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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서, 괜히>를 읽으면서_ 두고 온 그리운 모든 것들 저녁 늦게 책 한 권이 배달되었다. 포장을 열어 보니, 에서 출판된, 최창남 작가의 유년 회고록 다. 책을 읽기 전에, 표지의 책 제목의 생김새가 범상(凡常)치 않아, 표지에 잠시 머문다. 표지 날개를 펼쳐보니, 임종수 화백의 캘리그라피다. 글이라기보다는 한 컷 그림이다 이 책은 저자 최창남 작가가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 태어나서부터 초등학교 2학년 시절까지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살아온 시대가 저자와 부분적으로 겹치는 이들은 최창남의 유년 회고록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만이 아닌, 독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대신해서 말해 주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우리 세대의 우리의 자서전 격인 사회적 전기를 읽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 2021. 12. 10.
나눔이 꽃 사과 한 알 사이좋게 모두 다 함께 나누고픈 한마음 선한 마음밭에 씨알처럼 품고서 반으로 나누면 푸른 싹이 트고 네 쪽으로 나누면 네잎꽃이 피고 여덟 쪽으로 나누면 여덟 꽃잎 코스모스 눈물나는 양파도 나눔이 꽃 그대로 접시에 담으면 밥상 가득 환하게 하얀 꽃잎들이 사이좋게 피었습니다 2021. 12. 10.
새벽 세 시, 박 기사님 새벽 세 시에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전화를 걸면 자다가도 언제나 곧장 달려오는 박 기사님이라고 있단다 그런 사람이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단다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우리들 삶의 둘레에 없진 않아서 24시간 대기 중이신 소방관, 경찰, 긴급출동서비스 기사님처럼 고마운 분들이 없진 않으나 하지만 우리 동네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단다 생각을 한 땀 한 땀 이어보아도 그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새벽 세 시에 이웃을 위해서 잠든 몸을 일으킬 수 있는 마음이 아득히 궁금해진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어디든 함께 하신다는 성경의 하느님 말고는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다 너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지 않고선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지 않고선 잠든 .. 2021. 12. 9.
고마운 만남 모든 진료활동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 군의관은 찬찬히 하루 동안의 안타까움을 말했다. 진료를 받은 마을 분들의 대부분이 몇 알의 약만으론 해결하기 어려운 병이었다는 것이다.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진찰과 치료가 필요한 분들인데 공연히 허세나 부린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했다. 그러나 안다. 그런 하루의 시간이 고마운 것은 단지 병명을 짚어주고 몇 개 약을 전해준데 있지는 않다. 쉽지 않은 훈련을 마쳐 피곤할 텐데도 귀대를 앞두고 하루의 시간을 주민을 위해 할애한 그 마음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저 논밭이나 망가뜨리고 당연한 듯 돌아서곤 했던 해마다의 훈련인데, 그렇지 않은 모습 대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고마웠던 것이다. 훈련 나온 군복 입은 의사들께 받은 진료, 충분히 고마운 만남이었다. - 1.. 2021. 12. 8.
산골 산 정상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잠시 머물다 내려올 곳이지 거기까지 올라 서서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면 멀리까지 내다보았다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지 저 발아래 보이는 시인의 마을과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자신을 비추어 나도 그들과 같음을 나도 그처럼 멀고 작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때론 누군가에게 나도 별이 될 수 있음을 먼 그리움으로 빛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아무리 그래도 산 정상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그 누구든지 잠시 머물다 내려올 곳이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정상에서는 높이 나는 새들이라도 잠시 머물기만 할 뿐 저녁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골짜기 어느 틈엔가 둥지를 틀고 고된 몸을 누이지 산골짜기 계곡을 따라서 물길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 2021. 12. 8.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는 오래 전 사라져간 유년의 시절을 노년이 되어가는 세월에 다시 손에 어루만져 읽는 이들에게 그리움, 슬픔 그리고 아련함과 자기성찰의 자리로 초대해줍니다. “내 기억 속의 유년 시절은 대체로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불행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행복에 더 가까웠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가난해져 사탕을 사 먹지 못하게 된 일들에 대한 기억도 있지만 행복했던 기억들이 비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이렇게 말문을 여는 저자는“메뚜기, 잠자리, 방개, 거머리, 문둥이, 미군이 던져주던 사탕, 양색시 누나들, 친구들, 형과 누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셀렘민트껌, 바브민트껌, 텔레비전, 버드나무, 옥수수밭, 얼음공장, 경미극장, 장안벌 등과 루핑으로 지붕이 덮여 있던 교실, 개울에 떠내려.. 2021. 12. 7.
다시 다시 보면 모두가 다 시詩 빈 하늘에 눈을 씻고서 다시 보면 땅의 모두가 다 하늘 오늘도 다시 아침해를 주시고 고된 하루에 선물처럼 다시 달밤을 주시는 순간마다 다시 숨을 불어넣으시어 주저앉으려는 몸을 다시 일으키시는 태초의 숨이 다시 숨쉬자며 처음 사랑이 다시 사랑하자고 2021. 12. 6.
거 참 보기 좋구나 아침부터 어둠이 내린 저녁까지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차례가 돌아왔다. 한사람 끝나면 또 다음 사람, 잠시 쉴 틈이 없었다. 파마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머리를 다듬는 사람도 있었다. 노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차례를 기다릴 때, 이런 저런 얘기로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했다. 난로 위에서 끓는 산수유차가 하얀 김으로 신이 났다. 원주 의 서명원 청년, 한 달에 이틀을 쉰다고 했다. 그 쉬는 날 중의 하루를 택해 아침 일찍 단강을 찾아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마을 분들을 위해 머리 손질 봉사를 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 결코 깨끗하다 할 수 없는 다른 이의 머리를 만져야 하는 일, 늘 하던 일을 모처럼 쉬는 날 또 다시 반복하야 하는 일, 그러나 어둠이 내리고 마지막 .. 2021. 12. 6.
파스 며칠 동안 머리가 아파 앓아누웠던 우영기 속장님이 주일을 맞아 어려운 걸음을 했다. 윗작실 꼭대기,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겨울만 되면 연례행사 치루 듯 병치레를 하는 속장님. 두 눈이 쑥 들어간 채였다.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보니 머리에 하얀 것이 붙여 있었다. 파스였다. 다리가 아파 꼼짝을 못하는 김을순 집사님을 찾았을 때, 집사님은 기도해 달라시며 주섬주섬, 아픈 다리의 옷을 걷었다. 가늘고 야윈 다리, 걷어 올린 집사님의 다리에도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언제 붙였는지 한쪽이 너덜너덜 떼진 채 겨우 매달려 있는 파스였다. 만병통치인양 아무데고 붙는 파스, 아픔을 다스릴 방법이라곤 그것이기에. - 1991년 2021.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