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사탕 한희철의 얘기마을(116) 사탕 가까운 친구 주명이가 죽은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토요일 오후 우리는 저수지로 향했다. 고기, 우렁, 조개를 잡을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는 곳, 학교에선 가지 말라 금하였지만 철길 넘어 저수지는 어린 우리에겐 얼마나 신나는 곳이었던지. 갈 때마다 그러했듯 그날도 모두들 신나게 놀았다. 저녁 무렵, 집으로 오려고 철교 아래 모였는데 주명이가 보이질 않았다. 오리를 잡는다고 물로 들어갔다는데, 그 뒤론 모두들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주명이를 불렀다. 목이 쉬도록 불렀지만 그는 대답하지도 나오지도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때가 저녁, 통근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친구 한 명과 나는 숨이 멎도록 기차역으로 달려가 퇴근해 돌아오는 주명이 형에게 그 사.. 2020. 10. 16. 오토바이를 버리라고요? 한희철의 얘기마을(115) 오토바이를 버리라고요? 목사님, 먼저 저의 이런 못난 처신을 용서하십시오. 언젠가 목사님은 목사님이 펴내시는 주보를 통해 “그대의 오토바이를 당장 버리시오”라고 호령하신 적이 있습니다. “흙 가운데 살면서, 흙의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어쩌자고 그 괴물을 타고 흙길 가운데를 질풍처럼 달리느냐.”고 하셨습니다. 본시 사람이란 흙 밟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목사님이 주시고자 했던 말씀이셨죠. 이어 보내신 편지에서도 다시 한 번 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흙 같은 가슴들일랑 흙가슴으로 만나야 한다고요. 처음 목회 떠나왔을 땐 말씀대로 걸었습니다. 걸을 수밖에 없기도 했고요. 뱀처럼 늘어진 길을 땀으로 목욕하며 걷기도 했고요, 아픈 아기를 안고 그냥 비를 맞고 걸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2020. 10. 15. 상처 한희철의 얘기마을(114) 상처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힘든 일이지 싶어 저녁 어스름, 강가로 나갔다.모질게 할퀸 상처처럼 형편없이 망가진 널따란 강가 밭, 기름진 검은 흙은 어디로 가고 속뼈처럼 자갈들이 드러났다. 조금 위쪽에 있는 밭엔 모래가 두껍게 덮였다.도무지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아물 길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들.한참을 강가 밭에 섰다가 주르르 두 눈이 젖고 만다. 무심하고 막막한 세월.웬 인기척에 뒤돌아서니 저만치 동네 노인 한분이 뒷짐을 진 채 망가진 밭을 서성인다.슬그머니 자릴 피한다.눈물도 만남도 죄스러워서. - (1991년) 2020. 10. 14. 편지 한희철의 얘기마을(113) 편지 가끔씩 편지를 받습니다. 한낮, 하루 한 번 들리는 집배원 아저씨를 통해 신문을 비롯한 이런 저런 우편물들을 전해 받습니다. 그 중 반가운 게 편지입니다. 신문, 주보 등 각종 인쇄물 또한 적지 않은 읽을거리지만 편지만큼의 즐거움은 되지 못합니다. 찬찬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가슴 속 쌓인 이야기를 전하는 정겨움을 어찌 다른 것에 비기겠습니까. ‘보고 싶은 ㅇㅇ에게’ 그렇게 시작되는 편지를 읽으면 산만했던 내가 하나로 모이고, 잊혔던 내가 되찾아져 맑게 눈이 뜨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어느새 맘속으로 찾아와 더 없이 그리운 사람이 되어 나와 마주합니다. 가끔씩 편지를 씁니다. 군 생활할 때 정한 원칙 중 하나가 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쓰진 못해도 최소한.. 2020. 10. 13. 소 한희철의 얘기마을(112) 소 힘없이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배웅 차 현관에 나와 있는 속장님을 뒤돌아보지 못합니다. 심한 무기력함이 온통 나를 감쌉니다. 가슴은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고 지나가는 이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한낮의 뜨거운 볕이 편했습니다. 그래, 농촌에서 목회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는 갖추고 있어야 해. 돈이 많든지 능력이 많든지, 조소하듯 자책이 일었습니다. 이따금씩 병원을 찾게 되는 교우들, 마을 분들, 병원까지 찾을 때면 대부분 병이 깊은 때고, 긴 날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데 당장 눈앞의 어려움은 병원비입니다. 마음 편히 치료해야 효과도 있다는데 아픈 이나 돌보는 이나 우선 돈이 걸립니다. 아픈 이들은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도록 돕던지, 아니면 아픈 곳 어디라도 손 얹.. 2020. 10. 12. 미더운 친구 한희철의 얘기마을(111) 미더운 친구 부인 자랑이야 팔불출이라지만 친구자랑은 어떨까, 팔불출이라면 또 어떠랴만. 이번 물난리를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건 태어난 지 8개월 된 규민이의 분유가 떨어진 일이었다. 된장국과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반찬이야 그러려니 했지만 당장 어린 것 먹거리가 떨어진 게 적지 않은 걱정거리였다. 얼마 전 모유를 떼고 이제 막 이유식에 익숙해진 터였다. 분유를 구하려면 시내를 나가야 하는데 쏟아진 비에 사방 길이 끊겨버렸다. 안부전화를 건 친구가 그 이야길 듣고는 어떻게든 전할 방법을 찾아보겠노라 한다. 오후가 되어 전화가 왔다. 손곡까지 왔으니 정산까지만 나오면 전할 수 있겠다는 전화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작실로 올라가 산 하나를 넘었다. 길이 끊기니 평소 생각도 않.. 2020. 10. 11. 소리의 열쇠 한희철의 얘기마을(110) 소리의 열쇠 “한희철 목사님”“강은미 사모님”“한소리”“한규민” 저녁 무렵, 마당에서 혼자 놀던 소리가 날이 어두워지자 집으로 들어옵니다. 문이 닫혀 있습니다. 그러자 소리는 닫힌 문을 두드리며 차례대로 식구 이름을 댑니다. 짐짓 듣고도 모른 체 합니다. 소리는 더 큰 목소리로 또박 또박 식구 이름을 다시 한 번 외쳐댑니다. 웃으며 나가 문을 열어줍니다. 소리가 히힝 웃으며 들어옵니다. 손에 얼굴에 흙이 가득합니다. 며칠 전 문을 열어 달라 두드리는 소리에게 아내는 식구 이름을 물었습니다. “누구니?”“소리”“소리가 누군데?”“한소리요.”“아빠가 누구지?”“한희철 목사님”“엄마는?”“강은미 사모님”“동생은?”“한규민” 그제서야 “응 소리가 맞구나” 하며 문을 열어 주었던 것입니.. 2020. 10. 10. 새집 한희철의 얘기마을(109) 새집 새집을 하나 맡았다. 저녁 무렵 교회 뒤뜰을 거닐다 우연히 새집을 찾게 된 것이다. 들로 산으로 나다니기 좋아했던 어릴 적, 우리가 잘했던 것 중 하나는 새집을 찾는 일이었는데, 새집을 찾으면 찾았다고 하지 않고 ‘맡았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쫑긋거리며 나는 새의 날갯짓만 보고도 새집의 위치를 짐작해 낼 만큼 그런 일에 자신이 있었다. 교회 뒤뜰을 거닐 때 새 한 마리가 얼마간 거리로 날아 앉곤 했는데, 부리엔 벌레가 물려 있었다. 제 새끼에게 먹일 먹이가 틀림없었다. 난 사택 계단 쪽으로 지긋이 물러나와 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는 미심쩍은 나를 의식해서인지 여간해선 둥지로 들지 않았다. 그러기를 30여분, 나는 어릴 적 감을 되살려 마침내 새집을 찾아내고야 .. 2020. 10. 9. 틀린 숙제 한희철의 얘기마을(108) 틀린 숙제 은진이가 숙제를 합니다. 맞는 답을 찾아 선으로 연결하는 문제입니다. 1+4, 2+1, 4+3 등 문제가 한쪽 편에 있고 3,5,7 등 답이 한쪽 편에 있습니다. 은진이는 답을 찾아 나란히 선을 잊지 못합니다. 답이 틀린 게 아닙니다. 찍찍 어지러운 선으로 은진이는 아예 그림을 그렸습니다. 불안기 가득한 커다란 두 눈 껌뻑이며 아직 말이 서툰 1학년 은진이. 은진이의 숙제를 보며 마음이 아픈 건 우리 삶 또한 수많은 관계와 관계, 만남과 만남, 과정과 과정으로 연결된 것일 텐데, 은진이의 경우 그 모든 것들을 차분히 잇지 못하고 어지러이 뒤엉키고 말 것 같은 걱정 때문입니다. 휑하니 무관심 속에 버려진, 누구하고도 나란히 선으로 연결되지 못한 은진이.은진이가 틀린 숙.. 2020. 10. 8. 이전 1 ··· 41 42 43 44 45 46 47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