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씁쓸한 뒷모습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6) 씁쓸한 뒷모습 토요일 오후, 설교를 준비하던 중 잠시 쉴 겸 밖을 내다보는데 예배당 바로 앞 공터에 누군가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한 부인이 원예용 부삽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공터에 꽃씨를 심는 줄 알았다. 교인이 아닌 이웃이 교회 앞 공터에 꽃씨를 심는다면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 찾아가서 인사를 해야지 싶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부인 옆에는 화분이 있었는데, 화분에 흙을 채우고 있었다. 마당이 없는 이가 화분에 흙을 채우기 위해 왔구나 싶었고, 설교준비를 이어갔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이제는 갔을까 싶어 다시 내다보니 부인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부인은 조금 전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흙을 채운 .. 2020. 3. 25. 그러거나 말거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5) 그러거나 말거나 정릉교회 담장을 따라 영춘화가 환하게 피어났다. 오가는 사람들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다. 우리가 모르는 이름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영춘화를 모르는 이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이 꽃이 무슨 꽃이지?”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라, 개나리가 벌써 피었네!” 세상 어수선하다고 미루지 않는다. 자기 이름 모른다고 찡그리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꽃은 꽃으로 핀다. 꽃이기에! 2020. 3. 24. 하이든과 수채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4) 하이든과 수채화 며칠 전 지강유철 전도사님이 지인과 함께 정릉을 찾았다. 지난번 신앙강좌 시간을 통해 장기려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이 있었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전해들고 가방에 여러 개의 시디를 챙겨왔으니 나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걸음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둘러앉아 챙겨온 음악을 들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가의 삶과 음악에 담긴 이야기, 연주자나 지휘자에 얽힌 이야기,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네 삶과 정치 교회와 신앙 혹은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으면서도,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이태준 생가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이야기는 내내 이어졌다. .. 2020. 3. 23. 재주껏 행복해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3) 재주껏 행복해라 토요일 아침, 목양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일 아침 9시에는 교직원 기도회가 있다. 기도회로 모이는 새가족실로 향하는데, 저만치 보니 문이 닫혀있고 불도 꺼져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모두들 모여 기도회를 준비할 때, 이게 뭐지 싶었다. 내가 시간을 잘못 확인하고 내려왔나 싶어 시계를 보니 9시가 맞다. 설마 오늘이 나만 모르는 공휴일인가 하는 생각도 지났지만 다른 날도 아닌 토요일, 오히려 중요한 날이다. 아무 것도 짚이는 것이 없었다. 다들 늦을 리는 없을 텐데 갸우뚱 하며 새가족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노래가 울려 퍼졌다. “생일 축하합니다!”, 교직원들이 둘러서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저만치 내가 늘 안는 자리 앞에는 촛불이 켜진.. 2020. 3. 22. 경솔과 신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2) 경솔과 신중 가능하다면 경솔하지 말아야 한다. 기민해 보여도 즉흥적이기 쉽고, 활달한 것 같아도 중요한 놓치기가 쉽다. 신중한 것은 좋은 일이다. 삼갈 신(愼)에 무거울 중(重), 사전에서는 신중을 ‘썩 조심스러움’이라 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는 것은 모자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법, 지나친 신중함은 좋을 것이 없다. 신중함이 지나쳐서 때를 놓치거나 당연한 일을 미루다가 아예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신중함은 또 다른 형태의 경솔함일 수 있다. 지나친 신중함으로 경솔의 길을 걷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나친 신중함으로 경솔의 길을 택하는 것은, 그것이 위험부담이 가장 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20. 3. 21. 겸손하다는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1) 겸손하다는 것 ‘겸손’(humility)이라는 말은 ‘흙’에서 온 말이다. 흙을 의미하는 라틴어 ‘humus’에서 왔다. ‘humus’와 같은 뿌리를 가진 말이 있는데, ‘유머’(humor)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흙이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줌의 흙에서 와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안다. ‘謙遜’은 ‘겸손할 겸’(謙)과 ‘겸손할 손’(遜)이 합해진 말이다. 조금만 겸손을 떠나면 겸손일 수 없다는 듯이. 겸손의 바탕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믿음이 얼마든지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겸손할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판단하거나 말하지 않는다. 겸손할 때 우리는 웃을 수 있다. 2020. 3. 20. 어떤 경우에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0) 어떤 경우에도 목회의 길을 걸으며 예수님을 통해 잊지 않으려 명심하는 것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수단이나 도구화 하지 않는 것이다.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그를 집으로 보낸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데리고 다니며 간증을 시키지 않았다. 그랬다면 복음을 전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텐데 말이다. 한국 사회에 혼란과 고통을 가중한 이단과 사이비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수단이나 도구로 삼지 않는 것 말이다. 한국교회는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느냐 물으면 할 말이 없긴 매한가지지만. 2020. 3. 19. 사랑은 흔들리는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9) 사랑은 흔들리는 것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목회를 하면서 잊지 않으려 하는 생각 중에는 그런 생각도 있다. 폐교를 앞둔 단강초등학교 아이들과 미국을 다녀오기로 한 것은 마지막 파티를 요란하게 갖기 위함이 아니었다. 외진 시골학교의 문을 닫고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라 여겨졌다. 아무리 생각이 좋아도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처음 들은 아내가 당황하며 당신 숨겨둔 돈이 있느냐 물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없었다. 작은 시골교회 목사가 무슨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 2020. 3. 18. 어려울 때 못하면 넉넉해도 못한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8) 어려울 때 못하면 넉넉해도 못한다 잠시 장로님들과 모임을 가졌다. 며칠 전 기도하던 중에 들었던 생각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때, 비전교회(미자립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싶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예배도 드리지 못한 채 월세를 내야 한다면, 그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릉교회가 속한 성북지방 안의 미자립교회가 13개 교회, 한 교회당 100만원씩을 전하려면 1300만원이 필요했다. 사석에서 이야기를 들은 교우가 300만원과 100만원을 전해주었으니 900만원만 더 보태면 될 일이었다. 좋은 일을 하자는데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좋은 일을 의논할 때에.. 2020. 3. 17. 이전 1 ··· 63 64 65 66 67 68 69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