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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올바름 풀잎에는 큰 이슬이 풀씨에는 작은 이슬이 비와 바람에 쪼개지고 쪼개져도 무심한 발길에 터지고 터져도 언제 어디서나 마지막 한 점이 되는 순간까지 삿됨도 모남도 없이 제 자신을 추스를 줄 아는 둥근 지구를 닮은 물의 올바름 풀잎에는 큰 이슬이 풀씨에는 작은 이슬이 2021. 5. 22.
새벽 응급실 주보를 만들고 늦은 밤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잤을까, 전화벨 소리가 울려 놀라 깼다. 부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급히 병원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한 교우의 전화였다. 확 잠 달아난 눈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이럴 땐 차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비가 쏟아져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한 새벽. 한치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손으로 숲속 나무를 헤치듯 어둠과 안개 속을 달려야 했다. 응급실은 그 시간에도 번잡했다. 온갖 환자들의 고통스런 모습과 피곤 가득한 얼굴이면서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료진, 수속 밟으랴 간호하랴 분주한 환자의 가족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넓은 응급실 병실과 복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약간의 응급처치가 있은 후 어느.. 2021. 5. 21.
막막함을 몰아내 주소서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롬 8:26)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절기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주일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요 14: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는 주님의 영에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앞서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갈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시대이기에 우리는 더욱 영들을 분별하는 지혜를.. 2021. 5. 20.
어우러지는 춤 시편 6편 8, 9절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공동번역》) 我泣主已聞 我求主已聽(아읍주이문 아구주이정) 有禱必見納 有感豈無應(유도필견납 유감기무웅) 이내 울음소리 이미 들으셨고 이내 간구 애저녁에 받으셨으니 님께 바친 기도 어찌 아니 받으시고 응답하지 않으시랴(《시편사색》, 오경웅) 인생이 드리는 눈물의 호소와 하느님의 들으심 사이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요? 간구하는 처연함과 긍휼한 귀기울이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인생이 시간의 바늘 위에 섰는지라 간구와 응답 그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처럼 말할 수 밖에 없지만, 시간을 넘어 계신 하느님의 응답은 그 간격을 넉넉히 허무시지 않을까요? 이내 울음소리 이미 들으셨고 이내 간구 애저녁에 받으셨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이.. 2021. 5. 20.
마음까지 덥히려면 작실 속 속회예배를 드리고 내려오는 길, 오늘 하루 무엇 하셨느냐 김 천복 할머니께 여쭈니 지게 지고 나무를 했다 하신다. 75세, 연세도 연세려니와 허리가 굽으신 분이다. 나무를 사 놓긴 놨는데 사다 놓은 나무를 때자니 아깝기도 하고 너무 쉬 때는 것도 같아 섞어 땔 나무를 했다는 것이었다. 원래, 사다 논 나무를 때는 것은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 쉬 없어지는 법이라고 이식근 성도님이 웃으며 할머닐 얘길 받는다. 작은 방바닥만이 아니라 당신의 외로운 마음까지 덥히려면 얼마만큼의 나무가 더 필요한 것일지. 1988년 2021. 5. 19.
옥구슬 저 잎에서 이 잎으로 거미가 밑줄 친 빈탕한데 없는 듯 있는 거미줄에 없는 듯 있는 기도의 손길이 비나이다 빗물로 둥굴린 옥구슬 말없음표 2021. 5. 19.
버텨라, 버티자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5) 버텨라, 버티자 (조와(弔蛙), 1942년 3월) ‘한 시간에 740만원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에 주차요원을 꿇릴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던 ‘백화점 모녀’마저 사회정의를 외치는 시절이다.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단다. 한참 동면 중인 ‘개구리’도 들었다면 웃을 이야기다. 그들이 ‘바로 잡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의 사회적 배치 속에서 VIP(아주 중요한 사람)로 자리한 사람에게는 무한 존경과 절대 복종을 표시하는 사회,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바른’ 사회였을까?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는데, 그랬다면 740만원 씀씀이나 남편의 권력에 대한 언급은 불필요했을 일이다. ‘내 남편 한 마디면 너희들 다 잘려!’가 어찌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성을 .. 2021. 5. 19.
단강초등학교 졸업식 반짝이는 보석상자, 영롱한 추억의 보고(寶庫), 끊임없이 되살아와서 따뜻하게 생(生)을 감싸는 손길, 편안한 귀향(歸鄕), 마르지 않는 웃음들, 싫증나지 않는 장난감이 가득한 방, 끈끈한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곳, 그게 어린 시절이지 싶다. 지난 2월 19일 단강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작은 교실 한 칸에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학부모들과 내빈들이 둘러앉았다. 뒤편으론 몇 사람이 서기도 했다. 사무실용 의자를 옆의 사람에게 양보를 하고 난 정말 오랜만에 작은 초등학교 때 앉아 공부하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연필로 혹은 칼로 금을 그어 짝과 경계를 정하고 나란히 앉아 공부했던 그 어린 시절. 내 자릴 넘었다고 때론 짝꿍과 다투기도 했지만 실은 모든 것이 넉넉했었지. 우리들 이름이 적히기도 했던 칠판도.. 2021. 5. 18.
마음의 고삐를 맨 숨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있는 마음 보이지 않지만 살아서 펄떡이는 마음 이런 마음에 고삐를 맨다면 그건 한 점의 숨 꽃잎 만큼 연한 숨줄로 봄바람 만큼 다정한 숨줄로 때론 모진 세월의 강물 같은 한숨으로 그리고 커다랗고 밝은 무위의 하늘로 마음의 고삐를 잡는다 한 점의 숨으로 그러나 마음도 숨도 내 것은 아니다 한 장의 꽃잎도 내 것일 수 없듯 한 점의 바람도 내 것일 수 없듯 한 점의 마음도 한 점의 숨도 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줄 스스로 알게 하는 내 안에 맴도는 한 점의 숨은 누군가 2021.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