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3)

 

‘염려’없는 노동

- 전집 4권 『성서 연구』 「기독신자의 처세 원리」 -

 

 

임금피크제를 놓고 노사정간 의견조율이 안된다고 한참 시끄러웠다. 극적 타결을 보았다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니 결국 앞으로 차차 의논하며 적합한 제도를 만들어가자는 데‘만’ 합의를 한 모양이다. 그럴 일이다. 서로 “네가 양보해라”라고 주장하는 협상테이블에서 무슨 실질적인 합의가 나오겠나. 직업안정성이 있는 정규직이 날로 줄어드는 이 마당에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정규직 ‘부모’ 세대에게 ‘자녀’ 세대인 청년들의 고용창출을 위해 봉급을 깎자는 정부와 기업의 감성팔이는 생계형 노동현장을 살아가는 일반 시민정서에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만큼 ‘깎아서’ 청년들에게 ‘미래가 보장되는’ 어엿한 직장을 마련해준다면 모를까, 결국 더 싼 값에 유동적으로 대체가능한 임시계약직을 늘려놓고 ‘청년일자리창출’이라고 ‘아웅’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실은 그간의 진행방향을 볼 때 그 가능성은 ‘농후하다’).

 

더구나 함께 논의되는 ‘일반해고 규정’은 임의대로 마음껏 해고하는 수퍼갑질을 행사할 법적 권한을 기업 경영진들의 손에 쥐어주기 십상이다. 화가 난 서민들의 댓글은 한결같다. 우선 국회의원부터 임금피크제 하자, 일반해고규정은 공무원부터 적용하자는 주장부터, 일 안하고 월세로 펑펑 쓰고 사는 건물주들에게는 왜 고통분담을 요구하지 않느냐는 주장까지! 결국 성실한 노동으로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서민들과 노동형 중산층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읽혔다.

 

 

 

 

노동이 더 이상 정당하고 합당한 대가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세상! 숨 쉴 시간조차 없이 달려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들은 이제 자조적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서열화한다. 바야흐로 신(新)신분제의 도래다. 부모가 누구인지, 아니 할아버지가 어떤 경제적·정치적 ‘신분’인지가 나의 미래를 보장한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적으로 떳떳하게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라’고 외치던 양심적 청년들에게는 구금과 수천 만 원의 벌금형이 행사되고, 분명히 ‘불법’인 상습마약복용은 힘 있는 기득권층의 자제라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포된다. 마치 오래전 봉건제 사회처럼 이제 ‘꿈과 희망’이라는 미래보장형의 단어들은 ‘잘난 부모’ 만나 금수저 입에 물고 태어난 아이들에게만 주어져있을 뿐이다.

 

이런 마당에, 성실히 살아보겠다고 200만원~3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며 밤낮없이 뛰는 서민 가장들의 노동의 대가를 이리저리 융통하여 경기를 살려보겠다니... 그야말로 벽돌 밑장 빼서 위에 얹는 꼴이지 뭔가. 결국은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말이다. 무노동, 혹은 과대평가된 노동의 금전적 대가에 대한 합리적 세금 부과가 먼저라는 것은 너무나 ‘합리적’인 생각인데, 하필 의사결정권자들이 대부분 ‘무노동과 과대평가된 노동임에도 천문학적 대가를 받는’ 경우에 해당하다보니 그쪽 영역은 건드릴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농담이 나올까. 강남 몫 좋은 곳에 건물 몇 채 가지고 있는 집안 자손이면 그걸로 이번 생은 ‘할렐루야~’다.

 

이런 시절을 살아가면서, 성서적 가치를 이 땅에서 살아내고자 모인 공동체인 교회가 ‘대안’을 외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동 없는 부, 아니 노동의 윤리성조차 묻지 않은 채 무조건 ‘헌금 많이 내는 교인이 경건한 교인’이라는 획일적인 메시지가 선포되는 교회 강단이 여전히 많다.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예수의 산상수훈은 이렇게 ‘교회헌금을 많이 하라’로 등치되며 애용되는 설교의 본문으로 등장한다. 부자들에게만 하는 소리가 아니다. 구조조정을 당하여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신자들에게조차 ‘걱정말라’고, ‘믿음의 분량으로 헌금을 하면 결국은 잘 살게 된다’고 설득하는 설교에는 여지없이 이 본문이 등장한다.

 

정말 그럴까? 새들도 먹이시고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을 선포하신 예수의 설교(마태복음 6장, 누가복음 12장)는 있는 돈 탈탈 털어 교회에 헌금을 하면 앞으로 살아갈 염려는 붙들어놓아도 된다는 메시지인가? 이 본문에 대한 김교신의 묵상을 나누어 본다.

 

… 염려라는 원어 merimnao는 분파, 분배 등의 뜻으로부터(고린도 전서 1. 12-13 및 동 7. 34 참조) 염려, 초려 등의 뜻이 되었다. 땅과 하늘, 재물과 하나님 사이에 마음을 이분(二分)하는 일이 곧 가장 증오할 일이요, 헛된 일이기 때문이다. 제22절에 네 눈이 “성하면”이란 희랍어의 haplous 즉 ‘단일(單一)’이란 뜻이므로, 이 구는 ‘네 눈이 단일한 목적을 향하면 전신이 밝을 것이요’라고 번역할 수 있다. … 2개 이상의 목적을 관망하는 눈은 ‘흐린 눈’이요, 하나님이 꺼려하시는 것 중에 ‘두 마음’보다 더 심한 것이 없음은 십계명의 제 1절을 보아도 잘 알 것이다. … 요컨대 믿으려거든 단일하게 믿으라. 마음이 이분(二分)하는 거기서부터 벌써 신앙이 아니요 헛된 일이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사람이 어찌 먹고 사는 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요즘같이 아사(장기적비고용상태) 아니면 과로사(1인3역이 요구받는 노동혹사상태)를 할 경쟁적 직업 환경에서 어찌 ‘염려’가 없을까? 김교신은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의 이 말씀이, 하늘만 쳐다보면 다 해결된다는 맹목적 신앙도, 있는 돈을 다 털어 교회에 헌금하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신다는 투자성 신앙도 아님을 분명히 한다. 성실한 노동은 게으르면 안 될 일이다. 다만 ‘두 가지 마음’을 품는 ‘염려’가 헛된 일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괘씸한 일이라는 거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그것에 궁극적 마음을 두고 신자의 마음을 양분하고 눈을 ‘흐리게’하지 말라는 권고이다. 결과에 대한 염려는 불신앙이라는 말이다. 의롭고 성실하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이 세상에서, ‘그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마음으로 성실히 제 일을 해낸 뒤라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다. 행여 ‘먹고 살지 못하게 될까봐’(소위 ‘잘릴까봐’) 일하면서 불의와 타협하고 억울한 사람들 짓밟지 말라는 말이다. 신자의 마음을 양분하여 더 많은 물질적 축복을 바라는데 비중을 두고 투자하듯 헌금하지 말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노동 없는 부가 양산되고 ‘금수저’라고 찬양받는 이 시절에 대한 신앙적 물음 없이 먹고 입고 마시는 일에 신자의 눈을 ‘흐리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사도바울도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하였다. …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과 ‘근로 절검하라’는 교훈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요, 참으로 신종의 생활에 있어서 그날그날에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는 받은바 천직에서 분골쇄신으로 자자근로하여 ‘아버지가 지금도 노작하시니 나도 노작하노라’(요한복음 5장 17절)는 그 아버지를 초사한 자녀의 생활이 자연히 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고 하필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두려워해야 한다.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는데” “솔로몬의 지극한 영광”같은 삶이라고 여호와를 찬양할 일이 아니다. 목숨을 일각도 더할 수 없는, 하는 만큼 해 보았자 들의 꽃만큼도 아름답거나 영화롭지 못할 옷과 음식을 위한 ‘염려’(두 마음을 품음)는 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 본문의 핵심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성스럽다.’ 성(聖)이 무엇인가?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거룩한 영역이다. 힘 있고 돈 있는 특정한 권력층이라 해도 인간이 마음대로 소유선포를 할 수 없는 거룩한 것이 ‘성’스러운 것이다. 성서는 그 처음부터 노동하시는 신(神)을 고백한 텍스트다. 이 성스러운 노동은 모든 인간이 누려할 권리이며 의무이다. 많은 이들에게 성실하게 노동할 기회를 박탈하는 자, 또한 일하지 않고 입고 먹고 마시려는 자, 심지어 그런 ‘금수저’를 입에 물고 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두려움으로 마태복음 6장을 다시 읽어볼 일이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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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6)

  졸업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들

-졸업생에게1941. 5 -

 

가까이 아는 아이 하나가 어린 시절 학교 부적응으로 고생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당연히적응하기 마련인 선생님의 자리와 학생들의 자리 사이의 경계를 자꾸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무언가 설명을 하실 때 그것이 자기가 잘 아는 주제이거나 다른 생각을 나누고 싶으면 서슴없이 앞으로 나와 그야말로 열강을 한다는 거다. 선생님도 반 아이들도 당황스러워 수업은 늘 엉망’(다수의 표현)이 되었고, 결국 그 아이는 특수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너무나 총명하고 마음 따스한 아이였다. 하여 난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며 무척이나 마음이 상했다. 사실 그 아이와 어린 시절의 나는 다르지 않았다. 나도 그런 마음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 저 이야기에 얽힌 재미있는 걸 읽었는데, 앞으로 나가서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까? , 저 장소는 내가 아빠랑 많이 가본 곳인데, 칠판 가득 재미있는 그림과 더불어 아이들이 외우기 쉽게 설명하고 싶은데그런 생각들이 수업 도중에 쑥쑥 올라왔다. 어쩌면 그래서 선생이란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앞으로 쪼르르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던 이유는 교실의 자리 배치가 명시하고 있는 권위의 위계였다. 가르치는 한 사람과 배움을 받아야하는 다수, 미셸 푸코가 우리 대 그들의 통제 방식이라고 분석했던 그 공간 배치가 내 마음을 언제나 잡아챘다. 얌전히 내 자리를 지킨 덕분에난 일반학교를 무사히다닐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아도, 여전히 이상하다. 기초적인 것을 배워야하는 학교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전문성과 효율성을 고려한 공간 배치이니, 한창 배워야하는 아이들의 학습공간에서는 최선의, 최고의 통제 방식이라고 말한다면, 선뜻은 못해도 그럭저럭 끄덕일 수는 있다. 그러나 어른들이 모인 공간, 예를 들어 교회도, 강연장도, 세미나실도 모두 같은 배치다. 말과 행동을 주도하는 소수가 앞쪽 자리에 배치되고, 압도적인 다수는 그들을 향해 얌전히 앉는 구조다. 그게 싫은 나는, 연사로 초청받아 간 공간에서 좌석 이동이 가능하다 싶으면 종종 배치를 다시 하자고 제안을 한다. 동그랗게 말이다. 물론 그날 나눌 이야기 주제에 있어 소위 전문가의 입장이니 개념어 설명이나 주요 주제를 이야기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해도 좌석 배치가 우리 대 그들의 구조일 때와 동그란 원일 때의 역학(dynamics)은 상당히 틀리다. 강의 도중 쑥쑥 들어오셔도 좋다고, 실은 그게 더 반갑다고 말하고 시작한 동그란 원탁 모임은 언제나 즐겁고 참신한 질문이나 새로운 해석으로 풍요롭게 채워졌다. 그러나 단 하나의 선생님으로 강단에 서고 다른 이들을 모두 청중으로 배치한 공간에서는 늘 기승전결이 모노로그다. 하긴, 퀘이커가 아닌 다음에야 설교 도중에 갑자기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불쑥 마이크를 잡는 일반 성도를 정상이라고 생각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전문성과 효율성을 무기로 한 권위의 배치 방식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 그런지, 나는 김교신이 졸업하는 제자들에게 당부했던 한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을 했다. 오종종 앉아 전문가인 선생님의 수업에 눈을 맞추다 이제 막 중학교를 마친 졸업생들에게 김교신은 너희가 그동안 한 것은 어떻게 사전을 찾고 어떤 책과 자료들을 참고해야할 것인가를 배운 것뿐이라고 했다. 문법을 배웠고 도구를 익혔으니 읽고 사용하는 진짜 배움은 이제부터라고 말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김교신이 일상에서의 성경 읽기를 당부하며 설명한 공부의 방법이다.

단독으로라도 가하나 될 수 있거든 두셋 친구가 모여서 소인(素人)’들끼리 성서 연구를 시작하라. 적당한 친구가 없는 것을 탄식하지 말고, 없거든 친구를 만들라. 아무리 훌륭한 교회에 속하였고 고명한 교사의 강의를 들었다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성경 본문을 읽어 거기서 참 생명의 영량(靈糧)을 무궁하게 뽑아 마시지 못한다면 저는 자립한 신자는 못 되었느니라. 그 하는 말은 풍월에 지나지 못한 것이요, 그 드리는 기도는 모방 이외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몸소 성경 본문에 접전(接戰)하라. 문의(文意)가 틔어지고 흥미 나오도록 연구하라.

여기서 소인이란 비전문인을 뜻한다. 목회자도 아니고 신학생도 아닌, 그러니까 평신도들끼리의 성서 모임을 제안한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해석과 풀이에만 권위를 두고, 다른 참석자들은 수동적으로 그 풀이를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공부는 이제 졸업을 하라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공부를 통해 기초를 배웠으니, 이제는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상상하라는 제안이다. ‘풍월이나 모방에는 생명이 없으니 스스로 서라(自立), 선생님의 마지막 훈계다. 너는 이제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붙잡고 씨름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낼 권위가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맞나요? 틀리나요?” 대학생이 되어서도, 인문학 강의를 듣는 중에도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 답의 옳고 그름을 확인하려 드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어디가 중요한가요?” 텍스트와 씨름할 생각이 아예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늘 밑줄도, 해석도, 중요한 시험 범위도 선생님이 다 정해주었으니 아이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우리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요.” 목사님의 성서 풀이와 조금만 달라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을 내는 평신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읽으면 이단 되는 거 아니에요?” 언제 권위를 부여받아 보았어야지 말이다. 자신의 삶 한 가운데서 팔팔 살아 역사하는 말씀으로 받아 제 목소리로 풀고 의미부여하는 법을, 우리네 평신도들은 배워본 바가 없다.


슬프다. 어른이 되고 이제 앞에 배치된 강단에 서고 어느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로 대접받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슬프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일깨워 주고, 때론 정말 낯선 모습으로 불쑥 도전을 주는 ()’의 존재와, 함께 씨름하고 서로에게 권위를 부여하며 공부하고 싶은데그러려 하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 학문이 점점 더 깊어지고 고매해진 까닭이 아니다. 지식 습득의 현대적 통제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몸매와 얼굴만 착해진 것이 아니다. 뇌까지 착하게순응한다. “착하다라는 말이 이렇게나 슬픈 말인 줄 처절하게 깨닫는 요즘이다. 젊은이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다. ‘착하지 않게내 생각을 말하고 내 주장을 펼치면, 오늘의 통치 구조에서 어떤 불이익을 당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기독교 평신도들의 경우는 더 안타깝다. 내 생각을 하고 내 주장을 펼칠 기회를 제공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애써서 졸업할 일이다.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유일한 직립 생명체인 인간이라면, 남이 먹여준 지식과 신앙의 언어들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일은 그쳐야하지 않을까? 이제 시작하자. 내 영혼으로, 내 몸으로 부딪히고 씨름하고 고민해서 탄생시킨 나의 의미, 나의 언어에 권위를 부여하자. 그 언어로 를 만나자. 그렇게 우리 인생이 한판 신나는 마당놀이 같은 학습공간이기를 꿈꾸어 본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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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5)

을(乙)의 지형학
-「조선지리소고」 1934. 3 -

 

김교신의 전공은 지리 박물이었다. 19274월 함흥의 영생여자고등학교를 첫 부임지로 하여 이후 양정고등학교, 경기중학교, 그리고 마지막 송도고등학교까지 약 15년 간 강단에 섰다. 양정에서의 12년이 가장 긴 시간이었고, 사상이 의심된다거나 불온하다는 눈초리를 받다 결국 1942<성서조선사건>으로 투옥되면서 교사 생활을 완전히 접게 되었다.

그에게서 지리 박물을 배운 학생들은 회고하기를 그저 딱딱한 지형에 대한 수업이 아니었다고 했다. 특히나 한국 지리를 배울 때면 각 지역에 얽힌 조상들의 얼을 함께 가르쳤으며, 일제가 한글 수업을 금지했음에도 당당하게 조선말로 조선혼을 심어주셨다고 전한다. ‘무레사네라는 모임을 통해 우리 강과 산을 학생들과 함께 탐사하며 땅에 스며든 민족정기를 느끼도록 애쓰기도 했다 한다. 지리 전공자로서 조선의 산천을 바라보며 그가 남긴 짧은 논문인 조선지리소고는 그가 가르치고 싶었고 결국에는 세상에 내어놓고 싶었던 조선의 정신을 노래한 연가(戀歌).

우황 산세와 평야의 배열 균형의 미를 논할진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화에나 비할까, 뉴욕 부두에 높이 솟은 자유의 여신상에다가 비할까. 낭림산 머리 위에 하늘을 향한 좌완을 백두산 저편까지 높이 뻗치고 장산곶 끝까지 우완을 드리워 어루만지려는 듯, 우각의 태백산은 거제까지 굽혀 올리고 좌각의 소백산은 진도까지 뻗쳐 디딘 듯. 지구대는 허리에 잘룩하고 금강산은 가슴에 드리운 노리개인 듯, 몸을 가리운 능라(綾羅)가 동풍에 나부끼어 녹색 평야를 이루었으니 엷고도 가볍다. 선녀 바야흐로 구름 위로 솟아오르려는 자태인가 혹은 자유의 여신이 대륙을 머리 위에 이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형상인가.

나는 전공자가 아니니 김교신의 한국 지형학에 대해 학문적 판단을 할 재량은 없다. 또한 페미니즘적 잣대를 들이대어 여성과 땅의 타자화운운 할 생각도 없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내 마음에 박힌 것은 지배적인 식민사관 아래 한반도의 지형조차 부정적으로 평가받던 시절에, 같은 지형을 저리 아름답고 찬란하게 응시할 수 있었던 김교신의 소망스러움이다. 왜곡이나 맹목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지형에 담은 소망이었다. 땅의 협소함이나 백성 수의 적음, 평야의 부족함과 산천의 작은 규모에 대해서는 부정보다 달리봄을 택했다.

 

대동여지전도 (소장: 숭실대학교 박물관, 연대: 1860년대(김정호 제작), 형태: 목판본, 보물 제850호)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해안선에 대한 묘사에서도, 온대지방에 위치하여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음에도, 김교신은 하나님께 감사에 감사를 더 했다. 아니, 실은 이미 감사하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시선이었다. 강수량이 빈핍한 까닭에 서양보다도 200여년이나 앞서 측우기를 발명할 수 있었고, 공중에 운량(雲量)이 희박한 까닭에 일찍이 천문학이 발달되었다며, ‘화를 복으로 이용하는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칭찬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지형론이 흥미롭다. 지정학적 결정론도 아니요 정신의 승리만을 외치는 관념론도 아니다. 이미 주어진 우리의 땅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이 땅에 살고 있음으로 해서 겪는 모든 일들을 정신으로 승화시켜 복된 땅을 만들자는 주장이니 말이다. 김교신의 지형론은 소위 반도론이다. 반도로서의 우리 땅은 결코 대륙에 붙어 큰 외세에 의지해 살아야만 하는 비주체적 공간도 아니요, 섬나라 일본의 대륙진출 야망에 길목을 내어주는 도구적 공간도 아니다. 고대의 희랍-이태리 반도가, 근대 초기의 덴마크 반도가 가졌던 소통의 활발함을 상기시키며, 김교신은 근대 사상사에서 한반도가 갖는 지형론적 소명을 굳게 믿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닫는다. 겁자에게 안전한 곳이 없고 용자에게 불안한 땅이 없다고. 무릇 생선을 낚으려면 물에 갈 것이요, 무릇 범을 잡으려면 호굴에 가야 한다. 조선 역사에 영일이 없었다 함은 무엇보다도 이 반도가 동양 정국의 중심인 것을 여실히 증거하는 것이다. 물러나 은둔하기에는 불안한 곳이나 나아가 활약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다시 없다. 만약 눈을 돌려 정신적 소산, 영적 생산의 파악에 향한다면 반도에는 특이한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상이나 발명은 모르나 지고한 사상, 즉 신의 경륜에 관한 사상만은 특히 가난하고 약하고 멸시당하고 유린당하여 생래의 교만의 뿌리까지 뽑힌 자에게만 계시되는 듯하다. 동양의 범백(凡百) 고난도 이 땅에 주집(湊集)되었거니와, 동양에서 산출하여야 할 바 무슨 고귀한 사상, 동반구의 반만년의 총량을 대용광로에 달이어 낸 엑기스(精素)는 필연코 이 반도에서 찾아보리라.

제국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이 논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적 단짝이었던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를 함께 읽어야 할 것 같다. 스무 개의 시리즈 논문으로 <성서조선>에 실었던 함석헌의 한국사 풀이가 진행된 시점이 19342월부터이니, 동인이요 편집장이었던 김교신이 함석헌이 주장하는 고난의 메시아적 해석을 함께 나누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함석헌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세계열강의 침략 대상이 되어온 한국의 역사를 세계사를 위해 대신 진 가시면류관으로 표현했었다. 현재의 한반도는 욕심투성이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이 퍼다부은 쓰레기들이 모여 들어오는 세계사의 하수구라고 말했다.(전집1: 73) 뜻 모르고 겪는 고난은 재난이지만, 악이 응집된 이 땅에서 이를 그치려는 정신으로 고난을 승화시킬 수 있다면 이 고난은 옥을 닦는 돌이요 세계를 구하는 힘”(전집1: 303)이 될 것이라, 함석헌은 그리 믿었다. “물러나 은둔하기에는 불안한 곳이나 나아가 활약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다시없다는 김교신의 선언이나 동반구의 반만년의 총량을 대용광로에 달이어 낸 엑기스는 필연코 이 반도에서 찾아보리라는 그의 당찬 소망은 함석헌이 믿었던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의 메시아적 선포와 맞닿아 있다.

한 마디로 김교신의 한반도론은 ()의 지형학이다. 그러나 이유 불문 꿇어야하고 제 뜻은 없애고 강자에게 귀속되는 그런 이 아니다. 김교신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른 사상은 몰라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시기를 원하는 질서에 대한 사상이라면, 이를 상상해내고 깨달을 인식론적 특권은 가난하고 약하고 멸시당하고 유린당하여 생래의 교만의 뿌리까지 뽑힌 자들만이 누리는 것임을! 오늘 이 땅에서 당신의 삶의 자리가 의 자리인가? 그렇다면 기뻐하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그대에게 더 가까이 있다. 오늘날의 한국 땅이야 말로, 일찌감치 사라졌어야할 봉건주의적 잔재와, 사람을 갈아 끼우는 기계 부속품쯤으로 여기고 효용가치에 따라 쓰고 버리면서 이를 고용 유연성이라 이름하는 투자-금융자본주의의 폭력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컬어서 세속적 욕망을 포장하는 기업-교회들의 구조적 불의가 그야말로 집약되어 작동하는 공간이니 말이다. 더 이상 물러나 은둔할 공간도 없지 않나. 주저앉아 넋 놓고 당하면 재난이지만, 애통하고 연대하는 주체로 서서 이 비인간적이고 불평등한 현재의 시스템을 극복할 사상을 내어놓을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들 의 위치는 은혜다. 감사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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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4)

버텨라, 버티자
(조와(弔蛙), <성서조선> 1942년 3월)

 

‘한 시간에 740만원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에 주차요원을 꿇릴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던 ‘백화점 모녀’마저 사회정의를 외치는 시절이다.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단다. 한참 동면 중인 ‘개구리’도 들었다면 웃을 이야기다. 그들이 ‘바로 잡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의 사회적 배치 속에서 VIP(아주 중요한 사람)로 자리한 사람에게는 무한 존경과 절대 복종을 표시하는 사회,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바른’ 사회였을까?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는데, 그랬다면 740만원 씀씀이나 남편의 권력에 대한 언급은 불필요했을 일이다. ‘내 남편 한 마디면 너희들 다 잘려!’가 어찌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성을 만들 수 있는 선언일까!

 

세상이 온통 꽁꽁 얼음판이다. 생명이 버텨내기에 너무나 버거운 시절이다. 지난 연말, 새로운 계약을 많이 체결하여 영업능력을 인정받으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2주 동안 시린 손 언 발로 뛰어다녔을 젊은 ‘수습’ 사원들은 정직원 승급 평가가 있던 날 전원 해고되었다. 회사는 모두가 자격미달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이 시절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우리는 직감적으로 안다. 아, 새로운 계약 건수가 필요했구나, 하여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2주 동안 바짝 뛰어줄 ‘알바’ 인력을 구했던 거구나, 하지만 ‘알바’라 하면 설렁설렁 대충 뛸 터이니 성과를 보고 승급기회를 결정하는 ‘수습’사원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던 거구나! 고용하던 때부터 이미 회사는 ‘쓰고 버릴’ 생각이었고, 이에 더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고용의 기술’을 발휘한 거구나!

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세상이다. 고용주들에게 노동자는 이제 ‘쓰고 버릴 물건’이다. 최근 ‘땅콩 회항’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세간의 화재가 되었던 항공사의 오너 일가는 기내의 직원들을 ‘기물(비행기 안의 사물)’이라 불렀다 한다. ‘쓰이고 너무나 일찍 버려지는’ 까닭에 생명들이 죽어나간다. 스스로 죽고, 남도(가족도) 죽이는 세상이다. 새벽에 일어나 아내와 두 딸의 목을 조르는 가장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허나 그의 참담한 심정이 어떤 것이었을지는 알겠다. 그동안 ‘폼 나게’ 쓰였겠으나 결국은 그도 쓰고 버려진 존재다. 일단 버려지면 하찮은 존재, 실패자로 배치되는 이 사회에서, 그는 현재의 배치와 굴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겠지. ‘쓰고 버려지는’ 참담함을 나 역시 겪어보았기에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마음이 무겁다. 아리다. 하여 결국은 엎드린다. 기도조차 애가(哀歌)다. 한참을 엎드려 있자하니, 김교신의 기도 글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만든 성전이다. 이 반상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 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대변사가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들. 때로는 5-6마리, 때로는 7-8마리.

‘조와(弔蛙)’ 앞부분이다. 늘 기도하던 신앙의 사람이었으니 이 장면이 새로울 건 없다. 다만 1942년이라는 시점과 조용한 산중에서 홀로 무릎 꿇고 그가 했을 기도의 내용들을 상상해보니 그 역시 절절한 애가(哀歌)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가 『성서조선』을 시작한 것이 1927년이었다. 시절이 악하고, 그래서 사람들도 자꾸 악해지거나 약해지지만, 성서에 담긴 자유혼을 외치며 전하다보면 조금씩 소망스런 일들이 생겨날 거라 믿었으리라. 그러다가 1942년! 무려 16년의 긴 세월동안 그가 간곡함을 담아 ‘들어라! 제발 들어라!’ 외쳤던 복음(福音)이 땅에 심기우고 자라기도 전에, 휘몰아치듯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일제의 폭력이 조선인의 마음을 정신을 영혼을 꽁꽁 얼려버리는 사태를 목도했으리라. 하늘로부터 받는 힘과 용기가 그치지 않았으나, 현실을 보며 어찌 애통함과 절망감이 없었을까!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도했다는 그의 표현이 오늘따라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간구하다가 절규하고, 소망을 담다가 순간 절망하고, 바위 위에 엎드린 그는 필시 그랬을 거다.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이 일부일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성서조선>의 외침이 조선인들에게 들리는지 아닌지, 거대한 일제의 탄압에 행여 동면하는 개구리들 마냥 하루하루 생명의 기력을 다해가는 것은 아닌지, 그의 안타까운 심정이 한 구절 한 구절 살아서 전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읽으면서도 몰랐다. 개구리들이 들어봤자 기도와 찬송을 이해나 하나? 뭐, 이런 걸로 일제는 잡지를 폐간하고 12명의 지인들과 함께 1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했나? 그러고 보면 일제의 검열 담당자들은 문학적 이해와 사회학적 성찰이 꽤나 깊었던 것 같다. 행간을 읽어낸 그들은 다음의 마무리에서 이 글의 힘을 제대로 보았다.

봄비가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 이런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두려웠을 일이다. ‘봄비가 쏟아지는 날’ 말이다. 지배자들이 만든 폭력적 시스템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봄비, 그 따듯한 은혜의 비가 살살도 아니고 ‘쏟아져’ 내린다면, 하여 자신들이 곤고하게 설계해놓은 세상의 질서와 사회적 배치가 다 허물어져버린다면, 하여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도 잊고 그냥 숨죽이고 머리 조아리고 동면한 듯 지내던 사람들(조선인들)이 생명의 기운을 얻고 스스로 살아내겠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들에게는 얼마나 두렵고 끔찍한 일일까. 자신들의 위용이 아직 단단한 시절에도 소망을 버리지 않고,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미래를 현재로 불러오며 당당하게 외치는 저 믿음이, 소망이, 각오가 어찌 두렵지 않았겠나! 하여 자신들이 만든 세상을 유지하고 싶었던 이들에게, 김교신의 이 글은 ‘읽혀서는 안 되는’ 내용이었을 거다.

봄은 온다, 어김없이! 생명을 위협하는 단단한 얼음 같은 이 시스템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쓰고 버리는’ 노동력으로 대하는 이 악한 제도도 녹아내릴 것이다, 결국은! 그러니 개구리 같이 미약한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이여, 당신이여 나여, 우리여, 버텨라. 버티자. 이 얼음 빙벽의 틈에 봄을 불러오는 팔팔한 산 신앙을 꽂아 넣으며, 이 시스템에 균열을 내며, 기다리자. 어느 날 은총 같이 내릴 봄비를...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애로 서로를 동등하게, 존귀하게 여기며, 함께 모두가 사는 시스템을 건설하게 될 그 날을...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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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9-

 

 

첫째로 손 군은 우리 학교의 생도요, 우리도 일찍이 동경-하코네 간역전경주의 선수여서 마라톤 경주의 고()와 쾌()를 체득한 자요, 손군이 작년 113일 동경 메이지 신궁 코스에서 2시간 2641초로써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할 때는 선생님 얼굴이 보이도록 자동차를 일정한 거리로 앞서 모시오하는 요구에 설마 선생 얼굴 보는 일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하면서도 이 때에 생도는 교사의 심장 속에 녹아 합일되어 버렸다. 육향교 절반 지점부터 종점까지 차창에 얼굴을 제시하고 응원하는 교사의 양 뺨에는 제지할 줄 모르는 열루(熱淚)가 시야를 흐리게 하니 이는 사제 합일의 화학적 변화에서 발생하는 눈물이었다.

 

김교신이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마라톤 우승을 기뻐하며 쓴 글의 일부이다. 1936년이니 일제치하의 한 중간, 나라 잃은 백성이라 일장기를 달고 뛰었지만 그 가슴에 품은 마음이야 어찌 자유 잃은 종의 마음이었을까! 올림픽 우승 후 손기정 선수가 우승의 비법이 작전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더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김교신은 제자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 글을 썼다.

 

동경 고등사범학교에서 지리박물을 전공하고 양정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의 제자가 손기정이다. 체격이 좋고 만능운동가였던 김교신은 스스로도 마라톤 선수로 뛴 경험이 있었다. 비록 체육교사는 아니었지만 본인의 경험과 사제 간의 신의로 김교신은 손기정 선수의 훈련을 도왔다. 스승과 사제 간의 간절함과 서로간의 믿음이 얼마나 두터웠으면, 늘 함께 해주신 선생님에게 한 발 앞서 얼굴을 보여 달라그리 청했을까. 김교신도 자문하듯이, ‘설마 선생 얼굴 보는 일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싶을 일이다. 선생은 자동차로 앞서 갈 뿐인데 상식적으로 그것이 제자의 뜀박질에 물리적 힘을 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날 스승과 제자는 사제 합일의 화학적 변화를 느꼈다 한다. 스승의 얼굴을 보며 뛰는 제자의 다리만 힘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필사의 힘으로 뛰고 있는 제자를 보며 자동차 안에 있는 스승 역시 함께 뛰는 양, 뺨이 상기되고 뜨거운 눈물과 함께 제자의 가쁜 숨을 함께 느꼈다.

 

 

손기정 선수 동상 (출처: InSapphoWeTrust (https://www.flickr.com/photos/skinnylawyer))

 

 

줄탁동시!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이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올 때쯤 되면 안에서 밖을 향하여 껍질을 쪼면서 어디가 얇나, 어디로 뚫고 나가나부리질을 한다고 한다. 그게 이다. 한편 이제나 저제나 아기병아리를 기다리면서 달걀을 살피는 어미 닭이 아하, 요 녀석이 여기를 쪼고 있구나!’ 발견하고 바깥에서 함께 같은 곳을 쪼아주는 것이 이다. ‘이 동시에 일어날 때 생명은 탄생하는 것이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넉넉한 살림도 아니요 떳떳한 참가도 아닌, 남의 나라 국기를 달고 발달이 남다른 서양인들 사이에 끼어서 인간에게 극한의 한계를 경험하며 마라톤을 뛴다는 것. 선생도 제자도 그 물리적 고통을 알고, 이 소망 없는 상황을 아는데, 그래도 기어이 뛰겠다는 제자의 간절한 으로 응답하는 스승은 어느덧 서로의 심장 속에 녹아 합일되는 체험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날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641초의 세계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같이 뛰어 가능했을 일이다. 두 사람의 진심이 화학적 변화를 일으켰으니 가능했을 일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그 기억으로 손기정 선수는 다음 해 베를린에서도 자신의 스승과 함께 뛰었을 것이다. 비록 몸은 함께이지 못했으나 고국에서 스승 김교신도 마음을 모아 제자와 함께 뛰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특한 제자가 승패는 작전과 체력에 있는 것이 아니요, 정신의 겸허함에 있더라고백하는 것을 접하며 감사하고 감격했을 일이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의 경쟁력이 국제적이라는 소리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손기정 선수 때부터 알아보았을 일이고 김연아, 박태환, 손연재는 장한 배달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도 아니다. ‘줄탁동시의 사제 관계가 상실된 오늘의 교육 현장 한복판을 지내면서 이 글을 읽자하니 내 심장에도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아련한 슬픔마저 휘감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절 소신을 가지고 교단에 섰던 김교신이 일제의 탄압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결국은 15년으로 교사 생활을 접고 말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그가 산 신앙과 민족혼을 오롯이 담아 교단에서 전했던 지식은 또렷또렷한 정신과 몸을 가진 젊은 생명들을 탄생시켰다. 훗날 그의 제자들이 스승 김교신을 회고하며 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한국 근대사의 모든 자리에서 올곧고 바른 정신으로 살아낸 사람들이 거기 다 모여 있었다. , 한 사람의 힘, 아니 줄탁동시를 끌어내는 한 스승의 힘이 이렇게나 컸던가!

 

비교할 수 없이 모자란 스승이지만, 어느덧 강단에 선지 10. ‘’ ‘몸짓을 해도 ’ ‘마음과 행동을 맞춰주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간다고 한탄을 하다가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본다. 비인격적 개별경쟁으로 아이들을 내몬 이 시스템 때문이야, 사제 관계가 사라지고 학습소비자-정보제공자의 자본주의적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이 문제야, 그렇게 속상해하다가, 다시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김교신의 시절에 비할 바이던가, 모국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조차 허용치 않던 그 험한 시절에도 줄탁동시로 젊은 생명들을 알에서 깨우고 팔팔하게 세상에 내어놓은 참 스승이었는데부끄러움과 함께 또한 힘을 얻는다.

 

마라톤에도 무엇보다 인내력이 제일이다. 때에 공중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저의 심사에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높은 것을 낮추시고 낮은 것을 높이시며, 강한 자를 꺾으시고 약한 자를 세우시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의 속성, 태초 이래로 계속 ’ ‘하시면서 피조물 간의 화해와 평등의 공동체를 만들 제자들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답이로구나. 그 인내를 기억하며, 그 얼굴을 바라보며, 숨이 깔딱거리지만, 지금이라도 멈추고 그냥 주저앉고 싶지만, 그래도 결국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영원한 스승과 임마누엘하면서 화학적 변화로 살아내야 하는 거구나! 하나님께는 ’, 내게 온 예쁜 아이들에게는 하면서 그리 하루씩 살아내야 하겠구나!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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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 <성서조선>, 19403월호 -

해가 바뀌는 즈음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보니 어느 덧 안산 하늘공원이다. 가늘게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홀로 서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앞에 마주했다. 한 이름, 한 얼굴씩 눈에 새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기도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움이 클수록 또 분했다. 어이없는 죽음이라서, 너무 어린 죽음이라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직함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라서,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납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덧 저 아이들은 마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김교신의 표현이다. 1940, 일제 치하의 막바지에 김교신은 한 일본 무교회 잡지를 읽다가 큰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시즈오카에 사는 한 일본인 쌀장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조선인 근로자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주로 일거리를 따라 1~2년씩 거주하다가 타지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들은 모두 마지막 쌀값을 갚지 않고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쌀장수들은 조선인들에게 쌀을 팔 때에는 아예 그것을 계산에 넣고 저울추를 속여서, 그러니까 말을 적게 되어서 쌀을 팔았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었던 그 쌀장수는 저울추를 속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어서 그냥 정확하게 되어 쌀을 팔았고, 언제나 마지막 쌀값은 받지 못한 채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가 놀라 일본에 있는 지인에게 물은 뒤 김교신의 통탄어린 글이 이러하다.

혹시나 하여 쿠와나시 거주의 지우에게 물었더니 바로 그대로이고, 그 중에는 상당한 자산을 만들어 고향에 토지를 살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하면서도 역시 최후의 쌀값은 미불한 채 도망치는 동포가 상당히 많고, 그 때문에 정직한 사람끼리 누명을 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실로 기막힐 소식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쌀알 하나하나가 지금 성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외친다. 쌀알 하나하나의 대가가 지불되어 이 소리가 멈출 때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라? 김교신은 정통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네!’라며 비난하는 신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현재적 차원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교신의 저 통탄에 찬 외침은 예수께서 성전 중심의 속죄제의 의식을 무력화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과 우러름(信仰))이 구원의 삶을 얻게 할 것이라선언하신 참 의미와 맞닿아 있다.

 

 

예수 당시 평범한 유대인들은 참으로 궁핍하고 처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도, 유대 지방 정부에도, 그리고 유대교 성전에도 삼중으로 세금을 내야하는 까닭에 일상이 늘 빚쟁이이던 삶이었다. 변변치 않은 벌이에 강제로 걷어가는 세금을 채우자 하니 안식일이라고 쉴 형편이 아니었다. 안식일 법을 철저히 지키고 나는 경건하다 떳떳이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은 소위 있는 자들뿐이었다.

누군들 쉬고 싶지 않겠나! 안식일의 정신이 무엇이었나!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숨을 돌리게 하라는 지상명령 아니었나. 숨이 무엇인가? 루아흐, 생기, 하나님께서 무릇 생명을 가진 피조물들에게 불어넣어주신 그 숨을 돌릴 틈을 주는 것, 그게 안식일의 정신이었는데. 예수 시절, 하나의 형식적 규례로 굳어진 안식일 법은 오히려 그 법으로 가여운 평민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숨통을 조이는 올무가 되었다. 죄를 지었으니 죄사함을 위한 제의를 드려야 할 터. 하여 속제제의를 위한 제물이라도 준비하려면 그게 또 돈이다. 준비한 제물이나마 제사장들이 고이 받아주면 좋으련만, 이 양은 흠이 있다. 이 비둘기는 결격이다. 이리 퇴짜를 놓으며 미리 뒷돈을 받은 장사치에게로 이 가여운 사람들을 인도한다. 하여 죄사함을 받기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시세보다 더 많이 주고 제물을 사야하는 사람들. 그만큼의 돈이 없으면 그냥 죄인으로 고개 숙이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이 예수 당시의 이웃들이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죄인 만드는 성전 제사장들을 향하여 예수는 분노하셨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도둑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소리치시고, 장사판을 다 뒤엎으셨다. 죄의 용서는 사랑으로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얻을 것이요, 구원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길로 돌이키겠다는 회개그것 하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삭개오에게 선포된 구원(소테리아)은 그가 주여, 제가 남에게 부당하게 취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 결단했을 때 도래했다.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하나하나여, 여호와 앞에 호소하기를 잠시 유예하여 다오. 그대들에게 모조리 ・・・ 대가가 지불될 때까지 우리는 천국에의 입장권도 유예하여 노력하리라. 주 예수의 복음에 그 힘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오늘 우리가 저 하늘에, 꽃이 되고 별이 된 아이들에게 해야 할 약속인지도 모르겠다. 김교신의 절절한 고백은 식민사관의 연장선에서 한국인들의 민족성이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구원까지도 유예하면서 노력하겠다는 그의 각오는 회개(돌이킴)’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 구원의 여정과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다시 볼 일 없다고 제 몫의 삶을 정직하게, 책임 있게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구원받은 이의 삶일까! 비단 그리스도인들만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무책임한 삶, 비도덕적인 행위, 탐욕스런 실천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억울한 희생이 있다면, 그 하나하나를 갚아낼 때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적 삶을 그치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예수께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서이미 대가를 지불하신 구원을, 무슨 이유로 천국 입장권마저 유예하며 노력을 하나? 모르는 소리다. 예수께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서 이미 지불하셨던 것은 유대교적 속제제의가 담보한다는 죄의 용서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용서를 위해 제의를 드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는 막 살아도 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죄의 용서를 받은 이로써 합당한 삶, 자신이 그동안 이웃에게 행해온 부당함과 억울함을 갚아주고 다시는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하나님의 방향으로 삶을 돌이키는 것! 그것이 구원의 삶일진대, 오늘 우리가 한 생명 한 생명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쌀알은 세월호 아이들이고 송파 세 모녀이며, 곧 그처럼 될 만큼 삶이 위태로운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의 ’()을 도적질하거나 방관하는 한 우리도 구원의 삶에서 멀리 있다. 예수의 복음이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려면, ‘나만 구원받는 사적이고 이기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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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

 

응답하라. 2015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1927년으로부터 온 편지

- <성서조선> 창간사 -

 

19277, 6인의 조선 젊은이들이 <성서조선>이라는 동인지를 창간했다.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되어버린 세월호 참사 이후 나라의 현재를 암담해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이 시절보다도, 더 희망이 없던 일제치하였다. 동인 중 하나였던 함석헌의 표현처럼 끌려가듯일본 땅에서 낯선 타자로 살며 바다 건너 조국을 지켜보자니, 젊은 지식인이요 신앙인인 이들의 참담한 마음이 더욱 깊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걱정을 같이 하고 소망을 일궤에 붙이는 우자(愚者) 5-6인이 동경 시의 스기나미촌에 처음으로 회합하여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고 매주 때를 기하여 조선을 생각하고 성서를 강해하면서 지내온 지 반년에 누가 동의하여 어간의 소원 연구의 일단을 세상에 공개하려 하니 그 이름을 성서조선이라 하게 되도다. 명명(命名)의 우열과 시기의 적부(適否)는 우리의 불문하는 바라. 다만 우리 염두의 전폭을 차지하는 것은 조선두 자이고 애인에게 보낼 최신의 선물을 성서 한 권 뿐이니 둘 중 하나를 버리지 못하여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 기원은 이를 통하여 열애의 순정을 전하려 하고 지성의 선물을 그녀에게 드려야 함이로다.” (<성서조선> 창간사 중)

 

 

 

 

그랬다. 주저앉아 울 수도, 숨어 탄식만 할 수도 없었던 조선의 청춘 여섯(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유석동)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두 존재를 삶의 기반으로 양 손에 꼭 쥐고 하루씩 살아냈고, 그 치열함을 글로 담아 조국에 선물했다. 자기 실존 안에서 주체적으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스승 우치무라 간조가 두 개의 ‘J’(저팬과 지저스)를 꼭 붙들었듯이, 조선의 젊은이들은 성서조선그 사이에 어느 하나를 버리지 못하고, 실은 어느 하나를 더 사랑할 수 없어서 두 단어 사이에 라는 접속사마저 허락지 않았던 절절한 사랑을 <성서조선>에 담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낭만적일 수 없었다. 때론 폭력으로 때론 회유로, 일제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며 제국이 만든 동질적 시스템에 굴복하기를 강요하고 있었으므로・・・ 하여 <성서조선> 동인들은 자신들의 외침이 열매 맺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걸릴 지를 이미 예감했었나 보다.

 

<성서조선>,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일자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 사람을 기다려 면담하라. 상론(相論)하라. 동지를 한 세기 후에 기()한들 무엇을 탄할 손가( <성서조선> 창간사 중).

 

하루를 버텨내기 힘들었을 그 시절에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은 한 세기 후의 동지를 기다리며 인내했다. 그리고 이제 2015년이다. 김교신이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렸던 우리다. 한 세기 후의 동지들이다. 지금 우리의 시절은 어떠한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적 지배로부터는 독립을 하였으되, 금융 자본주의적 질서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새로운 제국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노동 없는 부()와 정의 없는 권력이 득세하는 이 세상은 여전히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김교신의 시절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있었다면, 우리 시절에는 갑과 을이 있다. 그 시절에 일본인이 판단하고 조선인이 따라야했다면,

 

 이 시절에는 갑이 판단하고 을은 따라야한다. 꿇지 마라! 자유혼으로 스스로 서라! 우리가 아는 성서의 핵심 메시지는 그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귀한 인간이 어찌 다른 인간들의 판단과 명령에 의해 자기 존엄성을 포기하겠느냐. 혁명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다. 자유를 빼앗기고 존엄성을 상실한 이 땅 조선에서, ‘성서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를 새기고 또 새기며 자아의 혁명을 시작하자. 이것이 김교신과 동인들이 <성서조선>을 시작하며 동포에게, 이웃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성서조선>, 너는 우선 이스라엘 집집으로 가라. 소위 기성 신자들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인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의 집에는 그 발의 먼지를 털지어다.” (<성서조선> 창간사 중)

 

뜨끔할 일이다. 어찌 한 세기전 외침일까. 오늘날 한국 교회를 돌아보아도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가 넘쳐나질 않던가! 스스로 기도하고 생각하며 팔딱팔딱 오늘로 살아 돌아오는 말씀을 찾아내려는 주체적 신앙 없이, 그저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전통이 그렇게 가르치니까하며 앵무새처럼 남의 신앙만 반복하는 행태를 향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성서조선>발의 먼지를 털며그런 자들과는 관계없음을 선포한다.

 

<성서조선>, 너는 소위 기독신자보다도 조선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성서조선> 창간사 중)

 

 

 

 

성서를 평신도에게 건네기 위해, 이를 금하던 교황청을 피해 다니며 죽을힘을 다해 영어 성서를 번역했던 윌리엄 틴데일은 자신했었다. 불가타(라틴어역 성서)를 독점하고 평신도에게 성서 읽기의 권위를 허락지 않았던 교회를 향하여 당당하게 선포했다.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하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하겠노라고, 결국 시골의 소 모는 목동조차도 교황보다 성서의 핵심 메시지를 더 잘 알게 만들 것이라고! 김교신의 소망이 다르지 않았다. 성서는 중심으로 위로 좁아드는 메시지가 아니다. 변방으로, 지평으로 퍼져나가는 자유의 소리다. 그걸 독점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에 반()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건물에 갇힌 교회교인들의 울타리를 넘어 훨훨 날아라. 하나님은 교회보다 크시다!

 

이 자유의 외침이 선포된 것이 1927년이다. 이 멋진 외침을 외친 산 신앙인들은 백 년 뒤의 동지를 기다렸다. 이들의 메시지가 제국의 기반을 흔든다고 직감하고 1942년 잡지를 강제로 폐간하고 이들을 투옥했던 일본 순사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성서조선> 젊은 신앙인들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산 신앙이, 민족혼이 백년 뒤, 아니 5백년 뒤에라도 싹틀 기반을 마련하는 고약한 놈들이라고 말이다. 그 터를 놓은 신앙의 선배 김교신이 우리를 부른다. 기다렸노라고, 얼굴을 마주하자고, 성서를 논하자고그의 부름은 낡지 않았다. 시대는 여전히 악하므로그러니 응답하라. 2015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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