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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힘든 기도 한희철의 히루 한 생각(199) 힘든 기도 어디 기도를 평한다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만, 힘든 기도를 들었다. 그것은 기도라기보다는 서툰 훈계에 가까웠다. 내용도 그랬고, 어투도 그랬다. 불만의 나열이었고, 결국은 자기 과시와 다르지 않았다. 기도를 들으면서도 저게 기돌까,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30여 년 세월이 지났지만 내게는 단강의 한 할머니 집사님이 드리던 기도가 여태 남아 있다. 그분은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다. “삼시 세끼 밥만 먹으면 되는 줄 아는 우리에게, 으트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옵소서.” 2019. 7. 24.
토마토 한 조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00) 토마토 한 조각 언젠가부터 교우 가정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심방을 할 때면 몇 가지 지키는 원칙이 있다. 감사헌금을 할 이는 교회에 하도록 권한다. 심방을 감사하여 헌금을 드리는 것은 좋으나, 심방을 받는 상에 올려놓는 모습이 썩 흔쾌하게 여겨지질 않거니와, 혹 헌금을 드릴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마음이 힘든 일일까 싶기 때문이다. 헌금을 드릴 마음이 있는 이들은 교회 예배시간에 드릴 것을 권한다. 또 하나, 최소 인원으로 찾아간다. 마음속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기 위해서이다. 어렵게 나눈 기도제목이 금방 소문으로 번지는 일은 드물지 않다. 어렵게 마음속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소문으로 번지면 어느 누가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지키는 원칙 중에는.. 2019. 7. 23.
빨랫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8) 빨랫줄 에 담긴 이정록 시인의 ‘빨랫줄’을 설교 시간에 인용했다. 글을 읽으며 피식피식 웃음이 났던 글이었다. 빨랫줄은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 네가 오줌 싼 이불을 버틸 만한 힘줄이면 되지. 전봇대는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 네가 오줌 쌀 때, 고추를 감출 만한 굵기면 되지. 철로는 얼마큼 굵으면 될까요? - 네가 엿 바꿔 먹으려 할 때, 둘러멜 수 없는 무게면 되지. ‘빨랫줄’을 소개하며 운율은 맞지 않지만, 질문 하나와 대답 하나를 보탰다.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무거우면 될까요? - 헛된 욕심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무거우면 되지. 2019. 7. 23.
날을 벼린다는 것 한희철의 히루 한 생각(197) 날을 벼린다는 것 우연히 접한 이야기가 있다. 한 스승이 두 제자에게 칼을 한 자루씩 주며 날을 벼리라고 했다. 잘 벼리는 자를 후계자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두 제자는 열심히 칼날을 갈았다. 마침내 검사를 받는 날이 되었다. 한 제자가 갈은 칼은 얼마나 예리한지 바람에 스치는 옷깃마저 베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제자가 내민 칼은 전혀 달랐다. 스승이 처음 내줄 때보다도 더 무디어진 뭉뚝한 날을 가진 칼을 내놓았던 것이다. 스승은 무딘 날을 가진 칼을 내놓은 제자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는 칼을 갈다가 칼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를 깨닫고 일부러 날을 무디게 만든 것이었다. 얼마든지 더 나갈 수 있지만 스스로를 삼가 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 날을 벼린다는 것의 진정한 의.. 2019. 7. 22.
불씨 지키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6) 불씨 지키기 오래전 읽은 책 중에 가 있다. 러시아 장교인 아르세니에프가 당시 지도상의 공백 지대로 남아있던 극동 시베리아 시호테 알린 산맥 지역을 탐사하며 탐사의 결과를 자세하게 남긴 책이다. 미답의 땅을 탐사하며 만난 대지의 속살이 아름답고도 장엄한 모습으로 담겨 있다. 오지 탐사가 우리의 경험이나 관심과는 무관한 일인 데다 지역 또한 낯선 곳이어서 무덤덤하게 읽히는 대목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 숨은 비경처럼 담겨 있었다. 탐사 지역은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오지, 워낙 추운 지역이고 날씨 또한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탐사를 위해서는 각종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겨야만 했다. 그것은 탐사의 성공 여부를 떠나 생존과 관련된 일이어서.. 2019. 7. 21.
사랑이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5) 사랑이란 새 한 마리가 날면 그림자가 따라간다. 아무도 모르게 날아가는 새도 모르게 그림자가 따라간다. 단숨에 산을 넘기도 하고, 오래도록 강물을 따라가기도 한다. 건물에 부딪치기도 하고 전깃줄이나 거미줄에 걸리기도 하고 하수구에 빠지기도 하지만 말없이 따라간다. 흐린 날엔 아예 사라져서 따라간다. 어디선가 새가 날개를 접으면 슬며시 하나가 된다. 어둠 속 새가 잠이 들면 혼자 잠들지 마라 새와 함께 잠에 든다. 사랑이란! 2019. 7. 20.
어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4) 어찌 지난 번 강화남지방 연합성회에 말씀을 전하러 갔을 때였다. 집회 중 한 젊은 목사님이 찾아와 인사를 했다. 낯이 아주 설지는 않은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을까, 그가 이야기를 했다. “몇 년 전 이웃에 있는 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오셨을 때 집회에 참석을 했다가 은혜를 받고 가실 때 포도 한 상자를 전해드린 적이 있지요.” 사진/한남숙 이럴 수가! 나는 이웃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왔던 일도, 그가 정성껏 포도를 전한 일도 따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강화도를 찾은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희미하게 고개를 드는 기억이라니. 분명 나는 포도를 받을 때만 해도 정말로 고맙게 받았을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자랑 삼아 .. 2019. 7. 19.
조선적(朝鮮籍)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3) 조선적(朝鮮籍)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는 도서관 에 다녀왔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열리는 ‘윤동주 시와 함께 하는 한일교류 한글 서예축제’를 보기 위해서였다. 홍순관 집사님의 작품과 일본 오카야마 조선학교 학생들의 서예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글씨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무얼 알까만 홍 집사님의 한글 글씨 속엔 자유로움과 멋이 그럴 듯이 깃들어 있지 싶다. 언뜻언뜻 장일순도 보이고, 추사도 느껴진다. 어느덧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져 글씨가 곧 사물을 담아낸다. 글씨와 사물의 경계가 지워져 하나로 만나는 지점에 가깝다 싶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나무’라는 글씨를 봐도 그랬다. 내 방에도 걸려 있는 ‘나무’라는 글씨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나무’다... 2019. 7. 17.
대척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2) 대척점 정해진 성서일과를 따라 지난 주일에 나눴던 말씀은 누가복음서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였다. 몇 가지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신앙생활을 한 뒤로 오늘 이 본문에 관한 말씀을 우리는 몇 번이나 들었을까요? 수십 번, 수백 번 아닐까요? 그런데도 어찌 우리 삶은 이 말씀과의 거리를 여전히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교단에서 발행하고 있는 자료집 를 보니 위의 본문을 두고 ‘신앙인과 종교인’이라는 제목으로 자료를 담고 있었다. 어떤 지점에서는 생각이 비슷한가 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본문을 생각할 때면 같은 제목이 떠오르곤 했다. 신앙인과 종교인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단어가 갖는 의미로 보자.. 2019.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