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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밥 신동숙의 글밭(2) 시詩 밥 ... 설익은 하루를 살아온 후 혼자 앉은 고요한 밤 아쉽고 부끄런 마음 걷어내고 무표정한 일들 걷어내고 밑바닥까지 내려갑니다 보물찾기 하는 아이처럼 그래도 바닥엔 누룽지 같은 감동이 눌러 붙어 있어서 돌돌돌 긁어 모으니 시밥 한 그릇은 나옵니다 2019. 11. 22.
줍기의 고결함 신동숙의 글밭(1) 줍기의 고결함 가로수 은행잎이 쪽빛 가을 하늘 가득 노랗게 피었습니다. 무딘 가슴까지 환한 노란빛으로 따뜻해져 옵니다. 어제 내린 가을비가 재촉하는 바람에 도로에는 일찍 떨군 은행잎이 노랗게 피어 폭신한 융단길을 내어줍니다. 너무나 많아서 일까요. 한 잎 주워서 더 가까이 손으로 만져보려는 마음일랑 접어둔채 그저 가던 걸음을 재촉할 뿐입니다. 인도로 내려앉은 은행잎은 발길에 소리 없이 밟히지만, 어쩌다 차도로 내려앉은 은행잎은 어김없이 짓이겨져 바람에 무겁게 날리울 뿐입니다. 어디로 어떻게 떨어져 생에 마지막 빛깔을 피울지는 바람에게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노란빛으로 환했던 마음이 땅을 보며 걷는 동안에는 안쓰러움으로 그늘이 집니다. 땅으로 깔리는 그림자처럼. 하지만, .. 2019. 11. 21.
할망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8) 할망구 민영진 선생님의 팔순을 맞아 몇 몇 지인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 가볍고 조촐한 자리였다. 오랜만에 선생님 내외분을 뵈었다. 팔순을 맞은 소감을 여쭙자 뜻밖의 이야기를 하신다. 할망구 이야기였다. 71세를 맞았을 때 누군가가 ‘망팔’을 맞으셨다며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望八’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으로 71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81세는 ‘망구’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는데, 가벼운 상상은 맞았다. ‘望九’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로 81세를 이르는 말이었다. ‘망구’에 이어진 말이 ‘할망구’였다. 설마 할망구가 망구에서 왔을까 했는데, 정말로 그랬다. 할망구라는 말은 망구에서 온 말이었다. 익숙한 말 할망구가 낯선 말 망구에서 왔다는.. 2019. 11. 20.
라면이 일으키는 사랑의 파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7) 라면이 일으키는 사랑의 파장 선배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를 방문하여 대화를 마치고 막 헤어지려 할 때, 선배는 우리를 예배당으로 안내했다. 추수감사절을 지낸 제단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제단의 불을 켜자 제단에 쌓여 있는 라면이 보였다.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상표와 크기가 다른 라면 박스들이 나란히 쌓여 있었는데, 그 양이 상당했다. 유심히 보니 회사는 달랐지만 모두가 컵라면이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대부분의 교회가 과일을 드리는 것에 비해 선배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라면을 드리고 있다. 노숙자 사역을 하는 목사님에게 라면을 전달하고 있는 것인데,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교우들도 이제는 뿌듯한 마음으로 참여를 한다고 했다. 마침 감사절인 전날 비가 .. 2019. 11. 20.
개 같은 세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6) 개 같은 세상 심방 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반려동물 이야기가 나왔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샌지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압권은 직장 상사를 성토하는 이야기였다. 직장 상사를 성토하는 자리에서 단연 1등을 한 내용이 있단다. 그것도 반려동물과 관련이 있었다. “직장 상사 애완견 장례식장에 다녀온 적 있어? 가보니까 영정 사진에 강아지 사진이 떡하니 올라가 있는데,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어 난감하더라.” 그렇게 시작하는 내용이었다는데, 그 말 앞에 어느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동석한 교우 중에는 공무원인 교우가 있었다. 그가 뜻밖의 규정을 들려주었다. 애완동물이 죽으면 처리하는 규정.. 2019. 11. 18.
이슬 묵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4) 이슬 묵상 가을로 접어들며 하루 한 꼭지씩 이어오고 있는 글이 있다. 이슬에 관한 글이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면 공기 중에 있던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힌다. 애써 골라 자리를 찾은 것인지 하필이면 풀잎이나 꽃잎 끝에 아슬아슬하게 맺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아찔하게 한다. 게다가 수명도 짧다. 아침 해가 뜨면 어느 샌지 사라진다. 이슬이 어느 순간 생겼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세상에 누가 있을까.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를 모르는 신비한 걸음, 이슬은 그런 존재지 싶다. 될 수 있으면 가장 짤막하게 쓰려 하는 것은, 그것이 이슬과 어울린다 싶기 때문이다. 어찌 이슬에 군더더기가 있겠는가. 맺히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눈물겨울 만큼 짧은 순간이다. 사.. 2019. 11. 17.
그래야 방 한 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5) 그래야 방 한 칸 모처럼 다른 일정이 없는 월요일, 목양실로 나왔다. 평소에도 조용한 예배당이 월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조용했다. 책상 옆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있다. 공문과 신문과 잡지, 이런저런 자료와 보고서도 있다. 하루에도 여러 편 우편물이 전해지고, 교회 일과 관련한 자료와 보고서 등도 전해진다. 때마다 중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덜 중요하다 싶은 것들을 쌓아두기 시작했는데, 그 높이가 어느새 제법이었다. 그때그때 분류를 하여 정리를 해두면 편할 것을 그렇지 못했다. 정리를 잘 못하는 성격도 컸거니와, 연일 이어지는 심방 등 바쁜 일정을 핑계로 쌓아 두기만 했었다. 그냥 일을 하는 것이 단조롭다 싶어 음악을 틀었다. 주로 클래식을 선물처럼 듣는.. 2019. 11. 17.
몇 가지 질문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3) 몇 가지 질문들 목회 계획 세미나 시간을 가졌다. 정릉교회 시무장로님들과 1박2일 내년도 목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일 오후에 출발하여 가던 길에 저녁을 먹고 나자 이내 날이 캄캄했다. 하루 머물기로 한 이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은 데다가 초행길에 비까지 제법 내려 숙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세미나는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했다. “오늘 한국교회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정릉교회에 점수를 준다면요?” 더 묻고 싶은 질문들도 있었다. “정릉교회 밖에 있는 다른 이들은 정릉교회에 몇 점을 줄까요?” “주님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주실까요?” 장로님들의 대답이 궁금했다. 먼저 한국교회의 점수는 낙제점이었다. 평균이 얼추 40점쯤이 되었다. .. 2019. 11. 16.
숨과 같은 하나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2) 숨과 같은 하나님 이름은 기호나 문자나 소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장치나 도구도 아니다. 이름은 존재다. 이름에는 그의 존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백성에게 보내실 때, 모세는 하나님께 질문을 한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출애굽기 3:13)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데,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으로 대답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의미로 번역이 된다. “나는 곧 나다”로 번.. 2019.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