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3 냇물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냇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내 귓가를 울리는 냇물의 올바른 소리 한 줄기가 별빛이다 정의로운 정치는 흘러 흘러서 그늘진 생의 골짜기와 메마른 삶의 들판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라고 이 세상 끝까지 내려가서 온 땅을 품에 안은 바다의 수평선이 되는 일이라고 그리하여 푸른 하늘과 나란히 푸르게 서로를 바라보는 기쁜 일이라고 2022. 2. 7. 가슴으로 가슴으로 가는 숨으로 가고 오는 숨으로 오고 가는 숨으로 들숨과 날숨으로 빈 가슴을 지핀다 재만 남은 땅에서 새순이 돋아나면 가슴으로 뿌리를 내리며 이 둥근 땅을 끌어안으려는 불씨 같은 한 점 숨이 있어서 한겨울밤에도 저 별처럼 혼자서도 따뜻하다 2022. 2. 3. 투명하게 지으신 몸 밥은 자식이 먹었는데 엄마 배가 부르다고 하셨지요 밥을 먹다가 뉴스에서 누군가가 높은데서 떨어지거나 다쳤다고 하면 내 정강이뼈가 저릿해지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 떨며 아파하고 밤새 마음이 아파서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서 평화의 숨으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나의 몸은 나를 스쳐 지나는 이 모든 걸 그대로 느끼며 투명하게 반응한다 저녁밥을 먹다가 이런 나를 지으신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안녕하신지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2022. 1. 24. 미장이 싸늘한 벽돌과 껑껑 언 모래와 먼지 같은 시멘트 이 셋을 접붙이는 일 이 셋으로 집을 짓는 일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 이 차가운 셋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제 살처럼 붙으리라는 강물 같은 믿음으로 나무 토막 줏어 모아 쬐는 손끝을 녹이는 모닥불의 온기와 아침 공복을 채워주는 컵라면과 믹스 커피 새벽답 한 김 끓여온 생강차 한 모금 2022. 1. 22. 바람 빈 가지가 흔들린다 아, 바람이 있다 나에게 두 눈이 있어 흔들리는 것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있다가 없는 듯 한낮의 햇살이 슬어주는 잠결에 마른 가지 끝 곤히 하늘을 지우는 보이지 않지만 없다가 있는 듯 앙상한 내 가슴을 흔드는 이것은 누구의 바람일까? 2022. 1. 13. 마른잎 스치는 겨울 바람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지만 내려 주시는 한 줄기 햇살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만 집니다 - 겨울나무 (53) 2022. 1. 10.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선물로 주신 새해 마지막 숫자를 1로 쓰다가 2로 고쳐 쓰면서 같은 하늘을 숨쉬고 있는 같은 예수의 날을 헤아리는 이 땅에 모든 생명들의 건강을 빕니다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빕니다 백신을 맞고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몸속 세계의 평화 협정을 기도합니다 숨쉬는 모든 순간마다 하늘의 평화가 임하는 내게 주시는 어려움과 아픔이 이 또한 내 몸을 살릴 선물이 되는 은총을 누리는 사색의 등불로 밝히는 감사의 오솔길을 걸으며 오늘의 햇살처럼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차 한 잔의 평화가 흘러가기를 2022. 1. 3. 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를 하루 지나서 비로소 해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 문득 한낮의 볕이 좋아서 모처럼 따뜻한 볕이 아까워서 칠순을 넘기신 엄마랑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를 걸었습니다 뿌리를 내린 한 폭의 땅이 평생 살아갈 집이 되는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 줄줄이 선 산책길을 따라서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이 구불구불 걸어갑니다 사찰 내 서점에서 마주선 백팔 염주알을 보니 딸아이의 공깃돌을 옮겨가며 숫자를 헤아리던 기억에 책 외에 모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습니다 옆에 계신 친정 엄마한테 이십여 년만에 사달라는 말을 꺼내었습니다 엄마는 손수 몇 가지 염주알을 굴려보시더니 이게 제일 좋다 하시는데, 그러면 그렇지 제가 첫눈에 마음이 간 밝은 빛깔의 백팔 염주알입니다 엄마가 한 말씀 하십니다, "평.. 2021. 12. 31.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코바나19금'('썩은 밥에 빠진 누런 코') 한 사람이 있다. 그 옛날 친구를 따라서 뭣 모르고 찾아간 해인사의 백련암. 그리고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던 젊은이다. 그러면 부처님 앞에 삼 천 배를 올리라는 성철 스님의 한 마디에 괜히 투덜댔다가 "그라믄 니는 마, 만 배 해라!"라는 성철 스님의 엄호에 오기가 발동해서 정말로 백련암 초행길에 만 배를 올렸던 젊은이다. 그가 바로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이다. 다리가 끊어지고 온몸이 부숴지는 듯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만 배를 겨우 마친 젊은이는 기어가다시피하며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였다고 한다. 청년이 기대했던 한 말씀이란 다름 아닌 청년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한 말씀이었으리라. 성철 스님은 "지킬 수 있나?" 물으신 후 딱 한 말씀만 하시곤 내려가라 하셨다며 상좌인 원택 스님은 .. 2021. 12. 28.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