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이 깡패다

분류없음 2015.05.16 18:28

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4)



거룩이 깡패다

 

 

 

얼마전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에게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옹호했던 저의 군 복무 시절 이야기였습니다. 매일아침 성경을 읽는 부시의 판단이 항상 옳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후세인으로부터 고통 받는 민중들을 구하기 위해 세계경찰인 미국이 나서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 여러 게시판에 이런 저의 비장한 입장을 적어 도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참 뒤에야 쪽팔림을 알고 다 지우러 다녔는데요. 어딘가 남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북한미녀로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던 조명애 씨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조명애의 아름다움 뒤 숨은 음모라는 따위 제목으로 여기저기 게시판을 도배하였죠. 군 생활을 할 때였으니 정훈교육을 잘 받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왜 저렇게 비장했을까요. 저도 10여 년 전 제자신이 이해가 안 됩니다. 천천히 복기해보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비장한 근본주의자들과 일베들의 정신구조를 보게 될지.

 

제 입장에 반기를 든 건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공익근무요원이었죠. 애국심이 반분되었기에 저의 거룩한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의 의견은 무고한 생명이 너무 많이 죽어간다였습니다. 민간인 사상의 피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전쟁고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감정에 호소하였습니다.

 

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설피 들었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모든 반론을 흡수하고도 남았습니다. 예수 믿는 대통령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관철하는 데에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을 떠올려보세요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것은 슬프지만이라고 운을 뗐으나, 솔직히 말하면 하나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알라라는 우상신을 버리고, 야훼 하나님을 믿기 바라는 마음에 가슴이 벅찼거든요.

 


'북한 미녀' 조명애. 드라마 <사육신>에서 김종서의 딸로 활약했다.

 

 

세월호 유족들 비판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갑니다. 제가 조명애를 의심했던 사람이라 압니다. 저 역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압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겠습니다. 304명이 죽었지만 전혀 슬프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유가족이 거룩한 정부를 뒤흔드는 세력으로 보이는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돈 받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말하는 이들을 깨우치기 위해 네 자식이 죽었어도 그럴 거냐?”라고 반문하곤 하는데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대응입니다. 사실 그런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식 죽으면 돈 더 받으려고 시위할 사람들이거나) ‘거룩한 정부를 위해 자식 죽음에 관한 진실쯤은 땅에 묻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투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지하철택배하면서 책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매형이 군대로 보내준 책들이었는데, 그중 함석헌 선생님이 번역한 간디 자서전(나의진리실험이야기)은 나의 종교관’ ‘신앙관을 송두리째 뒤집었습니다. ‘종교보다, ‘기독교보다, 하나의 생명이 무엇보다 귀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생명보다 귀한 게 없다는 선포가 바로 복음(기쁜 소식)임을 그제야 깨달은 겁니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아무 명분 없는 전쟁이었음이 온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어린 생명, 연약한 생명이 그렇게 숨을 멈추었습니다.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가 최소 104080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가늠이 잘 안 되시죠? 10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 없이 죽었는데요. 몰랐다고요? 알았지만 선교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다 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걸 그냥 당연하다 여겼던 겁니다.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가 최소 10만 4080명으로 집계된다. 10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이다.


 

사람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생명보다 더 귀한 게 있나요? 세월호 엄마 아빠들은, 생명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죄처럼 여겨지는 유족입니다. 자녀들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해 살아있는 것조차 죄로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한 생명이 귀하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지난 글 '잔인한 장면이 필요하다' 참고)

 

워낙 무딘 탓에, 저는 유가족과 얼굴을 대면하고서야 슬픔이 몸으로 전해졌습니다. (욥기의 동화 같은 결말에 문제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 사랑하는 자식들은 죽고 없는데, 새 자식이 많이 생겼다고 위로가 된단 말인가?) 그들의 웃음에서도, 이제는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이 전해져 슬펐습니다. 어쩌면 욥의 결핍도 절대 채워지지 않았을 겁니다. 불가능하죠. 애통함의 깊이만큼 기쁨도 느꼈을 겁니다. 그러나 이내 롤러코스터처럼 추락을 경험하고 아마 그랬겠죠


우리는 무엇으로도, 이들의 움푹 파인 슬픔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돈으로도, 벼슬로도, 힘으로도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듯, ‘한 생명’의 공백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세월호 이야기를 이제 그만하라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요. 노란리본 부담스러워 하는 교회는 생명을 모르는 교회가 아닌가요? 복음을 모르는 목사가 아닌가요? ‘거룩이 깡패가 되었습니다. 비장하고 거룩한 것들에 눈이 가리어진 바리새인들처럼 생명을 보지 못하니 주여 주여하지만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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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3)


애도의 지루함, 안네 프랑크 하우스


 

신혼여행 세 번째 이야기.(첫 번째 '자기야, 나 사실 민폐 캐릭터야', 두 번째 '리스본 예수상이 준 위로' 클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역시 ‘관광도시’였습니다. 그간 다녔던 나라(포르투갈, 미국, 일본 등)에 비해 월등히 서비스정신이 투철했죠. 물론 그 서비스는 돈을 내야 누릴 수 있는 거였고, 어제까지 머물렀던 포르투갈의 (허점은 많았으나) 정감 넘쳤던 사람들과 대비되었습니다. 아, 첫인상이 별로였다는 말입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키도 엄청 컸습니다. 호텔 방에 들어서 미니바(냉장고)를 열어보니 빈 우유팩이 들어있어 항의를 좀 했더니 2미터 넘는 거구의 직원을 올려 보내 사과를 하더군요. 투숙객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겠지만, 더 이상의 항의는 불가능했습니다.(의사소통도 불가능했고요) 



주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 인근에서 '호산나'를 찬양중인 청년들. ⓒ이범진


네덜란드=하이네켄 ⓒ이범진


햄버거 속 양파가 특히 맛있는 네덜란드. ⓒ이범진


아무튼 2미터에 가까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요. 원래는 유럽에서도 키가 작은 나라에 속했으나 국가차원에서 육성정책을 펴 지금 20, 30대들이 거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햄버거 안에 들어있던 양파는 특히 맛있었는데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국가에서 재배, 유통, 연구 등 농산물 관리를 도맡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차산업(농업)을 귀히 여기듯, 유소년 양육도 국가에서 적극 나선 것이죠.

 

국가에서 많은 부분을 관장하지만 틀에 박힌 나라는 아닙니다. 인접한 벨기에, 독일 등과 비교해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많은 독일의 학자들이 네덜란드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눌러앉은 사례도 꽤 되지 않습니까?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구교회’(Oude Kerk)를 방문했을 때, 근처에 바로 성매매업소와 대마초 판매처가 즐비한 것을 보고 극도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들은 말로는, 공인된 성직자들이 대마초 유통에 공식적으로 관여한다고 합니다. 극한의 자유를 누려본 사람만이 그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는가 봅니다.


결과적으로, 보수적인(?) 저에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첫인상이 좋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자유의 만끽, 그것은 여러 예술가들을 낳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고흐와 렘브란트가 네덜란드 출신이고요. 암스테르담엔 그들의 작품을 모은 미술관과 하우스가 블랙홀처럼 관광객을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짧은 일정이었기에 그 많은 박물관 중 한 곳을 골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좀 생뚱맞게 ‘안네 프랑크의 하우스’에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잉? 그렇습니다. <안네 프랑크 일기>로 유명한 그 안네 프랑크입니다. 안네는 세계2차대전 당시, 그러니까 히틀러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할 때에 네덜란드에 숨어 지냈던 소녀입니다. 아이러니한 곳이죠. 자유 만끽의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곳이니까요.



안네 프랑크 하우스, 한국어 안내서


'안네의 일기'로 유명하다.



숨어 지낸 그녀의 일기가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비극을 깨우쳤고, 안네가 끝내 독일군에 잡혀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볐지요. 지극히 ‘평범한’ 소녀의 죽음이었으나 일기는 그녀의 삶을 오롯이 살려냈습니다. 많은 유럽인들은 안네처럼 죽임당한 평범한 ‘안네들’의 죽음을 애도했지요. 그 안네가 숨어 지냈던 곳이 암스테르담에 있습니다.

 

저는 예술인들의 영혼이 아직 남아있어 신비로운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비하면 ‘안네의 집’은 조용할 거라는 생각에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치이는 관광객들에 좀 지친 상태였거든요. 다른 명소에 비하면 그곳은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던 거죠. 관광 와서 안네를 애도하기 위해 이런 진지한 곳을 찾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정오쯤 도착한 안네 하우스에는 관광객들이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 다락에 비밀공간을 만들어 안네의 가족이 살았고, 안네의 아버지는 전쟁 후 이 공간을 그대로 살려 박물관으로 이어간 것입니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뜻에서였지요.



형광 부분이 안네 프랑크 하우스. 소녀 안네는 저곳에서 숨어 지냈다. 자유의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유일하게 자유가 응축되어 있는 곳.


우리도 명패 앞에서 사진을 박았다. ⓒ도화영


 

아! 이렇게 무겁고 무섭고 진중한 장소를 찾은 관광객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이 작은 집에 들어가고자 1천명 이상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줄이 200미터는 넘어보였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추운 날씨로 털모자까지 사서 썼던 우리는 이 긴 줄의 꼬리를 잡을 정도로, 소녀 안네를 사랑하진 않았습니다. 내일이 월요일이니 사람이 없을 때 다시 오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가장 오래된 ‘구교회’로 돌아와 1층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씩 했습니다. (13세기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 교회의 바닥은 전부 누군가의 무덤입니다. 신앙은 누군가의 피와 목숨의 토대위에 이어져갑니다.)



교회 바닥은 모두 누군가의 무덤이다. ⓒ이범진


 

내일이면 우리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죠. 한 군데라도 더 보고가야 ‘남는 여행’이지 않을까. 조바심이 납니다. 문득 아까 안네 하우스에서 줄을 서지 않고 곧바로 입장하는 이들이 있었음이 떠올랐습니다. 


곧바로 인터넷 검색. 오! 인터넷 예약이 있습니다! 30분에 20명씩 인터넷 예매 고객을 받습니다! 당일은 안 되고 내일 입장부터 예매가 가능합니다. 공항가기 전 점심시간에 맞추면 됩니다.


터치, 터치, 터치.


두 사람 예매 완료! 1시 50분 바로 입장. 물론 내일은 월요일이니 오늘만큼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매를 한 거지요. 아내가 지켜보다가 엄지를 척 올리며 “역시 내 남편!” 합니다. 어깨는 하늘을 찌르고.

 

월요일 오후 1시30분. 안네 프랑크 하우스. 아... 어제보다 사람이 더 많습니다.


“와~ 이 사람들은 온라인을 잘 활용할 줄 모르나봐!”


어제 온라인으로 예매했으면 이렇게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추운 날,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는 그들을 걱정하는 말을 뱉지만 속으론 비웃습니다. 선진국 시민들도 별것 없구만! 나는 IT강국 한국에서 온 코리안이다! 당당하게 그 줄을 통과해 안네 하우스 내부를 향합니다.

 

안에는 안네가 숨어 지내던 당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이며, 세계지도 등 소녀가 꿈꾸던 자유가 아직도 이곳에서 잠복중인 듯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쏘이고, 외식을 하고... 소소한 자유마저 허락되지 않았던 소녀 안네의 답답함과 숨막힘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우리는 공장사람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낮에는 속삭이듯이 대화했고 걸을 때도 소리를 내지 않아야 했다.”(1942.7.11)


“낮에는 커튼을 단 1인치도 열 수 없었다.”(1942.11.28)


“밖에 나가 자전거도 타고 싶고 춤도 추고, 휘파람도 불고, 세상을 보고 싶다. 다른 아이들과 뛰놀고 싶고 내가 자유라는 것도 느끼고 싶다.”(1943.12.24)


“내일이면 버터나 마가린이 바닥날 것 같다. 오늘 점심은 으깬 감자와 절인 배추가 전부였다. 몇 년 된 절인 배추가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야.”(1944.3.14)


“언젠가 이 무서운 전쟁은 끝이 나겠지. 우리가 단지 유대인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정받는 날이 반드시 올 거야.”(1944.4.11)

 

 

결국 이 집에서 발각된 소녀는 수용소로 끌려가 처형을 당했습니다.(안네 프랑크, 1929~1945) 누가, 왜, 어떤 이유로 이 소녀의 생명을 취한단 말인가요. 적지 않은 독일인들은 자기 아파트에서 수용소를 내려다보며 처형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안네 하우스를 돌고 비장해진 저는, 읽을 수 없는 글자로 된 안네와 관련된 책을 샀습니다. 마치 그것으로 안네를 충분히 애도한 사람이라는 인증을 받듯이.

 

밖으로 나오자 줄은 더 길어졌습니다. 나는 에버랜드의 인기 많은 놀이기구를 먼저 타고 나오는 사람처럼, 맛집에서 이를 쑤시며 나오는 사람처럼 의기양양했습니다. 아직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고, 맛집에 들어가려고 줄 서 있는 이들을 놀리듯 말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결단코, 줄을 서야만 하는 ‘이유’를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크게보시려면 '클릭' ⓒ이범진



한국에 들어와서도 이 일은 저의 무용담이었습니다. 클릭 몇 번으로, 긴 줄을 이룬 많은 사람들을 앞지를 수 있었다고!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이라고 왜 인터넷을 활용할 줄 몰랐겠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다른 곳도 관광할 곳이 넘치는 곳이 암스테르담입니다. 굳이 여기서 줄을 서 몇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죠. 그들은 기꺼이, 결단코, 줄을 서야만 하는 ‘이유’를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는 최근 세월호 유가족 집회를 보며 깨쳤습니다. 6시간 이상 광장에 머물며, 무장한 경찰들과의 대치를 두려워하지 않는 집회 참가자들을 보고 말입니다. 유럽인들이 왜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서 '무식하게' 줄을 섰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것은 그들의 애도 방법이었습니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소극적인 대다수 인류가 침묵한 탓에 죽임당했던 안네를 애도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안네들, 짓밟힌 꽃송이의 애도를 위하여 그들은 기꺼이 한나절을 안네 하우스를 둘러싸는 데 보낸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며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막지 못한 국가 안전 시스템의 붕괴는 곧 사익에 눈이 먼 우리 어른들 탓임을 뉘우치며 광화문에 모여 줄을 서고 물대포 맞기를 기꺼이, 결단코 감당하는 그 ‘순수’ 국민들처럼.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온라인예약 여석이 은근히 많네?’


몇 시간 줄을 서서 안네 하우스를 둘러보기 원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예약을 몰랐을 리 없죠. 그건 그들의 여유이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공항시간 빠듯한 사람, 애도의 마음도 속전속결로 끝내고 바로 ‘다음 일정’을 밟아야 하는 실용적 인간들을 위해, 온라인 여석을 남겨주는 배려였을 것입니다. 그만하면 되었다. 지겹다. 경제는 살리고 봐야지. 세월호 유족들이 원하는 진상의 규명 없이 ‘다음 단계’로 갈 것을 강압하는 이들의 모습이 제 안에도 있었던 거지요.

 

인류가 역사로부터 배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네의 아버지는 안네 하우스를 보존해 세계에 공개했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그날 안네 하우스를 둘러싼 긴 인간띠는, 그 기다림의 시간은, 바로 역사를 아로새기는 시간이었을 테지요. 지루함을 이겨내야 비로소 애도의 감정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는가 봅니다. 


줄 서서 들어간 맛집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듯, 지루함을 견뎌낸 공복이 배움의 공간을 만듭니다. 참사의 슬픔을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내려 보내지 못하면 그것은 ‘관광’ 이상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에 세월호 참사도 ‘교통사고’쯤으로 받아들여지는 거겠지요.

 

빠른 게 좋은 거라는 나라에서, 경쟁에 최적화된 저에게 기다림은 참 어렵습니다. 지루한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추운 날씨에 온라인 예매도 모르고 무식하게 줄 서 있다고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이젠 그 조소가 부메랑처럼 저를 향해 되돌아오네요.


그러고 보니 평범한 소녀 안네 프랑크는, 세월호라는 수용소에 갇혀 수장된 우리 단원고 아이들과 같은 해(17)를 살았습니다. 



안네 프랑크.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해를 살았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서 구매한 책 표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다시 갈 일 있을까요? 

그때는 꼭, 긴 줄의 꼬리를 물겠습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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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1)


세월호 유족과 요플레 뚜껑


아는 후배의 페북 담벼락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와 비슷한 또래의 딸아이를 안고 임신한 아내와 함께 온 한 남성을 보았다. 인상은 굳어 있었고 불편해 보였다. 배속의 아기와 너무나 예쁜 딸아이의 아버지시니 그 충격적인 상황(광화문 유가족 시위 현장)에서 인상을 피기 힘드셨으리라. 짐작하며 눈으로 그 가족을 쫓았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툭 내뱉으시길 “세월호 반대파는 어디있는 거야?"라며 신경질을 부리시곤 그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마치 ‘세월호 찬성파’ 무리에 섞여 있는 게 불결하다는 듯. 그렇게 자리를 뜨셨다. 불쾌함을 심듯 성큼성큼 내딛는 발걸음 뒤로 임신한 아내의 종종걸음이 뒤따랐다.

… 그분이 찾아간 곳은 아마 채널에이 앞에 천막치고 앉아서 이승만 박정의 동상 건립 추진을 위한 서명운동 같은 불지옥에서 들어도 귀를 씻고 싶을 소리를 해대는 이들에게 갔겠지. 거기서 싸인하며 "세월호 반대파"로서의 자신에게 뿌듯함을 그리고 자녀들에게는 아버지의 승리감 넘치는 미소를 보냈겠지. 잔인한 4월. 너무도 잔인한 4월이다.


주변에 ‘세월호 반대파’는 왜 이리 많은 걸까요? 지난 월요일에는 취재 차 국회의사당 앞에 갔다가 1인 시위하는 분과 마주쳤습니다. 피켓을 읽어보니 ‘나라 지키다가 산화한 분들을 모시진 못할망정 놀러가다가 교통사고 난 희생자들에게 왜 보상금을 주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의외로 이런 단순한 논리가 먹히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아는 동생과의 식사하며 주고받은 대화입니다.


그 : “형, 얼마 전에 페북에 들어갔는데, 아직도 세월호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나 봐요?

나 : “응, 1주년이 곧 다가오기도 하고..”

그 : “형은 하지마세요. 국민들이 지겨워해요.”

나 : “너나 지겹겠지”

놈 : “다 해결된 거 아니에요? 유족들 돈 더 받자고.”

나 : “해결되긴 뭐가? 아직 유족들이 원하는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잖아.”

놈 : “금시초문이네요.”

나 : “네가 조중동만 봐서 모르는 거겠지.”


밥맛이 뚝 떨어졌는데요. ‘놀러가다가 교통사고 난 것’ ‘돈 더 달라는 시위’ 이것밖에 떠올릴 수 없는 걸까요? 유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삭발까지 하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외쳤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걸까요? 포털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유족들의 요구를 접할 수 있는데 ‘금시초문’이라니요. 이 동생의 말처럼, 정말 국민들은 지겨워하고 있을까요?


서민 교수는 이런 국민들이 모인 대한민국의 ‘29년 후’를 상상합니다. 2044년 세월호가 인양되는 순간,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할아버지 생각은 어떤데요? 그게 정말 교통사고인가요?”


“세월호 침몰 자체는 교통사고로 볼 수도 있지. 그런데 말이다, 달리던 버스가 사고가 났는데 운전자는 물론이고 그 뒤에 온 경찰이 승객들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고 해보자. 그 뒤 버스가 폭발해 모두 죽었다면, 그걸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불러도 될까?”

“그뿐이 아니야. 국방부 자료를 보면 해경은 해군의 최정예 잠수요원인 SSU 대원과 해군 특수부대(UDT) 요원이 도와주겠다는 걸 거절해. 또한 사고 직후 미군 소속 헬기 2대가 돕겠다고 왔지만 역시 해경의 거부로 그냥 돌아가지. 그뿐이 아니야. 구조작업을 돕는다고 전국에서 민간 잠수사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들의 도움 역시 거절해.”

그 뒤 이 말을 덧붙였다. 마땅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은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무려 7시간여 동안 행적을 감췄다고.


“그럼 국민들은요?”

국민 얘기를 하려니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졌다.

“슬프게도 우리 국민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적대시했어. 죽은 자식을 이용해서 한몫을 챙기려 든다고. 사실 유족들이 원한 것은 진상규명이었는데 말이야. 세월호 사건 후 한 달 반 만에 지방선거가 치러졌거든? 거기서 여당이 압승을 해요. 그 후에 있었던 재·보선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이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유족들을 대놓고 무시했지. 한 번만 만나달라고 사정해도 대통령은 듣지 않았으니까. 진상규명 특별법도 마지못해 통과시키기는 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어.”


손자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니까 지금 세월호가 30년 만에 인양이 되는 것은 35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탓도 있는 거네요.”


¶ 전문 보기 | ‘29년 후’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2015.3.18. <경향신문>


세월호 참사가 단순히 교통사고이고, 그들의 눈물이 단순히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한 행동이라 믿는 ‘국민’들을 배려해 조금 길게 따왔습니다. 읽는다고 바뀔까요. 힘들겠죠. 우리는 어떤 사안을 끈질기고 자세하게 들여다보기보다 한눈에 감을 잡고 ‘끝내기’를 원하니까요.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이 무엇인지는 관심 없고, 그들이 받을 돈이 얼마인지는 귀신같이 기억하는 국민들. 고백하자면 그 안에, 저도 살짝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사실 세월호 유족을 향해 ‘몇억’ 보상금 운운하며 ‘그 돈 받고 왜 난리냐’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진정 그 '몇억'이 절실한 이들입니다. 집 사느라 받은 대출금, 대학 다니느라 받은 대출금, 자식 유학 보내고 학원 보내느라 꾼 돈 등... 소득은 계속 줄어드는데 그 돈 갚아야 하니 계산은 안 나오고 '몇억'이 너무 절실한 거죠. 여기에 ‘실직’ ‘암 진단’ 같은 재앙이 찾아왔다고 생각해보세요. 유가족의 아픔에 닿지 못하고 오로지 그들이 받을 수 있다는 ‘돈’만 보이는 거죠.


유가족의 아픔에 닿지 못하고 오로지 그들이 받을 수 있다는 ‘돈’만 보이는 거죠. photo by imelenchon


이보다 쫌 비루한 이유지만, ‘몇억’이 있으면! 뽀대나는 외제차 한 대 구입해 명품 몸에 걸치고 친구들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절실합니다) 이 정부도, 언론도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보상’ 던져놓으면 여론이 소용돌이친다는 것쯤 이미 임상을 통해 알고 있고, 자기들 계획대로 밀어붙이면 그만입니다. (보상금을 받으면 세월호 사건에서 그 어떤 불법이 드러나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받지 않으면 보상금 한 푼 없이 몇 년, 수십 년이 될지도 모르는 긴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도 세월호는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습니다. 더 끔직한 사실은 이겁니다. 지난 글에서 살폈던 것처럼 이 싸움이 결국 ‘찌질한 을들의 전투, 베데스다 리그’는 아닐까 하는 겁니다. 그 ‘몇억’이 절실한 ‘일반직원’보다 50배 많은 연봉(약 30억)을 받는 대기업 경영자들은 오히려 유족들 아픔에 더 순수하게 다가가 깊이 공감하지 않을까요? 인간성으로 승부할 수 없다면, 약자들의 무기는 무엇이 남을까요? “너희는 왜 우리와 똑같이 일했으면서 수십 배의 연봉을 받아가느냐” 재벌들에 따져 묻기도 전에 자멸해버릴 것만 같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경영자들과의 임금 격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다행히 가난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 가난하게 살 결심한 사람들, 소중한 것을 잃어본 이들이 유족들의 마음에 가 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여기저기서 가난은 부끄러운 거라고 말하니, 저도 ‘몇억’이 보입니다.


내친김에 몇 억이 생기면 무엇을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일단 평지로 이사를 가고, 도로 위의 모세라는 람보르기니 뽑아줘야겠죠. 부모님 노후대책도 거들어야겠네요. 그리곤…. 뭐 얼마 남지 않겠네요. ^^; 검색해봤습니다. 다음은 ‘돈 생기면 꼭 해보고 싶은 사소한 사치 12가지’입니다. 하나하나 무척 공감이 되는. 


1. 요플레 뚜껑 핥아먹지 않고 그냥 버리기 ​

2. 결혼식 축의금 내고 쿨하게 밥 안 먹기 ​​

3. 마트에서 카트 뺄 때 넣은 100원짜리 그대로 두기

4. 쭈쭈바 꼭지만 먹고 버리기

5. 영화 볼 때 한 줄 통으로 예매하기​

6. 뷔페나 패밀리 레스토랑 가서 딱 한 접시만 먹고 나오기

7. 파리에서 사 온 바게트 빵으로 남산 비둘기들 모이 주기​​

8. 지하철 교통카드 환급금 안 받기​

9. 가격표 안 보고 쇼핑하기​​

10. 야식 종류별로 시켜놓고 한 입씩 먹기

11. 은행 수수료 안 따지고 ATM기계에서 돈 뽑기

12. 호텔에서 유료 서비스 마음껏 이용하기


¶ 전문 보기 | 돈 생기면 꼭 해보고 싶은 ‘사소한 사치’ 12가지 <인사이트>



이거 한 대만 사도 뭐.. 얼마 남지 않겠네요.photo by matt_geyer



꼴랑 편한 집, 좋은 차, 그리고 별로 절실하지 않은 사치들을 상상하느라 세월호 유족의 아픔에 닿지 못하고 있는 접니다. 저보다 더 치열한 상황에 내몰린, 신문 볼 여유도 없는 ‘국민’들은 세월호 이슈가 오죽이나 지루할까요. 이곳은 여전히 베데스다 리그입니다.



이범진/월간 <복음과상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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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 <성서조선>, 19403월호 -

해가 바뀌는 즈음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보니 어느 덧 안산 하늘공원이다. 가늘게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홀로 서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앞에 마주했다. 한 이름, 한 얼굴씩 눈에 새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기도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움이 클수록 또 분했다. 어이없는 죽음이라서, 너무 어린 죽음이라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직함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라서,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납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덧 저 아이들은 마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김교신의 표현이다. 1940, 일제 치하의 막바지에 김교신은 한 일본 무교회 잡지를 읽다가 큰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시즈오카에 사는 한 일본인 쌀장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조선인 근로자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주로 일거리를 따라 1~2년씩 거주하다가 타지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들은 모두 마지막 쌀값을 갚지 않고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쌀장수들은 조선인들에게 쌀을 팔 때에는 아예 그것을 계산에 넣고 저울추를 속여서, 그러니까 말을 적게 되어서 쌀을 팔았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었던 그 쌀장수는 저울추를 속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어서 그냥 정확하게 되어 쌀을 팔았고, 언제나 마지막 쌀값은 받지 못한 채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가 놀라 일본에 있는 지인에게 물은 뒤 김교신의 통탄어린 글이 이러하다.

혹시나 하여 쿠와나시 거주의 지우에게 물었더니 바로 그대로이고, 그 중에는 상당한 자산을 만들어 고향에 토지를 살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하면서도 역시 최후의 쌀값은 미불한 채 도망치는 동포가 상당히 많고, 그 때문에 정직한 사람끼리 누명을 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실로 기막힐 소식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쌀알 하나하나가 지금 성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외친다. 쌀알 하나하나의 대가가 지불되어 이 소리가 멈출 때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라? 김교신은 정통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네!’라며 비난하는 신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현재적 차원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교신의 저 통탄에 찬 외침은 예수께서 성전 중심의 속죄제의 의식을 무력화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과 우러름(信仰))이 구원의 삶을 얻게 할 것이라선언하신 참 의미와 맞닿아 있다.

 

 

예수 당시 평범한 유대인들은 참으로 궁핍하고 처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도, 유대 지방 정부에도, 그리고 유대교 성전에도 삼중으로 세금을 내야하는 까닭에 일상이 늘 빚쟁이이던 삶이었다. 변변치 않은 벌이에 강제로 걷어가는 세금을 채우자 하니 안식일이라고 쉴 형편이 아니었다. 안식일 법을 철저히 지키고 나는 경건하다 떳떳이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은 소위 있는 자들뿐이었다.

누군들 쉬고 싶지 않겠나! 안식일의 정신이 무엇이었나!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숨을 돌리게 하라는 지상명령 아니었나. 숨이 무엇인가? 루아흐, 생기, 하나님께서 무릇 생명을 가진 피조물들에게 불어넣어주신 그 숨을 돌릴 틈을 주는 것, 그게 안식일의 정신이었는데. 예수 시절, 하나의 형식적 규례로 굳어진 안식일 법은 오히려 그 법으로 가여운 평민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숨통을 조이는 올무가 되었다. 죄를 지었으니 죄사함을 위한 제의를 드려야 할 터. 하여 속제제의를 위한 제물이라도 준비하려면 그게 또 돈이다. 준비한 제물이나마 제사장들이 고이 받아주면 좋으련만, 이 양은 흠이 있다. 이 비둘기는 결격이다. 이리 퇴짜를 놓으며 미리 뒷돈을 받은 장사치에게로 이 가여운 사람들을 인도한다. 하여 죄사함을 받기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시세보다 더 많이 주고 제물을 사야하는 사람들. 그만큼의 돈이 없으면 그냥 죄인으로 고개 숙이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이 예수 당시의 이웃들이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죄인 만드는 성전 제사장들을 향하여 예수는 분노하셨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도둑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소리치시고, 장사판을 다 뒤엎으셨다. 죄의 용서는 사랑으로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얻을 것이요, 구원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길로 돌이키겠다는 회개그것 하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삭개오에게 선포된 구원(소테리아)은 그가 주여, 제가 남에게 부당하게 취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 결단했을 때 도래했다.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하나하나여, 여호와 앞에 호소하기를 잠시 유예하여 다오. 그대들에게 모조리 ・・・ 대가가 지불될 때까지 우리는 천국에의 입장권도 유예하여 노력하리라. 주 예수의 복음에 그 힘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오늘 우리가 저 하늘에, 꽃이 되고 별이 된 아이들에게 해야 할 약속인지도 모르겠다. 김교신의 절절한 고백은 식민사관의 연장선에서 한국인들의 민족성이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구원까지도 유예하면서 노력하겠다는 그의 각오는 회개(돌이킴)’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 구원의 여정과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다시 볼 일 없다고 제 몫의 삶을 정직하게, 책임 있게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구원받은 이의 삶일까! 비단 그리스도인들만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무책임한 삶, 비도덕적인 행위, 탐욕스런 실천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억울한 희생이 있다면, 그 하나하나를 갚아낼 때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적 삶을 그치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예수께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서이미 대가를 지불하신 구원을, 무슨 이유로 천국 입장권마저 유예하며 노력을 하나? 모르는 소리다. 예수께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서 이미 지불하셨던 것은 유대교적 속제제의가 담보한다는 죄의 용서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용서를 위해 제의를 드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는 막 살아도 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죄의 용서를 받은 이로써 합당한 삶, 자신이 그동안 이웃에게 행해온 부당함과 억울함을 갚아주고 다시는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하나님의 방향으로 삶을 돌이키는 것! 그것이 구원의 삶일진대, 오늘 우리가 한 생명 한 생명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쌀알은 세월호 아이들이고 송파 세 모녀이며, 곧 그처럼 될 만큼 삶이 위태로운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의 ’()을 도적질하거나 방관하는 한 우리도 구원의 삶에서 멀리 있다. 예수의 복음이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려면, ‘나만 구원받는 사적이고 이기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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