를, 넓은 세상을 따뜻하게 보기를, 오늘도 나는 나의 창을 닦으며 조용히 빈다. - (1994년) 2020. 11. 10. 이전 1 ··· 38 39 40 41 42 43 44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