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효험 있는 청소 한희철의 얘기마을(107) 효험 있는 청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동구 밖과 집, 지집사님은 연신 동구 밖과 집을 왔다 갔다 합니다. 종종걸음으로 동구 밖으로 나와 신작로를 바라보다가 누가 부르기라도 한 듯 다시 집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그런 집사님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부천에 나가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교제하는 여자와 인사드리러 온다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집과 동구 밖을 오가는 것으로 봐선 집사님은 집 아궁이에 찌개를 올려놓은 게 분명합니다. 오랜만에 오는 아들도 아들이지만 새 며늘아기 될 아가씨에게 오는 대로 따뜻한 상을 차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녁 해가 기울고 산 그림자를 따라 땅거미가 깔릴 때에야 기다리던 아들과 예비며느리가 왔습니다. 첫 번째로 부모님을 찾아뵙는 떨림과 부끄러움.. 2020. 10. 7. 어디까지 떠밀려야 한희철의 얘기마을(106) 어디까지 떠밀려야 어렵게 한 주일이 갔습니다. 작은 농촌엔 별다른 일도 드물어 그저 그런 일들이 꼬리 물 듯 반복되곤 했는데, 이번 주 있었던 두 가지 일들은 무척이나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봉철이가 퇴학을 맞았습니다. 막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한참 신나게 공부하고 뛰어놀 때인 중학교 1학년. 봉철이가 더 이상은 학교를 못 다니게 되었습니다. 며칠인지도 모르고 계속 결석을 했던 것입니다. 공부가 싫다고, 학교 가기 싫다고 봉철이는 아침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는 했습니다. 그걸 안 주위 분들이 야단도 치고 달래기도 하면서 노력했지만 끝내 봉철이 마음을 학교로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봉철이가 야단을 맞을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 아픈 데가 없지는 않습니다. 돌아가.. 2020. 10. 6. 망초대 한희철의 얘기마을(104) 망초대 지집사가 또 울먹이며 기도를 했다. 며칠인지 모르고 장마가 지고 또 빗속 주일을 맞아 예배드릴 때, 지집사 기도는 눈물이 반이었고 반은 탄식이었다. “하나님 모든 게 절단 나고 말았습니다. 무 당근은 썩어가고, 밭의 깨는 짓물러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불어난 물에 강가 밭이 잠기기도 했고, 그칠 줄 모르는 비, 기껏 자라 팔 때가 된 당근이 뿌리부터 썩기 시작해 팔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제법 많은 당근 밭을 없는 선금 주고 미리 사들인 부론의 오빠가 몸져누운 데다가, 송아지 날 때가 지났는데도 아무 기미가 없어 알아보니 새끼를 가질 수 없는 소라는 우울한 판정을 받은 것이 곡식 절단 난 것과 맞물려 지집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2020. 10. 5. 끊어진 이야기 한희철의 얘기마을(103) 끊어진 이야기 옛날, 어떤 사람이 소를 잃어버렸어요. 소가 여간 귀해요? 큰일 났다 싶어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으러 다녔죠. 어떤 동네에 이르러 보니 저기 자기 집 소가 있더래요. 어떤 집 외양간에 매어 있는데 분명 자기 소더래요. 집주인을 만나 사정 얘기를 하고선 소를 돌려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집주인이 펄쩍 뛰더래요. 우시장에서 사왔다는 것이죠. 문제가 시끄럽게 되자 할 수 없이 관청에 알리게 되었는데, 소는 한 마리에 서로가 주인이라니 소더러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한 일이었죠. 그런데 원님이 참 지혜로웠어요. 소에 쟁기를 매게 하고선 한 사람씩 소를 부려보라 한 거예요. 자기 외양간에 소를 매 놓은 사람이 “이랴, 이랴” 아무리 소를 부려도 소가 꿈쩍도 않더래요. 회초리로.. 2020. 10. 4. 벼 한희철의 얘기마을(102) 벼 하나 둘벼가고개를 숙인다. 고맙다고하늘 향해절을 한다. 절 하나하나가무겁다. - (1993년) 2020. 10. 3. 광철 씨 한희철의 얘기마을(101) 광철 씨 지난 가을의 일입니다. 아침부터 찬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김남철 씨가 회사로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지난해 마을 보건소장님과 결혼한 김남철 씨는 원주에 있는 한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트럭을 몰고 출퇴근을 합니다. 강가 길을 신나게 달려 조귀농 마을로 접어들 때였습니다. 앞에 누군가 비를 맞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기도 했고 빗속 우산도 없이 누가 웬일일까 싶어 차를 세웠습니다. 보니 광철 씨였습니다. 마른 몸매의 광철 씨가 그냥 비를 맞아 온 몸이 젖은 채로 걸음을 멈췄습니다. 광철 씨는 일을 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전날 무 뽑는 일을 하겠다고 일을 맞췄던 것입니다. 그만한 비라면 일이 미뤄질 만하고, 안 가면 비 때문이려니 할 텐데,.. 2020. 10. 2. 강가에서 한희철의 얘기마을(100) 강가에서 점심상을 막 물렸을 때 어디서 꺼냈는지 소리가 사진 한 장을 들고 와서는 “아빠, 바다에 가자.” 하고 졸랐습니다. 무슨 얘긴가 싶어 사진을 봤더니 언젠가 강가에 나가 찍은 제 사진이었습니다. 이제 두 돌이 지난 소리는 아직 강과 바다를 구별 못합니다. 얼핏 내다본 창 밖 봄볕이 따사롭습니다. “좋아, 가자.” 신이 난 소리가 벌써 신발을 챙겨 신고 문을 나섭니다. 아내가 규민이를 안고 나섰습니다. 흐르는 냇물을 따라 강가로 갑니다. 냇물 소리에 어울린 참새, 까치의 지저귐이 유쾌하고, 새로 나타난 종다리, 할미새의 날갯짓이 경쾌합니다. 서울에서 있는 결혼식에 대부분의 마을 분들이 올라간 탓에 그 넓은 강가 밭이 모처럼 한적합니다. 파란 순이 돋아 나온 마늘밭이 당근 .. 2020. 10. 1. 아픈 만큼 따뜻하게 한희철의 얘기마을(99) 아픈 만큼 따뜻하게 끝내 집사님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애써 웃음으로 견디던 감정의 둑이 한 순간 터져 엉엉 울었다. 고만고만한 보따리 몇 개 좁다란 마루에 쌓아놓고 무릎 맞대고 둘러앉아 드린 이사 예배.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고 집사님 손 아무 말 없이 잡았을 때, 집사님은 잡은 손을 움켜쥐곤 바닥에 쓰러져 둑 무너진 듯 울었다. 그렇게 울고 떠나면 안 좋다고, 옆의 교우들 한참을 달랬지만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쓰리고 아린 세월. 잠시라도 약해지면 무너지고 만다는 걸 잘 알기에 덤덤히, 때로는 우악스럽게 지켜온 지난날의 설움과 아픔이 막상 떠나는 시간이 되어선 와락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것이다. 어린 아들 데리고 하루하루 고된 품을 팔아 끊어질 듯 이어 온 위태했던 삶,.. 2020. 9. 30. 이상한 마라톤 한희철의 얘기마을(98) 이상한 마라톤 단강으로 목회를 떠나올 때 몇몇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첫 목회지이기도 하고 첫 목회지가 농촌이기도 한지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중 아직도 기억하는 말이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다’라는 말입니다. 농촌목회를 하고 있던 한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농촌목회를 마라톤에 빗대었습니다. 단거리는 잠깐만 뛰면 되니까 있는 힘을 다한다, 그렇지만 마라톤은 다르다, 한참을 뛰어야 한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이 체력안배다, 무엇인가를 단 번에 해내려고 덤비다간 자칫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만다, 그런 뜻이었습니다. 햇수로 4년, 그동안 농촌에서 목회를 한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다’라는 말은 .. 2020. 9. 29. 이전 1 ··· 42 43 44 45 46 47 48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