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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성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8) 아우성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길을 지나며 보니 꽃집 바깥쪽에 다양한 다육이 식물들이 눈길을 끌고 있었다. 작은 크기지만 모양과 빛깔이 예뻐 바라보다가 그 중 두 개를 샀다. 계산을 하며 주인에게 물었다. “물은 언제 얼마큼씩을 줘야 하나요?” 식물을 제대로 키울 줄을 몰라서 때로는 물을 너무 안 줘서, 때로는 너무 많이 자주 줘서 죽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주인의 대답이 재미있었다. “보면 알아요. 얘들이 아우성을 칠 때 그 때 주면 되요.” 꽃집 주인의 대답은 더없이 단순하고 쉬웠지만 내게는 쉽지 않았다. 잎의 아우성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과 귀가 내게 있는 것인지, 도무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2019. 4. 8.
세상이 동네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7) 세상이 동네다 지난 설 명절에 순직한 한 사람이 있다.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자신의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의 죽음이 숙연하게 다가왔던 것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의사로서 가정이나 가족보다도 응급환자를 위한, 우리나라의 부실한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일에 몰두하며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떠나던 날도 명절, 그럼에도 그는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얼마 전에 열린 제47회 보건의 날 기념행사에서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고 한다. 지인 중에 보름산미술관을 운영하는 이가 있다. 김포 초입 고촌에 작지만 참 좋은 미술관이 있다. 부천에서 목회를 할 때 손님을 만나거나 집중해서 책을 읽을 일이 있으면 찾곤 .. 2019. 4. 8.
저녁볕 2019. 4. 7.
신기한 아이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6) 신기한 아이들 정릉교회에서 갖는 속회지도자 세미나가 있어 아이들과 동행을 했다. 군산에 있는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와 금산교회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두 곳 교회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함께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거니와, 행사를 마친 후 인근에서 시간을 조금 더 보내려고 차를 따로 가지고 갔다. 고속도로에 전용차선이 있으니 버스는 싱싱 달릴 터, 승용차가 늦을까 싶어 일찍 떠났는데 생각보다 먼저 도착했다.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 마당에는 운동신경이 민첩한 개가 있었다. 공을 척척 막아내는 재주가 남달랐다. 공을 기다리며 취하는 준비 자세는 마치 페널티킥을 막기 위한 골키퍼의 자세와 거반 다를 것이 없었다. 공중 볼이든 땅볼이든 척척 입으로 물어 공을 막아냈다. 다 막아낼 터이니 다시.. 2019. 4. 6.
등에 손만 대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5) 등에 손만 대도 아빠가 맞은 환갑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아이들이 잠시 귀국을 했다. 저렴한 표를 끊는다고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서 왔는데, 덕분에 아이들은 녹초가 되어 도착을 했다. 비행기 멀미가 심한 막내는 떠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해 체력까지 바닥이 나 있었다. 쭈뼛쭈뼛 선물로 전하는 시계보다도 2년여 만에 아이들 얼굴 대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을 올랐다. 숲이 흔할 뿐 산다운 산이 드문 독일에 사는 아이들이기에 우리 산의 아름다움을 함께 경험하고 싶었다. 얼마 만에 산에 오르는 것일까, 모두의 걸음이 쉽지가 않았다. 돌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을 때였다. 혼자서 등산을 하던 한 여자가 우리를 보더니 말을.. 2019. 4. 4.
우리를 익어가게 하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4) 우리를 익어가게 하는 “마음이 조금은 평안해지셨어요?” 막 차에 타려는 권사님께 안부를 여쭈었다. 속회 모임을 마치고 속도원들과 점심을 드시러 가는 길이라 했다. 지난주일 목사의 급한 걸음을 알면서도 기도를 부탁할 만큼 권사님은 지금 안팎의 어려움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 이애경 그림 “괜찮아요. 돌아보면 살아온 걸음걸음이 기적 아닌 적 없었거든요.” 권사님의 대답은 단순했다. 차에 타며 권사님이 남긴 가볍고 따뜻한 웃음, 고난은 그렇게 우리를 익어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2019. 4. 4.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3)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뛰어난 이야기꾼 엔소니 드 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어느 신부가 한 부인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빈 성당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가도 부인은 아직도 거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신부는 그 부인이 절망에 빠진 영혼이라고 판단하고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다가가서 말했다. 사진/송진규 “제가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오, 감사합니다, 신부님.” 하고 부인은 말했다. “필요한 도움을 모두 받고 있었어요.” 그 말 아래, 두어 줄 떨어진 곳에, 부인이 한 한 마디 말이 더 적혀 있었다.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목사인 내가 하는 일이, 목사인 내가 하는 설교가 제발 그런 것이 아니기를! 2019. 4. 2.
거기와 여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2) 거기와 여기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시인 이대흠의 ‘천관’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시며,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기고,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될 때, 시인은 문득 거기와 여기를 생각한다.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는, 그 무엇으로도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거리와 경계가 우리에겐 있다. 2019. 4. 2.
달 따러 가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1) 달 따러 가자 윤석중 선생님이 만든 ‘달 따러 가자’는 모르지 않던 노래였다.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뒷동산에 올라가 무동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지금도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가 있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2절이 있는 줄을 몰랐고, 그랬으니 당연히 2절 가사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 바느질도 못한다더라 얘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 달아 드리자” 쉘 실버스타의 달 따는 그물 1절은 2절을 위한 배경이었다. 낭만적으로 재미 삼아 달을 따러 가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장대 들고 망태를 멘다고 어찌 달을 따겠는가만, 달을 따러 가자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밤이.. 2019.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