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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시(詩)와 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1) 시(詩)와 밥 원고를 쓰다가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일이 있다. 이태 전쯤이었나, 독서캠프에 참석을 했을 때의 일이다. 장로님 한 분이 운전을 하며 동행을 해주셨다. 길은 멀어도 함께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임 장소에 도착을 했을 때는 막 점심식사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누가 독서캠프 아니랄까 그런지 시 하나를 외워야만 밥을 준다는 것이었다. 수련회에 가서 성경구절을 외우지 못하면 밥을 안 주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시를 외워야 밥을 먹는 모임은 처음이었다. 엄격함과는 거리가 먼 기쁨지기가 검사를 하는 것이어서 크게 부담이 될 것은 없었는데, 그래도 맘에 걸렸던 것이 장로님이었다. 장로님이 외우는 시가 따로 .. 2019. 7. 16.
버릴 수 없는 기억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90) 버릴 수 없는 기억 교우들 가정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대심방이 진행 중이다. 어제는 따로 시간을 내어 요양원에서 지내는 어른들을 찾아갔다. 한 때는 정릉교회에 출석을 했지만 이제는 연로하여 요양원에서 지내는 몇 몇 어른들이 있다. 연세로나 건강으로나 더 이상 그분들이 교회를 찾는 일은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심방 중에 찾아뵙는 것은 도리다 싶었다. 북한산 인수봉 아래에 자리 잡은 요양원은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공기도 맑게 느껴졌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만난 권사님은 착한 치매가 찾아온 분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신 권사님은 얌전히 의자에 앉아 무엇을 물어도 가만 웃으시며 짧은 대답만을 반복하실 뿐이었다. 권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권사.. 2019. 7. 11.
귀한 방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9) 귀한 방석 권사님 집을 찾아가는 골목길은 차 하나가 지나가기에도 좁아보였다. 도중에 차끼리 만나면 누군가는 진땀을 흘리며 후진을 해야 할 듯했다. 운전을 한 전도사님이 차를 세우는 동안 한쪽에 서서 기다리는데, “어서 오세요” 하며 다가오시는 분이 있다. 마중을 나온 권사님이었다. “제가 사는 집은 이래요.” 권사님은 그렇게 인사를 하며 집으로 들어섰지만, 권사님 성품을 닮아서인지 집안은 깨끗했고 단정했다. 미리 준비해 놓으신 상 주변으로 앉았다. 상 주변으로 방석까지를 가지런히 깔아 두셨다. 예배를 드리기 전 마주앉으신 권사님을 바라보며 가만 웃었던 것은 권사님이 나를 보며 빙긋 웃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권사님이 한 마디를 하신다. “목사님이 앉으신 방석은 .. 2019. 7. 11.
눈여겨보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8) 눈여겨보면 동네 골목은 재미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심방 길에 동네 골목에서 만난, 전봇대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목도 없이 네 줄이었는데 마치 운율을 맞추듯 첫 글자가 모두 ‘개’로 시작되었다. 개 주인은 개 때문에 개 망신 당하지 말고 개 똥 치우시오 단조롭고 시시해 보이지만 눈여겨보면 동네 골목에는 전봇대에도 시가 걸려 있다. 2019. 7. 11.
파격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7) 파격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아무리 광고 시간이라 하여도 주일 예배시간에 일상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튼다는 것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광장,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있는 한 사람 앞에서 한 소녀가 리코더를 연주하는 일로 영상은 시작이 된다. 검은 안경을 쓴 채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있는 이는 소녀의 연주를 받아 세상의 모든 음을 떠받치고도 남을 것 같은 저음으로 연주를 하고, 그러는 사이 평상복을 입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씩 자신의 악기를 들고 모여들어 연주에 참여를 한다.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마침내 누가 합창단원인지 일반 시민인지 구별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이 합창에 동참을 한다.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광장에 둘러선 많은 사람들은 자.. 2019. 7. 11.
태워버려야 할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8) 태워버려야 할 것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로 다가온 이가 허준이다. 허준과 유의태 사이에 있었던 일 중에는 다음가 같은 일이 있다. 유의태 문하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허준에게 뜻밖의 일이 주어진다. 창녕에 사는 성대감의 아내 정경부인 심씨의 병을 고치라는 유의태의 분부였다. 용하다는 숱한 의원들이 찾았다가 하나같이 손도 쓰지 못하고 포기했을 정도로 부인의 병은 깊고 위중한 상태였다. 양반 중에서도 양반인 권세 어린 대감집 인지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유의태는 허준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아들 도지 대신 겨우 십여 명의 병자를 돌보았을 뿐인 의가의 풋내기 허준을 보낸다. 대감의 권세에 굴하지 않는 단호한 처신과 지극한 정성으로 허준은 불가능해.. 2019. 7. 9.
도대체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7) 도대체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은 물이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화학물질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은 프랑스의 화학자인 앙투안 라부아지에였단다. 1783년 라부아지에가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크게 놀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대로 물이 세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물질인 원소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놀란 사람은 그런 사실을 알아낸 라부아지에 자신이었다고 한다. 수소는 불을 붙이면 폭발하는 기체이고 산소 역시 불에 무섭게 타는 기체, 그러나 이 둘이 결합하면 불을 끄는 물이 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았을 때 라부아지에는 자연의 신비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구의 70퍼.. 2019. 7. 8.
이제 우리 웃자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6) 이제 우리 웃자고 도대체 웃을 일이 없어, 그보다 쓸쓸한 말이 어디 있을까. 쓸쓸한 말이 어디 한둘일까만, 그보다 더 쓸쓸한 말이 무엇일지 모르겠다. 도무지 웃을 일이 없던 한 사람이 있었다. 다 늙도록 아기를 낳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생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아기가 없다는 것이 웃음을 잃어버린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이유라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숨은 이유도 있다. 내게 주셨던 주님의 약속이 소용없어지고 만 것이다. 너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겠다고 했던 빛나는 약속이었다. 모래알은커녕, 별들은커녕 단 한 명의 자녀도 태어나지를 않았던 것이다. 기대도, 가능성도, 어쩌면 믿음까지도 닫히고 말았.. 2019. 7. 7.
밝아진 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5) 밝아진 눈 사고라고 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다가 입은 사고라 했다. 사고를 직감하고 현장으로 달려갈 때 하필이면 뜨거운 주물이 눈으로 튀었다는 것이다. 한창 젊은 나이에, 한순간에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자 상실감일까. 단지 두 눈의 시력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기는, 자칫 영혼의 시력까지 빼앗아가는 난폭하고 거친 상실이었을 것이다. 연합성회를 앞두고 후배 목사는 그 교우에게 참석을 권하며 강사에 대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고 한다. 시를 쓰는 목사라고. 자신의 인생에 느닷없이 찾아온 절망을 문학적인 관심으로 이겨내려는 그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집회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가 참석을 했.. 2019.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