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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낫게와 낮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8) 낫게와 낮게 책을 읽다말고 한 대목에 이르러 피식 웃음이 났다. 재미있고 일리가 있다 싶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립보서 2:3)라는 말씀이 있다. ‘낫게’ 할 때 ‘낫’의 받침은 ‘ㅅ’이다. 그런데 그 받침을 ‘ㅈ’으로 바꾸면 뜻이 엉뚱하게 바뀌게 된다. ‘낮게’가 되기 때문이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과, ‘낮게’ 여기는 것이 어찌 같은 수가 있겠는가. ‘낫게’와 ‘낮게’는 묘하게도 발음이 같다. 다른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과 나보다 ‘낮게’ 여기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얼마든지 말로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긴다 하면서도 마음이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낮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말로 마음을 가릴.. 2019. 12. 1.
가르마 타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7) 가르마 타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머리를 깎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편하고 익숙한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말로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정릉에 온 뒤로 교우가 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데 때가 되어 미용실을 찾았더니, 집사님은 손을 다쳐 머리를 깎을 수가 없었고 집사님 대신에 낯선 미용사가 머리를 깎고 있었던 것이었다.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잠시 기다리며 보니 손놀림에 막힘이 없어 보였다. 내 차례가 왔을 때 혹시라도 머리를 어색하게 깎을까 걱정이 된 아내가 한 마디 부탁을 했다. 오른쪽 이마 부분이 휑하지 않게 깎아달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미용사는 선뜻 가위를 드는 대신 이리저리 머리를 만지고 넘겨보더니 대뜸 이야기를 했다. “.. 2019. 11. 30.
문을 여는 방법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6) 문을 여는 방법 닫혀 있는 문을 여는 방법에는 두어 가지가 있다. 문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면 두 가지라 해도 되겠다. 하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이다. 열쇄로 열든 비밀번호를 누르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집의 주인이 당연히 선택하는 방법이자 주인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문을 여는 다른 하나는 문을 두드리는 일이다. 손으로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른 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을 하고는 주인이 문을 열어줄 때를 기다려야 한다. 열쇄가 없고 비밀번호를 모르는 이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며 신앙에 대해 생각한다. 신앙도 마찬가지구나 싶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앙을 은총의 문을 여는 열쇄를 얻거나 비밀.. 2019. 11. 29.
촛불은 심지만으로 탈 수 없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5) 촛불은 심지만으로 탈 수 없다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 촛불을 켜는 일이 더 많아졌다. 촛불은 촛불만의 미덕이 있다. 촛불을 켜면 마음이 환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백열전등과 다르고 난로와도 다르다. 밖에 다녀올 일이 있어 켜둔 촛불을 껐다. 거반 다 탄 초였는데, 그렇다고 촛불을 켜 둔 채 외출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을 보고 돌아와 다시 초에 불을 붙였다. 자기 몸을 다 태워 키가 사라진 초는 촛농으로만 남아 접시에 물 담긴 듯 촛대 안에 담겨 있었다. 그래도 한 가운데 심지가 서 있어 불을 붙였는데, 잠시 불이 붙던 심지는 하얀 연기를 내며 이내 꺼져버리고 말았다. 심지가 다 타기 전에 촛농을 받아들여 태워야 하는데, 백록담처럼 가운데가 파인 상태였기에 녹여낼 촛.. 2019. 11. 28.
용한 재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4) 용한 재주 아가페 위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주일마다 교우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한 고마운 분들이다. 적지 않은 교우들이 주일오전예배를 드린 뒤 점심 식사를 한다. 그 많은 인원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얼마나 고된 일일까. 일 년 동안 묵묵히 감당해 준 교우들이어서 고마운 마음이 컸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교우가 웃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즐겁게 일을 해왔지만 때로는 속상할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수고하는 이들의 진심과는 전혀 다른,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 발품을 팔아 음식을 준비하면 싼 것으로 했다고 핀잔을 하는 식이었다. 모두의 마음이 같았으리라. 봉사를 하다보면 그런 서운함과 무심으로 인해 생긴 상처들이.. 2019. 11. 27.
그 길을 걷지 않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3) 그 길을 걷지 않으면 원주 청년관에서 열린 북콘서트, 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자연스럽게 단강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모임에 참여한 이들 중 목회자가 절반쯤, 교우들이 절반쯤이 된다는 말을 듣고 이야기를 ‘두 개의 강’으로 마쳤다. 단강에서 보았던 그 중 아름다운 풍경으로, 박보영 집사님이 곡을 붙여 내게는 흥얼흥얼 노래로도 남아 있는 짤막한 글이다. 바다까지 가는 먼 길 외로울까봐 흐르는 강물 따라 피어난 물안개 또 하나의 강이 되어 나란히 흐릅니다. 나란히 가는 두 개의 강 벌써 바다입니다. -두 개의 강 목회자와 교우와의 만남이 두 개의 강처럼 은총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마음을 전하며 하고 또 하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글.. 2019. 11. 26.
밟고 싶어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2) 밟고 싶어요 책장을 정리하다가 종이 한 묶음을 발견했다. 악보였다. 지난여름 힐링 콘서트에 노래손님으로 다녀간 성요한 신부님이 전해준 악보였다. ‘두 개의 강’ ‘그럴 수 있다면’ ‘나처럼 사는 건’ ‘만 냥보다 더 귀하신 어머니’ ‘참새 다녀간 자리’ ‘울지 못하는 종’ ‘환대’ 등, 그동안 내가 썼던 짤막한 글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었다. 글이 곡이 된다는 것은 몰랐던 새로운 경험이 된다. 악보 중에는 ‘밟고 싶어요’가 있었다. ‘밟고 싶어요’는 내가 쓴 글이 아니었다. 심방 중에 만난 정릉 어느 골목길 전봇대에 붙어 있던 방, ‘개 주인은/ 개 때문에/ 개 망신 당하지 말고/ 개 똥 치우시오’라는 글을 읽고 그 내용이 재미있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고서 예.. 2019. 11. 25.
작은 배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1) 작은 배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목양실로 올라와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다보면 서서히 아침이 밝아온다. 이젠 겨울, 급한 무엇 있겠냐는 듯 느긋하게 밝아온다. 오늘도 그랬다.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있는 중에 아침이 밝아왔다. 잠깐 일을 멈추고 커피를 마시는데 비둘기 두 마리가 맞은 편 전깃줄 위로 날아와 앉았다. 비둘기가 저렇게나 큰 새였나 싶을 만큼 덩치가 큰 비둘기였다. 그런데 비둘기는 무슨 맘을 먹은 것인지 목양실 창문 난간으로 날아왔다. 전선과 난간의 거리가 가까워 폴짝 뛰는 것 같기도 했다. 난간이래야 좁은 공간, 그래도 그 공간으로 날아오자 비둘기가 창문과 닿을 정도였다. 퍼뜩 드는 생각이 있어 음악을 틀었다. 첼로 연주곡이었는데 볼륨을 높였다. 원래 그런 것인.. 2019. 11. 24.
고마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0) 고마움 담임목사실 화장실 창문 쪽에는 다육이 화분이 두 개 있다. 모두 세 개였는데 지난여름을 지나며 한 개는 죽고 말았다. 물을 너무 안 주어 그런 것인지 많이 주어 그런 것인지 시들시들 거리다가 말라버리고 말았다. 주인의 고르지 못한 관심 속에서 그래도 두 개의 다육이는 잘 살아주고 있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 들어가니 다육이 하나가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유난히 맑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다육이를 보니 힘이 없는 것 같아 물을 준 적이 있다. 그 물을 먹고 다육이는 저리도 윤기 있게 생기를 되찾은 것이었다. 그래야 물 한 모금, 저만한 고마움도 드물겠다 싶다. 2019.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