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87 공멸의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한종호의 너른마당(24) 공멸의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한국사회가 난마처럼 얽히고 있다. 메르스는 그야말로 블랙홀이다. 수습책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정치권이나 지식인 사회, 특히 종교계조차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공동체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는 확신이 퍼져 나갈 때, 그것이야말로 위기 가운데 위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위기 수습에 딱 부러지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인 역량 파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사태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다. 이 나라가 얼마나 비리와 부정으로 가득 찬 지를 드러낸 성완종 사태도 그렇고, 갈등이 첨예한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 사회적 조정력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세월호 참사, 끝없이 공권력으로 밀.. 2015. 6. 9. 유대인의 장막절(1)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2) 유대인의 장막절(1) 우리 식구는 이스라엘 유학 시절의 대부분을 ‘길로’라는 동네에서 보냈다. ‘길로’는 예루살렘 남부, 해발 800미터의 구릉지대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어느 집이든 네 평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의 베란다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던 3층 아파트에도 베란다가 있었는데, 가끔 고기를 구워 먹기에 좋았다. 모든 아파트는 아래층이 위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설계되어 있었다. 1층이 가장 넓고, 2층은 3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고, 3층은 또 4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건축되어 있었다. 베란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설계에 철저하게 적용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이든 그곳에 누우면 탁.. 2015. 6. 9. 땡중 같은 자들이 하도 많아서…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17) 땡중 같은 자들이 하도 많아서… “당백전(當百箋)” 또는 줄여서 “당전(當箋)”은 대원군이 왕권의 강화를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경복궁 중축의 재정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동전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가치가 동전 하나 당, 백전에 맞먹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애초에는 대원군의 위세를 업고 꽤나 고가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많이 찍어내다 보니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되어 그 가치가 점차 바닥을 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처음에는 보통 서민들이야 당백전 또는 당전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다가, 나중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가지게 된 돈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전은 급기야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시시한 돈으로 취급되었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고품격 “당전”이 아니.. 2015. 6. 9.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3) 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22)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3) 저는 앞글에서 건강한 부부는 잘 싸우는 부부라 했습니다.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싸우지 않는 것은 만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에만 만나는 성도 사이에는 웃음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신사답게 만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삶에 대해 간섭할 일도, 책임질 일도 없기에 사람 선한 미소로 서로를 마주 대할 수 있습니다. 갈등의 깊이는 관계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관계가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관계입니다. 서로의 삶에 대해 관심도 크고, 각자의 삶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크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삶은 아내에게 영향을 미치고, 아내의 삶도 남편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 2015. 6. 9. 정명훈 선생, 프란츠 리스트는 왜?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3) 정명훈 선생, 프란츠 리스트는 왜? - 프란츠 리스트(3) - 프란츠 리스트의 생애와 작품은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왜곡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을 덜 받은 부분은 작가로서의 리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습니다. 물론 그는 19세기 중반의 유럽에서 비교 대상이 거의 없는 피아니스트였고, 로베르트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처럼 음악 평론을 본격적으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당시 유럽이 그의 글을 주목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에 대한 21세기의 평가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쓴 몇몇 글들은 지금 여기에서 읽어도 속이 후련하고 배울 바 또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리스트가 남긴 저서, 에세이.. 2015. 6. 9. 김교신이 우치무라에게서 배운 것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2) 김교신이 우치무라에게서 배운 것 -「우치무라 간조론에 답하여」 1930년 - 흔히들 김교신의 스승이 ‘우치무라’라고 한다. 그 호명에 김교신도 깜짝 놀랐다. 물론 그가 우치무라의 성서연구 모임에 참석한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평양신학교 기관지인 『신학지남』에 실린 우치무라 간조에 대한 글에서 ‘조선인 제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김교신은 기회를 빌어 자신이 우치무라를 어찌 생각하는지, 그로부터는 무엇을 배웠는지를 밝힌다. 김교신이 처음 기독교 복음을 접한 것은 1920년 4월 16일 동경 시 거리를 지나던 저녁 무렵이었다. 당시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에 재학 중이던 한 청년의 설교에 깊은 울림을 느꼈다. 하여 이틀 뒤 주일에 근처 교회를.. 2015. 6. 7. 짐승을 가리킨 것이 성서 영감설로 오해돼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8) 짐승을 가리킨 것이 성서 영감설로 오해돼 성서를 번역하다 보면 원문의 대명사를 번역문에서는 실명사로 바꾸어야만 할 때가 더러 있다. 의미전달을 빨리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때로는 엉뚱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예전에 대한성서공회 번역자 모임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번역위원 중의 한 분이 아침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개역’ 성서의 이사야 34장 16절을 명상할 본문으로 내놓았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 분의 말에 따르면, 단순한 독자들이 이 본문을 성서영감설과 관련시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여.. 2015. 6. 7. 돼지의 맑은 두 눈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22) 돼지의 맑은 두 눈 하나님은 스스로를 누리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누리시는 것과 똑같이 모든 피조물을 누리십니다. 모든 피조물을 누리시되,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서의 피조물을 누리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누리시는 것과 똑같이 만물을 누리십니다. 세상 만물의 가장 작은 조각들에도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네. 모든 원자 속에 삼위일체의 거룩한 형상이 성스럽게 모셔져 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이 어슴푸레 어려 있네… 내 몸뚱이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세포가 모두 다 창조주를 찬미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선언하네. 물총새는 물고기를 잡도록 만들어졌고 붕붕 우는 벌새는 꽃의 꿀을 빨도록 만들어졌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묵상하고 사랑하도록 창조되었.. 2015. 6. 5. 아뜩함과 무력감을 넘어 김기석의 톺아보기(4) 아뜩함과 무력감을 넘어 신문을 보아도 뉴스를 들어도 어제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 메르스 여파로 인한 파장으로 온 나라가 흔들려도 정부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고 정치인들은 서로 깎아내리고 흠집내기에 열중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부패는 다반사가 되었다. 남북한의 긴장과 대립은 해소될 줄 모르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억지 부리는 강대국들의 횡포도 변함이 없다. 남을 모욕하고 부정함을 통해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평화를 거스르는 일이며, 반생명적인 폭거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갈 수 있는 주한미군의 탄저균 실험에 대한 이 나라 정부의 대처는 또한 어떠한가. 이런 일들을 하도 많이 겪다 보니 무슨 소식을 .. 2015. 6. 5. 이전 1 ··· 260 261 262 263 264 265 266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