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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남과 눈물, 신앙의 회오리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3) 모남과 눈물, 신앙의 회오리 - 전집 3권 『성서 개요』 예레미야 편 - 성서 어느 인물인들 소중히 여기고 경외하지 아니한 사람이 있을까마는, 김교신은 특히나 예레미야를 좋아하고 아꼈다. 그의 소박한 서재에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초상이 걸려 있었고, 김교신은 성서 묵상과 주석 연구를 하는 와중에 예레미야의 얼굴을 쳐다보곤 했다. 저이만큼의 치열함과 진지함과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생각에 미치면 글을 쓰다가도 성서본문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공부하게 된단다. 김교신은 예레미야가 가진 ‘모순적 성격’(?)에 매료되었다. 날카롭게 각진 모서리처럼 살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없이 여리고 감성 풍부한 ‘눈물의 선지자’가 예레미야라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예레미야는 “모나게.. 2015. 6. 14.
설거지를 명상으로 바꿀 수 있는가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23) 설거지를 명상으로 바꿀 수 있는가 내적인 행위가 크면 외적인 행위도 크고, 안이 보잘 것 없으면 바깥도 보잘 것 없습니다. 내적인 행위는 자체적으로 크기와 폭과 길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내적인 행위는 하나님의 심장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합니다. 슈멜케 폰 니콜스부어크라는 이름의 랍비에게 어느 제자가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겠습니까?” 스승은 그 제자를 여인숙을 운명하고 있는 아브라함 하임이라는 또 다른 랍비에게 보냈다. 아브라함 하임이야말로 현명하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제자는 그 여인숙을 찾아가서 방을 하나 잡고 여러 주일을 머물렀다. 그리고는 이 스승의 비밀이 무엇인지, 그 흔적이라도 잡아보려고 온갖 노력.. 2015. 6. 13.
요게벳, 어머니면서 어머니 아닌 삶을 살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2) 요게벳, 어머니면서 어머니 아닌 삶을 살다(1) 1.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모세의 생물학적 어머니이면서 유모로 처신해야 했던 여인. 제 자식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어머니. 제 자식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 그러나 그는 진정한 어머니였다. 모세를 모세답게 만든 사람이 바로 요게벳일 것이기 때문이다. 2. 출애굽기 2장 1-10절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본문 기자는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냥 레위 가족 중 한 사람, 레위 여자, 그의 누이, 바로의 딸이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10절에서 ‘모세’라는 이름이 나온다. 모세라는 이름은 바로의 딸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녀가 아이 이름을 모세라고 지은 까닭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름을 짓고 그 .. 2015. 6. 13.
더 기다리지 못한 죄 한희철의 두런두런(11) 더 기다리지 못한 죄 나직한 건 할머니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손을 들 때부터 그랬다. 아주 먼 곳, 아득히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듯 조심스레 손을 드는 할머니의 모습은 눈에 띄게 고요했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할머니의 삶이 그 작은 몸짓 하나에 오롯이 담긴 듯도 싶었다. 여러 해 전 춘천노인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일제며 난리며 보릿고개며 유난스러운 생의 고개를 숱하게 넘어오신 연로하신 분들, 그것이 아픔이든 기쁨이든 지나온 세월은 보석과 같은 시간이니 쓸모없다 여기시지 말고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보시라고, 학생으로 참석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이야기를 했다.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아 있.. 2015. 6. 11.
진정한 고독의 문지방 꽃자리의 종횡서해(11) 진정한 고독의 문지방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 “우리에게 고독은 원죄로 분열된 사람들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욕정과 죽음으로 꾸며낸 존재의 인위적․가식적 단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한다.”(408쪽) “내 자녀 요나여, 나를 본 적이 있는가? 자비, 깊고 깊은 자비, 나는 우주를 끝없이 용서해 왔다. 나는 죄를 모르기 때문이다.”(546쪽) 역시귀본逆時歸本의 실천 큰물에 떠 밀려 오는 부유물처럼 일상이 추레하고 번잡할 때 사람은 누구나 고요함을 희구한다. 침묵의 무게가 부족할 때 영혼은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치곤 한다. 이드거니 앉아 삶을 관상하기에는 현대인의 삶은 너무 분주하다. 달리고 또 달리느라 숨은 턱에 차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는 눈길조차 줄 수 없다. 벚꽃.. 2015. 6. 11.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1)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분은 예언자입니다.” “우리가 알기로 그는 죄인이오.”(요한복음 9:1-38) 제목으로 쓴 글귀는 종교화가 루오의 화집 에 나오는 어느 그림의 제목이다. 요한복음 내용에 맞춘다면 “눈먼 이가 보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여주었다”고 바꿈직하다. 참으로 성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다. “당신이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할멈, 이게 당신 아들 틀림없어?” “그렇습니다만.” “소경으로 태어났다 이 말씀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만은 틀림없읍죠.” “영감, 당신 아들이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말짱한 거야?” “글쎄요.. 2015. 6. 11.
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4) 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중동호흡기 증후군)의 침입에 한국 사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치사율 40%라는 공포의 수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고 차갑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부가 제 아무리 공기 중 감염은 희박하다고 강조를 하여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이런 지경이니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들이 한산해진다. 각종 쇼핑센터, 대형 할인마트, 백화점, 영화관, 음식점 등에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졌고, 각종 학교의 휴교령으로 대중교통도 여유로워졌다. 다만 주택가 근방의 PC방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들로 성업 중이라고 한다. 모여 있지 말라고 내린 휴교령인데, 결국 아이들.. 2015. 6. 10.
공멸의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한종호의 너른마당(24) 공멸의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한국사회가 난마처럼 얽히고 있다. 메르스는 그야말로 블랙홀이다. 수습책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정치권이나 지식인 사회, 특히 종교계조차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공동체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는 확신이 퍼져 나갈 때, 그것이야말로 위기 가운데 위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위기 수습에 딱 부러지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인 역량 파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사태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다. 이 나라가 얼마나 비리와 부정으로 가득 찬 지를 드러낸 성완종 사태도 그렇고, 갈등이 첨예한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 사회적 조정력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세월호 참사, 끝없이 공권력으로 밀.. 2015. 6. 9.
유대인의 장막절(1)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2) 유대인의 장막절(1) 우리 식구는 이스라엘 유학 시절의 대부분을 ‘길로’라는 동네에서 보냈다. ‘길로’는 예루살렘 남부, 해발 800미터의 구릉지대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어느 집이든 네 평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의 베란다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던 3층 아파트에도 베란다가 있었는데, 가끔 고기를 구워 먹기에 좋았다. 모든 아파트는 아래층이 위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설계되어 있었다. 1층이 가장 넓고, 2층은 3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고, 3층은 또 4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건축되어 있었다. 베란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설계에 철저하게 적용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이든 그곳에 누우면 탁.. 2015.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