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메시지, 카이사르냐 그리스도냐

- 누가복음 2:1~20 -

 

가이사 아구스도

 

“이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명을 내려 호적 하라 하였다.”

 

「마태복음」(2:1)은 헤롯의 시대로 시작되고 「누가복음」은 아우구스투스의 시대로 시작된다.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아래로 이어진 유대인의 족보를 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제자인 누가는 아브라함을 거슬러 아담까지 족보를 거꾸로 끌어 올려 창조주 하나님까지로 소급한다.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주제인 세계비전적 복음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거지만 약간의 세계사 공부를 해보자. 이 공부의 목적은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이 이 인간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하는 점을 짚어보려는 것이다.

 

가이사 아구스도(IMPERATOR·CÆSAR·DIVI·FILIVS·AVGVSTVS, 기원전 63~서기14)는 ‘존엄한 자 카이사르’라는 뜻이다. 가이사는 로마의 군인정치가 카이사르 장군(Gaius Iulius Caesar, 기원전 100~44) 가문의 성(family name)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나오는 그의 영어식 이름은 줄리어스 시이저다. 이 사람의 이름이 나중에 황제를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된다. 러시아의 ‘짜아르’, 독일의 ‘카이저’가 다 카이사르(케사르)의 음역이다. 오늘날까지 유럽의 나라들이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삼색기를 쓴다든가, 가령 미국처럼 국가 문장에 쌍두 독수리가 들어가는 등등의 기원이 다 이 사람 카이사르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 가문의 고유한 명칭, 한 개인의 고유명사가 ‘세계의 지배자’ ‘천하의 황제’를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되었을까?

 

로마는 본래 귀족공화정 체제의 국가였다. 원로원이라는 대의 입법기구가 있고 호민관(집정관)이라는 선출직 행정가가 있어 국가를 이원화해서 다스렸다. 그러다 국가가 팽창함에 따라 군인들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는데 그 최고 정점에 이른 인물이 줄리어스 시저였다.

 

세계의 민주주의 진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나라를 꼽으라면 누구나 프랑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1789년 세계최초의 시민민주주의 혁명으로 부르봉 전제 왕권의 마지막 황제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냈다. 관성에 의해 태어난 그대로가 태초부터 이어져왔으리라고 생각하는 게 인간 역사의 비극이지만, 이것이 세계사 최초의 민주주의 시민혁명이었다. 민주주의, 시민 개개인이 최고의 입법기관 곧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황제와 왕으로 상징되는 소수기득권 세력의 영구집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의 자리가 합법을 넘어 신성불가침적으로 영구 보장된다는 것은 기득권 귀족들의 권리도 그와 같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누구는 귀족 금수저로 누구는 노예 고용살이 흙수저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정치는 물론 사회 문화 철학 예술 더 나가 교회 성경 복음 설교까지 모든 인간의 활동이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연대와 협력과 부역이 된다. 그러므로 비록 루이 16세가 자물쇠와 열쇠를 만드는 소박한 취미를 가졌고, 마리앙뜨와네뜨를 비롯한 황후의 측근들(문고리와 십상시 수석 실장 위원장 등) 민간인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에 대해서 흰 눈과 같이 결백한(결재만 해주고 써 준대로 읊어댄) 벌거벗은 임금님일지라도, 이 황제를 단두대로 보냈다는 것은 인류역사상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대사건인 것이다. 왕은 그리스도가 아니니 한번 죽으면 부활할 염려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도시들은 ‘민회(agora, ekklesia, apella, comitia)’라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로마도 그 이상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타격을 가한 사람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Magnus 기원전 356~323)이다. 정복자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자 그리스 헬레니즘문명의 수호자로서 인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이 문명을 전파했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간다라 미술 같은 문명 접촉의 영향으로 불국사의 석굴암에 까지 그의 정복사업과 헬레니즘의 그늘이 드리워져있으니, 얼마나 신비롭고도 무서운 일인가. 이 알렉산더가 정복왕이 됨으로써 세계의 지배자로서의 황제, 그러한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제국, 그러한 제국의 기틀과 규범으로서의 세계가 완성되게 된다.

 

마치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를 지킨답시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정복전쟁으로 유럽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아넣었듯이, 황제를 죽인다고 황제가 되고자하는 인간의 야망까지 죽일 수는 없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의 무덤은 큰 바위가 무덤을 누르고 있도록 해놓았다고 한다. 다시는 이러한 독재자가 무덤에서 부활하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민주주의의 의지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독재자가 다시 나오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각성이다. 독재가 부활하는 모판은 시민들의 망각, 둔감, 정치가들과 기득권의 선전선동에 의해 유행병처럼 한 인간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그에게 기대하는데 있다.

 

줄리어스 시저가 정복전쟁으로 인기가 치솟고 세력이 커지니까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게 된다.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려는 공화파와 카이사르를 추종하는 제정파가 대립하게 되는데 카이사르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황제가 되려는 야심이 조금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한편, 선전전과 협박을 통해 원로원을 장악하며 황제로 가는 길을 닦아간다. 결국 공화파들은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음을 깨닫고 그를 암살하게 된다. 카이사르가 원로원에서 암살당할 때 남겼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브루투스, 너마저도…” 그러나 사실 역사는 그 말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줘야 마땅할 것이다. “카이사르 너마저도” 라고.

 

 

 

카이사르가 살해된 뒤 공화파와 제정파 간의 내전이 벌어지고 그 승리는 막강한 군벌을 형성한 제정파에게로 돌아간다. 제정파의 3명의 우두머리가 임시로 권력을 삼분하는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되는데 거기서 최종 승리하여 로마의 제1대 황제가 된 인물이 가이사 아구스도다. 가이사 아구스도(본명은 옥타비아누스)는 본래 카이사르의 여동생의 외손자로 아들이 없는 카이사르의 양자 자격으로 카이사르 가문의 상속자가 된다. 아구스도는 레피두스를 실각시키고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안토니우스를 악티움 해전에서 물리침으로써 삼두정치를 끝내고 원로원에 의해 독재권을 부여 받는다. 이때 원로원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 아우구스투스(AVGVSTVS)다. 존엄한 자. 그 누구도 그의 존엄을 범접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기를 프린켑스(Princeps)라 불렀는데 그 뜻은 제1번 시민이라는 의미다. 원로원에서 제1번으로 발언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죽자 원로원은 그를 신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로마는 지상 유일의 신의 아들 곧 살아있는 신으로써 신성불가침의 프린켑스가 다스리는 제정 귀족사회가 된다. 그리고 이 의미는 프랑스대혁명으로 전제왕권과 귀족 기득권이 무너질 때까지 세계의 지배원리가 된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은 곧 모든 독재 권력과 영구 세습집권의 기득권이 하나님으로부터 합법적으로 부여되었고 따라서 이러한 체제에 대한 거부 및 반대는 신에 대한 반항으로 처벌된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호적

 

단독 지배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독제체제가 안정되자 천하에 호적을 명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이 사단의 충동질로 인구조사를 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다.(「역대상」 21) 왜 하나님은 인구센서스를 싫어하셨을까? 왜 성서의 기록자는 다윗의 인구조사를 사단의 충동질이라고 규정했을까? 이 기록은 하나님이 인구 조사를 싫어하셨다는 이야기일까, 민중이 싫어했다는 이야기일까? 아우구스투스의 호적 명령은 단순한 인구조사가 아니라 자기 본적지에 가서 등록을 하라는 특별한 명령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의심자들은 호적이란 거주지 등록이면 되는 것이지 본적지에 가서 등록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 기록을 거짓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시리아 총독 구레뇨의 호적의 역사적 연대를 들어서 복음서 전체의 신뢰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우선 구레뇨의 호적에 대해. 구레뇨가 아구스도의 명으로 시행한 호적조사는 첫 번째 한 것이라는 누가의 설명이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구레뇨의 인구조사는 단 한번 나타나 있고 그 연대가 「누가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의 저서Antiquities에서 AD 6년에 인구조사가 시행되었다고 기록했다. 6년이면 이미 예수가 태어나신 이후로 누가의 기록에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는 구레뇨가 두 차례 시리아 총독을 역임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구레뇨는 두 번의 재임 기간중 각각 호적조사를 실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누가가 굳이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 됐을 때 첫번 한 호적이라는 언급의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의문의 표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왜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의구심들이 끝없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의 부재에 있다. 복음서 이외 일반 역사 기록에 예수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왜일까? 메시아 즉 인류 역사의 위대한 인물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이 개입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은 대개 어디에서 나오는가? 위대한 가문. 왕가의 혈통. 정복자. 국가를 세운 개창자들이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역사는 그런 승리자들의 역사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이사야 53:1~8)

 

만일 당대 로마의 귀족 집단에 속한 지식인이 「누가복음」을 읽었다면 유대 지배 계급에서조차 인정하지 않는 예수라는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것이 예수에 대한 역사의 직접적 언급이 현저히 부족한 이유다. 메시아(구원자)라 불릴만한 자는 이런 보잘 것 없는 출신과 형상을 지닌 사람이어선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의 인식 속에는 인간의 삶속의 보편적이고 거대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음모가 들어있다. 다름 아닌 메시아(역사의 주인공)는 황제 영웅 권력자 귀족 엘리트일 것이고 그래야 마땅하다는 편견이자 착각이다. 이것은 평범한 자, 노동하는 자, 희생하는 자, 고통 받는 자에 대한 멸시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거짓 믿음이다.

 

여러분이 가끔 어떤 영화를 보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주인공이 결국 모두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부자나 지식인 권력자는 항상 배덕한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 속의 신화일 뿐이다. 현실은 무수한 과묵하고 근로하는 영웅들과 희생자들에 의해 전진해가고 구원 되는 것이지만, 그들의 모든 노고와 노력은 소수의 권력자들과 그들에게 결합된 약삭빠른 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언젠간 이 침묵하는 구원자들이 그들의 말을 할 때가 오리라는 것이 역사의 발전 방향이었고 민주주의가 걸어온 과정이었다.

 

 

 

 

지금 11월에 시작된 촛불혁명이 성공하고 훗날 이 역사를 기념한다고 할 때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질까? 백남기 농민의 동상이 세워질까? 사람들은 박정희의 동상이 세워지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세월호의 학생들이나 백남기 농민의 기념물이 건립된다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슨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라고 말이다. 예수의 초기 생애에 대한 현저한 기초자료의 부족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몰이해(은폐)와 가난한 자에 대한 거부(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 역사성을 잃어버리고 엉뚱하게도 신비화 되고 말았다. 신비화됨으로써 다시 부자와 권력자들을 보호해주는 신으로까지 왜곡되게 된 것이다.

 

호적 문제로 돌아가자. 왜 거주지에서 등록해도 될 것을 본적지로 돌아가 등록하도록 했을까. 이는 로마 제국이 표면적으로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내세우고 있지만 심층에는 공고한 감시와 통제의 혹독하고 잔인한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이 호적 방식은 세금의 확보 뿐 아니라 부랑하는 난민들에 대한 정보와 통제를 확립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벌어지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그것에 대한 각국 정보기관들의 정보수집과 난민통제 정책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자고로 제국들이 해체 붕괴하는 데에는 난민발생 곧 세금을 내지 않고 출신이 모호한 유랑민들의 대규모 이동이 원동력이 되었다. 떠돌이들이 결집하고 거기에 불순세력과 지방 세력들이 결합되면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구심이 형성된다. 이 구심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회오리바람처럼 이동하면서 세상을 휩쓸게 되는 것이다. 서유럽은 흉노라 불리는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 집단이나 몽골족의 서진으로 이에 쫓긴 훈족(타타르)이 서진하면서 서유럽까지 휩쓸었던 무서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로마 역시 이러한 동방 타타르계 용병집단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 사람들을 지옥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으로 ‘타르타르’라 불렀다. 아우구스투스의 천하 호적 명령은 그런 배경을 가졌고 이런 지상의 왕 아우구스투스 통치의 배경이 진리의 왕 그리스도 탄생의 배경이자 대립의 의미이다.

 

은마(銀馬)는 오지 않는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산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서으로 가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뜰에서 울 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다들 누군가(어느 때, 무엇인가) 오기를 기다렸다. 매일 눈을 뜨면 보이는 건 논과 밭과 산이었다. 산 사이로 신작로가 나있고 거기서 버스를 타면 시내(용인)로 갈 수 있었다. 용인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수원에 갈 수 있고 수원에서 기차를 타면 서울에 간다. 나는 유년시절 서울에 서너 번 가본 기억이 나는데 구체적인 풍경은 생각나지 않고 버스에 시달린 것과 연탄재 냄새만 기억난다. 우리 외가는 서울의 변두리였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시골보다도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조금 자라자 곧 서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청소년기에 벌써 미국이나 독일에 갈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오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를 누군가를 어느 때를 기다린다. 아빠. 엄마. 오빠. 동생. 남편. 아들. 딸. 손자. 무엇을, 어떤 때를 기다렸을까? 그 기다림과 기대와 소망은 각기 다르고 다양하겠지만 인간다운 행복한 삶, 샬롬,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미가 4:4」)처럼 자기의 생활 안에서 근심 걱정에 쫓김 없는 편안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뭉뚱그려 ‘구원(救援)’이라고 해보자.

 

나의 어린 시절이 그런 구원이 풍족한 것이었다면 나는 서울을 동경하지도 미국과 유럽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동경한 그런 곳에는 그런 구원이 풍성해서 우리는 거기 가서 그것을 얻어다가 구원이 부족한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동요와 같이 서울 가신 오빠는 오지 않고 이내 우리의 구원의 꿈과 기대도 사라져 버린다. 한때는 서울의 최고 아파트이기도 했던 ‘은마(銀馬)’는 재미작가 안정효의 소설에 나오는 전설 속 구원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은마아파트는 있을지언정 은마는 없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신화의 시대가 끝나면 전설의 시대가 온다. 신화의 주인공과 전설의 주인공은 다르다. 신화 속의 주인공은 영웅이고 승리자이고 위대한 권력자이다. 그러나 신화의 시대가 지나고 그 신화에 도전하는 또 다른 영웅은 반란자 배반자 패배자의 이름을 얻는다. 우리 민족에게는 오랜 세월동안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애기 장수의 전설이 있었다. 그의 날개가 자라나 날아다니게 되면 마침내 세상을 뒤집어엎을 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애기장수는 그때가 이르기 전에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같이 날개가 잘려서 죽게 된다. 그런데 신화학적으로 이러한 전설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지배세력에게 짓눌린 민중들이 만들어낸 슬픈 영웅이 애기장수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의 창작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일부러 지어내 퍼트린 실패한 메시아가 애기장수라는 설이다. 여러분은 이 두 학설 중 어느 것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되는가?

 

아무튼. 신화의 시대가 가고 애기 장수도 죽고 전설도 지워지고 우리들은 자기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곧 내 스스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자기 스스로가 자기에게 오빠이고 은마이고 메시아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이 말은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우리의 인식이) 자각되고 각성된 의미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주체적 자립(自立)을 이루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그 누구(지도자, 권력자, 부모님, 부부간, 친구간, 선생님, 목사님)의, 어차피 부분적이고 부차적인 것들에게서 전체적 구원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 안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전체적 구원을 기대하고 발견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은 저 멀고 높은 서울과 워싱턴과 뉴욕과 파리나 베를린 혹은 모스크바를 바라는 게 아니다.

 

예루살렘이나 대형교회나 명망 있는 종교지도자를 사모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보잘 것 없는(이게 진짜 우리들 자신이다!) 내 속에서, 우리들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보다 근본적이고 인격적인 전체적으로 완성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사랑(새로운 관점의 관심)으로. 서로 새로운 관점의 관심으로 자각된 사랑을 함으로써 우리는 무관심하고 비정한 이 세상과 맞서는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 사랑의 발견 속에서 우리는 모든 지상의 가짜 메시아들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게 된다. 그것을 오직 하나님만 바란다고 하는 것이다.

 

이걸 일깨워주려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개인이 구원을 받음과 동시에 그 개인이 공적 그리스도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나약하고 취약한 죄인의 자의식으로 뭔가 눈에 보이는 가짜 메시아들에 의지하고 기대야만했던 옛 자아의 상태를 뛰어넘어 하나의 독립적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가 그리스도적 인간, 신의 아들, 신적 인류로 탈바꿈하는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도 이렇게 신자에게 주어진 권능과 책임에 도달하지 못하여 여전히 그리스도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미지의 메시아로 상정해 놓고 자기의 모든 삶을 그 추상과 관념에 맡겨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삶의 태도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메시아는 본래 없는 공허한 것이거나 거짓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마치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 것으로서 일체의 인간적 노력이나 행위가 없이 무상으로 받는다는 교리에만 입각해 있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노고와 희생을 거저먹겠다는 인민의 아편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교를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저절로 나온다. 어리석고 깨어나지 않은 사람, 어린아이 같아서 잘 속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의심도 회의도 결과도 헤아리지 못하는 민중을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항상 이런 아편 같은 세상에 휩쓸린 사람들을 흔들어 깨움으로써 그 지배자들을 두렵게 한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구약성서는 아들들에 대한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의 이야기다. 선택하고 유기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꼭 그렇게만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의 기록이란 동시통역이 아니라 추후기록이기 때문이다. 선택받고 보니 이게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얘기. 그러나 당시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 당사자들의 선택이 중요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땅을 갈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하와는 아들을 낳는다. 가인의 이름은 ‘내가 하나님과 함께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를 지녔다. 구원자를 낳았다는 기쁨의 표현이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통해 에덴동산으로 복귀할 기대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에덴에서 쫓아내실 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창세기 3:15). 그러나 가인은 시기심 때문에 동생을 죽임으로써 선택에서 탈락한다. ‘아벨(헤벨, 공허의 뜻)’은 무고한 죽음, 폭력에 의한 희생자의 상징이다. 그에게도 본래 어떤 이름이 있었겠지만 성경은 그를 그냥 ‘공허(생기의 뜻도 있음)’라 불렀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존재를 무위의 공허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는 가장 악한 폭력이 된다. 하나님은 그를 대신해 곧 이 공허의 무고한 희생자에게서 이어 나온 아들 ‘셋(대신 줌의 뜻)’을 통해 계보를 잇게 하신다.(창세기 4:25) 우리 모두(셋)는 공허로 돌아간 누군가(희생)의 대신으로 주어진 생명이다.

 

노아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세기 5:29)는 의미다. 역시 에덴동산의 회복을 염원하는 인간 구원의 갈망과 기대가 담긴 이름이다. 그러나 노아는 위로는커녕 홍수로 세상이 깡그리 심판받는 것을 보았다. 훗날 홍수 후에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드는 추태를 보인다(창세기 9). 이것은 뭘까? 왜 노아는 술에 취했으며 벌거벗었을까? 왜 그는 자신을 비웃은 아들 함을 저주했을까? 왜 자기의 벗은 몸을 보지 않고 감싸준 셈과 야벳을 축복했을까? 이것은 노아의 술 취한 절망이다. 술에 취해 그는 돌아갈 가망이 없는 가짜 낙원을 만들고 스스로 벌거벗었다. 함은 그것을 비웃었다. 무엇을? 낙원 복귀의 꿈을. 이미 낙원에 돌아갈 꿈을 포기해버린, 그 절망(갈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는 인류가 나타난 것이다. 자기 아들일지라도 노아가 그 아들과 아들의 아들(가나안) 곧 그 후손까지 저주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메시아(에덴 복귀)를 기다리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 말을 현대적으로 바꾸면 곧 스스로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메시아) 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

 

메시아를 포기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주셨다. 두 가지다. 땅과 자손. 이삭, 야곱, 그의 열두 아들.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사백년을 살았다. 땅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때가 이르러 모세가 나타났다. 모세는 정치적 지도자이자 시대의 메시아적 인물이었다. 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유아학살에서 살아남았다. 그 이름은 ‘물에서 건졌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이끌고 출애굽(Exodus, 길을 떠난다는 뜻)을 결행했다.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 건설할 하나님 나라의 반석인 토라(תּוֹרָה, 율법)를 선포했다. 율법은 법률이지만 동시에 지혜의 가르침이다. 가르침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지혜. 그 원리에 대한 이해력. 그러한 이해의 충만함이 만드는 국가제도의 종교적 서정성. 그것이 가나안의 자연과 어우러진 하나님 나라의 이상향이었다. 모든 지파와 가문이 땅을 가지고 있고 그 경계와 원칙을 지키며 각기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 그늘 아래서 평화롭고 안전한 삶. 그들이 아직 히브리 노예였을 때 애굽에서 꿈꾸던 천국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사사들의 시대를 거쳐 사울이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첫왕이 된다. 그는 세속 왕의 전형적 실패와 패착을 다 보여주고 망했다. 그의 뒤를 이어 다윗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이 무렵 사무엘과 같은 예언자가 등장한다.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삼두체제는 멸망 때 까지 이어지는데 마지막엔 이 세 가지가 다 타락하고 극소수의 예언자들만이 실패한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게 된다. 이 무렵 메시아의 단절이자 진정한 메시아 도래의 꿈이 생성된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유수 시대에 이스라엘은 고난, 고통, 박해의 나그네 생활 곧 세상의 최하층으로 살면서 ‘도대체 왜?’라는 강렬한 종교적 의문의 해답을 갈구했다. 그들은 조상들의 죄와 실패의 역사를 기록하고 자녀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면서 메시아의 도래를 갈망했다.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의 도래를 이렇게 예언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사야 61:1~3)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의미했는데, 그들이 갈망한 메시아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는 참된 왕 제사장 예언자이어야 했다. 그것은 오랜 인간의 역사와 종교적 경험 그리고 성서적 예언의 연구를 통해서 나온 결론이었다. 왕만으로도 아니고 제사장만으로도 아니고 예언자만으로도 아니더라는 것. 자신들과 같은 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려면, 어떤 세상이 와야 하는가? 세상의 왕들을 보니, 세상의 제사장들을 보니, 세상의 예언자들을 보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럼 누구이어야 하는가? 이 셋이 하나이어야 한다. 이 셋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참된 그리스도의 사회를 건설하려면 이 세 가지가 기능적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정치적 지도자, 영적 중재자, 미래의 지시자. 그러나 유대인들이 이런 메시아를 참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기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다윗 같은 메시아를, 어떤 사람은 엘리야 같은, 어떤 사람은 멜기세덱 같은, 그런데 누가 왔는가?

 

 

 

베들레헴 말구유에 아기 예수가 오셨다. 나사렛 지방 시골 목수의 아들이 나타났다. 가이사 아구스도와 유대왕 헤롯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시대에, 폭군들과 부패한 종교지도자들과 끊어진 예언자의 시대에, 누가 왔나? 예수가 오셨다. 오셔서 예수는 무엇을 했는가? 폭력과 지배의 법, 율법의 세계로부터 사랑과 이타의 법, 비폭력적 사랑의 세계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그는 우선 가르치는 예언자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복잡하고 고상한 랍비들과 달랐다. 단순하고 지혜로운 말씀들. 명쾌한 자유의 선언. 거듭남. 세례. 그는 세상 권력자들의 지배에 얽매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바라보라. 믿음이라는 영적 실제적 본질적 변화의 세계, 믿음이 있어야지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셨다.

 

이것을 깨우쳐 이 세상 지배에 히브리 노예처럼 예속된 자기를 자각하고, 거기에 직면해 십자가를 지듯 그것을 짊어지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면, 비로소 열리고 보이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성전. 새로운 예배. 새로운 신의 나라. 그것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인식상의 깨우침과 생각하는 방식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가운데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깨우친 사람은 자기의 그리스도적 삶 곧 메시아적이고 공적인 삶의 소명을 깨닫고 이 세상에 비참여, 비가담, 비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러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나그네 떠돌이 풀뿌리 민중이란 본래부터 언제나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인데 자각치 못했을 뿐이었다. 자각하면 가난한 자도 메시아로 각성되어 자유로워진 지상의 왕인 것이었다.

 

예수님은 성전의 제사가 아니라 이런 왕적인 삶을 진짜 종교라 했다. 산제사로 자기를 희생으로 드리는 것. 세상 지배자들처럼 자기의 권세와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는 참 제사장으로서 성전을 거부하셨다. 성전을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셨고 그 모든 화려한 건축물이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 선언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리라. 하나님은 이런 예배자 곧 삶과 정신의 예배자를 원하신다고 하셨다(요한복음 4:24). 그는 이러한 참 제사장으로서 세상과 하나님 간의 중재자로 오신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 중재는 어떤 방식이었는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인간이 동료 인간을 자기와 같이 대접하는 예절. 사랑이 곧 새로운 계명(율법)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 그 사랑으로써 우리도 우리가 받고 배운 조건 없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민족, 전통, 율법, 그런 관념이나 의식도 필요 없이. 편견, 불안, 의심, 경계, 이런 분리와 분열도 필요 없이. 예수님은 참된 미래의 예언자로서 자신이 보이신 그 사랑으로 사랑 없는 세상을 구원하라고 우리의 미래를 제시하셨다. 오직 서로 사랑, 오직 서로 존경, 오직 서로 대접, 서로 같이 살아가는 아름다움 단순함 착함으로.

 

가이사냐 그리스도냐

 

그리스도는 너희 안에(우리의 사랑 속에) 자기가 계시고 하나님도 계신다고 하셨다. 세상에 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러 내가 왔다고 하셨다. 내가 곧 하나님 아들이고 메시아라고.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내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인 내가. 배우지도 못하고 유명하지도 않고 중앙무대에서 활약하지도 않은 내가. 예언자에서 제사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을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왕국의 왕, 진리의 왕으로 선언하셨다. 아우구스투스와 헤롯과 빌라도와 안나스와 가야바의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다. 니가 무슨 예언자냐? 니가 무슨 제사장이냐? 니가 무슨 왕이냐? 헛소리! 미쳤다! 신성모독! 바알세불이 지폈다!

 

그러나 그가 표적(sign)을 보이시자 사람들이 몰렸다.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상의 왕과 지상의 제사장과 지상의 예언자들이 합작하여 참된 왕이자 제사장이자 예언자인 그를 십자가에 죽였다. 강도와 같이 반란자와 같이, 저주받은 자의 형상으로 죽였다. 그러나 그를 죽였어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을 근절시키진 못했다. 그가 없어도 근절 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깨닫고 경험한 것을 고백했고 증언했고 전파했다. 무엇을?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 복음을. 이제 난 알았다. 무엇이 구원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가 내 안에 있어 나는 죽고 그가 살았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왕이요, 제사장이요, 예언자인 그. 그리고 거듭나 새롭게 태어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

 

오빠는 없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신화는 끝났다. 그러나 전설이 아니라 현실이 왔다. 차원과 인식과 관점이 달라진 현실. 내가 구원자다. 내가 예수다.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기쁜 소식을.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모든 인류에게 평화가 되는 소식과 그 방식을. 그것은 사랑의 힘으로 모든 폭력을 이기는 것이다. 내 안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공동체 속에서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내게서 세상을 봄으로써 가능해진다. 나는 세상의 거울 진리의 거울이다. 내가 세상의 대표자이므로 나의 죄와 슬픔과 미움과 원망과 약함과 그런 것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안에서 내가 얼마나 고귀하고 유일한 가능함을 지닌 존재인지를 자각하니 내가 곧 나에게 왕이고 제사장이고 예언자로서 나의 모든 인생이 새로워진다.

 

이 두 가지. 1)정직한 인식과 직면. 2)그것을 넘어가는 차원 다른 성숙과 지혜. 지혜는 도덕이 아니지만 도덕보다 현명하다. 지혜는 사랑인데 진리에 대한 사랑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넘어 타자를 환대하는 그리스도적 사랑을 깨치고 배운 사람이다. 사려깊고 온정이 있고 따스한 연민과 냉철함, 공감과 슬픔과 카타르시스를 가진 사람. 종교적 서정성. 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식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 더 이상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게 된다.

 

지금 세상은 가이사 아구스도, 헤롯, 빌라도, 가야바와 안나스, 박근혜 김기춘 우병우 최순실, 김삼환 조용기 오정현의 세상이 아닌가. 이 세상에 우리의 그리스도는 어디 계신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에베소서 3:17).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태어났는가? 얼마나 자라고 계신가? 옹알이 수준? 초딩? 중딩? 고딩? 대학생? 청년, 중년, 노년? 왕(정치적 지도자)? 제사장(종교가, 예술가)? 예언자(비평가, 철학자, 사상가)? 바울은 말한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브리서 5:12).

 

아우구스투스의 천하의 변방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하나님의 아들 참된 진리의 왕 예수가 아기로 오셨다. 아직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주의 부모와 천사들의 초대를 받은 들판의 이름 없는 목자들뿐이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

 

누가 이 의미를 알겠는가! 이제 곧 그리스도께서 무럭무럭 자라나 갈릴리에서 부터 복음을 전파하시고 유대와 사마리아를 누비시며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실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오시기를! 자신의 인격적 결단으로 자기 안에 메시아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우리 모두 새해에는 놀라운 변화와 성숙이 임하기를! 우리 교회와 사회와 나라도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공의로운 세상으로 진전되어 가기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복음이 도래하는 샬롬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오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종교개혁은 종교회복이다

- 종교개혁 499주년을 기념함 -

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자유인교회엔 네 가지 기념주일이 있다. 창립기념주일, 부활기념주일, 종교개혁기념주일, 성탄기념주일이다. 특별한 행사를 따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기념(記念)’이라 이름 붙인 말 그대로 오래도록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 간직한다는 뜻이 있다. 네 기념일이 다 의미가 깊지만 개혁주의 목사로서 그중에서도 가장 기념할 주일을 꼽으라면 나는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기념주일을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하면, 종교개혁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들 프로테스탄트 교회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선행되는 세 가지 질문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곧 1)종교란 무엇인가? 2)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 3)종교개혁의 결과는 무엇인가?

 

첫 번째 종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해볼 수가 있겠다.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반대급부다. 그 무엇인가란 지금 지배적인 현실, 조건, 상태 같은 것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종교란 기본적으로 반현실적인 것,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인 것이다. 왜 그러면 이러한 종교라는 반대급부가 필요할까? 그것은 이 세상 현실이 사람이 존재하고 생존을 유지해 나가기에 합당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는 유한하고, 시간은 종말론적이며, 환경은 잔혹하다. 종교는 이러한 인간의 조건, 유한성, 가혹한 노동, 죄와 악, 타락과 부패, 폭력과 지배, 병과 죽음, 곧 모든 부자유에 대한 반대급부(자유)로 존재하고 반대급부로 존재함으로써만 본질적 의미를 갖는다.

 

그 반대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예컨대 도피이거나 저항이거나 초월이거나 수용이거나. 그러나 단 한 가지 방식만은 예외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타협. 한편 되기. 현실의 반대급부로서만 의미를 갖는 종교가 현실과 타협하거나 한편이 된다는 것은 존재자체의 의의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턴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나 존재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없다. 그런 것은 오히려 더욱 더 악착같이 존재한다. 그럴 때 그러한 종교의 반종교적 현실 속에서 우리는 ‘2)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만 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발견한다. 그리고 2)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을 때 ‘3)종교개혁의 결과는 무엇인가?’의 그림도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종교개혁 전야에 유럽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교황권력을 필두로 한 지상의 모든 권력은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모든 지상의 권력에 대한 종교의 스탠스에 대해 철저히 반대로 존재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기엔 반대급부라고 할 만한 종교가 없었다. 세상 권세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매개로 혹세무민의 전횡을 일삼았다.(권력은 멀쩡한 사람들을 얼마나 일상적인 바보로 만드는가!) 무지와 미신, 사악함과 부패, 수탈과 탄압, 성직매매, 가렴주구, 우상숭배, 사단적 갑질들이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었다. 민중들은 이런 세상 돌아가는 사태가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누구라 지목할 수도 없는 권력들이 혼돈스럽게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때, 종교개혁의 선각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현실의 반대급부로서 개혁의 불을 질렀다. 그들의 도구는 설교(성서)였다. 말씀을 통한 성령과 불의 세례를 통과한 민중은 오랜 무지와 혼동의 잠에서 깨어났다. 그 결과 개혁운동은 신학적이고 영적인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나중엔 중세 로마카톨릭 체제와 봉건 사회를 붕괴시키고 민족주의와 휴머니즘,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제도적 사상적 예술적 결과로 진전되어 갔다. 곧 종교개혁의 여파로 발생한 정치 사회 제도 사상 예술의 본질이 무엇이냐? 현실(죄와 악과 그로인한 모든 부자유)에 대한 반대급부(자유선언)였던 것이다. 이것이 종교라는 영성의 역동하는 흐름이다.

 

 

<John Calvin by HolbeinWikipedia>


 

종교개혁이 던지는 질문

 

오늘은 499주년 종교개혁기념주일이다.(기념일은 10월 31일) 지난해 마르틴 루터에 대해서 설교했기 때문에 올해는 존 캘빈에 대해 설교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가롭게 역사를 탐방하며 낭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주역인 인물들에 대해 추적해 보는 것은 흥미롭고도 중요한 일이다. 개인사나 가족사나 세계사나 실재했던 사실들을 아주 망각해 버린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작은 애석함에 매달려있을 여유가 없다.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의 역사 속에 마치 종교개혁 전야와도 같은 사악함과 부조리와 부패와 혼동이 대한민국 전체에 만연돼 있기 때문이다. 언제는 기득권과 권력이 깨끗하고 명백하고 정의로웠던 때가 있었던가? 문제는 종교다. 지금 가장 중대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현실의 반대급부로서 존재하는 종교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그것이 도피든 저항이든 초월이든 대안적으로 기댈만한 종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든다.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저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난감할 것이다. 엊그제 페이스 북에는 외국인 남편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이 자기 남편들에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설명하는 데 대한 난감함에 대한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남편들이 자기들의 설명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가 마침내 백일하에 드러나고 가련한 금치산자 대통령이 초췌한 모습으로 2분짜리 녹화 사과를 한 이후 한국교회의 대표를 자처하는 한기총과 한교연은 곧바로 개헌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일종의 물타기 성동격서의 방식으로 대통령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여당의 일각에서도 대통령 퇴진주장이 나오고 있는 판국에 왜 하필 교계의 대표자라는 위인들이 대통령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처음 던졌던 질문을 조금 다르게 다시 던져보자. 1)그들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2)지금 종교개혁은 왜 필요한가? 3)종교개혁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아마 그들도 오늘 종교개혁을 기념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기념해야할 종교개혁은 이러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기념이 아니라면 그것을 기념해야할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두 가지 방식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좋은 방식이고 하나는 나쁜 방식이라고 했다. 좋은 방식은 (히브리서 13:7~9)의 방식이고 나쁜 방식은 (마태복음 23:29~33)의 방식이다. 각각 말씀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서 13:7~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복음 23:29~33)

 

첫 번째는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왜 일어났나 하는 그 연원을 추적하고 그 과정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의 현재를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모든 역사의 본질을 지우고 엉뚱한 기념식과 엉뚱한 기념사업으로 그 본질이 망각되도록 대체해 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는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의 회복을, 두 번째는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의 왜곡을 나타낸다.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 방식의 종교개혁 내지는 신앙적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그리고 우리시대의 교회를 대표한다는 자들은 대개 두 번째 그룹에 속해있고 나머지는 침묵 속에 잠들어있고 첫 번째 태도는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로써 종교개혁 499주년을 기념하는 우리가 이제부터 진실로 기념하고 간직하고 전개해 나가야할 종교개혁의 모습이 어떠해야할 것인지 그림이 명백하고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필요성

 

오늘날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필요는 무엇인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봉화를 들어올리기 전과 같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기독교인들이 참으로 무지하고 뒤떨어져 있으며 문맹(文盲)들이기 때문이다. 문맹이라는 표현은 역시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게 주장될 수 있다. 첫째는 문학적이고 둘째는 종합적 의미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제대로(전체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전체적인 신앙생활이 왜곡되고 있는 것을 읽어내지 못한다. 이 두 가지 의미의 문맹이 만들어 내는 현실이 도덕적 상태의 현저한 하락이다. 과거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든가 성실하고 진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 기독교인들은 스스로가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자긍심이 뭔지도 잊어버리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우리들 자신의 종교개혁(믿음)의 제1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믿었을 때 그 사실이 가지는 첫 번째 의미는 그것이 우리들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기로부터 전진해 온 것이다. 그러한 영적 인격적 도덕적 새 출발을 가능케 했던 동력은 무엇이었던가? 복음의 말씀(성서)이었다. 특별히 그 복음의 말씀이란 1세기에 지상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복음서󰡕를 포함한 󰡔신약성서󰡕를 말한다. 이 󰡔신약성서󰡕의 복음의 말씀을 통해 첫째로 이 말씀들에 대해 각성했고 각성되자 그 말씀이 우리의 삶으로 들어왔다. 그러한 변화의 상태는 세상의 세상적 존재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서 누구나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고 자신의 변화를 고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신앙고백이 곧 ‘구원의 확신’이다. 이 구원의 확신이 우리의 진로를 실제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고 그 바꾸어진 진로란 세상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새로운 신앙의 현실이다. 그것이 타협이나 한편 되기만 아니라면 도피이든 수용이든 저항이든 초월이든, 이 공식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리고 이것이 종교개혁이다.

 

루터나 츠빙글리 캘빈 존 낙스 같은 위대한 종교개혁자들 역시 그들의 시대에 세상 현실로부터 신약성서의 믿음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말씀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고 그 자신들이 맨 먼저 그 메시지로 돌아갔다. 그러자 성령이 그들을 사용해 문맹 상태에 놓인 민중들을 각성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지 신약 성서를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설교했을 뿐이다. 그것이 세계(현실)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어디를 향한 진로로 바꾸어 놓았나? 노예해방, 봉건전제의 타파, 절대왕정의 붕괴, 독재의 몰락, 민주주의, 인권, 자유, 평등, 비폭력, 노동조합, 여성해방, 인종차별 철폐와 장애인에 대한 권리, 지방자치, 반전운동, 환경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덕성의 제도화로 인류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도덕성의 제도화가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천국)는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말씀)으로 인한 변화와 그 변화를 각성 시키는 설교(성령의 역사)로 구현되는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도덕성이 제도화되는 세상을 건설하도록 우리를 전진시킨다.

 

재확인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는 필요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기독교인들이 참으로 무지하고 뒤떨어져 있으며 문맹(文盲)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맹의 현 상태와 우리가 여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1)세속화(사두개주의) 2)도덕화(바리새주의) 3)초월주의(혼합주의) 4)종교성 상실의 상태와 순서로 정리해 설명할 수 있다.

 

  1)세속화(사두개주의)

 

교회는 80년대를 정점으로 자본주의 세계화에 편입된 한국사회와 맞물려 지난 30여 년간 급속하게 세속화 되었다. 이른바 ‘오중복음(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과 ‘삼박자(영혼, 물질, 건강) 축복’으로 대표되는 순복음식 번영신학은 십자가의 자기부정이 아니라 반대의 욕망긍정을 정당화 시켰다. 처음엔 이에 대한 신학적 반대와 백안시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되기까지 했지만 결국엔 한국교회 전체가 도리어 순복음에 굴복되는 역전이 벌어졌다. 조용기 목사는 한때 자신을 한국교회라는 골리앗과 싸우는 ‘조다윗’이라 불렀었다. 과연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에 방불할 역전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영적 혼탁이 생겨났다.

 

긍정주의 일변도 신앙의 열매는 확실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지만 그 맛에 취하면 취할수록 세속화는 가속화됐다. 부흥열, 건축열, 대형교회의 출현, 온갖 부패와 금품 스캔들, 권력형 정치목사들의 출현, 교회 안에서 예언이 사라졌다. 담임목사들은 회사의 경영자들이 되었고 부목사들은 직원이 되었다. 경영학, 교회성장학, 상담, 심리, 처세술, 온갖 마인드 컨트롤이 기독교 메시지를 대체했다. 예배에서 설교(성서)의 비중은 줄고 찬양과 기도, 이벤트 등의 비중은 늘어났다. 이러한 세속화의 요소들은 현실긍정과 성공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었고 복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현실의 권세 곧 보수적 세속 기득권과 교회의 정치적 연대가 점점 공고해져갔다. 결국 기득권과 교회의 이해타산은 일체화 되기까지 이르렀다.

 

2)도덕화(바리새주의)

 

도덕화는 세속화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그것은 세속화된 자신들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그들을 반대하는 그룹들 속에서도 나타난다. 도덕화가 내부에서 나타날 때 그것은 무의식적 콤플렉스를 가리는 소도구로 잠시 사용될 뿐이고 그것이 전체 메시지나 메시지가 지시하는 삶의 강조된 내용은 아니다. 흔히 ‘~~해야 한다’로 설교되는 도덕화된 메시지는 세속화된 욕망을 정당화시켜주는 명분으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면 그것은 아예 교회의 세속적 목표달성(예컨대 건축헌금 모금 같은)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세속화를 반대하는 그룹에서의 도덕화 역시 문제를 가진다. 문제란 그들에게 강조되는 것이 다름 아닌 도덕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예배는 지루하고 숨막히는 윤리강론 시간이 되고 신앙생활이란 항상 뭔가 도덕적인 교훈이나 거기에 맞는 삶의 실천을 발견해내어야만 하는 고루한 것이 되고 만다. 그들은 흔히 세상을 어두운 죄에 그늘로 인식하며 그러한 인식을 지닌 자신은 의롭다는 식의 바리새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바리새주의야말로 그 자신에게 어두운 그늘이 되고 자기를 얽어매는 구속복이 되기도 한다.

 

3)초월주의(혼합주의)

 

초월주의라는 명칭은 이들이 스스로를 사두개주의적 세속화와 바리새주의적 도덕화로부터 벗어난 참된 복음을 가졌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기들은 복음의 말씀에 천착한다고 주장한다. 신앙생활에 있어 성서에 대한 해석이나 설교를 대단히 중요시한다. 그 결과 탁월한 복음을 강론하는 설교자 목사가 각광을 받고 그를 중심으로 이른바 마니아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이들을 초월주의라 명명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복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느라 현실로부터 말그대로 초월(도약)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발을 땅에 붙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처럼 복음을 이야기한다. 자기들이 말하는 그 복음을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이 아닌 거라는 배제와 배타가 중요한 결집의 논리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들을 다시 혼합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그들 역시 세속화를 피할 수 없고 도덕화된 자기율법 안에서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바른 복음을 가진 매우 특별한 부류라고 믿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고 착각 같은 것일 뿐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말 자체가 거짓된 것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4)종교성의 실종

 

종교성의 실종은 선행된 세 가지의 결과로 나타난다. 선행한 세 가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가진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을 정통적이라 불리는 교회 안에서 혹은 교의 안에서 발견할 수 없고 자주 그것을 벗어난 지점에서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그리스도인라고 할 수 있을지 회의를 느낀다. 그는 어떤 때는 자신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여기기도 하고 혹은 그런 것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종교적으로 매우 성숙해졌다고 느끼기기도 하고 동시에 신앙을 상실했다고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Marein Luther by Lucas Cranach, Wikipedia>


 

종교개혁은 종교회복이 되어야

 

며칠 전 JTBC뉴스에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이야기가 등장했다. <상실의 시대>의 마지막 장면에는 주인공 청년이 애인과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인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데 주인공은 대답할 말을 잃는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 그는 그렇게 대답한다. 나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는 <상실의 시대>를 누군가 패로디한 <순실의 시대>란 그림을 띄웠다. ‘순실의 시대’란 곧 ‘상실의 시대’인 것이다.

 

세속화, 도덕화, 기만적 자기초월의 과정을 거쳐 우리 기독교는 어느새 종교성을 상실한 상실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우리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시대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무엇보다 기억해야할 것은 종교개혁자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일깨워주었다는 점이다. 참된 1)종교성과 함께 2)경건함을. 1)종교성이란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자기부인의 항상 깨어있는 비상한 정신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알고자하는 마음이다. 존 캘빈은 인간의 제1의 목적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했다. 경건함이란 그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겸손함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성이란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진 경건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상태를 가질 때 우리는 그것을 종교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실은 종교회복이라고 불러야 더 마땅할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물론 <신약성서>를 가지고 싸웠다. 그러나 그들이 신약성서에서 발견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는 단지 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성이며 경건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성과 경건함으로부터 구원의 확신이 나왔고 그 구원의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모든 반종교성 반경건의 세속화, 도덕화, 자기초월, 종교성 상실의 현실과 분명하고 명백하게 싸우게 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직설적으로 교회에 나오라 권면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못한 처신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시대를 살고 있다. 교회에 나오라 권하는 대신 교회에 나오든 안 나오든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인으로(?) 살수(도?)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교회에 나오라고 권해보았자 그들이 교회 와서 배우는 것이 위의 네 가지 상태 중 하나라면 의미가 없다. 혹은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다 말은 한다지만 과연 그 말의 실효성은 어떨까? 아무튼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게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신다고 해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란 절망감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은 우리들 자신이 종교개혁 내지는 종교회복의 필요 앞에 직면하고 있음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는 세속화되지도 도덕화되지도 초월적 자기기만에 빠지지도 종교성을 상실하지도 않고, 세상의 실제적 변화의 원리로 작용하는 현실의 반대급부로서의 종교성과 믿음 안에서 그 영감(靈感)을 은혜로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종교개혁은 곧 종교 회복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 역사와 사회는 이러한 종교회복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여성혐오 시대의 진정한 신랑 찾기

- 마르다 마리아 퍼즐 맞추기 -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언행을 기록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문서이자 경전(經典)이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각 사람의 저자가 자신의 수신자(공동체)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예수의 복음운동의 내력과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과 해설, 곧 설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예수의 언행이지만 자신의 저술 목적(공동체의 현실)에 따라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요리한 측면이 있다. 순서와 세부적인 내용, 그 속에 들어있는 핵심이 약간씩 달라진 이유가 거기 있다. 네 개의 복음서를 다 가진 우리는 이러한 흩어진 이야기들을 통합해볼 필요에 직면한다. 같은 사실(근거, fact)에 대한 제각각의 기록이 전체 복음을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련된 사실들도 그 혼란이 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 사람들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정리가 필요하다. 그들은 복음서에서 각별히 중요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집안이 있다면 마르다와 마리아(그녀들의 오빠(혹은 남동생) 나사로를 포함하여)네 집일 것이다. 이 정리를 통해 그녀들이 누구이며, 예수와 어떤 관계이며, 예수의 복음운동에 있어 그들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복음서에서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나아가 예수의 복음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가늠해 보려고 한다.

 

죄에 자기 몸을 바친 한 여자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누가복음 7:36-50)

 

이 기록의 시간대는 예수님의 초기 사역시기에 해당한다. 이때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몸을 일으키셔 가버나움으로 향하고 계셨다. 유대의 북쪽 변방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신 직후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의 이름은 시몬으로 밝혀져 있다. 바리새인 시몬이 살고 있는 동네에 ‘죄를 지은 여인(죄에 자기 몸을 바친 여인)’이 살았다. 그 죄가 창녀의 업을 의미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는 그 동네의 유명인이었을 것이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도, 어린아이들도 그녀를 ‘죄인’이라 불렀을 것이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동료 인간으로 취급해주지 않았던 그녀가 예수의 복음(아마도 가난한 자에게 선포하신 복음)을 들었다. 어느 날 결심하고 바리새인의 집까지 들어와 예수에게 향유를 부었다. 향유는 혼례와 장례 때 쓰는 기름이다. 그녀가 왜 이런 향유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그녀의 직업이 설명해 준다. 그녀는 그것을 다 쏟아 허비함으로써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신랑을 맞아 신혼을 꾸린 삶과도 같다. 그 기념으로 향유를 부은 것이다. 설명이 필요치 않은 복음의 그림, 천국의 장면이다.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과 마을 사람들은 예수의 선지자됨을 의심하며 속으로 수군댔다. 예수는 그녀에게 당당한 죄 사함을 선포한다. 곧 율법이 정한 정죄를 풀어 그녀를 해방시켜 주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인가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누가복음 8:1-5).

 

막달라(Magdalene)는 갈릴리 호수 서안에 있는 도시다. 북쪽에서 시작된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그 지방 유력한 사람들(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후원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 열 두 제자와 함께 가장 먼저 거명된 인물이 ‘막달라에 사는 마리아’라는 여인이다. 그녀에게 누가는 ‘일곱 귀신이 나간 자’라는 수식을 붙인다. 왜 그랬을까? 마리아는 당시 흔한 여성의 이름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복음운동의 이력을 밝혀줌으로써 그녀가 어떤 마리아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일곱 귀신이 나감으로써 예수의 복음운동에 헌신하게 된 막달라의 마리아다. 일곱 귀신이 나갔다는 말은 그녀의 병이 일곱 가지나 됐다는 의미일 것이다.(누가의 직업은 의사였다)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부유한 집안의 안주인이었으나 도저히 고칠 수 없는 회복불능의 지병을 앓고 있던 마리아. 그녀가 왜 예수께 이토록 헌신적이 됐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함께 거론된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 같은 여인들보다도 먼저 나오는 것을 볼 때 그녀의 헌신이 특별했거나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50대 정도는 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도 나이고 재력도 재력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예수를 향한 일관된 헌신이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마가복음 16:1-3).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마가복음 16:9-11).

.

막달라 마리아는 최후까지 예수를 따랐고 변함없이 그를 후원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초대교회에서 그녀의 역할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오해가 교회 안에 널리 퍼져있다.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향기론 산 제물 주님께 바치리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찬송가 211장 1절)

 

사람들은 이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이자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그 마리아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복음서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고 향유를 부은 그 죄인이었다는 근거가 없다. 앞서 살펴보았듯 막달라 마리아와 창녀 마리아는 우선 출신지에서 차이가 난다. 막달라는 유대의 북쪽(갈릴리 바다의 서쪽 기슭으로 가버나움의 남쪽)에 있다. 그러나 한 때 창녀였던 마리아가 살던 곳은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이었다.(뒤에 밝혀진다.) 또 그들은 연령대에서도 차이가 난다. 재력에서도 차이가 난다. 당연히 신분상에도 차이가 난다.

 

이러한 오해가 벌어진 가장 근접한 이유는 누가복음에서 누가가 죄인인 여인이 향유를 부은 사건을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인용했기 때문이다. 마치 갈릴리와 가버나움 근방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지방에서 가까운 막달라의 마리아가 등장했는데, 그녀는 일곱 귀신을 쫓아낸 여자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일곱 귀신과 창녀의 더러운 삶이라는 이미지가 혼합돼 버렸다. 그 결과 막달라 마리아는 나이는 젊어지고 신분은 사실과 달리 미천해져 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해도 살아남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었던 젊은(‘어린’이 더 적당할 것) 처녀가 자신의 재력으로 예수를 끝까지 후원했다는 것은 모순이 된다. 요한복음에는 이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한다.

 

음행 중에 잡힌 여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한복음 8:3-5)

 

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 에피소드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서기관 바리새 종교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수를 궁지에 몰아 고소하려고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음행하다 잡힌 여자(창녀)를 끌고 와 예수 앞에 세웠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율법을 지킬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 지킨다면 여자를 돌로 쳐죽여야 하니 그간 너의 사랑의 가르침이 거짓이 되고, 살려야한다면 너는 율법 파괴자로 즉각 고소당할 것이다.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허를 찌르는 말씀으로 그 둘 사이를 비켜나가신다. 기억할 것이 두 가지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예루살렘이라는 점과 예수님 사역의 전반기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다.

 

베다니는 이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한촌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주인공들인 마르다와 마리아 그녀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살던 곳이다. 오라비가 오빠를 말하는지 남동생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헬라어 원문 ‘아델포스, ἀδελφὸς’는 단순히 남자형제를 가리킨다. 우리말에서 오라비는 일반적으로 남자형제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히 남동생을 가리킬 때 ‘오랍동생’(김소월 「접동새」에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은 누나가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접동새가 되어 운다는 얘기가 나온다.)이라고도 쓴다. 여러 면에서 나사로가 그녀들 집안의 중심인물(오빠)이라기보다는 남동생(그것도 아직 어린)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즉, 마르다는 이 집안의 장녀이자 가장이었다. 그녀에게는 마리아라는 여동생과 나사로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그러면 마리아는 누구이고 나사로는 누구일까?

 

마리아를 찾아서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요한복음 11:1-2).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다(요한복음 11:5).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한복음 12:1-3).

 

이제 그림이 그려진다. 우선 이 집의 위치는 예루살렘에서 3Km 떨어진 가난한 촌락 베다니다. 우리는 고대 서울의 외곽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 지를 잘 안다. 11장 1절에서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에 사는 나사로’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5절에선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라고 약간 정정 보충하고 있다. 11장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 사건의 기록이고 이 사건의 파장으로 예루살렘에서는 그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심지어 나사로까지 죽여 없애 그의 기적을 무산시키려 했다. 이 부활 사건 다음에 마리아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사건이 있었다. 거기서부터 ‘마르다와 그의 형제’라는 표현은 ‘마리아와 그의 형제’라는 식으로 순서가 바뀐다. 그것은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사건이 예수의 생애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문제와 결부된다. 곧 왕의 결혼, 혹은 왕과의 혼례라는 요한복음 전체 주제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결혼은 어떤 결혼인가? 죽음과 장례를 준비하는 결혼의식이다. 죽음과 장례로써 함께 부활에 참여하는 혼례의식이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가복음 14:9)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사건을 우리는 누가복음 7장에서 이미 보았다. 누가는 그녀를 죄에 몸을 바친 한 여자라고 했다. 그때는 예수의 사역초기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마태와 마가복음에도 나온다. 두 저자는 동일하게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문둥이 시몬의 집’이라 조금 더 세부적인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누가는 시몬이 문둥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태와 마가는 그가 문둥이라고 밝힌다. 시몬은 바리새인이면서 문둥병자였다.

 

요한복음이 향유 사건의 주인공이 마리아였다고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과 달리 마태와 마가는 ‘한 여자’라고 씀으로써 누가처럼 그녀를 감추었다. 왜 그랬을까? 사복음서의 저술 순서와 시간을 계산해 볼 때 마가 마태 누가는 마리아를 어떤 방식으로든 숨겨주었고 요한은 밝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요한복음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 기록의 뉘앙스는 무엇일까? 요한은 먼저 기록된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교회에 회람되며 읽혀진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말은 그들이 밝히지 못한 사실에 대한 밝힘의 선언과도 같이 읽힌다. 일종의 ‘이젠 말할 수 있다’다. 왜 이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리해 볼 수 있다. 마태 마가 누가는 마리아가 누구인지를 감출 필요가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내력을 지닌 사람인지를 밝히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고 사려 깊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고의로 누가는 시간상의 순서를 바꾸었고 마태와 마가는 이름을 감추었다. 그러나 요한은 시간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그런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오히려 밝히 알려 주려 하고 있다. 과연 마르다와 마리아는 누구인가? 그 보다 먼저 나사로에 대해 살펴보자.

 

나사로를 찾아서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셨다(요한복음 11:5).

 

이 진술은 예수의 마르다 일가와의 관계가 상당기간 오래됐음을 알려준다. 예수는 예루살렘에 가시는 길에 언제나 베다니를 들렀다. 마르다의 집에 머물렀다. 그 집에는 마르다와 그녀의 동생 마리아와 나사로가 있었다. 같은 동네엔 바리새인이자 문둥병자인 시몬도 살았다. 그는 죄에 몸을 바친 여자로 창녀였던 마리아를 불결히 여겼다. 그녀가 자기 동네에서 몸을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바 예루살렘과 베다니는 불과 3Km 거리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녀가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언젠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붙들려 강제로 예언자라 불리는 예수 앞에 세워졌던 일이 있었다. 예수는 그녀를 정죄하기보다 그녀를 정죄하는 데 가담하고 있는 모든 자들의 율법(해석)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심으로써 그녀를 구출해 주었다.

 

누가는 그녀가 예수께 향유를 부어 죄 사함의 선포를 받았다고 했다. 나머지 복음서는 그녀가 향유를 부음으로써 예수의 장례를 기념했다고 썼다. 예수와 마리아는 그 두 가지를 주고받았다. 아무튼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예수를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마리아였을 공산이 크다. 마르다는 자기 동생을 구해준 예수를 집으로 초대한다. 예수는 그녀들과 동생 나사로를 알게 됐고 늘 그들에게 가서 머물렀다. 여기서 나사로는 일반적으로 이 가정의 가장으로 인식됨에도 그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나사로가 마르다와 마리아의 남동생이었을 가능성은 이미 언급했다. 그 외에 나사로가 남동생은 아닐지라도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복음서의 기록이 있을 법 하다. 어디일까?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누가복음 16:19-21).

 

이 비유의 결론은 31절.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에 드러나 있다. 즉 율법과 선지자를 지식으로 자기의 사회적 계급과 위상과 경제적 이익을 공고히 하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계급들, 유대의 귀족들을 향해, 그들의 신앙의 실제적 비양심과 거짓됨을 드러내신 것이다. 너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씀, 그것이 무엇인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하는 부자들이 있는데,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들의 대문에 누워 그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불리려 하는 거지가 있다. 그런 거지와 같은 생존현실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그것에 상관치 않는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의 율법에 대한 헌신과 충성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런데 여기서 언급된 거지의 이름이 예사롭지가 않다. ‘나사로!’ 그는 예수 자신과 매우 친절하고 예수가 마치 남들에게 보이기라도 하듯 그 집에 가서 머물곤 하는 외로운 가정, 성실하고 신앙심이 깊은 마르다와 몸을 팔며 자신을 세파에 내팽개쳐 버렸던 마리아의 집의 남동생의 이름이다. 예수는 왜 하필 헌데를 앓으며(피부병?)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대하고 문간을 서성거리는 거지를 나사로라고 이름 붙였을까? 이것은 지어낸 비유인가, 실제 존재한 현실인가?

 

우리는 여기서 이 나사로가 실재하는 나사로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나사로는 악성 피부병 내지는 문둥병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베다니에 계실 때 마르다의 집 뿐 아니라 조금 더 살만한 바리새인이자 문둥병자인 시몬의 집에도 머물렀고, 마르다가 자유롭게 그 집을 드나들며 일 할 수 있었다는 데서 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마리아는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의외의 취급을 받았다.) 혹은 베다니에는 이러한 문둥병자와 그 가족들이 극히 가난한 자들과 모여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이러한 베다니라는 촌락,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의 집에 관례적으로 머물렀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나사로가 병이 들었고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본래 만성적인 영양부족과 악성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걸을 했을 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런 집의 처녀들과 친밀한 사이였다! 이 모티브는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카잔차키스가 󰡔최후의 유혹󰡕이라는 소설에서 써먹었다. (거기서 예수는(여기서도 엉뚱하게 막달라 마리아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와 혼인한다. 󰡔다빈치코드󰡕도 같은 맥락의 변형된 이야기다.)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은 복음서에 관한 의도적 혹은 무지에서 비롯된 주제적 혼돈일 뿐이다. 다만 복음서(특히 요한복음)가 예수를(인간 영혼의) 영원한 신랑(남편)으로, 종교를 죽음과 혼례가 결합하는 신비로운 의식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만은 어렴풋이나마 인식했다고 보인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를 나사로의 장례에 청한다. 어떤 의미인가? 예수는 마치 그 집안과 장례를 대표할 정식적인 남자로서 부름을 받는다.(어떤 의미로는 예수님 자신이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려 죽은 후에 감으로써 그렇게 만든다.) 그리고 마르다는 예수님이 상가(喪家)에 당도하자 그런 의미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청원을 한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한복음 11:21,2).

 

이 말의 뉘앙스는 기묘하다. 그녀는 동생이 살아날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러면 그녀가 바라는 것, 예수가 바라는 것, 하나님이 주실 것, 그녀가 아는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은 여기까지만 말한다. 그러나 예수는 짐짓 그녀의 갈망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의외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다음 표면적으로 마르다의 신앙 깊은 말들이 이어지지만 예수와 마르다의 문답은 겉도는 것이었다. 그 다음 아무런 설명 없이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28절).

 

마르다의 말은 ‘선생님이(내가 아니라) 너를 부르신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러나 마리아 역시 마르다와 같은 식의 말을 주고받게 된다. 예수는 마르다 집안을 대표하는 장례의 상주를 거절하셨다. 그 대신 나사로를 즉각적으로 부활시킴으로써 진정한 주인(주님, 가장, 신랑)으로서 자신의 대답을 하셨다. 마리아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의 복음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고 마지막 예수의 유월절 예루살렘행 직전에 그에게 향유를 부음으로써 혼례와 장례의 의미를 동시에 담은 자신만의 이별의 의식을 거행한다.

 

이 같은 배경을 이해하고 본문을 읽을 때 우리는 전통적이고 협소한 메시지를 뛰어넘는 복음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0: 38-42).


<By Jan Brueghel the Younger - National Gallery of Ireland, Wikipedia Commons>


 

전통적으로 이 에피소드는 분주한 봉사보다는 예수의 말씀을 듣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인용됐다. 그러나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이 가정과 예수에 얽힌 배경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우리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입장의 차이, 생각의 차이, 예수의 반응에 대한 이해의 차원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이 에피소드의 메시지가 여성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겪는 여성의 현실이라는 문제들에 대한 특별한 도전으로 깊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시대를 초월하여 이 같은 여성 문제에 가장 극심하게 노출된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은 아마도 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예수 앞에 돌로 맞아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예수께서 그녀를 구출해주신 사건 후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 사이 예수님과 마리아 집은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됐을 것이다. 마르다는 너무나 고마운 예언자 예수님께 어떡하든 사은의 표시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자기 집으로 그분을 초대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예수의 기본적인 동행 뿐 아니라 인근 거류민들까지 몰려들었다. 과거였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그들(동네 사람들)을 할 수 있는 한 풍성하게 대접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바빠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마리아는 모르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에겐 언니가 생각하는 동네 사람들에 대한 대접, 자기들의 과거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만회, 예수님에 대한 합당한 예절, 그동안의 형편없었던 자긍심을 회복시키고 싶은 간절한 야망, 같은 것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흥, 누가 뭐라던, 어떻게 생각하든 난 아무 상관없어. 지금 나는 예수님 곁에 이렇게 앉아있다니까. 이게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니까. 다른 누구의 눈치도 인정도 필요 없다고.’하는 태도는 아니었을까? 혹은 자기야말로 예수님을 이 집에 초대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자긍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자긍심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예수의 곁에 딱 붙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한 당연한 사실이지만 고대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식사 자리에 함께 앉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예수의 복음운동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언니 마르다는 동생이 야속했다. 어쩌면 꼴 사나왔을 것이다. ‘저 철없는 것, 지금 지가 저러고 앉아있을 때야? 지가 누구야? 우리가 어떻게 살았어? 자기와 우리 집에 대한 온 동네의 평가를 만회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저렇게 경솔하고 뻔뻔하게 행동해서 망치고 있다니. 철딱서니 없는 것.’ 동생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마르다(마르다는 ‘숙녀’ 마리아는 ‘높다, 존귀하다’는 뜻)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가 머리꼭대기까지 차올랐다. 드디어 예수께 가서 넌지시 이른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고소인의 원망과 간청이 담긴, 그러나 예수를 향한 예절과 자기를 향한 애정을 갈구하는 표정이 담겼을 말 같다. 이런 말은 크게 떠드는 게 아니다. 아마 마르다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비스듬히 누워 담소하며 식사중인 예수께 가까이 가서 재빨리 속삭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의외였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대답이 책망의 톤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두 번 마르다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능히 짐작할만하다. 그녀의 분주함과 걱정에 대한 사랑과 친근함과 안타까움이 담긴 표현임이 분명하다. 그 말씀의 일차적 의미는 음식에 관한 것이다.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이라도 충분하다. 이차적 의미는 영생에 관한 것이라 들었을 것이다. 맞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하면 교훈과 설교만 남고 문답을 주고받던 당사자들의 현장성과 역사성이 실종된다. 이차적 의미는 동생(마리아)에 관한 것이다. 그녀를 내버려 두어라. 네가 근심하고 있는 것, 염두에 두고 있는 것, 마땅히 그렇게 했으면 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네 동생은 그런 것들로부터 떠났다.

 

그녀는 자유로워졌고 해방 되었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그 한 가지를 이미 붙들었다.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해주는 단 한 가지. 우리가 그것에 기대어 살아나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그것을 마리아는 붙들었다. 그러니 네가 빼앗으려해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빼앗으려는 모든 시도 그것이 더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다!(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네 동생은 이미 자유로워졌는데 너는 이제 또 다시 동생에게서 그것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냐? 동생을 과거에 얽매인 사람으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에 대한 두 가지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마르다는 봉사와 헌신으로 마리아는 자유로워진 영혼으로 그의 곁에 함께함으로써 사랑을 나타낸다. 어떤 사랑이 이 세상에 더 근본적이고 절실하게 요구되는가? 특히 강요된 마르다식 사랑법으로 마리아의 자유를, 그녀의 사랑법을 강제하려는 시도들은 그리스도의 자유와 해방을 무위로 돌려버릴 수가 있다. 그리스도가 해방시킨 사람들을 다시 율법의 틀에 가두어 버릴 위험이 있다. 세상이 항용 그런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존재가 아닌 소유로, Being이 아닌 Doing으로. 그러나 그 소유와 행동은 신적 사랑의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언제나 타인을 의식하는 기제로,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마르다는 그것이 감사해서 예수를 초청했으면서도 어느새 그것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그런 것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그렇게 되돌아가버리는 수가 얼마나 많은가!

 

명절을 맞아 분주하게 보냈을 것이다. 여성들은 특히 명절을 준비하고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많은 근심과 마련과 염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분주한가? 명절이란 무엇인가? 음식의 문제라면 몇 가지만이나 혹은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자유로워졌는가? 스스로를 또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는가? 스스로의 또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가? 우리에게 자유를 가능케 하는 그 한 가지(진리)를 붙들고 있는가일 것이다. 명절 증후군이니 명절 이혼이니 하는 말들이 들린다. 특히 여자들을 얽어매는 무수한 부자유와 스트레스들이 명절을 기화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페미니즘도 좋고 남녀평등도 좋고 다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복음에 들어있는 한 인간을 향한 완전한 해방의 진리와 그것을 초연하고 일관되게 표현하는 예수의 감동적인 사랑이다.

 

본문에서 예수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 대한 자신의 각별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표현하신다.(그녀들이 예수를 자기들의 신랑감으로 상상할 정도로!) 그런데 이런 예수를 우리는 우리의 신랑으로 삼고 있다. 신랑이라는 표현이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남성 중심주의라 불편할진 모르겠지만, 아니다. 이런 예수를 진정한 신랑으로 삼고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여성들의 분주함과 스트레스를 요구하는 남성지배의 세상에 대한 저항이고 해방의 의미가 아닐까. 아무려나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부디 다음 명절부터는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한 한가롭고 조용한 사색과 명상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서로 사랑의 손을 잡고 진실의 눈을 마주치며 함께 앉아보는 기념적인 날이 되기를 바란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딸들에게 주는 편지(6)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심령이 가난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태복음 5:3).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7장 29절까지 이어지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첫 구절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시나이 산에서 모세로 부터 율법을 받았듯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계명으로서 산상수훈을 반포하셨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한복음 1:17).

 

‘은혜와 진리(grace and truth)’는 같은 말이다. 은혜 따로 진리 따로가 아니라 은혜가 진리고 진리가 은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진리가 왔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자기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로 이런 자의식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왔는가? 그건 단순한 일차적 생각이다. 종교적 자각(自覺)은 차원이 다르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한 아이가 부모에게 ‘엄마 아빠는 왜 날 낳았어?’라고 물을 때 ‘우리가 낳은 게 아니라 너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야’라고 대답하듯이. 훗날 그 아이 자신이 그걸 스스로 깨닫게 될 때, 나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지만 깨닫고 보니 그것이 아닌 것.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세상에 다시 존재하게 된 나다.”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복음’이란 그 기원이 한 사람에 의해 선포되었던 모세의 율법과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차별성을 부각시킨다. 모세의 율법이란 일종의 불가피한 수단으로서 인간의 악함(연약함)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복음은 그에 반해 하나님이 그리스도(로고스)를 통해 인간의 악과 연약까지 담당(용서, 없이 하심)하심을 일깨운다.

 

이처럼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은혜와 진리의 가르침인데, 그 처음을 ‘팔복(八福)’이라 불리는 한편의 시로 시작한다. 팔복은 운문으로 된 시요 노래요 전체에 대한 서문이고 선언이다. 거기 또 여덟가지 행복이 열거되고 있지만 그 첫 구절이 가장 의미심장하다. 대개 여러 가지 사례를 열거할 때 첫 번째로 거론되는 것 속에 가장 크고 중대한 대의가 들어있고 그 다음부터는 첫 번 피력한 사례에 대한 보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을까? 심령(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질투는 나의 힘

 

팔십 년대에 기형도(奇亨度, 1960년 3월 13일~1989년 3월 7일)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생전에 그때까진 없었던 독특한 스타일의 시편들로 이름을 얻었었는데 스물아홉 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된 《입속의 검은 잎》이란 시집 속에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가 있다. 이 말은 아마 기형도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지만 그 후 그의 시와는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이 자주 써먹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인은 자신이 가진 것이 탄식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희망의 내용은 다 질투의 소산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그것은 미친 듯 사랑을 찾아 헤맨 것이었으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다. 시인의 고백은 깨우침이기도 하고 성찰이기도 하고 반성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회한 가득한 슬픔이기도 하다. 그 짧은 삶(29년의)의 무엇을 위하여 나(시인)는 그렇게 많은 마음의 공장들을 지었는가. 여기서 시인이 사용한 ‘공장’이라는 말은 본래 거대하고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진 군집체를 의미하는 콤플렉스(complex)를 연상 시킨다.

 

기형도는 60년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다른 시에서 자신은 그 나이에 벌써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고 쓰고 있다. 기형도의 갑작스런 죽음(그는 종로의 어느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숨진 채 발견 됐다)은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는 스무 살에 그의 신작이 수록된 문예지들을 복사해 가지고 다니며 읽고 외우고 또 흉내를 내기도 했는데, 군대시절 휴가를 나와 벌써 한 계절이 지나간 다음에야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유고 시집이자 첫 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생각에 젖어 고뇌하며 군대로 복귀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의 고백들은 팔십 년대 젊은이들의 가난과 어둠, 욕망과 좌절의 상처와 고통을 대신해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때 우리들(우리사회)은 무엇에 의해, 왜 그토록 많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마음속에 저마다 콤플렉스와 같은 복잡하고 거대한 열망들을 품었던 것일까? 아니 그 힘의 진정한 내용은 무엇일까? 시인이 ‘질투’라고 표현한 것은 정확하고 정당한 것일까? 그는 스물아홉에 1990년대를 맞기 직전 스러졌지만 그 이후를 살아온 우리들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사람의 그러한 질투의 포화상태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헬 조선’이라 표현하는 증오사회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어디서 왔나

 

한동안 몸이 아파서 고생을 했다. 그래 그랬는지 고통에 관한 책들을 꽤 읽었다. 그 중에 ‘고통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속에 원함이 많기 때문’이라는 한 줄이 기억에 남아있다. 원함이 고통을 만든다는 것이다. 원함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기가 막혔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관계 속에서 누군가에게 혹은 사회와 세상을 향해 마치 사랑을 갈구하듯 갈망하는 어떤 원함이 있을 때, 거기서 고통이 발생한다. 그러면 아무 것도 기대하거나 계획하거나 원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좀 미루어 두고 우선 그대로 밀고 나가 보자.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만년을 보낸 타히티 섬에서 그린 연작 중에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림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절친이기도 했던 고갱은 그와 함께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화가라 불린다. 그들은 당시 탐욕으로 물들어 가는 유럽 문명에서 회의 느끼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유사한 정신으로 문명의 비정성과 부조리 세속성, 속물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고흐가 기독교적 세계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 했다면 고갱은 원시적인 낙원 곧 기독교 문명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고갱은 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가서 원시적 자연과 삶속에 들어갔다. 그는 타히티 섬의 원주민들 속에서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고자 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그가 만난 것은 유럽 제국주의 문명의 탐욕과 타락의 전파였다. 거의 모든 당대의 예술가들이 그랬지만, 그는 왜 기독교 문명이 건설한 유럽에서 구원을 발견치 못했나? 유럽과 타히티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령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세계와 우리들의 현실의 차이는 무엇인가?

 

《탄허록》에 보니까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조사(祖師, 불교의 높은 스승)는 병을 어떻게 고칩니까?” 아픈 나로서는 매우 반갑고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탄허는 이렇게 답했다.

 

병종하래(病從何來)오 병종업생(病從業生)이니라

업종하래(業從何來)오 업종망생(業從妄生)이니라

망종하래(妄從何來)오 망종심생(妄從心生)이니라

심종하래(心從何來)오 심본무생(心本無生)이니라

심본무생(心本無生)이어니 병종하래(病從何來)오.

 

병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병은 업으로부터 왔습니다.

업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업은 망상으로부터 왔습니다.

망상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망상은 마음으로부터 왔습니다.

마음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마음은 본래 나온 곳이 없습니다.

“마음이 본래 나온 곳이 없는데, 병은 어디에서 왔는고?”

 

이렇게 말함(깨우침)으로써 병이 마음에서 뿌리 채 뽑힌다는 것. 조사들은 이런 식으로 병을 고친다고 답했다. 비록 그런 경지까진 이르지 못할지라도 이 내용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해준다. 지금 우리 사회, 사실은 온 세계가 창세기 6장 노아 홍수의 전야처럼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하여 ‘땅에 포악함이 가득’하다. 약한 사람, 없는 사람, 선한 사람, 무죄한 사람들이 악인들과 악한 권력자들에 의해서 날마다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런 무례하고 무정하고 무자비한 폭력들이 어떻게 생겼나? 가령 어머니의 몸 밖으로 태어나는 어린 아기들을 생각할 때, 본래 그들에게 없던 것으로부터 어떻게 이토록 많은 병(病)이 나왔단 말인가? 오늘의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인가(우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죄, 이분법, 탐욕

 

성서는 처음부터 이 신앙이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은, 탐욕에 관한, 탐욕에 대한 형벌과 구원에 말씀인 것을 선포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이란 탐욕의 발생에 의한 새로운 인간조건 곧 인간의 마음의 탄생이 그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탐심이라는 것이 발생하고, 그것을 자기 동일시하고, 그것이 자신의 본질(영혼)과 상관없이 스스로 자아(自我)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때, 거기서부터는 성서에 기록된 모든 문제가 그의 일생에 나타나게 된다. 곧 죄와 형벌과 구원의 문제다.

 

아담과 화와는 뱀(사단)의 유혹에 빠져 금지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딴)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즉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마음이란 다 개별적인 ‘딴 마음’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자기본위의 자기 밖에 위할 줄 모르는 닫힌 정신, 꽂힌 열정이다. 그 내용은 선악(좋고 나쁨)의 이분법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분별심이라고 해야겠지만 그 분별이란 사려 깊고 신중하고 정당하다는 의미에서의 분별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에 의해 변덕을 부리는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나눔이다. 이것을 자기분열이라고 하는데, 이미 분별이 인간의 기본 조건이 돼버렸기 때문에 하나의 분열은 순식간에 수십 가지로 분열된다. 인간이란 그렇게 해서 끝내 자기 마음을 자기 자신도 헤아릴 수 없고 결국에는 자신이 결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치달리게 되어 있다.

 

곧 탐욕이 마음의 근본적인 동력이자 작용이다. 지금 어떤 무식한 기독교인들은 사단이 따로 존재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세력인 것처럼 생각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도리어 이렇게 말씀 하신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한복음 8:44).

 

우리를 만들어 온 것은 우리들의 탐욕(욕망)이다. 마음은 곧 탐욕인데 거기서 온갖 불만과 불만족과 그로인한 원한과 모략과 반항과 폭력성이 생기고 자라났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탐욕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말의 의미는 지금 우리를 병들게 하고 괴롭게 하고 비틀리게 하고 파괴하는 모든 파행적인 사태를 한마디로 줄인다면 스스로의 탐욕의 결과라는 말이다. 부디 이 말을 엉뚱한 곳(자학 혹은 변명 혹은 기독교 도사 같은 무정한 논리)에 가져다 쓰지 말기를! 어떤 부패한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도리어 약한 자를 절망시키고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디서든 발견되는 죄와 폭력이다. 가장 시급히 복음을 깨우쳐야할 자들이 있다면 언제나 시급히 저지시켜야할 죄와 폭력의 자아 정체성을(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가진 자들이다.

 

탐심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은 매우 분명하고 영적(본질적)인 설명이고 과학적인 해설이다. 특별히 어떤 악인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신의 탐심의 결과로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십계명>에 열 개의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 한마디는 ‘탐내지 마라’는 한 말씀에 다 들어있다. 사도 바울은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 했고(골로새서 3:5), 율법의 모든 조항을 뭉뚱그린 상징으로 탐심에 대한 금지(로마서 7:7)를 언급한다.

 

거기엔 영적이고 본질적인 원리가 내재해 있다. 다만 세세한 설명이 없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색하지 않거나 사색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런 근원적인 자기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혹은 그중에 무식한 사람은 다만 ‘탐내지 말라’는 문자에 매달리는 것이다. 무엇이 탐내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몇 가지 탐내지 않는 자기 의를 내세우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를 모르는 채 ‘나는 이렇게 욕심이 없는 사람이지’ 라고 스스로 흐뭇해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은 가르침을 즐겁고 달게 받아 그 원리에 이른다.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남에게 양보하고 탐내지 말라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도(道,원리)에 이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이것이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명대(明代)의 사상가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은 공자의 가르침의 핵심을 ‘양지양능(良知良能)’이라고 정의했다. 벌써 깨우친 본성, 이미 가진 재능, 본성의 자각이다. 그래야 거짓이 없는 진실의 지행합일이 누구든지 그의 품성에서 나온다. 양지(良知)는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양반 천민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본래 성인도 범부도 있을 수 없다. 자기에게 양지가 본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사람은 양지를 지닌 사람, 그것을 자각한 사람, 거기를 향해가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양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비록 열 수레의 글을 읽어 박식한 박사라도 끝없이 공자나 주자, 부처나 예수의 말씀이나 인용하고 읊조리는 위선자가 되고 만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절에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라고 쓰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일체의 비결’이라는 말이다. 만족과 자족이란 하나님이 주신 상태로 만족한다는 의미다. 있는 그대로 감사하고 자유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평안이고 행복이다. 그러나 거기엔 그럴만한 일체의 비결이 있다. 왜 그러한지, 그것이 가능한지 원리를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왜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상황이 호의적일 때는 감사하고 만족하고 자족하며 탐심을 절제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영락없이 옛날 자기의 탐심의 지배를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만족케 하심을 신뢰 못하는 것이다. 왜 예수께서는 그의 첫 말씀을 ‘심령이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고 했을까?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간다. 여기서 천국은 미래적이 아니라 현재적이다. 내 심령이 가난하다면 나는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지 못하다면 나는 심령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그 곳간이 비었다는 뜻이다. 곳간이란 무엇의 직유인가? 말할 것 없이 마음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첫 조건으로 마음의 빔을 설파하는 것이다. 마음이 비었다! 헤아려 보면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누가 마음이 빈 사람인가? 어느 때 우리는 마음을 비우게 되는가? 무언가를 결국 얻지 못할 때, 해도 해도 안 되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즉 포기할 때이다. 우리는 그럴 때 ‘나 마음 비웠어’ 이렇게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가난해 질 때만 사람은 마음을 비우게 된다.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척을 하면서 하는 비움이란 위선이나 기만이나 허영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 가난했을 때, 그 가난에 대해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온전한 상태에서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그럴 때 가난은 피치 못할 쪼들림이 아니다. 쪼들림마저도 하나의 탐심으로 자각하고 그것마저 비운 상태다. 곧 자발적이고 자각적인 존엄한 가난이 된다.(우리는 그렇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서 신적 존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복음의 원리를 생각해야지 ‘그렇다고 어떻게 마음을 실제로 싹 비운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자꾸 자기 현실을 고집해선 이 ‘비결(祕訣)’에 도달할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집착이 탐심인 것을 아는 때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주가 되는 것이지 그리스도 앞에 내가 여전히 주가 되는 사사로운 것이 아니다. 사사로운 이득을 바라고 도를 좇는 사람을 ‘삯군’이라고 했다. 비유하자면 스스로 주인이 못되어 밤낮 일생을 삯받는 직원으로 산다는 말이다. 누구의? 있지도 않은 자기 마음(탐심)의 하수인 말이다.

 

참 사람의 일생

 

고향에 사니 동창들의 부모님의 부음(訃音)에 문상을 가게 된다. 가서는 나는 대개 고인들의 삶과 인생 역정 그리고 최후의 병상 죽음의 순간 등에 관해 묻는다.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일생은 지독한 가난과 가혹한 노동과 무명(無名)과 별것 없는 소득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그 빛 없는 무명(無明) 속에서 생의 희망(빛)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분들은 일생을 그토록 힘겹게 분투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일생의 노고를 생각할 때 진정 하나님께 그들을 받아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보상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또 한편 이런 의문이 든다. 그들은 어쩌면 이제부터 인생을 비로소 살아볼 만 해졌는데, 왜 하필 살만해지면 인생이 끝나게 되는 것인가? 인생은 왜 이렇게 배반적인가?

 

마음을 비운다, 만족한다, 자족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욕심이 없다? 아니다. 우리는 더 큰 욕망을 품어야한다. 진정으로 자기를 위하는 욕망, 자기를 완성하는 욕망, 본래 완성이었다는 것, 결국 그 주신 완성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현혹됨 없이 거기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 그 상태를 유지해 나가려는 욕망, 모든 사람을 그렇게 보고 볼 수 있는 한결같은 안목을 가지는 욕망. 그러므로 너희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耳目) 따위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라. 오로지 자기 안으로 자기를 살펴 하나님의 진리(은혜)의 말씀에 따르는 성(誠, 성실)과 경(敬, 외경)에 이르자. 모든 아프고 눈물 흘리는 모든 존재들을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는 고귀함의 천국에 들어가 살자. 이제부터 ‘질투는 나의 힘’이 아니다. 본래 충만하신 그리스도가 나의 힘, 이 완성을 향해가는 행복의 힘이 너희의 힘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9)

 

파추부 노인, 그 아스라한 생존자

 

지난주는 지난해 중동감기로 격리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일 년이 되는 즈음이었다. 마침 완치자 연구 프로그램에서 검사가 있어 서울대 병원엘 갔다. 의사가 가지고 있는 두꺼운 개인기록 겉장에 ‘생존자’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가 생존자로구나.’ 그 사실을 기뻐해야할지 축하해야할지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듣게 된 바로는 당시 입원자들 가운덴 별의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죽음의 위협과 강제 격리 상태에서의 심각한 불안은 환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집에 가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의료진에게 화를 내고 살려달라고 발작을 일으키고, 개중에는 억지로 제압을 해야 하는 피치 못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매우 조용한 환자였다. 나는 거의 말도 하지 않았고 먹지도 못했고 누워만 지냈다. 간호사들이 텔레비전이라도 보시라 권했지만 그런 친절에조차 대꾸를 하지 않을 정도로 마치 대단히 화가 난 사람 같은 까칠한 환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완치 판정을 받고 집에 돌아가든지 죽든지 그 판단을 기다리느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건지 모르겠다.

 

‘생존자’라는 말이 구사일생 치열하게 싸워서 살아난 사람의 의미라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사실 깊은 우울에 빠져 생존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셈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여사의 죽음에 이르는 5단계설(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을 적용해 본다면 수용 직전의 깊은 우울의 단계였다고 할까. 아니면 그 모든 단계가 내 안에서 한꺼번에 들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일까. ‘생존자’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입원한 다음 날 한 노인이 내 옆 침대에 들어왔다. 일생을 강도 높은 노동으로 살아왔음직한 깡마르고 주름진 70대 노인이었다. 침대에 누워 들어올 때부터 그는 의식 불명에 기도삽관 상태였다. 그를 옮긴 의료진이 필요한 모든 장비를 다 갖춰놓고 나간 다음 나는 그의 상태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인간의 생명을 ‘목숨’이라 했던가? 그는 거의 목으로 호흡을 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긴박하고 갑갑한 숨소리가 이어지다가 폭발할 듯 몸을 뒤틀며 엄청난 소리를 지르곤 숨이 좀 터졌다. 그리곤 다시 반복. 게다가 그에게서는 마치 죽음의 전조 같은 노인 환자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썩는 냄새가 났다. 그의 곧 끊어질 것 같은 숨소리는 24시간 계속됐다. 그로인해 우리 방에는 간호사들이 자주 들어왔다. 일상적 검사와 주사나 약물 투여 외에도 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가래를 뽑아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웬일인지 나는 그가 의식이 없다는 사실에 좀 위안이 됐다. 그의 숨소리와 냄새엔 질식할 지경이었지만 결국엔 적응이 되어 무심하게 됐다. 실로 무심이었다.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발에 쇠사슬을 차고 4년의 유형생활을 했던 작가 도스또옙스끼는 멀리 있는 인류는 사랑할 수 있지만 더러운 냄새를 풍기며 옆에 누워있는 동료 죄수 한 사람만은 결코 사랑 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나 역시 그를 보기가 싫었다. 살아나리란 가망이 없어 보이는 그의 상태. 나는 그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당시 나는 감염자들은 결국 다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그걸 상기 시켜주었다. 일종의 내기 같은 것? 우리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죽을까? 상태로 보아 그가 먼저 죽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건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어제는 화장실에서 쓰러져 죽음 비슷한 경험을 했지 않는가.

 

나는 그와 내 침대 사이에 커튼을 쳐 그를 가렸다. 그러나 그를 가리니 그의 침대 건너 창밖 풍경과 하늘도 가려 보이지 않게 됐다. 궁여지책으로 그의 허리 아래까지 만 커튼을 쳤다. 그런데 그 상태에선 하늘과 먼 산의 풍경은 볼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의 기저귀찬 아랫도리와 초등학생들의 반양말처럼 무릎 위까지 신겨놓은 흰 양말이 먼저 보였다.(그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돌아가신 장인의 발에도 신겨있던 괴사방지용 양말이었다.) 나는 그걸 보는 게 괴로워 눈을 감아 버리거나 가급적 시야를 높게 설정해 보고도 안 보이는 척을 했다. 전혀 양심이 찔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내 양심을 눈치 챌 의식이 없으므로, 그리고 내 처지 또한 그와 다를 바 없었으므로, 괘념치 않았다.

 

우리들을 돌보던 의료진중 한두 명의 간호사가 기억이 난다. 방호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생김새는 알 수 없지만 목소리만은 생생하다. 그들은 박완서의 표현처럼 환자를 ‘공깃돌 굴리듯’ 다루진 못했다. 그러나(특히 두 명은) 마치 친아버지를 다루듯 했다. 그들은 의식도 불분명한 노인에게 일일이 그때그때 자기들이 하려는 작업을 설명했고, 진행상황을 말해줬고, 당치도 않게 그를 다그치거나 용기를 북돋우며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처음엔 심드렁했던 나는 점차 그들의 헌신적인 간호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고 환자의 용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한 번은 그의 가래가 막혀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의료진을 불러 들여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나는 점차 그의 침대를 건너 창문까지 링거를 끌고 방안 산책을 다녔다. 둘 사이의 커튼을 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단 한번 의식이 깨어났다. 깨어나자 그는 엉뚱하게도 간호사에게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간청했다. 간호사가 애기 달래듯 핀잔을 주자 담배가 아니라 전자담배라도 좋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말이 아닌 말로 전자담배를 간호사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나는 처음으로 웃었다. 둘이 남았을 때 그는 ‘이게 누군가’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으나 무슨 의사를 전하진 못했다. 나 역시 뭔가 말을 붙여 보지 못했다. 얼마 후 그는 곧 의식 없는 상태로 돌아갔다. 내가 퇴원할 때도 그는 거친 목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병마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에게 인사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일부러. 나는 그가 죽을 줄 알았던 것이다.

 

파추부 씨(氏). 나는 간호사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을 듣고 딱 한번 그가 중국인이냐고 물었었다. 간호사의 대답은 아닐 거라는 애매한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서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양원에서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왔다가 감염까지 된 분이었다. 자식들조차 돌보지 않아 무척 외롭고 안 된 처지의 노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살았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저 깊은 양심의 찔림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 그가 죽었다면 나는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가 살아난 것은 나를 위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다.

 

카뮈의 《전락》이라는 소설은 한 프랑스인 지식인인 변호사가 자신의 내면의 전락(타락) 과정과 그 절망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여러 사건이 나오지만 그중 가장 최초 전락의 원인은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죽어가는 동료의 빵을 가로채 먹어버린 죄책감이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는 자기기만으로 양심을 잠재우고 그는 앓으면서 죽어가는 동료의 빵을 먹는다. 또 하나 유사한 사건은 변호사가 되어 잘 나가던 어느 겨울 밤 파리의 센 강 다리 위 바로 지척에서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을 구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겨울이라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기 싫었다는 이유로 그는 한 사람의 죽음을 방치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서서히 전락해 간다.

 

나는 가끔 ‘파추부’라는 기이한 이름의 노인을 생각한다. 그 이름은 내가 얼마나 살 준비도, 죽을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어설픈 인간인지, 나만의 생사와 안위와 자아의 진퇴를 최종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인지를 상기시켜 준다. 물론 나는 그 일로 전락하진 않았지만. 반성과 함께, ‘파추부 씨, 가래를 빼야 돼요.’ ‘파추부 씨, 기저귀 갈아 드릴께요.’ 하던 방호복 속의 생김을 알지 못하는 간호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파추부 노인.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7)

 

결국을 산다는 것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이건 분명 표절이다.) 그제는 존경하는 목사님의 출판 기념회에 갔었고 서울만 가면 도지는 촌병에 더쳐 뒤풀이도 못가고 파김치가 돼 돌아 왔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서울에서 느끼는(혹은 확인하는) 바는 170cm도 못 되는 내 단신의 병신스러움이다. 이런 경우 대개 작음과 못남은 짝을 이뤄 병진(竝進)해 나간다. 작음에서 못남이 발생하는 건지 못남에서 작음이 유발되는 건지 모르겠다. 짐작건대 선천적 육체의 작음이 후천적 도시의 거대함 속에 떨어진 게 사회심리학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내가 사는 시골에선 작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외려 작으므로 편안한 법인데 그대(서울) 앞에만 서면 나는 왜 길 잃은 전쟁미아 꼴이 되고 마는지.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차를 하나 타더라도 지하철을 타더라도 괜한 주눅이나 들어 누구일 턱도 없는 눈치를 탄다. 게다가 좀 외진 모서리에서 마주 돌아오던 여자와 하필 눈이 마주칠 때!(읽는 남자는 깨달을 진저.) 그녀가 놀라는 것도 그렇지만 그녀가 놀랄까봐 미리 내가 더 움츠려 드니 필시 그게 더 의심스럽게 보였을까. 젠장. 원수들이 내 이런 병신스런 모습을 본다면 박장대소 꽤나 통쾌해 마지않을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문명이라는, 특히나 이즈음 대한민국이라는 아주 낯선 대도시에 떨궈진 벌거벗은 인간의 참모습일 거라 느껴마지 않는다. 변명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라면 누군들 아닐까. 본래 인간이란 이렇커니, 거기 더해 길 잃은 나라, 길 잃은 고아 같은 국민의 정신상태랴. 그들에게는 길이 없기는 물론 너무 많기도 해 까딱하면 막다른 골목이거나 아예 벗어나기 태반인 것이다. 그러나 길이 암만 많은들, 풍경이 암만 대단한들, 혹은 그 반대 도저히 길이 없고 적막강산이라도 사람에겐 오로지 제 길 하나 제 맘 풍경 하나 밖에 더 있겠는가. 그 점에선 저 시골의 흙먼지로 안일하게 살아온 원주민이나 도시에서 평생을 누비며 도시먼지로 폐를 단련한 문화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 또한 평등이라면 평등. 나는 겨우 용기를 차려 동점(同點)을 유지한다.

 

모처럼 불려 나온 뜻 깊은 출판 기념 모임에 한 시간이나 넘어 겨우 도착했다. 버스와 택시에 시달린 끝에 비위는 상하고 몸 상태가 급히 나빠져 그만 기념은커녕 참여 자체가 버티기였다. 어영부영 남아있다간 남의 결례가 될 판이고 빨리 돌아가야 하나 갈 길이 멀어 겁부터 났다. 인생이란 참 어처구니 없다. 기껏 왔구나 싶으니 가야하다니. 아내를 부를까 하다가 또 한 번 식구들을 놀래 킬 것 같아 참고 가보자 한 것인데. 에어컨 찬바람에 예민한 몸만 아주 덜뜨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

 

 

 

 

뭐라 대답해야 할까?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쏟아진다. 마루 끝에 겨울 이불을 덮고 누워 앓으며 마당이며 앞산이며 나무들과 풀 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해갈의 쾌락에 떨며 식물들은 한껏 부풀어 오른다. 역시 옥수수가 그중 압권이다. 쑥! 쑥! 흐려진 시력에도 자라는 게 뵈는 것 같다. 그 끝자락 비오는 날 아득히 먼 추억처럼 이 시가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 시를 낭송한 영화배우 이덕화의 낮게 깔린 굵은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그럴 때 이덕화를 보면 ‘배우는 배우’라는 말 백번 동의하게 된다.)

 

접시꽃 당신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덩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1986)

 

내가 이 시를 읽었을 땐 겨우 스물한 살 무렵이었지만 주인공들은 지금의 나보다 십년은 더 어렸을 때다. 연소하고 늙음이 생의 천치를 극복하는데 무슨 조건이 될까. 십년도 더 어린 젊은 부부가 죽음과 작별에 직면해 처절히 깨달아 가는 존재의 결국.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의 아프고 결연한 의지는 그 앞에서 여전히 옥수수 잎처럼 흔들리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자기들의 운명을 이 세상 공통의 숙명으로 자각하며 마치 순교자처럼, 선지자처럼, 개인의 종말을 약속의 책임을 진 종말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실화(實話)는 슬픔의 시적 카타르시스를 넘어 종교적 구도의 숭고함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일이란 끝내 이런 걸까? 몰랐던 거다. 아는 척 넘어간 알음알이에 불과했다. 그저 남의 가정 얘기로, 베스트셀러 시집의 사연으로, 이런 저런 비평의 말보태기로, 무심히 정리해 버렸던 거다. 다행스럽게도 내 일이 아니었음으로.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이런 일들을 겪어냈다. 그 끝에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한 사람은 이 땅에 증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또 어떤 냉정한 사람은 심드렁하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무슨 대수냐’ 물을 수 있겠지? 뭐라 대답해야 할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그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할까? 그렇게 말한들 그 말이 그 의미일까?

 

 

까닭 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제 고단해 보이시던데 괜찮으신지요? 참 좋은 길벗이 시름에 잠긴 듯하여 마음 아팠습니다. 쾌유를 빕니다.”

 

아침에 깨니 문자가 와있었다. 약간의 충격? 어제 북콘서트 끝나고 겨우 축하만 드리고 인사도 안 하고 떠나왔는데. 잠간 비친 내 모습이 역력히 수척해 보인 모양이다. 하긴 내가 거울을 봐도 예전엔 보지 못한 낯선 내가 보인다. 뭐랄까? 몸과 맘과 얼굴이 그대로 거울에 보인다고 할까. ‘고단함과 시름’이라 표현됐지만 나는 그걸 정확히 번역할 수 있다. 빗소리를 완상하다 간단히 미루어둔 답신을 보내려 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젊은 나이에 골골 거리니 면목 없습니다. 몸이 회복 되는 듯 하다간 또 파김치가 되곤 하는군요. 기도해 주셔요. 목사님의 진진한 문장과 마음을 감탄하면서 따라 가 봅니다. 제가 좀 어려서 목사님을 뵀으면 해보기도 하구요. 울울해요. 몸이 아파 그런지 모든 게 아쉽습니다. 저의 개인적 무기력도 이 시대의 무력함도. 목사님의 문자를 대하니 하릴없이 많아진 눈물이 또 쏟아집니다. ㅠㅠ.”

 

간단히 보내려던 답신을 쓰다가 까닭 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서러움일지 아쉬움일지, 내 운명에 대한 어떤 예감일지도 모른다. 눈물을 훔치며 전송을 누르는데 약간의 주저가 따라왔다. 이건 뭐지? 괜스레 화가 났다. ‘그냥 정말 간단히 쓸걸….’ 그리곤 좀 있다 답신이 왔다. 정말 간단했다.

 

“언제든 소중한 벗으로 그리워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시길 빌 뿐입니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사와 감격 때문이 아니라 냉정한 거리감 때문이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냉정한 거리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 때문이기도 했다고 해야겠다. 원망이나 섭섭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운명에 대한 결백한 일깨움 같은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내 눈물에 대한 답으로서 내게 보내진 인생의 선배, 삶의 선생님의 따뜻하고도 절제된 사랑의 표현이다. 정직하고도 겸손하여 어느 선을 넘어가지 않는, 그러나 정확하고 냉정하여 일견 무심한 듯 나의 전투를 독려하는 전언이라 여겨졌다. 나는 조금 실컷 울고 나서 다음과 같이 답신을 드렸다.

 

“감사합니다. 몸과 맘 말씀으로 잘 간수하겠습니다.”

 

많은 경우, 나는 아직도 내가 인간에 대한 허망한 의지에 매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대부분은 의례적 수사나 냉담으로 내게 대답해 준다. 그러나 때로는 절제된 간결함으로 나를 일깨워 주는 분들이 계시다. 그럴 때면 ‘그들은 어떻게 거기에 도달 했을까’하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든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세상을 잘 못 읽었다. 어려서 문학을 잘못 읽은 것처럼, 최종적 관점을 갖지 못했고, 거기 투철하지 못했고, 언제나 사랑과 위로의 목마름 같은 갈망과 원함의 상태에 머물렀다. 믿는 자라기보다 구도자처럼. 그러니 이제 내 오류를 버려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아픈 것일지라도, 아픔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일지라도, 진짜 보배를 얻었으면 가짜는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아무리 내 일생을 바쳐 획득한 것일지라도, 혹은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 향해 싸워왔던 것일지라도.

 

나는 실패를 인정한다. 이것으론 백전백패일 뿐이다. 나는 그 점을 인정했다. 결국을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임을 그분은 내게 일러 주셨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정말 나를 사랑하여 내게 진실을 보여준 가장 정직하고 투철한 선생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도 투철함은 끝까지 투철함이다. 그것은 해석을 요하지 않는 간결함이고 냉정함이고 동시에 그로인한 따스함이고 사랑이다. 마치 그리스도처럼. 그분이 내 맘을 왜 모르셨겠는가? 모르는 것도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깨어 투철함이다. 그는 내게 다시 말씀한다.

 

“언제든 소중한 벗으로 그리워합니다.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시길 빌 뿐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올 테면 와 봐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6)

 

헤아려본 슬픔


"당나귀야! 이를 악물고 지나가자. 오르지 못할 산이 없고 지나지 못할 강이 없단다." -모옌, 붉은 수수밭.

 

광풍 같은시간들

 

1년이라는 시간의 매듭을 통해 광풍과 같이 치달렸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 충격과 고통과 슬픔들이 다시금 내 몸과 맘에 재생되는 듯하다. 그 공포스럽고 견딜 수 없었던 감각들이 가족들의 내면에 어떤 상흔들을 어떤 방식으로 남겼을지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다. 그토록 가혹하게 우리를 휘몰아쳤던 세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도 위로도 외면한 채 잠잠하기 야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상에게 그런 걸 기대할리도, 한다할지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기억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것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일 터이다.


 

 

지난해 5월 28일(목) 아버지(장인)께선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 하셨다. 병세가 빠르게 악화돼 당일에 기도삽관 다음날 신장투석 그 다음날 외부혈액순환장치(에크모) 사용에 동의하게 됐다. 그날 비로소 상황이 진정 중대하고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다. 청천벽력. 어찌해야할 줄 몰랐다. 5월 31일(일)에 우리 부부는 격리중임을 무릅쓰고 서울까지 갔었지만 의사의 불허로 면회를 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다시 다음날인 6월 1일(월) 어머니를 모시고 재차 상경해 아버지를 뵐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무의식 상태에서 생명유지장치를 통한 생존을 겨우 유지하고 계신 상태였다. 그 정상을 무엇으로 다 기록하랴. 그러나 정신의학자 칼 융은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의식은 작동한다고 말한바 있다. 비록 기계의 도움을 받고는 있었지만 심장이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나로선 그때의 상태가 일반적인 혼수상태와는 달랐으리란 생각이 든다.

나는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께 어머니와 가족들의 이름과 안부를 일일이 불러드렸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드리지 못했던 감사와 회한의 말씀들을 생각나는 대로 드렸다. 그리고 나의 믿는바 복음의 소망을 말씀드리고 세례를 드렸다. 마지막으로 통곡 속에 큰 절을 올렸다. 모름지기 그분은 가족들이 밖에 다 있는 줄 아셨을 것이다. 나는 가족들이 아버지와 이별하기 어려워 나만 들어왔노라 말씀을 드렸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그날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밤 11시 23분.

그날 이후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내 자신에게 드는 의구심이 있다. ‘왜 나는 그것이 마지막이라 단정 지었던가?’ 물론 최후가 임박했다는 의사들의 결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마지막 인사가 아니라 다시 일어날 생명의 의지를 마지막으로 보다 강력하게 일깨워드렸더라면, 왜 거기까진 생각도 못했나, 하는 자책에 자주 빠졌다. 그때, 의식은 없으신 채 몸은 통나무처럼 차갑고 딱딱했지만, 가슴과 얼굴을 쓰다듬고 잡은 손을 놓기 까지 가슴으로부터 손끝까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전류 같은 게 찌르르 흐르며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떤 반응, 무슨 말씀을 하시려 했을까?

더욱 안타깝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의 최후의 시간들을 지켜 드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과 그 다음을 타인들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장례를 모시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길에서 저지당해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끝내 한스럽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고통스런 일들이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에게 있었다. 격리와 입원, 생사를 넘나들던 고비들, 그것을 고스란히 겪어낸 아내와 어머니와 아이들. 그것은 지은 죄 없는 끝없는 자책과 슬픔이다. 돌아가신 분을 향한 미안함과 그분을 상실한 공허감. 비현실성. 그리고 문득문득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고인의 육체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던 그 모든 불가피하고 불가항력적인 상황 중에 놀랍게도 우리에게 매순간 담대한 용기를 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가 어떻게 풀무불 같은 용광로의 시련을 통과해 냈는지. 그것을 기억할 때,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그의 죽음을 통해서 조차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보다 굳건하고 튼튼한 생활로, 삶으로 우리를 굳세고 깊어지게 해 주셨다고 믿고 싶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동시에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다만 전혀 차원이 다른. 그분은 이제 세상을 떠나 그런 세계에 속하신 거라고. 충격과 공포와 고통과 슬픔이 우리를 거의 죽도록 몰아친 다음 서서히 회복될 때, 나는 옛날과 동일하며 달라진 차원의 마음과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그분 자신이 그렇게 되심으로써.

죽음의 모습은 낯설고 섬뜩하게 느껴질 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무서운 것이라 생각지 않고 믿음이 강한 사람은 그것을 마지막이라 여기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께서는 삶을 사랑하셨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물론 두려워하셨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자신 안에서 두려움을 다스렸다. “이제 곧 치료를 받으시면 괜찮아 지실 겁니다.” 라고 말씀 드렸을 때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쉽지 않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왜 ‘아닙니다. 진짜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분은 자주 모든 것은 ‘팔자’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럴 때 그 말은 비관적 운명론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낙관적 수용을 가리키신 뜻으로 이해된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분은 그만큼 내면이 담백하여 굴절된 양심에 의한 죄책감과 심판의 두려움이 적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이런 것. 신앙이란 교리적으로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과 양심에 작용하는 빛과 어둠, 그 굴절에 관한 문제라는 본질이다. 양심에 있어 거리낌이 없고 떳떳하다는 것은 굴절된 죄의식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께서는 그런 분이셨다. 물론 그는 우리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치부해 버리셨지만.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기억나는 게 한 가지 있다. 장모님은 목사인 사위 앞에서 그런 노래를 튼다고 타박을 하셨지만, 아버지 차에는 즐겨 들으시던 뽕짝 시디가 몇 장 있었다. 나는 사실 그런 노래를 좋아했다. 그중 가장 좋아하셨던 노래가 <사는 동안>이라는 노래다. 그 가사가 이렇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 몫만큼 살았습니다.
바람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은 채로
이별 없고 눈물 없는, 그런 세상없겠지마는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뿌린 만큼 살으렵니다.
가진 만큼 아는 만큼, 배운 대로 들은 대로
가난 없고 그늘 없는 그런 세상없겠지마는
그래도 사랑하고, 웃으며 살고 싶은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 마오.


여기서 제일 좋아하셨던(혹은 내가 가장 좋아한) 가사가 마지막 절이다. ‘고지식한 내 인생에 상도벌도 주지 마오’ 이게 말하자면 그분의 인생철학이고 생사관이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 후서 5:8~10)


인간이 죽음을 향해 줄달음치는 것을 사도 바울은 그것을 지향하는 거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왜 그렇게 질주하는가? 하루빨리 심판대 앞에 나아가 선악간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고자 함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금 이 상태가 불안정하니 속히 이 불안상태를 끝내고 온전한 평안의 상태가 되기를 원한다, 그것이 영혼의(인생의 본질적) 소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심판받는 것의 연속인 인생살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게 된다. 그게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상태다. ‘상도벌도 주지 말라’ 역시 심판과 판단을 벗어난 자유 상태의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됐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율법주의가 아니라 복음주의다 이 말이다. 그분은 얼핏 굉장한 율법주의에 권위주의자로 비칠 수 있는 분이었지만 실상은 따스한 인정주의에 자유로운 낭만주의자였던 것이다.


 

 이제 다 지나갔으니 무서워하지 말아라


격리병동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온 이후 가장 괴로웠던 것이 육체의 슬픔이다. 의식하셨든 돌아가셨든 그분이 경험하셨을 육신의 마지막 과정. 그것을 통해 그의 육체는 아주 비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 공허감. 그것은 흡사 사라진 것에 대한 보상으로 새롭게 생겨나 내 몸에 달라붙은 낯설고 이상하고 무섭고 무기력하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비현실이었다. 나는 그 육체의 슬픔과 공허를 체감할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랐다. 그가 돌아가셨음을 다시 확인할 때마다 새롭게 그 비현실감 때문에 절망했다. 부재한 육체의 슬픔은 많은 곳에서 확인 되곤 했다. 비슷한 연배의 어른들을 볼 때, 비슷한 음성을 듣게 될 때, 내 몸의 팔 다리를 감각할 때,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그의 육체에 대한 상실의 슬픔이 휘몰아쳐왔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집에 돌아와서도 자주 그런 낯설고 비현실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죽음의 예감 같았다. 가만 누워있으면 더 절망스러워 차를 끌고 집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혼자서는 충동적으로 다리 아래로 뛰어들 것 같아, 아이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어느 날. 우리는 안성 근처까지 갔다. 거기 함께 밥 먹으러 다녔던 낯익은 지명들이 나왔다. 그중 ‘안중터널’이라는 터널을 지나가게 됐을 때, 그 비현실이 마침내 현실로 느껴지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안중의 그 식당들.(그분은 우리에게 밥 사주시는 걸 무슨 인생의 낙처럼 즐기셨었다!) 이제 다시는 그분과 함께 식사하러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우리가 당한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비참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을 꿨는데, 바로 그 안중터널을 막 들어가려던 순간이 꿈에서 재현됐다. 슬프고 비참해 울부짖었는데 한쪽 하늘에서 초월적인 모습으로 장인께서 생전에 가장 즐거우실 때 짓던 얼굴로 환하게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제 다 지나갔으니 무서워하지도 말아라. 그 터널을 통과해 지나가라.’ 입고 계신 잠바는 나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이었다. 고동색 초겨울 잠바. 무슨 따스한 놀이 공원 같은 꽃이 핀 동산(거기는 추위 따위가 없으리라!)에서 내게 손짓을 하셨다. 꿈에서 깨고 난 후, 그때부터는 최후의 아버지 모습을 생각해도 전혀 무서운 생각이 나지 않고 더 이상 비참한 생각도 들지 않게 됐다. 나는 이런 게 칼 융이 말한 신적이고 예시적인 꿈이라는 걸 알겠다. 그의 따스함, 인간애와 사랑, 자애로움은 돌아가셨다고 사라진 게 아니다. 그에 대한 기억이 내게 살아있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있어 산 우리에게 삶에 대한 사랑과 격려로 영향을 끼치신다.


비록 그분은 혹독한 시련 가운데 외로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나에겐 여전히 자애롭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살아계신 것이다. 오히려 신적인 의미로 우리의 사랑과 기억 속에 함께 하시는 것이다. 육신은 비록 산화되어 유골이 땅에 묻히셨지만, 존재의 신비,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여전히 살아있음을 나는 믿게 된다. 그 살아있음의 약속은 그 어떤 종교적 공로를 통해 획득되는 게 아니라 했다. 본래 우리 영혼의 소망에 따라 값없이 주어지는 은총이라 했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고, 죽음이 없는 믿음 안에, 심판의 두려움이 없는, 상도 벌도 주지 않는, 부활의 세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기치 못한 고통의 시련을 통해 거기에 가까이 가 봄으로써 거울 너머의 그 세계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되었다. 짐작할 수 있고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그리고 모든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살아있는 우리를 새롭게 살게 해준다.


언젠가 우리 모두 거기서 만날 때. 이 모든 지상의 의혹과 의문들이 풀릴 것이다. 이 공허와 값없음과 비현실이 그만큼 의미롭고 값지고 뚜렷한 것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 하여 나는 아버지께서 그러셨듯이 내 삶에 계속 충실하고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해야겠다. 이 모든 지상의 슬프고 아픈 이별에 대한 보상으로서 다시 만나 이어갈 기쁨의 소망을 포기하지 않으련다. 죽음을 모른 채 질주하는 이 세상은 그런 것에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것을 품고 살아가야겠다. 바라건대 부디 나는 아버지께서 꿈꾸었으나 못다 가셨으리라 생각되는 길을 이어가고 싶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이 자명하다. 다시 한 번. 지난 2015년 6월 1일 메르스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돌아가신 나의 장인 고(故) 조경현(1944~2015)님을 애도하고 다시 만날 세상을 미리 기념한다. 죽음아, 우리게서 떠나거라. 당나귀야, 이를 악물고 지나가자. 오르지 못할 산이 없고 지나지 못할 강이 없단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


세월호 이후

- 세월호 고의침몰의혹사건 2주기를 맞아 -


세월호를 구하다


세월호(고의침몰의혹사건)는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다. 세계가 우리의 충격과 참담에 동참했다. 그러나 여기엔 우리 국민만이 느끼고 있는 어떤 곤혹스러운 진실이 들어있는 것 같다. 그것을 부정하는 자들이나 긍정하는 자들이나 분단된 대한민국 남쪽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지하고 있는 어떤 진실. 실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히브리서 11:3)다. 보이는 것 뒤에는 보이지 않으나 실재하고, 존재할 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실체(實體)가 있다. 그 실체엔 우리 국민의 개성적 특질이라 할 수 있는 고질적 악과 잔인함, 비굴함과 비겁함, 무기력과 무감각, 저속함 같은 데서 발달한 명민함 같은 특성들이 들어있다.


도스또옙스끼는 세계사에 앞장섰던 민족들에게는 자신들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민족적 우월감과 높은 자의식으로 연합된 자존감이 있다고 했다. 이 자의식에서 타민족들에 비해 진일보한 국민성과 건강한 태도가 나타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 세계의 한부분에 참여하고 있다는 능동적 태도 내지는 사명감을 가지고 산다. 반면 많은 경우의 사람들은 오로지 탐욕에 의해서만 살아간다. 이것은 가시적이고 사회적인 지위의 문제일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야말로 신앙 곧 개인의 의식의(자각)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자각된 신앙과 깜깜한 우상숭배는 어느 시대나 대립돼 왔다.


의식의 문제란 여하한 자각(自覺)되고 깨어나는 것에 관련된다. 참된 신앙인은 늘 자각되고 깨어있어야 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부부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친구들 친척들 세상살이, 의회 재판소 경찰 주민자치센터 병원 교회 어디서든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 속에, 자각되고 깨어날 때만 우리는 구조화된 속물성과 세속성을 벗은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 순간 영적(본질적)인 의미의 영역(예술적 철학적 상상력)이 열린다. 그렇지 못하면 개개인의 직관과 견해를 발전시키지 못한 채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상태에 머물러 속물로 퇴행되어갈 뿐이다. 도스또옙스끼가 말한 선진적인 민족들의 특질이란 비록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이러한 자각의 영적인 경합이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건강성을 의미한다. 거기선 속물로 퇴행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처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분위기가 벌써 그런 무의미한 것들이 삶의 표면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제지할 정도인 것이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언 29:18).


세계사에 앞선 민족들만 자의식이 있는 건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스스로 자기를 발전시켜 나가는 건강성이 결여됐을 때, 예를 들면 현재 남북한 사회처럼 꼭 막힌 권력의 윤리가 강제 지배를 하게 될 때, 이상하게도 그런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오히려 방자해진다. 하고 싶은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고 하고픈 말들을 가리지 않고 탐욕이 노골화된다.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자체 속성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게 타락의 양상이다.


우리는 특히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뻔뻔스러움과 후안무치한 잔인성을 보았다. 그것은 가령 ‘세계인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하는 식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세계야 어떻든, 우리는 이게 가능하고 당연하다고 여긴다. 여기는 유럽이 아니고 미국도 아니다.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이게 맞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그런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적대와 훼방, 그 까닭 없고 이유 없는 약자에 대한 천대와 악의를 우리는 볼 만큼 보았다. 그래서 심지어 ‘세월호의 희생 학생들이 안산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아니라 강남 부유층의 자녀들이 다니는 어떤 고등학교였다면, 그 희생자들이 부유층의 자녀들이었다면 어땠을까’하는 가정을 해보기까지 한다. 우리들의 수준과 비굴함을 드러내기에 이보다 적당한 가정은 없을 것이다. 


세월호가 후진적인 박정권과 남한사회에서 일어난 한 비극적 사건을 넘어 인류적인 의미를 주는 사건으로 기억되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어떤 타락과 싸우고 그것들을 넘어서야할지 생각케 해준다. 그 의미란 역사 속에서 박근혜 정권이나 더 나가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경계보다 더 오래고 확고하게 세계인에게 남을 사건이라는 영속적 의미이다. 세월호에 종북 딱지까지 붙이는 저들의 물불 안 가린 만행이야말로 이 싸움의 숨은 의미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어리석은 저항은 결국 소용없을 것이다. 그들은 남한에, 박근혜 정권 자신과 같은 노후하고 취약한 기득권이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 일어난, 비극적이고 유감스러운 수많은 사건의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그들이 자주 결론 내리듯 선주와 선원들과 해경의 무능으로 빚어진 해상교통사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 사건을 이름 지으려 한다. 우리는 그러한 비(非)영성, 반(反)성찰의 악의와 그것을 용인하는 타락과 싸워야 한다. 여전히 우리는 세월호를 구해야 한다.





의미를 묻는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1903~1969)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쓰는 게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이 말은 시를 쓰지 말라거나 아직도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을 경멸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사람들은 시를 쓸 뿐만이 아니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사업을 하고 심지어 멀쩡한 일상생활을 영위해 왔다. 아우슈비츠의 남은 의미란 박물관의 역사, 유대인, 그것도 희생된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의 오랜 후유증인지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그런 망각과 무감각이야 말로 인간의 진정한 화해와 희망인지도 모른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영적이고 의미가 깊은 것 같은,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를 실제로 들추어 본 사람이라면, 정작 성서가 그런 뜬구름 허무주의를 조장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분명하다. 만일 그런 식으로 신의 정의를 흐리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그 저의가 반성서적이고 반기독교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세월호 같은 충격적 경험을 겪고도 겪지 않은 것처럼 하자는 태도와 같다. 오히려 신께서 주시는 성찰의 기회를 무위로 돌려버리려는 짓이다. 오늘날 우리는 쌍방 간의 화해니 평화니 주장하면서 진실과 정의 자체를 실종시켜 버리려는 교묘한 시도들을 빈번히 본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화해나 평화 비폭력 같은 개념들을 절대시(우상시) 하는 율법적 태도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과연 절대적인 것일까?


우리는 이런 가정을 해볼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어떤 행동을 통해 가공할 범죄를 막을 수 있다면. 만일 희생자(사망자)나 그 생존 유가족들이 모종의 같은 보상을 합법적으로 상대방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우리는 왜 이런 걸 비합법적이라고 여기고 있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그걸 나쁘다고 여길까? 안 된다고 여길까? 비합법이라 여길까? 물론 나중에 법적인 문제로 치환됐지만, 󰡔성서󰡕는 이에 관해 분명히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기본 법칙을 정했다. 모든 법률이란 이 간단한 보상률을 근거로 한다. 만일 현대의 법이 이 근본적인 보상률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무슨 짓을 해도 가능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어도 무의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걸 망각하고 그 천부적 권리와 의무를 상실하고도 그 상실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한다.


우리가 확인코자 하는 것은 물리적 타격을 주는 보복의 정당성 같은 게 아니다. 그러나 가장 적절한 형태의 보복(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가령 나치를 단죄하는 독일의 태도를 보라. 그러나 일본이나 국내 친일파의 후예들이 하고 있는 대응을 보면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반대하며 극구 막으려 하는지를 알게 된다. 간단한 문제다. 무엇이 그리 어렵고 복잡하겠는가. 따라서 독일과 같은 적절한 보복을 할 수 없을 때에는 그에 맞는 영의 싸움이 필연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싸움이 그러한 보복을 포기한 것일 수는 없다는 점을 언제나 분명히 해야 한다.


세월호의 의미를 묻는 사람들의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답답함은 그런 것이다. 너무나도 간단한 영원한 철칙을 상실하고 망각한(망각하게 하는) 하나마나한 엉뚱하고 무기력한 조사(弔詞). 우리는 희생자들의 복수를 도무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다. 복수 같은 말은 아예 해당이 안 되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적절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철저하고 넘치는 보복을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지, 어떤 형태일지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의 의미이고 세월호를 구하는 길이다. 그것이야말로 성서의 교훈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가 남긴 이러한 보복적 의미를 묻고 있다. 죽은 아벨들이 산 가인들들에게 정의를 묻고 있다.(혹은 양심을) 때문에 아우슈비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금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반드시 인간이 무엇인가에 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철저히.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아우슈비츠와 나치의 만행으로부터, 세월호의 진실로부터, 아주 낱낱이 세부적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철저한 진실의 조사와 진상 규명 가담자의 색출, 지휘명령 실행의 과정, 부역자들에 대한 법적 도덕적 윤리적 단죄와 처벌이 확실히 이루어져야한다. 그것을 우리의 담당된 역사의 의무로 보아야 한다.


의미란 다른 어떤 추상적인 형태의 것이 아니다. 연례행사와 기념식 추모의전 같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의미는 반드시 적절한 보복을 통해서만 찾아진다. 이게 영적인 원리다. 물론 이런 생각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가령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전혀 달라질 게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런 일을 겪고도 달라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차피 이 세상은 달라질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그러나 어떤 인식의 자각을 통해 자신의 세상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람의 인식이야말로 진정 종교적인 것이다. 새로운 삶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의미를 묻는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요청한다.


시편 9편

-지휘자를 위하여 <아들의 죽음을 위하여>에 맞춘 다윗의 시-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감사는 유효한가


구약성경의 감사(感謝)는 히브리어 ‘야다(yadah)’로 ‘고백하다’는 의미이다. 고백이란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충동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다. 가령 누군가에게 ‘마땅히 감사해야한다’거나 ‘감사할 줄도 모른다’는 말을 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감사의 고백이 나오질 않는 것을. 고백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다.


세월호 이후 기독교인들의 기독교적·성서적 싸움에 대해서는 이미 정리해 드렸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세월호 이후 우리 한국 기독교는 이 부분을 애매하게 건너뛰어 버린 느낌이다. 너무나 지당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당혹스러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자면 ‘세월호 이후에도 하나님께 감사가 가능하냐?’하는 것이다. 이 말은 각종 다른 방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 ‘세월호 이후에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가능한가?’ ‘세월호 이후에도 구원의 믿음이 가능한가?’


물론 김삼환 목사같이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위해 세월호 학생들을 통해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는 식으로 해석한다면, 이재철 목사같이 엉뚱하게도 세월호 유가족이 우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견해라면, 이런 고통과 고뇌어린 질문은 나올 이유가 없다. 그들은 아마 그들 자신의 논리대로라면 그들 자신이 세월호처럼 희생돼 죽는 순간이 온다할지라도 그것이 대한민국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믿도록 놔두자. 우리는 안다. 그들이 그런 담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그 담대함이란 사실 그들이 희생자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뿐이 아니겠는가. 

  

시편 9편을 통해 우리는 아직도 유효한 감사의 이유와 근거를 본다. 이 시에는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아들의 죽음(알 무트라벤)>이란 곡조에 맞춰 부른 다윗의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아들의 죽음>이란 노래가 어떤 노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제목만은 남아 이 시가 그 노래와 동일한 곡조로 불렸음을 말해준다. ‘아들의 죽음’이다. 아들의 죽음을 당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다. 그리고 그 첫 줄이 놀랍게도 ‘감사’로 시작된다.





이 시편은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다면 그것이 어떤 내용을 가졌을지, 어떻게 가능한지 가늠하게 해준다. 그것은 저 목적 없는 평화주의, 목적 없는 화해주의, 목적 없는 소통, 목적 없는 착한 척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저 침묵하고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라는 기독교를 빙자한 모독의 말, 상처를 후비는 말들을 교정해주고 치유해준다. 그런 것이야말로 사람들을 계속 수탈하고 죽이는 여러 가지 방식 중의 하나이자 기계 중 하나일 뿐이다. 그 방식과 기계 하에서 사람은 자발적 고백이 아닌 거짓된 명분과 인사치레의 감사 외엔 할 수가 없다. 거기서 하나님은 약한자 희생자를 위해 보복해주시는 정의의 하나님, 공의로운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가해자든 피해자든 결국엔 현실적 권력을 가진 자들의 편을 들어주고야마는 폭력적인 신이 되고 만다.


제가 온 마음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당신의 모든 놀라운 일들을 전할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의 이름을 찬송할 것입니다.

제 원수들이 뒤로 물러날 때

그들이 당신 앞에서 넘어져서 망하리니

이는 당신께서 제 공의와 제 재판을 행하시니

보좌에 앉으셔서 의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나라들을 꾸짖으시고 악인들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토록 지우셨습니다.

그 원수는 영원토록 완전히 황무하게 되었고

성들은 당신께서 뿌리 뽑으셨으니

그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셔서

심판을 위하여 그의 보좌를 준비하시고

의로 세상을 심판 하시며

공평하게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억눌린 자를 위한 피난처시니

환난 때의 피난처이십니다.

당신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 당신을 의지하리니

이는 당신께서는 여호와 당신을 구하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시온에 사시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가 행하신 일들을 백성 가운데 전하라.

참으로 피흘림을 갚으시는 분이 그들을 기억하시니

온유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신다.

여호와시여 제게 은혜를 베푸십시오.

저를 미워하는 자로부터 당하는 제 괴로움을 보십시오.

죽음의 문들로부터 저를 높이 드시는 분이시여.

그리하여 제가 당신의 모든 찬양을 전하게 하시고

딸 시온의 성문들 안에서 당신의 구원을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나라들은 그들 자신이 만든 구덩이에 빠지고

그들 자신이 숨긴 그물에 그들 자신의 발이 걸린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행하신 심판으로 알려지시나

악인은 자신의 손으로 행한 일로 올무에 걸린다.

악인들이 쉬올로 돌아가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나라들이 쉬올로 돌아가니

참으로 궁핍한 자가 영영 잊혀지지 않고

온유한 자의 희망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여호와여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방나라들이 당신 앞에서 심판 받게 하십시오.

여호와시여. 그들에게 두려움을 놓으셔서

이방나라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인간임을 알게 하십시오.


성서에 입각하지 않은 기독교는 오늘날 너무나 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 말하자면 이 세계의 현존하는 악과 그 악에 연대한 자들이 끝없이 성서를 자기들 입장대로 바꾸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표현대로 가짜가 진짜 그리스도인척을 하며 환영받는 것이다. 성서를 갖다 코앞에 들이밀어도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호 같은 비극적인 사건은 우리들에게 진정 성서와 신앙을 제고해 보게 한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시대와 세태에도 유효한 것일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계시며 구원하시는 생명이 되는가?


이 시는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죄악이 창궐한 절망스런 세상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의롭게 존재할 수 있음을 설명해 준다. 곧 세월호는 아우슈비츠가 그렇듯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적어도 두 가지 대립된 신앙의 모습을 분리시켜 주었다. 그 하나는 의미를 구원하려 싸우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하나님 나라에 대항해 싸우는 다른 나라(이방) 곧 우상과 미신이다.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절망에 대해 낱낱이 그분께 호소하고 탄식하며 우리와 함께 절망하고 분노하며 싸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세월호 이후 많은 유가족들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실망해 떠났다고 들었다.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라 권하고 싶다. 오히려 교회의 예배당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기대를 가지라 권하고 싶다. 그것이 어디일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박완서 작가의 단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본래 시인 김현승의 「눈물」의 한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자전적 소설이다.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주인공 여인의 아들은 80년대 대학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그녀의 아들은 적극적인 운동권도 아니었다.) 아들이 죽고 어머니는 민가협이라는 유가족 협회에 가입해 활동하며 열사의 어머니요 투사가 된다. 그녀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그때까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이 하나도 안 중요해지고, 하나도 안 중요하게 여겨 온 것이 중요해진 것’이라 말한다. 곧 전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중요했는데 이젠 내가 보고 느끼는 내가 더 중요하며, 전엔 장만하는 게 중요했는데 이젠 버리는 게 더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고백을 성서적 언어로 번역하자면 종말론적 삶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이런 표현들.


“전에는 형체가 있어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그 후엔 아니었어요. 눈에 안 보이는 걸 온종일 쫓은 적도 있어요. 아녜요. 육체와 영혼의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건 나한테는 너무 거창해요. 장미꽃과 향기의 문제예요. 장미꽃은 저기 있는데 향기는 온 방 안에 있다. 향기는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는 걸까? 고작 그 정도예요.”


‘육체와 영혼의 문제가 아니라 장미꽃과 향기의 문제’라는 표현은 그녀의 인식의 변화가 지적인 논쟁이 아니라 살아있는 영(성) 자체에 닿았음을 말해준다. 아들을 잃기 전까지 그녀는 이런 삶의 본질적인 상태에 도달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세계에는 이런 것과 전무하게 살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음을 뜻한다. 그러한 무감각과 무신경의 지배. 거기서 경찰은 경찰, 군인은 군인, 재벌은 재벌, 권력은 권력 이외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계기를 통해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무신경 무자각을 성찰케 하는 변화에 직면하게 되고, 실제로 그러한 인식 상태에 도달한다. 그 목표는 무엇일까? 혹은 무엇이어야 할까?


소설은 아들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다른 동창을 방문했던 경험으로 이어진다. 동창은 식물인간이 되어 모든 일을 자신이 대신 해 주어야 하는 아들을 향해 ‘이 웬수, 빨리 많이 처먹고 죽어라, 네가 나 먼저 죽어야지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하냐’ 등등의 욕설과 한탄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그 친구를 보며 혀를 찬다. 지옥이 따로 없겠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들을 능숙하게 공기돌 굴리듯 씻기고 먹이는 친구를 보면서 그녀의 욕설 속에 들어있는 아들에 대한 무한한 자애의 모성이 지니고 있는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비록 식물인간일망정 눈앞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부러워 그녀는 그동안 참아온 울음에 북받친다. 그리고 그 울음을 통해 그동안 기를 쓰고 꾸며온 투사의 어머니인 자신으로부터 놓여난 해방감을 맛본다.


그녀는 그 후로는 울고 싶을 때 실컷 우는 낙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소설의 모든 내용은 전화상의 대화다.) 마지막 장면은 전화기 너머 이 모든 수다를 들어주던 주인공 여인의 손위 형님이 같이 울고 있다는 것으로 끝난다. 아들을 잃은 손아랫동서를 어찌 대해 줄지 몰라, 자신의 아들은 성공하고 멀쩡히 잘 살고 있는 현실에서, 예의상이라도 늘 절벽 같은 침묵과 딱딱하게 꾸민 목소리로 일관해야 했던 형님이 마침내 함께 운다. 울음 속에서 그녀들은 하나가 된다. 인간의 비애에 무슨 회피할 명분이 있는가? 순수한 슬픔의 눈물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공감과 치유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 인간의 가장 나중 지닌 것은 무엇인가? 눈물이다. 눈물을 넘는 새 나라의 소망은 요한계시록의 전망이 아닌가.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이러한 눈물의 서정(抒情)을 얼마나 빨리 메마르게 하고 상실하도록 할 수 있는지 온갖 비열한 경험을 다했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관료들과 의원들과 대통령 언론 매체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인간다움의 정서를 빨리 상실하기 위해 상실케 하기 위해 얼마나 기를 쓰는지 환멸스럽고 진저리치도록 깨닫게 해주었다. 그 결과 우리는 정말로 그날 304명의 아이들을 눈앞에서 죽도록 손 하나 써보지 못한 기막힌 현실의 현실성으로부터 오는 눈물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성공했다. 정말 철저히 보이는 자취에서 눈물들은 보이지 않도록 감추어졌다. 무엇보다 그 악함과 적의의 사악함을 기억해야한다. 마치 자기들의 명운을 걸고 모든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총동원해 세월호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이 간단한 사회적이고 공적인 복수(의미)를 가로막으려 결심한 듯 싶다. 효과를 발휘해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는 귀찮고 곤란한 사안으로 변질돼 있기도 하다.


이러한 온전한 서정의 파괴, 감정의 비정상적 전도(轉倒)는 같은 종류의 사건들 속에 동일하게 반복된다. 세월호의 싸움은 이러한 인간다움의 최종 지닌 눈물의 귀중함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싸움이기도 하다. 그 눈물이 우리의 구원이므로 모든 노력을 총동원해 우리도 그 눈물이 함유한 진정한 슬픔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벌써, 다시 2주년이다. 20년이 지난들 이 처절한 슬픔이 상쇄되겠는가? 다행히 선거결과에 기대를 걸게 한다. 주께서 당신의 공의를 부지런히 행하시기를 바란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3)


이재철 목사, 죄인 중에 괴수인가 율법의 선생인가

-자기 도덕의 우상과 기독교 신앙의 착종-

(디모데전서 1:1-16)


‘성경’ 본문을 들여다보면

 

<인간에 대한 환대>라는 주제로 연속해 말씀을 나누고 있다. 우리는 ‘성경’ 말씀(메시지)을 ‘영혼의 양식’이라 부른다. 양식이란 먹어서 살고 힘이 생기는 음식이자 치유하는 약(藥)이다. 목사로서 내 설교가 과연 주리고 목마르고 아픈 세상의 음식이자 음료이자 양약이 되는 건지 늘 반성을 하게 된다. 제 처음 계획은 따뜻하고 온정 넘치는 기독교적 화해와 용서의 소박한 식탁을 준비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각박한 생활에 시달린 성도들에게 하루나마 관대한 위로의 말씀으로 쉼과 힘과 용기를 격려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런 게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이상한 현실이 있다.


설교자마다 준비과정에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대개 하나의 힌트가 되는 말씀이나 의제를 묵상하며 설교로 숙성시킨다. 그런데 매번 그 영감을 준 ‘성경’ 본문을 들여다보면(심각하게 다른 것은 아닐지라도) 내 의도와 성령의 의지가 다름을 항상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인생행로와 같다. 하나님의 뜻은 내 뜻과 다르다. ‘성경’이 나를 지지해주지 않는 건지, 내가 뭔가 ‘성경’을 오해 내지 착각하고 있는 건지. 어떨 땐 정반대의 자기를 부인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성경’을 우리의 필요와 주제와 묵상에 맞출 것인가, 우리를 ‘성경’에 맞출 것인가? 내가 애써 준비한 주제가 아까워 그에 적당한 다른 본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도 결국 마찬가지가 될 공산이 크다. 이상하다. 왜 꼭 그렇게 될까? 


지금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환대> 시리즈는 처음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심리적 온정적 감동보다는 인간 환대라는 복음 원리의 확인, 인간 현실의 직시 쪽으로 확실히 기울어졌다. 내 성향 탓인지 ‘성경’ 본문에 대해 정직해야하는 불가피함일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매번 후자를 의지해 ‘성경’이 이끄는 곳으로 가보기로 한다. 거기 진실하게 우리들 자신을 깨뜨리고 다시 세우는 성령의 의지와 역사가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족들 우상시하면 안 돼?


오늘 본문에서 나에게 처음 영감을 준 부분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다’라는 바울의 고백이었다. ‘죄인의 두목’, ‘우두머리’, ‘가장 큰 죄인’이라 번역 돼 있다. 모두 죄인과는 어울리지 않게 영광스런 호칭이다. 왜 이 본문을 생각했는가? 어떤 이퇴계(李滉, 1502~1571) 선생만큼이나 저명하고 고매하신 기독교 선생의 훈계 때문이었다. 있는 그대로 정직히 소개하자면 이재철 목사님(백주년기념교회, 이하 존칭 생략)이 목회자 멘토링 집회 질의문답시간에 하신 대답 때문이었다. 강연의 주제는 “교회란 무엇이고 목회란 무엇인가”였다.

(전문은 여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2331)


한 참석자가 질문을 했다. “오늘 아침 세월호 유가족과 대화 시간이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사건 속에서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유가족을 보면서 목사님은 이들의 투쟁과 행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현재 정권이나 사회 풍토를 보시면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지 조언의 말씀을 구한다.” 세월호 사건의 미해결과 유가족의 거리의 항의가 계속되고 있는 불행한 현실 가운데 기독교인(특히 목회자와 교회)의 바람직한 태도와 조언을 구하는 질문이었다. 질문 자체 속에 대답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였다. 





이재철 목사는 “세월호는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했고 지금도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하고 싶다. 슬픔을 당할 때 그 슬픔에 동참하는 것,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단체든 우상이 되는 것을 금해야 한다. 세월호 유족들이 슬픔을 당했기 때문에 그분들의 모든 것이 ‘언터처블(untouchable, 건드릴 수 없는)’,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 우상이 된다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모든 분들이 다 슬픔을 이야기하고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달리 말씀드릴 필요가 없고,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을) 조명을 하고자 할 때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충분히 해야 하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어떤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을 언터처블한 우상으로 만들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거기에서 깨어 있는다면 우리의 동참,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진선미를 전해 주는 좋은 통로가 되리라 생각한다.”


우선 내 눈에 뜨인 대목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는 믿음”이라는 인용문이었다. 아마도 로마서 12장 15절을 인용한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웬만한 목사나 기독교인이라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기억할 이 구절의 인용이 틀렸다. 정확한 문장은 이것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왜 그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반대적 평행구를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라’는 동의적 병행구로 바꾸어 말했을까? 더구나 세월호 사건이 기쁜 일이거나 즐거운 일과는 전혀 다른 사건임에도 말이다. 중요치 않은 것 같지만 전체 발언 내용을 생각해볼 때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칼 융이 밝힌 무의식적 역동의 단어연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물론 중요한 건 그런 따위가 아니다. 


그는 ‘아픔에는 동감한다. 아픔에 관해서라면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좀 달리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세월호 유가족 단체에 대한 ‘언터처블’(건드릴 수 없는)한 우상시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은 언터처블한 우상이 되었다는(혹은 그렇게 될까 우려된다는?) 판단이 그의 인식이다. 그 결과 기독교인으로서 아픔과 진상규명 노력에 지지를 보내고 동참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비교적 선명했던 질문자의 요청은 상당히 복잡해져 버렸다. 말하자면 동참을 유보하고 세월호가 우리 사회 안에서 우상시 되고 있느냐 아니냐의 동떨어진 논쟁과 성찰로 초점이 바뀐 것이다.


이재철 목사는 세월호가 우상시 되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 ‘거기(우상시)에서 깨어 있는다면 우리의 동참,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진선미를 전해 주는 좋은 통로가 되리라 생각한다’는 말 역시 어떻게 하라는 건지 여전히 애매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애매한 채 우상시되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만 남게 되었다. 아마(종교인 중에) 세월호에 대해 ‘우상시’라는 종교 교의적인 용어(교의는 힘이 세다!)로 규정한 사람도 이재철 목사가 처음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의 파장은 컸다.


찬반 혹은 분노와 배신감과 성토를 떠나 내가 느낀 건 착종(錯綜, 이것저것이 뒤섞여 엉클어짐. 이것저것을 섞어 모음)의 곤혹스러움이었다. 맞는 말 같은 데 아닌 것, 아닌 것 같은 데 맞는 것. 그 사이 혼합과 혼동. 그러면서 바로 이 구절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떠올랐다. 물론 질의문답의 현장성을 고려해야 하고, 기사가 그의 말의 진위나 뉘앙스를 어느 정도로 정확히 전달했느냐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엔 오해의 소지가 그다지 크진 않다. 내가 이 성경 구문을 떠올리도록 힌트를 준 부분은 그의 거듭된 이런 전제의 언급이다. “세월호는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했고 지금도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하고 싶다.”, “모든 분들이 다 슬픔을 이야기하고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달리 말씀드릴 필요가 없고…” 나는 바로 이 유별난 개인적 태도와 관점 및 고백이 기독교 신앙과 자기도덕의 착종의 출발점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떠올리게 했다.





기독교 신앙의 착종


기독교 신앙과 자기도덕이 착종된 혼합과 혼동의 생산자이자 첫 수혜자는 누구보다 이재철 목사 자신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 모든 사람이 동참하고 있는 보편성, 일반성에는 관심이 없다. 거기 동참하고 싶지 않다. 그는 남들과는 다른 말을 하고 싶다. 같은 말을 해야한다면 달리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왜 그는 자기는 남들과 달리 말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자신의 이 같은 유난한 태도를 기독교 진리의 입장이라는 물러설 수 없는 철칙의 강고함으로 관철한다. 그러나 세월호 가족 단체가 우상시 되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태도가 어떻게 성경적인지 그 근거를 대진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믿고 주장함으로 그것은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것, 곧 진리다.

한 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 건 있다. 세상의 보편적 민심이 세월호에 대해 연민과 슬픔과 분노와 진상규명에 일반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우상시 되고 있다는 진단의 근거다. 그래서 그것은 기독교 진리의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애굽기 20:4-5)는 십계명(제2계명)에 위배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성경’의 실제 텍스트와 그것을 사용하는 실례의 갭을 본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는 그의 강고한 진리관이 과연 기독교 신앙의 진리관인가 하는 문제다. 정녕 그렇다면 그의 그 다음 발언의 내용은 비판자들의 비난과 상관없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의 발언은 한낱 ‘성경’의 진리를 빙자한 자신의 도덕률이 된다. 그리고 그가 선생 노릇을 많이 하는 만큼 그 폐해는 크다. 그것은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환대’가 아니라 까닭도 이유도 없이 ‘인간에 대한 환대’에 대한 한 비틀린 개인의 꼬인 ‘심술’이거나 투기하는 ‘적대’가 되고 만다. 문제는 개인의 심술과 적대로 그치는 게 아니다.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와 동일한 심술과 적대의 우(愚)를 범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그걸 우선 ‘죄인 중의 괴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해 보려고 했다. 쉽게 말해 바울의 고백은 적절히 자기를 치장하는 겸양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의 복음이 자신의 죄인 됨, 그것도 괴수와 같은 죄인으로서의 실존적 자백으로부터 나온다는 신학적 고백이다. 그것은 다시 그가 타인들을 대하고 관계를 맺고 복음을 전하는 모든 방식, 곧 인간에 대한 전체적 태도에 관계된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신학적 태도로부터 야기된 불가피한 현실상황(반대자들에 의한 오해, 고립, 비방, 핍박 등)을 자기 제자인 디모데에게 밝히고 있다. 복음(기쁜 소식)을 전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곤란한 지경에 놓인 자신에 대한 제자를 향한 스승의 과장된(!) 역설적 자랑이기도 하다. 동시에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몰이해에 대한 불가피한 해명과 이해이기도 하다.


나는 ‘세월호(유족)를 우상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재철 목사의 진리관은 사도 바울의 ‘죄인 중의 괴수’의 고백과는 그 출발 혹은 토대가(표면적으로는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짚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엔 선행되는 조건이 또 따른다. 즉 그의 말처럼 세월호(유가족 단체)는 우상시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혹은 그렇다고 말하고 혹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사안이라 할 수도 있다. 이에 관해 우리는 유사한 사례들을 대조해 봄으로써 쉽게 이 논전을 정리해 볼 수 있다.


가령 위안부는 우상시 되었는가? 용산은 우상시 되었는가? 쌍용은 우상시 되었는가? KTX여승무원들은 우상시 되었는가? 천안함의 희생자들은 우상시 되었는가? 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은 우상시 되었는가? 4.19희생자들은 우상시 되었는가? 6.25 희생자들은 우상시 되었는가? 4.3 희생자들은 우상시 되었는가? 일제 희생자들은 우상시 되었는가?(그 희생자들은 물론 그 유족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재철 목사가 일일이 그렇게 말했다는 건 아니다. 기독교 진리관의 고수라는 입장에서 유일성의 집중력이 분산될 정도라면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도대체 그가 말하고 싶은 우상시를 배제한 기독교적 믿음의 집중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역시 도무지 애매할 뿐이라는 점은 미루어 두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거론된 세월호(유족도 마찬가지)는 희생자들이라는 점이다. 전원 사망의 실책은 물론 사고에 이른 진상규명, 인양, 여러 의혹들에 대한 조사 등등. 도무지 시원하게 해결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그들은 희생자들이고 희생당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새 우상시 되는 경계까지 받고 있다. 그것도 시정의 무식하고 무감각한 무뢰한이 아니라 이 시대의 멘토(지도자, 리더, 우두머리)라 불리는 기독교계의 지성에게 말이다. 그들이 우상(시)이 되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아니 그들이 우상으로 비칠 정도의 비정상적인 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는 세력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그들은 우상 정도가 아니라 그냥 살아있는 신적 권력이라 불러야할 것이다. 그 권력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리워야단처럼 자기 몸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오만함이다. 즉 ‘인간에 대한 환대’의 가장 큰 적은 ‘인간에 대한(특히 약자에 대한) 오만함’이다. 무엇보다 이재철 목사가 바로 이 인간에 대한 오만함, 곧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능가하는 오만함을 우상이라 지목하고자 했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우상이 되어가고 있는 건 세월호가 아니라 그 희생을 여전히 희생시키고 있는 살아있는 권력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재철 목사정도라면 그 정도는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 자리에 그를 ‘죄인 중의 대표 선수(괴수)’로 세운 하나님의 그리고 성경적 성령의 의지이다. 그런데 그는 이상하게도 정반대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나는 그의 진리관이 잘못되었다는 점, 그럼으로써(다른 답변들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지만) 거기서 나온 세월호 우상시, 주장 자체가 비틀리고 착종된 결론이라는 점, 나아가 그것이 성경적 진정성을 가지려면 그 반대가 되었어야 했으리라는 점, 그 심리적·신학적 착종의 동기가 오만함이라는 점 등을 성서를 인용해 간접증명해 보고자 했다. 그런데, 내 기획은 다시 성경 본문을 들여다보면서 달라졌다. 디모데전서가 이재철 목사를 향해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가? 아니다.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이재철 목사와 같은 교계의 대표주자에게 직격하는 말씀이었다! 나는 설교를 처음부터 바꾸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 본보기는 대단히 실용적 공부가 되리란 생각에 본문이 이끄는 대로 가 보기로 했다.





자기도덕의 우상화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기까지는 사도 바울이 늘 즐겨 사용하는 관용적인 인사말이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디모데의 임무(힘써야 할 것)를 환기 시킨다.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어떤 사람들인가?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다른 교훈이란 분별력이 요구됨을 뜻한다. 분별력이 없으면 다른 교훈에 넘어가 그 초점이 다른 것이 돼버린다. 그 매달리는 다른 초점이 무엇인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는 것.’ 꾸며낸 이야기나 끝없는 족보 이야기(관념적인 투쟁)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더러 있으니 그런 일을 금지시키라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어떤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일화, 신비로운 이야기, 기적, 그리고 유대인들의 족보 찾기, 족보 이어붙이기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것들은 사는 실제 이야기가 아니다. 쓸데없는 논쟁이나 일으킬 뿐이고,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에 들어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그의 정신의 집중된 바가 논쟁, 시시비비, 남의 잘못 들쑤시기, 지적하기, 끝없이 그런 관념에 대해 떠들어대기, 아는 체 잘난 척 하기에 있다면, 그를 대면하는 사람들 역시 그 집중된 바가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에 들어가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처럼) 논쟁, 시비, 지적, 떠들기, 아는 체 잘난 척 하기에 있게 된다. 그러나 교훈(복음)의 진정한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맑은 양심과 순수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자는 것’이다.


복음의 목적은 높고 잘난 지식과 강고한 신앙 수호자의 입장을 획득하고 고매한 선생이 되어 타인들의 대표선수가 되는 데 있지 않다. 그런 것은 계속 떠들어대고 아는 체를 하고 시비를 따지며 자기도 살기 어려운 일에 대해 타인을 훈계하는 일이다. 그런 얼치기 도사나 성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이 정말 도사인 줄 성자인줄 믿고, 그들의 가르침이 진짜 가능한 구원의 가능태일줄 믿고, 계속 거기 매달려 그것을 확대 재생산해 나간다. (가령 세월호와 같은 진정한 현실에는 우상이 될까봐 눈을 감고 말이다.) 그러나 복음의 진정한 목적은 그 반대다. 깨끗한 마음, 맑은 양심, 순수한 믿음 그런 것에서 우러나오는 소박한 사랑의 실천에 있다.


여기서 가장 강조된 것이 무엇이겠나? 소박이다. 한 벌거벗은 인간으로서의 소박함,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 겸손함, 거기서 출발하고 끝나는 단순함, 거기서 행동으로 나오는 사랑. 그것은 개인의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과 양심으로부터 나오는 즉각적 선행, 곧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그릇 떠주는 것과 같은 작은 연대와 동참이다. 세월호가 우상시 되었느니, 하나님의 진선미니 하는 전도(轉倒)되고 뭔 소린지 모를 그런 꽈배기 정신이 아니다. 거기선 모든 사안이 분명하고 모든 지향이 실천 가능하고 순진한 기쁨이 있다. 세월호 우상시 발언의 심리적·신학적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이 소박과는 얼마나 다른가. 끝없는 신화와 족보에 착념한다는 말이 무엇일지 그 욕망의 너무 멀고 높고 집요함에 아찔함마저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현실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마치 거기 뭔가 고매하고 깊은 뜻이 있으리라 여긴다. 미상불 높으신 선생님의 그 자신도 연원을 이해 못할 이설(異說)을 통해 자기의 단순한 직관마저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복음의 목적에서 벗어나 길을 잃었다. 쓸데없는 관념토론이나 쓰레기 안 버리기 같이 유치한 캠페인만 일삼고 있다. 그것이 자기모순에서 비롯됐음으로 율법의 교사로 자처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저 주장(선생노릇)만 있는 것이다. 진리에 관해서라면 가장 잘 안다고 상담가를 자처하는 율법의 선생, 랍비들인 그들이 말이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잘 읽어보면 여기서 바울은 율법의 선생들을 비꼰다. 아까 말한 끝없는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며 계속 말과 논쟁만 일삼고 아는 척과 잘난 체를 통해 자신을 전파 확대해 나가는 자들. 그들이 자기를 치장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게 ‘율법’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그런 율법이 필요한 자들이 누구인가? 불법자, 불복종자, 불경건자, 죄인, 거룩하지 않은 자, 아버지 어머니를 죽이는 자, 살인자, 음행자, 남색자, 인신매매범, 거짓말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들이다. 이해가 가는가? 바울의 이 이중적 논법을. 쉽게 말해 율법의 선생들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이런 자들로 만들고 있다. 자기들은 한없이 높아지고 타자들은 한없이 낮아진다. 자기들이 주장하고 떠들어대는 모든 것을 도덕화(moralize)한다. 그 도덕엔 타자에 대한 사랑이 없다. 자기가 강화된 도덕, 자기가 가미된 자랑, 자기를 높이는 자긍, 타인에 대한 경멸, 타인을 향한 질타와 훈계 같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타인이란 항상 약한 자들이다. 우리는 왜 그 대상자가 약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는 지를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이유가 없다. 스스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높은 것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유감이나 반감을 갖지 않는 것이다. 곧 낮은 것에 대한 경멸, 자기에 대한 우상화다. 



     

나는야 죄인 중의 괴수


바울이 비꼬는 율법의 선생들이 사용하는 율법은 성경적 용도가 아니다. 형식만 그렇다. 바울은 진정한 율법이라면 그 용도가 다를 것임을 밝힌다. 문제는 뭔가? 그런 율법을 해당도 안 되는 자들에게 들이댄다는 것이다. 우상시 되는 게 문제라면 세월호 보다는 그들을 여전히 희생시키고 있는 권력자들을 향해야 마땅하다. 그들에게 율법을 들이대야 한다. 그런데 엉뚱한 자들에게 들이댄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이 한 줄이 문제적이다. 그 모든 율법의 선생들과 자신의 차이를 이 한 줄로 요약한다. 그들이 그런 일들로 복음을 혼잡케 할지라도, 이 교훈(복음의 교훈)은 그들이 아닌 나에게 맡기셨다.(내가 맡았다!) 즉 내가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류 행복(너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복된 소식이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한다. 디모데야. <공동번역>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한다.


“건전한 교설이란 복되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복음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나는 이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바울의 자의식. 디모데에게 강조하는 바. 디모데가 분별해야하고 밝혀나가야 할 지향. 우리는 그런 걸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언젠가 완성시킬 유일한 복음의 길(방식)이라는 점이다. 곧 개인의 소박함, 거기서부터 나오는 순수행동, 거기에 입각한 겸손한 태도. 그것은 저 선생노릇 자아실현 자기강화로 어느덧 기독교 도사요 진리의 성자요 시대의 멘토가 돼버린 미숙하고도 위대한 교사(괴수)들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바울이 왜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 부르는 지 이해할만 하다. 그것은 결코 겸양의 표현이 아니다. 과거에 그랬었다는 말도 아니다. 그는 늘 자기를 생각할 때 마다, 자기를 인식할 때마다, 하나님을 묵상 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죄인 됨, 그것도 가장 중한 죄인의 괴수 같은 실존적 죄인 됨을 발견한다. 거기에 자기 사역의 뿌리가 놓여있고, 자기 복음이 근거한다. 동시에 그 죄인의 괴수됨은 자기로 하여금 남들은 감지도 못할 자긍심이 쏟아져 나올 괴수됨이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죄인 중의 나는 대표주자다. 선두주자다. 멘토다. 선생이다. 나를 보라. 바로 이 나를 통해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셨다!’


나는 이재철 목사의 ‘세월호(유족)를 우상시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를 듣고 이 ‘죄인의 괴수’라는 바울의 역동적 자기고백에 대한 대조적 영감이 떠올랐다. 그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대표주자로 통해온 분이다. 동의까진 안 됐지만 그를 기독교계의 이퇴계라 부른 친구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죄인의 수괴’라는 영광스럽고 막중한 제1번 자리에 올라서있다. 목회자들의 멘토로 초빙 받은 이유도 그러한 인정에 의한 것일 테다. 또 듣기로 그는 암투병도 하고 있다. 그러면 뭔가? 그의 고통은 ‘죄인의 수괴’로서 제1의 대표주자로서 만인의 고통을 앓는 것이다. 그의 사다리를 통해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의 본이 되게 하시려는 뜻이라 감히 말하겠다. 그런데 세월호를 우상시해선 안 된다니…. 자기는 올라간 사다리에 죽음과 고통에 몸부림치며 오르려 애쓰는 자들은 올라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걷어치우겠다는 뜻인가? 함께 죽어 함께 사는 죄인의 수괴가 아니라 홀로 높아 성자의 왕이 되시려는 것인가? 이제 우리는 그가 정말 ‘죄인 중의 수괴’ ‘은혜 받은 자의 대표주자’인지, 만인의 존경을 탐하는 두 얼굴의 선생인지 생각해야겠다. 그러나 그런 건 처음부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성경’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한 개인, 한국교회, 그리고 만세의 복음의 근거를 누군가 그리 말한다 대충 그렇겠지 소홀히 생각지 말자.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라 하지만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이런(사방으로 에워싸인) 입장에 서있는가? 과연 모두에게 존경받는 율법의 교사가 아니라 ‘죄인 중에 괴수’로 자기를 자랑할 드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별과 실천 가운데 성경적 제 위치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자기 강화와 자기 확대와 자기자긍의 세태에 어느덧 흡수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오만하고 높은 곳을 지향하기 때문에 낮은 자들을 대해 겸손할 수가 없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마음으로 사도 바울의 흉내를 낸 설교라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2)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한 회고

-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욥기 6:26) -

 

4인방 모델

 

인상 비평적이고 경솔한 말일까 두렵고 삼가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복음주의권)의 목회 현실은 4인방(옥한흠, 홍정길, 이동원, 하용조) 모델에 따른 것이라 말하고 싶다.

 

4인방 모델이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주 이 시대의 멘토 혹은 영적 교사(스승), 차세대 지도자로 불린다. ―그런 헌사들을 그들이 선호하는지 거부하는 진 분명치 않다― 인정한다. 그들은 현실 목회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루었다. 여기저기 국내외의 각종 집회의 연사로 초빙되어 강연을 하고 설교를 했고 또 그것을 책으로 출판한다. ―그들은 많게는 벌써 수십의 저서를 저술했다!― 이 모든 정력적 활동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

 

프로선수가 트레이드를 위한 스펙을 쌓아가듯, 자신들의 명성과 영향력을 교계에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내용과 수준을 떠나 이러한 스펙들 ―강연과 설교와 집회와 저술(著述)― 의 최종적인 수용자는 결국 신학생들이거나 목회자 및 예비 선교사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강연과 설교와 입으로 쓴 책들과 목회적 라이프스타일은 곧 미래의 설교자와 목회자와 선교사들의 ‘이미테이션(imitation)’이 되었다. 하나의 압도적 모델의 탄생, 나는 이걸 ‘4인방 모델’이라 부르고 싶다.

 

누가 그런 예비 목회자들 앞에 강사로 나서 내가 이런 고뇌와 고충 가운데 살며 목회한다는 실존적이고 고백적인 술회를 토로하겠는가? 내게는 이렇게 피치 못할 양심의 고뇌와 정신의 고민이 있다고 부끄러운 간증을 하겠는가? 실상 그런 게 있는 지도 의구심이 든다. 대개는 개인적, 사회적 고뇌와 갈등이 빚어내는 현실 모순을 기독교적 당위의 명분을 지렛대 삼아 단숨에 건너뛰고 도약해 버리게 된다. 일단 도약에 성공하면 날아오르는 건 쉬운 일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가 문제가 되겠지만, 수준에 상관없이 그들에겐 자기(自己)를 재고해볼 여지나 기회가 없다. 목회를 시작했을 때 이미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를 ‘왜’라는 공격을 막아줄 연역적(신적) 권위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저 압도적 모델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그들의 출발점이 우리가 놓인 제1의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1의 현실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으로 이 제1의 현실을 회의하면 제2의 현실이 자연 나타난다. 곧 십자가의 자기부인 내지는 현실 부인을 통한 제2의 현실이다. 이렇게 되면 지상의 싸움은 단순해지고 선명해진다.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신학적, 정신적으로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제2의 현실에 회의한다. 그럼으로써 제3의 현실을 창조해 내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인 듯하나 그것도 아니고 이미 시작된 지상의 천국인 듯하나 그것도 아니다. 참여도 아니고 도피도 아니다. 그것은 모호함 속에 존재한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복음주의의 주소지이다. 이 제3의 현실이 제1, 제2의 현실과 어떤 이반(離反)과 연합의 결과를 도출할지 주목해야한다. 왜 신학적 보수주의가 곧바로 정치적 보수주의와 결합될 수밖에 없는지. 왜 제3의 현실이 결국 제1의 현실에 대한 긍정과 제2의 현실에 대한 적대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지.

 

 

 

비전(vision) 혹은 비전(祕典)

 

꿈과 비전은 사실 지난 이십여 년 간 한국교회 강단의 마르지 않는 원천(原泉)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목회자들 개인들의 꿈과 비전이었는지 한국교회의 단체적 야망이었는지,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오늘날까지 모호하다. 하나님의 꿈과 비전은 아니었다는 증거들은 많다.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에서 비전(vision)이란 언제나 묵시록(黙示錄)적 일깨움을 가리켰다. 그것은 이 견딜 수 없이 답답한 제1의 현실을 돌파해 나가는 신적 실체와 직면(直面)하는 영적(본질적) 체험이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마가복음 8:35).

 

그것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와 강단이 매양 설파해온 꿈과 비전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본질은 세속적이고 방식은 도덕적인데 겉포장만은 복음적이었다. 명백히 표명되지 않고 모호한 채 강조됨으로써 신비주의적 색채를 띠기까지 했다. 비밀을 품었다는 의미에서 그것을 ‘비전(祕典)’이라 불러야 마땅하리란 생각을 해본다. 솔직히, 설파해온 자신들조차 어떤 현실태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서 배웠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잘못이라 할 순 없다. 사실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꿈이고 비전이 아니던가. 그것들은 우리의 현실(혹은 그들 자신들의 현실)로부터 자생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해를 우러러 절하고 두둥실 떠가는 달을 쳐다보며 슬그머니 마음이 동하여 손으로 입맞춤을 띄워 보내기라도”(욥기 31:26-27)하듯. 그것은 마치 땅에서 유리되어 떠도는 뜬구름처럼,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무지개처럼, 반도의 작은 나라 백성이 흠모하여 마음 설레도록 고상하고 세련돼 보였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다. 그러나 우리들 각자가 굳건히 지향하여 제각기 삶의 현실에서 제도화할만한 결행의 실체가 없었다. 천국뿐 아니라 지상의 싸움도, 어떤 누구와의 싸움인지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복음주의권’이라 부르는 것은 그 실제 내용과는 상관없이 적절한 표현이다. 그 말이 당위의 권위를 나타내는 우월한(안전한) 명칭일 것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언어가 일정한 시간이 흘러 자연스런 사회성을 획득하듯이 그 말이 그들을 제한적으로 규정짓게 되었다. 설교자 자신과 말씀공동체의 현주소를 실존적이고 고백적인 피치 못할 양심의 고민과 정신의 고뇌가 실재하는 현실로부터 전출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서, 달리 지향할 각자의 현실적 미래를 갖지 못함으로써, 공동체는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일사불란한 목회적 전체주의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지난 이십여 년 교회가 이유도 모른 채 리더십에 몰두해온 이유다. 성서적 비전(vision)이 집단적 비전(祕典)으로 변태(變態)하는 영리(靈理)가 거기 있음이다.

 

눈치 보기’ 혹은 ‘표절하기’로서의 목회

 

현직 목사의 99%가 남의 설교를 표절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물론 남이 써준 원고로 설교를 연기하는 유명배우들도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이 모든 부패의 배경에는 설교표절 이전에 광범위한 목회의 표절사태가 있다는 점이다. 표절이란 모범답안을 상정한다. ‘이 정도면 된다’, ‘이런 정도면 내놓을 만하다’는…. 그것은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는 말처럼 목사들의 정신의 물줄기가 시대와 더불어 흐르는 게 아니라 4대강 사업의 보(洑)처럼 고여 있음을 말해준다. 그 보의 이름이 흔히 쉽게 말하는 ‘복음주의’라는 애매하고 광범위한 범주(範疇)이다. 그것은 첫째 올바르고 달리 말하면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보수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목회표절의 사태는 이 태생의 제한으로부터 나왔다. 여기서 진정한 의미의 신학적 도약이 발생한다. 제1의 현실로부터 제3의 현실로 도약해버린 내용 없는 신앙의 공허는 율법주의로 무장된 도덕을 내세운다. 이 화학적 결합을 통해 자신들이 올바른 윤리와 신학적 집합에 속해있다는 독점적인 영적 상태가 확립된다. 이로써 자신들의 신학적 정치적 보수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열린 태도는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게 되었다. 세속적 욕망이 지향해온 꿈과 비전이 이제는 그것 외에는 허용치 않는 신학적 검열의 테스트가 된 것. 누구든 이 시험 앞에서 나도 거기 속해있노라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목회는 눈치 보기, 혹은 표절하기로서의 고인 물이 되어간다. 그 물에서 하나의 압도적이고 모범적인 목회가 탄생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칭찬받는

 

제약의 원천은 정치적이고 신학적인 보수주의다. 이것을 해도 안 되고 저것을 용납해도 안 되는 다양한 제약 속에서 독창적 활로가 모색되었다. 곧 아무것에도 책을 잡히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칭찬받는 방식의 실용적 처신이 창조된 것이다. 때문에 강단의 설교든 크리스천의 간증이든 주된 메뉴는 ―정치적으로 신학적으로 보수주의적 테두리 안에서― ‘내가 얼마나 목회를 모범적으로 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역들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기광고가 된다. 이것이 그들의 강연과 설교와 집회와 저술(著述) 곧 스펙의 내용이다. 아무것에도 책 잡히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칭찬받는 이야기! 그것이 안전하게 청중들을 단도리 하고 끌어 모으는 부흥의 조건이자 관건이 된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의(나의) 모범적인 성공사례를 칭찬하시겠는가? 혹은 자신의 청렴하고 저렴한 사례비를, 혹은 설교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암기하는 능력을, 혹은 자신의 성도들을 배려하고 돌보는 헌신의 사연들을, 혹은 자신들이 벌이는 긍휼의 사업들을, 혹은 헌금 없는 주일을, 혹은 선교의 사역들을, 거기서 더 나가면 누구처럼 자신의 가족과 자식들 자랑이 곁들여지거나, 누구처럼 자신의 문화적 기호와 취미가 곁들여 지거나, 누구처럼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십의 이조를 드리는 충성이 곁들여지며, 때론 비장하고 때론 울먹이며 때론 청중을 질타하며 1부, 2부, 3부, 혹은 6부까지 똑같은 제스처와 톤과 포오즈와 인터네이션으로 재탕, 삼탕에 여기 저기 서로 바꾸어 교류하며 사탕, 오탕을 하는데, 그들은 이런 걸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을 제스처와 포오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남을 자주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환기하고자하는 것은 그런 정도 착하고 덕스러운 관용정신이 아니다. 압도적인 하나의 풍조, 모두에게 칭찬받고 아무 것에도 책을 잡히지 않는 태도란 결국 이 정치적이고 신학적인 보수주의의 현실 풍토 속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까? 개개의 것에는 혹 칭찬할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뭉뚱그려 전체적인 분위기(영성)를 이룰 때는 그 자체가 대체된 기독교적 메시지가 되고 만다. 그것이 곧 제1의 현실로부터 제2의 현실이 아닌 제3의 현실로 피치 못하고 불가피하게 도약해 버리는 것. 거기서 강조되는 것은 결국 극소수의 성공한 설교자들, 자기광고에 빼어난 말쟁이들, 그들의 자기자랑들, 주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이렇게 각광받고 받을 만한 리더가 되는 훌륭하고 숭고하고 세련되고 멋진 것이다,라는. ‘우리를 따르라. 본받으라. 너희도 우리처럼 되리라’ 하는. 이것이 모두에게 칭찬받고 아무 것에도 책 잡히지 않으면서 성공적인 목회의 모델이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공허한….

 

4인방 목회의 회고

 

정작 4인방 모델의 원조 격인 분들께는 무안하고 민망한 말들일지 모르겠다. 그분들은 결코 여기 해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원되는 레토릭이 주님을 향한 충성이건 교회개혁이건 선교동원이건 신앙부흥이건 상관없이, 4인방의 아류가 이제는 온 강단에 흐르고 넘친다. 과문한 견해로써 본의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러한 목회문화를 창조해낸 선구자들이 이른바 복음주의 4인방이라 불리는 분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 그들의 영향력에 관한 보다 치밀한 학술적 분석을 해주기를 바란다. 4인방 이전에 그들에 필적하는 설교자들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속칭 87년 체제로 기술되는 이 새로운 문화의 선도자들은 이전 세대와는 차별점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들은 유난히 교계의 지도자로 불렸다. 즉 선전이 그들의 사역의 중요한 요소였다. 일례로 그들에게서는 본문으로 택한 성경 텍스트의 해설에 들이는 깊이 있는 탐구 같은 것이 목회와 설교의 핵심을 이루지 않았다. 나는 이 점을 소위 스토리텔링 설교의 가장 근원적이고 파행적인 문제라고 본다. 방식 자체가 이미 청중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라는 의미에서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필요한 만큼 성경을 해석하고 이미 설정된 자기 메시지에 그 말씀을 대입해 나가는 방식으로 설교했다. 말씀이 중요치 않다고 가르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에 있어선 그렇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결같이 탁월한 설교자라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선전 ―반드시 나쁜 의미만은 아니다― 의 효과였다.

 

그것은 청중이 말씀을 듣고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세심히 따져보게 하는 게 아니었다. 말씀을 탐구하다 현실을 탐구하게 되는 실천력을 배양시키지 못했다. 그 대신, 당신은 이미 대단히 훌륭하고 굉장한 사람이니 더 이상 실존의 고뇌 따위를 잊어버리라 가르쳤다. 곧 우리가 제시하는 복음적이거나 복음을 빛내는 사업에 동참하라고 대중을 독려했다. 도약은 모든 성도들에게서 일어났다. 문제는 말씀이 살아계신 사건 자체로, 그 사람에게 역사하는 영의 자율의 개별적 사건으로 남겨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언제나 이미 규정되고 제시된 모범적 성도의 모델이나 대규모 교회건축 같은 교회적 사업의 동원으로 직행했다. 일치단결로 귀결되는 하나의 사업 ―그 사업들에도 공통분모가 있다― 이것이 가장 지배적이면서도 배타적인 복음주의적 기독교가 형성된 밑거름이다.

 

성공적이고 모범적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이율배반의 결과들도 나타났다. 그들이 주장했던 차별성이란 선전에 불과할 뿐 동일한 욕망에 다르지 않음이 판명되었다. 말하자면 대형교회를 비판하면서 결국 대형교회가 되는 식이었다. 모든 것이 이러하다가는 저러하게 되고 저러하다가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개혁을 설파하면서도 굳이 개혁적 행동엔 반대하거나, 부흥을 재고하는 듯한 양식 있는 비판을 하면서도 굳이 자신들의 부흥에는 재고가 없었다. 세속적 현실과 영적 이상의 말들이 흔히 섞여 있었다. 대중들은 영과 세속 사이 혼동 가운데서 자연 이중적이고 위선적으로 변해갔다. 오히려 위선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세련됨과 윤리성에 대한 과장된 신념을 가지기 쉬웠다. 도약을 통해 획득된 제3의 현실과 꽉 막힌 신학적 도그마의 우물에 이중으로 갇힌 채.

 

스스로 너무 많은 꾀를 내었거나, 바꾸고자하는 현실을 너무 얕잡아봤다고 할까? 하지만 이 모든 진실의 애매모호함은 무대 위에서의 탁월한 설교, 영적 권위, 윤리적 포오즈가 발산하는 영광과 선망의 존경에 가려져 버렸다. 4인방에 국한된 이야기로만 생각진 마시라. 규모의 차이를 막론하고 이 밖에는 상상하지 못하는 한 가지 형태로 획일화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곧 예배와 강연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인 경우가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이전 세대에게는 없었던 선전의 문화적 세련됨 때문에 이러한 중심의 교묘한 변화는 지금도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다.

 

획일화된 교회의 모습이 신학적으로 사유하는 젊은 크리스천들을 불편하게 만들 긴 했다. 그러나 이 애매모호함을 분석하고 해부하려는 자들은 그들의 표면적으로 훌륭하고 좋은 것들을 굳이 비판해야하는 난처함에 직면해야 한다. 결과는 흔히 부정적이고 비틀렸다는 비난으로 돌아온다. 부족하고 부도덕한 것을 비판하는 것도 위험한데 하물며 훌륭하고 존경받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성찰의 소리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고 대부분 후학들과 후배들에게 그들은 교계의 진정한 지도자로 존경과 갈채를 받아왔다. 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하나의 확고부동하고 독점적인 목회권력을 구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권력이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영광이 떠나다

 

지난 이십여 년 간 이러한 4인방 모델의 영향력은 그들 목회 자체의 부흥과 수많은 집회와 매체와 책과 설교의 유포를 통해 전체 한국교회의 거스를 수 없는 한 경향으로 확장되어왔다. 그들 이후 나타난 이른바 차세대 지도자들이란 거의 그들의 뒤를 잇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서 이미 과거의 영광이 떠났음을 보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게 4인방의 잘못이라 주장하거나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어쩌면 ‘복음주의 4인방’이라는 말의 탄생 자체가 ―그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이러한 많은 결과를 노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그분들을 존경하고 일정부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말처럼 내가 도대체 어디서 나왔건 대 그들과 그들의 유산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제도가 돼버린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문제일 정도다. 그러나 정말 한국교회에 비통한 반성과 성찰의 해법이 요청된다면, 이제는 4인방(식 목회 부흥)의 영향력에 대한 점검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리라 본다.

 

4인방은 이제 역사의 후면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4인방이 남긴 자취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일어나려면 얼마나 요원한가. 그들의 뒤를 잇는 차세대 지도자들이라는 미성숙한 리더들에게서 ‘이가봇’(영광이 떠남, 사무엘하 4:21)을 보게 되는 소회이다. 그들이 그러할진대 다시 그들의 다음에는 어찌될 것인가? 흡사 루쉰(魯迅, 1881~1936)이 젊은이들이 늙은이들 보다 오히려 반동적이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나는 교회 안 청년들에게서 이러한 한심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지난 이십여 년 간 유독 제자훈련과 리더십을 훈육해온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는가.

 

최근 이동원 목사님의 한기총 해체의 변이 실린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보다 먼저 홍정길 목사님의 자신의 목회는 실패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 전에는 돌아가신 옥한흠 목사님이 우리가 한국교회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회개의 인터뷰도 읽었었다. 민족복음화만 달성하면 한국사회가 나아지리라고 믿었고, 민주화 투쟁의 대열도 외면하리만큼 거기에 매진해 왔으나, 이제는 세속적 성공주의와 사회적 무책임에 대한 통렬한 회의가 든다는 성찰의 말씀들이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원망의 마음도 없지 않았다. 현역시절 예언자적 메시지가 절실할 땐 침묵하고 있다가 이제 은퇴하니 선지자의 목소리도 내시고 싶으신가 싶기도 하다.

 

고백컨대 이글은 내가 예전에 썼던 ‘4인방을 탄핵한다’는 글을 고친 것이다. 가소롭고 가당찮은 말이겠으나 ‘탄핵’이란 다른 뜻은 아니다. 4인방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기왕에 반성과 성찰을 하시려면 남은 날 동안 보다 분명하고 명백한 실천을 제시해 주십사하는 바람이지만 그리 큰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본인들이 분명 실패라고 하셨건만 행여 ‘과연 겸손하신 홍정길 목사님이십니다!’ 하면서 여전히 4인방의 후광(後光)에 몽롱하게 도취해있을 신학생들과 전도사들이 있을까 걱정되는 까닭이다. 때마침 미국에선 74살의 샌더스가 관성에 의해 밀려나온 기성 정치인들을 격파하고 있다니. 탄핵해야 할 것은 나로다, 내 실망이로다.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