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거참, 보기 좋구나 한희철 얘기마을(150) 거참, 보기 좋구나 아침부터 어둠이 다 내린 저녁까지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자기 차례가 돌아왔다. 한 사람 끝나면 또 다음 사람, 잠시 쉴 틈이 없었다. 파마를 하는 분도 있었고 머리를 다듬는 분도 있었다. 노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에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했다. 난로 위에서 끓는 산수유차가 들썩들썩 신이 났다. 원주 선미용실의 서명원 청년, 미용실은 한 달에 두 번 쉰다고 했다. 그 쉬는 날 중의 하루를 택해 아침 일찍 단강을 찾아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마을 분들을 위해 머리손질 봉사를 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 결코 깨끗하다 할 수 없는 다른 이의 머리를 만져야 하는 일, 늘 하던 일을 모처럼 쉬.. 2020. 11. 21. 따뜻한 만남 한희철 얘기마을(149) 따뜻한 만남 모든 진료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 군의관은 찬찬히 하루 동안의 안타까움을 말했습니다. 진료를 받은 마을 분들의 대부분이 전해 드린 몇 알의 약만으론 해결되기 어려운 병이었다는 것입니다.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진찰과 치료가 필요한 분들인데, 공연히 허세나 부린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했습니다. 그러나 압니다. 그런 하루의 시간이 고마운 게 단지 병명을 짚어주고 몇 알 약을 전해준 데 있지는 않습니다. 쉽지 않은 훈련을 마쳐 피곤할 텐데도 귀대를 앞두고 하루의 시간을 마을 주민을 위해 할애한 그 마음이 무엇보다 고마운 것입니다. 그저 논밭이나 망가뜨리고 당연한 듯 돌아서곤 했던 해마다의 훈련인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대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고마웠던 것입니.. 2020. 11. 20. 승학이 엄마 한희철 얘기마을(148) 승학이 엄마 교회 바로 앞에 방앗간이 있습니다. 단강이 얼마나 조용한 동네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방앗간입니다. 평소엔 몰랐던 단강의 고요함을 방아 찧다 멈춘 방앗간이 가르쳐줍니다. 방아를 멈추는 순간 동굴 속 어둠 같은 고요가 시작됩니다. 익숙해진 덕에 많이는 무감해졌지만 그래도 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한 건 사실입니다. 얼마 전 승학이 엄마를 만났더니 미안하다고 합니다. 미안한 일이 없을 텐데 뭐가 미안할까 싶어 물으니, 이틀 전인 주일날 예배시간에 방아를 찧었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피하려고 했는데 손님의 다급한 청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이야기한 지난 주일만 해도 별 불편함 없이, 아니 아무런 불편함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 2020. 11. 19. 한 줌 진실 한희철 얘기마을(147) 한 줌 진실 장에 다녀오는 길, 단강으로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듣게 된 이웃마을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이필로 속장님이 전했습니다. 기름 한 종지 더 얻자고 개치(부론)까지 갔다가 결국은 한 종지만 얻게 됐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옆자리에서 이야길 듣던 중년신사가 “아, 그것 참 재미난 얘기네요. 아주머니, 그 얘기 차근차근 다시 한 번 해 보세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얘길 글로 쓰면 좋은 글감이 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웃음이 다시 터졌던 건 속장님이 “우리 목사님 같은 분이 또 있드라구요, 글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헛간에 걸어놓은 못쓰게 된 살림 도구들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싶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 이야기를 시시.. 2020. 11. 18. 굽은 허리 한희철 얘기마을(146) 굽은 허리 변관수 할아버지의 허리가 더 굽었습니다. 곧은 ‘ㄱ’에서 굽은 ‘ㅈ’ 모양이 되었습니다.저렇게 저렇게 허리가 굽어 굽은 허리가 땅에 닿을 때쯤이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말 할아버지.땅에 닿을 듯한 허리로 할아버지가 길을 갑니다. - (1992년) 2020. 11. 17. 객토작업 한희철 얘기마을(146) 객토작업 객토작업을 합니다. 차라리 탱크를 닮은 15톤 트럭이 흙을 싣고 달려와선 논과 밭에 흙을 부립니다.땅 힘을 돋는 것입니다. 땅에도 힘이 있어 몇 해 계속 농사를 짓다보면 땅이 지치게 되어 지친 땅 힘을 돋기 위해 새로운 흙을 붓는 것입니다. 트럭이 갖다 붓는 검붉은 흙더미가 봉분처럼 논과 밭에 늘어갑니다. 객토작업을 보며 드는 생각 중 그중 큰 것은 고마움입니다. 그건 땅에 대한 농부의 강한 애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농사가 천대받고 농작물이 똥값 된다 해도, 그렇게 시절이 어렵다 해도 끝내 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는 땀 흘려 씨 뿌리겠다는 흙 사랑하는 이의 눈물겨운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흙먼지 날리는 객토작업을 불편함보다는 든든함과 고마움으로 바라봅니다. - (1.. 2020. 11. 16. 사랑의 안마 한희철 얘기마을(145) 사랑의 안마 어디서 배웠는지 어느 날 소리가 내 등을 두드립니다. 도닥도닥, 작은 손으로 아빠 등을 두드리는 어린 딸의 손길이 여간 정겹지를 않습니다. “어, 시원하다.” 한껏 딸의 수고를 칭찬으로 받아줍니다. 그 뒤로 소리는 이따금씩 등 뒤로 와서 내게 묻습니다. “아빠, 더워요?” - (1992년) 2020. 11. 15. 종일이 할머니 한희철 얘기마을(144) 종일이 할머니 김 집사님이 아파 심방을 갔더니 종일이 할머니가 와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종일이 할머니가 고맙다고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합니다. 지난 단강초등학교 졸업식에 종일이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부론중학교에서 올 입학생부터 입게 되었다는 교복 값이 없어 당신 혼자 맘고생이 많았는데 종일이가 뜻하지 않은 장학금을 타서 걱정을 덜었다는 것입니다. 일흔여덟,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쁜 몸으로 손자 셋을 돌보시는 할머니, 아들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며느리는 어디론가 새살림을 나가고, 그래서 할머니가 손주들을 돌봅니다. 모두가 한창 먹을 때고 한창 개구질 때입니다. ‘부모 읍는 자식 소리 안 듣길려구’ 찬이며 빨래며 할머닌 ‘아파도 아픈 .. 2020. 11. 14. 선아의 믿음 한희철 얘기마을(143) 선아의 믿음 이젠 선아도 무릎을 잘 꿇습니다. 심방을 가 처음 예배를 드릴 때만 해도 안 꿇리는 무릎 꿇느라 벌어진 두 발을 손으로 잡아당겨 끙끙 애쓰더니, 이젠 무릎 꿇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선아는 꼭 목사인 제 흉내를 냅니다. 무릎 꿇는 것부터 찬송 부르는 모습까지, 말씀을 전할 때의 손 모양까지를 그대로 따라 합니다. 요즘엔 저녁에 식구들이 모여 있으면 저 혼자 성경 찬송을 갖고 나와 책을 펼쳐들곤 흥흥 찬송도 부르고 뭐라고 뭐라고 설교도 합니다. 그러면 온 집안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식구들이 선아의 그런 모습을 ‘아멘’으로 받아 주기도 합니다. 선아가 교회에 나온 건 연초 새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엄마, 아빠를 따라서입니다. 처음엔 엄마 품에 안겨 교회에 .. 2020. 11. 13.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