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5)

행복은 성적순

 

공부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요 구도 행위가 되니, 그것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곧 성스런 공간이 된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단순히 인재 육성이나 가치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요 신앙의 수준에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게 된다. 따라서 어느 나라보다, 그 누구보다 우리 사회는 공부와 교육에 집중한다. 신분이 높건 낮건, 수입이 많건 적건 따지지 않고, 가리지 않고 모두 교육이라 하면 최우선시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정 경제에서도 1차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녀 교육비이다. 절대적 빈곤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교육에 몰입하고 또 집중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교육이야말로 구원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모두들 영생하고, 구원을 받겠다는 데 누가 이런 본래적 욕구와 기대를 단순 윤리와 가치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하여 교육 관계자들은 한국 사회의 이 오래된 교육 신앙을 구원론적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사회의 교육 문제 해결은 출구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출처: Derek Winchester (https://www.flickr.com/photos/derekwin)

 

우리 선조들은 구원에 이르는 공부의 길을 현실적 제도 안에 담아 두었다. 그것이 우리가 자랑하는 찬란한 교육 문화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과거라고 하는 제도가 처음 시행된 것은 고려 광종(재위기관 925~975) 9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려는 기본적으로 개국공신들과 왕족 중심의 사회였기에 과거를 통한 세력들이 주축으로 활동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과거 제도가 보다 찬연한 빛을 발현하게 되는 것은 당연히 조선 시대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과거는 인재를 등용하는 공식적인 제도로서 3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 정기적인 식년시(式年試)가 있었고, 새로운 임금이 즉위하거나 그에 걸맞은 국가적 경사가 있을 때도 부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예서 조선 시대 과거 제도의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과거라고 하는 시험만 놓고 보면 크게 소과와 대과로 나뉜다. 그리고 소과는 다시 초시와 복시라는 2단계가 있고, 대과는 초시-복시-전시 이렇게 3단계로 이뤄져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통 과거에 응시하는 이들은 저 5단계를 모두 통과해야만 최종 33명 안에 들 수 있었다. 소과를 통과하게 되면 생원이나 진사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숫자는 고작 몇 백 명 수준이다. 그렇게 소과를 통과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바로 성균관이다. 성균관에서의 생활도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빡세다. 일단 성균관 생이 되면 1년 중 3백일 이상은 출석을 해야 다음 단계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매 10일마다 시험을 치러야 했고, 월 평균 10회 이상의 모의고사를 치러내야만 하는 그야말로 시험 지옥과도 같은 생활을 견뎌내야만 대과를 볼 수 있었다.

그 후 대과를 치르게 되면 초시에서 다시 2백여 명을 추려내고, 복시를 거쳐 마지막 33명을 걸러내게 된다. 바로 이들만이 과거의 마지막 시험이랄 수 있는 전시에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최후 33인에 들었다고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이 마지막 시험을 통해 그들이 진출하고자 하는 관직의 최초 품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시의 장원 급제자가 받는 벼슬의 품계는 종6품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사무관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다음 순번 자가 정7, 8품 등 순차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게 되니 마지막 시험이라고 해서 소홀히 여길 수 없었다. 게다가 처음 받게 되는 품계가 중요한 것이 승진을 위해 소요되는 기간을 보면 대강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각종 국가고시 합격자들이 임용되는 것이 5급 사무관이다. 대략 7급 공무원이 5급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기간을 생각해 본다면 조선시대 선비들이 대과의 마지막 시험이 전시에 대하는 자세가 어떠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전시는 보통 임금이 임석한 자리에서 치러지게 되고 성적에 따라 갑--병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이 구분은 성적순이며 보통 갑 그룹이 3, 을이 7, 병에 23명 정도였다고 한다.

대략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면, 그와 더불어 그가 속한 가족 공동체가 영예를 얻게 되고 이는 유교적 구원을 이루는 죄상의 길이 된다. 따라서 여유가 있고, 형편이 되는 집안은 이 구원으로 이끄는 과거의 문을 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본래적 욕망에서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견고한 사회적 기재로 자리하게 된다. 이제 이즈음에서 조선 시대의 교육 시스템을 살펴보도록 하자.

일단 유교 사회였던 조선의 교육 시스템은 초등 교육과 중등 교육, 그리고 성균관으로 대표되는 대과 준비기관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초등 교육은 서당이나 개인 교습으로 이뤄졌으며, 보통 천자문과도 같은 쉬운 문장을 익히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에는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되는데, 서울 지역에서는 4부 학당이 그리고 지방에서는 향교가 그 일을 맡았다. 그러나 이들은 전인적 교육 기관이라기보다는 실상 과거 준비반이라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후 소과를 합격한 사람들만이 앞서 설명한 성균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대과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선시대의 교육 기관은 철저히 국가고시 대비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최후 33인 안에 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더 나아가 최후 33인 중 1인이 되기 위한 욕망을 키우는 사회적 기재라고 할 수 있겠다. 철저히 성적 위주이고, 등수 중심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 된 것은 이렇게 얻어낸 최종의 성적이 그들의 행복, 즉 가문의 영속에 직접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주술은 완성되어 갔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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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4)

공부는 구도행위

 

영생의 교리도 준비되었다. 그리고 그걸 확증할 수 있는 종교적 의례(제사)도 구비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구도의 길일 것이다. 다시 꼼꼼하게 문제를 정리해보자. 유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가족의 영생이다. 매우 상식적인 문제풀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가족 단위로 가게 되면 존속의 가능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문 차원에서 생육하여 번성해야 한다. 이건 생활이 아니라, 종교요 신앙의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래야 영생하는 거니까. 참으로 간단하고 명료한 해결책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어려울 것이 없다. 생존의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보다 좋은 삶의 환경을 구축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 과제를 처리해야 하나? 뭐 크게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온다.

가문의 영광!”

누구보다도 질 좋은 환경에서 확고한 가족적 영생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문은 영광스러워야 한다. 그래야 명예도, 평판도, 그리고 경제적 환경도 풍요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해당 가문에 속한 구성원들이 보다 더 잘 후손들을 이어갈 수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해야 가문이 영광을 얻을 수 있겠는가?’일 것이다. 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입신양명”(立身揚名)

세상에 나서서 이름을 드높이는 일이다. 그때 이름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야 말로 가문이 것이요, 집단의 것이요, 공동체의 것이다. 따라서 가문의 성()을 가지고 입신하여 양명했으면, 그건 혼자가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된다. 그래서 유교 사회의 사람들은 기를 쓰고 양명할 가능성이 높은 가문의 구성원에게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는(전문 용어로 몰빵하는’) ‘종교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아무리 그가 나보다 항렬이 낮고, 나이가 어리고, 덩치가 조그마해도 입신양명의 가능성이 그에게있다면 모든 가문의 수혜를 몰아주게 된다. 그리고 가 얻어낸 양명의 명예를 모두가공유하려 한다. 아니 당연히 그것은 공유되어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 양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했던가!

(출처: Derek Winchester (https://www.flickr.com/photos/derekwin)

 

이제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고 또한 느껴질 것이다. ‘가문의 영광’, ‘입신양명’, ‘출세’, ‘급제등등 유교 사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들이 가지는 종교적 의미와 무게를! 이들 모두 영생을 위한 사회적 기재요 개인과 집단을 위한 윤리 되겠다. 그래서 유교 사회에서는 무섭게 가문의 영광을 위해 매진한다. 그래서 모든 사회적 행위의 최전선에 공부가 자리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 사회의 문제가 도드라진다. 공부. 바로 그 공부 때문이다. 우리는 공부를 종교적 구도 행위의 하나로 각인하며 살아왔다. 그것을 지금 의식의 수준에서 알아채고 있는가는 뒤로 물리더라도 말이다. 이미 오래도록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집안 누군가가 똘똘한 머리를 지녔다면 그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는데 전혀 거리낌 없는 에토스 속에 살아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생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유교 사회에서 공부는 일종의 구도 행위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그가 공부로 성공해야 가문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국가는 모두에게 공평한 영생의 길을 제공하기 위해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과거라는 국가 시험을 통해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유교 사회는 과거를 매우 치밀하고 공을 들여 관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각 가문은 나름대로의 현실적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된다. 이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남녀의 성별 선택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 과거란 국가 고시는 오직 남자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 사회의 남성 중심적 사고를 이념적 성차별로만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그건 신앙의 문제요, 형이상학적 구도에서 나온 선택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교 사회에서 여성도 공적 시험을 통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남존여비란 사회적 기재는 이미 오래전에 화석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짐이 지금 우리사회에서 보이지 않는가. 각종 국가고시마다 수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 그리고 심심치 않게 매체에 오르내리는 여성 경영권자와 명사들의 일거수일투족. 이제 서서히 한국사회의 성차별도 줄어들 것이다. 바로 공적 자리 획득에 성적 제한이 없어져가기 때문이다.

그 다음 기회 균등의 원칙이 보장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건 한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가문의 영생을 위한 종교적 구도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기계적 평등에 세심한 배려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과거이다. 과거는 원칙상 천인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응시할 수 있는 국가 시험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두가 응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시험인 과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경제적 후원을 담보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양인신분보다는 양반 가문에서 더 많은 합격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은 조선 시대 양반이란 계급은 혈연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획득신분이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 혈연으로 세습되는 신분은 왕족 외에는 없다. 임금 외에 다른 모든 관직은 각자의 역량을 통해 획득한 신분이다. 따라서 양반들은 그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 적잖은 투자와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고, 양인들은 양반신분으로 들어가 가족적 영생을 확증받기 위해 더더욱 잘난 놈 몰아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따라서 기회의 균등이 사라진 과거제도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조선조 말 빈번해진 과거의 타락은 국가쇠망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사회는 공부에 대한 공동체적 신앙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제 공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개인의 신앙적 책무가 된다. ? 그래야 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대의 유산은 고스란히 후대 사회에도 이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가지는 무게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너도 나도 계층별로 큰 차이 없이 공부에 매진하고, 몰두하고,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적어도 수백 년에 걸쳐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체득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은 한국에서는 신앙의 문제이다. 매번 입시철만 되면 이 땅위의 모든 종교를 대동단결하는 힘이 신앙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무교 등 가릴 것 없이 한마음으로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정성으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진행되는 이러한 (공부가 마련해준) 사회적 행위를 구도행위 외에 다른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 나라 최대 종교는 수능교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올 지경이니 공부가 가문의 영속을 보장하는 구도행위라는 것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는 않으리라.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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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3)

 

효와 제사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

 

 

유교만큼 영생을 생활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종교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종교는 영생의 문제를 영적으로 풀어내려 한다. 그래서 영생을 이야기하면서도 개별적 실체로서 개인이 생물학적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식의 과감한 발언은 가급적 삼간다. 물론 개중에 삐딱선을 타고 그것, 즉 생물학적으로 죽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유교가 다르다. 유교가 택한 방법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문의 핏줄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유교의 구원이요 영생이기 때문이다. 유교 사회는 또 이를 위해 이러저러한 안전장치를 잔뜩 만들어 놓았다. 족보가, 항렬이, 그리고 씨족 집단이 그렇다. 이렇게 사회적 에토스 구석구석을 유교적 영생을 위한 기재로 잔뜩 꾸며놓은 것이 바로 조선이라는 ‘종교 국가’였다. 때론 그것은 ‘주자가례’란 이름으로 정부 주도하에 온 국민들의 일상사를 조정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임금 역시 제사 지내는 것이 중요한 공무 중 하나였던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찌 종교 국가라 지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유교 사회에서는 ‘효’와 ‘충’이 가장 큰 덕목이 된다. 개인이 속한 가정을 중심으로 하면 효이고, 그것을 국가로 확대하면 충이된다. 그런데 유교의 효란 단순히 부모를 잘 섬기고 봉양한다는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더하여 제사로 선조를 잘 모시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며 마침내 자손을 잘 이어가는 것이 유교의 효이다. 이런 점에서 효란 유교의 구원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유교적 영생을 완성하는 수행의 길이 바로 효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미 말했듯이 유교의 영생은 가문의 영속적 승계라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문헌적 전거가 바로 족보이다. 이렇게 가족주의에 기초해서 영생을 이야기하기에, 효가 이뤄지고, 효과 진행되는 한 그들은 ‘영원한 가족 생활’(가족적 영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즉 매년 정해진 시기에 가족들이 모여 선조에게 제사하고, 부모를 섬기고, 자식을 돌보고 있다면 그들의 종교적 구원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유교에서 말하는 효란 생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행위라 해석될 수 있다.

 

그러니 유교의 제사가 지니는 종교적 의미는 중차대하다. 이는 그들 집안의 구원을 입증하고 선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사가 끊긴 집안은 종교적 구원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다들 목숨을 걸고 제사를 지내려 한다. 제사가 멈춰서면 그것은 곧 종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주 노릇을 할 사내아이가 무엇보다 필요해진다. 아들을 낳고 대를 이어야 그들 가문의 구원이 완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이런 신앙 아래 씨받이, 씨내리라는 파행적인 사회적 관습도 용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사는 이 모든 것을 확증해주는 행사가 된다. 그러니 유교 사회에서 제사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고 만다.

 

 (출처: Republic of Korea (http://www.flickr.com/photos/koreanet)

 

 

이 강력한 제사 행위는 다른 종교가 들어온다고 해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유입된 종교들이 이 제사를 넘어서지 못하고 ‘요상한’ 의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개신교의 추도식이다. 그나마 근자들어 용어가 (추도) ‘예배’에서 ‘의식’으로 명칭은 바뀌었지만, 한국 교회의 추도식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의식이다. 물론 서구 교회에서도 추도 의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처럼 망자의 기일에 음식과 영정을 차려놓고 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의 추도식은 객관적인 관찰자의 눈으로 보자면, 그냥 제사라고 해야 옳다.

 

사실 이 추도식 때문에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괴롭고 힘든 경험을 한다. 교회에 열심이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자손들이 직분이 있어서 굳이 목회자를 모시고 추도식을 하자고 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게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설교는 어찌해야 할지 매우 난감하고 곤란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것을 마다하기 어려운 것이 원채 강하게 기일을 엄수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정서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 이 제사 때문에 수백 년간의 논쟁과 다툼을 진행해야만 했다. 1640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전례 논쟁은 제사를 두고 벌어진 중국 선교를 선점했던 예수회와 후발 주자였던 도미니꼬회의 알력에 기초한다. 거기에 청 황실과 바티칸의 교황청까지 편승하여 백여 년에 이르는 기나긴 논쟁이 이어지게 된다. 당시 중국에 터를 잡고 있던 예수회는 문화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제사를 유교 사회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존경과 공경의 의식으로, 그리고 효의 표현으로 본 반면, 도미니꼬회에서는 이를 이방신에게 행하는 우상숭배의 하나로 해석하였다.

 

당시 프로테스탄트의 등장으로 신학적으로 보수화되고 있었던 교황청은 도미니꼬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교황청의 결정에 청 황실이 즉각 반박하면서 전례 논쟁이 촉발되었고, 결국 이 갈등 때문에 중국에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은 심각하게 쇠락하였다. 이 전례 논쟁이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은 1939년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재위: 1939~1958)가 같은 해 12월 8일 <조상에 대한 효성을 화복의 대권을 잡으신 지존하신 하나님께 직접 용서와 복을 비는 교회 소정의 방법>이라 규정하며 공식적으로 제사를 로마 가톨릭의 전례 중 하나로 받아들이면서 이 기나긴 논쟁이 끝이 난 것이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의 경우는 여전히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추도식에 대한 제대로 된 신학적 논의나 작업도 행하지 않고 애매한 상태에서 모든 제사를 예배 형식으로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명절이나 기일에도 어김없이 찬송가는 울리고, 설교는 행해지지만, 그것이 가지는 신학적 의미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길잡이는 공식화되고 있지 않다. 몇 년 전 한국 문화신학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며 신학화하려는 시도(한국문화신학회는 2008년 5월 1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개신교와 조상숭배’라는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했고, 여기서 발표된 글들은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가 있었지만, 여전히 현장 교회에서 제사와 추도식의 문제는 스리슬쩍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지금의 문제만은 아니다. 백여 년 전 한반도 선교 초기에도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이 제사의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보고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기대치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신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감동받은 선교사들도 이들이 특정일에 행하는 (그들 눈에는 우상숭배처럼 보이는) 제사행위만큼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제사는 유교적 마인드를 지닌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종교적 의례가 된다.

 

이런 점에서 바로 지금이 제사에 대한 한국 개신교회의 제대로 된 신학적 입장을 정리해야 할 적기가 아닐까 싶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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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 

 

유교도 구원을 말하나?

 

간혹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때마다 난 서슴없이 유교!”라고 답한다. 그럼 거의 예외 없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현 통계에 잡히는 것으로 하자면, 신도 수에서는 불교를, 그리고 사회적 활동과 영향력에서는 개신교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생뚱맞게 유교라니!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지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천만을 헤아리는 신도를 거느린 불교와 만 명 이상의 교회가 즐비한 개신교를 빼놓고 한국의 종교를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난 현 종교현황도 모르고, 아니면 무시한 채 그저 잘난 체 하기 위해 한국 최대의 종교로 유교를 꼽은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우선 내가 유교를 말한 이유는 내가 사용한 종교란 용어가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 절대자, 경전, 구원, 깨달음, 교회, 사찰, 사원, 스님, 목사, 법사, 신부, 이맘 등등. 그리고 부르는 이름과 생긴 모양은 다르더라도 종교라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저런 형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 종교학에서는 종교를 꼭 그렇게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폭넓고 광범위하게 종교를 바라본다.

이전에 종교하면 신적 존재나 알 수 없는 힘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곤 했다. 그런데 경험적 종교 연구가 등장한 이후 종교에 대한 정의가 좀 더 냉정해지기 시작한다. 종교가 신이나 미지의 힘과의 만남이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가 집중적으로 취급하게 되는 것은 그런 존재를 만난 후에 생겨난 인간 쪽의 변화이다. 즉 종교가 가지는 인간학적 의미가 좀 더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대상이 되는 절대자나 신적 존재는 인간이 아무리 용쓰고 떼쓰고, 발악을 해도 좀체 규명되거나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는 무엇 무엇을 만난 것이라 이야기 하는 순간, 종교에 대한 설명 자체는 매우 축소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그 종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다. 즉 초점이 인간에게로 옮겨오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제 종교를 규명할 때도 대상이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주체, 즉 인간이 중요해진다. 이런 논리적 전개를 통해 얻어낸 잠정적 결론은 종교는 세계이해를 위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를 내 지도 교수였던 고 플라쉐(Rainer Flasche, 1942~2009)교수는 세계설명체계삶의 문제 극복체계로 정리했다.

내가 유교를 종교로 답한 사연에는 바로 저 시스템으로 종교를 보는 현대 종교학의 논리가 들어있다.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고, 또 실존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시스템으로 요청되는 무엇을 종교라 본다면, 당연히 유교 역시 종교이다. 그런 점에서 유교는 한국 사회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생활종교라 할 수 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1392~1910)의 영향 탓에 오백년 이상 유교적 가치관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에토스에는 유교의 영향이 없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교의 종교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종교가 세계 설명 체계이고 삶의 문제 극복 체계라 하더라도, 종교라면 빼놓을 수 없는 목적지향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완벽에의 추구이다. 때론 이를 구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나게 되는 피할 수 없는 한계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죽음이라 말할 수 있다. 나도 죽고, 너도 죽고, 그도 죽고. 인간인 이상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리고 안타깝고 불행하게도 죽음 이후에 대해서 아는 바 매우 적다. 그러니 어떤 종교라도 이 죽음의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해결의 결과를 영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생, 영원한 생명. 결국 죽지 않겠다는 것이다. 안 죽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에서도 영생을 말하는가? 말한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의 영생은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신 안에서의 융합적 동거로 해결한다. 불교에서는 애초에 죽어야 할 실체적 자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해체적 방식을 선택한다. 그럼 유교는? 유교는 영생을 집단적-사회적으로 해결하려 든다. 일단 유교라는 종교의 세계관은 실재론적 성격이 강하기에 유신론적 종교에서 종종 보이는 세간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로서 신을 상정하지 않는다. 유교에서 말하는 신이라고 하는 것은 음양의 조합 중 양의 성격이 농후한 것(혼백에서 따지자면 혼에 가깝다)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유교는 유물론적 성격이 강하다. 아무튼 유교의 구원에 관한 논의를 좀 더 이어가면, 유교에서는 가족의 연계를 통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출처: Korea.net (www.korea.net))

 

유교의 세계관은 상식적이기에 사람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또 다른 별세계가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다. 무언가 이어갈 것이 필요하다. 어떡해? 그때 유교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자손이다. 혈육이다. 핏줄이다. 가문이다. 나는 죽어도 또 다른 가 살아남는 시스템. 유교는 이를 통해 자신들만의 구원을 완성시켰다. 따라서 지금의 언어로 유교의 구원을 정리해보면, ‘특정(가문) DNA의 영속적 승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가족이 중시되고, 그 가족을 이루게 되는 결혼을 소중히 여긴다.

생각해보시라. 아무리 잘나가는 자식을 두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인드에서 그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어떤 언사를 던지는지를! 또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아이가 없다면 우리는 또 어떤 말로 쏘아대는가! 따라서 유교적 마인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너 언제 결혼할래?” “너 언제 손주 안겨 줄 거냐?”라는 말은 너 언제 교회 나올래?” “공덕을 쌓아 성불하세요!” 등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 종교적 발언이라 할 수 있다.

결혼을 고리로 이어진 가족주의에 기초한 유교라고 하는 종교의 가치관은 지금도 강력하다. 명절 때마다, 집안의 대소사 때마다 발길을 원적으로 돌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에토스는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아닌 바로 유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교는 이를 사회적 제도 속에 깊게 각인시켜 놓았다. 나는 죽어도 집단은 살리기 위해 항렬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름에서도 성을 앞세운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개로 사는 것이 아니라, 김씨, 이씨, 박씨로 산다. 내가 죽어도 나와 같은 항렬의 인척들이 있음으로 우리 가문은 영속하고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가문의 영속을 확인하는 축제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우리는 이를 제사라 부른다. 돌아가신 선조의 기일이나, 설날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며 가문의 영생을 축하하는 의례, 그것이 바로 제사이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생명부는 족보라 할 수 있다. 가문의 영속을 문헌 속에 담아내고자 하는 그들의 종교적 열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족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교의 에토스는 지금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매우 강력한 힘으로 작동되고 있다. 그러니 유교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라고 할 수밖에.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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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1)

 

 

쿨하게 종교읽기

 

나는 종교학자이다. 그러다보니 만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로부터 종교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은데, 그 이유는 질문을 던지는 많은 이들이 보이는 마음가짐과 자세 때문이다. 종교학은 가급적 있는 그대로의 종교를 이해하고자 객관적 자세를 유지하는 경험학문이다. 따라서 종교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가급적 종교를 읽으려하지, 그것을 하거나 그들 사이의 우열을 논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종교학자들이 만나게 되는 많은 질문은 후자인 경우가 많다. “어떤 종교가 진짜이냐?” “어떤 종교의 가르침이 가장 높으냐?” 등등.

 

특히 한국사회에서 이런 성향은 도드라진다. 서구사회만 하더라도 종교학적 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어 종교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설명이 사회적 합의를 해 가는데 큰 장애가 없는데 반해, 유독 한국에서만 종교하면 곧바로 진리논쟁이나 진리다툼으로 치달아버린다. 그래서 차분하게 종교의 있는 모습을 읽고 이해하려기보다는 당장에 원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종교들을 줄 세우려고 한다. 그리고 특정 종교 안에서도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먼저 구분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니 종교관련 논의나 담론은 쉬 정치적으로 흘러가버린다

 

이런 형국이니 정갈한 태도로 종교를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자꾸 뒤로 묻힌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균형 잡힌 종교읽기는 간단치가 않다. 이 글은 그런 안타까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먼저 우리 사회의 여러 종교들을 있는 그대로 한번 살펴보자는 자성적 통찰이 이 글을 이끄는 가장 커다란 동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예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해 보자. 왜 우리 사회에서 종교담론은 쉬 진리논쟁으로 치닫는 가? 이는 아마도 종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기초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 이야기를 풀기 전 종교에 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한국 사회는 종교를 명사로 읽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유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등등 다양한 종교를 이 명사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애초에 이 말은 그런 명사적 뜻보다는 형용사적 쓰임이 더 강했다. 종교란 말의 라틴어 렐리기오’(religio)는 종교적 의례를 대하는 이의 성실한 자세와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종교란 말의 본래 뜻은 경건’, ‘믿음’, ‘신실등에 더 가깝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교(Christianity)란 단어가 만들어지면서 태도에 집중하던 종교란 단어에 새로운 뜻이 첨가되기 시작했다. 사실 그리스도교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그리스도적 종교’(christian religion)란 낱말이 있었다. 그리스도교란 고유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서구세계에서 종교, 즉 믿음은 그리스도교의 것 말고 다른 것을 찾기가 곤란했다. 그러니 그리스도적 릴리지언이란 단어가 종교를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썼다는 <De vera religione>참다운 종교가 아니라, ‘참다운 믿음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종교개혁가 칼뱅의 저작인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기독교 강요로 번역하기보다는 그리스도적 믿음의 원리로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을 따른다면, 종교란 단어는 인간의 내면을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이 단어를 자꾸 외형적인 그 무엇인양 오해해서 바라본다. 인간 내부의 믿음과 신실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종교란 단어가 자꾸 명사적으로 읽히면서 좀체 눈에 잡아둘 수 없는 종교적 동인을 외형적인 것인 양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종교하면 교의, 교리, 조직, 체계, 기준 등을 생각하게 되고, 그런 우리의 성향이 계속 종교논의를 진리다툼으로 끌고 가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종교를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보는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종교를 논할 때도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떠 올리는 환경이 되어야 좀 더 쿨하게 종교를 읽을 수 있을 길이 열릴 것이다

 

또 하나 우리 사회에서 종교담론이 절대화되는 이유로 나는 조선시대의 이단혁파 사조를 꼽고 싶다. 사실 조선왕조는 종교국가였다. 주자학이라는 완결적 사유시스템으로 사회 전반을 통제했던 종교국가가 바로 조선이란 나라이다. 마치 이는 중세의 유럽과도 비슷하다. 중세 유럽이 그리스도 보편국가’(res publica christiana)였던 것처럼, 조선이란 나라는 주자보편국가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원적이지 못한 사회였다. 철저히 하나의 이념, 하나의 임금, 하나의 사상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했던 사회였다. 그런데 서구가 계몽이란 강을 지나면서 다양성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다원적 사회로의 진입이 가능했던 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계몽의 강을 넘지 못한 채 중세의 주술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체로서 주장되는 개인을 조직적으로 경험하여 각인된 역사적 인식을 갖지 못한 우리 사회는 여러 점에서 여전히 중세의 왕조적 마인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대통령은 임금이 되고, 개인은 존재치 않으며, 납세자는 신민이 되고, 종교는 절대가 되어야 한다. 왕조 사회의 갑들은 비판과 분석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은 오로지 복종과 순종만 허용될 뿐이다. 그러니 종교도 함부로 읽거나 분석해서는 곤란하다. 무엇이 되든지, 유일한 절대 종교만 찾고, 그것을 숭앙하면 될 뿐이다. 그래서 종교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악바리처럼 절대’, ‘진리’, ‘’, ‘원조’, ‘보편을 반복해서 되뇐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생명이라도 된 양. 허나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종교의 본질은 지키고 주장해야 할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있게끔 작동한 내부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 사회의 종교담론은 방향설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판단이 이 연속된 글의 정확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종교이야기를 진리논쟁이라고 하는 파리통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현상과 역사의 흔적을 추적하여 우리 사회의 종교담론을 쿨하게 바꾸어보자는 것이 바로 이 글의 갖는 소소한 사회적 임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후 진행되는 나의 글은 종교학자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많은 현상 중, 특히 종교와 관련된 것들을 선택해 그것의 맥락을 종횡에 따라 계보적으로 읽어 공론의 마당에 올리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 사회의 포장 없는 종교의 민낯을 읽게 된다면 이 글의 소임은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길용/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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