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라면이 일으키는 사랑의 파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7) 라면이 일으키는 사랑의 파장 선배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를 방문하여 대화를 마치고 막 헤어지려 할 때, 선배는 우리를 예배당으로 안내했다. 추수감사절을 지낸 제단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제단의 불을 켜자 제단에 쌓여 있는 라면이 보였다.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상표와 크기가 다른 라면 박스들이 나란히 쌓여 있었는데, 그 양이 상당했다. 유심히 보니 회사는 달랐지만 모두가 컵라면이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대부분의 교회가 과일을 드리는 것에 비해 선배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라면을 드리고 있다. 노숙자 사역을 하는 목사님에게 라면을 전달하고 있는 것인데,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교우들도 이제는 뿌듯한 마음으로 참여를 한다고 했다. 마침 감사절인 전날 비가 .. 2019. 11. 20. 개 같은 세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6) 개 같은 세상 심방 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반려동물 이야기가 나왔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샌지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압권은 직장 상사를 성토하는 이야기였다. 직장 상사를 성토하는 자리에서 단연 1등을 한 내용이 있단다. 그것도 반려동물과 관련이 있었다. “직장 상사 애완견 장례식장에 다녀온 적 있어? 가보니까 영정 사진에 강아지 사진이 떡하니 올라가 있는데,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어 난감하더라.” 그렇게 시작하는 내용이었다는데, 그 말 앞에 어느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동석한 교우 중에는 공무원인 교우가 있었다. 그가 뜻밖의 규정을 들려주었다. 애완동물이 죽으면 처리하는 규정.. 2019. 11. 18. 이슬 묵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4) 이슬 묵상 가을로 접어들며 하루 한 꼭지씩 이어오고 있는 글이 있다. 이슬에 관한 글이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면 공기 중에 있던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힌다. 애써 골라 자리를 찾은 것인지 하필이면 풀잎이나 꽃잎 끝에 아슬아슬하게 맺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아찔하게 한다. 게다가 수명도 짧다. 아침 해가 뜨면 어느 샌지 사라진다. 이슬이 어느 순간 생겼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세상에 누가 있을까.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를 모르는 신비한 걸음, 이슬은 그런 존재지 싶다. 될 수 있으면 가장 짤막하게 쓰려 하는 것은, 그것이 이슬과 어울린다 싶기 때문이다. 어찌 이슬에 군더더기가 있겠는가. 맺히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눈물겨울 만큼 짧은 순간이다. 사.. 2019. 11. 17. 그래야 방 한 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5) 그래야 방 한 칸 모처럼 다른 일정이 없는 월요일, 목양실로 나왔다. 평소에도 조용한 예배당이 월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조용했다. 책상 옆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있다. 공문과 신문과 잡지, 이런저런 자료와 보고서도 있다. 하루에도 여러 편 우편물이 전해지고, 교회 일과 관련한 자료와 보고서 등도 전해진다. 때마다 중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덜 중요하다 싶은 것들을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그 높이가 어느새 제법이었다. 그때그때 분류를 하여 정리를 해두면 편할 것을 그렇지 못했다. 정리를 잘 못하는 성격도 컸거니와, 연일 이어지는 심방 등 바쁜 일정을 핑계로 쌓아 두기만 했었다. 그냥 일을 하는 것이 단조롭다 싶어 음악을 틀었다. 주로 클래식을 선물처럼 듣는.. 2019. 11. 17. 몇 가지 질문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3) 몇 가지 질문들 목회 계획 세미나 시간을 가졌다. 정릉교회 시무장로님들과 1박2일 내년도 목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일 오후에 출발하여 가던 길에 저녁을 먹고 나자 이내 날이 캄캄했다. 하루 머물기로 한 이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은 데다가 초행길에 비까지 제법 내려 숙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세미나는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했다. “오늘 한국교회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정릉교회에 점수를 준다면요?” 더 묻고 싶은 질문들도 있었다. “정릉교회 밖에 있는 다른 이들은 정릉교회에 몇 점을 줄까요?” “주님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주실까요?” 장로님들의 대답이 궁금했다. 먼저 한국교회의 점수는 낙제점이었다. 평균이 얼추 40점쯤이 되었다. .. 2019. 11. 16. 숨과 같은 하나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2) 숨과 같은 하나님 이름은 기호나 문자나 소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장치나 도구도 아니다. 이름은 존재다. 이름에는 그의 존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백성에게 보내실 때, 모세는 하나님께 질문을 한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출애굽기 3:13)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데,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대답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의미로 번역이 된다. “나는 곧 나다”로 번.. 2019. 11. 14. 두 개의 강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2) 두 개의 강 이른 아침 약속 장소로 가다보니 새벽안개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치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구분 짓기라도 하려는 것 같다. 안개 위는 천상의 세계이고 안개 아래는 지상의 세계인 듯싶다. 일교차가 심한 이때가 되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는 것을 단강에 살며 경험을 했다. 아침 강가에 나가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강을 따라 흐르고는 했다. 내게는 그 모습이 두 개의 강처럼 보였다. ‘두 개의 강’은 그런 모습을 그냥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 바다까지 가는 먼 길 외로울까봐 흐르는 강물 따라 피어난 물안개 또 하나의 강이 되어 나란히 흐릅니다. 나란히 가는 두 개의 강 벌써 바다입니다. 생각해보니 강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둔 것이 없었다. .. 2019. 11. 13. 나무들 옷 입히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1) 나무들 옷 입히기 갈수록 해가 짧아진다. 오후가 시작되어 잠깐 시간이 지난다 싶으면 어느새 땅거미가 깔리고는 한다. 문득 인생의 계절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해가 지는 시간도 그렇게 찾아올 것이었다. 새벽예배 준비와 심방 준비를 마쳤을 때는 이미 어둠이 다 내린 시간이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며 보니 누군가 예배당 마당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을 의지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도 대뜸 누구인지를 알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는 트럭, 조경 일을 하며 정릉교회 조경위원회를 맡고 있는 권사님이었다. 하루의 일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가는 대신 예배당에 들러 예배당 주변을 돌보는 일을 하신다. 피곤한 중에도 맡겨진 일을 지극한 정성으로 감당하는 권사님.. 2019. 11. 12. 때론 꽃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0) 떄론 꽃도 때론 꽃도 외로운지, 나란히 핀다. 예배당 마당, 쌀쌀해지는 날씨에도 용케 핀 작은 꽃이 있어 다가가니 나란히 피어 있다. 우린 하나랍니다, 둘이면서도 하나지요, 가만 웃으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꽃이라고 어디 외로움이 없을라고. 하지만 괜스레 마음이 시렸다. 2019. 11. 11. 이전 1 ··· 75 76 77 78 79 80 81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