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4)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펀치볼은 그 옛날 운석이 떨어져 생겼다는 설과 차별침식분지라는 설이 양분합니다. 전 노아의 홍수 지구 재편 때 만들어진 하나님 작품이라고 주장합니다. 해질 무렵이면 그분이 빚은 작품을 만난다는 기대도 격려가 될 겁니다.”


함광복 장로님이 그렇게 표현했던 펀치볼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처음부터 긴 팔 옷을 입고 나선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조금만 가면 돌산령터널이 나오는데 돌산령터널 안은 한 여름에도 추우니 꼭 긴팔 옷을 챙겨 입으라고, 전날 보건지소에서 만난 마을분이 일러준 말을 너무 고지식하게 따른 결과였다. 바람막이 긴팔 옷은 이내 땀에 젖고 말았는데 그러면서도 터널이 금방 나타나겠지 싶어 옷을 벗지 않은 채 걸음을 이어갔으니, 역시 모르면 모르는 만큼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금방 나온다고 했던 터널은 한참을 걸었는데도 나타나질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먼 길을 걸어서야 터널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터널로 향하는 길 바닥에는 파란색으로 그려진 자전거 길이 있었는데 자전거 길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것이 있었다. 철조망이었다. 저것이 악보를 적는 오선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철조망에는 음표 대신 ‘지뢰’라는 경고판이 같은 음으로 매달려 있었다. 파란색 자전거길 표지와 붉은색 지뢰 표지, 우리가 사는 이 땅은 그렇게도 평화와 위험이 가까이 공존하고 있었다.


해안에서 양구로 가는 길목,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일러주듯 돌산령터널은 참으로 길었다.


돌산령터널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도솔산을 옆으로 끼고 해안과 양구를 잇는 터널이었다. 돌산령터널과 도솔산전투 또한 파란색 자전거길 표지와 붉은색 지뢰 표지만큼이나 역설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돌산령터널 입구까지 오느라 땀은 가득하고 숨은 벅찼지만 곧장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길을 걸으며 정한 원칙 중의 하나는 고개를 만나면 아무리 힘들어도 고개를 넘은 뒤에 쉬자는 것이었다. 힘들다고 중간에 쉬면 다시 일어나 걸을 때 고통스러울 만큼 힘들었다.


터널 안엔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가장자리로 사람이 걸어갈 만한 통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일반도로에서 그랬듯이 터널 안에서조차 사람이 걸어갈 길이 따로 없으면 얼마나 위험할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도로보다 조금 높은 곳에 일정한 크기의 콘크리트 덮개가 이어져 있었다. 덮개는 걸을 때마다 덜커덩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차 한 대만 지나가도 터널 안에 엄청난 공명이 생겨 마치 거대한 터빈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괴롭기가 여간 아니었지만, 그래도 터널 안에 보행자 통로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만 다행이라 여겨졌다.


돌산령터널의 길이는 2995m, 꼭 5m 모자라는 3km였다. 말이 3km지 터널 속을 그만큼 걸어간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반대편에 하얀 작은 점 하나가 보이는데 출구지 싶은 그 희미한 점은 가도 가도 여전히 같은 크기를 유지하며 가까이 다가오지를 않았다. 어둠의 터널을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지를 돌산령터널은 터널 속을 걷는 내내 생각하게 했다.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준 정장로님.


지루하다 싶을 만큼 길고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또 걸으니 어느 샌가 저 끝으로 하얀 빛의 동그라미가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일이 생긴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터널 맞은편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역광이기도 했지만 혹시 내가 환영을 본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은 그동안 길을 걸으며 길을 걷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나처럼 길을 걷는 사람이 있구나, 그 사람을 터널 안에서 만나다니, 기가 막힌 인연이다 싶어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인사라도 나눠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터널 안을 큰 목소리가 울렸다.


“목사님…!”


순간 얼어붙는 줄 알았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둠 속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이가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니,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 양 옆을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있는 맞은 편 사람은 저벅저벅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그가 가까이 다가와서야 나를 향해 걸어온 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성지교회 정장로님이었다. 내가 멍-해 있는 사이 장로님은 빼앗듯이 내가 메고 있는 배낭을 벗겨 자신이 메고는 통로 쪽으로 걸어갔다.


왜 그랬을까,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장로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싶었다. 엉엉 울고 싶었다. 두 눈이 금방 흐려졌다.


터널 밖으로 나왔을 때에야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터널 밖에는 장로님의 부인 김권사님이 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님 내외는 새벽 일찍 길을 떠나 내가 걷고 있겠다 싶은 길을 짐작하며 역(逆)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제법 먼 길을 왔다 싶은데도 내 모습이 보이질 않자 펀치볼 입구인 돌산령터널까지만 가보고, 그래도 보이질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했단다. 그런 마음으로 돌산령터널 속을 통과하고 있는데 누군가 터널 속을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는 것이다. 걷는 모습이 힘이 하나도 없어 보여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하긴 터널까지 오느라 힘을 소진한 상태였으니 걸음이 힘찼을 리는 없을 일이었다. 내 모습을 확인한 두 분은 터널 끝으로 나가 차를 유턴하여 반대편으로 온 것이었고, 길가에 차를 세워둔 뒤 장로님이 터널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반갑고 고마운 만남이 세상에 어디 흔할까? 일어난 일이 비현실적이다 싶어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권사님은 차에 챙겨온 이것저것 먹을 것을 꺼내주셨고, 우리는 길가 바닥에 앉아 드문 만남이 주는 은총을 마음껏 누렸다.


길을 걷다 쓰러지면 안 된다고, 앞서간 권사님이 정한 식당은 토종닭 백숙집이었다.


그날 장로님은 바로 돌아서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같이 걸었다. 권사님은 우리보다 앞서가며 식당을 예약하는 등 선도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차를 운전하는 권사님이 여전히 목사의 배낭을 대신 메고서 걷는 장로님께 배낭을 차에 싣자고 했다. 차 뒷자리에 싣고 빈 몸으로 걸으면 훨씬 편하게 길을 걸을 수 있으니 나도 그러자고 했는데, 장로님은 배낭 안에 큰 보물이라도 있는 듯 고집을 부렸다. 지지 않아도 될 배낭을 종일 메고서 걸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모습이 보물이었다.


그날 나는 장로님을 통해 짐을 함께 진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짐이 무엇인지 짐을 어떻게 벗을 수 있는지 말로 하는 것도 아니었고, 짐을 진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도 아니었다. 혹은 함께 편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짐을 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짐을 나누어지는 것, 그러느라 함께 땀을 흘리는 것, 그것밖엔 없었다.


길고 지리한 돌산령터널, 내 배낭을 대신 메고 앞서 걸어가는 장로님의 뒤를 따라 터널을 빠져나올 때, 내가 빠져나온 것은 돌산령터널만은 아니지 싶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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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6)


전도서에서 말하는 노동은?


종교인의 세금납부 의무를 2년 유예시키자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 발의를 주도한 국회의원들이 모두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다. 종교인의 세금납부 정당성과 찬반문제를 논하기 전에 교회 공동체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수고하는 이른바 ‘목회’ 혹은 ‘교회사역’이 노동의 영역인가를 정의하는 제도권 교회의 내부적인 합의가 우선되어야겠다. ‘목회’가 ‘노동’으로 간주되면 그 대가로 발생한 소득 때문에 목회자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납부의 의무를 이행해야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몸을 움직여 일하여 필요한 물자를 얻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노력과 수고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면 목회자의 목회활동은 노동의 영역인가? 기독교의 삶의 표준인 정경으로서의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주지 않지만, 전도서가 이 노동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로운 가르침을 준다.


교회 사역과 노동 사이에서

전도서는 저세상이 아니라 지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그 가르침의 강조점이 구원역사 보다 창조질서와 보편적 삶의 실천적 측면에 있기 때문이다. 전도서는 창조와 우주질서의 의미, 그리고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 곧 시장과 거리, 광장, 일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일상의 문제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노동은 코헬렛(전도자)에게 중요한 관심사다. 왜냐하면 노동은 창조자 하나님을 닮은 인류의 본질적인 구성요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지만, 땅의 짐승들과 하나님을 닮은 사람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노동 행위로 창조되었다. 땅에 충만하여 땅을 돌보아야 하는 창조명령을 받은 인간에게 노동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사명이다(창세기 1:24-28).


그러나 첫 인류가 타락한 이후로 노동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되었다(3:18-19). 땅과 흙에 기반을 둔 사람의 고된 삶의 현실을 관찰한 코헬렛은 자신의 다양한 담론 전개를 위한 화두로서 ‘노동’의 문제를 제기한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도서 1:3, 개역개정).


여기서 “수고”로 번역된 말은 ‘노동’이다. 히브리말 ‘아말’은 노력, 고생, 수고, 일, 노동을 일컫는다. 코헬렛이 즐겨 사용하는 ‘해 아래’ 라는 말과 함께 인류의 온갖 노동과 관련된 현상들을 포함시켜 노동의 “유익”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유익”으로 번역된 ‘이트론’은 구약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은 전도서에만 유일하게 반복 사용된 경제적인 용어다.


구약의 다른 책들과 달리 전도서는 노동의 문제를 깊이 성찰한다. 코헬렛은 사람이 먹고 마시고 노동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2:24; 5:18; 9:9)라는 말을 반복하며,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는 죽음이 있으니 사는 동안 힘을 다해 노동할 것을 권한다(9:10). 그렇게 그는 먹고, 마시며, 노동하며 사는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드높인 지혜 선생이다.


그러면 ‘목회’는 노동인가?

목회는 노동이다. 이 말이 낯설게 들리겠지만, 땅 위에서의 모든 종류의 노동은 생존을 위해 양식과 자원을 얻기 위한 행위다. 물론 이 말은 경제적인 측면이 고려된 광의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코헬렛의 노동의 관점을 따라가 보면, 노동은 단지 생존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삶의 기쁨과 관계된 일이다(2:24; 3:13; 3:22; 5:18; 8:15; 9:9).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와 노동, 에덴 정원 관리인으로서 경작을 책임지는 노동과 애정 어린 돌봄을 수행할 사람의 이야기(창세기1-2장), 그리고 전도서에서 말하는 노동은 창조신학적인 관점에서 숙고해야할 신학적인 문제다.



프레드릭 뷰크너는 노동을 “인간 내면의 기쁨과 세상 저변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목회자의 목회활동 역시 세상의 필요와 기쁨이 만나는 노동이다. ‘목사’는 하나님과 교회의 부르심에 자발적으로 응답한 개인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기쁨으로 수행하겠다고 선택한 직업이다. 목회자의 일은 생존과 연결되었지만, 그 수고로움과 노동을 ‘사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문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가 교회의 부름에 응답했다면, 교회는 마땅히 목회자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목회자는 목회 활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문제를 해결한다. 목회자가 받는 사례비는 무보수의 자원봉사가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받은 수고, 곧 정신적 육체적 노동 행위에 따른 보상인 셈이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제도권 교회는 목회자가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심방하고, 복음 전도하는 일련의 목회 활동을 평신도의 세속적인 노동과 구별하여 특권화 시키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종교개혁의 핵심가치 중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게 된다. 종교개혁자들이 생존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직업을 예리하게 구분했는가? 우리가 만일 이 지점에서 교회 사역을 노동이 아닌 특권화한 ‘사역’으로 간주하고, 일반적인 노동과 구별하여 성과 속의 영역으로 나눈다면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는 개념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 아닌가? 목회와 노동 사이의 분명한 개념정립을 하지 않는다면 실제적인 측면에서 나쁜 사례들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목회자를 ‘성직’이라는 미명아래 목회 ‘훈련’과 거룩한 ‘사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쉼을 허락하지 않는 노동력 착취와 비인간적인 대우를 서슴지 않는 목회자들 사이의 악한 관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묻고 싶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내세의 천국을 소망하는 것만이 복음적인 삶인가?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새번역 주기도문; 마태복음 6:10)라고 기도를 가르치신 예수님의 뜻은 무엇인가?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서 다양한 직업으로 노동하며 살아간다. 때문에 신자들의 다향한 직업과 노동처럼 목회자의 ‘교회사역’도 노동이다. 신자의 세속적인 직업과 목회자의 교회사역은 동등하게 신성하다.



노동은 삶의 기쁨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촉진제

만약 우리가 목회자의 교회사역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노동 자체를 천시하거나 혐오하는 마음이 자리 잡은 것인지 모른다. 또한 목회자의 교회사역을 노동이라고 말할 때, 목회자는 ‘성직’으로 특화된 계급이 아니라 모든 신자와 더불어 동등하게 제사장적인 소명을 수행하는 자로서의 부르심을 완수하는 것 아닐까. 코헬렛은 먹고, 마시고 노동으로 즐거워하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밝혔다(2:24; 3:22; 5:18-19; 8:15).


때로는 노동의 유익과 가치를 보상받지 못하는 부조리하고 불편한 현실과 부딪히곤 하지만, 전도서의 가르침처럼 노동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사건들과 연결하여 창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노동은 신성한 사건이다. 그러하여 노동은 신학적인 문제요, 각 사람의 생존과 기쁨을 위한 삶의 문제요, 사회를 건강하게 존속시키는 기반으로서 사회적인 문제다. 노동은 단지 개인의 경제적 이익과 잠재력 발휘만이 아니라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촉진제가 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하늘 아래서’ 행하는 갖가지 ‘노동’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땅에서 이루는 거룩한 일이 된다. 이것이 주님 다시 오실 때가지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모든 신자의 ‘사명’ 아닌가.


김순영/《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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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3)


이 땅 기우소서!


산은 말없이

길을 품고

길은 말없이

산을 넘느니

좋은 벗 좋은 길

좋은 벗 좋은 길


-‘동행’


매해 여름이 되면 부산 <기쁨의 집>에서 주최하는 독서캠프가 열린다. 책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격의 없는 만남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2박3일 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것에 감탄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웃음과 눈물이 터지는, 따뜻하고 진지하고 맑은 모임이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를 하고 있는데, 몇 해 전 모임을 가질 때였다. 모임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모임을 마치는 날 ‘동행’이라는 짧은 글 하나를 썼고 노래꾼으로 참여한 박보영 씨가 곡을 붙였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노래였지만 어렵지 않게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던 것은 가사와 곡이 단순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행’의 의미를 서로가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길을 걷기 시작한지 나흘째 되는 날, 그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함께 길을 걸을 사람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전날 밤 김정권 목사님이 찾아 왔다. 길을 떠나며 몇 몇 분들에게 기도 부탁을 할 겸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둔 형이 하루라도 같이 걷고 싶다면서 먼 길을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길을 걷는 일정 동안 형이 유일하게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라고 했다.


정권 형은 지금 영월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영월에서 떠나 원통으로 달려왔다. 어둔 밤길을 달려온 것이었다. 형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을 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다음날 일정을 위해 시간을 아꼈다. 형과 둘이 한 방에서 같이 자는 잠, 피곤한 내가 코를 심하게 골아 형이 잠을 못 이루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아 그날 밤이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간단히 씻고는 문제가 된 발을 처치했다. 발가락은 물론 발바닥에도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으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떠나기 전날 오집사님이 전해준 약품을 꺼내 할 수 있는 모든 처방을 다했다. 걷기 초반에 탈이 나면 안 된다 싶었기 때문이다. 두툼한 폼 드레싱을 통째로 발바닥에 깔고 압박붕대로 칭칭 감은 뒤에 양말을 신었다.


오늘 걸어야 할 구간은 원통에서 시작하여 양구 해안, 펀치볼까지다. 함장로님이 적어준 로드맵에는 30km로 되어 있지만 이틀간의 경험에 의하면 그보다는 분명 더 먼 길을 걸어야 할 것이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아는 이는 다 아는 익숙한 말이다. 오지 중의 오지라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입대를 해서 인제나 원통으로 배치를 받으면 마치 땅 끝으로 배치를 받는 느낌이 들었던, 바로 그 원통 길을 걸어서 가게 된 것이다.


곳곳에 탱크로 된 조형물이 있었다. 평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탱크라는 역설.


역시 원통은 최전방 지역이다 싶었다. 지축을 울리며 지나가는 탱크도 여러 대를 보았고, 곳곳에서 총소리도 자주 들려왔다. 탱크가 지나갈 때면 아예 길 밖으로 서너 걸음 피해 있어야 할 만큼 탱크의 위용은 대단했다.


일정 내내 날씨가 비슷했지만 그날 형과 걷는 길은 더욱더 유별났다. 하늘에선 구름을 찾기가 어려웠고 볕은 벌침 같이 쏟아졌는데,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길을 걷는 내내 그늘을 만나기도 쉽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혼자라면 훨씬 더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선배가 함께 걸으니 한결 마음이 든든했다. 정권 형은 원통에서 목회를 한 경험이 있어 인근 지리에도 익숙했다. 때마다 길을 묻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해도 얼마나 마음이 홀가분한지 몰랐다.


땡볕 아래를 걷다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정권 형이 길가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 마을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후배 목사님이었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가려 하는데, 굳이 점심을 먹고 가라고 붙잡는다. 아직 길은 멀고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 그런데도 후배의 말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던 것은 그 마을을 지나가면 한동안 식당이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후배가 안내한 식당은 후배 목사님 교회의 교우가 하는 식당이었는데, 길가 바로 옆에 있는 작고 허름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최고의 식당이었다. 그날 우리가 먹은 콩국수를 두고 선배는 당신 생애에 가장 맛있는 콩국수였다고 했는데, 그 칭찬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은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문을 한 콩국수는 한참 만에 나왔는데, 식당을 꾸려가는 분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주문을 받은 뒤에야 콩을 갈았다. 그래야 고소함을 지킬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면발은 신기할 만큼 쫄깃했다. 궁금해서 여쭸더니 직접 반죽을 해서 만든 면발이라고 했다. 팔과 어깨가 아프도록 치대면 그렇게 쫄깃해진다는 것이었다. 면발이 그렇다면 말씀의 깊은 맛은 더욱 가볍게 드는 것이 아닐 것이었다.


그 식당에서 콩국수 맛보다 더 감동했던 것은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콩국수를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드리자, 당신들은 식당을 찾는 이들은 손님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모처럼 찾아온 형제를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한다고 했다. 저 맘 하나면 되지, 무엇이 더 필요할까 싶었다.


고맙고 든든한 점심을 먹고 다시 나선 길, 도로는 더욱 달궈져 있었다. 도로 위에 계란을 깨뜨리면 얼마든지 프라이가 될 것 같았다.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어쩌다 그늘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그늘 아래로 들어 배낭을 베고 누웠는데,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났다. 쓰러지는 것보다는 고꾸라지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아예 잠이 들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고단한 일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벌침 같은 볕 아래를 걷는 것은 순간순간 한계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드물게 그늘이 보이면 그야말로 고꾸라지고는 했다.


그날 기억될 것은 지글지글 가마솥 같던 날씨도, 가도 가도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던 35km 거리도 아닐 것이다. 먼 길을 찾아와 함께 걸어준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길이 멀고 험할수록 동행은 더욱 든든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갈라진 이 땅 기워달라는 기도가 간절함으로 남은 날이었다.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다. 점심을 먹으며 정권 형이 드린 기도다. 형은 나직한 목소리로 간절함을 담아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갈라진 이 땅을 기우소서!”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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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2)


지팡이와 막대기


길을 걷는 동안 내내 한 손에 스틱을 잡았다. 스틱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되랴만, 그래도 짐의 무게를 줄이려고 하나만 챙겨 떠난 스틱이었다.


스틱은 몇 가지 점에서 유용했다. 무엇보다도 안전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를 걸을 때면 자동차가 지나는 쪽 손에 스틱을 잡았는데, 운전자가 길을 걷는 나를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역할도 했다. 스틱을 손에 잡았다는 것은 하나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갑자기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를 내가 들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동네를 지날 때마다 짖어대는 개들에게는 유용했다. 묶여 있는 개야 묶인 채로 짖다 말 뿐이었지만, 이따금씩은 풀려 있는 개를 만날 때가 있었다. 개가 볼 때에도 그냥 한 사람이 지나간다는 것과 지나가는 사람의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다는 것은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스틱은 개와 나 사이의 거리를 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짖어대는 개들은 ‘늙은 개가 짖으면 내다봐야 한다’는 속담의 의미를 이해하게 했다. 대부분의 개들은 지나가는 나를 보고 짖어댔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다는 듯이 짖는 개도 있었고, 그것이 그래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어서 밥값을 하듯 짖어대는 개들도 있었다. 죽어라고 짖어대는 개들도 있었는데, 발자국 소리를 듣자마자 짖기 시작하여 한참을 지나가도록 짖어대곤 했다. 다른 개가 짖으니까 덩달아 짖는 개들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짖어대는 개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거나 저 스스로가 겁이 많은 개들 아닐까 싶었다. 자기가 겁이 많아 그토록 열심히 짖어대는 것이라 생각하는 데는 근거가 있다.


분명히 나를 처음 보는데도 짖지 않는 개들이 있었다. 유심히 내 모습을 살필 뿐 함부로 짖거나 나대지 않았다. 그런데 내게는 요란하게 짖어대는 개들보다는 짖지 않으면서 나를 살피는 개가 오히려 무섭게 여겨졌다.


짖지 않는 개들은 경험이 많아 자기 앞을 지나가는 존재가 자기가 지키고 있는 영역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는지의 여부를 금방 파악하고 있다 싶었다. 경계해야 할 때와 경계할 필요가 없는 때를 분간할 줄 아는 지혜와 나설 때와 바라볼 때를 구분하는 용맹함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개라 여겨졌다. 김이 안 나는 숭늉이 더 뜨겁다고 하지 않는가.


몇 번인가는 길을 걷다가 뱀을 만난 적이 있다. 도로 위로 나왔다가 차에 깔려 죽은 뱀이 의외로 많았다. 한 번은 굵기와 크기가 보통이 아닌 보기 드문 구렁이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몇 번은 살아 있는 뱀을 보았다. 그 중에는 살모사지 싶은 독사도 있었다. 그럴 때면 스틱으로 탁 탁 소리를 내어 뱀에게 피할 시간을 주었다. 뱀도 같은 대지에서 살아가는 생명 아닌가. 사람이 뱀을 잡아먹기 시작한 뒤로 들쥐가 많아지고, 그러면서 렙토스피라가 번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뱀은 뱀대로 자연 생태계의 질서를 지키는데 필요한 자기 몫이 있을 것이었다.


스틱을 잡고 걸으니 생각지 않은 유익함도 누릴 수 있었다. 허리의 각도를 유지하게 해 주었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배낭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기가 쉬울 터인데 스틱이 그것이 막아주었다.


도로에 떨어져 있는 것 중에는 못이 많았다. 달리는 차 바퀴에 박히면 어쩌나 싶어 보이는 대로 치워냈다.


스틱의 가장 유용한 소용은 따로 있었다.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못을 치울 때였다. 이상하리만치 도로에는 많은 못이 떨어져 있었다. 한 뼘쯤 되는 긴 못으로부터 어떤 타이어라도 단번에 뚫을 것 같은 굵은 나사못에 이르기까지, 떨어져 있는 못의 종류도 다양했다.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타이어에 펑크가 나 대형사고로 이어졌다는 뉴스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런데 펑크가 나는 주된 원인이 타이어에 못이 박히는 것이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먼 길을 운전을 하고 다녀올 일이 있어 떠나기 전에 가까운 정비소를 찾아갔다. 타이어의 공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람을 넣으며 공기압을 재던 정비사가 대뜸 말했다.


“펑크네요.”


바람을 넣어도 공기압이 올라가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타이어에 박힌 못을 빼내는데, 놀랍게도 타이어에는 두 개의 못이 박혀 있었다. 눈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였는데 못이 두 개나 박혀 있다니, 그것도 모르고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달렸으면 어쩔 뻔 했나 싶어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길을 걷다가 못이 보일 때마다 못을 도로 밖으로 치워냈다. 그럴 때마다 스틱을 이용했다. 스틱 끝으로 못을 치워냈는데, 그렇게 치운 못이 제법 많았다.


길을 걷다가 만난 철판. 나사못 몇 개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걸어가며 못을 치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신이 달리는 도로 위에 못이 떨어져 있었다는 것과 누군가 길을 걸으며 그 못을 치웠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생각지 못한 큰 은혜를 힘입어 살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길을 걸으며 스틱이 전해준 유익함은 의외로 많았다. 문득 ‘지팡이와 막대기’가 떠오른다. 목자이신 주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지켜준다는 말씀(시 23편) 속에는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놀라운 은총이 담겨 있을 것이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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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1)


숨겨두고 싶은 길


아직 휴가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십이선녀탕 입구는 한산했다. 아예 문을 열지 않은 식당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가니 할머니가 맞아 주셨다.


걷는 시간을 통해 덤처럼 누렸던 즐거움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때마다 누렸다. 식당에서 만난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손님이 없어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식들 이야기, 농사짓는 이야기…,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렇게 시골에 살면 외롭지 않으세요?”


할머니에게서 묻어나는 표정을 보면 전혀 외로운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할머니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전혀요. 저는 이곳이 참 좋아요. 실은 친정이 바로 옆 동네예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셈인데 여전히 좋아요. 공기 좋지요, 물 맑지요, 마음 편하지요, 사람들 순하지요, 도시에서 복작거리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간 나는 지복(至福)을, 천복(天福)을 누리며 사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자족(自足)하기를 배운 이에게는 그가 서 있는 그 자리가 하늘과 잇닿은 자리이자 은총의 땅, 세상에 부러울 것이 따로 없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숨기고 싶은 길, 알리고 싶지 않은 길이 있었다.


점심식사 후에 걸어야 하는 길을 두고 로드맵에는 ‘반드시 강을 따라가는 옛 국도 고원통로를 찾아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로드맵에 ‘반드시’라는 말이 나오면 긴장을 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대가를 치를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고원통로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 일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식당 주인 할머니의 친정 동네가 그 쪽이기 때문이었다. 젊어서 원통까지 걸어서 다녀오기도 했다는 할머니는 길을 손금처럼 떠올리며 자세하게 일러주었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고원통로 초입을 찾을 수가 있었다.


고원통로는 열하루 일정 중에서 만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세상에서 서너 걸음 물러난 듯, 사람들의 눈길에서 벗어난 듯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 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도로와 계곡 사이에는 미끈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은 마냥 푸른빛이었고, 떠가는 흰 구름은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 것 같았다. 게다가 도로를 지나는 차들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맘 놓고 걸어갈 수도 있었다.


너른 바위 위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햇볕과 바람은 마음까지를 말려주었지 싶다.


계곡 옆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용케 그곳을 알고 있다 싶은 이들이 텐트를 치고서 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두고서 계속 걷기만 하는 것은 고지식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싶었다. 걸음을 멈추고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 너른 바위 위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지고 있던 배낭은 물론 스틱, 모자, 신발과 양말까지 벗었다. 목을 두르고 있던 스카프와 손에 끼고 있던 토시도 물에 빨아 바위 위에 펼쳐 놓았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가 편한 바위를 찾아 발을 담갔다. 깨끗하고 맑게 흘러가는 물에 발을 담그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깨끗한 물이 지친 발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수고했다고, 기특하다고 자꾸만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걷느라 발에 남았던 모든 피곤함이 모두 씻겨 나가는 같았다. 옛 선비들이 즐겼다는 ‘탁족’(濯足)이 이런 즐거움이었구나 싶었다.


둘러보니 산과 물과 바위와 나무와 하늘이 막힘없이 어울린다. 그 무엇 하나 어색한 것이 없다. 숨을 고르게 쉬고 있자니 나 또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맞다, 나도 자연의 일부, 자연의 한 조각일 뿐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탁족의 즐거움을 맘껏 누렸다.


너른 바위로 돌아와 앉아 발을 치료한다. 물집 잡혔던 곳을 둘렀던 밴드를 모두 떼어내고 햇볕을 쬔다. 새로 생긴 물집의 물기도 빼내고 바람을 쐰다.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일 것이지만, 정말로 발을 치료할 것은 약이 아니라 바람과 햇볕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볕은 따가웠지만 바위 위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세월도 저리 흘러가는 것이겠다 싶다. 아래로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 되는 건데 무엇 그리 순리를 역행하며 살까,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온갖 일들이 문득 어리석고 어색하게 여겨졌다. 불쌍하고 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바위에 앉아있는 시간은 마음까지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느라 날이 저물고 소나무 아래 어디선가 하루를 묵어도 좋겠다 싶지만 아직도 남은 길이 있다. 햇살이 배어 가볍게 느껴지는 배낭을 다시 메고, 햇살이 말린 뽀송뽀송한 양말을 신고, 햇살이 눅눅함을 모두 지워낸 신발을 신고 일어서니 걸음이 새롭다.


이름도 위치도 다 말했으니 이런 어리석음이 어디 있을까만, 그래도 그 길은 끝내 숨겨두고 싶은 길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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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0)


도움 받으시다


우연히 눈에 띈 표지판 덕에 번잡한 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걷던 중 한 미술관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이 다 있구나 싶은, 독특한 조형미를 갖춘 <백공미술관>이었다.


때마침 한 젊은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몇 시에 개관을 하는지를 물어보았더니 10시라 했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시간 차이가 제법 났다. 그냥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가 말했다.


“관심 있으면 들어오셔도 돼요.”


덕분에 2층으로 된 미술관을 혼자서 둘러보았다. 나를 받아준 직원은 일일이 전시관의 조명을 켜주며 불편 없이 둘러보게 해주었다. 수화 김환기, 고암 이응노 등 익숙한 화가의 작품도 있었지만 낯선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낯선 것은 그의 한계가 아니라 나의 한계다. 내가 그를 모르는 것이다.


작품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준 직원에게 고맙다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는데, 얼마쯤 걷다보니 저만치 정체불명의 물체가 눈에 띄었다. 도로 옆 잣나무 숲에 뭔가가 서너 개 놓여 있는데, 바위 같기도 했고 무엇인가를 덮개로 덮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궁금하긴 했지만 가야 할 길이 멀어 그냥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생각하니 내가 이 길을 언제 또 지날 수 있을까 싶었다. 걸음을 되돌려 잣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조각상이었다. 그것도 예수님에 관한 조각이었다. 작품마다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예수 십자가 지시다’, ‘예수 첫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된 조각이었다. 커다란 화강암을 쪼아 만든 작품이었는데, 돌이라 그랬을까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이 묵중하게 전해져 왔다.


잣나무 슾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각 작품. 예수 십자가 지시다,  예수 첫 번째 넘어지시다,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시다.


작품 앞에서 사진을 한 장씩 찍고는 다시 맨 앞에 있는 작품 앞으로 왔다.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다 알 수가 없었다. ‘예수 키레네시몬의’이라는 제목은 보이는데 그 다음 제목이 떨어진 잣나무 마른 잎에 덮여 있었다.


조각된 내용이 작품의 제목을 짐작하게 해주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조각 앞에 무릎을 꿇고는 마른 잎을 손으로 치워냈다. 마침내 묻혀 있던 제목이 드러났다.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이랬다.


‘예수 키레네시몬의 도움 받으시다’


제목을 확인해야 했던 첫 번째 작품,  예수 키레네시몬의 도움 받으시다.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마음에 새기게 했다.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조각된 작품은 마치 돌에 새겨진 두 사람이 걸어서 나오듯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구레네 시몬이 지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것이야 복음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지만, 마치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처음으로 만난 것처럼 작품은 다가왔다.


가만히 바라보니 예수님도 시몬도 모두가 눈을 감고 있었다. 십자가는 모순과 고통,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눈을 감을 때 비로소 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순명(順命)이란 눈을 감는 것이다.


어쩌면 구레네 시몬은 억울함과 불운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에게 멍에처럼 주어진 존재의 모순과 함께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시몬에 대한 미안함으로 두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다. 하지만 허투루 지지는 않는다. 힘에 부친 십자가를 행여 놓칠까 두 손으로 십자가를 꼭 붙들고 있다. 십자가는 시몬의 어깨와 뺨에 닿아 있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어느새 기꺼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겨진다.


시몬의 바로 뒤에 예수님이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보이지 않는다. 앞뒤로 두 사람이 섰지만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예수님인지를 대번 알게 하는 표지가 있다. 얼굴의 크기나 모양이 아니다. 머리에 쓴 가시면류관이다. 가시면류관은 한 사람의 머리에만 씌워져 있다.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빛의 광채가 아니라 가시면류관을 쓴 모습이 그가 예수님임을 말없이, 그리고 충분히 일러준다.


그 때 그랬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위나 규모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광채나 후광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머리에 쓰고 있는 가시면류관이 그가 예수님의 참 제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십자가를 시몬에게 넘긴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십자가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모습으로 당신 대신 십자가를 지는 시몬을 구경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품을 바라보며 두 눈이 뜨거웠던 것은 십자가를 시몬에게 넘긴 예수님의 두 손이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한 손으로는 십자가를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당신 대신 십자가를 지지만, 여전히 주님은 한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고 있었다. 너희들이 십자가를 질 때 너희는 결코 혼자가 아니란다,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시몬의 어깨와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두 눈을 감았지만, 당신의 십자가를 지는 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 지를 주님을 알고 계시다. 무엇을 가장 힘들어 하는지도 알고 있다. 눈을 감아도 아신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손을 내미신다.


자신의 어깨와 얼굴에 닿는 예수님의 손길에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것을 알기에, 시몬도 자신의 눈을 감은 것인지도 모른다.


십자가의 길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과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나만 혼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뒤에서 주님도 나와 함께 그 아픔을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주님이 눈을 감듯, 내게 필요한 것도 눈을 감는 것이었다.


내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몰랐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걷다가 우연처럼 만난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는 늘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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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13)


행동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믿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하느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고 말이다. 그 때 나는 ‘너와 나’라는 문구에서 ‘와’가 하느님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영어로 보면, ‘You and Me(너와 나)’에서 ‘and’ 같은 존재가 하느님으로 정의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자연 그리고 영원과 순간을 연결해주는 고리로서 하느님이 의미 있다고 답변했다.


철저히 존재론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있다. 어떤 개념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이들이다. 존재의 유무에 집착하여 자신들이 믿는 대상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마련해야 안심이 되는 이들이다. 가치로서 또는 관계성으로서 가 아니라 개체성을 가지고 물질적인 형태를 지녀야 존재한다고 보는 이들이다.


어느 날 만장(萬章)이라는 이가 맹자에게 질문을 했다. 요(堯) 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천하를 넘겨주었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어쩌면 그의 물음 핵심은 선양(禪讓)에 있었는지 모른다. 유가(儒家)에서는 요(堯)가 순(舜)에게 천자(天子)의 권한을 평화스럽게 넘겨주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만장의 질문 속에는 그런 자부심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맹자는 답한다. 요(堯)나 순(舜)의 훌륭한 결단 때문에 그리 된 것이 아니라 하늘[天]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존재론에 집착하는 이들은 거푸 질문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하늘[天]은 어떤 존재냐고 말이다. 이에 대해 ‘요에서 순에게’의 매개주체가 하늘[天]이라 답할 수 있다. 영어식으로 말하면 ‘From Yao to Shun’에서 ‘from~ to~’가 하늘인 셈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하늘이 주었다.’ 만장이 물었다. ‘하늘이 주었다는 건, 상세하게 명령했다는 겁니까?’ ‘아니다. 하늘은 말[言]로 주지 않고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줄 뿐이다.’(曰 天與之. 天與之者, 諄諄然命之乎? 曰 否. 天不言, 以行與事示之而已矣.)” - ≪맹자≫,<만장장구 상> 5장 4절


음성언어가 지배적이었던 시절에는 진리가 음성언어로 선포된다고 생각했다. 하늘께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음성으로 들려줄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높은 지배계층일수록 음성언어가 익숙하다. 명령을 내리면 아랫사람들이 기민하게 움직여주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것은 낮은 계층의 몫이고 말하는 것은 높은 계층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지시하고 명령하는 이들은 결과물에 집중한다. 자신이 내린 말이 그대로 실현되었는지를 점검할 뿐이다. 어떤 마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일의 결과가 산출되었는지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결과물을 잘 점검하고 그것을 확장시켜 다음 결과가 생산되기만을 기대한다. 자신의 말과 그것으로 인해 산출된 결과물이 정확히 맞았는지를 비교한다.


맹자의 말은 기존의 사고를 전복시켰다. 기존의 사람들은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하늘께서는 말만 해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늘은 황제보다 우위에 있는 절대적인 명령권자라고 여겼다. 그러나 맹자는 하늘은 행동하고 실천하는 분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백성들에 의해 점검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피라미드 체계는 위로 올라갈수록 명령을 하달하는 개체는 줄어들고 권력은 강해지는 구조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개체 수는 많아지고 권력은 약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은 가장 낮은 단계에 위치하고 있고 하늘은 가장 높은 단계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맹자는 가장 낮은 단계의 백성과 가장 높은 단계의 하늘이 하나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하셨다. 그때 유대인들이 에워싸면서 말한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고 말이다. 정통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임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임재할지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신학적으로 미리 정리해 놓고 있었다.


구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메시야의 임재 방식이 예수의 방식과 너무도 다른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자신들의 논리에 의하면 메시야는 절대 권력을 가진 왕으로 임재하여 예전 다윗왕조의 영광을 회복시켜야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논리에 전혀 맞지 않았다. 예수의 논리는 기존의 논리 해체시켰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 ≪요한복음≫ 10장 25~27절


유대인들은 언어에 민감했던 민족이었다. 구약의 인물들이 음성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소통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모세 이후 돌이나 양피지 혹은 파피루스에 기록하는 문자언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모세의 율법처럼 음성언어를 문자언어로 바꾸는 일이 유대민족에게 특별히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이자 특권이라 생각했다.


예수께서 그들의 인식방법대로 음성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밝혔지만 유대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민중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예수의 모습 속에서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의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고구조로 볼 때, 하나님의 아들[天子]은 높은 신분을 지녀야 하고 단지 음성으로 명령만 내리는 상부의 최고 권력층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공동의 저술 ≪천 개의 고원≫을 통해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을 부각시킨다. 기존의 학문체계는 나무와 같아서 수직적이며 논리적이고 위계질서가 있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는 한계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수목(樹木)형 사고구조에 반(反)하는 구조가 리좀이라고 주장한다.


리좀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관계성을 맺는 수평적 구조이다. 리좀 구조에서 존재의 의미는 관계성이 얼마나 견고하고 강하게 연결되어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나누어 서로의 이해가 만나고 생각이 교차되면 결정하는 의사소통구조를 가진다.


예수는 스스로를 강력한 명령권을 지닌 왕이나 절대자의 설정하지 않았다. 스승과 제자관계에서 출발하여 결국에는 친구관계로 지내기를 원했다. 부모 형제와 같은 혈연관계도 같은 생각을 나누는 공동체 관계로 재정립하였다. 들뢰즈 식으로 표현하면, 피라미드식의 수목형 구조가 아니라, 리좀과 같은 관계성을 중심으로 한 수평관계로 재영토화되기를 원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실천행동에 대해서도 의문을 지녔다. 음성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구체화하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부정하려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말이냐 행동이냐 하는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 예수를 신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본질적인 것임을 지적하였다.


예수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밝히 보이지만,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가리어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음을 말씀하셨다. 무엇을 볼 것이냐 하는 것에 앞서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하는 것이 우리 삶에서 중대한 의미인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대상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린 귀한 선물일 수 있겠다.


이정배/좋은샘교회 부목사로 사서삼경, 노장, 불경, 동의학 서적 등을 강독하는 ‘연경학당’ 대표이며 강원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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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5)


가혹한 현실과 믿음 사이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가 있어야 할 곳에 악이 있다”(전도서 3:16, 새번역).


공의와 정의 실행으로 억울함이 없어야할 법정에서 조차 악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발설한 코헬렛(전도자)의 이 말, 통탄할 일이다. 만연된 불의를 짚어낸 말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면모가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모름지기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관찰하고 수집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해하고 통찰해보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코헬렛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정직하게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가 예언자들처럼 시대의 악을 고발하도록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간결한 말의 세계를 음미하다보면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모습과 현실문제의 방관자로 있을 수 없다.



코헬렛은 ‘해 아래’ 일어나는 억압 또는 학대의 문제들을 섬세하게 살폈다. 학대당하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지만, 위로할 사람은 없다. 학대하는 사람이 폭력을 휘둘러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다(전도서 4:1). 당혹스럽지만 사실이다. 지혜자 코헬렛의 관찰처럼 지혜는 실제 사례를 바탕에 둘 때 설득력이 있다. 지혜로운 판단의 논리는 일상적인 삶의 구체성에 있다. 그가 살았던 고대 군주제의 상황이나 현대사회나 사람을 가혹하게 대하는 억압과 학대의 현장은 곳곳에 존재한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가정, 일터, 그리고 심지어 억울함 없이 정의가 실행되어야 할 법정도 마찬가지다.


시대를 막론하고 높은 지위와 계층에 속한 강자들은 자기들의 세력을 이용해 약한 자들의 것을 착취하고 억압과 학대의 상황을 만들곤 한다. 코헬렛은 사람의 악한 탐욕적 본성과 학대받는 자들을 위로할 사람이 없는 가혹한 현실을 꼬집었다. 비통한 현실에서 억압의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마음은 잠언의 지혜자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자비를 구하지만, 무례함으로 반응하는 부자들이 존재한다(잠언 18:23)는 사실을 발설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때 진실에 가깝게 다가선다. 그러니 진실한 말은 꾸밀 필요가 없다.


코헬렛은 사물을 찬찬히 살피고, 돌아보며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무심한 방관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인간을 억압하는 거센 현실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한걸음 더 들어가 ‘공의’와 ‘정의’를 짓밟고,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보아도 놀라지 말라(5:8)고 조언한다. 왜 일까? 이 말은 그의 냉철하고 예민한 사회적 통찰이 담긴 말이다. 일반적으로 고대 사회에서 권력자가 갖춰야할 덕목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실행이었다.


공의로 다스리는 왕은 나라를 튼튼히 하지만,

뇌물을 좋아하는 왕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잠언 29:4, 새번역).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잠언 29:14, 개역개정).


고대의 왕이 겸비해야할 태도가 이러한데, 여호와 신앙을 수호했던 이스라엘의 왕과 권력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의 후손 첫 세대가 죽고, 모세 역시 광야 40년을 마무리할 즈음 광야 2세대를 향해 열렬한 가르침을 쏟아냈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곧 ‘토라’를 풀이해주는 고별설교였다. 모세는 왕과 지도자들이 행할 도(道)와 관련한 가르침을 분명하게 전했다(신명기 1:14-18; 17:14-20).


당신들 동족 사이에 소송이 있거든, 잘 듣고 공평하게 재판하시오. 동족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동족과 외국인 사이의 소송에서도 그렇게 하시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재판을 할 때에 어느 한 쪽 말만을 들으면 안 되오. 말할 기회는 세력이 있는 사람에게나 없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주어야 하오. 어떤 사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시오(신명기 1:16-17, 새번역).



그러나 하나님의 가르침과 어긋난 삶은 너무 자주 불공평하다. 그러면 희망은 없는가? 그래도 희망은 있다. 코헬렛은 정의와 공의가 짓밟힌 세상을 보아도 놀랄 것 없고, 높은 자 위에는 더 높은 재판관이 있다는 것을(5:8) 상기시킨다. 모든 일을 판결할 가장 높은 재판관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희망이다. 하나님의 판결이 있을 것에 대한 믿음이다. 또한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라도 땅이 주는 소산으로 먹고 산다(5:9)라는 사실 역시 희망이다. 억압하는 사람이나 학대를 당하는 사람이나 결국 가장 높은 재판관 하나님 앞에서 열등하지도 우월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모든 인류는 ‘하늘 위에’ 계신 주권자의 통치와 판결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땅에 속한’ 평등한 존재다.


그러면 최고 재판관의 판결 시기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당장 악의 심판이 없는 ‘연기된 심판’ 앞에서 어떻게 견뎌야하는가? 코헬렛도 처벌받지 않는 악을 보며 몹시 불편했다(8:10-14). 코헬렛은 정의가 지연되는 것을 보고 ‘헤벨’을 토로하며(8:10) 허탈하고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악행에 상응하는 심판이 곧장 실행되지 않을 때 발생할 악행의 대담성을 말하기도 했다(8:11). 악행을 저질러도 장수하는 악인을 주목했다(8:12). 어디 그뿐인가. 악인이 받을 처벌을 의인이 받고 의인이 받을 보상을 악인이 받는 일도 있다. 그래서 코헬렛은 기막힌 현실세계를 향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외친다. ‘헤벨’이로다!(8:14) 세상은 이토록 부조리하다.


흑과 백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는 현실세계,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장막을 치신 ‘미지’의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3:11). 코헬렛은 변덕스럽고 풀기 어려운 현실 문제에 다시 삶의 즐거움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8:15), 그는 허무, 덧없음, 부조리, 수수께끼, 불합리, 무상함, 아이러니를 포괄하는 ‘헤벨’의 세상을 과감하게 발설하며 세상 문제들 앞에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그는 ‘지금여기’ 신앙의 독자들을 초대한다. 현실의 모든 까다로운 문제들 앞에서 신중한 태도로 자신을 열어두도록. 고통과 환희, 실패와 성공, 눈물과 유머가 교차하는 삶의 역설과 모순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도록. 규범화된 지식과 진리만이 아니라 모순투성이인 실존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그렇게 코헬렛은 오늘도 지식이 아닌 지혜로 인도되는 대화의 장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김순영/안양대 신학대학원 강사,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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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9)


작은 표지판


진부령 정상에서 용대리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걷는 즐거움을 맘껏 누리게 했다. 아직 세상이 눈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산안개가 피어오르는 한적한 길, 그런 길을 혼자 걷는 즐거움을 어느 누가 흔하게 누릴까. 오가는 차도 드물뿐더러 길도 내리막길어서 나도 자연스레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제법 걸어 내려왔다 싶을 때 저만치 앞쪽으로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진다. 기암괴석이 질주하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용대리(龍垈里)라는 지명이 바로 저 바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용 용’(龍) 자에 ‘터 대’(垈) 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암괴석은 영락없이 용의 등 비늘을 빼닮았다.


     용의 등 비늘을 닮았지 싶은 바위가 산등성이를 내달리고 있었다.


마침 길가에 문을 연 식당이 있었다. 황태전문식당이었는데 30년 외길을 걸어온 원조집이라 쓰여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는데 주인인 두 부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 모습이 두 가지 점에서 반갑고 고마웠다.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이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 찾은 나를 기꺼이 맞아주었다는 것이다. 혼자 들어가면 받아주지 않는 식당도 있었는데, 그런 일은 걷기 전에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낯선 경험이었다.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 가야 한다는데, 황태는 식탁에 오르기까지 서른세 번 손이 간다고 한다. 최상품 황태는 ‘하늘과 손을 잡아야 나온다’ 할 만큼 자연의 도움 없이는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바람, 눈, 햇볕, 기온, 네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용대리는 황태 덕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본래 황태의 고향은 함경도 원산이라 한다.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온 원산의 실향민들이 황태 덕장을 만들 곳을 찾았는데,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들의 눈에 띈 곳이 인제 용대리였단다. 입지 조건과 기후 조건이 원산과 그 중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국내 최고의 적설량과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 ‘풍대리’라 불릴 정도로 거세게 부는 찬바람, 용대리는 명태를 황태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덕장의 입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용대리에서 나는 황태는 최상품으로 인정을 받는데, 전국 황태 생산량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혼자서 먹는 밥이 무엇이 맛있겠는가만 그날 아침 황태해장국은 달랐다. 황태해장국이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감탄을 했다. 황태해장국을 처음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맛에 반하기는 처음이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얼마나 시원하고 달고 고소하던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비웠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니 걸음도 가벼워진 듯했다.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매바위 인공폭포 삼거리가 금방이었다.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간 적이 여러 차례 있어 익숙한 곳, 하지만 걸어서 그 앞을 지나가니 그곳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웠다.


 생각지 않은 길을 발견한 즐거움은 컸다. 한적한 길을 걷다가 만난 풍차.


다음 행선지는 백담사와 십이선녀탕이다. 차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뜩해지려 할 때, 생각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작은 표지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백담사라 적힌 표지판이 큰 도로에서 벗어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인근에 있는 가게를 찾아가 물었더니 맞단다, 그 길로 가도 백담사 방향으로 갈 수가 있다고 했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표지판을 내내 감사할 정도로 새로 정한 그 길은 한적하고 편했다. 2차선으로 된 도로로, 주로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 같았다. 그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내가 걸어가고 있을, 차들이 질주하고 있는 도로를 개울 건너편으로 바라볼 때마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마음은 새로웠다.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도 제 자리에 서 있는 표지판은 귀하다. 아무리 구석진 자리에 서 있어도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는 표지판은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표지판의 소용은 크기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에 서서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키는데 있다. 자기 자리에 서 있기만 하다면 누군가에게는 두고두고 고마워 할 길잡이가 된다.


오래 전에 드렸던 ‘어느 날의 기도’ 하나를 다시 떠올린다.


어느 날의 기도


볕이 쬐면 볕을

비가 오면 비를

눈이 날리면 눈을 맞으며

자리를 지킵니다

실핏줄처럼 금이 가고

푸른 이끼 멍처럼 돋아도

몸에 새긴 글씨

지켜내게 하소서

폭풍 속 흔들려도

꺾이지 않게 하시고

외발로 선 시간

막막하지 않게 하소서

머무는 이 없어도 좋습니다

초라하면 어떻습니까

갈림길 끝

길을 찾는 누군가에게

가야 할 곳 제대로 가리키는

바른 표지판이게 하소서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http://fzari.tistory.com/956

2. 떠날 준비 http://fzari.com/958

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http://fzari.com/959

4. 배낭 챙기기 http://fzari.com/960

5. 챙기지 않은 것 http://fzari.com/961

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http://fzari.com/964

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http://fzari.com/966
8. 가장 좋은 지도 http://fzari.com/967
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http://fzari.com/969
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http://fzari.com/971
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http://fzari.com/973
12. 소똥령 마을 http://fzari.com/974
13. 아, 진부령! http://fzari.com/975
14. 행복한 육군 http://fzari.com/977  
15. 몇 가지 다짐 http://fzari.com/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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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8)


왜 걸어요?


이 또한 드문 경험이었다. 그곳이 식당이든, 길가 평상이든 배낭을 내려놓고 쉴 때면 누군가 다가와 먼저 말을 붙이는 이들이 있었다.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인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닐 터, 그런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드물기도 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행색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겠다 싶다. 조금만 유심히 보면 나는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가까운 길이 아니라 먼 길을, 한 나절이 아니라 여러 날 걷는 사람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배낭 때문이었다. 배낭이 유별났던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만난 이들 중에는 배낭의 무게를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따로 재어보질 않았으니 나도 몰랐다. 일정 중에서 도피안사를 찾아갈 때였다. 신라 시대에 세워진 사찰이라니, 그 오랜 세월을 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불과 몇 백 미터를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표지판을 잘못 이해를 하여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하필이면 도피안사(到彼岸寺)로 가는 길에 길을 잘못 접어들다니,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긴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만나는 법이니까.


농로를 걸어가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길을 확인하며 보니 제법 큰 저울 위에 블루베리가 담긴 광주리가 올라 있었다. 저울에 배낭 무게를 재보아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얼마든지 그러라 했다. 배낭 무게는 11kg 정도였다.


그러니 배낭이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배낭보다는 배낭 뒤에 걸려 있는 것들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배낭 뒤에는 대개 덜 마른 양말이 걸려 있었다. 다른 빨래와는 달리 아침이 되어도 마르지 않는 양말을 옷핀으로 배낭에 매달고 걷다보면 어느 샌지 잘 마르고는 했다. 혹시나 싶어 챙긴 옷핀은 의외의 용도를 가지고 있었다.


양말보다도 사람들의 눈길을 더 끌었던 것은 신발이었을 것이다. 폭우 속에 진부령을 넘은 것을 안 이 장로님은 먼 길을 신발을 사가지고 달려오셨다. 내미는 신발을 대하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따뜻한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배낭 무게를 줄인다며 떠나올 때 여벌 신발을 챙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신발이 한 켤레밖에 없으니 젖은 신을 신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고, 길을 걷는 중간 중간 신발을 벗어 햇볕에 말리곤 했다.


장로님 마음에는 젖은 신발로 걷는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을 것이다. 하긴 젖은 신을 신고 먼 길을 걷는 것은 불편함보다는 물집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일이었다.


배낭 안에는 짐이 더 들어갈 틈이 없었다. 다행히 장로님이 신발과 함께 전해준 물품 중에는 간단한 고리도 있어서, 신발을 배낭에 매달 수가 있었다. 덜렁덜렁,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배낭에 매달린 신발이 춤을 췄다.


이따금씩은 신발이 잘 매달려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배낭 뒤에 매달려 있어 눈에 보이질 않으니 손을 돌려 만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오른쪽으로 한 번은 왼쪽으로, 신발을 차례로 확인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굳이 두 짝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두 짝 중에서 하나만 없어져도 나머지 하나는 소용이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 삶 속에는 둘 중 하나만 사라져도 남은 하나가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신발이었다.


막 떠나기 시작한 기차에 오르는 순간 구두 한 짝이 벗겨져 기차 밖으로 굴러 떨어지자 얼른 나머지 한 짝을 기차 밖으로 벗어던졌다는, 간디 이야기가 있다. 왜 그러냐고 수행원들이 놀라 물었을 때 간디는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누군가 내 구두를 신는다면 두 짝이 다 있어야 신지 않겠나?”


길을 걸으며 그 중 많이 받았던 질문은 왜 걷느냐는 질문이었다. '하늘 꼬리'라는 '천미리'를 지날 때, 저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까마득하다.


무더위 속 양말과 신발을 배낭 뒤에 매달고 다니는 이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런 모습을 눈여겨 본 이들은 뭔가 궁금한 것이 있어 내게 다가와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이었다.


열하루를 걸으며 그 중 많이 받은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왜 걸어요?

-어디까지 가요?

-혼자서 걷는단 말이예요?


도대체 왜 걷는 걸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길을 걷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제주도 올레길이라면 모를까 하필이면 DMZ를 따라 열하루를 걷는 이유는 뭘까, 대뜸 짐작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허리가 잘린 이 땅에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분단의 땅 DMZ를 걸어보고 싶었다고 대답을 하면 대개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까지 가요?”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로 바뀌었다. 일정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루에 30km 이상씩 열하루 동안을 걷는다는 것도 그렇고, 열하루를 걸으면 우리나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를 걸을 수 있다는 것도 평상시엔 떠올리지 못한 생각이지 싶었다.


세 번째 질문도 많이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혼자 걸으면 너무 외롭지 않느냐, 위험하지 않느냐, 대개는 그랬다. 걸어보니 외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대답을 하면 나를 성격이 별다른 사람인양 바라보고는 했다.


연배가 나와 비슷한 이들은 세 가지 질문 외에 한 가지 질문을 덧붙이곤 했다. 물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혹시…, 지금 나이가…?”


내 모습을 보니 나이가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젊어 보이는 나이도 아니었을 터, 내가 나이를 말하면 반응은 비슷했다.


“대단하네요!”

“나도 한 번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십이선녀탕으로 가던 중에 만난 한 남자 분은 특히 관심이 많아 햇볕에 널어 말리던 내 신발이 나무 그늘 안으로 들자 얼른 햇볕 밖으로 옮겨주면서까지 질문을 이어갔다. 내가 걷고 있는 로드맵을 궁금해 하여 메일 주소를 받았고, 다녀온 뒤에 보내드렸다. 언젠가 생각지 못한 누군가가 같은 길을 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을 가만히 보면 오르막 같기도 하고 내리막 같기도 하다. 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길은 달라진다.


김화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중년의 남자 분이 있다. 점심을 먹고 이어갈 길을 확인하느라 길을 물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그는 DMZ를 따라 걷는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식사를 다 마쳤음에도 여전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던 그가 내 나이를 물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는데, 나이를 확인한 뒤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제 나이를 먹어 그런 일과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에 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꼭 걸어봐야겠네요.”


이야기를 통해 얻게 된 자극이 고마웠던 것일까, 길을 걷는 나를 격려하고 싶었을까, 그 분은 이야기를 마치고 먼저 일어서며 내 점심값을 계산했다. “모든 일정을 건강하게 잘 마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행색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정체, 차림새만 보고도 먼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 엄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과연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릴 만한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살아가는 모습이나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릴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 모습만 보면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는 믿음의 표지와 표식이 과연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일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문득 떠오르는 말씀(베드로전서 3:15)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말은 우리를 향한 권면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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