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4 연꽃과 십자가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1) 연꽃과 십자가 모름지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자 하거든 하나가 되십시오! 서울의 어느 교회의 대학생들이 주최한 문학의 밤 행사에 초대 손님으로 참석하여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질문은 젊은이들답게 생기발랄하였고 거침이 없었다.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한 학생이 당돌한 질문을 던져왔다. “시인께서는 기독교 목사님이기도 하신데, 시 속에 연꽃이나 불상 등의 불교적 이미지를 그렇게 자주 사용하십니까?” 그 당시 내 시집 속에 수록된 시들이 불교적인 세계관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연꽃이나 불상, 또는 불두화 같은 불교적 상징이 강한 언어들을 이따금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제도종교의.. 2021. 5. 16. 집배원 아저씨와 복순이 집배원 아저씨가 "등기왔습니다!" 싸인을 받으시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우리집 대문지기 복순이가 "멍~멍~멍" 집배원 아저씨가 허리를 구부리시며 덩치 큰 복순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복순이는 땅에 납작 업드리며 큰 앞발로 아저씨 신발을 꼭 붙잡고 안 놓아준다 집배원 아저씨는 "반갑다고? 형아~ 이제 가야한다아" 하시고는 바쁜 걸음으로 대문을 나서며 오토바이에 올라타신다 그 짧은 순간 망설이다가 건넨 아쉬운 한마디 "오빠얀데요..." 아저씨가 "아, 그래요!" 하시며 한순간 푸른 하늘처럼 멍해지신다 2021. 5. 15. 경외의 마음 담아,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 시편 5편 7절 당신의 크신 사랑만을 믿고 나는 당신 집에 왔사옵니다. 주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엎드립니다.(《공동번역》) 我欲入主室 暢沾主膏澤(아욕입주실 창첨주고택) 爰具敬畏心 朝拜爾聖宅(원구경외심 조배이성택) 나 바라기는 주님집 내실에 들어 풍성한 은택에 넉넉히 젖고 경외의 마음 담아 당신 전에서 예배하는 것이옵니다(《시편사색》, 오경웅) 시인은 주님의 내실(內室)에 들기 원합니다. 당(堂)도 아니고 청(廳)도 아니라 실(室)입니다. 주님과 공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만나고자 함(廳)도 아니고, 손님으로 찾아와 격식을 갖추고자 함(堂)도 아닙니다. 시인은 그저 주님과 내밀한 만남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다 보여주고 싶은 만남을 원하고 있습니다. 내실(內室)은 사랑하는 장소.. 2021. 5. 15. 세월의 강 겨울비 내리는 강가는 유난히 추웠다. 그만큼의 추위라면 눈이 맞았을 텐데도 내리는 건 비였다. 내리는 찬비야 우산으로 가렸지만 강물 거슬러 불어대는 칼날 바람은 쉽게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가장자리 얼어가는 강물이 잡다한 물결을 일으키며 거꾸로 밀리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았다. 한참을 떨며 강 건너 묶여있는 배를 기다렸지만 뱃사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 하나 두고 떠난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해 가을 10여년 만에 고향을 찾은 유치화 청년의 지난 내력을 알기 위해 교회 젊은 집사님과 마을 청년과 치화 씨와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이쪽 부론은 강원도, 짧은 폭 강 하날 두고 겨울비 속 풍경화처럼 자리 잡은 저편은 충청북도. 유치화 청년의 먼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이다. 기구한 사연 속, 열세 .. 2021. 5. 15. 兄에게 그날 우린 한 밤을 꼬박 새워 많은 얘길 했죠. 교회 얘기도 했고 목사 얘기도 했습니다. 너무 물욕적(物慾的)이라고요. 너무 굳었다고요. 시골로 목회 떠나온 지 1년 돼 갑니다. 불편함이 없었던 것 아니지만 지금 제가 사는 집은 마을에서 가장 그럴듯한 집 중 하나입니다. 제가 받는 돈은 우리 교우 중 그래도 가장 많을 겁니다. 땀은 가장 적게 흘립니다. 예배시간엔 제단에 서서, 마루에 앉은 교우 앞에 양복 입고 서서 사랑을 말하고 은총을 말하고 나눔과 죄를 말합니다. 그리고도 괴로움을 모릅니다. 그렇게 굳어 갑니다. 그게 괴롭습니다. 1988년 2021. 5. 14. 풀씨와 먼지 창틀에 낀 먼지를 닦으려고 보니 바람결에 날려온 풀씨 한 톨 손끝으로 입바람으로 후 후 땅으로 먼 하늘로 어느 곳에서 나의 몸이 먼 땅으로 먼지 한 톨로 이 땅에 온 첫날을 오늘의 숨을 쉰다 2021. 5. 14.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년 9월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년 9월 - 첫째로 손 군은 우리 학교의 생도요, 우리도 일찍이 동경-하코네 간역전경주의 선수여서 마라톤 경주의 고(苦)와 쾌(快)를 체득한 자요, 손군이 작년 11월 3일 동경 메이지 신궁 코스에서 2시간 26분 41초로써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할 때는 ‘선생님 얼굴이 보이도록 자동차를 일정한 거리로 앞서 모시오’ 하는 요구에 ‘설마 선생 얼굴 보는 일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 하면서도 이 때에 생도는 교사의 심장 속에 녹아 합일되어 버렸다. 육향교 절반 지점부터 종점까지 차창에 얼굴을 제시하고 응원하는 교사의 양 뺨에는 제지할 줄 모르는 열루(熱淚)가 시야를 흐리게 하니 이는 사제 합일의 화학적 변.. 2021. 5. 14.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릴 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 주님의 은총과 평강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입하와 소만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떡갈나무 잎이 넓게 퍼지고 뻐꾹새와 꾀꼬리 울음소리가 자주 들려올 때입니다. 시인 정현종 선생은 ‘올해도 꾀꼬리는 날아왔다’는 시에서 “5월 7일 오전 9시 43분/올해 첫 꾀꼬리 소리”가 들려왔다고 적었습니다. 청명한 대기를 울리는 꾀꼬리 울음소리는 아득한 그리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소리의 품 안에 안기고 또 안긴다고 말합니다. “번개처럼 귀밝히며/또한 천지를 환히 관통하는/이 세상 제일 밝은 光音.. 2021. 5. 13.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 , 1940년 3월호 - 해가 바뀌는 즈음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보니 어느 덧 안산 하늘공원이다. 가늘게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홀로 서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앞에 마주했다. 한 이름, 한 얼굴씩 눈에 새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기도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움이 클수록 또 분했다. 어이없는 죽음이라서, 너무 어린 죽음이라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직함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라서,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납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덧 저 아이들은 마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처럼 .. 2021. 5. 13. 이전 1 ··· 56 57 58 59 60 61 62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