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교회(2)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 제 1회 임진강 민통선 생태탐방로 트레킹 후기 -

1.

날이 흐렸다. 꾸무럭한 하늘이 먹구름 새로 간간이 빗방울을 떨어뜨리는 이른 아침 식구들과 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일산까지 내처 달리는 동안 비가 많이 내리면 어떻게 할까 의론들을 했다. 자유로에 들어서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급기야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단톡방에 날씨 관계로 9km 코스를 6km로 줄였다는 임진강 트레킹 안내소 측에서 알려온 소식이 떴다. 그래도 뭐 그 정도 걸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닌가.

 

다행히 임진각에 도착할 쯤엔 비가 멎었다. 일찍 출발한 관계로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임진각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몇 년 전 가족들과 와 보았다. 망배단이며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노래가 새겨진 노래비며, TV에서 많이 보았던 통일의 염원을 담은 노란 리본들이 매달린 울타리며 6.25 이후 국군 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임시로 가설됐던 자유의 다리며, 탄환에 벌집이 된 채 멈춰진 녹슨 기차며 경의선 철로 분단선의 자취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중국 관광객들이 벌써부터 몰려들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이며 강의 이쪽저쪽에 설치된 철조망 울타리며 강을 따라 펼쳐진 젖은 산과 논 다락과 마을들의 풍경은 아스라한 게 뭔가 아득한 비현실처럼 느껴진다. 분단이고 민간인 통제고 너무나 오래 된 나머지 자연의 일부분처럼 이제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현실이 돼버린 아득함과 아스라함이다. 철조망을 뺀다면 손에 닿는 거리에 펼쳐진 이 풍경에 이상스러운 점은 없다. 이 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그저 흔한 가을 풍경일 뿐이다. 이제 경의선이 복원되고 기차가 운행된다면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까? 남과 북 모든 곳의 역사는?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는 시조도 있지만 의구한 산천이란 눈앞의 이 산천은 아닐 것이다.

 

현재 경의선의 민통선 이남 최북단은 임진강 역이고 민통선 너머에 도라산 역이 있다. 남북한 관계자들의 통행은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도라산을 지나면 비무장지대 너머 장단 역, 판문 역, 봉동 역, 손하 역 다음이 개성 역이니 하나, 둘, 셋, 넷 겨우 다섯 정거장이다. 거기서 26개의 역을 지나면 평양이다. 우리는 이 철도를 경의선이라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평양과 부산을 잇는 철도라 평부선이라 한다. 이름을 뭐라 붙이든 그것이 뭔 상관이겠는가 마는, 이 작은 나라에서 분단이 이렇게 고착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의아스럽다. 작아서 가능한 것인가? 작은 것들의 고집스러움? 모든 이러한 의아스러움들아 빨리빨리 사람들의 뇌리를 흔들어다오.

 

2.

일행은 속속 도착했다. 자유인교회와 지혜교회에서 모인 사람은 35명. 이들이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뭘 시작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로선 막막하기도 하거니와 사실 무얼 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설마 무엇을 안 하자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겠나. 무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안 하자는 것도 아닌 그 사이에 무엇을 함이 있다! 있으려나? 도무지 쑥스러워 말장난 같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함과 그렇다고 무엇을 아니 하고자함도 아니라함 사이, 두 부정 새에서 모종의 긍정이 출현하리라는 믿음이 있다.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한답시고 길을 나선 것이 무슨 캠페인도 아니고 거창한 프로그램이랄 수도 없다. 그냥 걷는 것뿐이다. 탈(脫)예배당이라든가 탈(脫)교의라든가, 호연지기(浩然之氣)라든가 길 위의 사상, 무위(無爲)의 위(爲)라든가 하는 말들을 불가피하게 갖다 대 봤지만, 그건 그저 끌어다 붙인 것이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길 위의 교회를 위해 그럴듯한 한마디를 내놓음으로써 걸음을 시작해야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또 자라목 들어가듯 난감해지리라. 그러나 사람들을 모아 길 위에 나섰으니 화두(話頭) 비슷한 걸 던져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하는 조바심으로 생각해둔 게 있긴 있었다.

 

 

 대충 ‘트레킹이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준비해 두었다. 이 뜬금없는 질문은 얼마 전 화제를 모았던 누군가의 칼럼에서 표절해온 것이다. 사실 무슨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니라 길 위의 교회를 시작함에 있어, 메뚜기 한 무리 같은 우리들 모두의 조바심을 덜어주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다른 말로 바꿔도 그 말이 그 말인 ‘트레킹이란 무엇인가?’는 무수한 변주가 가능하다. ‘걷는다는 건 무엇인가?’ ‘길이란 무엇인가?’ ‘몸이란 무엇인가?’ ‘고독이란 무엇인가?’ 대답이 있을 리 있나. 그러나 이러한 대답 없음으로 모든 의문을 차단하고 그야말로 닥치고 걷는 행위 속에서, 과연 이러한 걸음이 쌓이고 쌓이면 거기서 뭔가 스스로 떠오르고 생각하게 되는 의미가 저절로 생겨나리라 믿고 있다.

 

예루살렘의 대회당이 아닌 광야의 한적한 길에서. 모든 앎(소유)의 서사가 끊어진 자리에서 태초와 이어지는 시원(始原)의 첩경, 그 가벼움과 신비와 신선한 상쾌함! ‘아! 이런 것도 있네.’라는 식으로. ‘아! 이런 것도 예배가 되네.’ ‘아! 이런 것도 기도가 되네.’ ‘아! 자기 발견이 곧 자기부인이네.’ ‘아! 이런 것을 통해 발견하는 재미가 있네.’ 온갖 ‘맛있군(MSG)’에 중독돼 혀의 감각을 상실해버린 사람이 어쩌다 먹게 돼버린 박한 음식에서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깨달음으로 본래 있음으로 충분한 고유의 맛을 느끼고 상실된 미각을 회복하듯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또 무슨 재주로 설명하겠는가. 하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아부할 대상도 없이 말장난을 해대는 아첨꾼이 되긴 싫다. 하긴 교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 하면 세상 어떤 사람들은 그딴 걸 이제 따라하느냐 웃을지 모르니 더욱 하기 싫어진다. 뭘 해도 새로운 걸 해보려면 이런 주눅이 든다. 무책임한 주변머리 없음이거나 실력 없는 아마추어만 같아 곤혹스럽다. 트레킹이란 고독한 것. 마음속에 있는 것. 나를 구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임진강 올레길 안내소의 안내원이다.

 

3.

안내원들은 대개 초로(初老)의 남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해설사’라 소개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이런 해설사들을 볼 수 있다. 능숙하게 일정을 설명하더니 일행을 3열종대로 세우고 인원점검을 한다. 끼어들 여지가 없다.(그래 그냥 가자. 허전하긴 하지만 의미 진지 설명은 여기서 체념이다.) 우리 35명에 개별로 온 부부가 끼어 있었다. 트레킹을 자주 해온 듯 준비된 옷차림이었다.(한 팀이라지만 탐방이 끝날 때까지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사탕을 주었을 때 손을 짧게 내밀어 받으며 고맙다 했을 뿐,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충실했다.) 일행은 가슴에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라 새겨진 노란 천을 두르고 안내원을 따라 민통선 통문으로 갔다. 철조망이 쳐진 울타리 문이 열리고 양쪽에서 소총을 멘 초병 둘이 나타났다. 철모 밑 희멀건 얼굴에 볼 살이 통통하다. 삼엄한 곳을 지키는 군인들인데 웃음이 난다.

 

강변을 따라 타작 철에 내린 비로 하루 드팀 열흘 드팀이 돼 놀고 있는 황금빛 논 다락이 펼쳐져 있다. 강둑을 따라 철조망이 쳐있고 비포장 탐방로가 개설되었다. 순례자들의 발길에 패이고 빗물이 고여 질척인다. 해설사는 앞과 뒤 두 사람이 붙었으나 서로 조율이 잘되지 않았다. 앞선 초로의 남자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다는 데 설명 해주고 싶은 열의가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비가 뿌려 대면서 우산을 펼쳐든다 비옷을 꺼내 입는다 하는 통에 대열은 길게 흩어지고 해설은 무용이 돼버렸다. 모든 게 이렇다. TV 다큐로 보았던 임진강 생태탐방로로 이미 해설은 충분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둘둘 삼삼오오 혹은 혼자. 일행은 추적거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걸어간다.

 

 

사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민통선 내에는 촬영이 금지인데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군인 한사람이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삭제하는 걸 확인하는 임무를 띠고 파견 됐다.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굽니까? 모두의 집중된 궁금증. 접니다, 벌써 삭제했어요. 그래도 확인해야 합니다. 이 길 위에서 가끔 상영되는 소동은 오늘도 싱겁게 끝났다. ‘여군(女軍)이 다 지켜봤는가보다’며 함께 웃었다. CCTV는 여군들이 지켜보는 데 가끔 나이든 남자들이 아무생각 없이 소변을 참지 못해 아무데서나 볼 일을 보는 민망한 희극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해설사는 여군이 다 보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었다. 그것도 풀 칼라(full color)로! 다시 걷기 시작. 비속의 길은 질척해 일행의 행로는 묵묵해졌다. 마치 이런 순례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다행히 6시간짜리 길을 3시간으로 단축한 트레킹은 적당한 중간에 끝났다.

 

4.

인적 없는 시골 마을 정차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안내원 아저씨는 여기서 문산으로 퇴근한다고 했다. 또 다른 신학대학원 상담 과정을 다닌다는 안내원 여자는 금촌이 집이라 했다. 이성복의 「금촌 가는 길」이라는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그건 금촌에 대해 나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이니 몰라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따라온 차를 타고 돌아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뭔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들었는지 누군가 짧게나마 설교를 해주셔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설교를 중시하는 풍토로 신앙(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건 그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건 여기선 그것 말고는 별 볼일 없다는 말도 된다. 그 말은 다른 데서는 설교(만)를 뺀 나머지들이 설교를 빼고도 내세울만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설교(만)를 중시하는 목회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 바로 그걸 하지 않아보려는 것이다. 설교 말고도 내세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마저도 내세울 게 아니다 싶어서다. 사는 데 필요한 건 설교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설교가 사는 일에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작금의 설교만 빼고 나머지가 중요해진 교회의 현실이 증거가 아닌가. 그러나 그나마 그것도 시들해져버린 지금 새로운 길은 고전적 설교의 부흥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또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하나. 차라리 이성복의 「금촌가는 길」의 한 구절을 읽어줄까.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깨어나야 푸른 잎사귀가 될 수 있을까

기어이 흔들리려고 나는 全身이 아팠다

어디서 깨어나야 그대 내 잎사귀를 흔들어 줄까

그대 손잡으면 그대 얼굴이 지워지고

가슴으로 걷는 길

얼음장 밑 환한 집들

 

지혜교회 정 전도사가나 대신 나섰다. 독일에서 13년 공부하고 돌아와 가까이 친하고 싶은 목사를 찾다가 발견했다. 비슷한 말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발견은 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대충 그런 길을 가는 것만 같은 것이었다. 대충 그런 길을 가는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다. 여러 칭찬의 말은 민망했지만(한 팀 아닌 부부가 옆에 있어 신경이 쓰였다. 이 사람들 웃기네! 할까봐.), 고마운 부분이다. 대충 그런 길을 가는 척과 그런 길을 가는 것의 차이는 뭘까? 고독의 차이? 우리가 걷겠다고 나선 길이란 우리가 지나온 저 진흙탕 길이 아니라 본래 이런 길일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고백일지라도. 버스가 도착해 일행은 작은 버스에 꽉 기름을 짜고 들어차 마을길들을 곡예하며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임진각으로 돌아갔다. 승차장에 내리자 곧바로 우박과 함께 격렬한 비가 쏟아진다. 우리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지혜교회 교우들은 파주시내로 자유인교회 교우들은 근처 두부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포로 이사 와서 새로 피자집을 연 집사님 댁에 들러 교우들과 이야기 꽂을 피웠다.

 

 

5.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라는 책이 있다. 아는 목사님이 쓰신 전도용 책이다. 신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기 어렵고 곤혹스러운 사람들의 시대에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신에 대한 신앙을 붙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전신이 아플 때가 있다. 무력감과 함께 서러움이 밀려든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난 이미 다 수락했는데 계속해야만 하는 건가요? 그러면 차라리 돈이라도 주시든지. 아니면 사람이라도. 아니, 아니 용기(勇氣)라도.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열심히 함께 걸었던 지혜교회 병관 형님 곁에서 적당히 모른 척 걸으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가슴으로 걷는 길, 고독하지만 함께 있어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리하여 대충 그런 길이 아니라 그런 길을 가는.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내달 트레킹 땐 둘러앉아 한 사람 한 사람 말을 시켜보고 싶다. 살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말들에 대하여. 우리들 작고 여린 가슴들 속에 하나님으로 깃드신 하나님에 대하여.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어린 생명 다복(多福)을 위하여.

 

*다복이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임신 중이라 약에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아기는 건강하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씩씩하게 건강을 회복해 아기를 잘 보호하고 순산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1. 교회, 길을 걷다 http://fzari.tistory.com/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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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교회(1)

교회, 길을 걷다

-제1회 임진강 민통선 트레킹에 부쳐-

 

한 달에 한 번씩 예배당을 벗어나 길 위에 나서 보자고 시작한 첫 번째 시도로 임진강 민통선 트레킹에 나섰습니다. 두 교회 약 30명이 함께 합니다. 예배도 설교도 기도도 찬양도 없이 그저 함께 걸어보려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예배당과 조직과 교의와 ‘이런 게 교회다운 교회’라는 지난 백년간의 철갑을 두른 틀에서 벗어나 보려고요. 아니죠. 우리가 어머니께로 나올 때 우리가 무슨 기독교도라거나 무슨 교의를 신봉함으로써 인생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 후에 결국 이런 사람들이 됐을망정 사람의 본질인 영혼은 역시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도 가둘 수도 갇힐 수도 없는 것이죠. 인생의 의미란 각자의 길 위에 서서 각자의 길에 적응하는 것일 뿐. 있다면 이 길이라는 공통의 길의 법이 있을 뿐 아닌가 합니다.

 

돌이켜 보면 길에 적응하는 동안 길이 길을 열고 길을 내고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떠나고 떠나고 떠나왔습니다. 어떤 인류의 스승께서 가르쳐준 말씀처럼 ‘모든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믿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깨달은 것으로부터의 자유. 도달하고 이룩한 것으로부터의 자유. 이제 교회라 불리는 모임도 길 위에 나서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안다는 아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이르렀습니다. 교의가 아니고 교파가 아니고 교단이 아니고 우리가 놓인 이 공동의 생존 조건 속에서 길이 길을 가르쳐주기를, 길이 길을 열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거창할 것도 거창하게 주장할 것도 없이 두벌 옷과 지팡이를 지니지 않은 맨 몸과 빈 맘으로 나서보려 합니다. 길을 나선 우리의 몸이 맘이 각자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요? 아무 생각이 없이 걸음에 집중하게 되는 거기서부터 진정 필요한 숨과 힘이 우리의 결핍과 해답을 가르쳐 줄 겁니다.

 

 

임진강은 한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름은 자연이라 그 무슨 법으로도 이념으로도 철조망으로도 댐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한반도를 연결해주는 임진강을 그동안 우리는 한반도를 가르는 강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렇게 믿어왔고 믿다보니 실제로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이제 오랫동안 꿈으로만 말로만 글로만 상상력으로만 꿈꾸고 말하고 쓰고 그려보던 일들이 사실은 본래 현실 그 자체라는 이 쉽고 간단한 진리를 다른 무엇이 아닌 새로운 길 위의 나선 맨몸으로 느끼고 인정해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모든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가 우리의 서로를 갈라놓은 거짓된 임진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겁니다. 비무장 지대에서 총기가 사라지고 자유왕래가 시작된다니 이게 본래 그런 것이 아니고 뭣이었겠습니까. 본래 그런 것을 그런 것으로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눈물과 참혹하고 악독한 거짓들이 벌어졌습니까? 모든 것이 그 거짓의 교의에 종사하며 모든 것이 우리를 옥죄었습니다. 정치나 이념뿐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참 종교였습니다. 모든 본래 그러한 것이 본래 그러한 것으로 인정되기까지 우리를 가로막고 서있던 정신상의 우상.

 

 

 

지난 주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1932년 11월 6일~2018년 10월 22일) 목사님이 소천 하셨습니다. <미스터 선샤인>에도 나온 이 이름은 ‘고귀하고 위대한 이’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책은 단지 몇 권 읽어봤습니다 마는, 기억나는 건 세 가지쯤입니다. 첫째는 자기가 20대에 처음 목사로 부임해 목회를 시작할 때, 그 교회에 가서 느낀 첫인상이 자기 목회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성도들이 한결 같이 개성이 없이 똑 같은 지. 그것이 마치 개성뿐 아니라 지성도 명철도 현명함도 눌려서 상실된 것과 같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자기의 목회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으로 대접해주는 것’, 그것이 되어야할 것이라고. 그렇게 10년을 했더니 그 다음에는 사람들의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두 번째는 ‘이제 바쁘다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인 문제다’라는 말입니다. 저는 ‘바쁘다’는 게 단지 여유를 가질 수 없이 할 일이 많은 걸 가리키는 말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학의 문제가 된 바쁨은 오직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인식상의 고정된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바쁨의 신학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개인의 사업을 멈추고 교회로 가서 목사를 도와 하나님의 사업(교회 일) 열심히 하라는 결론으로 갈 수가 없죠. 그 바쁨이 사회적 문제가 아닌 신학의 문제라 했을 때는 반드시 이대로는 아닌 근원적 사색과 행동을 요구하는 문제의식으로서, 우리가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이라 제시하는 모든 교의와 의식과 봉사와 실천의 종교 전체를 신학적으로 재검토하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 신학적 의미로 지금 교회들은 너무 바쁩니다. 그 바쁨은 게으름이기도 한 것이죠. 너무나 바빠서 정신을 못 차리고 너무나 게을러서 오로지 답습의 보수 말고는 알지를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바쁜 거기에 종속돼 있는 것 말입니다.

 

셋째는 개인적인 것인데,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 중에 하나로 ‘사모의 얼굴은 목사의 이력서’라는 말입니다. 사모뿐이겠습니까? 모든 부인들의 얼굴은 남편의 이력서지요. 또 모든 남편의 얼굴은 부인의 이력서이기도 합니다.

 

 

결론은 결국 하나입니다. 모든 인위에 지치고 피곤하고 메마르고 강퍅해지고 부패하고 오염되고 악해지고 마침내 공허해진 모든 거짓된 말들과 의식과 허세와 사업. 그 모든 이미 아는 척으로부터 모든 이들의 믿고 안다고 믿어온 거짓 종교를 해방시킬 때가 왔습니다. 아니, 2000년 전 유대 예루살렘의 젊은 스승 예수의 말씀처럼 거짓 종교에서 정직을 다해 스스로 해방될 때가 왔습니다. 더 이상 예배당에 갇힌 신은 신이 아닙니다. 더 이상은 교의에 갇힌 신도 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나누고 배제하고 배타하고 구별하고 낮게 보고 정복하고 교화시키려드는 더 강한 신들의 바쁘디 바쁜 종교사업도 더 이상 권장할 것으로 사람들 앞에 내놓아서는 안 됩니다.

 

나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가장된 좋은 것입니다. 이력서는 꾸밀 수 있지만 얼굴을 바꾸진 못하죠. 얼굴은 고칠 수 있지만 영혼으로부터 발산되는 지성과 지혜와 명철의 빛은 조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가 무엇인가를 위해 가장 거룩함과 고결함과 장엄함을 가장하고 꾸며내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영혼의 양심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고 그것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지금 교회라 불리는 추상적 명칭과 그 추상을 힘입어 위세를 부리는 조직에는 신이 안 계시고 역사적으로도 늘 안 계셨고 본래 신께는 그런 사원이 필요했던 적이 없었음을.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 역사적 교회라는 서사로부터 벗어나야지만 진정한 신께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아니 아니라하더라도 결국 그렇게 될 것임을.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로마서 11:33~36)

 

인정할 것을 인정함으로써만 우리 모두를 지금의 거짓된 현실로부터 우리들 자신이 해방시킬 수 있다는 진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교회가 기로에 서있습니다. 부득불 불가피하게 하던 사업들을 끝내야할 때가 온 겁니다. 특히 교회는. 모든 사업(死業)을 멈추고 처음 출발했던 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각자의 역사를 핑계로 하나님의 뜻을 인위적으로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목회는 99.9999%가 부동산이라고. 그러니 우리의 출애굽은 건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겁니다. 건물이 만든 신과 신학과 사업들. 정말 우리가 하나님과 돈을 함께 숭배할 수 없는 거라면, 그것이 맞는다면, 우리는 서둘러야 할 겁니다. 문제라 하면서도 그대로 눌러 앉아 뭉개고 있는 신앙은 이제 내밀만한 이력서가 못될 마이너스 스펙이 될 겁니다.

 

 

아직도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오만하다고, 편협하다고, 또 사랑이 없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늘 그랬으니까요. 그런 거라면 우리는 오히려 모든 저마다 바쁜 사람들의 대충 그러한 진리의 적이 되는 오해도 불가불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가진 것으로부터의 자유, 의지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아는 것, 가진 것, 의지하는 것에 의거해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죠. ‘가난한 너희들은 행복하다. 천국은 너희 같은 가난한 이들의 것이니까.(누가복음 6:20)’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도 교회도 길 위에 서 있고 길을 걷도록 부르신 이것이 또한 신의 부르심이 아닐까요? 이제 우리를 보다 분명한 실제의 길로 부르시는 부르심이 아닐까요? 그러나 교황님 말씀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라’입니다. 우리는 대통령도 아니고 군인도 공무원도 검찰도 법관도 목사도 의사도 사업가도 학생도 어린이도 노인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참되게 아무것도 아님을 알 때 우리는 참되게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걸을 뿐. 길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울 뿐. 그 길에서 평등하게 만나는 예배를 위하여. 신 없는 교회를 벗어나 사원 없는 신께 경배 드리러 예루살렘의 고루한 서사가 끊어진 광야로 나가려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야훼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사무엘상 2:10)’

 

하나님의 자녀의 출애굽(Exodus)을 가로막는 파라오는 그의 화려하고 잡다한 신전과 함께 공허하게 허물어질 겁니다. 세습까지 하며 자기들의 제단을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저들의 바쁨에 비하면 얼마나 통쾌한 하나님의 역사입니까! 오직 맨 몸의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하실 겁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우리의 전도라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한 것 없이 보수를 받은 사람처럼 행복할 겁니다. 다복(多福)과 조이(Joy)와 이수를 위하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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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8)


명랑의 희망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일-


1.

불편당(不便堂)은 또 거기에 있었다. 불편한 것이 삶이라는 것. 그러니 불편(不便)을 편(便)으로 알고 살라는 ‘불편당.’ 가면서, 아니 가자는 말이 나와 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나서 나는 갑자기 그 노래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가난한 시인의 집에

내일의 꿈을 열었던

외로운 고니 한 마리

지금은 지금은 어디로 갔나

속울음을 삼키면서

지친 몸을 창에 기대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졌다고

날아도 날개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어 없어라

이젠 다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아 우리의 고니.


- <고니>(1983), 이태원 노래


그 고니는 나의 모습 그 노래는 나의 고백만 같았다.


2.

나에게 삶은 똑 떨어지는 수학 같은 것이어야 했다. 학창시절부터 수학은커녕 산수도 지지리 못하여 언제나 ‘숫자의 방황’이라 스스로를 칭해 왔으면서도 삶에서는 깔끔한 방정식과 완벽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나는 추구하고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1+2=5(?)와 같이 난데없고 이해불가라 역시 숫자의 방황을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렇게 된 데는 내가 알지 못할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걸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의구심과 의혹으로 인한 괴로움은 줄에 매인 소가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과 같다는 것을.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처럼 벗어나는 것만이 얽히고 조여진 의혹의 그물코들을 단방에 벗길 수 있는 그랜드슬램의 비책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도 가끔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군’의 일괄타결법을 설파하곤 했었다. 1+2 연산의 결과가 5로 나올 때, 너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직 ‘그렇군!’이라고 하라. ‘그렇군’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문제를 타인의 것이 아닌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것을 나의 화두로 삼아, 그것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처럼 풀릴 때까지, ‘그렇군’ ‘그렇군’ ‘그렇군’ 수천번 수만 번을 ‘그렇군’하라는 것이다. 의문과 질문이 끊어진 침묵의 자리에 당도할 때까지. 거기선 의문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품는 나 자신의 에고까지 그쳐 대답을 얻은 충분함, 대답이 필요 없어진 자연(自然), 이미 대답이 된 자족(自足)이 넘칠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배웠고 터득했고 수련했고 유지해 나간다고 생각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남을 가르치기까지 했던 나의 ‘그렇군’이 다만 나의 에고의 또 다른 완강함일 뿐이란 회의가 든다. 그렇다면 뭔가? 삶이 공허에 불과하다면 (벗어나야하는 거야 그렇다치고)왜 살아야하는 것인가? 살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인간(人間)이란 관계가 피치 못할 파행이거나 예정된 어긋남뿐이고 본래 만족할 소통은 그만두고 일관된 정중함이나 예절조차 기대할 것이 못된다면. 인간은 다만 동물이고 예기치 못하고 우발적이며 일관될 게 있을 리 없는 동물적 본능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것이라면. 사람은 왜 어울려 살아야하는 것인가. 다만 서로 물고 먹을 시간에 도달할 때까지의 필요, 아니 물고 먹을 필요를 위하여? 약속을 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진 것 같아 모든 게 다시 시들해진다. 날아도 날개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다.



3.

한 때 머슴을 여럿 둘 정도로 짱짱했던 한옥(韓屋) 불편당의 겨울은 기울어진 그 집안의 가세만큼이나 불편해 보인다. 빗장이 닫힌 옛날식 대문에게는 ‘아이고 할아범 아직도 버티고 계시니 기특하군요’라고 인사라도 건네고 싶다. 날은 추운데 약속보다 빨리 도착해 전화를 걸고서도 한참을 지체한 후 빗장이 풀리고 노인장의 가슴 같은 대문이 열리며 노래 속 가난한 시인이 면을 드러낸다. 코를 마시며 덤덤히 손님을 맞는 초로(初老)의 시인은 금장식만 붙이면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썼던 몽골식 차르의 왕관 같은 밤색 털모자를 썼다. 수도를 떠나 낙향한지 오래된 궁정시인의 모습이 저럴까. 그 세월인 듯 열린 문 사이로 한줄기 찬바람이 풀려서 문간을 휘젓고 나간다.


서둘러 장갑을 빼며 악수를 나눈다. 봄부터 여름내 마당에 꽃과 풀을 키워내던 마법의 보료는 대궁을 꺾고 마른 잎들을 쓸어가는 겨울바람에 오그라든 채 방치돼 있었다. 털북숭이 흰 개 한 마리가 ‘지금은 형편이 이렇답니다.’라고 말하는 듯 개집 주위에 얼려놓은 개똥을 앞에 두고도 낯선 손님들을 놀라지도 않은 순진한 표정으로 맞는다. 만져본 듯 맨질맨질 돼지코보다는 작으나 납작하고 봉긋한 윤기 나는 분홍바탕에 검은 빛이 감돌고 자세히 보면 벌룸거리는 녀석의 얼굴엔 개코만 보인다. 털이 안면을 가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코가 흰둥이의 기분과 인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안녕, 잘 있었냐?’하고 손까지 들어 인사를 건네며 가위로 얼굴을 좀 터줬으면 하는 안쓰러움이 든다. 아니 매번 느끼며 가늠해 보게 되는 것이지만 개의 얼굴뿐 아니라 기우뚱한 불편당 전체를 마술램프 거인의 힘으로 딱, 딱, 각지게 세워놓고 싶다. 잠간사이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집의 뼈대가 튼튼하고 벽이 살아있고 지붕이 날아갈 듯 날렵했던 시절, 머슴들과 주인댁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흥성대던 시절로 되돌려 본다. 그러면 내 앞의 시인도 껑충하고 구부정한 몸매를 꼿꼿하게 펴고, 기력이 되살아나고, 궁정시인처럼 원기왕성 매력적이었을 젊은 날의 몸매가 회복되겠지. 그러나 추위에 곱아 굼떠 허방을 딛는 것처럼 박자가 잘 안 맞는 걸음걸이는 앞선 시인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다 그런 게 산다는 거니 거 너무 불편해 마시오’라고, 불편당은 과묵한 무덤덤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툇마루도 없는 봉당에 신발을 벗어놓고 옛날 행랑방 문 같은 쇠고리가 달린 창호 문을 열고 비로소 차향과 청향과 고향과 효소향이 은근한 난로에 익어가는 따뜻한 방으로 들어갔다.


4.

홀로 산길을 걷다 자주 발걸음 멈추는 곳

두루미천남성 군락이 있지

긴 헛줄기 끝에 긴 모가지를 쑥 뽑아올리고

외로이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두루미를 닮아 친해졌어

가시덤불과 바위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울퉁불퉁한 오르막길 하염없이 걷다

호젓한 꽃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다보면

외로움이 출렁, 온몸을 흔드는 순간도 있지만

입석(立石) 같은 외로움이

또 한 번 출렁, 한 무더기 빛으로 쏟아지기도 하네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일

뒤에 두고 온 두루미천남성이 던져준 빛이네

저물녘 산길을 내려오다보니

이미 오래전 입적해버린 새의 주검 위로

나뭇가지에 열린 새들 뱃종뱃종 명랑의 둘레가 되고


- 「명랑의 둘레」, 고진하, 《명랑의 둘레》, 문학동네, 2015.




5.

난 아직 시인의 명랑을 명랑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걸 알려면 산골에 들어가 젊은 날을 살아내고, 긴긴 겨울을 개들과 함께 나는 적막과 치열을 통과하고, 이제는 두루미처럼 길게 뺀 외로움 속에서 홀로 피어나 홀로 가는 출렁임 속 환한 둘레 그 빛을 보아야하는 걸까? 삶은 이렇게 춥거나 곱거나 굼뜨거나 거추장스럽거나 불편하거나 난데없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난해하거나 공허하거나 말짱 도루묵이거나 하여튼 못생기고 못난 것들의 대잔치일 뿐인데. 나는 그런 것들을 다 어떻게 통과하고 길 가 새 한 마리의 주검에서도 그 새의 입적의 거룩함 앞에 산 목을 축이는 두루미천남성 같은 명랑의 둘레에 도달할 것인지. 아니 명랑의 둘레가 될 것인지. 아니 그냥, 새의 주검처럼 이미 오래전 죽은 삶의 온갖 불편함 속에서 노이로제 든 가슴으로 답답할 것인가.


같이 차를 타고 나가 오리구이집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 저물도록 난롯가에서 차를 마시고 환삼덩굴이 찹쌀가루와 만나 어우러진 떡을 구워 역시 잡초들과 엿기름과 대추 등이 만나 어우러진 조청에 찍어 먹었다. 차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떡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조청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효소는 저절로 된 것들이 아니다. 나는 그 일일한 수고와 공정을 다 기록할 정도의 수고조차 겁이 나 그것을 다 하나로 뭉뚱그려 불편함이라고 기술하련다. 그것들은 온갖 불편을 통해 온갖 깊은 색과 맛을 내는데, 나는 그것을 눈물이 날 정도로 황송해 하면서 간단히 얻어먹었다. 먹으면서 속울음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뭔가. 삶은 왜 이렇게 완성되지 못하는 것인가. 신학교 입학 이래로 시 한편 못 써보고. 시를 못 써 생긴 병도 아니면서 시 생각이 났다.


아내가 사모님께 살림을 새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경건(敬虔)’이란 말이 떠올랐다. 경건이란 무엇인가? 새로 배우고 싶었다. 나의 모든 신심(信心)과 나의 모든 공경과 나의 모든 정성을. 그런데 정말 새로 배울 수는 있는 걸까? 시인의 시처럼, 사모님의 정결한 음식처럼, 연구와 연구, 창조와 창조, 몰두와 몰두, 아무도 봐주는 이 없이 이룬 두루미천남성 군락처럼, 구르는 돌, 창공을 나는 새처럼, 자기 자체의 결핍과 필요와 거추장스러움과 수고로움과 번거로움과 온갖 불편함 속에서 바로 그 불편함의 피치못할 열심이 피워낸 삶의 경건. 그 경건이 진한 색과 맛과 향을 자아내는 숙성된 효소와 고아낸 조청과 덖어낸 차로 빚어진 것이다. 아무도 보는 이 없고 알아주는 이 없으므로 정말 거룩한 예배와 정결한 경건으로. 예배나 경건 따위 생각도 생색도 없는. 그러니 이토록 많은 의혹과 의심과 경계와 탐색과 탐심의 둘레에 둘러싸여 몸을 빼지 못하는 내가 저 명랑한 명랑의 둘레를 알기나 하겠는가.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제까짓 게 뭐라고. 어느새 나는 또 명랑의 그 환한 둘레에 낀 명랑의 동료가 되고 싶은 탐심이 든다. 기온이 급강하하며 한파경보가 내린 저녁, 시인 부부의 밭에 심기운 겨자씨 한 알이 이룬 명랑의 둘레가 사방팔방 공허의 공중을 부유하다 지친 새처럼 피로해져 찾아든 내게 다시 힘을 아낄 깃을 내주었다.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그런데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명랑’이란 도대체 뭘까? 묻지는 않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내 마음에서 이런 말씀이 들린 듯 했다. ‘외론 것은 외론 그대로 놔둬야지, 알려고 하지 마라.’ 이제부터 외론 나를 외론 그대로 나둬야지. 아야야! 명랑의 오로지 명랑함이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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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7)


종교개혁 500주년에 찬물을 끼얹은

명성교회 세습사태에 직면하여


●한국교회의 세 가지 근심(三患)


오늘 명성교회와 김삼환, 김하나 목사 부자에 대한 말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이들이 자기들의 입으로 어떤 비난이나 욕도 감당하겠다고 했으니 ‘그래, 그렇다면 내 욕을 한번 먹어봐라’ 하는 뜻으로 일부러 하려고 합니다.


과학적 검증을 거친 학술적 견해는 아니지만, 한국교회에는 세 가지 근심거리(삼환)가 있습니다. 첫째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목사된 것. 둘째 그 사람이 목회에 성공한 것. 셋째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졸부가 삼가 할 줄 모르고 교계의 원로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 출발과 과정과 성공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를 성찰할 줄 모르는 일관된 비루함입니다.


제가 알기로 기독교 신앙에 있어 자격을 갖추고 성취를 이루고 스승의 반열에 거론되는 위인들에게 가난도 있고 고난도 있고 박해도 있고 슬픔도 있었지만 비루함이 있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비루함이란 고귀한 품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비루(鄙陋)와 고귀(高貴). 이것이 세속(世俗)의 혼란스런 홍진(紅塵)과 진리(眞理)의 분명한 밝음을 구별하는 척도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다른 게 아니라 세속적 욕망과 갈망에 대한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지위와 체면에 어울리지 않는 염치를 드러낼 때 그가 갑자기 미쳐서 그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색이 드러났다. 그가 본래 그런 위인이었음이 밝혀졌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대한 비루하고 고귀한 태도는 한순간 하나의 사건 속에 갑자기 돌출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전래 1백년 역사 동안 한국에 꽃핀 기독교 신앙에 있어 고귀함이란 무엇일까요? 가령 미국 식민지 시대의 청교도 사상가이자 목사 신학자 원주민 선교사였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를 논할 때 ‘그는 현대 미국의 사상과 감정을 완성했다’ 그런 표현을 합니다. 그의 신앙적 신학적 고귀함이란 기독교는 물론 미국 사회정신의 뼈대를 이루는 영감과 윤리의 기반을 닦은 고귀함이라는 헌사(獻詞)입니다.


한국 기독교 특히 교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보수주의 신앙계에 있어 소위 세계적으로 성공한 교회 지도자들은 있을망정 한국적 기독교 정신의 고귀한 정점을 이룬 인물이 누가 있을까요? 예컨대 1967년 해인사 방장으로 취임해 동안거 백일 동안 연속한 법문으로 ‘선(禪)과 교(敎)를 중도(中道)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설명’함으로써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성철(性徹, 1912~1993) 스님과 그의 󰡔백일문답󰡕(1992)에 비견될 한국 기독교의 정수를 집대성한 고전적 설교가 있습니까? 과문한 소견이지만 저는 목사들에게서 그런 사상사적인 설교를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 사상을 우습게 여기는 설교는 많이 들어봤지요.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가르침이 있을 뿐입니다. 검든 희든 고양이가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목사는 목회에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일단 규모가 커지면 신학이나 영성이나 카리스마는 저절로 생긴다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대형교회의 예배당에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군중심리에서 발산되는 감정의 힘과 영적 고양의 분위기를 그 위험성만큼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힘을 숭배하거나 함몰되지도 않지만 부정하거나 폄훼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런 정서(情緖)를 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심을 가집니다. 요컨대 어떤 물건에 긴요한 효용성이 있다면 그 물건은 반드시 그것이 요청되는 곳에 소속돼야하는 것이죠. 조나단 에드워드의 말대로 그것은 하나의 정서이지 신앙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서가 신앙으로 오해될 때 신앙은 고귀함으로 진전될 수 없고 그 모든 역량은 유치한 자기 확인으로 돌아갑니다. 옛날 제가 청소년 시절 우리 양지면에서는 ‘네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유치원 원장하고 결혼한 당구장 주인’이라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명성교회 세습사태를 보면서 떠오르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세상을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아버지나 아들이나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참 그럴듯한 말을 많이 잘 합니다. 그러나 말마다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찌질 합니다. 겉과 속이 양심적으로 투명하고 사심(私心)이 없고 격조가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품격이 없고 말마다 떳떳치 못한 변명만을 늘어놓으니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비겁하고 비루하다 이 말입니다. 그들은 기독교계와 사회지성계 전체를 어리석은 바보쯤 여기는지 자기들의 알량한 말재간으로 교묘하게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만인지 어리석음인지, 이게 그들 목회의 비결인 셈이죠. 말하자면 때리지도 않았는데 맞은 척 언구럭을 떨면서 엄살 부리며 동정심 유발하기! 그러나 그건 욕망을 포기 못하는 자의 미성숙함에서 나오는 비루한 태도일 뿐입니다.


목사는 세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첫째 설교 준비. 둘째 짐 쌀 준비. 셋째 죽을 준비. 이것들은 순서적입니다. 설교 때문에 짐을 싸고 죽을 준비가 됐느냐 입니다. 제가 그럴 준비를 갖췄다는 허영이 아니라, 도무지 왜 신학을 하고 목사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겁니다. 명성교회에는 제가 알기로 김삼환, 김하나 부자 목사 말고도 목사가 수십은 더 넘을 것입니다. 목사가 수십이 넘으면 전도사는 또 얼마일까요? 그런데 누구하나 그 비루하고 비겁함을 질타하고 지적하는 설교를 하는 목사도 없고, 그 일로 짐 싸는 전도사도 없으니, 더구나 죽을 준비라는 건 얼마나 심한 과장이겠습니까. 이것이 사람들이 탄식하는 ‘한국교회에는 자정능력이 없다’는 말의 현실입니다.


만일 명성교회의 전체 목사들이 부자세습에 반대해 일괄사퇴를 선언한다면? 전도사들이 명성교회와 같은 세습교회에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그래도 그들이 욕망을 포기할리야 없겠지만,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살아있고 자정능력이 있는 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김삼환 목사 부자만 탓할 일도 아닐뿐더러 바로 그런 이유로 김삼환, 김하나 부자야말로 한국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의 선진들 앞에 대역죄인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서넛이 아니면, 그들이 곧 종이 임금된 것이 아니면,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이 아니면,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이 아니면,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 아니면, 성서는 더 이상 현실적 대상을 잃은 고문서(古文書)에 불과한 것입니다.


●궁상과 청승으로서의 신학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받아들이지만 어리석은 자에겐 하나님이 없습니다(잠 1:7). 입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들먹이겠지만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막무가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씀한 ‘예언하는 자의 영이 예언 하는 자의 제재를 받는다’(고전 14:37)는 진리의 법칙을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법(法)이 없고 격(格)이 없다는 말이죠? 왜 그럴까요? 졸부(猝富)의 성공이란 본래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쯤은 거짓말이겠지만,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측이 가능했죠. 과연 김삼환 목사 같이 한국교회의 세 가지 근심거리를 다 갖춘 위인이 세습의 욕망과 갈망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비루한 사람은 절대 자기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라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그랬던 거지요. 한 가지 사례를 들어 검증을 해보겠습니다.


세습 문제가 불거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말을 바꾸더니 부자지간에 번차례로 공을 주거니 받거니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그것도 안 통할 때쯤 아버지는 노회를 불법적으로 장악해 거의 깡패처럼 세습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킵니다. 아들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어르신들께서 그렇게 하셨다는데….’ 이런 식으로 딴전을 피우다가 돌연 아빠에게로 달려가서 담임목사 취임을 해버린 것입니다. 닭 쫓던 개 지붕 처다 보듯이 모두가 이 어처구니없는 부자의 행태에 ‘어이가 없네’하면서 혀를 차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쯤 명성교회의 장로라는 사람이 이런 대단히 은혜로운 말을 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세습)은 끝났으니 그만 좀 비난해 달라.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다.” 말하자면 이게 그들의 신학입니다. 어차피 세습은 완료됐으니 이제 그가 잘 맡아서 잘 해먹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교회가 이 일로 비난받고 욕을 먹으면 예수님이 슬퍼하신다. 그런데 슬퍼하는 정도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신다’고 했습니다. 묻겠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파티마의 성모상도 아닌데 어디에서 어떻게 눈물을 흘리신단 말일까요? 설마 저 우주공간 어디 달나라의 계수나무 뒤에서라도 인간 세상과 명성교회를 내려다보시며 울고 있다는 말인가요?


말하자면 이런 게 명성교회의 신학이고 설교인 셈입니다. 한마디로 궁상이고 청승입니다. 이런 궁상과 청승으로 지난 수십 년을 신학적으로 어리석은 사람들 앞에서 센티멘탈의 요술을 부려왔던 것입니다. 지나치다고 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비신학적인 요술의 말들은 김삼환 목사의 거의 모든 설교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제가 놀라운 것은 그런 설교와 그럼에도 그에게 아멘으로 쏟아지는 성도들의 존경과 찬사가 아닙니다. 누가 아니라 목사들과 신학자들의 꿀 먹은 벙어리 형상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동료에게서조차 하나의 실수라도 발견되면 아주 사람을 매장시킬듯이 물고 늘어지곤 하는 정통 감별사들조차 이런 비신학의 성공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꿀을 먹었기 때문일까요?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몰려드는 법’(마 24:28)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딱 말기적(末期的) 현상이 나타나는 곳에는 딱 거기에 적합하여 말기(末期)를 부추기고 말기(末期)에 협력하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오만하고 무능한 대통령의 측근들이 그렇듯. 교회의 쇠퇴, 자정능력의 상실이란 자격을 갖추지 못한 성공한 찌질이들의 어쩔 수 없는 비루함일 뿐. 말세의 현저함이란 다 이렇습니다. 이제 그 의미를 물어보지요.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자기자신(自己自身)이 된다는 것


모든 고등종교의 가르침이 동일하지만 기독교의 가르침 역시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요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말은 본래 성경에 없습니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이런 말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의 근본이다. 왜 한 영혼이라고 했는가? 개인이 중요하지만 개인 중에도 그의 본질입니다. 개인이 천하의 근본인 것처럼 개인의 근본은 마음(영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개인의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하나님의 관심은 본질, 곧 영혼에 있으므로 나머지는 제멋대로 내버려두십니다. 그 내버려두심 때문에 뭣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 내버려진 마음, 개인 중에서도 마음, 마음 중에서도 동기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착각해선 안 되죠. 동기를 알아야한다는 건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반대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본질이란 하나님 자신 곧 무(無)이죠. 하나님이 무(無)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본질이란 무(無), 공허(空虛)란 말입니다. 그 공허에 생명과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죠. 그러므로 인간은 도무지 하나님을 향한 왜 라는 의문의 정당성을 묻지 않고는 의미 없는 곳에 핀 의미 없는 곰팡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의 정당성이 갖추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의(義)라는 것, 올바른 것을 행할 수 있는 자격과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도대체 자기가 자기에게 미쳐서 생긴 집착이 신념화된 것을 의라고 할 수 있는가.(이게 ‘자기 의’죠.) 하물며 그렇게 해서 생긴 자기 의를 타인들에게 짐지울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런 어려운 말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내버려 둔다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말입니다.


신(神) 앞에 섬으로써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들 자신이 되었습니다. 우리들 자신의 마음이 되었고 마음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동기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계속 하나님 하나님 하려니, 이름을 잘 지어야지 이게 뭡니까. 옛날 고대에는 기휘(忌諱)라는 게 있었습니다. 임금의 이름이나 부모님의 성명에 들어가 있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헷갈리게 하는 글자를 기피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 님’이라니 도무지 격식이 없는 이름이 아닙니까. 특히 자기 아들을 목사로 만들 요량이었다면 그런 정도는 생각했어야 마땅할 터인데, 무얼 바라겠습니까. 아마 김예수로 짓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존재를 멈추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 일체의 행위를 멈춰야합니다. 일반적으로 자기가 의롭다(올바르다)고 여기는 선의의 행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종교적 행위도 일체 멈추어야합니다. 그게 율법과 제사종교와 구별되는 성육신(成肉身, 강생(降生), incarnatio) 기독교의 핵심이죠. 여기서 행위라는 건 존재 자체, 태도를 말합니다. 멈추는 태도. 이것이 십자가의 자기 죽음이고 부인입니다. 멈추면 멈추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보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 곧 ‘나(Ego)’라는 우상과 하나님을 분별해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 자신을 ‘야훼( יהוה)’ 곧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14). 예수님은 이것을 받아서 ‘에고 에이미(εγω ειμι, 나는 ~이다.(I am~)’라는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셨지요.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를 명백하게 나타낸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Ego)’라는 관념은 이와 같이 나를 속여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에 이르지 못하게도 하지만, 나를 부인해 하나님을 나타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멈췄습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와 자세로서 세상을 살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나를 전적으로 맡겼다고 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모든 일을 하고 적극적으로 성실히 하되 하나님과 함께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재적 통찰(通察)과 초월적 관조(觀照)의 진지하고 가벼운 태도를 말합니다. 분명히 내재적인데 초월적인 거죠. 거기엔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진리)이 드러나는 데로 초점이 옮겨진 겁니다. 명성교회 세습사태에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뜻인가요? 보이는 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히 11:3). 그 이면(裏面)엔 반드시 그렇게 나타나게 한 하나님이거나 하나님 아닌 뜻(원리)이 있습니다. 지금 명성교회에서 나타난 것은 온통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와 같은 이익과 손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하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진지한 내재적 통찰과 가벼운 초월의 한가로움을 ‘거룩한 무관심’이라고 부릅니다.


               일러스트/고은비


●거룩한 무관심


‘주님을 경배한다’는 말을 많이 자주합니다.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 이런 말들은 대표적으로 ‘거룩한 무관심’을 선언하는 표현들입니다. 운동선수가 ‘이 영광을 부모님께 돌린다’거나, 가수나 영화배우가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고 말할 때, 그 공로의 칭찬과 성취의 보상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이나 부모님이나 동료들의 것으로 돌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진짜로 그러한 태도여야 할 텐데 이것이 하나의 관용어(慣用語)가 되면 그 말 자체가 그저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며 영광과 경배를 자기에게 되돌리는 기만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죠.


참 종교인의 기본적인 태도는 진실한 ‘거룩한 무관심’입니다. 그것은 손익을 따져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려 그의 의(義, 意) 곧 진리의 품격이 드러나게 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무관심의 태도를 일상적으로 견지해야합니다. 그러려면 최우선적으로는 침묵할 줄 알아야겠죠. 변명도 원망도 쓸데없는 해명도 ‘날 좀 알아주쇼’하는 인정의 갈망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아신다면서,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서 왜 가만있질 못하는 걸까요? 왜 남에게 떠벌이고 소송을 거는 겁니까? 왜 동네방네 찾아다니면서 ‘내 얘기를 들어주쇼’라고 남들의 인정을 구걸합니까? 이게 다 피곤하고 번거롭고 비루한 일입니다.


가령 지난 십년간 제가 만일 목회의 불평과 고통을 늘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식으로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려했다면 여러분은 아주 제 얼굴만 보아도 질리게 됐을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사모의 얼굴은 목사의 이력서’라는 멋진 말을 했다고 하는데, 하물며 목사 자신의 얼굴은 어떨까요? 제 얼굴은 김삼환 목사의 얼굴 같이 늘 배고프고 아픈 사람 같은 형상을 꾸미느라 찡그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뒤로는 8백억 원(저는 이 돈을 가늠하지 못합니다!)의 비자금을 돌리고 있으면서, 빈 지게를 지고 머슴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자기와 자기 아들은 남들이 안 져도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식으로 엄살을 부리는 것입니다.


도무지 그럴 필요가 뭡니까? 고통과 고난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시요 십자가라면 저는 그걸 입 꾹 다물고 기꺼이 지고 갈 겁니다. 하나님이 내 질고를 풀어주시는지 안 풀어주시는지 그래서 누군가 ‘목회란 게 할 만한 것이냐’ 묻는다면 ‘내가 죽을 때 대답해 주리라. 내가 한번 직접 겪어본 다음에 말해주리라.’ 이런 각오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도 잘 아는 위인들이 고작 염치없이 뻔뻔하게 세습하느라 괴로운 십자가를 가지고 엄살을 부리는 것인가요? 중세의 세습이 성직매매였고 성직매매가 축첩(蓄妾)에서 비롯된 악습인 것을 모르십니까. 그것이 북한 김일성 세습과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는가요? 모름지기 이런 세습은 김하나 목사 하나 뿐이 아닐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에게 자식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각기 한자리씩은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상무에게 삼성을 물려주듯이, 이명박 장로가 이시형에게 다스를 물려주듯이, 최순실이 정유라에게 명마 블라디미르와 스타시아를 선사하듯이. 열심히 빚지고 알바하고 스펙 쌓아 대학 졸업하면 뭐합니까. 강원랜드 신입공채 518명 뽑는데 5,286명 중 10:1의 경쟁률에서 낙하산 청탁 대상이 625명이라면 우리 애들은 이 나라에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대형 교회들이 즐비하면 뭐합니까. 기독교적 제도를 창출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는 요술로 사람을 속이는 언어와 상징의 쇼일 뿐입니다.


●침묵을 지키라


산 속에 들어가 밤을 새워 본 사람은 산의 막대하고 막중한 소리를 경험으로 압니다. 불교애서 이 적막을 대적(大寂)이라 합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니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니 하는 현판을 답니다. 모든 현상의 소리를 잠재운 절대적 원리(原理)의 소리. 거기는 모든 현상의 소리뿐 아리라 현상자체가 적멸(寂滅)된 대적(大寂)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절대적 침묵에도 무게가 있고 소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 근원적 소리와 무게가 현상적 소리와 무게를 압도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생긴 이명(耳鳴)으로 24시간을 손오공의 머리에 삼장법사의 쇠테가 조르는 듯한 소리의 고통에 시달리는데 이상하게도 거대한 밤 산중에 홀로 있을 때면 이명이 들리지 않습니다. 인식하질 못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런 적막도 아닌 절대의 침묵 가운데 계신 존재입니다. 그의 경륜(經綸, 헬라어 오이코노미아(οiκονομία)는 경제란 말의 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우주를 운용하십니다. 그는 자취도 없고 소리가 없으나 모든 자취와 모든 소리를 주관하시고 주재하십니다. 가령 지금도 저 시베리아 자작나무 원시림의 눈더미 속에 웅크린 채 사색에 잠겨있는 늑대 일가족도 그는 다스리십니다. 아무 표시도 나지 않는 저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도 눈과 비를 내리십니다. 그에게는 쓸데없는 일이 없습니다. 우주는 광활하고 정신이 없이 돌아가지만 그에게는 온전한 지성과 의지가 있어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 가운데 시간과 공간들이 펼쳐지고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상상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가장 최종적으로 이러한 침묵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거기에 어떤 행위가 필요한가요. 그대는 나에게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또한. 우리는 거룩한 무관심의 침묵 가운데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앎으로 나는 먼서 나의 일체의 행위를 멈추었습니다. 부지런히 뭔가를 하는 사람, 일을 만들고 감정을 만들고 갈등을 만드는 사람, 불평과 불만을 생산하는 사람을 그분은 그러한 대적과 적멸의 세계의 침묵으로 잠잠케 하시고, 부드럽게 어루만지시고, 거친 맘을 비둘기 같이 온유하게 다스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가 벗어나듯 벗어나게 치료해 주십니다(시 124:7). 그것이 기적입니다! 우리는 사냥꾼의 올무에서 어떻게 새가 벗어나는지 모릅니다. 벗어난 순간은 이미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순간이 아닙니다. 그렇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영원합니다! 죽음일지라도 그에게 맡길 수 있는 근거죠. 그러나 나는 여전히 침묵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 존재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거룩한 무관심, 고귀한 품격의 근거입니다.


●행위의 기만성


행위란 극도로 기만적일 수 있습니다. 겉으론 지극히 좋게 보여도 속은 얼마든지 사악할 수 있고, 겉은 비록 거칠고 우악스러울지라도 속은 얼마든지 선량하고 부드러울 수 있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명성교회 수십 년에 가장 성공한 가정은 김삼환 씨의 가족이 아닌가요. 심지어 자살한 사람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과 업적이란 구체적인 생존(먹고 사는 존재함)에 관한 정신과 영혼의 이해력 문제이지 겉만 봐선 모릅니다. 지나치게 남을 숭상하지도 깎아내리지도 마십시오.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질 빌미를 주는 것입니다. 그게 십자가를 지는 거라니 맞습니다. 남들은 고작 하루 세끼의 밥을 먹고 사람다운 환경과 안전과 안락을 위해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데 그렇게 무겁고 거룩한 수만 명의 십자가를 지고 어떻게 살려고 하는 건가요. 저라면 그런 부담스러운 십자가 보다는 산중의 자유와 고독을 택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자기를 임금 삼으려는 열광분자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던 걸 모르는 겁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사람을 높이고 또 거꾸러뜨리는 우를 자주 범합니다. 제가 항상 주장해마지 않는 교우관계의 제1의는 경계를 존중하고 개성을 지켜주는 정중함입니다. 잠언에 보면 ‘조상들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잠 22:28)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게 어찌 토지에 대한 권면일 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들 자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개인의 경계를 침범해선 안 됩니다. 내가 무수한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다는 따위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봉건을 소명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왜 우리가 나의 구원을 타인에게 의지해야 합니까. 타인이 내게 그렇게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그런 과장과 허영의 함정과 그물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자립이고 독립이고 만인제사장 곧 기독교적 아나키즘입니다.


●놓이기 위해 애쓰라


다시 한 번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같이’ 오직 벗어나기 위해 이제부턴 맹세에서 놓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럴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얼마나 무분별한 맹세로 나를 타인에게 양도하고 타인을 내게 양도하도록 약속을 남발했었나요? 사람들이 내게서 내가 사람들에게서 약속이 배반당하고 맹세가 깨지는 꼴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며 내게 실망했고 내가 사람들을 떠나며 그들에게 실망했습니다. 내가 그랬었나? 아니다! 맞다! 내가 그랬다! 그것을 인정할 때만 우리는 인간관계의 폭력성에서 벗어나 동일한 우를 범하지 않을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할 것입니다.


이제 나의 행위는 오직 진리와의 일체를 향할 뿐 그런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면 타인에 관해 세간에 퍼진 명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됩니다. 우리의 노력은 행위의 뒤에 숨어 있는 나의 기만성과 부족함을 일깨우는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익을 보려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변화하거나 발전하기 위해서라면. 아니 정말로 자기와 성도들을 벗어나고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이것이 인권이죠. 저는 기업이나 이윤의 강화 외에 명성교회와 같은 대형화된 교회의 목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까요? 바벨탑을 쌓은 고대인들의 목적은 한 덩어리로 뭉쳐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는 거였습니다(창 11:4).


제가 가장 화가 나고 동의 할 수 없는 말은 그들이 그래도 한국교회를 위해 지금까지 큰일을 해왔다는 식의 말입니다. 도무지 큰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가시나무가 왕관을 쓰고 나무들 위에 부니는 것처럼 이런저런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쓰고 행한 일들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가령 돈을 많이 쓰는 걸 큰일이라고 말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도무지 하나님께서 세월호에서 스러져간 학생들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희생시켰다는 설교. 박근혜 대통령이 고레스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설교가 그들이 말하는 큰일이란 말인가요? 이런 걸 실구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저를 불러 주십시오. 그러면 더 큰일을 말할 테니까.


사도 바울의 본명은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던 용사 사울왕의 이름을 딴 히브리 식 사울이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큰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 진리를 깨우친 다음 그는 큰 사람의 비전을 버리고 바울로 개명(改名)합니다. 이 이름은 헬라말로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격동하고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스스로 큰 비루한들이 넘치고 넘칩니다. 우리는 그들을 숭배하고 높여주고 떠받들어 모셔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치 독립투사들과 친일파의 역전된 현실처럼 진정 인간의 빛을 밝혀준 숨은 스승들에 대한 지식도 기념도 거짓 큰 자들의 거짓 명성에 가려 빛을 잃고 사장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 기독교 지난 백년에 정말 예언자들이 없었단 말이, 말이 되겠습니까. 지난 인류의 수많은 스승 가운데 누가 진정 지혜의 등불을 밝혔습니까? 그분들이 인류에게 어떤 빛을 주었습니까? 참된 자기를 알고 발견하는 것. 벗어나고 벗어나게 해주는 것. 집착 도구 이용 수단 필요로부터 자립하는 것. 그러한 제도와 세계를 구현해 나가는 것.


각자 우리는 나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탐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제부터의 출발입니다. 마음과 가슴에 근본적 변화를 위해 공부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욱더 높고 큰 이상에 대한 욕망을 위해 반대로 크기의 현혹과 망상을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노력하면서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도 함정이 있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모른 체 무책임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족할지라도 전체를 내가 책임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실현 가능한 접근방법을 다해 모든 고통의 뿌리가 되는 부패와 죄의 죽음에 대해 도전하고 지향해 나가는 것.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 그럴 때 나는 진리의 사람으로 온몸에서 정신의 진동을 발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동굴 속에서 진리를 깨우쳐도 그 소식이 만리(萬里)에 퍼진다는 말처럼. 중보란 무엇인가요? 인류를 위한 기도, 세계를 위한 기도도 4분이면 족합니다. ‘나’라는 인식이 곧 온 세상이며 하나님인 것을 자각한 사람이 그 온 세상(나라는 인식)을 진리의 표상이자 대표로 삼고 나가는 것. 그것이 중보자로서 세상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사랑해서 고쳐나가려는 사람의 고귀하고 품격 있는 자태일 겁니다.


●울타리가 깨지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뻔뻔하고 파렴치해진 김삼환, 김하나 부자 세습사태에서 확인되는 교회의 쇠퇴가 의미하는 것은 교회 울타리가 깨졌다는 것일 뿐입니다. 진리가 요청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본질은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났습니다. 명성교회는 실로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바라건대 깨어있는 성도들은 김삼환, 김하나 목사 부자의 망상에서 벗어나십시오. 깨어있는 부목사들과 전도사들은 한 사람의 성도라도 그 비진리의 사원에서 이끌고 나오십시오. 김하나 목사에게 아들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하는 노래가 있던가요? 참 잘 했네요. 아버지로부터 영광스런 세습을 받으셨군요. 그러나 이제부터 당신의 모든 설교는 세습에 대한 비루한 변명이 될 겁니다. 당신의 하는 일을 속히 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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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 주는 편지(7)


인생은 도장(道場) 깨기

-말들의 진실-


1.


공자(孔子)께서 자공(子貢)에게 말씀하셨다.


“사(賜)야, 너는 뛰어난가보구나. 나는 그럴 겨를도 없는데.”(《논어》, 「헌문(憲問)」편).


곧잘 자기의 입장에서 타인들을 평가하고 비교하길 좋아하는 의기양양한 제자의 허를 찌른 것이다. 아무리 입버릇처럼 거리낌 없이 남의 비평을 해댔기로 되 주고 말을 돌려받자 한 짓은 아니었을 터. 면전에서 스승님께 정면 디스(diss)를 당했을 때 자공의 낯은 어땠을까?


자공의 뒷담화와 달리 예기치 못한 순간 상대의 안면을 직격하는 인간실격선언의 스트레이트(straight)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방망이처럼 정수리 복판에 작렬해 심장 속 양심에서 폭발한다. 위급한 마음을 모면할 길이 없어 어떤 말을 임시로 빌려다 쓰는 것도 안 될 정도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가차(假借, 한자에서 음이 같은 글자를 임시로 빌려 쓰는 방법) 없다’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혼비백산(魂飛魄散)! 머리는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 아득해지고, 가슴은 T익스프레스(T Express)가 수직 낙하하듯 고공에서 천길 아래로 떨어지고, 꼭두각시처럼 다리는 붙어있는 건지 떨어진 건지 후들거리고, 손에는 땀이 배고, 맥은 쪽 빠져 열은 위로 뻗치고, 얼굴은 백납병자처럼 창백하다가 술 취한 듯 달아오른 홍당무가 된다.


저항이나 항복을 요구하는 것도 허락하는 것도 아닌 순수한 일격이 전부인 그런 순간에 이르면 오로지 소원은 모멸과 창피가 새빨갛게 피워낸 한 송이 부끄러운 꽃이 되던지, 꺼져 사그라지지 않으며 불타오르는 한 그루 떨기나무가 되던지, 무너지지도 않은 채 변명을 아주 잊어버린 벽이 되던지, 그 벽에 뚫린 쥐구멍에라도 기어 들어가 이 참담한 재판장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싶어질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제 꼴이 한심스러워지는 참담한 순간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자공보다 가진 것도 없고(그는 큰 부자<富者>였다고 한다)훨씬 어리석으면서도 곧잘 남을 비평하길 좋아하며 의기양양하게 살아온 내가 한두 번 겪어본 일이겠는가. 너희는 또 나보다 가진 게 없고 훨씬 어리석을지 모르니 그런 일을 만나거든 ‘그렇군!’하면서 벌어질 일이 벌어졌으려니 우선은 제정신부터 차릴 일이다.



세상엔 누가 시늉만 했을 뿐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카운터(counter)에 얻어맞은 것처럼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고, 페인트(feint)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만큼 태연한 사람도 있다.(태연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도 태연한 것이다.) 태연한 사람은 시늉이 노리는 바를 정확히 깨달은 것이다. 세상은 상대적인 것이고 너와 남이 없이 내 판단은 다 반(半)만 맞는 것이란 말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절대가 아니란 말은 내게는 절대로 옳은 것이 상대에게는 틀린 것일 수 있고 상대의 절대로 옳은 것이 내게는 틀린 것일 수 있으며, 우리 모두의 견해가 상대적으로 절대가 아니니, 이것을 깨달으면 무엇보다 생각이 주는 고루함과 한계와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걸 두고 아는 체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혀 나를 괴롭히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복잡함에서 내가 벗어나는 기술을 발전시켜야한다. 무엇보다 항상 ‘이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일까?’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게 좋다. 큰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벌써 당한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힌다면 누구 좋으라고 세상을 사는 것이며, 정말 큰일에 당해선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남을 비평하는 것이 그렇듯 참담한 순간을 겪고 이기는 것에도 오직 하나의 목적과 기술이 필요한 거라고 하겠다.


자공이 《논어》에 이 얘기를 기록해 넣은 걸로 미루어 그는 이 참담한 순간을 잘 극복하고 이겨냈을 것이다. 꽁꽁 숨겨도 시원찮을 부끄러운 일화를 자랑과 명예로 바꾸어 소중히 간직했다가 후세의 귀감으로 남겨주었다. 이겨냈기 때문에 이후론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잘 이겨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해도 예전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옛 경험을 창피스럽게 여기지 않고 떳떳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긍지가 거기 있다. 끝내 그 참담함 앞에 정신을 못 차리고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뭔가를 일깨우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깨우치지 못했다면, 자공은 부끄러움에 짓눌려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며 일생동안 선생님께 당한 창피를 숨기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 진정한 실제를 볼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으로 부족함을 돌파했기 때문에, 그로써 스승의 자기를 향한 특별한 고마움을 세상에 전할 수 있었던 것. 그랬지 않았다면 공자님은 인류의 스승일지 모르나 자공에게만은 한 번의 잊지못할 언어폭력으로 평생 씻지 못할 모멸감을 가르쳐준 냉정하고 혹독한 비평가로 기억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엔 뭇 사람의 관대한 선생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뒤로는 냉혹하고 혹독한 비평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선생들에게 순종한답시고 자기를 책망하여 괴롭히는 것으로 자기가 더 발전되고 나아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회개란 노상 타박할 거리를 발견해 자기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더 나아지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칭찬과 격려로도 모자랄 텐데 책망과 괴롭힘으로 어떻게 나아지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사람은 항상 자기 곁에서 자기와 각축하며 물어뜯고 있는 이리를 선생이라 여기는 것이다.


실제 공자를 그런 도덕적 꼰대로 비평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공자 자신 때문이 아니라 공자를 그렇게 이해한 꼰대 제자들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스승의 가르침이 실제로 일어난 큰일이라도 되는 양 받아들였다. 그러니 가르침으로 생긴 가능성으로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르침에 매여 버렸던 것이다. 스승이 야단을 치지도 않았는데 늘 야단맞는 학생처럼 도덕적 훈계나 받고 있으니, 어느새 나나 남이나 여기서 벗어나 함께 높이 날고 멀리 달아나려는(高飛遠走) 진취(進取)의 사람이 될까. 그런 진취적인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끌어내려 자기보단 아랫길에 묶어 두어야 마음이 안전해지고 기분이 흡족해지고 직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그런 자들은 입만 열면 스승을 핑계로 삼고 말끝마다 스승의 말씀을 빙자하지만 스승처럼 누군가 배우려는 자를 일깨워 지금의 상태에서 자유롭게 해주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반대로 배우려는 자를 끝내 못 배우게 막아 현재 상태에 감금시키고 그의 가능성의 무한한 자유를 박탈하는 데만 스승과 그의 말씀을 써먹는다. 그들이 항상 하는 말은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는 말 뿐이다. 그들은 자기보다 더 진취적인 사람이 주목 받는 것을 발견하면 언제나 사려 깊은 모양으로 점잖게 한마디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위태롭다.’ 그들은 복음서에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22)는 말은 잘도 인용하지만, 그 말이 자신이 일삼고 있는 생활태도 자체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다.


언어폭력 정도는 폭력도 아니지. 그것이 폭력이라는 걸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점점 가식적이고 도덕적이 된다. 가식적이 될수록 도덕적이고 도덕적이 될수록 가식적이니 가식과 도덕은 마침내 그들에게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한 번도 스승의 가르침을 가능성으로 삼아 고비원주(高飛遠走)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승의 말씀을 진리의 테두리랍시고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시험하고 낙인찍고 왕따 시키고 아주 살지를 못하게 온갖 구설(口舌)로 괴롭히는 도덕적 꼰대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에 이르렀지만 기원전 479년에 돌아가신 양반이 다시 죽는다한들 스승의 가르침에 값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일깨울 수 있을까. 자공이 스승의 가르침에 붙들려 자기를 책망하며 꼼짝도 못했고 꼼짝하려는 동료들까지 책망으로 꼼짝 못하게 했다는 소린 들어보지 못했다. 자공은 더욱 더 의기양양해지려는 자기의 길을 더욱 더 의기양양하게 구축해 갔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를 향한 스승의 질책의 뜻임을 깨우쳤으니 공자의 핵심제자라 할 만한 것이다.

설마 사람들이 생각하듯 공자께서 자공의 의기양양을 시기해 ‘그냥 놔둬선 안 되겠구나’ 기세를 팍 꺾어놓으려 작심을 하시고 “사(賜)야, 너 정말 엄청 나대는구나. 아주 나를 능가하는구나.” 그러셨을까? 그런데 도덕선생들은 누군가 보기 싫은 사람(그들은 왜 보기 싫을까?)을 발견하면 이런 부분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럴 땐 공자도 앉지 않으셨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판단하는 권위의 상석에 스스로 앉아 겸손을 가장한 훈계로 거드름을 떤다. 근엄한 목소리에 추상같은 질책을 담아 야비한 비웃음으로 인신공격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책을 한다나!


과연 공자께서 이 말씀을 그렇게 하셨던 것일까? 그랬다면 자공이라도 ‘나에겐 내가 너무나 아까워 당신과 나는 여기까지’하면서 얼른 다른 스승을 찾았을 것이다. “사(賜)야, 너는 뛰어난가보구나. 나는 그럴 겨를도 없는데.” 공자님은 부드러움과 해학과 여유와 너그러움 가운데 제자를 향한 칭찬 감탄 격려 사랑의 가르침을 담았던 것이다.


「헌문(憲問)」편의 그 다음 말씀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이 능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不患人之不己知, 患己不能也)인 것은 자기를 인증하려 안달하는 제자를 향한 스승의 독려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그럴 겨를도 없다는 말은 얼마나 본받아 쫓아가고 싶은 배우고자하는 사람의 달려갈 길인가. 공자가 추상같은 질책을 담아 진짜 인신공격을 하며 비웃고 미워했던 자들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2.


만장(萬章)이 물었다. “공자(孔子)께서 진(陳)나라에 계시면서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내 고향의 선비들은 과격하고 단순하고 진취(進取)하려 하되 그 초지(初志)를 잊지 않는다’라고 하셨는데, 공자(孔子)께선 왜 진나라에 계시면서 노(魯)나라의 광사(狂士, 과격한 선비)들을 생각하셨던 겁니까?”


맹자(孟子)께서 대답하셨다. “공자께선 ‘중도(中道, 비진리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자유로운 도〔진리〕)’에 부합한 제자를 얻어 가르치지 못하게 되면 나는 반드시 과격하고 고집 센 사람(광견, 狂獧)을 택할 것이다. 과격한 사람(광, 狂)은 진취(進取)적이고 고집 센 사람(견, 獧)은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所不爲)는 지조(志操)가 있으니까’라고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어찌 중도의 사람을 바라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반드시 얻을 수는 없기에 그 다음(차(次), 광견)을 생각하신 것이다.”


“어떤 걸 과격하다(狂)고 하는지 또 여쭙습니다.”


“(공자의 제자들)금장(琴張), 증석(曾晳), 목피(牧皮) 같은 사람들이 공자께서 말씀하신 과격한 사람(狂者)이다.”


“어째서 과격한 사람(狂)이라고 합니까?”


“그 뜻이 크고 말이 커서 ‘옛 사람은, 옛 사람은(이랬었는데, 저랬었는데)!’하는데, 평소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 현실이)그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따라가지 못함을 늘 괴로워했다는 말). 이와 같은 과격한 사람(狂者)도 얻지 못하게 되면 불결(不潔, 더러움)을 달가워하지 않는 선비를 얻어서 가르치고자하셨으니, 이것이 (비루한 데는 가담치 않겠다는)고집 센 사람(獧)이다. 이 또한 차선인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내 집안에 들어오지 아니할 지라도 내가 조금도 유감으로 생각지 않을 사람은 오직 향원(鄕原, 시골선비(촌양반)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사이비 군자, 자기의 위선을 깨닫지 못하는 위선자를 가리킴)뿐이다. 향원은 덕(德)의 적(賊, 도둑, 해치는 자)이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을 향원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어찌 그리 매사에 뜻과 말이 큰지(항상 올바르고 도덕적인지) 어쩌자는 것인가? 말이 자기의 행동을 돌보지 않고 행동이 말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옛 사람은, 옛 사람은(이랬거늘 저랬거늘)!’이라고 되뇌는 자들이다.(옛 성현들의 말씀으로 남을 깎아내리는 데만 써먹는다는 말). 하는 짓이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친근함이 없고 차가운가? 세상에 났으면 이 세상에 맞게 살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할 말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속생각(진정한 자기 실력)을 숨기고 세상에 아첨하는 자들이 바로 향원이다.”


만장이 말했다. “한 고을 사람이 모두 원인(原人,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일컬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원인이 아닐 수 없을 텐데 공자께서 ‘덕의 도적’이라고 하심은 어째서입니까?”


“그를 비난하려 들면 이것이라고 들게 없고, 그를 풍자하려 들면 풍자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언제나 모두에게 아첨해 책잡히지 않을 정도의 소리만 하니까.) 유속(流俗, 세상평가)과 적당히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적당히 합류하며 (행동하지 않고)가만히 있으니 마치 신뢰할 만큼 신중한 듯하고, (그런 방식으로)행동하는 것이 청렴결백한듯하여 뭇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기 스스로도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부류들과는 ‘요순(堯舜)의 도(道)(진리의 세계, 기독교에서 하나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실제로 변화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없다는 말) 그러므로 덕을 해치는 자들(도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공자께선 ‘나는 사이비(似以非, 비슷하나 아닌 것)한 자를 미워한다’고 하셨다. ‘가라지(莠)를 미워함은 그 곡식의 싹(苗)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말을 잘 둘러대는 자(佞)를 미워함은 그 의(義)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구변(口辯)만 좋은 자를 미워함(惡利口)은 그 신용(信用)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다. 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미워함은 아악(雅樂, 아름다운 음악)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자줏빛(紫)을 미워함은 그 붉은빛(朱)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요, 향원(鄕原)을 미워함은 그 덕(德, 본질)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함이다.’ 라고 하셨다. 군자(君子)는 상도(常道, 경전(經典)의 말씀이 가리키는 도(道)의 경지를 향한 일관된 추구)를 회복할 뿐이다. (선비(지식인)들의)상도가 바르게 전파되면 서민들까지 깨어나게 되고 서민들이 깨어나게 되면 그때야 세상에 사특(邪慝, 혼란을 일으키는 요사스러움)이 없어질 것 아니겠느냐.”(󰡔맹자(孟子)󰡕 「진심(盡心)편」).


3.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고수는 곳곳에 널렸으나 오직 한 분 스승은 마음에 있다. 그러니 모든 일에 자라나는 배움의 뜻을 품었다면 도처에 스승이 아닌 게 없다. 온갖 곳에 고수와 스승이 널렸으니 인생은 ‘도장(道場) 깨기’와 같은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 검술 대가로 명성을 남긴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 1584~1645)는 13세부터 29세까지 60여회의 진검승부(眞劍勝負)를 벌여 이겼다고 한다. 그는 ‘천일(千日)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만일(萬日)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이 단련(鍛鍊)이 있어야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검승부란 목숨을 내놓고 하는 대결이다. 지금이야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사무라이 시대를 살았던 그에게 진검대결이란 자기시대를 변명과 타협으로 회피하지 않고 정직히 살아가는 오직 하나의 길이었을 것이다. 목숨을 건다는 걸 현대에 비유하자면 지금까지의 전존재를 걸고 승부를 내려는듯한 삶(배움)의 태도쯤 되지 않을까.



영화 <바람의 파이터>(2004)의 모델로 ‘극진공수도’를 창시한 재일한국계 무술인 최영의(崔永宜, 최배달), 1923~1994)도 이 ‘도장깨기’로 전설이 됐었다. 그러나 그가 진짜 가르친 것은 오로지 극기(克己)였다고 한다. 온갖 고통을 인내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 거기엔 더 이상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파이팅(fighting)이 중요하다.


굴종은 영원히 패배하고 마는 것이지만 패배는 부단히 발전해나가는 죽음이기 때문에, 파이팅에 있어서는 굴종보다 패배가 차라리 낫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통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런 파이팅을 내면에 품은 굴복하지 않는 도장깨기로서의 인생수업을 권한다.


4.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듯이, 칭찬은 사람됨을 달아 본다”(잠 27:21).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다른 결점은 몰라도 사람됨이 교만한 건 죽어도 못 고친다.’


‘잘난 척하는 놈치고 끝까지 잘난 경우를 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신공격성 잔인한 언어폭력까지. 나는 이런 말들을 무수히 들어왔다. 깨우침은 그것을 찾는 이의 통상적 사유와 인식을 강제중지 시키는 신적(외부의) 영감이지만, 이런 영감은 원치도 않는데 찾아와 나의 목숨(역사와 전통)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테러와 같았다.


잔혹한 말들은 나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나를 해체하고 바꿨다. 내가 다시 살아가기 위해 나를 해체하고 갈아 부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에게 왜 그런 말들을 했을까? 나는 왜 그런 말들에 괴로워하고 양심을 찔려했을까? 내가 정말 잘 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혹은 잘 나지도 않았으면서 잘난 척을 했단 말인가? 누군가의 인정에 그토록 기대 살았던 결과인가? 그들과 나 사이에 정말 이런 말들만큼의 중대함과 각별함이 요구될 만큼 실재한 쟁투가 있었던 것일까?


문제는 그들이 내가 나름 흰 말을 타고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했던(계시록 6:2) 나의 대적이 아니라, 대개는 내 동료들이나 선생들이었다는 점에 있다. 적이 아니라 동료에게 내가 인간실격을 선고받는 전도된 상황에 직면하면 마치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듯한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그럴 때 순종은 진짜 죽음이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나는 광견(狂獧)의 기질이 있어 아주 기가 죽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신학이 한 진취적이고 고집 센 동료에 대한 경계와 시기와 질투와 공격의 언어폭력으로 왜곡되는 모양들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굴복하지 않는 광견(狂獧)의 과격과 지조와 그 우월감이 나를 부단히 단련시키고 발전시켜 주었다. 내 나름대로는 도장깨기에서 그들이 패배한 것이고 내가 이긴 것이다.


공격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의 허점을 잘 안다.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 상대가 더 놀라고 아프고 괴롭고 부끄럽고 두고두고 못 잊어할지를 기막히게 안다. 그러나 그걸 아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싸움에는 하나의 기술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많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 유리하다. 그러나 많은 기술과 함께 하나의 기술이 반드시 더 필요한데 그것은 놀라지도 쓰러지지도 절망에 빠지지도 않는 침착함이다. 침착은 초연이고 그것은 거기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나 있는 자유로움이다. 정신의 자유와 그 능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안다. 비유컨대 그 상태는 결투에서 상대방이 먼저 나에게 일격을 가한 것과 같다. 언제나 이제는 내 차례인 것이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 나름이다. 공자님 정도라면 받아들일 만하겠지.


그러나 너나없이 도토리 키재기로 시지프스의 언덕을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쓰는 고만고만들의 도덕적 품평을 일일이 받아들여 그런 쩨쩨한 훈계에 행여 저촉이 될까 눈치를 보는 식으로 날마다 과격과 진취와 지조를 찍어 눌러 겸손해지려한다면, 그건 겸손이 아니라 함께 같잖아지려는 한심한 노릇이랄 수밖에. 겸손이란 유무형의 내세워진 권위와 권력 앞에 옷깃을 여미고 밥을 굶은 듯 무기력한 게 아니라 자기를 인식하는 정직을 잃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카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최후의 저서에서 ‘젊은 날의 꿈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듯이, 처음 뜻(初志)을 저버린 허리굽힘이 어떻게 겸손일 수 있으랴. 그러나 함께 부단히 자라가려는 벗을 향한 이런 겸손이라면 어떠냐. ‘그대는 뛰어난 것 같구려. 나는 아직도 그럴 겨를이 없다네.’ 친구라 하고 제자라 하고 동료라 하면서 고작 비웃음과 깎아내림으로 도덕적 우위와 안전을 확보하는 정도라면 그것은 이미 내가 그를 능가했다는 뜻이니 안심해도 되겠다. 옛날 어느 스승님께서는 누군가에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충고를 듣고는 이렇게 답했다나. ‘익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숙이는 벼는 병든 벼’라고. 대개 말과 말의 진실이 이와 같다.


5.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이다.’ 어느 영화에서 본 누군가의 묘비명이다. 거기서 말하는 주인공의 혁명이란 인식과 태도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개 사람들은 혁명은 너무나 급진적이기 때문에 개혁이 좋다고 한다. 그것이 어디서 왜 나오는 말인 줄 모르기 때문에 혁명이라면 겁부터 내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원하는 개혁이란 결국 아무 변화도 원치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교회든 세상이든 개인이든 개혁을 말하려한다면 그것은 말할 게 아니라 내가 개혁을 위해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너는 할 만하니까 그런 속편한 소리나 지껄인다고 나무랄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가는 줄 아느냐고. 너도 그 속에 있다면 그런 소리는 못할 거라고. 너의 비평 속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도 얼마나 사려 깊고 진중한 사람들이 많은 줄 아느냐고. 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들에게 내가 말하는 혁명이란 굳이 당신들이 상상하는 어떤 구체적이고 급진적인 손해가 예상되는 외부적이고 행동인 상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어디까지나 당신 자신과 당신의 시공간을 변화시키는 내면적 인식과 태도의 문제라고 안심을 시켜 주어야할까?


아,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 세상이 뭐라든, 어떻게 비평하든, “너희는 너희에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인해 자기를 책망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다”(로마서 14:22). 밤새 도박판에서 영혼까지 남김없이 다 올인(All-in)하고 돌아와 속기사 앞에서 러시아 민족의 구원과 메시아적 사명을 구술(口述)하던 도스또옙스끼처럼.


“여러분은 늘 깨어 있으십시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십시오”(고린도전서 16:13).


딸들아 나의 청년아, 인생은 도장깨기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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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6)


설교(說敎)인가 썰~교(敎)인가


- 소 모 씨의 설교를 감상하고 정신이 확 깨서 쓴다 -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사도바울


1.

월요일 산책하며 주제를 정한다. 화요일 농사를 지으며 생각을 정리 메모한다. 수요일 운동을 하면서 자료를 참고하여 거칠게 초고를 쓴다. 목요일 치료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끝까지 다 쓴다. 금요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처음부터 문장의 맥락을 가다듬어 정리한다.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 새벽사이. 클럽에 전문을 업데이트한다. 토요일 놀면서 아내에게 리허설을 한다. 아내가 통과를 시켜주면 영화 한편 보고 기대하며 잘 수 있다. 그러나 오늘처럼 내 리허설의 맥락은 따라잡지 못하고 날 바라보는 얼굴만 점점 예뻐지면 그때는 비상이다.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사이.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 현장에서 벌어질 관념과 현실의 갭을 줄여본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알아듣기 쉽게 전체를 새로 쓰기도 한다.


원고 매수는 목회 초기 A4 20장에서 줄고 줄어 10년에 이른 지금은 7장까지 줄었다.(오늘 처음 8장에서 1장을 더 줄이는데 성공했다.) 목표는 4장,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 설교 시간은 처음 2시간 정도 소요됐던 것이 줄고 줄어 한 시간을 못 미쳐 지금은 50분 부근을 눈치 보며 오락가락하고 있다. 교우들의 기대는 내 설교가 부디 40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려면 일단 원고는 4장, 그동안의 의리로 봐줘도 5장, 주의 은혜로 용서해 주어도 6장 이상은 절대 넘지 말아야한다. 설교 중간에 갑자기 바다가 그립다고 삼천포 쪽으로 가서도 안 되며 새로 개발한 개인기가 아까워 요건 꼭 한번 시전하고 싶다는 유혹이 있더라도 징검다리 건너듯 훌쩍 건너뛰며 눈을 딱 감을 줄 알아야한다.


내 청중은 지난 10년간 가장 많았을 때가 30여명, 가장 적었을 때가 5,6명, 평균 15명 정도다. 거기엔 은혜가 넘치게도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5명이 기본 출석으로 포함된다. 나에겐 단 한 번의 주일예배가 목사로서의 직임을 다할 유일한 기회이므로, 이것은 일주일을 꼬박 바친 설교를 들어줄 청중들이 지난 10년간 평균 15여명이었다는 사실과 그들을 위해 내 설교가 바쳐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수끼리 ‘숫자가 무슨 중요하냐’거나, 은혜가 책상만큼도 없이 ‘차라리 때려치우는 게 낫지 않느냐’는 따위의 권면은 하지 말아 달라. 그건 나를 위한 위로도 내 분투를 향한 애정도 아니기 때문이다.


2.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변명을 하자면 나는 이것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중이다. 자발은 내가 스스로 원함이요 어쩔 수 없음은 내 사명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동의가 안 된다면 나를 이대로 놔두면 된다. 기록되었으되 사도 바울의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린도전서 9:17)하는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여겨주시라.(주께서 임의로 행하는 내게 상을 주시기를!) 그러나 나는 사도 바울 만은 못하여 새로운 방문자(요즘엔 신자가 오는 게 아니다)가 올 때면 늘 ‘여기 모인 인원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는 번차례로 나온다’고, ‘이런 말이 궁색하진 않겠지’하는 부끄런 맘으로 순전히 방문자에 대한 배려가 아닌 나와 우리 성도들을 위한 자백을 한다.


물론 우리 교회는 창립 이래 전도를 위한 뭔가를 계획해 본 적이 없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교우들도 전도를 잘 못한다. 나도 못하는 걸 남에게 하랄 수 없어 강조하지 않았더니 용불용설(用不用說)이 돼버린 건지 전도들을 못한다. 게다가 가끔 가는 소풍 말고는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이나 또 뭣이냐 수련회 부흥회 같은 일체의 프로그램이 없다. 수요일 성서학당은 인원이 너무 적어 그만 두었고 수련회는 청년들이 취직을 하니 자연 못 가게 됐다. 대략 지금까지 한 2~300여명이 방문자로 혹은 단기 체류자로 교회를 거쳐 갔는데 대부분은 이 아무 일 없는 교회에 적응하질 못한 것이다. 그들의 이동의 원인은 가장 많게는 큰 교회의 활발한 프로그램들이 아쉬워서이고, 그 다음은 담임목사의 정치적 성향(극우파는 오지 마시라), 그 다음은 결혼의 편리(?), 그 다음은 개인적 사소한 일들, 그 다음은 정말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날 사라져버린 경우들이라 나는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른다.


참고로 나는 심방을 거의 다니지 않고(물론 장례 같은 필수사항은 제외하고라도 원하면 가지만) 정히 가려면 입원이나 개업 특별한 가족사적 필요와 원함이 있을 때만 간다. 그 외에는 각자 알아서 잘 살자고 다짐을 둔다. 오해는 마시라. 내가 이기적이라거나 냉담한 목사는 아니니까. 나도 성도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할 줄 누구 못지않게 아는 사람이니까.





3.

내가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설교다. 이건 나의 할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나는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아 해야 할 일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가령 재정을 관리한다거나, 주보를 만든다거나, 피아노를 친다거나, 찬양을 인도한다거나, 반찬을 만들어 온다거나, 설거지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외에 누군가 교회에서 달리 해야 할 본분이 있는 걸까? 있어야하는 걸까? 나는 그런 의구심이 든다. 그런 건 내가 생각하는 교회의 범주를 넘어가는 일이다. 성도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도 아니고 교회가 마냥 우리 자유인 교회 같이 작아서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어야한다는 말도 아니다. 뜻있는 본분은 (내가 교회에서 하듯)각자 자기의 세계에서 감당해야할 일이고, 교회는 그들이 각자 자기의 분야에서 본분을 다하도록 교회에 매어두지 말아야 한다. 사찰 같은(암자였던가?) 교회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런 개념? 혹은 사도 바울의 두란노서원처럼 학원 같은 교회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성도가 사회의 각 부분에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도록 매어 놓고 추구해야할 일과 사업과 본분이 교회에게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내가 설교에 매진하고 그것에 나를 바치는 것은 오로지 교회에서 내가 제일 나간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처럼 각 사람이 자기의 영역에서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사회참여의 방식이다. 이런데도 내가 과격한가. 급진적인가. 나는 헌금도 교회가 운영되고 유지할 정도면 충분하다고 가르친다. 물론 아직 그게 안 된다. 그러나 억지로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 성도들은 이제 각기 알아서 자기의 할 일들을 찾아 각종 자발적 본분과 사명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4.

이 작은 교회에 모여 뭔가를 해보자고 성도를 쥐어짜는 것과 비교해 어떤가. 교회가 한다면 또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정부가 세금으로 선행을 하듯 헌금으로 선행을 할 것인가. 아니다. 선행은 반드시 자기가 자발로 현장성 있게 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교회가 자기의 고유한 욕망을 갖는 것을 반대한다. 자기 확대의 야망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것으로 치장하여 벌이는 사업들과 프로그램들을, 경영주와 자본가의 팽창 욕망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교회는 자유를 획득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말씀의 공동체이지 모여서 뭔가 회사나 관청처럼 공적 서류를 자꾸 늘리고 불리고 쌓고 세워가는 데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성도 자신은 못 서고 목사들의 목만 세운다. 그러니 목사들이 세습을 하지 않는가. 세습할 게 없어야 세습은 사라질 것이다.


자유인교회가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찬을 하기 위해 함께 밥을 먹기 위해서이다.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교회이기 때문에 내 설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번 설교하는 건 그 한 번의 설교로 충분하다는 이유 외엔 없다. 매주 돌아오는 속도에 비하면 그 한 번의 소비가 아까울 정도다. 하나를 소화하는데도 버거운데 거기에 또 뭘 더한다면 그건 낭비에 불과하지 않은가. 내가 하는 일이니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 외에는 중요한 것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있어야 그 다음 성찬도 밥도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로 모일 이유가 없다. 나에게 교회에 있어 설교는 그렇게 중요하다.


나는 한 주일에 서너 번씩 설교를 하고 주일이면 몇 부에 걸쳐 강단에 재 등판을 거듭하고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 설교로 불려 다니는 목사님들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설교뿐 아니라 경영도 하고 사업도 하고 건축도 하고 당회도 하고 수련회도 하고 부흥회도 하고 기도원도 가고 금식도 하고 광화문에도 모여 태극기를 흔들기도 하고 무슨무슨 사랑에 반대하는 이상한 사랑의 집회도 가고 심지어 건강을 위해 골프도 치러 다니지 않는가.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된다. 특히 설교는.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앵무새가 아닌가. 말쟁이가 아닌가. 무당(巫堂)이 굿을 하더라도 신명(神明)을 유지해야 작두에 오르는 것처럼 목사도 영감을 유지해야 설교를 할 것 아닌가. 영감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차분하고 침착하고 조용한 침묵과 독서와 명상과 기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다못해 몇 줄의 편지를 쓰더라도 종이를 몇 장은 버려야 한다. 하물며 설교를. 그렇게 많이. 그렇게 유창하게. 해대는 것은 스스로가 앵무새 말쟁이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구나 1부의 그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쏟아낸 목사가 2부 3부의 그 시간에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하루 대여섯 번씩이나 자기표절의 감격에 떠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연하고 오연하다 못해 오싹해진다. 그들의 설교 자체는 차치하고라도. 나는 일단 적은 횟수가 성실하고 정직한 설교를 낳는다고 믿는다. 많은 묵상과 퇴고가 좋은 설교를 낳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손님을 초대한 잔치집의 밥상과 같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오늘날 한국교회는 말쟁이 변설가들 한국교회 10대 혹은 20대 설교가라 떠받들여 진 목사들이 다 물 흐려 놓은 것 아닌가. 그들을 정말 시대를 대표할 설교자라고 할 수 있는가.


5.

폐일 언.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설교를 하는 목사들을 강단에서 우선 퇴출시키자. 남의 설교를 작성해주는 부목사들이나 전도사들은 회개하고 양심선언을 하길 바란다. 교회개혁은 설교회복이어야 한다. (케리그마의 선포로서 설교도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설교 이외에 목회를 목사는 꿈꿔선 안 된다. 그러려면 목사가 되지 말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게 여러모로 더 낫다. 교회는 목사들의 자아를 실현하는 욕망의 각축장이 아니다. 


표절이 문제가 아니다. 설교가 실종하고 말쟁이들의 말잔치가 된 강단에서 그 말쟁이들을 내쫓고 진실한 설교자를 세우는 일. 그게 개혁의 시작이다. 어디부터일까? 내가 아는가. 여러분이 잘 알 터. 사단이 사단을 내쫓는 법이 없듯 목사가 목사를 내쫓을 법이 없다면 개혁은 목사로는 안 되는 것이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고린도전서 6:2). 행동을 개시하라. 이것이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도행전 29가 아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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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5)


가뭄의 의미


고라니가 마당까지 내려와 생전 먹잖던 비비추와 개망초까지 뜯어먹고 있다. 잎이 겨우 나기 시작한 고추 모종을 몽당가리로 만들어 놓은 진 오래되었다. 알뜰살뜰 부쳐놓은 싹들을 생각하니 애끓는 마음. 비를 비는 기도를 드린다. 허나 무슨 엘리야의 예지로 구름을 헤아릴까. 그보단 간절한 시절 속 태우는 가뭄이 무슨 뜻인지 하늘에 물어본다.


󰡔사무엘󰡕은 하권의 끝에(21) 다윗왕의 남은 치세를 정리한다. 소임이 끝난 창립자에게 역사가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엔 삼년 동안 비가 오지 않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결과(어떻게 물었을까?) 전왕(前王)과 그 집안이 저지른 기드온 학살사건 때문이라는 결론이 났다. 왕은 그 하회(下回)를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묻는다. 그들은 사울의 자손 일곱을 내어달라 요청한다.


“여호와의 빼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사울왕의 고향에서 그의 완전한 종말을 선언하리라는 원한에 사무친 요청이었다. 놀랍게도, 왕은 수락한다. 사울가(家)의 자손 일곱이 목매임을 받았고 곧 비가 쏟아졌다. 복수를 완성한 비, 원한을 풀어내는 비. 과거사의 피 흘림으로부터 땅을 정화시키는 비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 비를 맞이하진 못했다. 오직 한 사람 사울의 미망인 리스바가 자식들의 시체 위에 내리는 비를 맞았다. 영욕의 한 시대를 고별하는 처절하고 질긴 울음과 함께. 왕은 그 시체들을 거두어 사울왕의 묘실에 정중히 매장한다. 이로써 화해와 치유가 이루어졌고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 다윗의 과거청산. 이것이 대왕의 최후 업적이라 사관(史官)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과 봄이 이어진 접경의 긴 터널이 끝나자 새로운 계절이 펼쳐진다. 신(新)정부에 거는 기대와 찬탄으로 환호하기도 한다. 이제 막 복구한 일상은 연부년 삼년의 기근 끝에 있는데, 갑자기 맥이 빠지고 무서워지기도 한다. 왜 맥이 빠질까? 무엇이 무서운 것일까? 깜빡깜빡. 우리의 가뭄이 어떤 것이었지? 세월호, 물대포, 헬조선, 각양 마피아들의 연대, 베를린 장벽보다 더 공고한 넘사벽이 되어 탈출 외에는 전망이 없으리라 던 악몽 같은 참사와 장례와 애도의 기간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는 아랑곳없이 백년까지 누리리라. 백년까지 우리를 지배하려는 가상의 왕조라도 있는 것처럼. 적대 아니면 원한뿐인 역사의 미래가 무서웠다. 꿈을 비는 마음으로 동티라도 날까 평화와 절제의 집단지성으로 천재일우(千載一遇) 겸손한 승리를 획득했다. 권력 교체를 넘어선 함께 나가는 행복의 시대를 위해. 나 한 사람 가만있으면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은 무서움이 하나 더한 촛불들의 반전이었다. 그러니 ‘혁명은 이루지 못하고 방만 바꾸었다’는 시구처럼 이 반전이 ‘다 똑같다’는 허무주의로 돌아갈까 무서운 것이다. 해방이후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고, 4.19 이후 5.16이 터지고, 10.26 이후 12.12와 5.18이 터지고, 6.10 이후 6.29가 나온 것처럼. 말과 말이 겹치고 말과 말이 엇갈리고 말과 말이 말들을 낳기를 원하는 끝없는 스캔들. 새 부대에 새 술이 간절해진다.


거듭남. 과거의 청산. 회개와 고백이 요청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율법의 시대와 같이 보복으로 조종(弔鐘)을 울려서도 안 된다.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의 난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자발적 회개와 고백을 요구한다고 믿는다. 안달도 방관도 없이. 이 변화된 시대의 의미를 묻는 회개와 고백을 선도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솔직히 말해보자. 역사가는 장차 이 시대 우리들의 교회를 어떻게 기록할까? 󰡔사무엘󰡕의 가뭄과 비는 기상이변의 기록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모르거나 알아들은 인간에게 내리는 화답이었다. 개혁도 개개인 실존의 구체성에 이르지 않고는 ‘변한 게 없다’는 허무주의로 돌아간다. 누구보다 개혁을 진리파지(眞理把持)의 수단으로 삼는 기독교인들은 자기의 허무주의부터 밝혀야 할 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유럽여행을 가는 정신으론 미진하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로마서 2:28). 대지가 기근에 시달리는 한 기드온 거민들의 영의 가뭄도 끝나지 않았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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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4)


순복음 포수(捕囚)의 종언(終焉)


-범(汎)이든 호랑이든 한국교회의 기독교인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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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두 가지 분류 외엔 없다. 정치적으론 대의제 장로교, 신학적으론 순복음이다. 우선 모든 교파가 장로(長老)를 세운다. 감독제인 감리교, 직접민주주의 회중교회인 침례교도 장로를 세운다. 왜 그럴까? 한국인은 세 사람만 모이면 회장과 총무부터 뽑는다고, 안 세워주면 그 교회에 안 붙어있으니까. 그러나 장로들의 의결로 목회의 의제들을 결정한다는 대의제라지만 실상 대의(代議)는 유명무실하다. 대형교회일수록 당회장 담임목사가 전제적 제왕으로 군림하며 비자금 유용, 목회세습과 같은 전횡과 불법을 자행해도 적절한 제재를 못할 뿐더러 대다수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근위장교나 거수기들에 불과하다. 신학적으로 순복음이라 함은 범복음주의권이라 불리는 보수적 기독교계가 80년대 이전 자신들이 이단(異端)이라 정죄하고 비판하던 순복음식 영성운동(방언, 은사, 치유 등의 신비주의와 오중 복음 삼박자 축복 등의 세속적이고 기복적인 축복관)을 교세확장과 성도교육등 목회의 기본 도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인상비평적인 판단이니 내 의견에 반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럴만한 방증이 있다.)


그러니 결국 하나,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순복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시장(재벌, 삼성)에 넘어갔듯이 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순복음에 굴복해 통째로 넘어갔다. 왜 그랬을까? 교회성장이 절정을 지나고 성도수가 감소하기 시작한 90년대가 되자 교회는 더 이상 새신자를 영입할 전도의 동력을 상실하게 됐고 교회간 경쟁과 이동의 시대가 시작됐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농(離農)이 발생하듯 작은 교회에서 대형교회로의 수평이동이 대거 이루어졌다. 아이러니이지만 전체교세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대형화 부흥화 경쟁은 치열하고 노골화됐다. 나는 전부터 대형교회들에게 성도의 전수조사를 실시해 볼 것을 권해왔다. 그들이 다들 어디서 왔는지. 한국교회가 뭐가 문제고 무엇을 회개해야 할 것인지 자연 알게 될 것이다. 


시장의 욕망이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물들였다. 금단(禁斷)의 과일 같던 성공과 번영 축복의 선악과(善惡果)를 맛본 성도들의 허영과 욕망을 만족시켜줄 더 큰 교회, 더 세련된 예배,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교회(신학적 목회적 내용의 질은 중요치 않다)를 향한 수평이동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순복음에 굴복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다. 여기엔 복음주의권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성공한 유명 목회자들의 공로가 크다. 그들은 누구보다 선구적으로 앞장서 순복음의 이단정죄와 교류금지를 철회함으로써 총회와 교단의 결의를 무력화했고 순복음과의 적극적 교류를 시작했다. 자신들의 목회에 오순절 운동(五旬節運動, Pentecostalism)방식을 차용하기 위해서였다. 변화된 목회환경에 발맞춘 그들의 변화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힘입어 조용기 목사는 갑자기 이단의 괴수에서 한국교회의 큰 목자이자 대표목사 교계의 우상으로 추대되었다. 그 다음은 장신 총신 고신 합신 심지어 한신 등 복음주의권이든 개혁주의권이든 자유주의권이든 가릴 것 없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도 없이 자고 일어나니 순복음 천지가 돼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조용기의 4차원 영성, 피터 와그너의 교회성장학과 신(新)사도주의(New Apostolic Reformation), 베니힌과 빈 야드 운동, G2와 알파코스의 금이빨 금가루 집회, 방언, 입신, 웃음, 예언, 축사(逐邪) 여기에 온누리를 필두로 한 <경배와 찬양>운동과 새들백 윌로우크릭의 훈련 프로그램들 등 수입산 오순절주의와 번영신학 복음주의의 성장 운동들이 한국교회를 풍미했고 지금도 그 막대한 영향아래 교계를 지배하고 있다. 담임목사들은 한동안 자신들을 교회를 경영하는 CEO라 불렀으며 부목과 전도사들을 직원으로 격하시켰고 그들에게 경배와 찬양 처세술과 경영이론 심리상담 리더십 제자훈련 세미나 수업과 사역을 강요, 마침내 그런 혼합주의 영성들이 순수(?)한 복음을 완전히 대체하기에 이르렀다.(순복음은 일종의 대체된 복음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나오는 장로교 목사의 대사를 원용해 본다면 순복음을 쫓아간 다른 교파들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순복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콤플렉스들의 역동, 그림자의 역동,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욕망, 남보다 커지고자 하는 야망이 한국교회의 순복음 포수(捕囚)의 원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향후 한국교회의 지배적이며 본질적 정신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와 같은 세속적 변질과 획일화의 길을 반대하고 자기의 길을 소신 있게 걸어간 선배들과 동료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역시 대부분 순복음 일색 가운데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전략에 불과했지 부흥제일주의라는 전체적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하는 반(反)순복음주의 신학과 정치를 지향한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순복음은 옛날엔 위험한 사이비 정도였지만 이제는 중세 가톨릭만큼이나 변질된 기독교의 수괴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신학 역시 순복음에게 점령당했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이자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목사)로서 늘 이런 점을 아쉬워했다. 누군가 순복음으로 대표되는 우리시대 교회와 목회지향에 반대하면서 자라나는 신학생들에게 포스트 순복음의 영감을 열어줄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교회와 목회자 모델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선배, 그런 후학들만이 희망을 가져볼 기회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직 ‘가나안 성도’라든가 ‘탈(脫)교회’ 같은 제도교회와의 결별의 논의가 본격화 활발해지기 전이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그 길을 걸어가 그 문을 열어보기를 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자신의 목회가 거기에 부응할 효력 있는 메시지가 될 정도(규모)가 못됐음은 물론, 나보다 젊은 신학생들에게서 그런 희망의 단서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어느 면에서 젊은 신학생들은 목회현실의 억압에 더 쉽고 무력하게 굴복됐고 흡수됐다. 정치가 그렇듯 교계의 자정을 선도할 대안 세력은 결집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 나의 고뇌와 갈등 역시 순복음 일색에 잠식돼 비교 경쟁적 부흥에서 낙오된 퇴출자의 굴절일 뿐이란 절망감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나는 자주 가까운 교우들에게 그런 절망감을 토로하곤 했다. 기껏 노심초사 애를 써 새로운 신자를 전도해 양육하면 무엇 하나. 그들의 99%는 이삼년 이래 대형교회로 흡수된다. 그 이유는 그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 자녀의 신앙교육, 대형교회 신자와의 결혼(그들은 신랑이건 신부이건 대형교회로 흡수돼 가는 걸 당연시 한다.), 스펙과 인맥을 위한 이동 등이다. 한마디로 그들 역시 다른 무엇이 아닌 매머드급 크기가 자랑하는 유무형의 선전적 구미(口味)에 압도되고 매혹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 누군가에게 대형교회는 개척교회의 설립을 환영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냐하면 개척교회만이 새로운 신자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손 안대고 코푼다는 식으로 개척교회 목사가 고군분투 양육한 새신자들을 앉아서 흡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하여 개척교회들은 그 이삼년을 고비로 문을 닫는 경우가 태반이다. ‘목회 성공의 99.99%는 교회건물에 있다’는 탄식이 그냥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젊은 부부들은 그들대로 자녀를 둔 부부들 역시 그들대로 중장년과 노인들 역시 그들대로의 욕망과 필요 허영과 만족을 위해 대형교회로 간다. 대형교회는 이제 한국교회의 못자리가 아니라 거대한 회랑을 지닌 무덤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이런 환경에 저항하는 것을 나의 기치이자 목표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설득되지는 않았지만 교우들에게 이점을 강조하곤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 기치와 목표에 따라오지 않았고 결국 나를 떠났다. 슬픈 위안이자 자랑이지만 지난 10년의 목회를 통해 목사인 나나 아내나 설교나 우리의 목회철학이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교회를 떠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나와 내 설교와 목회방식이 바람직하고 좋지만 그게 아닌 이런저런 다른 이유들로 교회를 떠났고 결국 강남과 그 주변의 대형교회들로 흡수됐다.(나는 이 점이 가장 절망스럽다.) 가끔 사석으로 모이면 어떻게 하면 순복음과 맞장 뜰 대형교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의논하기도 했다. 그러면 대개는 내 사명을 확인시켜주고 포기하지 말 것을 격려해줌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개중에는 하나님이 내게 이러한 외로운 길을 원하시는 거라는 위로를 주는 건지 슬픔을 주는 건지 모를 말들을 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만 더 기꺼이 어리석은 목사가 되어 반대로 평신도인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 그렇다면 저 순복음들은 무엇인가? 저들의 반칙과 전횡은 어떤가? 저들의 말도 안 되는 설교와 성경 해석들은 어떤가? 그럼에도 불구한 저들의 성공은 무엇인가? 저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 그들의 권력화, 기득권화, 정치세력화, 복음의 변질, 진리의 왜곡, 기독교 가치관의 붕괴, 설득력의 실종, 전도의 종말… 그것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그러나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는 당신들은 무엇이냐라고 직설적으로 묻지는 못했다. 그 점이 아쉽고 후회스럽다. 어차피. 


예전엔 목회자들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만든 책임 당사자들이라고 비판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게 된다. 한국교회를 이 모양으로 전락시킨 장본인들은 성도들이기도 하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 목사들은 단지 대중의 취향에 알맞은 설교와 서비스로 그들의 요구와 비위에 맞춰 따라갔을 뿐이다. 그것이 변덕맞고 욕심 많고 의미 없고 어리석고 무식하고 고집스런 그들을 교회에 붙들어 두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D.L 무디는 평신도들을 양이 아니라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라 표현했다는데 그건 정말 기막힌 진실이다. 그들은 필요할 땐 기꺼이 목자의 도움을 청하는 양 흉내를 내며 ‘매애애~ 매애애~’ 찾아오지만 원기를 회복하고 또 다른 필요의 욕망이 생기면 야성의 늑대의 성질을 곧바로 드러낸다. 나는 이제 그 두 가지 행동의 시작됨과 끝남은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은 (하나님의 나라의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빵을 먹고 배부른 까닭(요 6:26)’이라는 예수의 말씀과 같이 그들이 원하는 게 무언지 어디까지인지.


목사가 아무리 제왕적이라 비판을 당하지만 사실 이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의 권력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그 결과는 사람이 생긴 대로 살고 끼리끼리 놀 듯 서로 속고 속이며 서로의 뱃속과 입맛대로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게 호의를 표하는 다수의 평신도들이 내게 자기의 교회와 담임목사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면서도 십 수 년째 그 교회를 다니고 있는 모습들을 신비롭게 본다. 그들이 그런 곳을 떠나 다시 그와 비슷한 교회들을 전전하는 사연들을 여전히 난해하게 듣는다. 그들은 늘 한국교회를 걱정하고 목사들의 인격과 설교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자신은 그럼에도 주님의 뜻(?)을 위하여 주님이 확실한 사인을 보내실 때까지(젠장, 무슨 사인을 원하는 건지) 그 자리에 충성스럽게 남아있는 매우 지성적이고 개념 있는 성도라 생각한다. 그들은 주님이 자기들을 방치해 두었거나 기대할 바가 별로 없는 자들로 치부해 놓으셨다는 생각은 절대 못한다. 자기들이야말로 위선자들이요 바리새인이요 저 비리와 추행, 전횡과 표절, 세습과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목사들의 든든한 지지세력인 것을 모르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여전히 헤어진 지 십년이 넘은 나의 설교를 찾아 듣고 있으며 내 책이나 설교문을 남들에게 소개하고 돌려 읽기도 한다면서 여전히 나를 존경하고 하나님께서 언젠가 한국교회를 위해 목사님(나)을 크게 쓰실 거라고 덕담을 해준다. 그럴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속으로 비웃는다. 그리고 재빨리 마음 깊은 속에서 제발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고 주님께 기도드린다. 나는 지금 호리병 속에 갇힌 괴물이다. 반(半)농담이지만 누군가 나를 여기서 꺼내준다면 그를 축복할지 아주 죽여 버릴지 모를 일이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먼 훗날 그들 말대로 정말 내가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목사가 됐을 때 그들이 나를 진짜로 다시 찾아줄 날이 온다면, 나는 ‘거짓되고 의리 없고 교활하여 이득에 밝은 무신(無信)한 병(病)신도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모른다. 내가 주리고 외롭고 지쳤을 때 당신들은 나에게 물한모금 준적이 없었다. 내 설교와 나를 칭찬했지만 진짜 필요한 내 사역에 돈 한 푼 도와준 바가 없었다. 당신들은 외롭고 곤란하고 근심이 가득차 위로와 격려 용기와 영감이 필요할 때는 나를 찾아오지만 그것이 다 충족된 다음 건강하고 안정되고 즐거움을 누리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사람, 심지어 나의 대적이나 내가 적대하는 자들에게로 가버렸다. 나는 정말이지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당하고 속아왔다. 제발 나를 아는 척 친한척 하지 말고 내 거절의 말을 새겨듣고 나를 떠나라.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시다.’라고. 곧바로 회개하긴 하지만 그들을 아주 개무시 박살내 주리라 결심하고 결심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교회라는 조직을 통한 교회내의 반(反)기독교(나는 이게 진짜 기독교의 적이라 여긴다)에 대한 저항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탈(脫)교회를 받아들였고 가나안 성도들의 시대가 왔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교회라는 조직이 거부된 시대 포스트 교회 시대 기독교 진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는 작금 순복음 일색의 조직과 제도로서의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류에 불과한 작은 규모의 대형교회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성공과 압도는 가라지의 번창과 같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대개 곡식보다 가라지가 벼보다 피와 깜부기가 더 왕성하게 자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전체를 잠식했다는 것은 주님이 더 이상 그것을 사용치 않으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성장과 번영은 그래도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이 포기하고 내버리신 것이다. 


추수 때가 오면 가장 먼저 뽑혀져 버려질 가라지. 이런 결론을 내리고 이런 말을 하게 되기에 이른 내 마음은 누구보다 쓰리고 아프다. 이것이 단지 그들과 같이 되지 못한 우울증에 불과하다는 짐짓 사려 깊고 점잖은 평가까지 포함하여.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 오늘날의 목회자 오늘날의 평신도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는 식의 착한 말은 더 이상 내게 위로나 반박이 되지 않기에 거부한다. 그렇다고 내가 가나안 성도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단합된 제도로서 교회의 균열 외에 가나안 성도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당장은 아니겠지만 서서히 내가 깨달은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내가 장래 어떤 모습일지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명목과 무실(無實)인 교의신학의 독단성으로 유지되는 조직으로서의 교회의 형태는 더 이상 아닐 것이다.




범(汎)기독교계의 홍준표 지지라는 성명을 보았을 때, 나는 이제 하나의 분투와 마침내 결별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탄핵국면 태극기 집회의 배후에서도 그들을 보았었지.) 이영훈과 조용기와 홍준표의 만남.(그들이 열거한 단체들이 있다지만 그것들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한국교회 최후의 몰골을 본다. 모든 내 스승과 선배와 동료와 후배와 믿음이 돈독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다. 이게 당신들이 속한 범(汎)기독교인가? 제발 아니라고 말하지 말기를. 그렇다. 나는 이들이 범(汎)기독교의 대표임을 인정한다. 이들이 우리 모두의 대표로 활동해왔고 활동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때문에 이제 나는 교회와 신학의 순복음 포수(捕囚)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회고하며 이제 그것을 청산 할 때가 왔다고 선언한다. 


다만 그것을 다시 한국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기대하진 않는다. 한 사람의 탈교회 기독교인 한 사람의 가나안 성도로서 내가 청산하고 내가 결별할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정말이지 종교개혁과 한 터럭도 상관이 없는 자들까지 개나 소나 루터와 캘빈 쯔빙글리(1531년 그는 카펠전투에서 8,000의 교황군에 맞서 2,000의 개신교 군대의 종군목사로 싸우다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를 들먹이며 비텐베르그, 제네바, 취리히 등으로 유럽여행을 떠나는 이 부패와 타락의 절정인 시대엔, 누구든 이제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청산하는 수순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기의 책임으로! 나는 오늘부로 범(汎)이든 호랑이든 더 이상 저들의 한국교회에 속한 기독교인이 아님을 선언한다.(마음을 추스르려 쓴 글이니 부디 타박하지 마시기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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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메시지, 카이사르냐 그리스도냐

- 누가복음 2:1~20 -

 

가이사 아구스도

 

“이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명을 내려 호적 하라 하였다.”

 

「마태복음」(2:1)은 헤롯의 시대로 시작되고 「누가복음」은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로 시작된다.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아래로 이어진 유대인의 족보를 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제자인 누가는 아브라함을 거슬러 아담까지 족보를 거꾸로 끌어 올려 창조주 하나님까지로 소급한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주제인 세계비전적 복음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거지만 약간의 세계사 공부를 해보자. 이 공부의 목적은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이 이 인간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하는 점을 짚어보려는 것이다.

 

가이사 아구스도(IMPERATOR·CÆSAR·DIVI·FILIVS·AVGVSTVS, 기원전 63~서기14)는 ‘존엄한 자 카이사르’라는 뜻이다. 가이사는 로마의 군인정치가 카이사르 장군(Gaius Iulius Caesar, 기원전 100~44) 가문의 성(family name)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나오는 그의 영어식 이름은 줄리어스 시이저다. 이 사람의 이름이 나중에 황제를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된다. 러시아의 ‘짜아르’, 독일의 ‘카이저’가 다 카이사르(케사르)의 음역이다. 오늘날까지 유럽의 나라들이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삼색기를 쓴다든가, 가령 미국처럼 국가 문장에 쌍두 독수리가 들어가는 등등의 기원이 다 이 사람 카이사르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가문의 고유한 명칭, 한 개인의 고유명사가 ‘세계의 지배자’ ‘천하의 황제’를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되었을까?

 

로마는 본래 귀족공화정 체제의 국가였다. 원로원이라는 대의 입법기구가 있고 호민관(집정관)이라는 선출직 행정가가 있어 국가를 이원화해서 다스렸다. 그러다 국가가 팽창함에 따라 군인들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는데 그 최고 정점에 이른 인물이 줄리어스 시저였다.

 

세계의 민주주의 진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나라를 꼽으라면 누구나 프랑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1789년 세계최초의 시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부르봉 전제 왕권의 마지막 황제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냈다. 관성에 의해 태어난 그대로가 태초부터 이어져왔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인간 역사의 비극이지만, 이것이 세계사 최초의 민주주의 시민혁명이었다. 민주주의, 시민 개개인이 최고의 입법기관 곧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황제와 왕으로 상징되는 소수기득권 세력의 영구집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의 자리가 합법을 넘어 신성불가침적으로 영구 보장된다는 것은 기득권 귀족들의 권리도 그와 같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누구는 귀족 금수저로 누구는 노예 고용살이 흙수저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정치는 물론 사회 문화 철학 예술 더 나가 교회 성경 복음 설교까지 모든 인간의 활동이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연대와 협력과 부역이 된다. 그러므로 비록 루이 16세가 자물쇠와 열쇠를 만드는 소박한 취미를 가졌고, 마리앙뜨와네뜨를 비롯한 황후의 측근들(문고리와 십상시 수석 실장 위원장 등) 민간인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에 대해서 흰 눈과 같이 결백한(결재만 해주고 써 준대로 읊어댄) 벌거벗은 임금님일지라도, 이 황제를 단두대로 보냈다는 것은 인류역사상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대사건인 것이다. 왕은 그리스도가 아니니 한번 죽으면 부활할 염려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도시들은 ‘민회(agora, ekklesia, apella, comitia)’라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로마도 그 이상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타격을 가한 사람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Magnus 기원전 356~323)이다. 정복자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 그리스 헬레니즘문명의 수호자로서 인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이 문명을 전파했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간다라 미술 같은 문명 접촉의 영향으로 불국사의 석굴암에 까지 그의 정복사업과 헬레니즘의 그늘이 드리워져있으니, 얼마나 신비롭고도 무서운 일인가. 이 알렉산더가 정복왕이 됨으로써 세계의 지배자로서의 황제, 그러한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제국, 그러한 제국의 기틀과 규범으로서의 세계가 완성되게 된다.

 

마치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지킨답시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정복전쟁으로 유럽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아넣었듯이, 황제를 죽인다고 황제가 되고자하는 인간의 야망까지 죽일 수는 없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의 무덤은 큰 바위가 무덤을 누르고 있도록 해놓았다고 한다. 다시는 이러한 독재자가 무덤에서 부활하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민주주의의 의지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독재자가 다시 나오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각성이다. 독재가 부활하는 모판은 시민들의 망각, 둔감, 정치가들과 기득권의 선전선동에 의해 유행병처럼 한 인간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그에게 기대하는데 있다.

 

줄리어스 시저가 정복전쟁으로 인기가 치솟고 세력이 커지니까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게 된다.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려는 공화파와 카이사르를 추종하는 제정파가 대립하게 되는데 카이사르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황제가 되려는 야심이 조금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한편, 선전전과 협박을 통해 원로원을 장악하며 황제로 가는 길을 닦아간다. 결국 공화파들은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음을 깨닫고 그를 암살하게 된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당할 때 남겼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브루투스, 너마저도…” 그러나 사실 역사는 그 말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줘야 마땅할 것이다. “카이사르 너마저도” 라고.

 

 

 

카이사르가 살해된 뒤 공화파와 제정파 간의 내전이 벌어지고 그 승리는 막강한 군벌을 형성한 제정파에게로 돌아간다. 제정파의 3명의 우두머리가 임시로 권력을 삼분하는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되는데 거기서 최종 승리하여 로마의 제1대 황제가 된 인물이 가이사 아구스도다. 가이사 아구스도(본명은 옥타비아누스)는 본래 카이사르의 여동생의 외손자로 아들이 없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카이사르 가문의 상속자가 된다. 아구스도는 레피두스를 실각시키고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물리침으로써 삼두정치를 끝내고 원로원에 의해 독재권을 부여 받는다. 이때 원로원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 아우구스투스(AVGVSTVS)다. 존엄한 자. 그 누구도 그의 존엄을 범접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기를 프린켑스(Princeps)라 불렀는데 그 뜻은 제1번 시민이라는 의미다. 원로원에서 제1번으로 발언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죽자 원로원은 그를 신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로마는 지상 유일의 신의 아들 곧 살아있는 신으로써 신성불가침의 프린켑스가 다스리는 제정 귀족사회가 된다. 그리고 이 의미는 프랑스대혁명으로 전제왕권과 귀족 기득권이 무너질 때까지 세계의 지배원리가 된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은 곧 모든 독재 권력과 영구 세습집권의 기득권이 하나님으로부터 합법적으로 부여되었고 따라서 이러한 체제에 대한 거부 및 반대는 신에 대한 반항으로 처벌된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호적

 

단독 지배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독제체제가 안정되자 천하에 호적을 명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이 사단의 충동질로 인구조사를 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역대상」 21) 왜 하나님은 인구센서스를 싫어하셨을까? 왜 성서의 기록자는 다윗의 인구조사를 사단의 충동질이라고 규정했을까? 이 기록은 하나님이 인구 조사를 싫어하셨다는 이야기일까, 민중이 싫어했다는 이야기일까? 아우구스투스의 호적 명령은 단순한 인구조사가 아니라 자기 본적지에 가서 등록을 하라는 특별한 명령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의심자들은 호적이란 거주지 등록이면 되는 것이지 본적지에 가서 등록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 기록을 거짓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시리아 총독 구레뇨의 호적의 역사적 연대를 들어서 복음서 전체의 신뢰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우선 구레뇨의 호적에 대해. 구레뇨가 아구스도의 명으로 시행한 호적조사는 첫 번째 한 것이라는 누가의 설명이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구레뇨의 인구조사는 단 한번 나타나 있고 그 연대가 「누가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의 저서Antiquities에서 AD 6년에 인구조사가 시행되었다고 기록했다. 6년이면 이미 예수가 태어나신 이후로 누가의 기록에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는 구레뇨가 두 차례 시리아 총독을 역임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구레뇨는 두 번의 재임 기간중 각각 호적조사를 실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누가가 굳이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 됐을 때 첫번 한 호적이라는 언급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의문의 표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왜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의구심들이 끝없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의 부재에 있다. 복음서 이외 일반 역사 기록에 예수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왜일까? 메시아 즉 인류 역사의 위대한 인물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은 대개 어디에서 나오는가? 위대한 가문. 왕가의 혈통. 정복자. 국가를 세운 개창자들이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역사는 그런 승리자들의 역사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이사야 53:1~8)

 

만일 당대 로마의 귀족 집단에 속한 지식인이 「누가복음」을 읽었다면 유대 지배 계급에서조차 인정하지 않는 예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것이 예수에 대한 역사의 직접적 언급이 현저히 부족한 이유다. 메시아(구원자)라 불릴만한 자는 이런 보잘 것 없는 출신과 형상을 지닌 사람이어선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의 인식 속에는 인간의 삶속의 보편적이고 거대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음모가 들어있다. 다름 아닌 메시아(역사의 주인공)는 황제 영웅 권력자 귀족 엘리트일 것이고 그래야 마땅하다는 편견이자 착각이다. 이것은 평범한 자, 노동하는 자, 희생하는 자, 고통 받는 자에 대한 멸시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거짓 믿음이다.

 

여러분이 가끔 어떤 영화를 보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주인공이 결국 모두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부자나 지식인 권력자는 항상 배덕한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 속의 신화일 뿐이다. 현실은 무수한 과묵하고 근로하는 영웅들과 희생자들에 의해 전진해가고 구원 되는 것이지만, 그들의 모든 노고와 노력은 소수의 권력자들과 그들에게 결합된 약삭빠른 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언젠간 이 침묵하는 구원자들이 그들의 말을 할 때가 오리라는 것이 역사의 발전 방향이었고 민주주의가 걸어온 과정이었다.

 

 

 

 

지금 11월에 시작된 촛불혁명이 성공하고 훗날 이 역사를 기념한다고 할 때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질까? 백남기 농민의 동상이 세워질까? 사람들은 박정희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세월호의 학생들이나 백남기 농민의 기념물이 건립된다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슨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라고 말이다. 예수의 초기 생애에 대한 현저한 기초자료의 부족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몰이해(은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거부(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 역사성을 잃어버리고 엉뚱하게도 신비화 되고 말았다. 신비화됨으로써 다시 부자와 권력자들을 보호해주는 신으로까지 왜곡되게 된 것이다.

 

호적 문제로 돌아가자. 왜 거주지에서 등록해도 될 것을 본적지로 돌아가 등록하도록 했을까. 이는 로마 제국이 표면적으로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내세우고 있지만 심층에는 공고한 감시와 통제의 혹독하고 잔인한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이 호적 방식은 세금의 확보 뿐 아니라 부랑하는 난민들에 대한 정보와 통제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벌어지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그것에 대한 각국 정보기관들의 정보수집과 난민통제 정책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자고로 제국들이 해체 붕괴하는 데에는 난민발생 곧 세금을 내지 않고 출신이 모호한 유랑민들의 대규모 이동이 원동력이 되었다. 떠돌이들이 결집하고 거기에 불순세력과 지방 세력들이 결합되면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구심이 형성된다. 이 구심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회오리바람처럼 이동하면서 세상을 휩쓸게 되는 것이다. 서유럽은 흉노라 불리는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 집단이나 몽골족의 서진으로 이에 쫓긴 훈족(타타르)이 서진하면서 서유럽까지 휩쓸었던 무서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로마 역시 이러한 동방 타타르계 용병집단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 사람들을 지옥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으로 ‘타르타르’라 불렀다. 아우구스투스의 천하 호적 명령은 그런 배경을 가졌고 이런 지상의 왕 아우구스투스 통치의 배경이 진리의 왕 그리스도 탄생의 배경이자 대립의 의미이다.

 

은마(銀馬)는 오지 않는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산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서으로 가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뜰에서 울 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다들 누군가(어느 때, 무엇인가) 오기를 기다렸다. 매일 눈을 뜨면 보이는 건 논과 밭과 산이었다. 산 사이로 신작로가 나있고 거기서 버스를 타면 시내(용인)로 갈 수 있었다. 용인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수원에 갈 수 있고 수원에서 기차를 타면 서울에 간다. 나는 유년시절 서울에 서너 번 가본 기억이 나는데 구체적인 풍경은 생각나지 않고 버스에 시달린 것과 연탄재 냄새만 기억난다. 우리 외가는 서울의 변두리였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시골보다도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조금 자라자 곧 서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청소년기에 벌써 미국이나 독일에 갈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오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를 누군가를 어느 때를 기다린다. 아빠. 엄마. 오빠. 동생. 남편. 아들. 딸. 손자. 무엇을, 어떤 때를 기다렸을까? 그 기다림과 기대와 소망은 각기 다르고 다양하겠지만 인간다운 행복한 삶, 샬롬,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미가 4:4」)처럼 자기의 생활 안에서 근심 걱정에 쫓김 없는 편안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뭉뚱그려 ‘구원(救援)’이라고 해보자.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런 구원이 풍족한 것이었다면 나는 서울을 동경하지도 미국과 유럽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동경한 그런 곳에는 그런 구원이 풍성해서 우리는 거기 가서 그것을 얻어다가 구원이 부족한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동요와 같이 서울 가신 오빠는 오지 않고 이내 우리의 구원의 꿈과 기대도 사라져 버린다. 한때는 서울의 최고 아파트이기도 했던 ‘은마(銀馬)’는 재미작가 안정효의 소설에 나오는 전설 속 구원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은마아파트는 있을지언정 은마는 없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신화의 시대가 끝나면 전설의 시대가 온다. 신화의 주인공과 전설의 주인공은 다르다. 신화 속의 주인공은 영웅이고 승리자이고 위대한 권력자이다. 그러나 신화의 시대가 지나고 그 신화에 도전하는 또 다른 영웅은 반란자 배반자 패배자의 이름을 얻는다. 우리 민족에게는 오랜 세월동안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애기 장수의 전설이 있었다. 그의 날개가 자라나 날아다니게 되면 마침내 세상을 뒤집어엎을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애기장수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같이 날개가 잘려서 죽게 된다. 그런데 신화학적으로 이러한 전설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지배세력에게 짓눌린 민중들이 만들어낸 슬픈 영웅이 애기장수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의 창작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일부러 지어내 퍼트린 실패한 메시아가 애기장수라는 설이다. 여러분은 이 두 학설 중 어느 것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되는가?

 

아무튼. 신화의 시대가 가고 애기 장수도 죽고 전설도 지워지고 우리들은 자기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곧 내 스스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자기 스스로가 자기에게 오빠이고 은마이고 메시아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이 말은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우리의 인식이) 자각되고 각성된 의미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주체적 자립(自立)을 이루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그 누구(지도자, 권력자, 부모님, 부부간, 친구간, 선생님, 목사님)의, 어차피 부분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에게서 전체적 구원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 안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전체적 구원을 기대하고 발견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은 저 멀고 높은 서울과 워싱턴과 뉴욕과 파리나 베를린 혹은 모스크바를 바라는 게 아니다.

 

예루살렘이나 대형교회나 명망 있는 종교지도자를 사모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이게 진짜 우리들 자신이다!) 내 속에서, 우리들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보다 근본적이고 인격적인 전체적으로 완성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사랑(새로운 관점의 관심)으로. 서로 새로운 관점의 관심으로 자각된 사랑을 함으로써 우리는 무관심하고 비정한 이 세상과 맞서는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 사랑의 발견 속에서 우리는 모든 지상의 가짜 메시아들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게 된다. 그것을 오직 하나님만 바란다고 하는 것이다.

 

이걸 일깨워주려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개인이 구원을 받음과 동시에 그 개인이 공적 그리스도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나약하고 취약한 죄인의 자의식으로 뭔가 눈에 보이는 가짜 메시아들에 의지하고 기대야만했던 옛 자아의 상태를 뛰어넘어 하나의 독립적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가 그리스도적 인간, 신의 아들, 신적 인류로 탈바꿈하는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도 이렇게 신자에게 주어진 권능과 책임에 도달하지 못하여 여전히 그리스도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미지의 메시아로 상정해 놓고 자기의 모든 삶을 그 추상과 관념에 맡겨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삶의 태도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메시아는 본래 없는 공허한 것이거나 거짓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마치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 것으로서 일체의 인간적 노력이나 행위가 없이 무상으로 받는다는 교리에만 입각해 있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노고와 희생을 거저먹겠다는 인민의 아편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교를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저절로 나온다. 어리석고 깨어나지 않은 사람, 어린아이 같아서 잘 속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의심도 회의도 결과도 헤아리지 못하는 민중을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항상 이런 아편 같은 세상에 휩쓸린 사람들을 흔들어 깨움으로써 그 지배자들을 두렵게 한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구약성서는 아들들에 대한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의 이야기다. 선택하고 유기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꼭 그렇게만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의 기록이란 동시통역이 아니라 추후기록이기 때문이다. 선택받고 보니 이게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얘기. 그러나 당시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 당사자들의 선택이 중요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땅을 갈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하와는 아들을 낳는다. 가인의 이름은 ‘내가 하나님과 함께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를 지녔다. 구원자를 낳았다는 기쁨의 표현이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통해 에덴동산으로 복귀할 기대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에덴에서 쫓아내실 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창세기 3:15). 그러나 가인은 시기심 때문에 동생을 죽임으로써 선택에서 탈락한다. ‘아벨(헤벨, 공허의 뜻)’은 무고한 죽음, 폭력에 의한 희생자의 상징이다. 그에게도 본래 어떤 이름이 있었겠지만 성경은 그를 그냥 ‘공허(생기의 뜻도 있음)’라 불렀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존재를 무위의 공허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는 가장 악한 폭력이 된다. 하나님은 그를 대신해 곧 이 공허의 무고한 희생자에게서 이어 나온 아들 ‘셋(대신 줌의 뜻)’을 통해 계보를 잇게 하신다.(창세기 4:25) 우리 모두(셋)는 공허로 돌아간 누군가(희생)의 대신으로 주어진 생명이다.

 

노아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세기 5:29)는 의미다. 역시 에덴동산의 회복을 염원하는 인간 구원의 갈망과 기대가 담긴 이름이다. 그러나 노아는 위로는커녕 홍수로 세상이 깡그리 심판받는 것을 보았다. 훗날 홍수 후에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드는 추태를 보인다(창세기 9). 이것은 뭘까? 왜 노아는 술에 취했으며 벌거벗었을까? 왜 그는 자신을 비웃은 아들 함을 저주했을까? 왜 자기의 벗은 몸을 보지 않고 감싸준 셈과 야벳을 축복했을까? 이것은 노아의 술 취한 절망이다. 술에 취해 그는 돌아갈 가망이 없는 가짜 낙원을 만들고 스스로 벌거벗었다. 함은 그것을 비웃었다. 무엇을? 낙원 복귀의 꿈을. 이미 낙원에 돌아갈 꿈을 포기해버린, 그 절망(갈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는 인류가 나타난 것이다. 자기 아들일지라도 노아가 그 아들과 아들의 아들(가나안) 곧 그 후손까지 저주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메시아(에덴 복귀)를 기다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바꾸면 곧 스스로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메시아) 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

 

메시아를 포기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주셨다. 두 가지다. 땅과 자손. 이삭, 야곱, 그의 열두 아들.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사백년을 살았다. 땅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때가 이르러 모세가 나타났다. 모세는 정치적 지도자이자 시대의 메시아적 인물이었다. 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유아학살에서 살아남았다. 그 이름은 ‘물에서 건졌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이끌고 출애굽(Exodus, 길을 떠난다는 뜻)을 결행했다.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 건설할 하나님 나라의 반석인 토라(תּוֹרָה, 율법)를 선포했다. 율법은 법률이지만 동시에 지혜의 가르침이다. 가르침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지혜. 그 원리에 대한 이해력. 그러한 이해의 충만함이 만드는 국가제도의 종교적 서정성. 그것이 가나안의 자연과 어우러진 하나님 나라의 이상향이었다. 모든 지파와 가문이 땅을 가지고 있고 그 경계와 원칙을 지키며 각기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 그늘 아래서 평화롭고 안전한 삶. 그들이 아직 히브리 노예였을 때 애굽에서 꿈꾸던 천국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사사들의 시대를 거쳐 사울이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첫왕이 된다. 그는 세속 왕의 전형적 실패와 패착을 다 보여주고 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다윗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이 무렵 사무엘과 같은 예언자가 등장한다.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삼두체제는 멸망 때 까지 이어지는데 마지막엔 이 세 가지가 다 타락하고 극소수의 예언자들만이 실패한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게 된다. 이 무렵 메시아의 단절이자 진정한 메시아 도래의 꿈이 생성된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유수 시대에 이스라엘은 고난, 고통, 박해의 나그네 생활 곧 세상의 최하층으로 살면서 ‘도대체 왜?’라는 강렬한 종교적 의문의 해답을 갈구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와 실패의 역사를 기록하고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면서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했다.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도래를 이렇게 예언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사야 61:1~3)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했는데, 그들이 갈망한 메시아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는 참된 왕 제사장 예언자이어야 했다. 그것은 오랜 인간의 역사와 종교적 경험 그리고 성서적 예언의 연구를 통해서 나온 결론이었다. 왕만으로도 아니고 제사장만으로도 아니고 예언자만으로도 아니더라는 것. 자신들과 같은 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려면, 어떤 세상이 와야 하는가? 세상의 왕들을 보니, 세상의 제사장들을 보니, 세상의 예언자들을 보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럼 누구이어야 하는가? 이 셋이 하나이어야 한다. 이 셋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참된 그리스도의 사회를 건설하려면 이 세 가지가 기능적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정치적 지도자, 영적 중재자, 미래의 지시자.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런 메시아를 참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기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다윗 같은 메시아를, 어떤 사람은 엘리야 같은, 어떤 사람은 멜기세덱 같은, 그런데 누가 왔는가?

 

 

 

베들레헴 말구유에 아기 예수가 오셨다. 나사렛 지방 시골 목수의 아들이 나타났다. 가이사 아구스도와 유대왕 헤롯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시대에, 폭군들과 부패한 종교지도자들과 끊어진 예언자의 시대에, 누가 왔나? 예수가 오셨다. 오셔서 예수는 무엇을 했는가? 폭력과 지배의 법, 율법의 세계로부터 사랑과 이타의 법, 비폭력적 사랑의 세계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그는 우선 가르치는 예언자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복잡하고 고상한 랍비들과 달랐다. 단순하고 지혜로운 말씀들. 명쾌한 자유의 선언. 거듭남. 세례. 그는 세상 권력자들의 지배에 얽매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바라보라. 믿음이라는 영적 실제적 본질적 변화의 세계, 믿음이 있어야지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셨다.

 

이것을 깨우쳐 이 세상 지배에 히브리 노예처럼 예속된 자기를 자각하고, 거기에 직면해 십자가를 지듯 그것을 짊어지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비로소 열리고 보이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성전. 새로운 예배. 새로운 신의 나라. 그것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인식상의 깨우침과 생각하는 방식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가운데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깨우친 사람은 자기의 그리스도적 삶 곧 메시아적이고 공적인 삶의 소명을 깨닫고 이 세상에 비참여, 비가담, 비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러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나그네 떠돌이 풀뿌리 민중이란 본래부터 언제나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인데 자각치 못했을 뿐이었다. 자각하면 가난한 자도 메시아로 각성되어 자유로워진 지상의 왕인 것이었다.

 

예수님은 성전의 제사가 아니라 이런 왕적인 삶을 진짜 종교라 했다. 산제사로 자기를 희생으로 드리는 것. 세상 지배자들처럼 자기의 권세와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는 참 제사장으로서 성전을 거부하셨다. 성전을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셨고 그 모든 화려한 건축물이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 선언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리라. 하나님은 이런 예배자 곧 삶과 정신의 예배자를 원하신다고 하셨다(요한복음 4:24). 그는 이러한 참 제사장으로서 세상과 하나님 간의 중재자로 오신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 중재는 어떤 방식이었는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인간이 동료 인간을 자기와 같이 대접하는 예절. 사랑이 곧 새로운 계명(율법)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 그 사랑으로써 우리도 우리가 받고 배운 조건 없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민족, 전통, 율법, 그런 관념이나 의식도 필요 없이. 편견, 불안, 의심, 경계, 이런 분리와 분열도 필요 없이. 예수님은 참된 미래의 예언자로서 자신이 보이신 그 사랑으로 사랑 없는 세상을 구원하라고 우리의 미래를 제시하셨다. 오직 서로 사랑, 오직 서로 존경, 오직 서로 대접, 서로 같이 살아가는 아름다움 단순함 착함으로.

 

가이사냐 그리스도냐

 

그리스도는 너희 안에(우리의 사랑 속에) 자기가 계시고 하나님도 계신다고 하셨다. 세상에 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러 내가 왔다고 하셨다. 내가 곧 하나님 아들이고 메시아라고.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내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인 내가. 배우지도 못하고 유명하지도 않고 중앙무대에서 활약하지도 않은 내가. 예언자에서 제사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을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왕국의 왕, 진리의 왕으로 선언하셨다. 아우구스투스와 헤롯과 빌라도와 안나스와 가야바의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다. 니가 무슨 예언자냐? 니가 무슨 제사장이냐? 니가 무슨 왕이냐? 헛소리! 미쳤다! 신성모독! 바알세불이 지폈다!

 

그러나 그가 표적(sign)을 보이시자 사람들이 몰렸다.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상의 왕과 지상의 제사장과 지상의 예언자들이 합작하여 참된 왕이자 제사장이자 예언자인 그를 십자가에 죽였다. 강도와 같이 반란자와 같이, 저주받은 자의 형상으로 죽였다. 그러나 그를 죽였어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을 근절시키진 못했다. 그가 없어도 근절 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깨닫고 경험한 것을 고백했고 증언했고 전파했다. 무엇을?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 복음을. 이제 난 알았다. 무엇이 구원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가 내 안에 있어 나는 죽고 그가 살았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왕이요, 제사장이요, 예언자인 그. 그리고 거듭나 새롭게 태어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

 

오빠는 없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신화는 끝났다. 그러나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 왔다. 차원과 인식과 관점이 달라진 현실. 내가 구원자다. 내가 예수다.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기쁜 소식을.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모든 인류에게 평화가 되는 소식과 그 방식을. 그것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폭력을 이기는 것이다. 내 안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공동체 속에서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내게서 세상을 봄으로써 가능해진다. 나는 세상의 거울 진리의 거울이다. 내가 세상의 대표자이므로 나의 죄와 슬픔과 미움과 원망과 약함과 그런 것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안에서 내가 얼마나 고귀하고 유일한 가능함을 지닌 존재인지를 자각하니 내가 곧 나에게 왕이고 제사장이고 예언자로서 나의 모든 인생이 새로워진다.

 

이 두 가지. 1)정직한 인식과 직면. 2)그것을 넘어가는 차원 다른 성숙과 지혜. 지혜는 도덕이 아니지만 도덕보다 현명하다. 지혜는 사랑인데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넘어 타자를 환대하는 그리스도적 사랑을 깨치고 배운 사람이다. 사려깊고 온정이 있고 따스한 연민과 냉철함, 공감과 슬픔과 카타르시스를 가진 사람. 종교적 서정성. 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식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 더 이상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게 된다.

 

지금 세상은 가이사 아구스도, 헤롯, 빌라도, 가야바와 안나스,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최순실, 김삼환 조용기 오정현의 세상이 아닌가. 이 세상에 우리의 그리스도는 어디 계신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에베소서 3:17).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태어났는가? 얼마나 자라고 계신가? 옹알이 수준? 초딩? 중딩? 고딩? 대학생? 청년, 중년, 노년? 왕(정치적 지도자)? 제사장(종교가, 예술가)? 예언자(비평가, 철학자, 사상가)? 바울은 말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브리서 5:12).

 

아우구스투스의 천하의 변방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하나님의 아들 참된 진리의 왕 예수가 아기로 오셨다. 아직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주의 부모와 천사들의 초대를 받은 들판의 이름 없는 목자들뿐이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

 

누가 이 의미를 알겠는가! 이제 곧 그리스도께서 무럭무럭 자라나 갈릴리에서 부터 복음을 전파하시고 유대와 사마리아를 누비시며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실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오시기를! 자신의 인격적 결단으로 자기 안에 메시아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우리 모두 새해에는 놀라운 변화와 성숙이 임하기를! 우리 교회와 사회와 나라도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공의로운 세상으로 진전되어 가기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복음이 도래하는 샬롬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오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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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종교회복이다

- 종교개혁 499주년을 기념함 -

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자유인교회엔 네 가지 기념주일이 있다. 창립기념주일, 부활기념주일, 종교개혁기념주일, 성탄기념주일이다. 특별한 행사를 따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기념(記念)’이라 이름 붙인 말 그대로 오래도록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 간직한다는 뜻이 있다. 네 기념일이 다 의미가 깊지만 개혁주의 목사로서 그중에서도 가장 기념할 주일을 꼽으라면 나는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기념주일을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하면, 종교개혁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들 프로테스탄트 교회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선행되는 세 가지 질문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곧 1)종교란 무엇인가? 2)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3)종교개혁의 결과는 무엇인가?

 

첫 번째 종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해볼 수가 있겠다.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반대급부다. 그 무엇인가란 지금 지배적인 현실, 조건, 상태 같은 것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종교란 기본적으로 반현실적인 것,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인 것이다. 왜 그러면 이러한 종교라는 반대급부가 필요할까? 그것은 이 세상 현실이 사람이 존재하고 생존을 유지해 나가기에 합당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는 유한하고, 시간은 종말론적이며, 환경은 잔혹하다.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조건, 유한성, 가혹한 노동, 죄와 악, 타락과 부패, 폭력과 지배, 병과 죽음, 곧 모든 부자유에 대한 반대급부(자유)로 존재하고 반대급부로 존재함으로써만 본질적 의미를 갖는다.

 

그 반대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예컨대 도피이거나 저항이거나 초월이거나 수용이거나. 그러나 단 한 가지 방식만은 예외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타협. 한편 되기. 현실의 반대급부로서만 의미를 갖는 종교가 현실과 타협하거나 한편이 된다는 것은 존재자체의 의의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턴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나 존재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없다. 그런 것은 오히려 더욱 더 악착같이 존재한다. 그럴 때 그러한 종교의 반종교적 현실 속에서 우리는 ‘2)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발견한다. 그리고 2)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때 ‘3)종교개혁의 결과는 무엇인가?’의 그림도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종교개혁 전야에 유럽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교황권력을 필두로 한 지상의 모든 권력은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모든 지상의 권력에 대한 종교의 스탠스에 대해 철저히 반대로 존재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기엔 반대급부라고 할 만한 종교가 없었다. 세상 권세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매개로 혹세무민의 전횡을 일삼았다.(권력은 멀쩡한 사람들을 얼마나 일상적인 바보로 만드는가!) 무지와 미신, 사악함과 부패, 수탈과 탄압, 성직매매, 가렴주구, 우상숭배, 사단적 갑질들이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었다. 민중들은 이런 세상 돌아가는 사태가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누구라 지목할 수도 없는 권력들이 혼돈스럽게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때, 종교개혁의 선각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현실의 반대급부로서 개혁의 불을 질렀다. 그들의 도구는 설교(성서)였다. 말씀을 통한 성령과 불의 세례를 통과한 민중은 오랜 무지와 혼동의 잠에서 깨어났다. 그 결과 개혁운동은 신학적이고 영적인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나중엔 중세 로마카톨릭 체제와 봉건 사회를 붕괴시키고 민족주의와 휴머니즘,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제도적 사상적 예술적 결과로 진전되어 갔다. 곧 종교개혁의 여파로 발생한 정치 사회 제도 사상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냐? 현실(죄와 악과 그로인한 모든 부자유)에 대한 반대급부(자유선언)였던 것이다. 이것이 종교라는 영성의 역동하는 흐름이다.

 

 

<John Calvin by HolbeinWikipedia>


 

종교개혁이 던지는 질문

 

오늘은 499주년 종교개혁기념주일이다.(기념일은 10월 31일) 지난해 마르틴 루터에 대해서 설교했기 때문에 올해는 존 캘빈에 대해 설교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가롭게 역사를 탐방하며 낭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주역인 인물들에 대해 추적해 보는 것은 흥미롭고도 중요한 일이다. 개인사나 가족사나 세계사나 실재했던 사실들을 아주 망각해 버린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작은 애석함에 매달려있을 여유가 없다.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의 역사 속에 마치 종교개혁 전야와도 같은 사악함과 부조리와 부패와 혼동이 대한민국 전체에 만연돼 있기 때문이다. 언제는 기득권과 권력이 깨끗하고 명백하고 정의로웠던 때가 있었던가? 문제는 종교다. 지금 가장 중대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현실의 반대급부로서 존재하는 종교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그것이 도피든 저항이든 초월이든 대안적으로 기댈만한 종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든다.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저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난감할 것이다. 엊그제 페이스 북에는 외국인 남편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이 자기 남편들에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설명하는 데 대한 난감함에 대한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남편들이 자기들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가 마침내 백일하에 드러나고 가련한 금치산자 대통령이 초췌한 모습으로 2분짜리 녹화 사과를 한 이후 한국교회의 대표를 자처하는 한기총과 한교연은 곧바로 개헌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일종의 물타기 성동격서의 방식으로 대통령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여당의 일각에서도 대통령 퇴진주장이 나오고 있는 판국에 왜 하필 교계의 대표자라는 위인들이 대통령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처음 던졌던 질문을 조금 다르게 다시 던져보자. 1)그들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2)지금 종교개혁은 왜 필요한가? 3)종교개혁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아마 그들도 오늘 종교개혁을 기념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기념해야할 종교개혁은 이러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기념이 아니라면 그것을 기념해야할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두 가지 방식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좋은 방식이고 하나는 나쁜 방식이라고 했다. 좋은 방식은 (히브리서 13:7~9)의 방식이고 나쁜 방식은 (마태복음 23:29~33)의 방식이다. 각각 말씀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서 13:7~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복음 23:29~33)

 

첫 번째는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왜 일어났나 하는 그 연원을 추적하고 그 과정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의 현재를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모든 역사의 본질을 지우고 엉뚱한 기념식과 엉뚱한 기념사업으로 그 본질이 망각되도록 대체해 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는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의 회복을, 두 번째는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의 왜곡을 나타낸다.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 방식의 종교개혁 내지는 신앙적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그리고 우리시대의 교회를 대표한다는 자들은 대개 두 번째 그룹에 속해있고 나머지는 침묵 속에 잠들어있고 첫 번째 태도는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로써 종교개혁 499주년을 기념하는 우리가 이제부터 진실로 기념하고 간직하고 전개해 나가야할 종교개혁의 모습이 어떠해야할 것인지 그림이 명백하고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필요성

 

오늘날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필요는 무엇인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봉화를 들어올리기 전과 같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기독교인들이 참으로 무지하고 뒤떨어져 있으며 문맹(文盲)들이기 때문이다. 문맹이라는 표현은 역시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주장될 수 있다. 첫째는 문학적이고 둘째는 종합적 의미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제대로(전체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전체적인 신앙생활이 왜곡되고 있는 것을 읽어내지 못한다. 이 두 가지 의미의 문맹이 만들어 내는 현실이 도덕적 상태의 현저한 하락이다. 과거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든가 성실하고 진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 기독교인들은 스스로가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자긍심이 뭔지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우리들 자신의 종교개혁(믿음)의 제1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믿었을 때 그 사실이 가지는 첫 번째 의미는 그것이 우리들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기로부터 전진해 온 것이다. 그러한 영적 인격적 도덕적 새 출발을 가능케 했던 동력은 무엇이었던가? 복음의 말씀(성서)이었다. 특별히 그 복음의 말씀이란 1세기에 지상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복음서󰡕를 포함한 󰡔신약성서󰡕를 말한다. 이 󰡔신약성서󰡕의 복음의 말씀을 통해 첫째로 이 말씀들에 대해 각성했고 각성되자 그 말씀이 우리의 삶으로 들어왔다. 그러한 변화의 상태는 세상의 세상적 존재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서 누구나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고 자신의 변화를 고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신앙고백이 곧 ‘구원의 확신’이다. 이 구원의 확신이 우리의 진로를 실제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고 그 바꾸어진 진로란 세상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새로운 신앙의 현실이다. 그것이 타협이나 한편 되기만 아니라면 도피이든 수용이든 저항이든 초월이든, 이 공식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리고 이것이 종교개혁이다.

 

루터나 츠빙글리 캘빈 존 낙스 같은 위대한 종교개혁자들 역시 그들의 시대에 세상 현실로부터 신약성서의 믿음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말씀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고 그 자신들이 맨 먼저 그 메시지로 돌아갔다. 그러자 성령이 그들을 사용해 문맹 상태에 놓인 민중들을 각성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지 신약 성서를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설교했을 뿐이다. 그것이 세계(현실)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어디를 향한 진로로 바꾸어 놓았나? 노예해방, 봉건전제의 타파, 절대왕정의 붕괴, 독재의 몰락, 민주주의, 인권, 자유, 평등, 비폭력, 노동조합, 여성해방, 인종차별 철폐와 장애인에 대한 권리, 지방자치, 반전운동, 환경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덕성의 제도화로 인류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도덕성의 제도화가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천국)는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말씀)으로 인한 변화와 그 변화를 각성 시키는 설교(성령의 역사)로 구현되는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도덕성이 제도화되는 세상을 건설하도록 우리를 전진시킨다.

 

재확인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필요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기독교인들이 참으로 무지하고 뒤떨어져 있으며 문맹(文盲)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맹의 현 상태와 우리가 여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1)세속화(사두개주의) 2)도덕화(바리새주의) 3)초월주의(혼합주의) 4)종교성 상실의 상태와 순서로 정리해 설명할 수 있다.

 

  1)세속화(사두개주의)

 

교회는 80년대를 정점으로 자본주의 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사회와 맞물려 지난 30여 년간 급속하게 세속화 되었다. 이른바 ‘오중복음(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과 ‘삼박자(영혼, 물질, 건강) 축복’으로 대표되는 순복음식 번영신학은 십자가의 자기부정이 아니라 반대의 욕망긍정을 정당화 시켰다. 처음엔 이에 대한 신학적 반대와 백안시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되기까지 했지만 결국엔 한국교회 전체가 도리어 순복음에 굴복되는 역전이 벌어졌다. 조용기 목사는 한때 자신을 한국교회라는 골리앗과 싸우는 ‘조다윗’이라 불렀었다. 과연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에 방불할 역전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영적 혼탁이 생겨났다.

 

긍정주의 일변도 신앙의 열매는 확실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지만 그 맛에 취하면 취할수록 세속화는 가속화됐다. 부흥열, 건축열, 대형교회의 출현, 온갖 부패와 금품 스캔들, 권력형 정치목사들의 출현, 교회 안에서 예언이 사라졌다. 담임목사들은 회사의 경영자들이 되었고 부목사들은 직원이 되었다. 경영학, 교회성장학, 상담, 심리, 처세술, 온갖 마인드 컨트롤이 기독교 메시지를 대체했다. 예배에서 설교(성서)의 비중은 줄고 찬양과 기도, 이벤트 등의 비중은 늘어났다. 이러한 세속화의 요소들은 현실긍정과 성공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었고 복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현실의 권세 곧 보수적 세속 기득권과 교회의 정치적 연대가 점점 공고해져갔다. 결국 기득권과 교회의 이해타산은 일체화 되기까지 이르렀다.

 

2)도덕화(바리새주의)

 

도덕화는 세속화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그것은 세속화된 자신들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그들을 반대하는 그룹들 속에서도 나타난다. 도덕화가 내부에서 나타날 때 그것은 무의식적 콤플렉스를 가리는 소도구로 잠시 사용될 뿐이고 그것이 전체 메시지나 메시지가 지시하는 삶의 강조된 내용은 아니다. 흔히 ‘~~해야 한다’로 설교되는 도덕화된 메시지는 세속화된 욕망을 정당화시켜주는 명분으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면 그것은 아예 교회의 세속적 목표달성(예컨대 건축헌금 모금 같은)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세속화를 반대하는 그룹에서의 도덕화 역시 문제를 가진다. 문제란 그들에게 강조되는 것이 다름 아닌 도덕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예배는 지루하고 숨막히는 윤리강론 시간이 되고 신앙생활이란 항상 뭔가 도덕적인 교훈이나 거기에 맞는 삶의 실천을 발견해내어야만 하는 고루한 것이 되고 만다. 그들은 흔히 세상을 어두운 죄에 그늘로 인식하며 그러한 인식을 지닌 자신은 의롭다는 식의 바리새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바리새주의야말로 그 자신에게 어두운 그늘이 되고 자기를 얽어매는 구속복이 되기도 한다.

 

3)초월주의(혼합주의)

 

초월주의라는 명칭은 이들이 스스로를 사두개주의적 세속화와 바리새주의적 도덕화로부터 벗어난 참된 복음을 가졌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기들은 복음의 말씀에 천착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생활에 있어 성서에 대한 해석이나 설교를 대단히 중요시한다. 그 결과 탁월한 복음을 강론하는 설교자 목사가 각광을 받고 그를 중심으로 이른바 마니아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이들을 초월주의라 명명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복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현실로부터 말그대로 초월(도약)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발을 땅에 붙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처럼 복음을 이야기한다. 자기들이 말하는 그 복음을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이 아닌 거라는 배제와 배타가 중요한 결집의 논리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들을 다시 혼합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그들 역시 세속화를 피할 수 없고 도덕화된 자기율법 안에서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바른 복음을 가진 매우 특별한 부류라고 믿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고 착각 같은 것일 뿐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말 자체가 거짓된 것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4)종교성의 실종

 

종교성의 실종은 선행된 세 가지의 결과로 나타난다. 선행한 세 가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가진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을 정통적이라 불리는 교회 안에서 혹은 교의 안에서 발견할 수 없고 자주 그것을 벗어난 지점에서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그리스도인라고 할 수 있을지 회의를 느낀다. 그는 어떤 때는 자신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여기기도 하고 혹은 그런 것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종교적으로 매우 성숙해졌다고 느끼기기도 하고 동시에 신앙을 상실했다고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Marein Luther by Lucas Cranach, Wikipedia>


 

종교개혁은 종교회복이 되어야

 

며칠 전 JTBC뉴스에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이야기가 등장했다.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 장면에는 주인공 청년이 애인과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인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데 주인공은 대답할 말을 잃는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 그는 그렇게 대답한다. 나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는 <상실의 시대>를 누군가 패로디한 <순실의 시대>란 그림을 띄웠다. ‘순실의 시대’란 곧 ‘상실의 시대’인 것이다.

 

세속화, 도덕화, 기만적 자기초월의 과정을 거쳐 우리 기독교는 어느새 종교성을 상실한 상실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우리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시대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무엇보다 기억해야할 것은 종교개혁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일깨워주었다는 점이다. 참된 1)종교성과 함께 2)경건함을. 1)종교성이란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자기부인의 항상 깨어있는 비상한 정신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알고자하는 마음이다. 존 캘빈은 인간의 제1의 목적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했다. 경건함이란 그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겸손함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성이란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진 경건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상태를 가질 때 우리는 그것을 종교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실은 종교회복이라고 불러야 더 마땅할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물론 <신약성서>를 가지고 싸웠다. 그러나 그들이 신약성서에서 발견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는 단지 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성이며 경건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성과 경건함으로부터 구원의 확신이 나왔고 그 구원의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모든 반종교성 반경건의 세속화, 도덕화, 자기초월, 종교성 상실의 현실과 분명하고 명백하게 싸우게 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직설적으로 교회에 나오라 권면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못한 처신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시대를 살고 있다. 교회에 나오라 권하는 대신 교회에 나오든 안 나오든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인으로(?) 살수(도?)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교회에 나오라고 권해보았자 그들이 교회 와서 배우는 것이 위의 네 가지 상태 중 하나라면 의미가 없다. 혹은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다 말은 한다지만 과연 그 말의 실효성은 어떨까? 아무튼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게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신다고 해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은 우리들 자신이 종교개혁 내지는 종교회복의 필요 앞에 직면하고 있음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세속화되지도 도덕화되지도 초월적 자기기만에 빠지지도 종교성을 상실하지도 않고, 세상의 실제적 변화의 원리로 작용하는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성과 믿음 안에서 그 영감(靈感)을 은혜로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종교개혁은 곧 종교 회복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 역사와 사회는 이러한 종교회복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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