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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겪은 트라우마 곽건용의 짭조름한 구약 이야기(15) 이삭이 겪은 트라우마 1. 10여 년 전에는 1950년대에 태어나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를 가리켜서 ‘낀 세대’(in-between generation)라고 불렀다. 한국사회 여러 분야에서 맹활약을 벌이던 386세대에 밀렸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기억한다. ‘낀 세대’가 기분 좋은 말일 수는 없다.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사이에 끼어서 제 역할 못하는 세대란 느낌을 주니 말이다. 내가 바로 그 세대다. 이삭을 가리켜 ‘낀 족장’(in-between patriarch)라고 부르면 그도 기분 좋을 리 없겠다. 그에 대한 전승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양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훨씬 많은 아브라함과 야곱 전승에 묻혀 있으니 ‘낀 세대’란 이름이 틀렸다고 볼 수는.. 2015. 5. 28.
폐허의 잔해 위의 남은 사랑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9) 폐허의 잔해 위의 남은 사랑 - 인간들은 잔인하고 인간들은 친절하다(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설교자에도 비관적인 설교자가 있고 낙관적인 설교자가 있다고 한다. 나는 점점 비관적인 설교자가 돼 가는 나를 본다. 물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비관적인 사람은 아니다. 나는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름 상당한 낙관적 행운을 누려 왔다. 감사하게도 극단적으로 혹독한 지경에 떨어진 적이 없었다. 어려움이야 늘 있었지만, 가령 내 아버지처럼 오늘이라는 날의 참담함 때문에 내일을 맞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 절망 가득한 삶의 굴곡을 육체에 걸머지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나보다 젊은 나이에 세 명의 어린 자녀를 잃는 참척을 당하셨다. 사람들이 더러.. 2015. 5. 24.
비진리가 진리를 대하는 태도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0) 비진리가 진리를 대하는 태도 - 「공포의 심리」 1940년 8월 - 일제치하 어느 순간인들 어렵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겠는가. 허나, 1940년이 접어든 시점은 김교신 스스로도 ‘이 곤란한 시대’라고 명명할 만큼 반(反)생명적 식민주의의 힘이 폭력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되던 당시였다. 약 12년을 몸담고 있었던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사직한 것이 1940년 봄(3월 22일)이었고, 같은 해 9월에 경기중학교에서 다시 교편을 잡았으나 ‘불온한 인물’로 주목받다가 6개월 만에 추방되었다. 1941년 10월에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에 부임할 때까지 또다시 수개월 교사생활을 쉬었고, 결국 ‘성서조선사건’으로 투옥된 것이 1942년 3월이니, 나라도 나라이거니와 ‘교직을 천직’으로 여.. 2015. 5. 24.
음악사에 등장한 원조 ‘오빠 부대’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1) 음악사에 등장한 원조 ‘오빠 부대’ - 프란츠 리스트(1) - 음악가 평전을 쓸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고민하지 않고 프란츠 리스트(1811-1868)를 선 선택하겠습니다. 리스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나 닮고 싶은 음악가가 아닙니다. 그를 좋아하지만 바흐처럼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처럼 리스트가 제 취향인 건 맞지만 그는 좀처럼 저를 미치게 만들진 않습니다. 그러니 리스트는 제게 최고일 순 없습니다. 미치게 만들지 못하는 음악이라면 2프로 부족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니 말입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리스트는 외식에 가깝지 외국에 오래 체류할 때 너무도 먹고 싶은 김치나 쌀밥이나 짜장면 같은 주식(主食)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쓰고 싶은 음악가 평전은 제가 존경하고 사.. 2015. 5. 24.
여름, 물의 신화 태양의 소설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15) 여름, 물의 신화 태양의 소설 짧은 봄이었습니다. 그만큼 아쉬움의 그림자는 깁니다. 5월은 그렇게 새로운 계절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퇴장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름이 성큼 와버리는 기운에, 여전히 봄인 줄 알고 있던 꽃들도 혹시 놀라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름은 아무래도 봄에 비해 때로 난폭할 때가 있습니다. 봄에 길들여진 마음으로는 난데없는 기습을 당하는 처지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도 그렇고 까맣게 하늘을 덮는 구름이 쏟아내는 장대비도 다소 우격다짐의 모양새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름은 우리를 밀폐된 곳에서부터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가장 개방적인 계절입니다. 닫혀 있던 문을 열지 않고서는 지낼 수 없는 시간을 겪게 합니다. 내성적.. 2015. 5. 22.
착한 노래가 듣고 싶다 김기석의 톺아보기(3) 착한 노래가 듣고 싶다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재미솔솔 이야기나라’ 수업이 진행되는 방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낭랑한 노랫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풀꽃에까지 눈길을 주고, 기어이 예쁘다고 칭찬까지 하는 그 마음이 다사롭다.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은 ‘이꽃 저꽃 저꽃 이꽃’ 하는 대목에 이를 때마다 곁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으리라. 참 좋다. 착한 노래가 착한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 이 시대의 가객 홍순관이 불렀던 노래도 귀에 쟁쟁하게 울려왔다. “왜 국에다 밥 말았어 싫단 말이야 싫단 말이야 이제부터 나한테 물어보고 국에 말아줘 꼭 그래야 돼.” 7살짜리 꼬마의 항변.. 2015. 5. 22.
예수의 심란한 마음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0) 예수의 심란한 마음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습니다. 지금 제 영혼이 몹시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릴까요?”(요한복음 8:1-11) 안드레와 빌립이 헬라계 백인을 데려오자 예수께서는 놀라신다. 무슨 예감이 드셨는지 모르지만 “결단의 시간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다. 어차피 양자택일하는 것이 인생이기는 하나…. 자연에도 법칙이 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는다.” 옳은 말씀이다. “그래 옳거니! 너희들 다 죽어 다오, 너희를 밑거름 삼아 내가 무럭무럭 자라나 백 배도 천 배도 결실을 낼 터이니.” 그런데 예수님의 삶은 이러한 자기 보존의 법칙을 무시한다. “이 세상에서 제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보전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 2015. 5. 22.
다말, 모권(母權) 싸움에서 이기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19) 다말, 모권(母權) 싸움에서 이기다(2) 1. 어머니 다말. 다말이 원했던 것은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다말은 어머니가 되기를 가장 원했다. 다말처럼 어머니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다말의 소원만은 아니었다. 남편인 엘도 원했을 것이고, 엘 사망 후에는 시아버지 유다와 주위 사람들도 다말이 아이를 출산해서 엘의 대를 잇게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유다가 다말을 친정으로 되돌려 보냈기 때문에, 다말이 어머니가 되는 길은 더욱 멀어 보인다. 2. 하지만 다말은 어머니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성경기자도 다말을 포기하지 않는다. 성경기자는 다말이 어머니가 되는 과정을 상당히 상세하게 꼼꼼하게 서술한다.. 2015. 5. 22.
생활 속 경전 읽기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1) 생활 속 경전 읽기 경전(經典, canon) 어쩌면 우리는 이 이름을 무겁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위엄 있는 책장에 속한 서물(書物)들 중에서도 가장 버겁고, 혹은 가장 훌륭한 치장 속에 출중한 권위를 만끽하고 있는 금박의 책들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들어 과연 ‘경전이란 무엇인가?’에 생각을 집중해보면 잠시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도 쉽게 부인하지는 못한다. 지금껏 지구라는 이름의 땅덩어리에 수없이 많은 전통과 문화, 그리고 종교들이 생멸 해왔고, 또 그만큼 많은 양의 경전들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전 자체에 대해 던지는 진지한 질문에는 너무 인색하지는 않았는가. 바로 이러한 경전 자체에 던지는 우리의.. 2015.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