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춤

홍순관의 '노래 신학' 2015.02.10 23:58

홍순관의 노래 신학(6)

푸른 춤

홍순관 글 / 한경수 곡

- 2002년 만듦,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 음반수록 -

 


1. 춤을 추네 춤을 추네 님과 바람 입 맞추며

춤을 추네 춤을 추네 별과 태양 입 맞추며

삶과 죽음 시간 넘어 미움 사랑 남자 여자

씨와 땅이 입 맞추며 우주의 생명이 춤을 추네

 


2. 춤을 추네 춤을 추네 하늘과 땅이 입 맞추며

춤을 추네 춤을 추네 노을과 아침 입 맞추며

참과 거짓 시와 정치 시간과 역사 봄과 겨울

남과 북이 손을 잡고 우주의 생명이 춤을 추네

 

고은비 그림

 

처음부터 끝까지 ‘2분 음표(♩)’로만 되어있는 곡입니다. 작곡가는 아마 대칭을 생각했나 봅니다. 삶과 죽음, 미움 사랑, 남자 여자, 노을과 아침, 시와 정치, 남과 북…

다른 것이, 한 가지로 보인 것이지요. 극과 극이 결국은 같은 것이라 본 겁니다. 우월감이 곧 콤플렉스이니 다른 것이 없습니다. 노을과 아침이 맞닿은 것은, 죽음이 부활이라는 신자의 비밀을 상징합니다. 상대적인 것들을 같은 무게로 보고, ‘2분 음표’를 사용하여 두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무리가 아닌듯하여, 그대로 노래했습니다. 이 곡은 실제로 노래를 부르기엔 그리 재미는 없습니다. 도리어 지루하고 따분합니다. 변화가 없으니 표현도 까다롭고 기교도 힘듭니다.

사실, 똑같은 것이 ‘평등’은 아닙니다. 세상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각자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도리어 평등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지 못하기에 불행한 것이지요.

다른 논리를 펼칠 수도 있겠지만, 작금의 세상은 계급사회입니다. 나누어진 사회를 좀처럼 좁히지 못합니다. 평등을 향한 노력은 미미하고, 격차를 벌리는 방법에는 더욱 박차拍車를 가합니다.

문제는 소수의 상류계급들이 누리는 범위가 터무니없이 크다는 겁니다. 가난한 자들이 비교할 수 없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은, 각자 생각하는 인생을 누리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그것은 스스로의 삶이 탄탄하게 섰을 때 가능합니다. 씨앗도 싱싱하고 땅도 건강해야 생명은 자라납니다. 시詩도 신랄하고 정치도 꿋꿋해야 합니다.

결국은 ‘제 숨’입니다. 제 숨을 잘 쉬면서 사는 것이 평등이요, 저마다 가진 숨으로 사는 것이 평화입니다. 남의 숨을 빼앗는 자들은 결국 제 숨도 잘 쉬지 못하게 됩니다. 인류가 만든 문명의 숨은 결국 환경을 망가뜨렸고 기근을 발생시켜 전체가 제대로 숨 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지구촌은 숨을 가다듬어야 마땅합니다.

‘춤’은 신명이 나야 절로 추어지는 겁니다. 억지로 움직이는 것은 춤이 아닙니다. 신명이 나려면 자유로워야하고, 몸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흥이 돋아야 합니다. 춤과 춤꾼이 하나가 되어야 진짜 춤입니다. 이 세상 각角을 진 모든 만물이 둥근 세상으로 흥을 돋울 때 춤추는 평화가 펼쳐질 것입니다.

이 노래 제목을 ‘푸른 춤’이라고 했지만, 춤을 추긴 어렵습니다. 매우 절제된 숨으로 가락을 타야 비로소 마음과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글쎄요, 춤이 적절하지 않은 시대상황을 노래했는지도 모릅니다. 초록별의 신명나는 푸른 춤을 꿈꾸어 봅니다.

홍순관/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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