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6)


설교(說敎)인가 썰~교(敎)인가


- 소 모 씨의 설교를 감상하고 정신이 확 깨서 쓴다 -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사도바울


1.

월요일 산책하며 주제를 정한다. 화요일 농사를 지으며 생각을 정리 메모한다. 수요일 운동을 하면서 자료를 참고하여 거칠게 초고를 쓴다. 목요일 치료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끝까지 다 쓴다. 금요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문장의 맥락을 가다듬어 정리한다.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 새벽사이. 클럽에 전문을 업데이트한다. 토요일 놀면서 아내에게 리허설을 한다. 아내가 통과를 시켜주면 영화 한편 보고 기대하며 잘 수 있다. 그러나 오늘처럼 내 리허설의 맥락은 따라잡지 못하고 날 바라보는 얼굴만 점점 예뻐지면 그때는 비상이다.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사이.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 현장에서 벌어질 관념과 현실의 갭을 줄여본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알아듣기 쉽게 전체를 새로 쓰기도 한다.


원고 매수는 목회 초기 A4 20장에서 줄고 줄어 10년에 이른 지금은 7장까지 줄었다.(오늘 처음 8장에서 1장을 더 줄이는데 성공했다.) 목표는 4장,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 설교 시간은 처음 2시간 정도 소요됐던 것이 줄고 줄어 한 시간을 못 미쳐 지금은 50분 부근을 눈치 보며 오락가락하고 있다. 교우들의 기대는 내 설교가 부디 4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려면 일단 원고는 4장, 그동안의 의리로 봐줘도 5장, 주의 은혜로 용서해 주어도 6장 이상은 절대 넘지 말아야한다. 설교 중간에 갑자기 바다가 그립다고 삼천포 쪽으로 가서도 안 되며 새로 개발한 개인기가 아까워 요건 꼭 한번 시전하고 싶다는 유혹이 있더라도 징검다리 건너듯 훌쩍 건너뛰며 눈을 딱 감을 줄 알아야한다.


내 청중은 지난 10년간 가장 많았을 때가 30여명, 가장 적었을 때가 5,6명, 평균 15명 정도다. 거기엔 은혜가 넘치게도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5명이 기본 출석으로 포함된다. 나에겐 단 한 번의 주일예배가 목사로서의 직임을 다할 유일한 기회이므로, 이것은 일주일을 꼬박 바친 설교를 들어줄 청중들이 지난 10년간 평균 15여명이었다는 사실과 그들을 위해 내 설교가 바쳐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수끼리 ‘숫자가 무슨 중요하냐’거나, 은혜가 책상만큼도 없이 ‘차라리 때려치우는 게 낫지 않느냐’는 따위의 권면은 하지 말아 달라. 그건 나를 위한 위로도 내 분투를 향한 애정도 아니기 때문이다.


2.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변명을 하자면 나는 이것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중이다. 자발은 내가 스스로 원함이요 어쩔 수 없음은 내 사명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동의가 안 된다면 나를 이대로 놔두면 된다. 기록되었으되 사도 바울의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린도전서 9:17)하는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여겨주시라.(주께서 임의로 행하는 내게 상을 주시기를!) 그러나 나는 사도 바울 만은 못하여 새로운 방문자(요즘엔 신자가 오는 게 아니다)가 올 때면 늘 ‘여기 모인 인원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번차례로 나온다’고, ‘이런 말이 궁색하진 않겠지’하는 부끄런 맘으로 순전히 방문자에 대한 배려가 아닌 나와 우리 성도들을 위한 자백을 한다.


물론 우리 교회는 창립 이래 전도를 위한 뭔가를 계획해 본 적이 없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교우들도 전도를 잘 못한다. 나도 못하는 걸 남에게 하랄 수 없어 강조하지 않았더니 용불용설(用不用說)이 돼버린 건지 전도들을 못한다. 게다가 가끔 가는 소풍 말고는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이나 또 뭣이냐 수련회 부흥회 같은 일체의 프로그램이 없다. 수요일 성서학당은 인원이 너무 적어 그만 두었고 수련회는 청년들이 취직을 하니 자연 못 가게 됐다. 대략 지금까지 한 2~300여명이 방문자로 혹은 단기 체류자로 교회를 거쳐 갔는데 대부분은 이 아무 일 없는 교회에 적응하질 못한 것이다. 그들의 이동의 원인은 가장 많게는 큰 교회의 활발한 프로그램들이 아쉬워서이고, 그 다음은 담임목사의 정치적 성향(극우파는 오지 마시라), 그 다음은 결혼의 편리(?), 그 다음은 개인적 사소한 일들, 그 다음은 정말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날 사라져버린 경우들이라 나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참고로 나는 심방을 거의 다니지 않고(물론 장례 같은 필수사항은 제외하고라도 원하면 가지만) 정히 가려면 입원이나 개업 특별한 가족사적 필요와 원함이 있을 때만 간다. 그 외에는 각자 알아서 잘 살자고 다짐을 둔다. 오해는 마시라. 내가 이기적이라거나 냉담한 목사는 아니니까. 나도 성도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할 줄 누구 못지않게 아는 사람이니까.





3.

내가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설교다. 이건 나의 할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나는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아 해야 할 일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가령 재정을 관리한다거나, 주보를 만든다거나, 피아노를 친다거나, 찬양을 인도한다거나, 반찬을 만들어 온다거나, 설거지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외에 누군가 교회에서 달리 해야 할 본분이 있는 걸까? 있어야하는 걸까? 나는 그런 의구심이 든다. 그런 건 내가 생각하는 교회의 범주를 넘어가는 일이다. 성도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도 아니고 교회가 마냥 우리 자유인 교회 같이 작아서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어야한다는 말도 아니다. 뜻있는 본분은 (내가 교회에서 하듯)각자 자기의 세계에서 감당해야할 일이고, 교회는 그들이 각자 자기의 분야에서 본분을 다하도록 교회에 매어두지 말아야 한다. 사찰 같은(암자였던가?) 교회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런 개념? 혹은 사도 바울의 두란노서원처럼 학원 같은 교회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성도가 사회의 각 부분에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도록 매어 놓고 추구해야할 일과 사업과 본분이 교회에게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내가 설교에 매진하고 그것에 나를 바치는 것은 오로지 교회에서 내가 제일 나간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처럼 각 사람이 자기의 영역에서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사회참여의 방식이다. 이런데도 내가 과격한가. 급진적인가. 나는 헌금도 교회가 운영되고 유지할 정도면 충분하다고 가르친다. 물론 아직 그게 안 된다. 그러나 억지로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 성도들은 이제 각기 알아서 자기의 할 일들을 찾아 각종 자발적 본분과 사명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4.

이 작은 교회에 모여 뭔가를 해보자고 성도를 쥐어짜는 것과 비교해 어떤가. 교회가 한다면 또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정부가 세금으로 선행을 하듯 헌금으로 선행을 할 것인가. 아니다. 선행은 반드시 자기가 자발로 현장성 있게 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교회가 자기의 고유한 욕망을 갖는 것을 반대한다. 자기 확대의 야망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것으로 치장하여 벌이는 사업들과 프로그램들을, 경영주와 자본가의 팽창 욕망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교회는 자유를 획득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말씀의 공동체이지 모여서 뭔가 회사나 관청처럼 공적 서류를 자꾸 늘리고 불리고 쌓고 세워가는 데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성도 자신은 못 서고 목사들의 목만 세운다. 그러니 목사들이 세습을 하지 않는가. 세습할 게 없어야 세습은 사라질 것이다.


자유인교회가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찬을 하기 위해 함께 밥을 먹기 위해서이다.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교회이기 때문에 내 설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번 설교하는 건 그 한 번의 설교로 충분하다는 이유 외엔 없다. 매주 돌아오는 속도에 비하면 그 한 번의 소비가 아까울 정도다. 하나를 소화하는데도 버거운데 거기에 또 뭘 더한다면 그건 낭비에 불과하지 않은가. 내가 하는 일이니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 외에는 중요한 것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있어야 그 다음 성찬도 밥도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로 모일 이유가 없다. 나에게 교회에 있어 설교는 그렇게 중요하다.


나는 한 주일에 서너 번씩 설교를 하고 주일이면 몇 부에 걸쳐 강단에 재 등판을 거듭하고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설교로 불려 다니는 목사님들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설교뿐 아니라 경영도 하고 사업도 하고 건축도 하고 당회도 하고 수련회도 하고 부흥회도 하고 기도원도 가고 금식도 하고 광화문에도 모여 태극기를 흔들기도 하고 무슨무슨 사랑에 반대하는 이상한 사랑의 집회도 가고 심지어 건강을 위해 골프도 치러 다니지 않는가.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된다. 특히 설교는.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앵무새가 아닌가. 말쟁이가 아닌가. 무당(巫堂)이 굿을 하더라도 신명(神明)을 유지해야 작두에 오르는 것처럼 목사도 영감을 유지해야 설교를 할 것 아닌가. 영감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차분하고 침착하고 조용한 침묵과 독서와 명상과 기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몇 줄의 편지를 쓰더라도 종이를 몇 장은 버려야 한다. 하물며 설교를. 그렇게 많이. 그렇게 유창하게. 해대는 것은 스스로가 앵무새 말쟁이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구나 1부의 그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쏟아낸 목사가 2부 3부의 그 시간에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하루 대여섯 번씩이나 자기표절의 감격에 떠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연하고 오연하다 못해 오싹해진다. 그들의 설교 자체는 차치하고라도. 나는 일단 적은 횟수가 성실하고 정직한 설교를 낳는다고 믿는다. 많은 묵상과 퇴고가 좋은 설교를 낳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손님을 초대한 잔치집의 밥상과 같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말쟁이 변설가들 한국교회 10대 혹은 20대 설교가라 떠받들여 진 목사들이 다 물 흐려 놓은 것 아닌가. 그들을 정말 시대를 대표할 설교자라고 할 수 있는가.


5.

폐일 언.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설교를 하는 목사들을 강단에서 우선 퇴출시키자. 남의 설교를 작성해주는 부목사들이나 전도사들은 회개하고 양심선언을 하길 바란다. 교회개혁은 설교회복이어야 한다. (케리그마의 선포로서 설교도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설교 이외에 목회를 목사는 꿈꿔선 안 된다. 그러려면 목사가 되지 말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게 여러모로 더 낫다. 교회는 목사들의 자아를 실현하는 욕망의 각축장이 아니다. 


표절이 문제가 아니다. 설교가 실종하고 말쟁이들의 말잔치가 된 강단에서 그 말쟁이들을 내쫓고 진실한 설교자를 세우는 일. 그게 개혁의 시작이다. 어디부터일까? 내가 아는가. 여러분이 잘 알 터. 사단이 사단을 내쫓는 법이 없듯 목사가 목사를 내쫓을 법이 없다면 개혁은 목사로는 안 되는 것이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고린도전서 6:2). 행동을 개시하라. 이것이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도행전 29가 아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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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5)


가뭄의 의미


고라니가 마당까지 내려와 생전 먹잖던 비비추와 개망초까지 뜯어먹고 있다. 잎이 겨우 나기 시작한 고추 모종을 몽당가리로 만들어 놓은 진 오래되었다. 알뜰살뜰 부쳐놓은 싹들을 생각하니 애끓는 마음. 비를 비는 기도를 드린다. 허나 무슨 엘리야의 예지로 구름을 헤아릴까. 그보단 간절한 시절 속 태우는 가뭄이 무슨 뜻인지 하늘에 물어본다.


󰡔사무엘󰡕은 하권의 끝에(21) 다윗왕의 남은 치세를 정리한다. 소임이 끝난 창립자에게 역사가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엔 삼년 동안 비가 오지 않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결과(어떻게 물었을까?) 전왕(前王)과 그 집안이 저지른 기드온 학살사건 때문이라는 결론이 났다. 왕은 그 하회(下回)를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묻는다. 그들은 사울의 자손 일곱을 내어달라 요청한다.


“여호와의 빼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사울왕의 고향에서 그의 완전한 종말을 선언하리라는 원한에 사무친 요청이었다. 놀랍게도, 왕은 수락한다. 사울가(家)의 자손 일곱이 목매임을 받았고 곧 비가 쏟아졌다. 복수를 완성한 비, 원한을 풀어내는 비. 과거사의 피 흘림으로부터 땅을 정화시키는 비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 비를 맞이하진 못했다. 오직 한 사람 사울의 미망인 리스바가 자식들의 시체 위에 내리는 비를 맞았다. 영욕의 한 시대를 고별하는 처절하고 질긴 울음과 함께. 왕은 그 시체들을 거두어 사울왕의 묘실에 정중히 매장한다. 이로써 화해와 치유가 이루어졌고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 다윗의 과거청산. 이것이 대왕의 최후 업적이라 사관(史官)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과 봄이 이어진 접경의 긴 터널이 끝나자 새로운 계절이 펼쳐진다. 신(新)정부에 거는 기대와 찬탄으로 환호하기도 한다. 이제 막 복구한 일상은 연부년 삼년의 기근 끝에 있는데, 갑자기 맥이 빠지고 무서워지기도 한다. 왜 맥이 빠질까? 무엇이 무서운 것일까? 깜빡깜빡. 우리의 가뭄이 어떤 것이었지? 세월호, 물대포, 헬조선, 각양 마피아들의 연대, 베를린 장벽보다 더 공고한 넘사벽이 되어 탈출 외에는 전망이 없으리라 던 악몽 같은 참사와 장례와 애도의 기간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는 아랑곳없이 백년까지 누리리라. 백년까지 우리를 지배하려는 가상의 왕조라도 있는 것처럼. 적대 아니면 원한뿐인 역사의 미래가 무서웠다. 꿈을 비는 마음으로 동티라도 날까 평화와 절제의 집단지성으로 천재일우(千載一遇) 겸손한 승리를 획득했다. 권력 교체를 넘어선 함께 나가는 행복의 시대를 위해. 나 한 사람 가만있으면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은 무서움이 하나 더한 촛불들의 반전이었다. 그러니 ‘혁명은 이루지 못하고 방만 바꾸었다’는 시구처럼 이 반전이 ‘다 똑같다’는 허무주의로 돌아갈까 무서운 것이다. 해방이후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고, 4.19 이후 5.16이 터지고, 10.26 이후 12.12와 5.18이 터지고, 6.10 이후 6.29가 나온 것처럼. 말과 말이 겹치고 말과 말이 엇갈리고 말과 말이 말들을 낳기를 원하는 끝없는 스캔들. 새 부대에 새 술이 간절해진다.


거듭남. 과거의 청산. 회개와 고백이 요청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율법의 시대와 같이 보복으로 조종(弔鐘)을 울려서도 안 된다.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의 난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자발적 회개와 고백을 요구한다고 믿는다. 안달도 방관도 없이. 이 변화된 시대의 의미를 묻는 회개와 고백을 선도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솔직히 말해보자. 역사가는 장차 이 시대 우리들의 교회를 어떻게 기록할까? 󰡔사무엘󰡕의 가뭄과 비는 기상이변의 기록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모르거나 알아들은 인간에게 내리는 화답이었다. 개혁도 개개인 실존의 구체성에 이르지 않고는 ‘변한 게 없다’는 허무주의로 돌아간다. 누구보다 개혁을 진리파지(眞理把持)의 수단으로 삼는 기독교인들은 자기의 허무주의부터 밝혀야 할 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유럽여행을 가는 정신으론 미진하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로마서 2:28). 대지가 기근에 시달리는 한 기드온 거민들의 영의 가뭄도 끝나지 않았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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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4)


순복음 포수(捕囚)의 종언(終焉)


-범(汎)이든 호랑이든 한국교회의 기독교인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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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두 가지 분류 외엔 없다. 정치적으론 대의제 장로교, 신학적으론 순복음이다. 우선 모든 교파가 장로(長老)를 세운다. 감독제인 감리교, 직접민주주의 회중교회인 침례교도 장로를 세운다. 왜 그럴까? 한국인은 세 사람만 모이면 회장과 총무부터 뽑는다고, 안 세워주면 그 교회에 안 붙어있으니까. 그러나 장로들의 의결로 목회의 의제들을 결정한다는 대의제라지만 실상 대의(代議)는 유명무실하다. 대형교회일수록 당회장 담임목사가 전제적 제왕으로 군림하며 비자금 유용, 목회세습과 같은 전횡과 불법을 자행해도 적절한 제재를 못할 뿐더러 대다수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근위장교나 거수기들에 불과하다. 신학적으로 순복음이라 함은 범복음주의권이라 불리는 보수적 기독교계가 80년대 이전 자신들이 이단(異端)이라 정죄하고 비판하던 순복음식 영성운동(방언, 은사, 치유 등의 신비주의와 오중 복음 삼박자 축복 등의 세속적이고 기복적인 축복관)을 교세확장과 성도교육등 목회의 기본 도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인상비평적인 판단이니 내 의견에 반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럴만한 방증이 있다.)


그러니 결국 하나,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순복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시장(재벌, 삼성)에 넘어갔듯이 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순복음에 굴복해 통째로 넘어갔다. 왜 그랬을까? 교회성장이 절정을 지나고 성도수가 감소하기 시작한 90년대가 되자 교회는 더 이상 새신자를 영입할 전도의 동력을 상실하게 됐고 교회간 경쟁과 이동의 시대가 시작됐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농(離農)이 발생하듯 작은 교회에서 대형교회로의 수평이동이 대거 이루어졌다. 아이러니이지만 전체교세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대형화 부흥화 경쟁은 치열하고 노골화됐다. 나는 전부터 대형교회들에게 성도의 전수조사를 실시해 볼 것을 권해왔다. 그들이 다들 어디서 왔는지. 한국교회가 뭐가 문제고 무엇을 회개해야 할 것인지 자연 알게 될 것이다. 


시장의 욕망이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물들였다. 금단(禁斷)의 과일 같던 성공과 번영 축복의 선악과(善惡果)를 맛본 성도들의 허영과 욕망을 만족시켜줄 더 큰 교회, 더 세련된 예배,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교회(신학적 목회적 내용의 질은 중요치 않다)를 향한 수평이동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순복음에 굴복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다. 여기엔 복음주의권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성공한 유명 목회자들의 공로가 크다. 그들은 누구보다 선구적으로 앞장서 순복음의 이단정죄와 교류금지를 철회함으로써 총회와 교단의 결의를 무력화했고 순복음과의 적극적 교류를 시작했다. 자신들의 목회에 오순절 운동(五旬節運動, Pentecostalism)방식을 차용하기 위해서였다. 변화된 목회환경에 발맞춘 그들의 변화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힘입어 조용기 목사는 갑자기 이단의 괴수에서 한국교회의 큰 목자이자 대표목사 교계의 우상으로 추대되었다. 그 다음은 장신 총신 고신 합신 심지어 한신 등 복음주의권이든 개혁주의권이든 자유주의권이든 가릴 것 없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도 없이 자고 일어나니 순복음 천지가 돼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조용기의 4차원 영성, 피터 와그너의 교회성장학과 신(新)사도주의(New Apostolic Reformation), 베니힌과 빈 야드 운동, G2와 알파코스의 금이빨 금가루 집회, 방언, 입신, 웃음, 예언, 축사(逐邪) 여기에 온누리를 필두로 한 <경배와 찬양>운동과 새들백 윌로우크릭의 훈련 프로그램들 등 수입산 오순절주의와 번영신학 복음주의의 성장 운동들이 한국교회를 풍미했고 지금도 그 막대한 영향아래 교계를 지배하고 있다. 담임목사들은 한동안 자신들을 교회를 경영하는 CEO라 불렀으며 부목과 전도사들을 직원으로 격하시켰고 그들에게 경배와 찬양 처세술과 경영이론 심리상담 리더십 제자훈련 세미나 수업과 사역을 강요, 마침내 그런 혼합주의 영성들이 순수(?)한 복음을 완전히 대체하기에 이르렀다.(순복음은 일종의 대체된 복음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나오는 장로교 목사의 대사를 원용해 본다면 순복음을 쫓아간 다른 교파들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순복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콤플렉스들의 역동, 그림자의 역동,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욕망, 남보다 커지고자 하는 야망이 한국교회의 순복음 포수(捕囚)의 원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향후 한국교회의 지배적이며 본질적 정신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와 같은 세속적 변질과 획일화의 길을 반대하고 자기의 길을 소신 있게 걸어간 선배들과 동료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역시 대부분 순복음 일색 가운데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전략에 불과했지 부흥제일주의라는 전체적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하는 반(反)순복음주의 신학과 정치를 지향한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순복음은 옛날엔 위험한 사이비 정도였지만 이제는 중세 가톨릭만큼이나 변질된 기독교의 수괴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신학 역시 순복음에게 점령당했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자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목사)로서 늘 이런 점을 아쉬워했다. 누군가 순복음으로 대표되는 우리시대 교회와 목회지향에 반대하면서 자라나는 신학생들에게 포스트 순복음의 영감을 열어줄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교회와 목회자 모델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선배, 그런 후학들만이 희망을 가져볼 기회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직 ‘가나안 성도’라든가 ‘탈(脫)교회’ 같은 제도교회와의 결별의 논의가 본격화 활발해지기 전이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그 길을 걸어가 그 문을 열어보기를 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자신의 목회가 거기에 부응할 효력 있는 메시지가 될 정도(규모)가 못됐음은 물론, 나보다 젊은 신학생들에게서 그런 희망의 단서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어느 면에서 젊은 신학생들은 목회현실의 억압에 더 쉽고 무력하게 굴복됐고 흡수됐다. 정치가 그렇듯 교계의 자정을 선도할 대안 세력은 결집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 나의 고뇌와 갈등 역시 순복음 일색에 잠식돼 비교 경쟁적 부흥에서 낙오된 퇴출자의 굴절일 뿐이란 절망감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나는 자주 가까운 교우들에게 그런 절망감을 토로하곤 했다. 기껏 노심초사 애를 써 새로운 신자를 전도해 양육하면 무엇 하나. 그들의 99%는 이삼년 이래 대형교회로 흡수된다. 그 이유는 그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 자녀의 신앙교육, 대형교회 신자와의 결혼(그들은 신랑이건 신부이건 대형교회로 흡수돼 가는 걸 당연시 한다.), 스펙과 인맥을 위한 이동 등이다. 한마디로 그들 역시 다른 무엇이 아닌 매머드급 크기가 자랑하는 유무형의 선전적 구미(口味)에 압도되고 매혹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 누군가에게 대형교회는 개척교회의 설립을 환영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냐하면 개척교회만이 새로운 신자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손 안대고 코푼다는 식으로 개척교회 목사가 고군분투 양육한 새신자들을 앉아서 흡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하여 개척교회들은 그 이삼년을 고비로 문을 닫는 경우가 태반이다. ‘목회 성공의 99.99%는 교회건물에 있다’는 탄식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젊은 부부들은 그들대로 자녀를 둔 부부들 역시 그들대로 중장년과 노인들 역시 그들대로의 욕망과 필요 허영과 만족을 위해 대형교회로 간다. 대형교회는 이제 한국교회의 못자리가 아니라 거대한 회랑을 지닌 무덤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이런 환경에 저항하는 것을 나의 기치이자 목표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설득되지는 않았지만 교우들에게 이점을 강조하곤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 기치와 목표에 따라오지 않았고 결국 나를 떠났다. 슬픈 위안이자 자랑이지만 지난 10년의 목회를 통해 목사인 나나 아내나 설교나 우리의 목회철학이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교회를 떠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나와 내 설교와 목회방식이 바람직하고 좋지만 그게 아닌 이런저런 다른 이유들로 교회를 떠났고 결국 강남과 그 주변의 대형교회들로 흡수됐다.(나는 이 점이 가장 절망스럽다.) 가끔 사석으로 모이면 어떻게 하면 순복음과 맞장 뜰 대형교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의논하기도 했다. 그러면 대개는 내 사명을 확인시켜주고 포기하지 말 것을 격려해줌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개중에는 하나님이 내게 이러한 외로운 길을 원하시는 거라는 위로를 주는 건지 슬픔을 주는 건지 모를 말들을 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만 더 기꺼이 어리석은 목사가 되어 반대로 평신도인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그렇다면 저 순복음들은 무엇인가? 저들의 반칙과 전횡은 어떤가? 저들의 말도 안 되는 설교와 성경 해석들은 어떤가? 그럼에도 불구한 저들의 성공은 무엇인가? 저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 그들의 권력화, 기득권화, 정치세력화, 복음의 변질, 진리의 왜곡, 기독교 가치관의 붕괴, 설득력의 실종, 전도의 종말… 그것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그러나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는 당신들은 무엇이냐라고 직설적으로 묻지는 못했다. 그 점이 아쉽고 후회스럽다. 어차피. 


예전엔 목회자들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만든 책임 당사자들이라고 비판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게 된다. 한국교회를 이 모양으로 전락시킨 장본인들은 성도들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 목사들은 단지 대중의 취향에 알맞은 설교와 서비스로 그들의 요구와 비위에 맞춰 따라갔을 뿐이다. 그것이 변덕맞고 욕심 많고 의미 없고 어리석고 무식하고 고집스런 그들을 교회에 붙들어 두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D.L 무디는 평신도들을 양이 아니라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라 표현했다는데 그건 정말 기막힌 진실이다. 그들은 필요할 땐 기꺼이 목자의 도움을 청하는 양 흉내를 내며 ‘매애애~ 매애애~’ 찾아오지만 원기를 회복하고 또 다른 필요의 욕망이 생기면 야성의 늑대의 성질을 곧바로 드러낸다. 나는 이제 그 두 가지 행동의 시작됨과 끝남은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하나님의 나라의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빵을 먹고 배부른 까닭(요 6:26)’이라는 예수의 말씀과 같이 그들이 원하는 게 무언지 어디까지인지.


목사가 아무리 제왕적이라 비판을 당하지만 사실 이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의 권력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그 결과는 사람이 생긴 대로 살고 끼리끼리 놀 듯 서로 속고 속이며 서로의 뱃속과 입맛대로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게 호의를 표하는 다수의 평신도들이 내게 자기의 교회와 담임목사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면서도 십 수 년째 그 교회를 다니고 있는 모습들을 신비롭게 본다. 그들이 그런 곳을 떠나 다시 그와 비슷한 교회들을 전전하는 사연들을 여전히 난해하게 듣는다. 그들은 늘 한국교회를 걱정하고 목사들의 인격과 설교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자신은 그럼에도 주님의 뜻(?)을 위하여 주님이 확실한 사인을 보내실 때까지(젠장, 무슨 사인을 원하는 건지) 그 자리에 충성스럽게 남아있는 매우 지성적이고 개념 있는 성도라 생각한다. 그들은 주님이 자기들을 방치해 두었거나 기대할 바가 별로 없는 자들로 치부해 놓으셨다는 생각은 절대 못한다. 자기들이야말로 위선자들이요 바리새인이요 저 비리와 추행, 전횡과 표절, 세습과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목사들의 든든한 지지세력인 것을 모르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여전히 헤어진 지 십년이 넘은 나의 설교를 찾아 듣고 있으며 내 책이나 설교문을 남들에게 소개하고 돌려 읽기도 한다면서 여전히 나를 존경하고 하나님께서 언젠가 한국교회를 위해 목사님(나)을 크게 쓰실 거라고 덕담을 해준다. 그럴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속으로 비웃는다. 그리고 재빨리 마음 깊은 속에서 제발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고 주님께 기도드린다. 나는 지금 호리병 속에 갇힌 괴물이다. 반(半)농담이지만 누군가 나를 여기서 꺼내준다면 그를 축복할지 아주 죽여 버릴지 모를 일이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먼 훗날 그들 말대로 정말 내가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목사가 됐을 때 그들이 나를 진짜로 다시 찾아줄 날이 온다면, 나는 ‘거짓되고 의리 없고 교활하여 이득에 밝은 무신(無信)한 병(病)신도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모른다. 내가 주리고 외롭고 지쳤을 때 당신들은 나에게 물한모금 준적이 없었다. 내 설교와 나를 칭찬했지만 진짜 필요한 내 사역에 돈 한 푼 도와준 바가 없었다. 당신들은 외롭고 곤란하고 근심이 가득차 위로와 격려 용기와 영감이 필요할 때는 나를 찾아오지만 그것이 다 충족된 다음 건강하고 안정되고 즐거움을 누리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사람, 심지어 나의 대적이나 내가 적대하는 자들에게로 가버렸다. 나는 정말이지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당하고 속아왔다. 제발 나를 아는 척 친한척 하지 말고 내 거절의 말을 새겨듣고 나를 떠나라.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시다.’라고. 곧바로 회개하긴 하지만 그들을 아주 개무시 박살내 주리라 결심하고 결심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교회라는 조직을 통한 교회내의 반(反)기독교(나는 이게 진짜 기독교의 적이라 여긴다)에 대한 저항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탈(脫)교회를 받아들였고 가나안 성도들의 시대가 왔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교회라는 조직이 거부된 시대 포스트 교회 시대 기독교 진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작금 순복음 일색의 조직과 제도로서의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류에 불과한 작은 규모의 대형교회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성공과 압도는 가라지의 번창과 같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대개 곡식보다 가라지가 벼보다 피와 깜부기가 더 왕성하게 자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전체를 잠식했다는 것은 주님이 더 이상 그것을 사용치 않으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성장과 번영은 그래도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이 포기하고 내버리신 것이다. 


추수 때가 오면 가장 먼저 뽑혀져 버려질 가라지. 이런 결론을 내리고 이런 말을 하게 되기에 이른 내 마음은 누구보다 쓰리고 아프다. 이것이 단지 그들과 같이 되지 못한 우울증에 불과하다는 짐짓 사려 깊고 점잖은 평가까지 포함하여.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 오늘날의 목회자 오늘날의 평신도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는 식의 착한 말은 더 이상 내게 위로나 반박이 되지 않기에 거부한다. 그렇다고 내가 가나안 성도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단합된 제도로서 교회의 균열 외에 가나안 성도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당장은 아니겠지만 서서히 내가 깨달은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내가 장래 어떤 모습일지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명목과 무실(無實)인 교의신학의 독단성으로 유지되는 조직으로서의 교회의 형태는 더 이상 아닐 것이다.




범(汎)기독교계의 홍준표 지지라는 성명을 보았을 때, 나는 이제 하나의 분투와 마침내 결별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탄핵국면 태극기 집회의 배후에서도 그들을 보았었지.) 이영훈과 조용기와 홍준표의 만남.(그들이 열거한 단체들이 있다지만 그것들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한국교회 최후의 몰골을 본다. 모든 내 스승과 선배와 동료와 후배와 믿음이 돈독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다. 이게 당신들이 속한 범(汎)기독교인가? 제발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를. 그렇다. 나는 이들이 범(汎)기독교의 대표임을 인정한다. 이들이 우리 모두의 대표로 활동해왔고 활동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때문에 이제 나는 교회와 신학의 순복음 포수(捕囚)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회고하며 이제 그것을 청산 할 때가 왔다고 선언한다. 


다만 그것을 다시 한국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기대하진 않는다. 한 사람의 탈교회 기독교인 한 사람의 가나안 성도로서 내가 청산하고 내가 결별할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정말이지 종교개혁과 한 터럭도 상관이 없는 자들까지 개나 소나 루터와 캘빈 쯔빙글리(1531년 그는 카펠전투에서 8,000의 교황군에 맞서 2,000의 개신교 군대의 종군목사로 싸우다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를 들먹이며 비텐베르그, 제네바, 취리히 등으로 유럽여행을 떠나는 이 부패와 타락의 절정인 시대엔, 누구든 이제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청산하는 수순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기의 책임으로! 나는 오늘부로 범(汎)이든 호랑이든 더 이상 저들의 한국교회에 속한 기독교인이 아님을 선언한다.(마음을 추스르려 쓴 글이니 부디 타박하지 마시기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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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메시지, 카이사르냐 그리스도냐

- 누가복음 2:1~20 -

 

가이사 아구스도

 

“이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명을 내려 호적 하라 하였다.”

 

「마태복음」(2:1)은 헤롯의 시대로 시작되고 「누가복음」은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로 시작된다.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아래로 이어진 유대인의 족보를 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제자인 누가는 아브라함을 거슬러 아담까지 족보를 거꾸로 끌어 올려 창조주 하나님까지로 소급한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주제인 세계비전적 복음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거지만 약간의 세계사 공부를 해보자. 이 공부의 목적은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이 이 인간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하는 점을 짚어보려는 것이다.

 

가이사 아구스도(IMPERATOR·CÆSAR·DIVI·FILIVS·AVGVSTVS, 기원전 63~서기14)는 ‘존엄한 자 카이사르’라는 뜻이다. 가이사는 로마의 군인정치가 카이사르 장군(Gaius Iulius Caesar, 기원전 100~44) 가문의 성(family name)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나오는 그의 영어식 이름은 줄리어스 시이저다. 이 사람의 이름이 나중에 황제를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된다. 러시아의 ‘짜아르’, 독일의 ‘카이저’가 다 카이사르(케사르)의 음역이다. 오늘날까지 유럽의 나라들이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삼색기를 쓴다든가, 가령 미국처럼 국가 문장에 쌍두 독수리가 들어가는 등등의 기원이 다 이 사람 카이사르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가문의 고유한 명칭, 한 개인의 고유명사가 ‘세계의 지배자’ ‘천하의 황제’를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되었을까?

 

로마는 본래 귀족공화정 체제의 국가였다. 원로원이라는 대의 입법기구가 있고 호민관(집정관)이라는 선출직 행정가가 있어 국가를 이원화해서 다스렸다. 그러다 국가가 팽창함에 따라 군인들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는데 그 최고 정점에 이른 인물이 줄리어스 시저였다.

 

세계의 민주주의 진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나라를 꼽으라면 누구나 프랑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1789년 세계최초의 시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부르봉 전제 왕권의 마지막 황제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냈다. 관성에 의해 태어난 그대로가 태초부터 이어져왔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인간 역사의 비극이지만, 이것이 세계사 최초의 민주주의 시민혁명이었다. 민주주의, 시민 개개인이 최고의 입법기관 곧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황제와 왕으로 상징되는 소수기득권 세력의 영구집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의 자리가 합법을 넘어 신성불가침적으로 영구 보장된다는 것은 기득권 귀족들의 권리도 그와 같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누구는 귀족 금수저로 누구는 노예 고용살이 흙수저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정치는 물론 사회 문화 철학 예술 더 나가 교회 성경 복음 설교까지 모든 인간의 활동이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연대와 협력과 부역이 된다. 그러므로 비록 루이 16세가 자물쇠와 열쇠를 만드는 소박한 취미를 가졌고, 마리앙뜨와네뜨를 비롯한 황후의 측근들(문고리와 십상시 수석 실장 위원장 등) 민간인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에 대해서 흰 눈과 같이 결백한(결재만 해주고 써 준대로 읊어댄) 벌거벗은 임금님일지라도, 이 황제를 단두대로 보냈다는 것은 인류역사상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대사건인 것이다. 왕은 그리스도가 아니니 한번 죽으면 부활할 염려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도시들은 ‘민회(agora, ekklesia, apella, comitia)’라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로마도 그 이상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타격을 가한 사람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Magnus 기원전 356~323)이다. 정복자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 그리스 헬레니즘문명의 수호자로서 인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이 문명을 전파했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간다라 미술 같은 문명 접촉의 영향으로 불국사의 석굴암에 까지 그의 정복사업과 헬레니즘의 그늘이 드리워져있으니, 얼마나 신비롭고도 무서운 일인가. 이 알렉산더가 정복왕이 됨으로써 세계의 지배자로서의 황제, 그러한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제국, 그러한 제국의 기틀과 규범으로서의 세계가 완성되게 된다.

 

마치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지킨답시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정복전쟁으로 유럽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아넣었듯이, 황제를 죽인다고 황제가 되고자하는 인간의 야망까지 죽일 수는 없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의 무덤은 큰 바위가 무덤을 누르고 있도록 해놓았다고 한다. 다시는 이러한 독재자가 무덤에서 부활하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민주주의의 의지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독재자가 다시 나오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각성이다. 독재가 부활하는 모판은 시민들의 망각, 둔감, 정치가들과 기득권의 선전선동에 의해 유행병처럼 한 인간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그에게 기대하는데 있다.

 

줄리어스 시저가 정복전쟁으로 인기가 치솟고 세력이 커지니까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게 된다.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려는 공화파와 카이사르를 추종하는 제정파가 대립하게 되는데 카이사르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황제가 되려는 야심이 조금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한편, 선전전과 협박을 통해 원로원을 장악하며 황제로 가는 길을 닦아간다. 결국 공화파들은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음을 깨닫고 그를 암살하게 된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당할 때 남겼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브루투스, 너마저도…” 그러나 사실 역사는 그 말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줘야 마땅할 것이다. “카이사르 너마저도” 라고.

 

 

 

카이사르가 살해된 뒤 공화파와 제정파 간의 내전이 벌어지고 그 승리는 막강한 군벌을 형성한 제정파에게로 돌아간다. 제정파의 3명의 우두머리가 임시로 권력을 삼분하는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되는데 거기서 최종 승리하여 로마의 제1대 황제가 된 인물이 가이사 아구스도다. 가이사 아구스도(본명은 옥타비아누스)는 본래 카이사르의 여동생의 외손자로 아들이 없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카이사르 가문의 상속자가 된다. 아구스도는 레피두스를 실각시키고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물리침으로써 삼두정치를 끝내고 원로원에 의해 독재권을 부여 받는다. 이때 원로원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 아우구스투스(AVGVSTVS)다. 존엄한 자. 그 누구도 그의 존엄을 범접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기를 프린켑스(Princeps)라 불렀는데 그 뜻은 제1번 시민이라는 의미다. 원로원에서 제1번으로 발언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죽자 원로원은 그를 신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로마는 지상 유일의 신의 아들 곧 살아있는 신으로써 신성불가침의 프린켑스가 다스리는 제정 귀족사회가 된다. 그리고 이 의미는 프랑스대혁명으로 전제왕권과 귀족 기득권이 무너질 때까지 세계의 지배원리가 된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은 곧 모든 독재 권력과 영구 세습집권의 기득권이 하나님으로부터 합법적으로 부여되었고 따라서 이러한 체제에 대한 거부 및 반대는 신에 대한 반항으로 처벌된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호적

 

단독 지배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독제체제가 안정되자 천하에 호적을 명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이 사단의 충동질로 인구조사를 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역대상」 21) 왜 하나님은 인구센서스를 싫어하셨을까? 왜 성서의 기록자는 다윗의 인구조사를 사단의 충동질이라고 규정했을까? 이 기록은 하나님이 인구 조사를 싫어하셨다는 이야기일까, 민중이 싫어했다는 이야기일까? 아우구스투스의 호적 명령은 단순한 인구조사가 아니라 자기 본적지에 가서 등록을 하라는 특별한 명령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의심자들은 호적이란 거주지 등록이면 되는 것이지 본적지에 가서 등록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 기록을 거짓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시리아 총독 구레뇨의 호적의 역사적 연대를 들어서 복음서 전체의 신뢰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우선 구레뇨의 호적에 대해. 구레뇨가 아구스도의 명으로 시행한 호적조사는 첫 번째 한 것이라는 누가의 설명이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구레뇨의 인구조사는 단 한번 나타나 있고 그 연대가 「누가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의 저서Antiquities에서 AD 6년에 인구조사가 시행되었다고 기록했다. 6년이면 이미 예수가 태어나신 이후로 누가의 기록에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는 구레뇨가 두 차례 시리아 총독을 역임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구레뇨는 두 번의 재임 기간중 각각 호적조사를 실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누가가 굳이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 됐을 때 첫번 한 호적이라는 언급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의문의 표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왜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의구심들이 끝없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의 부재에 있다. 복음서 이외 일반 역사 기록에 예수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왜일까? 메시아 즉 인류 역사의 위대한 인물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은 대개 어디에서 나오는가? 위대한 가문. 왕가의 혈통. 정복자. 국가를 세운 개창자들이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역사는 그런 승리자들의 역사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이사야 53:1~8)

 

만일 당대 로마의 귀족 집단에 속한 지식인이 「누가복음」을 읽었다면 유대 지배 계급에서조차 인정하지 않는 예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것이 예수에 대한 역사의 직접적 언급이 현저히 부족한 이유다. 메시아(구원자)라 불릴만한 자는 이런 보잘 것 없는 출신과 형상을 지닌 사람이어선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의 인식 속에는 인간의 삶속의 보편적이고 거대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음모가 들어있다. 다름 아닌 메시아(역사의 주인공)는 황제 영웅 권력자 귀족 엘리트일 것이고 그래야 마땅하다는 편견이자 착각이다. 이것은 평범한 자, 노동하는 자, 희생하는 자, 고통 받는 자에 대한 멸시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거짓 믿음이다.

 

여러분이 가끔 어떤 영화를 보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주인공이 결국 모두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부자나 지식인 권력자는 항상 배덕한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 속의 신화일 뿐이다. 현실은 무수한 과묵하고 근로하는 영웅들과 희생자들에 의해 전진해가고 구원 되는 것이지만, 그들의 모든 노고와 노력은 소수의 권력자들과 그들에게 결합된 약삭빠른 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언젠간 이 침묵하는 구원자들이 그들의 말을 할 때가 오리라는 것이 역사의 발전 방향이었고 민주주의가 걸어온 과정이었다.

 

 

 

 

지금 11월에 시작된 촛불혁명이 성공하고 훗날 이 역사를 기념한다고 할 때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질까? 백남기 농민의 동상이 세워질까? 사람들은 박정희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세월호의 학생들이나 백남기 농민의 기념물이 건립된다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슨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라고 말이다. 예수의 초기 생애에 대한 현저한 기초자료의 부족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몰이해(은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거부(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 역사성을 잃어버리고 엉뚱하게도 신비화 되고 말았다. 신비화됨으로써 다시 부자와 권력자들을 보호해주는 신으로까지 왜곡되게 된 것이다.

 

호적 문제로 돌아가자. 왜 거주지에서 등록해도 될 것을 본적지로 돌아가 등록하도록 했을까. 이는 로마 제국이 표면적으로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내세우고 있지만 심층에는 공고한 감시와 통제의 혹독하고 잔인한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이 호적 방식은 세금의 확보 뿐 아니라 부랑하는 난민들에 대한 정보와 통제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벌어지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그것에 대한 각국 정보기관들의 정보수집과 난민통제 정책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자고로 제국들이 해체 붕괴하는 데에는 난민발생 곧 세금을 내지 않고 출신이 모호한 유랑민들의 대규모 이동이 원동력이 되었다. 떠돌이들이 결집하고 거기에 불순세력과 지방 세력들이 결합되면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구심이 형성된다. 이 구심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회오리바람처럼 이동하면서 세상을 휩쓸게 되는 것이다. 서유럽은 흉노라 불리는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 집단이나 몽골족의 서진으로 이에 쫓긴 훈족(타타르)이 서진하면서 서유럽까지 휩쓸었던 무서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로마 역시 이러한 동방 타타르계 용병집단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 사람들을 지옥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으로 ‘타르타르’라 불렀다. 아우구스투스의 천하 호적 명령은 그런 배경을 가졌고 이런 지상의 왕 아우구스투스 통치의 배경이 진리의 왕 그리스도 탄생의 배경이자 대립의 의미이다.

 

은마(銀馬)는 오지 않는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산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서으로 가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뜰에서 울 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다들 누군가(어느 때, 무엇인가) 오기를 기다렸다. 매일 눈을 뜨면 보이는 건 논과 밭과 산이었다. 산 사이로 신작로가 나있고 거기서 버스를 타면 시내(용인)로 갈 수 있었다. 용인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수원에 갈 수 있고 수원에서 기차를 타면 서울에 간다. 나는 유년시절 서울에 서너 번 가본 기억이 나는데 구체적인 풍경은 생각나지 않고 버스에 시달린 것과 연탄재 냄새만 기억난다. 우리 외가는 서울의 변두리였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시골보다도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조금 자라자 곧 서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청소년기에 벌써 미국이나 독일에 갈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오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를 누군가를 어느 때를 기다린다. 아빠. 엄마. 오빠. 동생. 남편. 아들. 딸. 손자. 무엇을, 어떤 때를 기다렸을까? 그 기다림과 기대와 소망은 각기 다르고 다양하겠지만 인간다운 행복한 삶, 샬롬,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미가 4:4」)처럼 자기의 생활 안에서 근심 걱정에 쫓김 없는 편안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뭉뚱그려 ‘구원(救援)’이라고 해보자.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런 구원이 풍족한 것이었다면 나는 서울을 동경하지도 미국과 유럽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동경한 그런 곳에는 그런 구원이 풍성해서 우리는 거기 가서 그것을 얻어다가 구원이 부족한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동요와 같이 서울 가신 오빠는 오지 않고 이내 우리의 구원의 꿈과 기대도 사라져 버린다. 한때는 서울의 최고 아파트이기도 했던 ‘은마(銀馬)’는 재미작가 안정효의 소설에 나오는 전설 속 구원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은마아파트는 있을지언정 은마는 없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신화의 시대가 끝나면 전설의 시대가 온다. 신화의 주인공과 전설의 주인공은 다르다. 신화 속의 주인공은 영웅이고 승리자이고 위대한 권력자이다. 그러나 신화의 시대가 지나고 그 신화에 도전하는 또 다른 영웅은 반란자 배반자 패배자의 이름을 얻는다. 우리 민족에게는 오랜 세월동안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애기 장수의 전설이 있었다. 그의 날개가 자라나 날아다니게 되면 마침내 세상을 뒤집어엎을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애기장수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같이 날개가 잘려서 죽게 된다. 그런데 신화학적으로 이러한 전설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지배세력에게 짓눌린 민중들이 만들어낸 슬픈 영웅이 애기장수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의 창작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일부러 지어내 퍼트린 실패한 메시아가 애기장수라는 설이다. 여러분은 이 두 학설 중 어느 것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되는가?

 

아무튼. 신화의 시대가 가고 애기 장수도 죽고 전설도 지워지고 우리들은 자기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곧 내 스스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자기 스스로가 자기에게 오빠이고 은마이고 메시아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이 말은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우리의 인식이) 자각되고 각성된 의미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주체적 자립(自立)을 이루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그 누구(지도자, 권력자, 부모님, 부부간, 친구간, 선생님, 목사님)의, 어차피 부분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에게서 전체적 구원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 안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전체적 구원을 기대하고 발견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은 저 멀고 높은 서울과 워싱턴과 뉴욕과 파리나 베를린 혹은 모스크바를 바라는 게 아니다.

 

예루살렘이나 대형교회나 명망 있는 종교지도자를 사모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이게 진짜 우리들 자신이다!) 내 속에서, 우리들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보다 근본적이고 인격적인 전체적으로 완성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사랑(새로운 관점의 관심)으로. 서로 새로운 관점의 관심으로 자각된 사랑을 함으로써 우리는 무관심하고 비정한 이 세상과 맞서는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 사랑의 발견 속에서 우리는 모든 지상의 가짜 메시아들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게 된다. 그것을 오직 하나님만 바란다고 하는 것이다.

 

이걸 일깨워주려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개인이 구원을 받음과 동시에 그 개인이 공적 그리스도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나약하고 취약한 죄인의 자의식으로 뭔가 눈에 보이는 가짜 메시아들에 의지하고 기대야만했던 옛 자아의 상태를 뛰어넘어 하나의 독립적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가 그리스도적 인간, 신의 아들, 신적 인류로 탈바꿈하는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도 이렇게 신자에게 주어진 권능과 책임에 도달하지 못하여 여전히 그리스도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미지의 메시아로 상정해 놓고 자기의 모든 삶을 그 추상과 관념에 맡겨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삶의 태도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메시아는 본래 없는 공허한 것이거나 거짓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마치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 것으로서 일체의 인간적 노력이나 행위가 없이 무상으로 받는다는 교리에만 입각해 있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노고와 희생을 거저먹겠다는 인민의 아편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교를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저절로 나온다. 어리석고 깨어나지 않은 사람, 어린아이 같아서 잘 속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의심도 회의도 결과도 헤아리지 못하는 민중을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항상 이런 아편 같은 세상에 휩쓸린 사람들을 흔들어 깨움으로써 그 지배자들을 두렵게 한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구약성서는 아들들에 대한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의 이야기다. 선택하고 유기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꼭 그렇게만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의 기록이란 동시통역이 아니라 추후기록이기 때문이다. 선택받고 보니 이게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얘기. 그러나 당시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 당사자들의 선택이 중요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땅을 갈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하와는 아들을 낳는다. 가인의 이름은 ‘내가 하나님과 함께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를 지녔다. 구원자를 낳았다는 기쁨의 표현이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통해 에덴동산으로 복귀할 기대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에덴에서 쫓아내실 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창세기 3:15). 그러나 가인은 시기심 때문에 동생을 죽임으로써 선택에서 탈락한다. ‘아벨(헤벨, 공허의 뜻)’은 무고한 죽음, 폭력에 의한 희생자의 상징이다. 그에게도 본래 어떤 이름이 있었겠지만 성경은 그를 그냥 ‘공허(생기의 뜻도 있음)’라 불렀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존재를 무위의 공허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는 가장 악한 폭력이 된다. 하나님은 그를 대신해 곧 이 공허의 무고한 희생자에게서 이어 나온 아들 ‘셋(대신 줌의 뜻)’을 통해 계보를 잇게 하신다.(창세기 4:25) 우리 모두(셋)는 공허로 돌아간 누군가(희생)의 대신으로 주어진 생명이다.

 

노아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세기 5:29)는 의미다. 역시 에덴동산의 회복을 염원하는 인간 구원의 갈망과 기대가 담긴 이름이다. 그러나 노아는 위로는커녕 홍수로 세상이 깡그리 심판받는 것을 보았다. 훗날 홍수 후에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드는 추태를 보인다(창세기 9). 이것은 뭘까? 왜 노아는 술에 취했으며 벌거벗었을까? 왜 그는 자신을 비웃은 아들 함을 저주했을까? 왜 자기의 벗은 몸을 보지 않고 감싸준 셈과 야벳을 축복했을까? 이것은 노아의 술 취한 절망이다. 술에 취해 그는 돌아갈 가망이 없는 가짜 낙원을 만들고 스스로 벌거벗었다. 함은 그것을 비웃었다. 무엇을? 낙원 복귀의 꿈을. 이미 낙원에 돌아갈 꿈을 포기해버린, 그 절망(갈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는 인류가 나타난 것이다. 자기 아들일지라도 노아가 그 아들과 아들의 아들(가나안) 곧 그 후손까지 저주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메시아(에덴 복귀)를 기다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바꾸면 곧 스스로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메시아) 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

 

메시아를 포기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주셨다. 두 가지다. 땅과 자손. 이삭, 야곱, 그의 열두 아들.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사백년을 살았다. 땅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때가 이르러 모세가 나타났다. 모세는 정치적 지도자이자 시대의 메시아적 인물이었다. 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유아학살에서 살아남았다. 그 이름은 ‘물에서 건졌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이끌고 출애굽(Exodus, 길을 떠난다는 뜻)을 결행했다.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 건설할 하나님 나라의 반석인 토라(תּוֹרָה, 율법)를 선포했다. 율법은 법률이지만 동시에 지혜의 가르침이다. 가르침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지혜. 그 원리에 대한 이해력. 그러한 이해의 충만함이 만드는 국가제도의 종교적 서정성. 그것이 가나안의 자연과 어우러진 하나님 나라의 이상향이었다. 모든 지파와 가문이 땅을 가지고 있고 그 경계와 원칙을 지키며 각기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 그늘 아래서 평화롭고 안전한 삶. 그들이 아직 히브리 노예였을 때 애굽에서 꿈꾸던 천국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사사들의 시대를 거쳐 사울이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첫왕이 된다. 그는 세속 왕의 전형적 실패와 패착을 다 보여주고 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다윗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이 무렵 사무엘과 같은 예언자가 등장한다.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삼두체제는 멸망 때 까지 이어지는데 마지막엔 이 세 가지가 다 타락하고 극소수의 예언자들만이 실패한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게 된다. 이 무렵 메시아의 단절이자 진정한 메시아 도래의 꿈이 생성된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유수 시대에 이스라엘은 고난, 고통, 박해의 나그네 생활 곧 세상의 최하층으로 살면서 ‘도대체 왜?’라는 강렬한 종교적 의문의 해답을 갈구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와 실패의 역사를 기록하고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면서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했다.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도래를 이렇게 예언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사야 61:1~3)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했는데, 그들이 갈망한 메시아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는 참된 왕 제사장 예언자이어야 했다. 그것은 오랜 인간의 역사와 종교적 경험 그리고 성서적 예언의 연구를 통해서 나온 결론이었다. 왕만으로도 아니고 제사장만으로도 아니고 예언자만으로도 아니더라는 것. 자신들과 같은 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려면, 어떤 세상이 와야 하는가? 세상의 왕들을 보니, 세상의 제사장들을 보니, 세상의 예언자들을 보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럼 누구이어야 하는가? 이 셋이 하나이어야 한다. 이 셋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참된 그리스도의 사회를 건설하려면 이 세 가지가 기능적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정치적 지도자, 영적 중재자, 미래의 지시자.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런 메시아를 참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기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다윗 같은 메시아를, 어떤 사람은 엘리야 같은, 어떤 사람은 멜기세덱 같은, 그런데 누가 왔는가?

 

 

 

베들레헴 말구유에 아기 예수가 오셨다. 나사렛 지방 시골 목수의 아들이 나타났다. 가이사 아구스도와 유대왕 헤롯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시대에, 폭군들과 부패한 종교지도자들과 끊어진 예언자의 시대에, 누가 왔나? 예수가 오셨다. 오셔서 예수는 무엇을 했는가? 폭력과 지배의 법, 율법의 세계로부터 사랑과 이타의 법, 비폭력적 사랑의 세계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그는 우선 가르치는 예언자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복잡하고 고상한 랍비들과 달랐다. 단순하고 지혜로운 말씀들. 명쾌한 자유의 선언. 거듭남. 세례. 그는 세상 권력자들의 지배에 얽매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바라보라. 믿음이라는 영적 실제적 본질적 변화의 세계, 믿음이 있어야지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셨다.

 

이것을 깨우쳐 이 세상 지배에 히브리 노예처럼 예속된 자기를 자각하고, 거기에 직면해 십자가를 지듯 그것을 짊어지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비로소 열리고 보이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성전. 새로운 예배. 새로운 신의 나라. 그것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인식상의 깨우침과 생각하는 방식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가운데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깨우친 사람은 자기의 그리스도적 삶 곧 메시아적이고 공적인 삶의 소명을 깨닫고 이 세상에 비참여, 비가담, 비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러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나그네 떠돌이 풀뿌리 민중이란 본래부터 언제나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인데 자각치 못했을 뿐이었다. 자각하면 가난한 자도 메시아로 각성되어 자유로워진 지상의 왕인 것이었다.

 

예수님은 성전의 제사가 아니라 이런 왕적인 삶을 진짜 종교라 했다. 산제사로 자기를 희생으로 드리는 것. 세상 지배자들처럼 자기의 권세와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는 참 제사장으로서 성전을 거부하셨다. 성전을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셨고 그 모든 화려한 건축물이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 선언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리라. 하나님은 이런 예배자 곧 삶과 정신의 예배자를 원하신다고 하셨다(요한복음 4:24). 그는 이러한 참 제사장으로서 세상과 하나님 간의 중재자로 오신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 중재는 어떤 방식이었는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인간이 동료 인간을 자기와 같이 대접하는 예절. 사랑이 곧 새로운 계명(율법)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 그 사랑으로써 우리도 우리가 받고 배운 조건 없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민족, 전통, 율법, 그런 관념이나 의식도 필요 없이. 편견, 불안, 의심, 경계, 이런 분리와 분열도 필요 없이. 예수님은 참된 미래의 예언자로서 자신이 보이신 그 사랑으로 사랑 없는 세상을 구원하라고 우리의 미래를 제시하셨다. 오직 서로 사랑, 오직 서로 존경, 오직 서로 대접, 서로 같이 살아가는 아름다움 단순함 착함으로.

 

가이사냐 그리스도냐

 

그리스도는 너희 안에(우리의 사랑 속에) 자기가 계시고 하나님도 계신다고 하셨다. 세상에 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러 내가 왔다고 하셨다. 내가 곧 하나님 아들이고 메시아라고.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내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인 내가. 배우지도 못하고 유명하지도 않고 중앙무대에서 활약하지도 않은 내가. 예언자에서 제사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을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왕국의 왕, 진리의 왕으로 선언하셨다. 아우구스투스와 헤롯과 빌라도와 안나스와 가야바의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다. 니가 무슨 예언자냐? 니가 무슨 제사장이냐? 니가 무슨 왕이냐? 헛소리! 미쳤다! 신성모독! 바알세불이 지폈다!

 

그러나 그가 표적(sign)을 보이시자 사람들이 몰렸다.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상의 왕과 지상의 제사장과 지상의 예언자들이 합작하여 참된 왕이자 제사장이자 예언자인 그를 십자가에 죽였다. 강도와 같이 반란자와 같이, 저주받은 자의 형상으로 죽였다. 그러나 그를 죽였어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을 근절시키진 못했다. 그가 없어도 근절 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깨닫고 경험한 것을 고백했고 증언했고 전파했다. 무엇을?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 복음을. 이제 난 알았다. 무엇이 구원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가 내 안에 있어 나는 죽고 그가 살았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왕이요, 제사장이요, 예언자인 그. 그리고 거듭나 새롭게 태어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

 

오빠는 없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신화는 끝났다. 그러나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 왔다. 차원과 인식과 관점이 달라진 현실. 내가 구원자다. 내가 예수다.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기쁜 소식을.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모든 인류에게 평화가 되는 소식과 그 방식을. 그것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폭력을 이기는 것이다. 내 안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공동체 속에서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내게서 세상을 봄으로써 가능해진다. 나는 세상의 거울 진리의 거울이다. 내가 세상의 대표자이므로 나의 죄와 슬픔과 미움과 원망과 약함과 그런 것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안에서 내가 얼마나 고귀하고 유일한 가능함을 지닌 존재인지를 자각하니 내가 곧 나에게 왕이고 제사장이고 예언자로서 나의 모든 인생이 새로워진다.

 

이 두 가지. 1)정직한 인식과 직면. 2)그것을 넘어가는 차원 다른 성숙과 지혜. 지혜는 도덕이 아니지만 도덕보다 현명하다. 지혜는 사랑인데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넘어 타자를 환대하는 그리스도적 사랑을 깨치고 배운 사람이다. 사려깊고 온정이 있고 따스한 연민과 냉철함, 공감과 슬픔과 카타르시스를 가진 사람. 종교적 서정성. 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식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 더 이상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게 된다.

 

지금 세상은 가이사 아구스도, 헤롯, 빌라도, 가야바와 안나스,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최순실, 김삼환 조용기 오정현의 세상이 아닌가. 이 세상에 우리의 그리스도는 어디 계신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에베소서 3:17).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태어났는가? 얼마나 자라고 계신가? 옹알이 수준? 초딩? 중딩? 고딩? 대학생? 청년, 중년, 노년? 왕(정치적 지도자)? 제사장(종교가, 예술가)? 예언자(비평가, 철학자, 사상가)? 바울은 말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브리서 5:12).

 

아우구스투스의 천하의 변방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하나님의 아들 참된 진리의 왕 예수가 아기로 오셨다. 아직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주의 부모와 천사들의 초대를 받은 들판의 이름 없는 목자들뿐이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

 

누가 이 의미를 알겠는가! 이제 곧 그리스도께서 무럭무럭 자라나 갈릴리에서 부터 복음을 전파하시고 유대와 사마리아를 누비시며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실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오시기를! 자신의 인격적 결단으로 자기 안에 메시아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우리 모두 새해에는 놀라운 변화와 성숙이 임하기를! 우리 교회와 사회와 나라도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공의로운 세상으로 진전되어 가기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복음이 도래하는 샬롬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오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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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종교회복이다

- 종교개혁 499주년을 기념함 -

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자유인교회엔 네 가지 기념주일이 있다. 창립기념주일, 부활기념주일, 종교개혁기념주일, 성탄기념주일이다. 특별한 행사를 따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기념(記念)’이라 이름 붙인 말 그대로 오래도록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 간직한다는 뜻이 있다. 네 기념일이 다 의미가 깊지만 개혁주의 목사로서 그중에서도 가장 기념할 주일을 꼽으라면 나는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기념주일을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하면, 종교개혁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들 프로테스탄트 교회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선행되는 세 가지 질문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곧 1)종교란 무엇인가? 2)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3)종교개혁의 결과는 무엇인가?

 

첫 번째 종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해볼 수가 있겠다.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반대급부다. 그 무엇인가란 지금 지배적인 현실, 조건, 상태 같은 것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종교란 기본적으로 반현실적인 것,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인 것이다. 왜 그러면 이러한 종교라는 반대급부가 필요할까? 그것은 이 세상 현실이 사람이 존재하고 생존을 유지해 나가기에 합당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는 유한하고, 시간은 종말론적이며, 환경은 잔혹하다.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조건, 유한성, 가혹한 노동, 죄와 악, 타락과 부패, 폭력과 지배, 병과 죽음, 곧 모든 부자유에 대한 반대급부(자유)로 존재하고 반대급부로 존재함으로써만 본질적 의미를 갖는다.

 

그 반대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예컨대 도피이거나 저항이거나 초월이거나 수용이거나. 그러나 단 한 가지 방식만은 예외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타협. 한편 되기. 현실의 반대급부로서만 의미를 갖는 종교가 현실과 타협하거나 한편이 된다는 것은 존재자체의 의의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턴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나 존재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없다. 그런 것은 오히려 더욱 더 악착같이 존재한다. 그럴 때 그러한 종교의 반종교적 현실 속에서 우리는 ‘2)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발견한다. 그리고 2)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때 ‘3)종교개혁의 결과는 무엇인가?’의 그림도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종교개혁 전야에 유럽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교황권력을 필두로 한 지상의 모든 권력은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모든 지상의 권력에 대한 종교의 스탠스에 대해 철저히 반대로 존재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기엔 반대급부라고 할 만한 종교가 없었다. 세상 권세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매개로 혹세무민의 전횡을 일삼았다.(권력은 멀쩡한 사람들을 얼마나 일상적인 바보로 만드는가!) 무지와 미신, 사악함과 부패, 수탈과 탄압, 성직매매, 가렴주구, 우상숭배, 사단적 갑질들이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었다. 민중들은 이런 세상 돌아가는 사태가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누구라 지목할 수도 없는 권력들이 혼돈스럽게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때, 종교개혁의 선각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현실의 반대급부로서 개혁의 불을 질렀다. 그들의 도구는 설교(성서)였다. 말씀을 통한 성령과 불의 세례를 통과한 민중은 오랜 무지와 혼동의 잠에서 깨어났다. 그 결과 개혁운동은 신학적이고 영적인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나중엔 중세 로마카톨릭 체제와 봉건 사회를 붕괴시키고 민족주의와 휴머니즘,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제도적 사상적 예술적 결과로 진전되어 갔다. 곧 종교개혁의 여파로 발생한 정치 사회 제도 사상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냐? 현실(죄와 악과 그로인한 모든 부자유)에 대한 반대급부(자유선언)였던 것이다. 이것이 종교라는 영성의 역동하는 흐름이다.

 

 

<John Calvin by HolbeinWikipedia>


 

종교개혁이 던지는 질문

 

오늘은 499주년 종교개혁기념주일이다.(기념일은 10월 31일) 지난해 마르틴 루터에 대해서 설교했기 때문에 올해는 존 캘빈에 대해 설교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가롭게 역사를 탐방하며 낭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주역인 인물들에 대해 추적해 보는 것은 흥미롭고도 중요한 일이다. 개인사나 가족사나 세계사나 실재했던 사실들을 아주 망각해 버린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작은 애석함에 매달려있을 여유가 없다.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의 역사 속에 마치 종교개혁 전야와도 같은 사악함과 부조리와 부패와 혼동이 대한민국 전체에 만연돼 있기 때문이다. 언제는 기득권과 권력이 깨끗하고 명백하고 정의로웠던 때가 있었던가? 문제는 종교다. 지금 가장 중대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현실의 반대급부로서 존재하는 종교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그것이 도피든 저항이든 초월이든 대안적으로 기댈만한 종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든다.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저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난감할 것이다. 엊그제 페이스 북에는 외국인 남편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이 자기 남편들에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설명하는 데 대한 난감함에 대한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남편들이 자기들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가 마침내 백일하에 드러나고 가련한 금치산자 대통령이 초췌한 모습으로 2분짜리 녹화 사과를 한 이후 한국교회의 대표를 자처하는 한기총과 한교연은 곧바로 개헌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일종의 물타기 성동격서의 방식으로 대통령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여당의 일각에서도 대통령 퇴진주장이 나오고 있는 판국에 왜 하필 교계의 대표자라는 위인들이 대통령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처음 던졌던 질문을 조금 다르게 다시 던져보자. 1)그들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2)지금 종교개혁은 왜 필요한가? 3)종교개혁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아마 그들도 오늘 종교개혁을 기념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기념해야할 종교개혁은 이러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기념이 아니라면 그것을 기념해야할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두 가지 방식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좋은 방식이고 하나는 나쁜 방식이라고 했다. 좋은 방식은 (히브리서 13:7~9)의 방식이고 나쁜 방식은 (마태복음 23:29~33)의 방식이다. 각각 말씀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서 13:7~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복음 23:29~33)

 

첫 번째는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왜 일어났나 하는 그 연원을 추적하고 그 과정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의 현재를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모든 역사의 본질을 지우고 엉뚱한 기념식과 엉뚱한 기념사업으로 그 본질이 망각되도록 대체해 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는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의 회복을, 두 번째는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의 왜곡을 나타낸다.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 방식의 종교개혁 내지는 신앙적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그리고 우리시대의 교회를 대표한다는 자들은 대개 두 번째 그룹에 속해있고 나머지는 침묵 속에 잠들어있고 첫 번째 태도는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로써 종교개혁 499주년을 기념하는 우리가 이제부터 진실로 기념하고 간직하고 전개해 나가야할 종교개혁의 모습이 어떠해야할 것인지 그림이 명백하고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필요성

 

오늘날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필요는 무엇인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봉화를 들어올리기 전과 같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기독교인들이 참으로 무지하고 뒤떨어져 있으며 문맹(文盲)들이기 때문이다. 문맹이라는 표현은 역시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주장될 수 있다. 첫째는 문학적이고 둘째는 종합적 의미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제대로(전체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전체적인 신앙생활이 왜곡되고 있는 것을 읽어내지 못한다. 이 두 가지 의미의 문맹이 만들어 내는 현실이 도덕적 상태의 현저한 하락이다. 과거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든가 성실하고 진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 기독교인들은 스스로가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자긍심이 뭔지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우리들 자신의 종교개혁(믿음)의 제1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믿었을 때 그 사실이 가지는 첫 번째 의미는 그것이 우리들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기로부터 전진해 온 것이다. 그러한 영적 인격적 도덕적 새 출발을 가능케 했던 동력은 무엇이었던가? 복음의 말씀(성서)이었다. 특별히 그 복음의 말씀이란 1세기에 지상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복음서󰡕를 포함한 󰡔신약성서󰡕를 말한다. 이 󰡔신약성서󰡕의 복음의 말씀을 통해 첫째로 이 말씀들에 대해 각성했고 각성되자 그 말씀이 우리의 삶으로 들어왔다. 그러한 변화의 상태는 세상의 세상적 존재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서 누구나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고 자신의 변화를 고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신앙고백이 곧 ‘구원의 확신’이다. 이 구원의 확신이 우리의 진로를 실제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고 그 바꾸어진 진로란 세상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새로운 신앙의 현실이다. 그것이 타협이나 한편 되기만 아니라면 도피이든 수용이든 저항이든 초월이든, 이 공식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리고 이것이 종교개혁이다.

 

루터나 츠빙글리 캘빈 존 낙스 같은 위대한 종교개혁자들 역시 그들의 시대에 세상 현실로부터 신약성서의 믿음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말씀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고 그 자신들이 맨 먼저 그 메시지로 돌아갔다. 그러자 성령이 그들을 사용해 문맹 상태에 놓인 민중들을 각성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지 신약 성서를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설교했을 뿐이다. 그것이 세계(현실)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어디를 향한 진로로 바꾸어 놓았나? 노예해방, 봉건전제의 타파, 절대왕정의 붕괴, 독재의 몰락, 민주주의, 인권, 자유, 평등, 비폭력, 노동조합, 여성해방, 인종차별 철폐와 장애인에 대한 권리, 지방자치, 반전운동, 환경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덕성의 제도화로 인류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도덕성의 제도화가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천국)는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말씀)으로 인한 변화와 그 변화를 각성 시키는 설교(성령의 역사)로 구현되는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도덕성이 제도화되는 세상을 건설하도록 우리를 전진시킨다.

 

재확인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필요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기독교인들이 참으로 무지하고 뒤떨어져 있으며 문맹(文盲)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맹의 현 상태와 우리가 여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1)세속화(사두개주의) 2)도덕화(바리새주의) 3)초월주의(혼합주의) 4)종교성 상실의 상태와 순서로 정리해 설명할 수 있다.

 

  1)세속화(사두개주의)

 

교회는 80년대를 정점으로 자본주의 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사회와 맞물려 지난 30여 년간 급속하게 세속화 되었다. 이른바 ‘오중복음(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과 ‘삼박자(영혼, 물질, 건강) 축복’으로 대표되는 순복음식 번영신학은 십자가의 자기부정이 아니라 반대의 욕망긍정을 정당화 시켰다. 처음엔 이에 대한 신학적 반대와 백안시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되기까지 했지만 결국엔 한국교회 전체가 도리어 순복음에 굴복되는 역전이 벌어졌다. 조용기 목사는 한때 자신을 한국교회라는 골리앗과 싸우는 ‘조다윗’이라 불렀었다. 과연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에 방불할 역전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영적 혼탁이 생겨났다.

 

긍정주의 일변도 신앙의 열매는 확실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지만 그 맛에 취하면 취할수록 세속화는 가속화됐다. 부흥열, 건축열, 대형교회의 출현, 온갖 부패와 금품 스캔들, 권력형 정치목사들의 출현, 교회 안에서 예언이 사라졌다. 담임목사들은 회사의 경영자들이 되었고 부목사들은 직원이 되었다. 경영학, 교회성장학, 상담, 심리, 처세술, 온갖 마인드 컨트롤이 기독교 메시지를 대체했다. 예배에서 설교(성서)의 비중은 줄고 찬양과 기도, 이벤트 등의 비중은 늘어났다. 이러한 세속화의 요소들은 현실긍정과 성공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었고 복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현실의 권세 곧 보수적 세속 기득권과 교회의 정치적 연대가 점점 공고해져갔다. 결국 기득권과 교회의 이해타산은 일체화 되기까지 이르렀다.

 

2)도덕화(바리새주의)

 

도덕화는 세속화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그것은 세속화된 자신들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그들을 반대하는 그룹들 속에서도 나타난다. 도덕화가 내부에서 나타날 때 그것은 무의식적 콤플렉스를 가리는 소도구로 잠시 사용될 뿐이고 그것이 전체 메시지나 메시지가 지시하는 삶의 강조된 내용은 아니다. 흔히 ‘~~해야 한다’로 설교되는 도덕화된 메시지는 세속화된 욕망을 정당화시켜주는 명분으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면 그것은 아예 교회의 세속적 목표달성(예컨대 건축헌금 모금 같은)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세속화를 반대하는 그룹에서의 도덕화 역시 문제를 가진다. 문제란 그들에게 강조되는 것이 다름 아닌 도덕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예배는 지루하고 숨막히는 윤리강론 시간이 되고 신앙생활이란 항상 뭔가 도덕적인 교훈이나 거기에 맞는 삶의 실천을 발견해내어야만 하는 고루한 것이 되고 만다. 그들은 흔히 세상을 어두운 죄에 그늘로 인식하며 그러한 인식을 지닌 자신은 의롭다는 식의 바리새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바리새주의야말로 그 자신에게 어두운 그늘이 되고 자기를 얽어매는 구속복이 되기도 한다.

 

3)초월주의(혼합주의)

 

초월주의라는 명칭은 이들이 스스로를 사두개주의적 세속화와 바리새주의적 도덕화로부터 벗어난 참된 복음을 가졌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기들은 복음의 말씀에 천착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생활에 있어 성서에 대한 해석이나 설교를 대단히 중요시한다. 그 결과 탁월한 복음을 강론하는 설교자 목사가 각광을 받고 그를 중심으로 이른바 마니아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이들을 초월주의라 명명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복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현실로부터 말그대로 초월(도약)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발을 땅에 붙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처럼 복음을 이야기한다. 자기들이 말하는 그 복음을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이 아닌 거라는 배제와 배타가 중요한 결집의 논리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들을 다시 혼합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그들 역시 세속화를 피할 수 없고 도덕화된 자기율법 안에서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바른 복음을 가진 매우 특별한 부류라고 믿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고 착각 같은 것일 뿐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말 자체가 거짓된 것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4)종교성의 실종

 

종교성의 실종은 선행된 세 가지의 결과로 나타난다. 선행한 세 가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가진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을 정통적이라 불리는 교회 안에서 혹은 교의 안에서 발견할 수 없고 자주 그것을 벗어난 지점에서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그리스도인라고 할 수 있을지 회의를 느낀다. 그는 어떤 때는 자신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여기기도 하고 혹은 그런 것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종교적으로 매우 성숙해졌다고 느끼기기도 하고 동시에 신앙을 상실했다고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Marein Luther by Lucas Cranach, Wikipedia>


 

종교개혁은 종교회복이 되어야

 

며칠 전 JTBC뉴스에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이야기가 등장했다.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 장면에는 주인공 청년이 애인과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인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데 주인공은 대답할 말을 잃는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 그는 그렇게 대답한다. 나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는 <상실의 시대>를 누군가 패로디한 <순실의 시대>란 그림을 띄웠다. ‘순실의 시대’란 곧 ‘상실의 시대’인 것이다.

 

세속화, 도덕화, 기만적 자기초월의 과정을 거쳐 우리 기독교는 어느새 종교성을 상실한 상실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우리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시대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무엇보다 기억해야할 것은 종교개혁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일깨워주었다는 점이다. 참된 1)종교성과 함께 2)경건함을. 1)종교성이란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자기부인의 항상 깨어있는 비상한 정신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알고자하는 마음이다. 존 캘빈은 인간의 제1의 목적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했다. 경건함이란 그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겸손함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성이란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진 경건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상태를 가질 때 우리는 그것을 종교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실은 종교회복이라고 불러야 더 마땅할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물론 <신약성서>를 가지고 싸웠다. 그러나 그들이 신약성서에서 발견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는 단지 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성이며 경건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성과 경건함으로부터 구원의 확신이 나왔고 그 구원의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모든 반종교성 반경건의 세속화, 도덕화, 자기초월, 종교성 상실의 현실과 분명하고 명백하게 싸우게 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직설적으로 교회에 나오라 권면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못한 처신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시대를 살고 있다. 교회에 나오라 권하는 대신 교회에 나오든 안 나오든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인으로(?) 살수(도?)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교회에 나오라고 권해보았자 그들이 교회 와서 배우는 것이 위의 네 가지 상태 중 하나라면 의미가 없다. 혹은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다 말은 한다지만 과연 그 말의 실효성은 어떨까? 아무튼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게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신다고 해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은 우리들 자신이 종교개혁 내지는 종교회복의 필요 앞에 직면하고 있음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세속화되지도 도덕화되지도 초월적 자기기만에 빠지지도 종교성을 상실하지도 않고, 세상의 실제적 변화의 원리로 작용하는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성과 믿음 안에서 그 영감(靈感)을 은혜로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종교개혁은 곧 종교 회복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 역사와 사회는 이러한 종교회복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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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시대의 진정한 신랑 찾기

- 마르다 마리아 퍼즐 맞추기 -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언행을 기록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문서이자 경전(經典)이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각 사람의 저자가 자신의 수신자(공동체)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예수의 복음운동의 내력과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과 해설, 곧 설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예수의 언행이지만 자신의 저술 목적(공동체의 현실)에 따라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요리한 측면이 있다. 순서와 세부적인 내용, 그 속에 들어있는 핵심이 약간씩 달라진 이유가 거기 있다. 네 개의 복음서를 다 가진 우리는 이러한 흩어진 이야기들을 통합해볼 필요에 직면한다. 같은 사실(근거, fact)에 대한 제각각의 기록이 전체 복음을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련된 사실들도 그 혼란이 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사람들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정리가 필요하다. 그들은 복음서에서 각별히 중요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집안이 있다면 마르다와 마리아(그녀들의 오빠(혹은 남동생) 나사로를 포함하여)네 집일 것이다. 이 정리를 통해 그녀들이 누구이며, 예수와 어떤 관계이며, 예수의 복음운동에 있어 그들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복음서에서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나아가 예수의 복음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가늠해 보려고 한다.

 

죄에 자기 몸을 바친 한 여자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누가복음 7:36-50)

 

이 기록의 시간대는 예수님의 초기 사역시기에 해당한다. 이때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몸을 일으키셔 가버나움으로 향하고 계셨다. 유대의 북쪽 변방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신 직후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의 이름은 시몬으로 밝혀져 있다. 바리새인 시몬이 살고 있는 동네에 ‘죄를 지은 여인(죄에 자기 몸을 바친 여인)’이 살았다. 그 죄가 창녀의 업을 의미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는 그 동네의 유명인이었을 것이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도, 어린아이들도 그녀를 ‘죄인’이라 불렀을 것이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동료 인간으로 취급해주지 않았던 그녀가 예수의 복음(아마도 가난한 자에게 선포하신 복음)을 들었다. 어느 날 결심하고 바리새인의 집까지 들어와 예수에게 향유를 부었다. 향유는 혼례와 장례 때 쓰는 기름이다. 그녀가 왜 이런 향유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그녀의 직업이 설명해 준다. 그녀는 그것을 다 쏟아 허비함으로써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신랑을 맞아 신혼을 꾸린 삶과도 같다. 그 기념으로 향유를 부은 것이다. 설명이 필요치 않은 복음의 그림, 천국의 장면이다.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과 마을 사람들은 예수의 선지자됨을 의심하며 속으로 수군댔다. 예수는 그녀에게 당당한 죄 사함을 선포한다. 곧 율법이 정한 정죄를 풀어 그녀를 해방시켜 주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인가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누가복음 8:1-5).

 

막달라(Magdalene)는 갈릴리 호수 서안에 있는 도시다. 북쪽에서 시작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그 지방 유력한 사람들(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후원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 열 두 제자와 함께 가장 먼저 거명된 인물이 ‘막달라에 사는 마리아’라는 여인이다. 그녀에게 누가는 ‘일곱 귀신이 나간 자’라는 수식을 붙인다. 왜 그랬을까? 마리아는 당시 흔한 여성의 이름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복음운동의 이력을 밝혀줌으로써 그녀가 어떤 마리아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일곱 귀신이 나감으로써 예수의 복음운동에 헌신하게 된 막달라의 마리아다. 일곱 귀신이 나갔다는 말은 그녀의 병이 일곱 가지나 됐다는 의미일 것이다.(누가의 직업은 의사였다)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부유한 집안의 안주인이었으나 도저히 고칠 수 없는 회복불능의 지병을 앓고 있던 마리아. 그녀가 왜 예수께 이토록 헌신적이 됐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함께 거론된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 같은 여인들보다도 먼저 나오는 것을 볼 때 그녀의 헌신이 특별했거나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50대 정도는 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도 나이고 재력도 재력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예수를 향한 일관된 헌신이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마가복음 16:1-3).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마가복음 1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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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는 최후까지 예수를 따랐고 변함없이 그를 후원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초대교회에서 그녀의 역할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오해가 교회 안에 널리 퍼져있다.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찬송가 211장 1절)

 

사람들은 이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이자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그 마리아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복음서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고 향유를 부은 그 죄인이었다는 근거가 없다. 앞서 살펴보았듯 막달라 마리아와 창녀 마리아는 우선 출신지에서 차이가 난다. 막달라는 유대의 북쪽(갈릴리 바다의 서쪽 기슭으로 가버나움의 남쪽)에 있다. 그러나 한 때 창녀였던 마리아가 살던 곳은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이었다.(뒤에 밝혀진다.) 또 그들은 연령대에서도 차이가 난다. 재력에서도 차이가 난다. 당연히 신분상에도 차이가 난다.

 

이러한 오해가 벌어진 가장 근접한 이유는 누가복음에서 누가가 죄인인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을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인용했기 때문이다. 마치 갈릴리와 가버나움 근방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지방에서 가까운 막달라의 마리아가 등장했는데, 그녀는 일곱 귀신을 쫓아낸 여자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일곱 귀신과 창녀의 더러운 삶이라는 이미지가 혼합돼 버렸다. 그 결과 막달라 마리아는 나이는 젊어지고 신분은 사실과 달리 미천해져 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해도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었던 젊은(‘어린’이 더 적당할 것) 처녀가 자신의 재력으로 예수를 끝까지 후원했다는 것은 모순이 된다. 요한복음에는 이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한다.

 

음행 중에 잡힌 여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한복음 8:3-5)

 

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 에피소드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서기관 바리새 종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수를 궁지에 몰아 고소하려고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음행하다 잡힌 여자(창녀)를 끌고 와 예수 앞에 세웠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율법을 지킬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 지킨다면 여자를 돌로 쳐죽여야 하니 그간 너의 사랑의 가르침이 거짓이 되고, 살려야한다면 너는 율법 파괴자로 즉각 고소당할 것이다.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허를 찌르는 말씀으로 그 둘 사이를 비켜나가신다. 기억할 것이 두 가지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예루살렘이라는 점과 예수님 사역의 전반기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다.

 

베다니는 이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한촌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주인공들인 마르다와 마리아 그녀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살던 곳이다. 오라비가 오빠를 말하는지 남동생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헬라어 원문 ‘아델포스, ἀδελφὸς’는 단순히 남자형제를 가리킨다. 우리말에서 오라비는 일반적으로 남자형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히 남동생을 가리킬 때 ‘오랍동생’(김소월 「접동새」에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은 누나가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접동새가 되어 운다는 얘기가 나온다.)이라고도 쓴다. 여러 면에서 나사로가 그녀들 집안의 중심인물(오빠)이라기보다는 남동생(그것도 아직 어린)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즉, 마르다는 이 집안의 장녀이자 가장이었다. 그녀에게는 마리아라는 여동생과 나사로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그러면 마리아는 누구이고 나사로는 누구일까?

 

마리아를 찾아서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요한복음 11:1-2).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다(요한복음 11:5).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한복음 12:1-3).

 

이제 그림이 그려진다. 우선 이 집의 위치는 예루살렘에서 3Km 떨어진 가난한 촌락 베다니다. 우리는 고대 서울의 외곽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 지를 잘 안다. 11장 1절에서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에 사는 나사로’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5절에선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라고 약간 정정 보충하고 있다. 11장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 사건의 기록이고 이 사건의 파장으로 예루살렘에서는 그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심지어 나사로까지 죽여 없애 그의 기적을 무산시키려 했다. 이 부활 사건 다음에 마리아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사건이 있었다. 거기서부터 ‘마르다와 그의 형제’라는 표현은 ‘마리아와 그의 형제’라는 식으로 순서가 바뀐다. 그것은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사건이 예수의 생애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문제와 결부된다. 곧 왕의 결혼, 혹은 왕과의 혼례라는 요한복음 전체 주제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결혼은 어떤 결혼인가? 죽음과 장례를 준비하는 결혼의식이다. 죽음과 장례로써 함께 부활에 참여하는 혼례의식이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가복음 14:9)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사건을 우리는 누가복음 7장에서 이미 보았다. 누가는 그녀를 죄에 몸을 바친 한 여자라고 했다. 그때는 예수의 사역초기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마태와 마가복음에도 나온다. 두 저자는 동일하게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 조금 더 세부적인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누가는 시몬이 문둥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태와 마가는 그가 문둥이라고 밝힌다. 시몬은 바리새인이면서 문둥병자였다.

 

요한복음이 향유 사건의 주인공이 마리아였다고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과 달리 마태와 마가는 ‘한 여자’라고 씀으로써 누가처럼 그녀를 감추었다. 왜 그랬을까? 사복음서의 저술 순서와 시간을 계산해 볼 때 마가 마태 누가는 마리아를 어떤 방식으로든 숨겨주었고 요한은 밝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요한복음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 기록의 뉘앙스는 무엇일까? 요한은 먼저 기록된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교회에 회람되며 읽혀진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말은 그들이 밝히지 못한 사실에 대한 밝힘의 선언과도 같이 읽힌다. 일종의 ‘이젠 말할 수 있다’다. 왜 이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리해 볼 수 있다. 마태 마가 누가는 마리아가 누구인지를 감출 필요가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내력을 지닌 사람인지를 밝히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고 사려 깊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고의로 누가는 시간상의 순서를 바꾸었고 마태와 마가는 이름을 감추었다. 그러나 요한은 시간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그런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오히려 밝히 알려 주려 하고 있다. 과연 마르다와 마리아는 누구인가? 그 보다 먼저 나사로에 대해 살펴보자.

 

나사로를 찾아서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다(요한복음 11:5).

 

이 진술은 예수의 마르다 일가와의 관계가 상당기간 오래됐음을 알려준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가시는 길에 언제나 베다니를 들렀다. 마르다의 집에 머물렀다. 그 집에는 마르다와 그녀의 동생 마리아와 나사로가 있었다. 같은 동네엔 바리새인이자 문둥병자인 시몬도 살았다. 그는 죄에 몸을 바친 여자로 창녀였던 마리아를 불결히 여겼다. 그녀가 자기 동네에서 몸을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바 예루살렘과 베다니는 불과 3Km 거리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녀가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언젠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붙들려 강제로 예언자라 불리는 예수 앞에 세워졌던 일이 있었다. 예수는 그녀를 정죄하기보다 그녀를 정죄하는 데 가담하고 있는 모든 자들의 율법(해석)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심으로써 그녀를 구출해 주었다.

 

누가는 그녀가 예수께 향유를 부어 죄 사함의 선포를 받았다고 했다. 나머지 복음서는 그녀가 향유를 부음으로써 예수의 장례를 기념했다고 썼다. 예수와 마리아는 그 두 가지를 주고받았다. 아무튼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예수를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마리아였을 공산이 크다. 마르다는 자기 동생을 구해준 예수를 집으로 초대한다. 예수는 그녀들과 동생 나사로를 알게 됐고 늘 그들에게 가서 머물렀다. 여기서 나사로는 일반적으로 이 가정의 가장으로 인식됨에도 그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나사로가 마르다와 마리아의 남동생이었을 가능성은 이미 언급했다. 그 외에 나사로가 남동생은 아닐지라도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복음서의 기록이 있을 법 하다. 어디일까?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누가복음 16:19-21).

 

이 비유의 결론은 31절.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에 드러나 있다. 즉 율법과 선지자를 지식으로 자기의 사회적 계급과 위상과 경제적 이익을 공고히 하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계급들, 유대의 귀족들을 향해, 그들의 신앙의 실제적 비양심과 거짓됨을 드러내신 것이다. 너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씀, 그것이 무엇인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하는 부자들이 있는데,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들의 대문에 누워 그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불리려 하는 거지가 있다. 그런 거지와 같은 생존현실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그것에 상관치 않는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의 율법에 대한 헌신과 충성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런데 여기서 언급된 거지의 이름이 예사롭지가 않다. ‘나사로!’ 그는 예수 자신과 매우 친절하고 예수가 마치 남들에게 보이기라도 하듯 그 집에 가서 머물곤 하는 외로운 가정, 성실하고 신앙심이 깊은 마르다와 몸을 팔며 자신을 세파에 내팽개쳐 버렸던 마리아의 집의 남동생의 이름이다. 예수는 왜 하필 헌데를 앓으며(피부병?)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대하고 문간을 서성거리는 거지를 나사로라고 이름 붙였을까? 이것은 지어낸 비유인가, 실제 존재한 현실인가?

 

우리는 여기서 이 나사로가 실재하는 나사로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나사로는 악성 피부병 내지는 문둥병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베다니에 계실 때 마르다의 집 뿐 아니라 조금 더 살만한 바리새인이자 문둥병자인 시몬의 집에도 머물렀고, 마르다가 자유롭게 그 집을 드나들며 일 할 수 있었다는 데서 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마리아는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의외의 취급을 받았다.) 혹은 베다니에는 이러한 문둥병자와 그 가족들이 극히 가난한 자들과 모여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이러한 베다니라는 촌락,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의 집에 관례적으로 머물렀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고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본래 만성적인 영양부족과 악성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걸을 했을 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런 집의 처녀들과 친밀한 사이였다! 이 모티브는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카잔차키스가 󰡔최후의 유혹󰡕이라는 소설에서 써먹었다. (거기서 예수는(여기서도 엉뚱하게 막달라 마리아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와 혼인한다. 󰡔다빈치코드󰡕도 같은 맥락의 변형된 이야기다.)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은 복음서에 관한 의도적 혹은 무지에서 비롯된 주제적 혼돈일 뿐이다. 다만 복음서(특히 요한복음)가 예수를(인간 영혼의) 영원한 신랑(남편)으로, 종교를 죽음과 혼례가 결합하는 신비로운 의식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만은 어렴풋이나마 인식했다고 보인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를 나사로의 장례에 청한다. 어떤 의미인가? 예수는 마치 그 집안과 장례를 대표할 정식적인 남자로서 부름을 받는다.(어떤 의미로는 예수님 자신이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려 죽은 후에 감으로써 그렇게 만든다.) 그리고 마르다는 예수님이 상가(喪家)에 당도하자 그런 의미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청원을 한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한복음 11:21,2).

 

이 말의 뉘앙스는 기묘하다. 그녀는 동생이 살아날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러면 그녀가 바라는 것, 예수가 바라는 것, 하나님이 주실 것, 그녀가 아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은 여기까지만 말한다. 그러나 예수는 짐짓 그녀의 갈망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의외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다음 표면적으로 마르다의 신앙 깊은 말들이 이어지지만 예수와 마르다의 문답은 겉도는 것이었다. 그 다음 아무런 설명 없이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28절).

 

마르다의 말은 ‘선생님이(내가 아니라) 너를 부르신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러나 마리아 역시 마르다와 같은 식의 말을 주고받게 된다. 예수는 마르다 집안을 대표하는 장례의 상주를 거절하셨다. 그 대신 나사로를 즉각적으로 부활시킴으로써 진정한 주인(주님, 가장, 신랑)으로서 자신의 대답을 하셨다. 마리아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의 복음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고 마지막 예수의 유월절 예루살렘행 직전에 그에게 향유를 부음으로써 혼례와 장례의 의미를 동시에 담은 자신만의 이별의 의식을 거행한다.

 

이 같은 배경을 이해하고 본문을 읽을 때 우리는 전통적이고 협소한 메시지를 뛰어넘는 복음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 38-42).


<By Jan Brueghel the Younger - National Gallery of Ireland, Wikipedia Commons>


 

전통적으로 이 에피소드는 분주한 봉사보다는 예수의 말씀을 듣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인용됐다. 그러나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이 가정과 예수에 얽힌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우리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장의 차이, 생각의 차이, 예수의 반응에 대한 이해의 차원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이 에피소드의 메시지가 여성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겪는 여성의 현실이라는 문제들에 대한 특별한 도전으로 깊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시대를 초월하여 이 같은 여성 문제에 가장 극심하게 노출된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은 아마도 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예수 앞에 돌로 맞아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예수께서 그녀를 구출해주신 사건 후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 사이 예수님과 마리아 집은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됐을 것이다. 마르다는 너무나 고마운 예언자 예수님께 어떡하든 사은의 표시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자기 집으로 그분을 초대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예수의 기본적인 동행 뿐 아니라 인근 거류민들까지 몰려들었다. 과거였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그들(동네 사람들)을 할 수 있는 한 풍성하게 대접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바빠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마리아는 모르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에겐 언니가 생각하는 동네 사람들에 대한 대접, 자기들의 과거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만회, 예수님에 대한 합당한 예절, 그동안의 형편없었던 자긍심을 회복시키고 싶은 간절한 야망, 같은 것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흥, 누가 뭐라던, 어떻게 생각하든 난 아무 상관없어. 지금 나는 예수님 곁에 이렇게 앉아있다니까. 이게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니까. 다른 누구의 눈치도 인정도 필요 없다고.’하는 태도는 아니었을까? 혹은 자기야말로 예수님을 이 집에 초대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자긍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자긍심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예수의 곁에 딱 붙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한 당연한 사실이지만 고대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식사 자리에 함께 앉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예수의 복음운동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언니 마르다는 동생이 야속했다. 어쩌면 꼴 사나왔을 것이다. ‘저 철없는 것, 지금 지가 저러고 앉아있을 때야? 지가 누구야? 우리가 어떻게 살았어? 자기와 우리 집에 대한 온 동네의 평가를 만회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저렇게 경솔하고 뻔뻔하게 행동해서 망치고 있다니. 철딱서니 없는 것.’ 동생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마르다(마르다는 ‘숙녀’ 마리아는 ‘높다, 존귀하다’는 뜻)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가 머리꼭대기까지 차올랐다. 드디어 예수께 가서 넌지시 이른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고소인의 원망과 간청이 담긴, 그러나 예수를 향한 예절과 자기를 향한 애정을 갈구하는 표정이 담겼을 말 같다. 이런 말은 크게 떠드는 게 아니다. 아마 마르다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비스듬히 누워 담소하며 식사중인 예수께 가까이 가서 재빨리 속삭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의외였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대답이 책망의 톤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두 번 마르다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능히 짐작할만하다. 그녀의 분주함과 걱정에 대한 사랑과 친근함과 안타까움이 담긴 표현임이 분명하다. 그 말씀의 일차적 의미는 음식에 관한 것이다.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이라도 충분하다. 이차적 의미는 영생에 관한 것이라 들었을 것이다. 맞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하면 교훈과 설교만 남고 문답을 주고받던 당사자들의 현장성과 역사성이 실종된다. 이차적 의미는 동생(마리아)에 관한 것이다. 그녀를 내버려 두어라. 네가 근심하고 있는 것, 염두에 두고 있는 것, 마땅히 그렇게 했으면 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네 동생은 그런 것들로부터 떠났다.

 

그녀는 자유로워졌고 해방 되었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그 한 가지를 이미 붙들었다.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해주는 단 한 가지. 우리가 그것에 기대어 살아나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그것을 마리아는 붙들었다. 그러니 네가 빼앗으려해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빼앗으려는 모든 시도 그것이 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다!(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네 동생은 이미 자유로워졌는데 너는 이제 또 다시 동생에게서 그것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냐? 동생을 과거에 얽매인 사람으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에 대한 두 가지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마르다는 봉사와 헌신으로 마리아는 자유로워진 영혼으로 그의 곁에 함께함으로써 사랑을 나타낸다. 어떤 사랑이 이 세상에 더 근본적이고 절실하게 요구되는가? 특히 강요된 마르다식 사랑법으로 마리아의 자유를, 그녀의 사랑법을 강제하려는 시도들은 그리스도의 자유와 해방을 무위로 돌려버릴 수가 있다. 그리스도가 해방시킨 사람들을 다시 율법의 틀에 가두어 버릴 위험이 있다. 세상이 항용 그런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존재가 아닌 소유로, Being이 아닌 Doing으로. 그러나 그 소유와 행동은 신적 사랑의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언제나 타인을 의식하는 기제로,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마르다는 그것이 감사해서 예수를 초청했으면서도 어느새 그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그런 것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그렇게 되돌아가버리는 수가 얼마나 많은가!

 

명절을 맞아 분주하게 보냈을 것이다. 여성들은 특히 명절을 준비하고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많은 근심과 마련과 염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분주한가? 명절이란 무엇인가? 음식의 문제라면 몇 가지만이나 혹은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자유로워졌는가? 스스로를 또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는가? 스스로의 또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가? 우리에게 자유를 가능케 하는 그 한 가지(진리)를 붙들고 있는가일 것이다. 명절 증후군이니 명절 이혼이니 하는 말들이 들린다. 특히 여자들을 얽어매는 무수한 부자유와 스트레스들이 명절을 기화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페미니즘도 좋고 남녀평등도 좋고 다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복음에 들어있는 한 인간을 향한 완전한 해방의 진리와 그것을 초연하고 일관되게 표현하는 예수의 감동적인 사랑이다.

 

본문에서 예수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 대한 자신의 각별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신다.(그녀들이 예수를 자기들의 신랑감으로 상상할 정도로!) 그런데 이런 예수를 우리는 우리의 신랑으로 삼고 있다. 신랑이라는 표현이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남성 중심주의라 불편할진 모르겠지만, 아니다. 이런 예수를 진정한 신랑으로 삼고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여성들의 분주함과 스트레스를 요구하는 남성지배의 세상에 대한 저항이고 해방의 의미가 아닐까. 아무려나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부디 다음 명절부터는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한가롭고 조용한 사색과 명상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서로 사랑의 손을 잡고 진실의 눈을 마주치며 함께 앉아보는 기념적인 날이 되기를 바란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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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 주는 편지(6)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심령이 가난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태복음 5:3).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7장 29절까지 이어지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첫 구절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시나이 산에서 모세로 부터 율법을 받았듯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계명으로서 산상수훈을 반포하셨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한복음 1:17).

 

‘은혜와 진리(grace and truth)’는 같은 말이다. 은혜 따로 진리 따로가 아니라 은혜가 진리고 진리가 은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진리가 왔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자기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로 이런 자의식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왔는가? 그건 단순한 일차적 생각이다. 종교적 자각(自覺)은 차원이 다르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한 아이가 부모에게 ‘엄마 아빠는 왜 날 낳았어?’라고 물을 때 ‘우리가 낳은 게 아니라 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야’라고 대답하듯이. 훗날 그 아이 자신이 그걸 스스로 깨닫게 될 때, 나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지만 깨닫고 보니 그것이 아닌 것.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세상에 다시 존재하게 된 나다.”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복음’이란 그 기원이 한 사람에 의해 선포되었던 모세의 율법과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차별성을 부각시킨다. 모세의 율법이란 일종의 불가피한 수단으로서 인간의 악함(연약함)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복음은 그에 반해 하나님이 그리스도(로고스)를 통해 인간의 악과 연약까지 담당(용서, 없이 하심)하심을 일깨운다.

 

이처럼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은혜와 진리의 가르침인데, 그 처음을 ‘팔복(八福)’이라 불리는 한편의 시로 시작한다. 팔복은 운문으로 된 시요 노래요 전체에 대한 서문이고 선언이다. 거기 또 여덟가지 행복이 열거되고 있지만 그 첫 구절이 가장 의미심장하다. 대개 여러 가지 사례를 열거할 때 첫 번째로 거론되는 것 속에 가장 크고 중대한 대의가 들어있고 그 다음부터는 첫 번 피력한 사례에 대한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을까? 심령(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질투는 나의 힘

 

팔십 년대에 기형도(奇亨度, 1960년 3월 13일~1989년 3월 7일)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생전에 그때까진 없었던 독특한 스타일의 시편들로 이름을 얻었었는데 스물아홉 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된 《입속의 검은 잎》이란 시집 속에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가 있다. 이 말은 아마 기형도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지만 그 후 그의 시와는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이 자주 써먹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인은 자신이 가진 것이 탄식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희망의 내용은 다 질투의 소산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그것은 미친 듯 사랑을 찾아 헤맨 것이었으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다. 시인의 고백은 깨우침이기도 하고 성찰이기도 하고 반성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회한 가득한 슬픔이기도 하다. 그 짧은 삶(29년의)의 무엇을 위하여 나(시인)는 그렇게 많은 마음의 공장들을 지었는가. 여기서 시인이 사용한 ‘공장’이라는 말은 본래 거대하고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진 군집체를 의미하는 콤플렉스(complex)를 연상 시킨다.

 

기형도는 60년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다른 시에서 자신은 그 나이에 벌써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고 쓰고 있다. 기형도의 갑작스런 죽음(그는 종로의 어느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 됐다)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스무 살에 그의 신작이 수록된 문예지들을 복사해 가지고 다니며 읽고 외우고 또 흉내를 내기도 했는데, 군대시절 휴가를 나와 벌써 한 계절이 지나간 다음에야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유고 시집이자 첫 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생각에 젖어 고뇌하며 군대로 복귀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의 고백들은 팔십 년대 젊은이들의 가난과 어둠, 욕망과 좌절의 상처와 고통을 대신해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때 우리들(우리사회)은 무엇에 의해, 왜 그토록 많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마음속에 저마다 콤플렉스와 같은 복잡하고 거대한 열망들을 품었던 것일까? 아니 그 힘의 진정한 내용은 무엇일까? 시인이 ‘질투’라고 표현한 것은 정확하고 정당한 것일까? 그는 스물아홉에 1990년대를 맞기 직전 스러졌지만 그 이후를 살아온 우리들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사람의 그러한 질투의 포화상태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헬 조선’이라 표현하는 증오사회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어디서 왔나

 

한동안 몸이 아파서 고생을 했다. 그래 그랬는지 고통에 관한 책들을 꽤 읽었다. 그 중에 ‘고통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속에 원함이 많기 때문’이라는 한 줄이 기억에 남아있다. 원함이 고통을 만든다는 것이다. 원함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기가 막혔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관계 속에서 누군가에게 혹은 사회와 세상을 향해 마치 사랑을 갈구하듯 갈망하는 어떤 원함이 있을 때, 거기서 고통이 발생한다. 그러면 아무 것도 기대하거나 계획하거나 원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좀 미루어 두고 우선 그대로 밀고 나가 보자.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만년을 보낸 타히티 섬에서 그린 연작 중에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림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절친이기도 했던 고갱은 그와 함께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화가라 불린다. 그들은 당시 탐욕으로 물들어 가는 유럽 문명에서 회의 느끼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유사한 정신으로 문명의 비정성과 부조리 세속성, 속물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고흐가 기독교적 세계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 했다면 고갱은 원시적인 낙원 곧 기독교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고갱은 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가서 원시적 자연과 삶속에 들어갔다. 그는 타히티 섬의 원주민들 속에서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고자 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그가 만난 것은 유럽 제국주의 문명의 탐욕과 타락의 전파였다. 거의 모든 당대의 예술가들이 그랬지만, 그는 왜 기독교 문명이 건설한 유럽에서 구원을 발견치 못했나? 유럽과 타히티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령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세계와 우리들의 현실의 차이는 무엇인가?

 

《탄허록》에 보니까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조사(祖師, 불교의 높은 스승)는 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아픈 나로서는 매우 반갑고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탄허는 이렇게 답했다.

 

병종하래(病從何來)오 병종업생(病從業生)이니라

업종하래(業從何來)오 업종망생(業從妄生)이니라

망종하래(妄從何來)오 망종심생(妄從心生)이니라

심종하래(心從何來)오 심본무생(心本無生)이니라

심본무생(心本無生)이어니 병종하래(病從何來)오.

 

병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병은 업으로부터 왔습니다.

업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업은 망상으로부터 왔습니다.

망상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망상은 마음으로부터 왔습니다.

마음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마음은 본래 나온 곳이 없습니다.

“마음이 본래 나온 곳이 없는데, 병은 어디에서 왔는고?”

 

이렇게 말함(깨우침)으로써 병이 마음에서 뿌리 채 뽑힌다는 것. 조사들은 이런 식으로 병을 고친다고 답했다. 비록 그런 경지까진 이르지 못할지라도 이 내용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다. 지금 우리 사회, 사실은 온 세계가 창세기 6장 노아 홍수의 전야처럼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하여 ‘땅에 포악함이 가득’하다. 약한 사람, 없는 사람, 선한 사람, 무죄한 사람들이 악인들과 악한 권력자들에 의해서 날마다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런 무례하고 무정하고 무자비한 폭력들이 어떻게 생겼나? 가령 어머니의 몸 밖으로 태어나는 어린 아기들을 생각할 때, 본래 그들에게 없던 것으로부터 어떻게 이토록 많은 병(病)이 나왔단 말인가? 오늘의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인가(우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죄, 이분법, 탐욕

 

성서는 처음부터 이 신앙이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은, 탐욕에 관한, 탐욕에 대한 형벌과 구원에 말씀인 것을 선포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이란 탐욕의 발생에 의한 새로운 인간조건 곧 인간의 마음의 탄생이 그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탐심이라는 것이 발생하고, 그것을 자기 동일시하고, 그것이 자신의 본질(영혼)과 상관없이 스스로 자아(自我)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때, 거기서부터는 성서에 기록된 모든 문제가 그의 일생에 나타나게 된다. 곧 죄와 형벌과 구원의 문제다.

 

아담과 화와는 뱀(사단)의 유혹에 빠져 금지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딴)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즉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마음이란 다 개별적인 ‘딴 마음’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자기본위의 자기 밖에 위할 줄 모르는 닫힌 정신, 꽂힌 열정이다. 그 내용은 선악(좋고 나쁨)의 이분법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분별심이라고 해야겠지만 그 분별이란 사려 깊고 신중하고 정당하다는 의미에서의 분별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에 의해 변덕을 부리는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나눔이다. 이것을 자기분열이라고 하는데, 이미 분별이 인간의 기본 조건이 돼버렸기 때문에 하나의 분열은 순식간에 수십 가지로 분열된다. 인간이란 그렇게 해서 끝내 자기 마음을 자기 자신도 헤아릴 수 없고 결국에는 자신이 결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치달리게 되어 있다.

 

곧 탐욕이 마음의 근본적인 동력이자 작용이다. 지금 어떤 무식한 기독교인들은 사단이 따로 존재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세력인 것처럼 생각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이렇게 말씀 하신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한복음 8:44).

 

우리를 만들어 온 것은 우리들의 탐욕(욕망)이다. 마음은 곧 탐욕인데 거기서 온갖 불만과 불만족과 그로인한 원한과 모략과 반항과 폭력성이 생기고 자라났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탐욕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말의 의미는 지금 우리를 병들게 하고 괴롭게 하고 비틀리게 하고 파괴하는 모든 파행적인 사태를 한마디로 줄인다면 스스로의 탐욕의 결과라는 말이다. 부디 이 말을 엉뚱한 곳(자학 혹은 변명 혹은 기독교 도사 같은 무정한 논리)에 가져다 쓰지 말기를! 어떤 부패한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도리어 약한 자를 절망시키고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디서든 발견되는 죄와 폭력이다. 가장 시급히 복음을 깨우쳐야할 자들이 있다면 언제나 시급히 저지시켜야할 죄와 폭력의 자아 정체성을(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가진 자들이다.

 

탐심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매우 분명하고 영적(본질적)인 설명이고 과학적인 해설이다. 특별히 어떤 악인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신의 탐심의 결과로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십계명>에 열 개의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 한마디는 ‘탐내지 마라’는 한 말씀에 다 들어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 했고(골로새서 3:5), 율법의 모든 조항을 뭉뚱그린 상징으로 탐심에 대한 금지(로마서 7:7)를 언급한다.

 

거기엔 영적이고 본질적인 원리가 내재해 있다. 다만 세세한 설명이 없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색하지 않거나 사색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런 근원적인 자기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혹은 그중에 무식한 사람은 다만 ‘탐내지 말라’는 문자에 매달리는 것이다. 무엇이 탐내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몇 가지 탐내지 않는 자기 의를 내세우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를 모르는 채 ‘나는 이렇게 욕심이 없는 사람이지’ 라고 스스로 흐뭇해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은 가르침을 즐겁고 달게 받아 그 원리에 이른다.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남에게 양보하고 탐내지 말라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도(道,원리)에 이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이것이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명대(明代)의 사상가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은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을 ‘양지양능(良知良能)’이라고 정의했다. 벌써 깨우친 본성, 이미 가진 재능, 본성의 자각이다. 그래야 거짓이 없는 진실의 지행합일이 누구든지 그의 품성에서 나온다. 양지(良知)는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양반 천민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본래 성인도 범부도 있을 수 없다. 자기에게 양지가 본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사람은 양지를 지닌 사람, 그것을 자각한 사람, 거기를 향해가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양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비록 열 수레의 글을 읽어 박식한 박사라도 끝없이 공자나 주자, 부처나 예수의 말씀이나 인용하고 읊조리는 위선자가 되고 만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절에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일체의 비결’이라는 말이다. 만족과 자족이란 하나님이 주신 상태로 만족한다는 의미다. 있는 그대로 감사하고 자유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평안이고 행복이다. 그러나 거기엔 그럴만한 일체의 비결이 있다. 왜 그러한지, 그것이 가능한지 원리를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왜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상황이 호의적일 때는 감사하고 만족하고 자족하며 탐심을 절제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영락없이 옛날 자기의 탐심의 지배를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만족케 하심을 신뢰 못하는 것이다. 왜 예수께서는 그의 첫 말씀을 ‘심령이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고 했을까?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간다. 여기서 천국은 미래적이 아니라 현재적이다. 내 심령이 가난하다면 나는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지 못하다면 나는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그 곳간이 비었다는 뜻이다. 곳간이란 무엇의 직유인가? 말할 것 없이 마음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첫 조건으로 마음의 빔을 설파하는 것이다. 마음이 비었다! 헤아려 보면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누가 마음이 빈 사람인가? 어느 때 우리는 마음을 비우게 되는가? 무언가를 결국 얻지 못할 때, 해도 해도 안 되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즉 포기할 때이다. 우리는 그럴 때 ‘나 마음 비웠어’ 이렇게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가난해 질 때만 사람은 마음을 비우게 된다.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척을 하면서 하는 비움이란 위선이나 기만이나 허영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 가난했을 때, 그 가난에 대해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온전한 상태에서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그럴 때 가난은 피치 못할 쪼들림이 아니다. 쪼들림마저도 하나의 탐심으로 자각하고 그것마저 비운 상태다. 곧 자발적이고 자각적인 존엄한 가난이 된다.(우리는 그렇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서 신적 존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복음의 원리를 생각해야지 ‘그렇다고 어떻게 마음을 실제로 싹 비운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자꾸 자기 현실을 고집해선 이 ‘비결(祕訣)’에 도달할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집착이 탐심인 것을 아는 때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주가 되는 것이지 그리스도 앞에 내가 여전히 주가 되는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사사로운 이득을 바라고 도를 좇는 사람을 ‘삯군’이라고 했다. 비유하자면 스스로 주인이 못되어 밤낮 일생을 삯받는 직원으로 산다는 말이다. 누구의? 있지도 않은 자기 마음(탐심)의 하수인 말이다.

 

참 사람의 일생

 

고향에 사니 동창들의 부모님의 부음(訃音)에 문상을 가게 된다. 가서는 나는 대개 고인들의 삶과 인생 역정 그리고 최후의 병상 죽음의 순간 등에 관해 묻는다.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일생은 지독한 가난과 가혹한 노동과 무명(無名)과 별것 없는 소득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그 빛 없는 무명(無明) 속에서 생의 희망(빛)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분들은 일생을 그토록 힘겹게 분투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일생의 노고를 생각할 때 진정 하나님께 그들을 받아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보상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또 한편 이런 의문이 든다. 그들은 어쩌면 이제부터 인생을 비로소 살아볼 만 해졌는데, 왜 하필 살만해지면 인생이 끝나게 되는 것인가? 인생은 왜 이렇게 배반적인가?

 

마음을 비운다, 만족한다, 자족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욕심이 없다? 아니다. 우리는 더 큰 욕망을 품어야한다. 진정으로 자기를 위하는 욕망, 자기를 완성하는 욕망, 본래 완성이었다는 것, 결국 그 주신 완성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현혹됨 없이 거기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 그 상태를 유지해 나가려는 욕망, 모든 사람을 그렇게 보고 볼 수 있는 한결같은 안목을 가지는 욕망. 그러므로 너희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耳目) 따위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라. 오로지 자기 안으로 자기를 살펴 하나님의 진리(은혜)의 말씀에 따르는 성(誠, 성실)과 경(敬, 외경)에 이르자. 모든 아프고 눈물 흘리는 모든 존재들을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는 고귀함의 천국에 들어가 살자. 이제부터 ‘질투는 나의 힘’이 아니다. 본래 충만하신 그리스도가 나의 힘, 이 완성을 향해가는 행복의 힘이 너희의 힘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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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9)

 

파추부 노인, 그 아스라한 생존자

 

지난주는 지난해 중동감기로 격리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일 년이 되는 즈음이었다. 마침 완치자 연구 프로그램에서 검사가 있어 서울대 병원엘 갔다. 의사가 가지고 있는 두꺼운 개인기록 겉장에 ‘생존자’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가 생존자로구나.’ 그 사실을 기뻐해야할지 축하해야할지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듣게 된 바로는 당시 입원자들 가운덴 별의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죽음의 위협과 강제 격리 상태에서의 심각한 불안은 환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집에 가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의료진에게 화를 내고 살려달라고 발작을 일으키고, 개중에는 억지로 제압을 해야 하는 피치 못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매우 조용한 환자였다. 나는 거의 말도 하지 않았고 먹지도 못했고 누워만 지냈다. 간호사들이 텔레비전이라도 보시라 권했지만 그런 친절에조차 대꾸를 하지 않을 정도로 마치 대단히 화가 난 사람 같은 까칠한 환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완치 판정을 받고 집에 돌아가든지 죽든지 그 판단을 기다리느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건지 모르겠다.

 

‘생존자’라는 말이 구사일생 치열하게 싸워서 살아난 사람의 의미라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사실 깊은 우울에 빠져 생존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셈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여사의 죽음에 이르는 5단계설(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을 적용해 본다면 수용 직전의 깊은 우울의 단계였다고 할까. 아니면 그 모든 단계가 내 안에서 한꺼번에 들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일까. ‘생존자’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입원한 다음 날 한 노인이 내 옆 침대에 들어왔다. 일생을 강도 높은 노동으로 살아왔음직한 깡마르고 주름진 70대 노인이었다. 침대에 누워 들어올 때부터 그는 의식 불명에 기도삽관 상태였다. 그를 옮긴 의료진이 필요한 모든 장비를 다 갖춰놓고 나간 다음 나는 그의 상태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인간의 생명을 ‘목숨’이라 했던가? 그는 거의 목으로 호흡을 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긴박하고 갑갑한 숨소리가 이어지다가 폭발할 듯 몸을 뒤틀며 엄청난 소리를 지르곤 숨이 좀 터졌다. 그리곤 다시 반복. 게다가 그에게서는 마치 죽음의 전조 같은 노인 환자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썩는 냄새가 났다. 그의 곧 끊어질 것 같은 숨소리는 24시간 계속됐다. 그로인해 우리 방에는 간호사들이 자주 들어왔다. 일상적 검사와 주사나 약물 투여 외에도 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가래를 뽑아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웬일인지 나는 그가 의식이 없다는 사실에 좀 위안이 됐다. 그의 숨소리와 냄새엔 질식할 지경이었지만 결국엔 적응이 되어 무심하게 됐다. 실로 무심이었다.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발에 쇠사슬을 차고 4년의 유형생활을 했던 작가 도스또옙스끼는 멀리 있는 인류는 사랑할 수 있지만 더러운 냄새를 풍기며 옆에 누워있는 동료 죄수 한 사람만은 결코 사랑 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나 역시 그를 보기가 싫었다. 살아나리란 가망이 없어 보이는 그의 상태. 나는 그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당시 나는 감염자들은 결국 다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그걸 상기 시켜주었다. 일종의 내기 같은 것? 우리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죽을까? 상태로 보아 그가 먼저 죽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건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어제는 화장실에서 쓰러져 죽음 비슷한 경험을 했지 않는가.

 

나는 그와 내 침대 사이에 커튼을 쳐 그를 가렸다. 그러나 그를 가리니 그의 침대 건너 창밖 풍경과 하늘도 가려 보이지 않게 됐다. 궁여지책으로 그의 허리 아래까지 만 커튼을 쳤다. 그런데 그 상태에선 하늘과 먼 산의 풍경은 볼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의 기저귀찬 아랫도리와 초등학생들의 반양말처럼 무릎 위까지 신겨놓은 흰 양말이 먼저 보였다.(그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돌아가신 장인의 발에도 신겨있던 괴사방지용 양말이었다.) 나는 그걸 보는 게 괴로워 눈을 감아 버리거나 가급적 시야를 높게 설정해 보고도 안 보이는 척을 했다. 전혀 양심이 찔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내 양심을 눈치 챌 의식이 없으므로, 그리고 내 처지 또한 그와 다를 바 없었으므로, 괘념치 않았다.

 

우리들을 돌보던 의료진중 한두 명의 간호사가 기억이 난다. 방호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생김새는 알 수 없지만 목소리만은 생생하다. 그들은 박완서의 표현처럼 환자를 ‘공깃돌 굴리듯’ 다루진 못했다. 그러나(특히 두 명은) 마치 친아버지를 다루듯 했다. 그들은 의식도 불분명한 노인에게 일일이 그때그때 자기들이 하려는 작업을 설명했고, 진행상황을 말해줬고, 당치도 않게 그를 다그치거나 용기를 북돋우며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처음엔 심드렁했던 나는 점차 그들의 헌신적인 간호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고 환자의 용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한 번은 그의 가래가 막혀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의료진을 불러 들여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나는 점차 그의 침대를 건너 창문까지 링거를 끌고 방안 산책을 다녔다. 둘 사이의 커튼을 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단 한번 의식이 깨어났다. 깨어나자 그는 엉뚱하게도 간호사에게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간청했다. 간호사가 애기 달래듯 핀잔을 주자 담배가 아니라 전자담배라도 좋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말이 아닌 말로 전자담배를 간호사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나는 처음으로 웃었다. 둘이 남았을 때 그는 ‘이게 누군가’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으나 무슨 의사를 전하진 못했다. 나 역시 뭔가 말을 붙여 보지 못했다. 얼마 후 그는 곧 의식 없는 상태로 돌아갔다. 내가 퇴원할 때도 그는 거친 목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병마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에게 인사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일부러. 나는 그가 죽을 줄 알았던 것이다.

 

파추부 씨(氏). 나는 간호사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을 듣고 딱 한번 그가 중국인이냐고 물었었다. 간호사의 대답은 아닐 거라는 애매한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서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양원에서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왔다가 감염까지 된 분이었다. 자식들조차 돌보지 않아 무척 외롭고 안 된 처지의 노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살았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저 깊은 양심의 찔림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 그가 죽었다면 나는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가 살아난 것은 나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다.

 

카뮈의 《전락》이라는 소설은 한 프랑스인 지식인인 변호사가 자신의 내면의 전락(타락) 과정과 그 절망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여러 사건이 나오지만 그중 가장 최초 전락의 원인은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죽어가는 동료의 빵을 가로채 먹어버린 죄책감이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는 자기기만으로 양심을 잠재우고 그는 앓으면서 죽어가는 동료의 빵을 먹는다. 또 하나 유사한 사건은 변호사가 되어 잘 나가던 어느 겨울 밤 파리의 센 강 다리 위 바로 지척에서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을 구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겨울이라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기 싫었다는 이유로 그는 한 사람의 죽음을 방치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서서히 전락해 간다.

 

나는 가끔 ‘파추부’라는 기이한 이름의 노인을 생각한다. 그 이름은 내가 얼마나 살 준비도, 죽을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어설픈 인간인지, 나만의 생사와 안위와 자아의 진퇴를 최종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인지를 상기시켜 준다. 물론 나는 그 일로 전락하진 않았지만. 반성과 함께, ‘파추부 씨, 가래를 빼야 돼요.’ ‘파추부 씨, 기저귀 갈아 드릴께요.’ 하던 방호복 속의 생김을 알지 못하는 간호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파추부 노인.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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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7)

 

결국을 산다는 것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이건 분명 표절이다.) 그제는 존경하는 목사님의 출판 기념회에 갔었고 서울만 가면 도지는 촌병에 더쳐 뒤풀이도 못가고 파김치가 돼 돌아 왔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서울에서 느끼는(혹은 확인하는) 바는 170cm도 못 되는 내 단신의 병신스러움이다. 이런 경우 대개 작음과 못남은 짝을 이뤄 병진(竝進)해 나간다. 작음에서 못남이 발생하는 건지 못남에서 작음이 유발되는 건지 모르겠다. 짐작건대 선천적 육체의 작음이 후천적 도시의 거대함 속에 떨어진 게 사회심리학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내가 사는 시골에선 작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외려 작으므로 편안한 법인데 그대(서울) 앞에만 서면 나는 왜 길 잃은 전쟁미아 꼴이 되고 마는지.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차를 하나 타더라도 지하철을 타더라도 괜한 주눅이나 들어 누구일 턱도 없는 눈치를 탄다. 게다가 좀 외진 모서리에서 마주 돌아오던 여자와 하필 눈이 마주칠 때!(읽는 남자는 깨달을 진저.) 그녀가 놀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녀가 놀랄까봐 미리 내가 더 움츠려 드니 필시 그게 더 의심스럽게 보였을까. 젠장. 원수들이 내 이런 병신스런 모습을 본다면 박장대소 꽤나 통쾌해 마지않을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문명이라는, 특히나 이즈음 대한민국이라는 아주 낯선 대도시에 떨궈진 벌거벗은 인간의 참모습일 거라 느껴마지 않는다. 변명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라면 누군들 아닐까. 본래 인간이란 이렇커니, 거기 더해 길 잃은 나라, 길 잃은 고아 같은 국민의 정신상태랴. 그들에게는 길이 없기는 물론 너무 많기도 해 까딱하면 막다른 골목이거나 아예 벗어나기 태반인 것이다. 그러나 길이 암만 많은들, 풍경이 암만 대단한들, 혹은 그 반대 도저히 길이 없고 적막강산이라도 사람에겐 오로지 제 길 하나 제 맘 풍경 하나 밖에 더 있겠는가. 그 점에선 저 시골의 흙먼지로 안일하게 살아온 원주민이나 도시에서 평생을 누비며 도시먼지로 폐를 단련한 문화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 또한 평등이라면 평등. 나는 겨우 용기를 차려 동점(同點)을 유지한다.

 

모처럼 불려 나온 뜻 깊은 출판 기념 모임에 한 시간이나 넘어 겨우 도착했다. 버스와 택시에 시달린 끝에 비위는 상하고 몸 상태가 급히 나빠져 그만 기념은커녕 참여 자체가 버티기였다. 어영부영 남아있다간 남의 결례가 될 판이고 빨리 돌아가야 하나 갈 길이 멀어 겁부터 났다. 인생이란 참 어처구니 없다. 기껏 왔구나 싶으니 가야하다니. 아내를 부를까 하다가 또 한 번 식구들을 놀래 킬 것 같아 참고 가보자 한 것인데. 에어컨 찬바람에 예민한 몸만 아주 덜뜨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

 

 

 

 

뭐라 대답해야 할까?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쏟아진다. 마루 끝에 겨울 이불을 덮고 누워 앓으며 마당이며 앞산이며 나무들과 풀 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해갈의 쾌락에 떨며 식물들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역시 옥수수가 그중 압권이다. 쑥! 쑥! 흐려진 시력에도 자라는 게 뵈는 것 같다. 그 끝자락 비오는 날 아득히 먼 추억처럼 이 시가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 시를 낭송한 영화배우 이덕화의 낮게 깔린 굵은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그럴 때 이덕화를 보면 ‘배우는 배우’라는 말 백번 동의하게 된다.)

 

접시꽃 당신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덩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1986)

 

내가 이 시를 읽었을 땐 겨우 스물한 살 무렵이었지만 주인공들은 지금의 나보다 십년은 더 어렸을 때다. 연소하고 늙음이 생의 천치를 극복하는데 무슨 조건이 될까. 십년도 더 어린 젊은 부부가 죽음과 작별에 직면해 처절히 깨달아 가는 존재의 결국.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의 아프고 결연한 의지는 그 앞에서 여전히 옥수수 잎처럼 흔들리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자기들의 운명을 이 세상 공통의 숙명으로 자각하며 마치 순교자처럼, 선지자처럼, 개인의 종말을 약속의 책임을 진 종말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실화(實話)는 슬픔의 시적 카타르시스를 넘어 종교적 구도의 숭고함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일이란 끝내 이런 걸까? 몰랐던 거다. 아는 척 넘어간 알음알이에 불과했다. 그저 남의 가정 얘기로, 베스트셀러 시집의 사연으로, 이런 저런 비평의 말보태기로, 무심히 정리해 버렸던 거다. 다행스럽게도 내 일이 아니었음으로.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이런 일들을 겪어냈다. 그 끝에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한 사람은 이 땅에 증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또 어떤 냉정한 사람은 심드렁하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무슨 대수냐’ 물을 수 있겠지? 뭐라 대답해야 할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그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할까? 그렇게 말한들 그 말이 그 의미일까?

 

 

까닭 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제 고단해 보이시던데 괜찮으신지요? 참 좋은 길벗이 시름에 잠긴 듯하여 마음 아팠습니다. 쾌유를 빕니다.”

 

아침에 깨니 문자가 와있었다. 약간의 충격? 어제 북콘서트 끝나고 겨우 축하만 드리고 인사도 안 하고 떠나왔는데. 잠간 비친 내 모습이 역력히 수척해 보인 모양이다. 하긴 내가 거울을 봐도 예전엔 보지 못한 낯선 내가 보인다. 뭐랄까? 몸과 맘과 얼굴이 그대로 거울에 보인다고 할까. ‘고단함과 시름’이라 표현됐지만 나는 그걸 정확히 번역할 수 있다. 빗소리를 완상하다 간단히 미루어둔 답신을 보내려 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젊은 나이에 골골 거리니 면목 없습니다. 몸이 회복 되는 듯 하다간 또 파김치가 되곤 하는군요. 기도해 주셔요. 목사님의 진진한 문장과 마음을 감탄하면서 따라 가 봅니다. 제가 좀 어려서 목사님을 뵀으면 해보기도 하구요. 울울해요. 몸이 아파 그런지 모든 게 아쉽습니다. 저의 개인적 무기력도 이 시대의 무력함도. 목사님의 문자를 대하니 하릴없이 많아진 눈물이 또 쏟아집니다. ㅠㅠ.”

 

간단히 보내려던 답신을 쓰다가 까닭 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서러움일지 아쉬움일지, 내 운명에 대한 어떤 예감일지도 모른다. 눈물을 훔치며 전송을 누르는데 약간의 주저가 따라왔다. 이건 뭐지? 괜스레 화가 났다. ‘그냥 정말 간단히 쓸걸….’ 그리곤 좀 있다 답신이 왔다. 정말 간단했다.

 

“언제든 소중한 벗으로 그리워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시길 빌 뿐입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사와 감격 때문이 아니라 냉정한 거리감 때문이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냉정한 거리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 때문이기도 했다고 해야겠다. 원망이나 섭섭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운명에 대한 결백한 일깨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내 눈물에 대한 답으로서 내게 보내진 인생의 선배, 삶의 선생님의 따뜻하고도 절제된 사랑의 표현이다. 정직하고도 겸손하여 어느 선을 넘어가지 않는, 그러나 정확하고 냉정하여 일견 무심한 듯 나의 전투를 독려하는 전언이라 여겨졌다. 나는 조금 실컷 울고 나서 다음과 같이 답신을 드렸다.

 

“감사합니다. 몸과 맘 말씀으로 잘 간수하겠습니다.”

 

많은 경우, 나는 아직도 내가 인간에 대한 허망한 의지에 매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대부분은 의례적 수사나 냉담으로 내게 대답해 준다. 그러나 때로는 절제된 간결함으로 나를 일깨워 주는 분들이 계시다. 그럴 때면 ‘그들은 어떻게 거기에 도달 했을까’하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든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세상을 잘 못 읽었다. 어려서 문학을 잘못 읽은 것처럼, 최종적 관점을 갖지 못했고, 거기 투철하지 못했고, 언제나 사랑과 위로의 목마름 같은 갈망과 원함의 상태에 머물렀다. 믿는 자라기보다 구도자처럼. 그러니 이제 내 오류를 버려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아픈 것일지라도, 아픔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일지라도, 진짜 보배를 얻었으면 가짜는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아무리 내 일생을 바쳐 획득한 것일지라도, 혹은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 향해 싸워왔던 것일지라도.

 

나는 실패를 인정한다. 이것으론 백전백패일 뿐이다. 나는 그 점을 인정했다. 결국을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임을 그분은 내게 일러 주셨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정말 나를 사랑하여 내게 진실을 보여준 가장 정직하고 투철한 선생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도 투철함은 끝까지 투철함이다. 그것은 해석을 요하지 않는 간결함이고 냉정함이고 동시에 그로인한 따스함이고 사랑이다. 마치 그리스도처럼. 그분이 내 맘을 왜 모르셨겠는가? 모르는 것도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깨어 투철함이다. 그는 내게 다시 말씀한다.

 

“언제든 소중한 벗으로 그리워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시길 빌 뿐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올 테면 와 봐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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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6)

 

헤아려본 슬픔


"당나귀야! 이를 악물고 지나가자. 오르지 못할 산이 없고 지나지 못할 강이 없단다." -모옌, 붉은 수수밭.

 

광풍 같은시간들

 

1년이라는 시간의 매듭을 통해 광풍과 같이 치달렸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 충격과 고통과 슬픔들이 다시금 내 몸과 맘에 재생되는 듯하다. 그 공포스럽고 견딜 수 없었던 감각들이 가족들의 내면에 어떤 상흔들을 어떤 방식으로 남겼을지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다. 그토록 가혹하게 우리를 휘몰아쳤던 세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도 위로도 외면한 채 잠잠하기 야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상에게 그런 걸 기대할리도, 한다할지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기억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것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일 터이다.


 

 

지난해 5월 28일(목) 아버지(장인)께선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 하셨다. 병세가 빠르게 악화돼 당일에 기도삽관 다음날 신장투석 그 다음날 외부혈액순환장치(에크모) 사용에 동의하게 됐다. 그날 비로소 상황이 진정 중대하고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다. 청천벽력. 어찌해야할 줄 몰랐다. 5월 31일(일)에 우리 부부는 격리중임을 무릅쓰고 서울까지 갔었지만 의사의 불허로 면회를 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다시 다음날인 6월 1일(월) 어머니를 모시고 재차 상경해 아버지를 뵐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무의식 상태에서 생명유지장치를 통한 생존을 겨우 유지하고 계신 상태였다. 그 정상을 무엇으로 다 기록하랴. 그러나 정신의학자 칼 융은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의식은 작동한다고 말한바 있다. 비록 기계의 도움을 받고는 있었지만 심장이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나로선 그때의 상태가 일반적인 혼수상태와는 달랐으리란 생각이 든다.

나는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께 어머니와 가족들의 이름과 안부를 일일이 불러드렸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드리지 못했던 감사와 회한의 말씀들을 생각나는 대로 드렸다. 그리고 나의 믿는바 복음의 소망을 말씀드리고 세례를 드렸다. 마지막으로 통곡 속에 큰 절을 올렸다. 모름지기 그분은 가족들이 밖에 다 있는 줄 아셨을 것이다. 나는 가족들이 아버지와 이별하기 어려워 나만 들어왔노라 말씀을 드렸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그날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밤 11시 23분.

그날 이후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내 자신에게 드는 의구심이 있다. ‘왜 나는 그것이 마지막이라 단정 지었던가?’ 물론 최후가 임박했다는 의사들의 결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마지막 인사가 아니라 다시 일어날 생명의 의지를 마지막으로 보다 강력하게 일깨워드렸더라면, 왜 거기까진 생각도 못했나, 하는 자책에 자주 빠졌다. 그때, 의식은 없으신 채 몸은 통나무처럼 차갑고 딱딱했지만, 가슴과 얼굴을 쓰다듬고 잡은 손을 놓기 까지 가슴으로부터 손끝까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전류 같은 게 찌르르 흐르며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떤 반응, 무슨 말씀을 하시려 했을까?

더욱 안타깝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의 최후의 시간들을 지켜 드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과 그 다음을 타인들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장례를 모시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길에서 저지당해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끝내 한스럽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고통스런 일들이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에게 있었다. 격리와 입원, 생사를 넘나들던 고비들, 그것을 고스란히 겪어낸 아내와 어머니와 아이들. 그것은 지은 죄 없는 끝없는 자책과 슬픔이다. 돌아가신 분을 향한 미안함과 그분을 상실한 공허감. 비현실성. 그리고 문득문득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고인의 육체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던 그 모든 불가피하고 불가항력적인 상황 중에 놀랍게도 우리에게 매순간 담대한 용기를 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가 어떻게 풀무불 같은 용광로의 시련을 통과해 냈는지. 그것을 기억할 때,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그의 죽음을 통해서 조차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보다 굳건하고 튼튼한 생활로, 삶으로 우리를 굳세고 깊어지게 해 주셨다고 믿고 싶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동시에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다만 전혀 차원이 다른. 그분은 이제 세상을 떠나 그런 세계에 속하신 거라고. 충격과 공포와 고통과 슬픔이 우리를 거의 죽도록 몰아친 다음 서서히 회복될 때, 나는 옛날과 동일하며 달라진 차원의 마음과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그분 자신이 그렇게 되심으로써.

죽음의 모습은 낯설고 섬뜩하게 느껴질 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무서운 것이라 생각지 않고 믿음이 강한 사람은 그것을 마지막이라 여기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께서는 삶을 사랑하셨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물론 두려워하셨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자신 안에서 두려움을 다스렸다. “이제 곧 치료를 받으시면 괜찮아 지실 겁니다.” 라고 말씀 드렸을 때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쉽지 않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왜 ‘아닙니다. 진짜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분은 자주 모든 것은 ‘팔자’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럴 때 그 말은 비관적 운명론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낙관적 수용을 가리키신 뜻으로 이해된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분은 그만큼 내면이 담백하여 굴절된 양심에 의한 죄책감과 심판의 두려움이 적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이런 것. 신앙이란 교리적으로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과 양심에 작용하는 빛과 어둠, 그 굴절에 관한 문제라는 본질이다. 양심에 있어 거리낌이 없고 떳떳하다는 것은 굴절된 죄의식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께서는 그런 분이셨다. 물론 그는 우리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치부해 버리셨지만.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기억나는 게 한 가지 있다. 장모님은 목사인 사위 앞에서 그런 노래를 튼다고 타박을 하셨지만, 아버지 차에는 즐겨 들으시던 뽕짝 시디가 몇 장 있었다. 나는 사실 그런 노래를 좋아했다. 그중 가장 좋아하셨던 노래가 <사는 동안>이라는 노래다. 그 가사가 이렇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 몫만큼 살았습니다.
바람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은 채로
이별 없고 눈물 없는, 그런 세상없겠지마는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뿌린 만큼 살으렵니다.
가진 만큼 아는 만큼, 배운 대로 들은 대로
가난 없고 그늘 없는 그런 세상없겠지마는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여기서 제일 좋아하셨던(혹은 내가 가장 좋아한) 가사가 마지막 절이다. ‘고지식한 내 인생에 상도벌도 주지 마오’ 이게 말하자면 그분의 인생철학이고 생사관이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 후서 5:8~10)


인간이 죽음을 향해 줄달음치는 것을 사도 바울은 그것을 지향하는 거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왜 그렇게 질주하는가? 하루빨리 심판대 앞에 나아가 선악간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고자 함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금 이 상태가 불안정하니 속히 이 불안상태를 끝내고 온전한 평안의 상태가 되기를 원한다, 그것이 영혼의(인생의 본질적) 소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심판받는 것의 연속인 인생살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게 된다. 그게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상태다. ‘상도벌도 주지 말라’ 역시 심판과 판단을 벗어난 자유 상태의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됐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율법주의가 아니라 복음주의다 이 말이다. 그분은 얼핏 굉장한 율법주의에 권위주의자로 비칠 수 있는 분이었지만 실상은 따스한 인정주의에 자유로운 낭만주의자였던 것이다.


 

 이제 다 지나갔으니 무서워하지 말아라


격리병동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온 이후 가장 괴로웠던 것이 육체의 슬픔이다. 의식하셨든 돌아가셨든 그분이 경험하셨을 육신의 마지막 과정. 그것을 통해 그의 육체는 아주 비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 공허감. 그것은 흡사 사라진 것에 대한 보상으로 새롭게 생겨나 내 몸에 달라붙은 낯설고 이상하고 무섭고 무기력하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비현실이었다. 나는 그 육체의 슬픔과 공허를 체감할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랐다. 그가 돌아가셨음을 다시 확인할 때마다 새롭게 그 비현실감 때문에 절망했다. 부재한 육체의 슬픔은 많은 곳에서 확인 되곤 했다.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을 볼 때, 비슷한 음성을 듣게 될 때, 내 몸의 팔 다리를 감각할 때,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그의 육체에 대한 상실의 슬픔이 휘몰아쳐왔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집에 돌아와서도 자주 그런 낯설고 비현실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죽음의 예감 같았다. 가만 누워있으면 더 절망스러워 차를 끌고 집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혼자서는 충동적으로 다리 아래로 뛰어들 것 같아, 아이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어느 날. 우리는 안성 근처까지 갔다. 거기 함께 밥 먹으러 다녔던 낯익은 지명들이 나왔다. 그중 ‘안중터널’이라는 터널을 지나가게 됐을 때, 그 비현실이 마침내 현실로 느껴지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안중의 그 식당들.(그분은 우리에게 밥 사주시는 걸 무슨 인생의 낙처럼 즐기셨었다!) 이제 다시는 그분과 함께 식사하러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우리가 당한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비참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을 꿨는데, 바로 그 안중터널을 막 들어가려던 순간이 꿈에서 재현됐다. 슬프고 비참해 울부짖었는데 한쪽 하늘에서 초월적인 모습으로 장인께서 생전에 가장 즐거우실 때 짓던 얼굴로 환하게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제 다 지나갔으니 무서워하지도 말아라. 그 터널을 통과해 지나가라.’ 입고 계신 잠바는 나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이었다. 고동색 초겨울 잠바. 무슨 따스한 놀이 공원 같은 꽃이 핀 동산(거기는 추위 따위가 없으리라!)에서 내게 손짓을 하셨다. 꿈에서 깨고 난 후, 그때부터는 최후의 아버지 모습을 생각해도 전혀 무서운 생각이 나지 않고 더 이상 비참한 생각도 들지 않게 됐다. 나는 이런 게 칼 융이 말한 신적이고 예시적인 꿈이라는 걸 알겠다. 그의 따스함, 인간애와 사랑, 자애로움은 돌아가셨다고 사라진 게 아니다. 그에 대한 기억이 내게 살아있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있어 산 우리에게 삶에 대한 사랑과 격려로 영향을 끼치신다.


비록 그분은 혹독한 시련 가운데 외로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나에겐 여전히 자애롭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살아계신 것이다. 오히려 신적인 의미로 우리의 사랑과 기억 속에 함께 하시는 것이다. 육신은 비록 산화되어 유골이 땅에 묻히셨지만, 존재의 신비,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여전히 살아있음을 나는 믿게 된다. 그 살아있음의 약속은 그 어떤 종교적 공로를 통해 획득되는 게 아니라 했다. 본래 우리 영혼의 소망에 따라 값없이 주어지는 은총이라 했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고, 죽음이 없는 믿음 안에, 심판의 두려움이 없는, 상도 벌도 주지 않는, 부활의 세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기치 못한 고통의 시련을 통해 거기에 가까이 가 봄으로써 거울 너머의 그 세계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짐작할 수 있고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그리고 모든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살아있는 우리를 새롭게 살게 해준다.


언젠가 우리 모두 거기서 만날 때. 이 모든 지상의 의혹과 의문들이 풀릴 것이다. 이 공허와 값없음과 비현실이 그만큼 의미롭고 값지고 뚜렷한 것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 하여 나는 아버지께서 그러셨듯이 내 삶에 계속 충실하고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해야겠다. 이 모든 지상의 슬프고 아픈 이별에 대한 보상으로서 다시 만나 이어갈 기쁨의 소망을 포기하지 않으련다. 죽음을 모른 채 질주하는 이 세상은 그런 것에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것을 품고 살아가야겠다. 바라건대 부디 나는 아버지께서 꿈꾸었으나 못다 가셨으리라 생각되는 길을 이어가고 싶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이 자명하다. 다시 한 번. 지난 2015년 6월 1일 메르스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돌아가신 나의 장인 고(故) 조경현(1944~2015)님을 애도하고 다시 만날 세상을 미리 기념한다. 죽음아, 우리게서 떠나거라. 당나귀야, 이를 악물고 지나가자. 오르지 못할 산이 없고 지나지 못할 강이 없단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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