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되살이 한희철의 얘기마을(125) 되살이 죽을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나 이어가는 삶을 단강에서는 ‘되살이’라 합니다. 우속장님을 두고선 모두들 되살이를 하는 거라 합니다. 십 수 년 전, 몸이 아파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의사가 아무런 가망이 없다고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개울에서 빨래를 하다 ‘병원 하얀 차’가 마을을 지나 속장님 집으로 올라가는 걸 본 허석분 할머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곧 무슨 소식이 있지 싶어 집에 와 두근두근 기다리는데 밤늦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올라가 봤더니,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쇠꼬챙이처럼 말라 뼈만 남은 몸을 방바닥에 뉘였는데, 상처 부위가 형편이 없어 정말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렇게 몇 달이나 갈까 동네.. 2020. 10. 25. 어느 날의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124) 어느 날의 기도 위로를 말하기엔 아직 우리는 슬픔을 모릅니다. 어둠속 잠 못 이루는 눈물의 뿌리가 어디까지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나눔을 말하기엔 아직 우리는 속이 좁습니다. 저 밖에 모릅니다. 받는 건 당연하면서도 베푸는 건 특별합니다. 축복을 말하기엔 아직 우리는 은총을 모릅니다. 가난한 들판에 가득 쏟아져 내리는 햇살, 가난한 영혼 위에 고루 내리는 하늘의 은총을 우리는 모릅니다. 스스로 기름져 툭 불거져 나온 탐욕으론 이미 좁은 길을 지날 길이 없고, 하늘 뜻 담을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도 위로를 말하는, 나눔을 말하는, 은총을 말하는, 말로 모든 걸 팔아버리는 우리들입니다. 용서 하소서. 주님 - (1994년) 2020. 10. 24. 죽이면 안 돼! 한희철의 얘기마을(123) 죽이면 안 돼! 때론 개미만 보아도 “엄마야!” 하며 기겁을 하던 소리가 주일 저녁예배 시간, 무슨 담력이 어디서 났는지 예배당에 들어 온 파리를 발을 번쩍 들어 밟으려 했다.]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왔던 다섯 살 준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만 눈이 휘둥그레져 하는 말, “죽이면 안 돼, 걔네 엄마가 찾는단 말이야.” - (1991년) 2020. 10. 22. 제 각각 세상 한희철의 얘기마을(122) 제 각각 세상 물난리 지나간 뒷모습은 참으로 참담했다. 강가를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 기름지고 널따란 밭들은 이미 밭이 아니었다. 김장 무, 배추, 당근 등 파랗게 자라 올랐던 곡식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수북한 모래가 그 위를 덮고 있었다. 흙이 다 떠내려가 움푹 파인 자리에 흰 뼈처럼 돌들만 드러난 곳도 적지 않았다. 미끈하게 자라 올랐던 미루나무들도 어이없이 쓰러져선 깃발처럼 폐비닐만 날리고 있었다. 쉽게는 치유되지 않을 깊은 상처였다. 부론에 다녀오다 보니 강가를 따라 난 도로변에 웬 차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 있었다. 수해복구의 손길이 이곳까지 미쳤구나,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차창 쪽으로 바싹 당겨 앉아 내다보니 웬걸, 강가 그 많은 사람들은 한결.. 2020. 10. 22. 고향 친구들 한희철의 얘기마을(121) 고향 친구들 재성이가 며칠 놀이방에 못 왔습니다. 엄마아빠를 따라 외할머니댁에 다니러 갔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 댁은 해남, 아주 먼 곳에 있습니다. “재성이 언제 와요?” 재성이가 외할머니 댁에 간 후 놀이방 친구들은 날마다 물었습니다. 그래야 며칠, 곧 있으면 다녀올 텐데도 아이들은 툭하면 재성이 언제 오냐고 물었습니다. 재성이 왔나 보러 가자고 놀이방이 끝나면 아이들은 재성이네 집으로 쪼르르 가 보곤 했습니다.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재성이네 집에 불이 켜졌는지를 확인해 보기도 했습니다. 며칠 만에 재성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재성이는 집에 오자마자 놀이방으로 왔습니다. 재성이가 교회마당으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습니다. “재성이가 왔다!” 박수까지.. 2020. 10. 20. 가장 좋은 설교 한희철의 얘기마을(120) 가장 좋은 설교 농촌목회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어려움 중 그중 큰 것이 설교입니다. 설교란 모든 목회자가 한결같이 느끼는 어려움이겠지만, 농촌에서는 더욱 더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까짓 서너 명 모일 때가 많은데 뭔 어려움이냐 할지 모릅니다. 사실 도시 교회에 비한다면 농촌교회는 지극히 단순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요구가 있는 것도 아니요 논리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적은 교인이 피곤한 몸으로 참석하여 그나마 피곤을 이기지 못하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 적당히 때워(?) 넘겨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유혹처럼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점이 어렵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려온 사람들이 빛나는 눈빛으로 설교자를 응시하고, 구절구절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으로.. 2020. 10. 20. 무너지는 고향 한희철의 얘기마을(119) 무너지는 고향 단강 아이들과 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자기 꿈 이야기를 돌아가며 했습니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화가, 가수, 군인, 간호사 등 아이들은 차례대로 자기 꿈 얘기를 했습니다. 되고 싶은 게 많아서인지,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인지 대답을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중 미희와 은숙이 얘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4학년 미희와 의사가 꿈이라고 대답했던 6학년 은숙이는 이어진 질문,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미희는 밭에서 담배나 고추를 따고 있을 것이라고 했고, 의.. 2020. 10. 19. 새벽 제단 한희철의 얘기마을(118) 새벽 제단 매일 새벽마다 어김이 없는 두 분이 있습니다. 문 권사님과 지 권사님입니다. 문 권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제단을 닦고, 지 권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종을 칩니다. 그 일은 어김이 없어 멀리 자식 집에 다니러 갔다가도 아무리 늦어도 굳이 돌아오는 것은 그 일 때문입니다. 늙은 과부에 가난하기까지 하니 무엇으로 봉사하겠느냐고 안타까워 할 때, 두 분께 주어진 일이 제단 닦는 일과 새벽종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두 분은 그 일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인양 지성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두 분은 모두 일흔이 넘은 노인들입니다. 그런데다가 두 분은 모두 몸이 불편합니다. 제단을 닦는 문권사님은 관절염이 심하여 걷는 일도 힘들고 무릎을 꿇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제단 닦는 일은.. 2020. 10. 18. 낯선 객 한희철의 얘기마을(117) 낯선 객 산이 불씨를 품었다.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이 골짝 저 능선 붉은 기운이 번져간다. 한꺼번에 펼쳐서는 안 될, 천천히 풀어 놓아야 할 그리움인 냥, 안으로 붉음을 다스린다. 자기 몸을 불살라 가장 눈부신 모습으로 자기를 키운 대지 품에 안기는, 기꺼이 순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보아주는 이, 눈길 주는 이 없어도 뿌리 내린 곳 어디라도 꽃을 피워 올리는 들꽃이 아름답다. 연보랏빛 들국화와 노란 달맞이꽃, 길가 풀섶의 달개비꽃과 강가의 갈대잎, 저마다의 빛깔과 모양으로 피어나 찾아온 계절 대지를 수놓는다. 선선한 바람과는 달리 햇살이 따뜻하다. 한 올 한 올 손에 잡힐 뜻 나뉘어 내리는 햇살이 마음껏 가을을 익힌다. 텃밭에서 통이 커가는 배추하며 알 굵은 무, 산다락 .. 2020. 10. 17. 이전 1 ··· 40 41 42 43 44 45 46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