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뻥튀기 공장 한희철의 얘기마을(177) 뻥튀기 공장 신작로께 마을 입구에 있던 단무지 창고가 과자 공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단무지를 절이던 창고가 과자 공장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과자 공장을 운영하던 이가 단무지 창고를 사 이사를 온 것입니다. 공장이래야 거창한 것이 아닌 뻥튀기를 튀기는 일이지만 나란히 줄맞춰 놓은 기계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튀긴 뻥튀기는 또 기계를 따라 봉지에 담는 곳까지 자동으로 운반되니, 공장은 분명 공장입니다. ‘뻥!’ 하는 뻥튀기 소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간식 삼아 싼 값에 뻥튀기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장 앞에 켜놓은 불이 마을로 들어서는 어둔 길을 비춰줘 밤마다 전에 없던 불빛이 고맙기도 하지만, 과자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며 그 중 반가웠던 건 마을에 사.. 2020. 12. 19. 할머니의 합장 한희철의 얘기마을(176) 할머니의 합장 한 달에 한 번씩 헌금위원이 바뀝니다. 헌금위원은 헌금시간이 되면 예배당 입구에 있는 헌금함에 담긴 헌금을 헌금 바구니에 담아 제단에 바치는 일을 합니다. 지난 달 헌금위원은 허석분 할머니였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사이 할머니는 헌금함에 담긴 헌금을 바구니에 담아 제단으로 가져 왔습니다. 할머니가 전하는 바구니를 받던 나는 뜻하지 않은 할머니 모습에 순간적으로, 아주 순간적으로 놀라기도 했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헌금 바구니를 제단에 선 목사에게 전한 후 할머니는 두 손을 지긋이 모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던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지났던 건 그런 할머니 모습 대하는 순간 나도 할머니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었던, 나도 몰랐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머리 숙.. 2020. 12. 18. 빛 한희철의 얘기마을(175) 빛 “한 쪽 눈을 빼서 주겠다고, 그것도 좋은 쪽 눈을 빼서 주겠다 했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오원례 성도님은 약해진 눈에는 안 좋다는 눈물을 연신 흘리며 계속 그 얘기를 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해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와 드리는 심방 예배를 마쳤을 때, 어려웠던 순간을 회고하던 이상옥 성도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내의 시력을 걱정하자 얘길 듣던 오원례 성도님이 끝내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당뇨 후유증으로 생긴 시력 감퇴 현상이 교통사고로 더욱 심해져 시력을 거의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한평생 고생한 아내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일부러 눈을 감고도 지내 봤다는 말에 이어, 당신 한쪽 눈을 빼 아내에게 주겠다고, 그것도 좋은 쪽 눈을 주겠다고, 의사에게.. 2020. 12. 17. 당근 한희철의 얘기마을(174) 당근 근 한 달 동안 계속 되어온 당근 작업이 이제야 끝이 났다. 강가 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당근, 장마가 겹쳐 힘들었지만 그나마 뙤약볕보다는 비가 나았고, 덥다고 작업을 미루다간 밭에서 썩히기 십상인 일이었다. 당근 작업은 정확히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제법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당근 작업을 위해 새벽 4시가 되면 일할 사람을 데리러 차가 온다. 말이 새벽 4시지 4시에 출발하기 위해서는 새벽 두세 시도 여유 있는 시간이 아니다. 소죽도 써 줘야 하고 밥 한 술이라도 떠야 한다. 당근 캐고, 캔 당근 자루에 담고, 차에 날라 싣기까지의 일은 빠르면 오후 1시 늦으면 서너 시까지 계속된다. 시장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당근이지만 그 당근 속엔 새벽 고단한 잠을 일으킨 주.. 2020. 12. 15. 파스 한희철의 얘기마을(173) 파스 남편이 제약회사에 다니는 아내의 친구가 파스를 한 뭉치 보내 왔다. 어떻게 쓸까 생각하다가 혼자 사는 할머니들에게 나눠 드리기로 했다.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작실로 올라갔다. 늦게야 끝나는 일. 할머니들을 만나려면 그 시간이 맞다. 다리 건너 첫 번째 집인 김천복 할머니네 들렀을 때, 형광등 불빛을 등지고 두 분 할머니가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엄마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두 분은 그렇게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한 지아비와 함께 살았던 두 분이 이젠 두 분만 남아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산다. 두 분 할머니는 일을 마치고 막 돌아온 길이었다. 손이며 얼굴에 묻은 흙이 그대로였다. 얼른 씻고 저녁 상 차려야 함에도, 그러고 있으면 누가 상이나 차려올 것처.. 2020. 12. 14. 기도 덕 한희철의 얘기마을(172) 기도 덕 “사실 비가 안 와 애가 탈 땐 비 좀 오시게 해 달라고 기도도 했습니다만, 하나님, 이젠 비가 너무 오셔서 걱정입니다. 비 좀 그만 오시게 해 주시면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며칠째 많은 비가 쏟아지고 그칠 줄 모르는 빗속에서 수요저녁예배를 드릴 때, 김영옥 집사님의 기도에 솔직함이 담긴다. 지긋이 하나님도 웃으셨으리라. 그날 이후 장마 곱게 지나간 데에는 집사님 기도 덕, 하나님의 웃음 덕 적지 않았으리라. - (1992년) 2020. 12. 13. 만병통치약 한희철의 얘기마을(171) 만병통치약 풀 타 죽는 약을 뿌렸는데도 풀이 잘 안 죽었다고 남철 씨는 묻지도 않은 마당 풀에 대해 변명을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일 마치고 돌아온 광철 씨 동생 남철 씨를 언덕배기 그의 집에서 만났다. “요새는 이 약 먹는데....” 남철 씨는 호주머니에서 웬 약을 꺼냈다. 알약들이 두 줄로 나란히 박혀 있었다. 보니 게보린이었다. “이가 아파요?” 물었더니 “아니요. 농약 치고 나면 어질어질 해서요. 잠 안 올 때도 이 약 먹으면 잠이 잘 와요. 히히히.” 이야기를 마치며 남철 씨는 버릇처럼 든 웃음을 웃었다. 이집 저집, 이 동네 저 동네 품 팔러 다니는 남철 씨. 그때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비상약처럼 들어 있는 게보린 알약. 농약치고 어질하면 알약 하나 꺼내 먹.. 2020. 12. 12. 할머니의 거짓말 한희철의 얘기마을(170) 할머니의 거짓말 누워 계실 줄로 알았던 할머니는 대문가에 나와 앉아 있었다. 남아 있는 독기를 빼낸다며 대야에 흙을 가득 담아 흙 속에 손을 파묻은 채였다. 좀 어떠시냐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할머니는 웃었지만, 흙에서 빼낸 손은 괜찮지 않았다. 독기가 검붉게 퍼진 것이 팔뚝까지 뚱뚱 부어 있었다. 서울에 있는 교회 학생부 집회를 다녀오고 나니 어두운 소식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석분 할머니가 뱀에 물린 것이었다. 뒷밭에 잠깐 일하러 나가 김을 매는데, 손끝이 따끔해 보니 뱀이었다. 얼른 흙을 집어 먹으며 뱀을 쫓아가 그놈을 돌로 짓이겨 죽였다. 입으로 물린 데를 빨았는데 입 안 가득 독기가 느껴질 만큼 독이 독했다. 괜찮겠지 참다가 시간이 갈수록 몸이 부어오르자 할 수 없이.. 2020. 12. 11. 겨릿소 한희철의 얘기마을(169) 겨릿소 내게 오라. 내가 네 겨릿소가 되어주마. 내가 네 곁에서 너와 함께 밭을 갈겠다. -마태복음 11장 28-30절 얼마 전 예배당로 들어서는 출입문 유리에 글을 써서 붙였다. 성경말씀을 자기 생각이나 형편에 따라 바꿔 읽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겠지만 한편은 유익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겨릿소’란 소로 밭을 갈 때 두 마리 소를 함께 부르는 것을 말한다. 보통은 한 마리 소가 갈지만 때와 곳에 따라서는 겨릿소를 부리기도 한다. ‘내게 와서 쉬며 내 멍에를 매라’(마 11:28-30)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 농촌 형편에 맞게 바꿔 보았다. 내가 비록 힘이 약하고 힘이 달려도 내 겨릿소인 안소가 든든하다면 그건 얼마나 큰 힘일까, 주님이 내 곁에서 내 안소가 되어 나와 함께 밭을.. 2020. 12. 10. 이전 1 ··· 34 35 36 37 38 39 40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