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늦봄 문익환, 그 이름 석 자는 이 나라 신학과 운동과 역사에 박힌 빛나는 보석이다. 퇴색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요, 늘 푸른 힘을 주는 생기이다. 책상물림으로 앉아 있던 구약성서학자가 들판에 나와 광야의 소리로 변신하자 역사는 꿈틀거렸고,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리고 고난의 시대를 기운차게 뚫어내었다.


이 나라 신학과 운동과 역사에 박힌 빛나는 보석


그 문익환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산천은 변했으나 그 맑은 미소와 청아한 꿈은 아직도 여전히 우리에게 뜨거움으로 있다. 목사이면서 목사로만 머물지 않았으며, 시인이면서 시인으로 그치지 않았고 학자이면서 학자로 멈추지 않았다.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야욕이 없었고, 존경의 상석 위에서 교만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내면에 쏟아져 내린 하나님의 영과 시대의 소리에 맞추어 자신을 던졌고, 그로써 역사로 존재하게 되었다. 모두가 지쳐 스러질 때에 우뚝 선 우리의 마음이 되었고, 막히지 않은 길이 되었으며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떠난 20년의 세월이 먼 듯 하지 않으며,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 같기만 하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존재의 모습은 모두 그러한가 보다.


‘재야인사(在野人士)’라는 말이 주었던 무게가 시대를 울렸던 때가 있었다. 백발 휘날리며 포효하듯 민중의 마음을 흔들었던 그의 모습 한 자락이라도 보이면 권력이 긴장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가 노년의 몸을 청년처럼 움직이면 모두가 어느새 일제히 일어나 오만과 독선, 그리고 독재의 성채를 향해 진군했던 역사가 있다.


손에 수갑을 차고 옥에 들어서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옥 밖에 있는 이들을 도리어 위로하던 그의 넉넉한 웃음이 우리 모두를 기쁘게 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가 두 팔을 벌리고 소리를 토해내면 그것이 곧 역사의 육성이 되고, 그가 훌쩍 발걸음을 옮기면 그것이 곧 역사의 한 걸음이 되었던 충격이 있었다. 그리하여 문익환은 시대의 선봉이었으며, 우리 모두의 횃불이었고 내면의 감격이었다.


1989년, 김일성 주석과의 전격적인 만남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으나 그 놀라움은 사실 그의 순수한 꿈의 연장이었다는 것, 그래서 김일성 주석과의 뜨거운 포옹이 그 어떤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라 그의 몸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사랑과 삶의 모습이었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그에게 가해진 고통은 그에게 역설적으로 힘이 되었고, 달려갈 길을 줄기차게 달려가는 자로 만드는 동력이었다.


어찌 그 만남 하나로 통일이 되고 남북이 통하며 세상 천지가 바뀌겠는가 만은, 누군가 앞장서서 길을 내지 않으면 결국 길은 언제고 영영 생기지 않는 법. 문익환은 없는 길을 만들어 뚫었고, 그 뒤로 무수한 사람들이 줄을 이어 그 길을 밟았으니 역시 선각자는 달리 있던 것이었다.


소년 문익환을 길러낸 자양분


1918년, 만주 북간도 명동에서 문재린, 김신묵의 첫아들로 태어난 문익환은 민족에 대한 사랑과 새로운 시대의 문명에 대한 깊은 일깨움이 있었던 그곳 이주 조선인촌에서 이미 장래의 문익환으로 자라난다. 북간도 명동은 일제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그곳으로 떠난 일군의 선비들이 모여 만든 동네.


그곳에서 교육과 기독교의 열정은 소년 문익환을 길러내는 자양분이었다. 목사인 아버지 문재린의 모습을 통해서 그는 평생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목사임을 자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자신에 대하여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성서를 통해서 만나게 된 믿음의 사람들은 소년 문익환에게 꿈을 불어넣었고, 그로써 그는 성서의 세계에 일찍 탐닉하게 된다. 무척이나 성숙한 소년이었다.


민족혼이 강렬했던 명동의 분위기에서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과 신앙의 세계가 하나가 되는 가장 기초적인 훈련을 그때 하게 된다.


그런 명동인지라 이후 이곳에서는 민중 신학 교육자로서만이 아니라 민중을 위한 정치에 나섰던 그의 아우 문동환, 이후 민중신학의 태두가 되는 안병무 등이 배출된다. 명동은 아이들에게 민족의 존엄을 배우게 한 현장이었고, 기독교 신앙이 역사와 하나로 어울려야 함을 일깨운 자리였던 것이다.

물론 그가 처음 접한 기독교는 그가 이후 구약성서의 예언자적 전통에 서서 외쳤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로 치면 보수적 신앙의 원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신앙의 틀에서 그의 뼈대는 굵었고, 웬만하면 물러서지 않는 강단이 생겨났다. 이것은 그가 오랜 세월 동안 한눈팔지 않고 히브리 성서를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한 힘이었고, 결국 그런 예언자적 삶으로 살아가게 한 근력이 되었다.


일본 동경의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그곳에서 신학수업을 했고, 만주 북간도에서와는 다른 자유로운 사상적 흐름 속에 있게 되었다. 일본 동경시대의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보수적 신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그로써 한 단계 발전한 신학적 이론의 토대 위에 설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학병 소집을 거부, 만주 봉천 신학교로 이적하여 만보산 한인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게 된다. 아직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그러나 공부에 관심이 깊은 젊은 청년 신앙인이었다.


해방 직전인 1944년, 그는 평생의 가약을 맺은 박용길과의 삶이 시작되고, 해방 후 한국신학교의 전신인 조선신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학구열은 중단되지 않아 목사 안수를 받고 난 이년 뒤인 1949년,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1950년대의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프린스턴에서 수업하던 그는 6.25 전쟁이 터지자 귀국, 그가 배운 영어실력 탓으로 꼬박 3년을 판문점과 동경의 유엔 사령부에서 근무한다.


남북 대결과 전쟁, 그리고 분단의 현장에서 보았던 역사는 그가 이후 통일의 길을 향해 가게 되는데 중요한 밑거름의 경험이 된다. 3년간 계속된 전쟁이 휴전으로 미완성된 종결을 하자, 그는 마치지 못한 학업에 대한 열망을 주체치 못하고 다시 유학길에 올라 프린스턴에서 석사 학위를 끝낸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당시 “프린스턴 신학대”라는 이름이 차지했던 영광을 떠올려본다면 청년 문익환이 전란에 휩싸였던 조국에 돌아와 신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처지가 어떤 것이었을까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신대와 연대에서 구약학을 강의하는 한편, 한빛교회의 목회자로서 어찌 보면 얌전한 길을 걸었던 그에게 1965년에서 1966년의 유니온 신학대 유학은 의미 있는 충격으로 남는다. 민권운동이 한참이었던 그 시기에 유니온 신학대학은 흑인 해방신학의 산실이었으며,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요람이기도 했다.


구약의 예언자적 전통의 흐름과 이 해방신학의 만남은 그에게 역사의 지평을 열어주었고, 이후 실천의 능력을 갖도록 하는데 있어서 매우 소중한 체험이 되었다.

 

 


 

밀실에서 시대의 광장으로


이후 그는 십년간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 책임 위원으로 살면서 히브리어와, 그 언어의 세계를 통해서 성장했던 예언자들의 삶 속에 그대로 푹 파묻힌다. 시대의 중심에 살면서 소용돌이치듯 세월을 보냈던 윤동주, 장준하의 꿈속에서의 부름도 마다한 채, 그는 히브리 성서의 번역에 미친 듯 몰두했던 것이다.


그가 윤동주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열등감을 이후 고백하지만, 그의 구약 성서 번역 작업은 그러한 열등감의 극복을 넘어 그에게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주게 된다. 아무튼, 그는 1976년에 이르기까지 일찍 일본과 미국에 유학을 하고 온 탁월한 성서학자였고, 히브리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예술적 재능을 가진 한 목회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독재 체제는 그의 이러한 신학적 헌신의 세계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예언의 언어를 번역하고 있기만 해서는 말씀이 육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우시기나 하시려는 듯, 역사는 문익환을 성서번역의 외로운 밀실에서 시대의 광장으로 전격 불러낸다. 진정 부름을 받은 것이었다.


이른바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이라고 불린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연루된 그는 처음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다. 애초에 이 사건은 그가 연루되지 않게 기획되어 있었다. 필력이 좋은 그가 구국선언문을 기초한 사실은 아무도 불지 않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구약성서의 번역작업이 거의 다 마쳐가고 있다는 중대과제가 있기에, 이 일과 관련되었던 이들은 모두 그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우 문동환은 고문의 고통 속에서도 문익환 이름 석 자가 나오지 않도록 인내했던 동지들의 아픔이 더 이상 계속될 수는 없다고 판단, 형의 이름을 내놓는다.


다른 누가 그리했으면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 되었겠지만, 아우가 동지들의 고통을 덜고자 형을 역사의 현장에 끌어들였으니 이를 어찌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이 시기에 이르기까지만 해도 재야 민주화 투쟁의 지도급 인사는 오히려 그의 아우 문동환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졸지에 엮이게 된 문익환은 그간 히브리 성서 번역의 과정과, 해석의 훈련 속에서 다져온 믿음의 내공을 이른바 초식으로 펼쳐보이게 된다.


1977년 전주교도소에서의 24일간 옥중 단식은 약골로만 여겼던 문익환 목사에 대한 당국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재야 민주화 운동을 그를 중심으로 하는 판으로 집결시켜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가 재야인사로서 뒤늦게 입문하여 스스로를 늦봄이라고 불렀고, 그 사로잡힘의 자리에서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알렸으니 그야말로 사도 바울의 모습대로 산 셈이다.


옥에 가둘 수 없는 영혼


1977년, 기독교계에서 존경받는 그를 더 이상 구속 수감할 수 없어, 박 정권은 그를 형 집행 정지로 석방시켰으나 이내 그는 유신 헌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형 집행 정치 취소로 재수감 된다. 이렇게 해서 그의 감옥 생활의 긴 세월이 시작된다.


첫 투옥이 22개월, 형 집행 정지 취소로 재수감 되어 박정희 암살사건으로 유신체제 붕괴에 이르기까지 옥살이는 한 것이 15개월, 1980년 5월 광주 연루혐의로 이른바 “내란 예비음모죄”로 세 번째 투옥되어 31개월 만에 출옥하게 된다.


1985년에는 5.3 인천항쟁사건으로 네 번째 투옥되어 형 집행 정지로 26개월 만에 나오고 1989년 평양을 다녀왔다는 죄목으로 국가보안법에 걸려 다섯 번째 투옥, 형 집행 정지로 19개월 만에 출옥한다.


1991년, 이른바 분신정국에서의 활동 혐의로 형 집행 정지로 여섯 번째 투옥되어 21개월 만에 옥에서 나오게 된다. 이렇게 1976년에서 1993년까지, 17년 세월 동안 그가 옥에서 보낸 세월은 도합 134개월, 그러니까 11년이 넘는 시간을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랜 세월의 투옥 생활도 그의 총기와 열정을 잠재우지 못했다. 아니, 도리어 그는 투옥의 고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강한 존재가 되어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도무지 옥에 가둘 수 없는 영혼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펄펄 넘치는 “자유청년”이었다.


그러기에 그에게서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힘겨운 영어(囹圄)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디에 갖다놓아도 불길이었고, 역사의 산 현장이 되었으며 곳곳에서 시대를 일깨우는 소리요, 무딘 마음을 깨는 타고난 교사였다.


그래서 그가 수감되면 그 자체로서 역사는 격동했다. 문익환을 감옥에 집어넣는 시대가 그냥 온전하게 자기보신을 하고 지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가 온 몸으로 부딪혀 깨려는 어둠의 장벽은 그렇게 하나하나 무너져내려갔다.


그를 가두는 횟수가 늘어나면 날수록 민중은 그로써 깨어났으며, 현실의 모순을 명확하게 보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몸으로 이 시대의 눈을 뜨게 했다. 눈 먼 시대를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개안(開眼)시키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문익환의 명망(名望)은 민주주의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어갔다. 그의 명성은 개인적 출세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시대의 고난을 뚫고 가려는 이들에게 자랑이요 용기가 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마치 열정의 암호처럼 사람들의 영혼에 와 박혔던 것이다.


문익환이 하는 일이라면, 문익환이 하는 말이라면, 문익환이 가는 곳이라면 문익환이 목숨을 거는 일이라면, 그것은 곧 이 시대가 반드시 해야 하고 귀 기울여야 하며 함께 가야하고 그로써 생명을 거는 사건이 된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혼신을 다한 뜨거움과 그 어떤 위협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사는 모습은 이 시대의 예언자가 과연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모두에게 성찰할 수 있는 재료를 주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삶을 껴안고 평생을 살아왔던 그가 어느새 그 자신의 형상을 예언자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늦봄 문익환 기념사업 이사장 이재정 신부는 문익환의 발걸음을 “가나안땅을 향하여 모진 고난을 무릎 쓰고 걸었던 모세의 길이었으며, 마른 뼈로 뒹굴며 죽어 있던 동족을 살려내기 위하여 골짜기를 헤매던 에스겔의 길이었고, 정의를 위하여 권력에 맞서 몸을 던졌던 예레미야의 길이었으며, 살라진 민족을 다시 하나로 만들어 남북을 통일하려고 설파하던 아모스와 호세아의 길이었다”고 회고한다.


민중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 한번 열지 않으며 거동조차 하지 않은 무수한 기독교계 지도자들과는 달리, 그는 하나님이 외치라는 소리만 있으면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토해냈던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미 그 안에 십자가의 죽음과 삶을 품고 있는 그를 물러서게 할 수 없었으며 죽기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데 무엇으로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많은 회유와 협박에도 그가 끝까지 자신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러한 예언자 정신의 삶과 믿음 때문이었다.

자신은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그 말씀을 대언할 뿐이라는데, 실로 무얼 가지고 그를 꺾을 수 있었겠는가?

 

                                     


미래의 역사를 감격으로 전망


그렇게 살았던 그에게 1992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그건 그에게 감사였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안 받고 가 문제가 아니라, 이 땅의 현실이 인류사회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역사의 한계를 밀어나가는 것이 인류에게 평화의 꿈을 나누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


그것이 그에게 감사의 이유였다. 1989년 그가 북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만났던 일도 다 이렇게 고난의 민족에게 살 길을 열겠다는 심정 하나로 이루어낸 일이었으며, 그로 인해 고초를 겪었어도 그것이 그에게 아무 상처와 좌절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것 자체로서 그는 기뻤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는 믿음이 더욱 깊어갔던 것이다.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 마지막 투옥 생활을 마치고 난 1993년, 그는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운동을 제창하였다. 그에게 통일은 이미 온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이미 맛보는 복”과도 같은 개념이었다.


기도하면 이미 주어진 것이니,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도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온 것으로 받아, 통일된 조국의 삶을 살아내는 연습과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언제나 앞서 있었다.


사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우리의 현대 민족사의 반성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1945년 해방은 왔으나, 그 해방을 맞이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우리는 혼란과 위기, 그리고 마침내 분단의 세월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느 때인가 통일의 역사가 열리면, 그것이 우리에게 혼란과 위기로 치닫는 일이 되지 않도록, 그래서 통일된 나라의 백성답게 성숙하고 힘 있게 현실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 건너지 않은 요단강 저편의 가나안을 미리 보고 산 위에서 이미 기뻐한 모세처럼 그렇게 미래의 역사를 감격으로 전망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여생의 사업으로 바로 이 일을 해야겠다고 팔을 걷어 부친다. 통일을 부르짖지만, 각기 방식과 노선이 달라 분열되어 있던 통일운동을 하나로 묶어내고, 그로써 “새로운 통일 운동체”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정세(政勢)에 대한 인식도 서로 다르고, 운동방식에 대한 생각도 차이가 나며 인적 구성이나 조직의 내력도 틀린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가면서 통일 운동의 핵을 키워나간다는 일이 어찌 쉬운 것이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에스겔의 계시에서처럼 두개로 나뉘었던 막대기가 하나로 이어지는 그 통일의 꿈을 결코 포기할 수 없어 주변의 오해나 때로의 중상모략, 그리고 비난에도 마다하지 않고 한 길로 뚜벅 뚜벅 나간다.


그의 가슴에는 이미 가야 할 땅이 보였고, 그 땅을 가기 위한 대열만 정비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일의 열매는 그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후대가 맛볼 열매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그에게 상관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진심을 이 시대가 이해하고 그로써 통일의 기운이 대세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새로운 통일 운동체”를 꾸리는 것은 흩어졌던 통일운동의 기운을 견고한 하나의 힘으로 만드는 일이었고, 통일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준비였던 것이었다.

그는 이 일에 밤낮으로 매달렸다. 주변에서는 그의 건강을 걱정했고, 때로 그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모략과 중상을 걱정했다.


문익환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그러던 중, 1994년 1월 그는 갑자기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고통을 한 바탕 겪더니, 잠을 자고 있던 중 심장마비로 인해 그가 그렇게 사랑하고 뜨겁게 열정을 쏟았던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난다. 모두에게 놀라운 충격이었고, 한 시대의 통곡이 그의 죽음을 향해 쏟아 부어졌다.


님이 가신 것이었다. 어두운 역사의 밤을 지새우며 예수의 길을 따라, 좁은 길만 찾아다니고 그로써 형극(荊棘)의 삶을 마다하지 않던 그가 졸지에 우리 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 떠난다고 떠나지는가? 문익환은 그저 떠나고 만 것이 아니라, 이 분단의 시대에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도록 하였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이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능력을 주시는가를 보도록 하였다. 민족의 현실과 만난 신앙이 어떤 불꽃을 피워내는가를 목격하게 하였다. 그로써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일깨웠던 것이다.


한반도의 정세가 새로운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이 때에 , 문익환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것 또한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일신의 영달이나 개인적 야망, 또는 출세의 자랑을 모두 접고 한 시대의 절절한 요구 앞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아름다운 이”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그의 삶이 이 땅에 뿌린 그 무수한 씨앗이 보이지 않게 여기저기서 싹을 틔우며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 그래서 민중의 거대한 함성이 그날 그때에 울리면 “역사의 여리고성”은 무너지고 만다는 것. 그것을 우리는 믿는다.


문익환, 그는 바로 그렇게 그 날을 준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전령(傳令)이자, 그리스도의 날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것이다. 그가 흔든 깃발, 우리도 뒤따라 흔들어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고자 하니, 한 시대의 스승으로 그를 가진 우리는 정녕 복 받은 존재들이 아닌가?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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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이길용의 말씀 안으로(10)


말세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가 13:3~13)


요즘 들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기상이변 현상이 자주 반복됩니다. 십 수 년 전부터 엄청난 자연재해가 반복적으로 현대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현 세계 최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미국도 지진과 허리케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만 갑니다. 지난 1989년 진도 6.9로 캘리포니아 지역을 강타한 지진은 27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큰 나라인지라 전국토의 초토화는 없었지만, 당시 미국인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자연의 거대한 용트림은 진지한 공포가 되어 그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에 편승한 언론들은 앞 다투어 지진의 피해로 지쳐버린 가련한 국민들의 마음에 더 큰 양념의 공포심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서부지역의 강진이 지나간 후에, 이제 금세기 안에 내지는 수십 년 안에 미국대륙은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남부와 북부가 동강 나누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그 당시 3류 공포언론의 주제였습니다.


당시 그리 긴 시간이 흐르기 전에 미국인의 공포가 아시아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바로 일본 열도에 떨어진 날벼락 같은 자연의 경고였습니다. 바로 1995년 고베 지역을 강타한 지진이었습니다. 당시 황색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이제 일본 열도가 해수면 밑으로 잠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몰락>이라는 종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고베 지진은 일본인을 멸망의 공포로 몰아넣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엎친대 덮친 격이라고 그 당시 유럽은 전후 최대의 홍수사태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2008년 스촨성 대지진, 2011년 일본 해일로 인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2015년 네팔 지진, 그리고 요즘 반복되는 우리나라의 지진 현상까지... 이런 사고의 연속은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분명한 설명과 또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자기이해를 강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상이변의 원인은 엘니뇨(El Niño)현상 때문이니, 혹은 라니냐(La Niña) 때문이니 하며 사계 전문가의 다양한 고견들이 앞 다투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전문가들의 견해 못지않게 이런 유의 사고가 날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드는 또 다른 설명이 있습니다. 바로 ‘말세’라는 종말론적 시각입니다. 이런 자연 재해와 엄청난 사건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이렇게 소리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거봐라! 말세여! 두말하면 잔소리지, 말세란 말이야! 성서를 봐! 성서를 보란 말이야!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다고 했고, 또 노아의 홍수를 생각 허면 이건 분명히 말세의 징조란 말이지. 이제 끝장이야! 새로운 시대가 온 거란 말이지!”


그분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분명 말세는 지진과 기근 같은 실제적 표상과 함께 도래하며, 또 그런 내용이 성서에 들어있긴 합니다. 오늘 그분들이 인용하는 성서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성전 건너편 올리브산에 앉아 성전을 바라보고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찾아 와서,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다 이루어질 무렵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장차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그리스도다!’하고 떠들어대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 여러 번 난리도 겪고 전쟁 소문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아라.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날 터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또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흉년이 들 터인데 이런 일들은 다만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라. 너희는 법정에 끌려 갈 것이며 회당에서 매를 맞고 또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우선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희를 붙잡아 법정에 끄고 갈 때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그 시간에 일러주실 것이니 그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제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들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가의 이 구절은 복음서에 기록된 말세에 대한 내용 중 원래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됩니다.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마가복음 13장은 장 전체가 하나의 작은 묵시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의 묵시문학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1세기 사이에 이스라엘 사회에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묵시문학이 유행을 타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시리아 정권의 박해와 로마제국의 압제 아래 수많은 유대인이 고통 받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적 환경과, 또 그에 따라 깊은 체념 속에 절망하고 있는 유대 동족을 위해 종교적 희망이나마 전해주고자 했던 당시의 묵시 문학가들은 새로운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묵시 작품들입니다. 


그들의 역사관은 지금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대한 분명한 이분법적인 구조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발붙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철저한 비하를 감행합니다. 이 세상은 아담이 사탄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취했을 때부터 이미 죄악과 타락으로 그득한 세상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는 계속해서 죄악으로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악이 넘치는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계를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이고 이런 생각은 그들이 남긴 묵시문학 작품 속에 수시로 발견됩니다.


이러한 당시의 묵시문학적 분위기는 예수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오늘 읽은 마가복음의 말세 예언에 관한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흔히 사용하시던 빈번한 주제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나라’도 실상은 묵시문학계통에서 즐겨 쓰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분이 사용하셨던 ‘죽은 자의 부활’, ‘심판’, ‘영생’, ‘영벌’ 등도 역시 묵시 문학계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묵시문학의 용어들을 빌려 오셨지만 내용만은 자신의 색깔로 채우셨습니다. 대부분 묵시문학적 전통 하에 서있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포함하여, 다가올 종말의 날에 대한 엄정한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오늘 당장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곧 그들의 역사관 속에서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인간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의 종말에는 따뜻한 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심판과 종말의 가르침에는 늘 ‘구원하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에게는, 심판이란, 종말이란 끝장내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요청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분의 우리를 향한 연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둔다면 마치 자신의 날이 오기라도 한 것처럼 큰 목소리로 “말세!”를 외치는 이들의 그림은 왠지 낯설어 지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예수의 말세관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오늘 읽은 성서로 돌아갑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서를 살펴보면, 말세의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 역시 자연의 재해와 기후의 이상 현상 등을 종말의 징조라 읽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세 읽기는 거기에서만 끝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거짓 구원자가 등장하고, 전쟁이 소문이 들리며, 민족과 나라가 서로 싸울 것이며,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이지만 이것은 조짐일 뿐. 말세의 본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의 말세 인식은 후반부에 보다 정확하게 등장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주고 아비도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 또한 부모들에 들고 일어나 부모를 죽일 것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가 이해한 말세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의 눈에 자연의 재해와 이상 현상은 말세의 본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말세는 바로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예수는 경고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흘러갈 때, 서로에게 있어야 할 신뢰가 파괴되었을 때, 바로 그 때가 말세의 절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마태는 보다 정교한 언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태 24, 4-12)


마태복음에 연속해서 등장하는 예수의 종말 읽기를 자세히 뜯어보면 막판에 열쇠가 있음을 눈치 채게 돕니다. 즉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 말세의 본모습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바라 본 종말은 자연이 아니라 ‘인위의 재난’입니다. 인위의 재난이 자연의 재난보다 더 파괴적이며 무서운 것이고 이 세상의 종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을 예수는 분명히 읽고 있습니다.

“추락한 인간성이 종말을 재촉할 것이다!”


예수의 선포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재난은 종말의 서론이고,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좋아 날뛰며, 그것을 통해 인간의 사이를 갈라버리는 파괴적 이념으로 무장한 이들이 출현하는 것, 그것이 종말의 본론인 셈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지구촌 구석구석 여러 자연 재해로 어려움을 당한 이들이 속히 생의 희망을 얻어 재기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절망치 않고 함께 힘을 모아 재난의 때를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바람이 있습니다. 제발 이런 저런 재해 속에서도 힘겹게 일어나 재기하려는 민초들 머리 위에 말세의 저주를 퍼붓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하나 희망하기는 우리 기독인들이 그들에게 구체적인 희망으로 자리하는 것입니다. 그들 옆에서 말세의 언성으로 훈수드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상처 난 가슴을 위로하며 힘을 보태는 동료의 모습, 즉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리고 참 위로를 주는 친구 같은 기독인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이길용/서울신대 교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17년 세종교양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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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섬, 끝자락에서 일구는 가없는 사랑

- 40평생 누워 있는 아들 돌보는 한 노모의 애절한 사연


전남 여수 앞 바다의 거문도(巨文島). 이름하여 “큰 글을 닦은 섬.” 옛날 중국인들이 이 섬에 우연히 상륙하여 필담(筆談)을 나누다가 의외의 지식수준에 놀라 부른 이름이 내려오게 되었다는데 글 잘하는 것이 못하는 것보다야 자랑스럽기는 하겠지만 다른 말로 뒤집자면 중국 문화의 영향이 이 섬에까지 파고들은 것이라고나 할까? 남의 나라 글을 아무리 잘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글이요,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것은 아니니 만큼 그 거문도라는 이름은 어떻게 보면 이 섬의 ‘소외된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찾아볼 이 섬의 한 늙은 어머니와 그 늙은 어머니 못지 않게 늙어버리고 병든 아들의 기막힌 사연은 그 운명의 실타래 속에 버려진 채 우리의 마음에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거문도는 우리의 근대사에서 19세기 후반, 중국을 집어삼키고 있던 영국이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강점한 역사로 유명한 섬이다. 하고 많은 섬 가운데서 그 조그만 섬을 우리의 허락도 없이 차고앉아서 러시아가 내려올 뱃길을 가로막겠다고 수를 둔 저 멀리 서양(西洋)의 섬나라 영국과 이 동방의 작은 섬이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는 것은 이 섬사람들의 삶의 간단(間斷)없는 풍파를 말해준다. 역사에 등장할 정도로 주목되었던 땅이었으나 정작 그곳에 사는 이들은 역사의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그저 이름 없는 백성들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른 누군가의 이해타산을 위해 자신의 운명이 잠시 볼모로 잡혔던 그 섬은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한려수도(閑麗水道)를 펼쳐내는 복잡한 곡선의 남해(南海), 그 언저리에 외롭게 떠있다. 그리고 그 섬 안에 살고 있는 조경백이라는 60이 넘은 아들은 꿈쩍도 못한 채 2평 짜리 비좁은 방에서 오늘도 몸을 한 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40년 이상 누운 그 자세로 80대 중반에 접어든 노모의 눈물겨운 수발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매어있는 사랑의 볼모일까? 누구도 상대를 포기하지 못한 채 살아온 세월은 어찌 보면 기한 없는 형벌이고 인고(忍苦)의 슬픔이다.


이춘덕, 조경배 씨 모자의 기구한


어머니 이춘덕(85세, 거문교회 집사)씨가 아들에게 ‘꽁꽁 묶이게’ 된 것은 46년 전, 스물 셋의 아들이 류마티스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병균을 막아야 할 항체가 제 몸의 관절 세포를 나쁜 세균으로 인식해 공격하고 파괴하는 질병이 닥쳤다. 엉덩이뼈와 다리뼈를 잇는 고관절에 처음 증세가 나타난 아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후 병마는 계속 퍼져서 지금은 목 아래 모든 뼈마디가 오그라들고 비틀어진 채 굳어버렸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나날을 보내왔다. 그렇게 46년… 전신마비로 46년 동안 문밖을 나서보지 못한 아들. 어머닌 그 아들의 손발이 되어 반평생을 사셨다. “진작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한국 전쟁이 막 끝난 당시 2남 4녀를 둔 이 씨 부부는 “끼니 때울 일을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했다. 남편은 조각배로 고기잡이를 하고 자신은 떡을 빚어다 팔았다. 거문도에는 지금처럼 보건지소도 없었고, 1000km 남짓 떨어진 여수항까지 여객선도 없었던 때여서 아들 치료에 도저히 엄두를 못냈다고 했다.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아들은 16살 때 발병했다. 반년쯤 누워 있다 일어났지만 3년 뒤 더 심하게 재발했고, 쑥뜸을 여러 날 맞고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세번째 병이 닥치자 아들은 하늘을 원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이 무렵 떡방아에 머리를 부딪혀, 지금까지도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어머니를 괴롭히는 두통. 약도 소용없다며 어머닌 늘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 외진 섬에서 어머니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이마에 훈장처럼 파스를 오려붙이는 일뿐이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이제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대나무 꼬챙이를 움직여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성경을 보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 보다 책장을 넘기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아들. 그래도 조경백 씨는 신구약 성경을 여덟 번이나 읽었다. 요즘은 하루에 20장씩의 성경을 읽으며 보낸다. 욕창 방지한답시고, 10cm 높이의 간이침대에 누워 천장에 매달려있는 성경책을 읽고 있는 조 씨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늙은 어머니. 훅하고 바람이 불면, 두 분 다 그대로 재가 되어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조경백 씨는 요즘 아침, 저녁 하루 두 번만 식사를 한다. 한 끼 식사에 걸리는 시간은 30분.그건 허리 아픈 어머니에겐 너무나 큰 무리이다. 그래서 아들은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점심을 거르기로 했다. 어머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흰머리가 나지 않는다. 당신이 늙지 않아야 자식을 건사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는 어머니. 머리가 허연 아들은 어머니의 검은 머리가 그래서 또 가슴 아프다. 좋은 일도 많고 나쁜 일도 많은 넓디넓은 세상. 그러나 아들은 그 세상을 바라만 볼 뿐 만질 수가 없다. 그래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아들은 버릴 수가 없다. 두 평도 채 안 되는 비좁은 방안. 그 속에 갇혀 사는 아들에게 어머닌 유일한 말동무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다.


조경백 씨는 새벽 4시면 하루를 맞이한다. 첫 아침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이 눈을 뜨면 처음 맞아주는 것이 샛별의 반짝거림입니다.” 그렇게 시리도록 별을 보고 눈이 맑아져서 밝아오는 아침, 한밤 내 긋던 별똥별만큼 많아진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과 커다란 광주리 하나 가득 세월 이시고 홀로 서신 어머니를 바라본다. 우리는 누구나 엄마의 풍 안에서 늘 세상이 따뜻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늘 바람 부는 쪽으로 등을 돌리고 계셨던 어머니의 세월은 늘 등이 시리지 않았을까. 외딴 섬 거문도, 그 속에서 또 다른 섬처럼 외롭게 살아온 모자의 방에 불이 꺼지면 또 하루가 지나간다.


어머니는 당신 것보다 먼저 아들의 수의를 마련해 놓으셨다. 당신께서 먼저 가면 돌봐줄 이 없는 아들 생각만 하면 어머니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저 사람이 먼저 가야 내가 마음놓고 갈텐데… 내가 먼저 가면 어떡하나. 그 생각하면 내가 잠이 안오요.” “또 나가 만일 어쩌고 보면… 너가 나 앞에 가야 할 것인데…” “불쌍한 말로 나 앞에 가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눈을 감고 간다.” 아들을 앞서 보내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가 없다는 어머니. 그러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말을 듣지 않는 몸. 어머닌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들의 마음일까. “어머니가 먼저 가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자식에 대한 동물적인 사랑으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어머니가 아프시면 성경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밝은 모습이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아들에게 늙고 초라한 어머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모진 세파 속에서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아들을 지켜온 어머니. 46년! 세상은 참 무섭게 변했는데, 모자의 46년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어머닌 또 내일 아들을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실 거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비탈거미는 일생에 단 한번 4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초여름,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온다. 어미는 커다란 곤충들을 잡아먹어 스스로의 몸을 살찌운다. 추운 겨울이 되고 먹이가 줄어들면, 어미 거미는 수 십 마리의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뜯어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배 밑에 새끼를 놓고 톡톡 두드리면서 주위를 환기하는 것이다. 굶주린 새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미 위에 올라타고, 어미의 몸을 뚫어 독액과 소화액을 주입한다. 어미는, 어미는, 순식간에 우글거리는 새끼들의 밥이 된다. 비탈거미는 더 이상 생식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비정한 운명을 잘 알고 있다. 하여 의미 없는 육체를 새끼들의 자양분으로 헌납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극한의 사랑이다. 거문도의 사연은 ‘비탈거미’를 생각나게 한다. 어머니가 감당한 두터운 세월의 무게에 한숨을 몰아쉬며, 지독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고개조차 마음대로 돌릴 수 없이 꼼짝 못하고 누운 그의 모습은 인간으로서 동물과 구별되는, 일어설 직립 능력을 박탈당한 식물인간적 상태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인간으로서 계속해서 살아갈 의미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처지는 비극적이다.


건장하고 활기 넘치는 시기를 보냈어야 했을 그는 이 병마의 시련 속에서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과한다. 누구도 그의 삶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지팡이 하나를 갖고 하나님에 의존해서 홍해를 가르고 바위의 물을 낸 모세와 다를 바 없이 오로지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인생을 살아낸다. 모세와 그가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의 삶을 해방시키는 일에 부름 받았다면 조경배, 그는 무엇보다 그 자신의 병든 육신에 갇힌 영혼의 자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 쳤다.


그의 광야의 삶은 처절했고 그 처절함이 그를 성서와 신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 육신의 지독한 질고(疾苦)가 끝나는 날, 그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유일한 소망으로 견디고 있다. 그런데 그 견딤은 좌절의 종점에서 피할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견딤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의 85세의 늙은 어머니 이춘복 집사의 사랑과 헌신의 삶이다.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


자신의 고통도 심하건만 어머니는 아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을 스스로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들 노모자(老母子)의 삶은 그래서 마치 섬 가운데 또 하나의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섬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의 바다이다. 그 바다의 깊이만큼 생긴 부력(浮力)은 그 섬을 가라앉지 않게 하고 있다. 그로써,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 라는 세상의 판단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어떤 생명도 그 생명이 끝나기 전에 먼저 저버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 바다를 출렁이게 하는 파도이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 파도와 만나고 있는 것일까? 이들 두 노모자의 모습은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밝고 편안했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모르는 평안이 있었다. 세상은 이들의 삶을 외면하고 소외시켰지만, 이들 노(老)모자는 그 소외의 섬, 끝자락에서 생명의 시간을 일구어 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 아파하는 자의 삶의 자리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들 두 노(老)모자는 바로 그런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고난은 이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의 실마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 보여도 얼마나 간단치 않은 일인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들의 장래를 소망스럽게 기원하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날벼락이 떨어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어머니는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육신, 그리고 자신의 영혼까지 아들의 삶에 쏟아 부어 왔다. 세상이 보기에는 도저히 가망이 없고, 그래서 그 사랑의 헌신이 결과적으로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이 어머니의 병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꺾일 줄 모른다. 자신의 생애 절반을 송두리째 바친 지난 세월이 그녀에게 한과 억울함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는 이 어머니는 아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한다. 방 한 켠에 덩그라니, 마치 오래된 짐처럼 놓여 있는 아들의 육신은 이춘복 집사에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의 무게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어머니는 그 무게를 능히 지고도 아무런 불평과 탄식이 없다. 세상에 진정한 강자가 있다면, 바로 이런 어머니가 아닐까? 이 어머니의 사랑을 무너뜨리게 할 것이라고는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어떤 좌절스러운 현실이 맞닥뜨린다 해도 어머니는 그러한 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달 두 달도 아닌 무려 46년의 세월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성인이 된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온갖 시중을 들면서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는 늙은 어머니가 현실에서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에 제기되는 모든 하찮은 불평과 불만을 잠재우고 만다. 평범한 시골 아낙네에 불과했던 이 어머니에게서 그렇게 강한 힘이 솟아 나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가누지 못하는 몸을 건지는 생명줄


자신의 이러한 신세를 한탄하고 눈물을 쏟을 듯 한데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결국 그 아들에게 영원히 평안한 자리로 가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세상사는 것이 잠시의 고난이나, 그 고난의 강을 건너면 이제까지의 고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감사가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육신으로 사는 아들의 하루하루가 감사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뿐이다. 어머니가 손을 놓는 순간, 그 아들은 지옥을 경험할 것을 아는 어머니는 혼신을 다해 그 아들의 삶에 더 이상의 고통과 아픔이 가해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몸이 곧 자신의 몸이요, 아들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인 이 어머니에게 하여, 사랑은 가누지 못하는 몸을 건지는 생명줄이다. 생명줄을 놓아버리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될 것인지 아는 어머니는 세상의 동정이나 세상의 어쭙잖은 조언에 대하여 조용히 눈과 귀를 닫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한 가닥이라도 남은 생명의 힘이 있다면 그 힘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그로써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인 것을 그녀는 은연중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자신에게 이 고통은 설명될 수 없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주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의 생명과 삶은 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상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에 이어지는 잠시의 통로이다. 그 통로로 들어가는 길이 힘겹다 해서 하나님의 처사에 비난을 더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멀어지는 첩경일 뿐이다. 세상의 눈으로는 사는 의미가 어디에도 없는 듯 하지만, 이러한 육신을 지니고 이러한 고난을 겪는다해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들은 안다. 그 앎이 이들에게 믿음의 뿌리이다.


그리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에 닿아 있는 감격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셨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지경에 있는 자신들에게조차 다가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앞서는 것이다. 실로, 온전한 육신을 지니고 있어도 그 영혼이 병들고 하나님 나라와는 인연이 없이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에게 이들 두 노 모자는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하나님의 사자(使者)이다.


그 어떤 생명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버림받지 않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들의 삶이 이 절망과 좌절의 시대에 희망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게 하는 힘이 되는 이유이다. 하여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의 외면과 방치 가운데 외딴 섬에 갇혀 지내는 상황일지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평안의 힘을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신앙에서 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이들 두 모자는 서로에게 볼모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건지는 은혜의 터이다. 그리하여 세상은 소외시키나 하나님은 품으시는 이 놀라운 사랑의 현장은 끝없는 하나님의 바다를 보여준다. 모든 아픔과 고난을 품으시고 그것을 생명의 힘으로 나누어주시는 하나님 말이다.


거문도의 밤은 바닷바람이 차가 왔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에 끝까지 의지하는 이들 두 모자의 존재로 하여 마치 별이 빛나는 느낌이었다. 아, 누가 인생에서 실망할 것인가? 아, 누가 자신의 삶을 저주할 것인가? 거문도에 가보라.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놓지 않으시는 사랑의 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끈에 매어 있는 배는 인생 어디에서도 표류하지 않을 것을….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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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말아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밑 빠진 둑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탓이 어디 있다고 보느냐?” 


“그야, 있다면 저한테 있겠지요.” 


“옳은 말이다만, 정직한 대답은 아니구나.” 


“……” 


“탓이 너한테 있다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네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밑 빠진 독 같아서 그래서 힘들다는 얘기 아니냐?” 


“그렇군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사랑받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탓’이 너한테 있다는 말이 옳다고 한 것이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힘들지요?” 


“너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사랑이 힘든 것이다.”

“예?”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주거나 누가 누구한테서 받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무엇이 아니라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런 사랑을 누구에게 주고 또 받으려 하니, 그것은 마치 사람이 땅을 어깨에 메고 다니려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거늘, 어찌 힘들지 않겠느냐? 하면 할수록 힘들 것이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루아침에 사랑을 깨칠 수 있겠느냐? 조급하게 굴지 말아라, 지금 잘하고 있다.” 


“……” 


“봄이 되면 땅이 새싹을 땅거죽 위로 밀어올리느냐?” 


“그건 아니지요. 그렇지만 땅이 없으면 어찌 새싹이 돋겠습니까?”


“사랑이 그와 같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이 사랑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는 하겠습니다만,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지금 잘하고 있다지 않았느냐? 

하늘이 모든 것을 덮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바꿔놓거나 젖혀두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하늘과 같다. 

땅이 모든 것을 싣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싫어하거나 밀쳐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땅과 같다. 

해와 달이 모든 것을 비춘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등지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일월과 같다.” 


“그렇지만, 분명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그를 덮어주고 실어주고 감싸주어야 합니까?” 


“전에 내가 들려준 ‘집 떠난 아들 이야기’를 기억하느냐? 

둘째 아들이 아비의 집을 떠날 때 아버지는 그의 가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또한 그의 귀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의 집 떠난 아들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몸은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늘 아들 곁에 있었다. 만약에 아버지가 억지로 아들을 집에 붙잡아두거나 아들을 따라서 도시로 갔다면, 그렇게 해서 아들을 자기 곁에 두거나 아들 곁에 있기를 고집했다면, 그것은 아들의 ‘출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요, 따라서 아들은 끝내 귀향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 


“지금 누가 네 눈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기억해 두거라, 그는 그렇게 ‘잘못된 길’을 갈 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아버지 품 아닌 데가 없어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걷는 길은 짧게 보면 출가행(出家行) 또는 귀가행(歸家行)으로 두 길이 서로 반대 방향이지만, 그러나 길게 보면 출가는 귀가의 씨앗이요 귀가는 출가의 열매일 뿐이고 따라서 모든 길이 결국 귀로(歸路)인 것이다.” 


“……” 


“누구를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없이, 소리 없이, 흔적도 없이, 아무 바라는 것도 없이 그와 함께 있어라, 

거듭 말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곁에 없는 듯 있는 것이다. 

하늘이 땅을, 땅이 초목을, 일월이 만물을 대하듯이 그렇게,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이아무개 지음, 『지금도 쓸쓸하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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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현경장(解弦更張)


굳이 프랙탈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우리의 일생을 닮게 마련이다. 인생은 오늘의 점철이라지 않던가? “이 세상 뭘 하러 왔던고?/얼굴 하나 보러 왔지,/참 얼굴 하나 보고 가잠이/우리 삶이지.” 요즘 들어 함석헌 선생의 시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삶이 부박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살아오는 동안 마주쳤던 그 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맑고 고운 얼굴, 따뜻하고 고요한 얼굴, 수심 가득한 얼굴, 비굴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독기 어린 얼굴…. 그러다가 문득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아뜩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걷다가 창문에 얼비친 자기 모습이 낯설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얼굴을 ‘얼의 골짜기’라고 설명한 분도 계시지만, 우리 얼굴은 정확하게 우리 내면을 반영한다. 옛날 초상화가들은 대상의 외모만 그린 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의 풍경까지도 그리려 했다 한다. 전신사조(傳神寫照)가 그것이다.


말이 장황해졌지만 내게도 아름다운 얼굴이 한 분 계시다. 민영진 박사님(이하 민영진)이다. 20대 초반에 만나 60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그 얼굴은 내게 시종 맑고 환하게 기억된다. 민영진은 학문의 즐거움과 엄정함을 가르치면서도, 학생들로부터도 배우려는 태도를 시종 견지하신다. 그런 학생 정신이야말로 그 얼굴에 깃든 맑음의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몰강스러운 세태조차 민영진을 후락(朽落)의 자리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열정 따위는 시드럭부드럭 스러질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명징한 인식과 표현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신 듯하다. 성서신학자와 성경번역자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도 언어에 예민하였기에, 그 여정이 시로 귀결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시인들은 일상적인 언어를 재배치하여 놀라운 이미지와 의미의 세계를 드러낸다. 언어의 올가미로 영원을 잡아채는 것, 바로 그것이 시적 순간이다.


민영진의 시는 과잉을 모른다. 놀랍고 기발한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심상에 떠오르는 것들을 관념으로 비틀거나 베일로 가리지 않고 직정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고 하여 나이브하지 않다. 그 언어는 정갈하고 고요하다. 성품이 시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에게 시는 삶의 진실과 진정을 드러내는 통로이고, 삶은 시의 자양분이 된다. 지금 민영진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과 일상의 성스러움, 성경, 언어 등이다.




민영진의 삶은 아내인 김명현과 함께 빚어온 작품이다. 그에게 아내는 “하나님의 숨/흙에 닿아 한 점 혈육/우주 바꾸고 몸 바꾸어”(<만물의 어머니> 중에서) 나타난 존재이다. 함께 걸어온 긴 세월을 민영진은 기꺼움과 고마움으로 돌아본다. 유학생활 중에 잃었던 태중의 아기에 대한 기억과 슬픔이 그 둘을 든든하게 이어주는 정서적 밑절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일어날 법한 소소한 일상을 엿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것은 그 속에 담긴 따스한 정과 유머 때문이다. 깔끔한 아내와 털털한 남편, 추위 타는 남편과 더위가 싫은 아내, 사랑의 표현을 갈구하는 아내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은 늘 티격태격한다. 손톱 발톱을 깎다가 궤도를 이탈한 녀석 때문에 방청소를 하던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고, 한밤중에 소변을 보고 변기 깔개를 내려놓지 않았다가 타박을 당할 때면 남편은 애꿎은 친구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낸다.


여보, 당신도 알지 그 친구,

거 왜 가끔 그 모임에 나오는 그 키 큰 친구

요즘, 손톱 발톱이 다 빠졌대

면역력 결핍증이라나 뭐라나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대, 멀쩡했잖아,

손톱 발톱이 없으니까

손가락도 발가락도 제 구실을 못하고

폐인(廢人) 같아 보여

- <손톱 발톱> 중에서


여보, 당신, 내 친구 김 아무개 알지?

비만이라고 걱정하던

그 친구 요즘 소변을 못 본대

터질 듯 마려운데 안 나온다나?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바지가 다 젖어있다나 뭐라더라?

- <쉬> 중에서


나이 듦의 애잔함이 능청스러움과 버무려져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소소한 일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장성한 자식들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온 그 놀라운 손님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자못 따스하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신비이다. 손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우리에게 보내주신/한 편의 시(詩)”(<손자>)이고, 손녀는 “당신 품에 안고 있던 딸/예쁘게 키우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존재(<편지>)이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태에서 태어난 거룩하고 신비한 존재(<아이들아>)이다. 아이들은 생명의 신비함과 거룩함을 가리키는 징표로 우리 가운데 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 안에서라면 늙어감조차 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회한조차 없을 수는 없다. 주어진 시간을 한껏 살아내기는 했지만, 어떤 일도 완전할 수는 없기에, 못다 한 일에 대한 회한이 그림자처럼 영혼에 드리우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은 맡겨진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하나님이 툭 치고 지나갈 때마다 익숙했던 모국어가 서툴러지고, 그 때문에 메시지를 적절한 언어로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청중들에게 익숙한 구문론이나 문법을 지킬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음과 하기 싫음 사이의 경계선에서 바장이다가 그는 자신이 “늘 모국어를 배반하는 설교”를 해왔다고 자책한다(<날 건드리더라>). 짐짓 해보는 겸양의 말이 아니라, 준엄한 자기 성찰에서 빚어진 말이다.


그는 “광야의 포효(咆哮)”가 되지 못하고, 볼모로 잡혀온 이후부터 “침묵한 덕분에/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했”(<볼모>)다고 말한다. 민영진은 ‘그래도 이만하면 잘 해온 것 아닌가’ 하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 엄정한 심판관이 되어 자신의 허물을 폭로한다. 그는 “번역자는/오늘도/의미의 바다를 표류한다”(<표류>)고 노래한다.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 심연을 드러낼 적절한 언어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좌절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막막함을 견디며 그는 살아왔다.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떠날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산다. 인생의 마지막 날은 유예된 집행일 뿐, 그날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울 때는 울면서 왔었습니다만

돌아가는 날은

당신을 부르며 갈 것입니다

당신께서 오라 하실 때

쇠약해진 이 몸 당신 품에 안기어

깊은 잠, 푹 들게 하여 주십시오

- <새 하늘, 새 땅> 중에서


시인은 이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것들임을 절감하며 만물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식물, 동물, 바위, 흙과의 대화를 꿈꾸는 것이다. 우주의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처럼 그는 삼라만상에 빼곡히 적힌 글을 해독하고 싶어 한다(<사파리>). 그것은 인간의 오염된 언어 혹은 분절된 언어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어 너머의 언어가 필요하다. 구상 시인은 마음의 눈만 뜬다면 “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베란다의 봄 국화가 시든 화분에/제풀에 돋아난 애기똥풀이나/그 옆 수챗구멍 질척한 쇠그물에/오물거리는 새끼 지렁이를 보려므나!//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고 노래했다(<마음의 눈만 뜬다면>). 민영진이 당도한 세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그에게 세계는 신비의 정원이다. 마음의 눈이 열리자 늘 밥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이 희생제물임을 깨닫게 된다(<나물>). 몸 안에 들어와 우리의 몸을 이루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나물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호명 행위를 통해 그 나물들은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라 생명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 보아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때가 되면 피어났다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스러지는 야생화 역시 그 생명 세계의 일원이다. “부레옥잠화, 금낭화, 물봉선화, 모싯대 꽃, 노루귀꽃, 등(燈)꽃….” 낯설기는 해도 그 귀한 야생화가 그곳에 있기에 세상이 온전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시인은 은근한 소망을 피력한다. “구름패랭이, 꿩의비름, 말나리 꽃, 뻐국나리, 솔나리, 금꿩의 다리, 천일홍(天日紅)…/내 이름도 너희들 사이 어디쯤에 넣어볼까/다시 태어나는 날, 한번쯤은/너희들과 함께 야생초이고 싶다”(<야생화>).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고쳐 맨다는 뜻이다. 시와 더불어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작(詩作)은 그에게 다른 중요한 일들 사이에 부룩 박은 또 다른 일이 아니라, 성서신학자이자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의 삶의 여정 끝에 당도한 세계이다. 하이데거도 생의 말년에 시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았던가? 합리적 언어 혹은 학문적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세계, 오직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는 신비한 세계가 그의 시를 통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세상은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다. 상투적인 종교 언어에 식상한 이들의 눈이 민영진의 시를 통해 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 한희철/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http://fzari.tistory.com/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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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1968년에 결혼한 후 5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둘만 있어도 깔깔대며 잘 웃는다. 우리 부부의 웃음 묻은 이야기를 가끔씩 이야기하면 재미있다고 글로 써서 책을 내라는 사람도 있고 나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그동안 『민영진 어록』을 발표하라고 한다. 이것이 언제 책이 출간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어 독자 여러분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다. 우리의 이런 꾸밈없는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흠이 될지 욕이 될지도 모를 것 같아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이요 나의 사랑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냥 웃음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44년생이고 그이는 40년생이니 나는 그이보다 네 살이나 더 어리다. 결혼 후, 첫 새해를 맞아 남편은 갓 결혼한 새댁을 어른들께 인사시키고 싶었나보다. 어른들께 세배를 간다기에 치마저고리에 두루마기까지 차려 입고 거기에 걸맞도록 머리를 위로 올리는 업스타일을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자가용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이는 동안이고 날씬해서 어리게 보였고 나는 살이 통통(?)해서인지 더 늙게 보였나 보다. 택시기사가 나보고 누나냐고 묻는 게 아닌가! 난 너무 당황하고 화나고 기분이 안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에게 내가 간 빼 놓고 살아서 아마 늙어졌나보다며 이제부터는 당신이 간 빼 놓고 살라고 명령(?) 하였다. 그랬더니 그이 하는 말 “지금 누나 정도면 괜찮은 거지, 우리가 이 다음에 더 늙게 되면 제자들이 와서 “민 선생님, 어머님이 꽤 젊으시네요.” 할 때가 올 거란다. 그 후 20년이 지난 후부터 그이의 머리에는 은가루가 해를 더해갈수록 자꾸 자꾸 많이 뿌려진다. 난 너무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절대 염색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은 머리가 희어갈수록 멋도 더해진다고 아주 근사하다고 속삭여준다. 바로 로맨스 그레이 그 자체라고.


그이는 한복 입기를 즐겨 해서 신정이면 두 주간을 거의 한복을 입는다. 교회 갈 때도 마찬가지고, 어느 주일날 그이가 한복을 입으니 나도 한복을 입었다. 예배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힘들게 한복 입었는데 그냥 집으로 가기는 아까우니 근사한데 가서 커피라도 마시자고 했다. 우리는 어느 고급 호텔의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 사방을 보니 선보는 팀들이 많았다. 수상한 관계의 남녀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이에게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하고 물었다. 그이의 말 “목사와 여신도 사이로 보겠지.”


《지구별에서 노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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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대만신학자 송천성은 어머니를 가리켜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라 말했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행위의 소중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날이 갈수록 그 말이 실감난다. 현대문명은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의 폐쇄회로에 갇힌 이들은, 기쁨을 누릴 줄 모른다. 이웃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합리성과 효율이 최상의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삶은 부박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마음 내려놓을 곳을 몰라 방황한다. 고향 상실, 안식 없음이 지금 우리 삶의 실상이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여성적인 것이 대체 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관계 지향적인 공감능력을 가리킨다는 말로 이해한다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시절 여성들은 주체로 살기보다는 남성 중심 사회의 객체처럼 살아왔다. <씨알의 소리> 1978년 5월호에 실린 함석헌 선생의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은 “나야 뭐“였다. 함 선생은 아내 황득순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의 삶을 ‘나야 뭐’라는 말로 요약했다. “먹을거나, 입을거나, 뭣에서나, 자기는 늘 빼놓으면서 늘 하는 말의 첫 머리가 ‘나야 뭐……’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여인들의 삶이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를 지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 말이다. 지금은 세월이 달라졌다. 여성들은 더 이상 객체의 자리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런데 주체가 된다는 것이 곧 외로운 단자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주체는 다른 이들과의 창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한 존재가 아니던가.



김명현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주체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공부한 신학을 자양분 삼아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지속해왔다. 교회갱신을 위한 헌신, 여성들의 권익과 지도력 개발을 위한 활동에서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긴장을 해소시키는 건강한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가정생활이야말로 바깥에서의 활동을 가능케 한 생명의 묘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속성을 돌봄, 존경, 지식, 책임이라 했다. 김명현 선생님은 그러한 사랑의 좋은 예이다. 가끔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표정과 말 속에 배어있는 남편에 대한 아낌없는 신뢰와 사랑은 곁에 있는 이들을 가만히 미소 짓게 만든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들이다. 두 아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 그리고 손자 손녀들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은 실답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사는 것은 어쩌면 이 가없는 사랑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어제도 오늘도 마을 어귀를 지키며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맞아주는 품 넓은 느티나무를 닮아가고 있다.


민영진 박사님과 함께 걸어온 50년의 세월을 회고하고 또 경축하기 위해 마련한 이 글 모음집에는 배꼽 빠지게 만드는 웃음, 아련한 아픔,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가 넘실거린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비근한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장엄한 명분을 붙드는 것보다 거룩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도 일상의 일들 속에서 깃든 하늘나라의 광휘에 주목하시지 않았던가. 코헬렛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이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전도서 5:18).


우리의 영원한 중심이신 그분의 마음에 당도하기까지 몸 성히, 마음 성히, 잘 지내시기를 빌고 또 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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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하여 신학의 걸음마를 배울 무렵, 저는 선생님께 구약을 배웠습니다. 과목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몇 과목이나 되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께 배운 가장 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회의 길을 걸으며 내내 마음에 두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수도원을 연상시킬 만큼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했는데, 말씀 한 구절을 읽는 모습을 통해서도 말씀을 허투루가 아니라 공손하게 대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대하는 가장 마땅한 자세가 경외심이라는 것을 저는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

두어 해 전 감신대 동기들이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남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학생들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그날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요. 그날 우리는 밤이 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살아갈수록 모르겠는 것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데 딱히 물어볼 만한 분이 궁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진솔한 대답을 들려주셨고요. 경청과 진솔함이 가장 좋은 대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덤처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마감하며 드렸던 마지막 질문은 “그동안 가장 이기기 힘들었던 시험은 어떤 것이었나요?”였습니다. 선생님은 잠깐의 생각 끝에 대답을 하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내가 가르치거나 전하는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인지, 지금도 고민을 합니다.” 세 번이라 하셨던가요,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쫓겨난 적이 ‘겨우’ ‘세 번밖에 없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와락 웃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큰 찔림이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동이 틀 때까지 천사와 씨름을 했던 야곱처럼 평생 말씀을 붙들고 씨름을 하셨구나,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어깨에 눈길이 갔습니다.



오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쓴 시를 읽습니다. 식물과 곤충과 동물, 온갖 나물과 야생화, 나무와 물과 공기, 심지어는 방사능까지, 그 모든 것을 향해 건네는 언어의 수화(手話)를 지나, 가족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인사와 축원을 지나, 마침내 <초상(肖像)>에 이르렀을 때, 저의 글 읽기는 점점 더뎌지다가 굳어지다가 마침내는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텅 빈 여물통과 가득 찬 여물통’의 만남을 ‘즐거운 해후’(邂逅)(<범일동 아이>)라 했지만, 그 기가 막힌 역설에도 차마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난 시절 먹을 것을 찾아 취사장 구정물이 쏟아지는 수챗구멍을 뒤지던 하얄리아 캠프, 기차에서 뛰어내릴 때를 놓쳐 결국은 군수품 도둑이 되고,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했던 통역을 동반한 문초, 그 때 그 일을 성서 번역자로서의 첫 걸음으로 인식하는 모습 앞에서 말씀을 모시는 근원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땅의 숱한 아픔과 상처와 모순을 말씀으로 품어 오신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 마음은 말씀의 오지를 향하게 되고, 한국의 영진(泳珍)은 라오스의 영진(永珍), ‘아잔 비엔티나’(Mr. Vientiane)란 빛나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영진>).


‘무덤에서 돋는 연한 풀을 뜯어먹으려고 아무데나 주둥이를 박는’ ‘입이 말은 못해도 포식 기능은 완성한’ 눈 먼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풀 뜯는 설교자>는 영락없는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 손사래를 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아픈 초상이었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직시하며 한 자 한 자 적는 설교가 얼마나 웅숭깊고 향기로울까 싶은데도 밀려오는 메시지를 도저히 언어로 바꾸지를 못한다며 ‘내 설교는 늘 모국어를 배반한다’(<날 건드리더라>)고 고백할 때, ‘스스로 실성하여 침묵한 덕분에 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한’(<볼모>) 제물(祭物)로 스스로를 자책할 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를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만나는’(<장수>) 즐거움을 누릴 때, 평생 연구하고 기록해 온 자료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을 텐데도 저울에 올려놓아도 아무런 무게 없는 입김과 속임수로 돌리며 ‘날 떠난 너 흙과 물에서 노닐다가 문득 바람 속에서 낯익은 먼지 하나 만나거든 옛날 옛적이었다고 해라’(<문패>) 하며 평생의 수고를 흔쾌하게 비울 때, ‘번역은 말씀의 빙산일각(氷山一角)’이어서 ‘의미의 바다를 표류’하지만 ‘이 작업도 힘겨울 때는 당신 품에 안기렵니다’(<생일유감>) 겸허하게 기도할 때, 시(詩) 속에 담긴 선생님은 다른 말로는 대체할 수가 없는 ‘말씀의 사람’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곁을 말씀으로 찾아오신 한 사람을 압니다. 그 분은 말씀이 곧 삶이었고, 삶이 곧 말씀이었습니다. 평생을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오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을 봅니다.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삶이 얼마나 지극하고 지순해야 비로소 말씀이 몸을 입는지를 배웁니다. 시(詩)와 삶이 얼마든지 말씀이 될 수 있음을, 아니 그리 되어야 함을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주시는 선생님,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마움이 이리도 큽니다.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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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말씀 안으로(9)


예수는 먹보요, 술꾼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태복음 11:18-19)


오래된 기억 하나를 끄집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때는 저의 대학원 시절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때 조교장이던 한 선배의 물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학기 초가 되면 조교장이 있는 방에서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전체 조교 회의가 열립니다. 당시 막 대학원생이 된 저는 처음으로 학과 조교를 맡게 되었고, 당연히 조교장이 있던 연구실에 처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조교 연구실은 5~6명 정도가 함께 사용하는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때 선배의 책상 앞에 걸려있던 예수님 초상화가 제 눈에 빨릴 듯 밀려들어왔습니다.


선배의 책상 앞 예수의 초상화는 제가 보아오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그림 속의 예수는 아끼던 송아지를 후한 값에 팔아넘기고 시원한 음료 한 잔 걸친 시골 아저씨처럼 호탕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저는 선배에게 그림의 진원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선배가 말하기를, 그 예수님 초상화는 미술을 전공하는 동생이 연필로 그려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뒤늦게 신학을 시작하는 자신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 선배의 자리를 노려보고 있던 그 호탕한 예수의 모습은 제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았고, 기존 예수의 대한 저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림이 제게 준 충격은 작지 않았습니다. 신자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 그림을 보기 전까지 제가 품고 있던 예수의 이미지는 언제나 근엄했고, 세상의 어느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교양을 갖추신 분이고, 머리에는 언제나 빛나는 아우라가 자리하고 있어 뭍 시장잡배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분이며, 얼굴에는 모나리자의 뺨을 때릴 정도의 은은한 미소가 가득하며, 또한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인류를 향한 고귀한 슬픔마저 마다치 않는 납덩어리처럼 무겁고 쓸쓸한 모습의 사나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선배의 앞자리에 걸려있던 예수의 초상은 그런 기존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림 속 예수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쉽게 만나는, 골목길 어귀에서 늘 마주치는, 공원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우리 이웃의 얼굴이었습니다. 납덩이처럼 무겁고 회색빛 가득한 쉽게 범접하기 곤란한 심각한 분이 아니라, 언제나 쉽게 그리고 가벼이 스치듯 만날 수 있는 예수의 얼굴이 그 그림 속에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집으로 돌아와 복음서를 뒤적이며 그 안에 그려지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열심히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의 한 구절 속에 너무도 생생한 그분의 얼굴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분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언제나 예수의 주변엔 죄인이라 불리던 세리와 거리의 여인들이 끊이지 않았고, 또한 세례자 요한처럼 정기적으로 금식하기는커녕 신랑과 함께 있는 자의 즐거움으로 포도주와 음식을 즐겼던 바로 그 분, 예수를 복음서 기자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분의 타고난 질박한 심성은 언제나 주변에 아이들이 끊이질 않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소박하고 맑은 심성을 지닌 이들을 좋아합니다. 언제나 그늘진 모습으로 얼굴에 쌍 십자를 그리고 있는 이들에게 좀 채 아이들은 마음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공관복음은 저마다 한 목소리로 자신의 자녀에게 축복을 빌어주길 원하여 아이들을 예수에게로 데려오던 부모들의 극성을 절대로 막지 않았던 예수의 너그러움을 적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몰려드는 것을 싫어하기는커녕, 그들을 막는 제자들을 오히려 꾸짖으시는 그의 다정함을 성서는 증언합니다.


또한 그분은 유머와 재치가 넘쳐나던 분이었습니다. 그의 설교에서 넘쳐흐르는 수많은 예화를 생각해 봅시다. 마치 시인처럼, 때론 연인처럼 그분은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의 마음으로 수많은 사람을 웃기고 또 울렸습니다.


세리와 죄인들 앞에서 그는 일장의 연설을 토해냅니다. 100마리의 양 중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때문에 고민하는 목자, 헌데 얼마 못가 그 잃은 양을 찾고 감격하는 기쁨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은화를 다시 찾고 행복해 하는 한 부인네의 심정을, 그리고 잃은 아들을 찾은 후 손가락의 가락지를 빼어 그의 손에 끼우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아버지의 모습을 비유로 던지시는 그 분의 감각!(누가복음 15:1-32)


현장에서 잡힌 간음한 여인의 처벌을 원하는 사람들의 험상궂은 원성을 앞에 두고도 몸을 굽혀 땅위에 천연덕스럽게 낙서를 하시는 그분의 여유! 그 밖에도 많은 곳에서 그는 웃고 마시고 즐길 줄 아는 여유 있는 사람의 얼굴로 우리 앞, 뒤, 옆에 와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서가 어떤 예수의 이미지를 전해주건 간에 우리는 또 여전히 그늘진 예수를 고집하려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들의 고집스러운 성향은 또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 봅니다.


우리의 고정된 신앙관 속에 형성된 선입견이 오히려 생생한 예수의 모습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행복했던 사나이 예수’의 웃음 가득했던 즐거운 모습은 뒤로 한 채 오로지 ‘그에 대한 우리의 포장’만이 남아 납덩이처럼 무거운 그분의 겉모습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어쩌면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사실 그렇기도 합니다.


저의 신학교 생활은 이러한 기억들의 확인으로 연속되었습니다. 신학교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갓 스물을 넘긴 풋풋한 청년들입니다. 그러나 신학교의 분위기가 그런 것인지, 혹은 교회에서 제공하는 신앙의 모범이 그러한 것인지… 너나 할 것 없이 신학교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사람들은 이내 목사가 되고 맙니다. 깔끔한 짙은 색 계통의 양복에 반짝이는 구두에 화려한 넥타이로 온 몸을 치장하고, 이미 음성은 하늘의 목소리인양 저음만을 향해 치닫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도 시정잡배들은 감히 다다를 수 없는 수준으로 ‘형제님, 자매님’을 연신 되 내이며 틀에 박힌 일정한 멜로디 섞인 음정으로 일관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신학교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일반 교회에서도 이와 동일한 모습은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저는 이 자리에서 그 분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폐지를 요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외형의 모습과 행위에만 집중되는 우리의 자세는 고쳐야 하지 않을까 반문하고는 있습니다. 신앙은 자신의 정직한 고백에 기초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언어도, 어떤 행위도 그 정직한 고백 위에 서지 못하면 맹목적일 따름입니다. 저는 단지 근거를 알 수 없는 어설픈 선입관이 우리가 예수의 참된 모습을 읽는데 장애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예수님은 자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상대방 군인의 부상당한 귀까지 치유해주는 넉넉한 분이셨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고민을 들으시고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심성을 어루만져 위로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위로는 가식 없는 순수한 이해에서 비롯되었지, 정형화된 행위의 형식이 제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우리에게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자유와 평강은 하나님을 향한 굳은 신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최후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기고 의지하는 그분의 곧고 분명한 신앙이 그분으로 하여금 자유와 평강의 설교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어설픈 형식이 아니라, 그분의 철저한 ‘하나님 신앙’이며 또한 ‘자유와 평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고난절입니다.


우리는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받으시던 그분의 신음소리를 흉내 낼 것입니다. 때로 몇몇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의 손에 못을 박으며 그분이 걸어가셨던 길을 닮은 언덕길을 잘 가꾸어진 나무를 쪼개어 만든 십자가를 지고 오를 것입니다. 때로는 노래로 구슬프게 그분의 고난을 설명할 것입니다. 혹자는 두툼한 헌금봉투로 나를 위하여 받으신 그분의 아픔에 감사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또 우리는 열심히 전혀 그분이 아닌 그분, 우리의 습관과 선입관 속에서만 살고 있는 그분의 이미지 만들기에 급급할 것입니다. 그래서 또 편짜기와 편 가르기에 열중하며, 신앙이 좋고, 나쁘네…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그러네 하며 ‘예수의 포용’과는 정반대의 길을 열심히 달려갈 것입니다.


또 다시 고난의 절기입니다.


우리는 또 예수님의 신음소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짐짓 슬픔의 얼굴을 하고 사정없이 가슴 아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굳게 다시 한 번 동여매는 넥타이 속에 예수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기도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타인과 같지 않고 오늘도 정해진 언어와 행위 속에 자신을 지켜 가는 멋진 솜씨에 감복할 것입니다. 짐짓 금식도 필요할 것입니다. 때로는 신중한 자세로 옷깃을 여미며 분위기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다시 수난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의 수난만을 고집한 채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웃음의 의미를 잊어버려서도 안 됩니다. 고난 바로 뒤에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겼던 그분 예수의 유쾌한 모습 또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과도 같은 세상에 끈질긴 유머와 유쾌함으로 지친 세상의 영혼들을 위로한 ‘먹기를 탐하던 예수’가 당한 수난이 바로 고난절입니다.


유대인은 고난의 예수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가 초지일관 고난과 수난의 상징으로 그들 옆에 있었다면, 그들은 결코 예수를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설사 경건의 극치를 달렸더라도 그들은 예수를 또 처단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사도 요한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요한을 보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 귀신이 들렸다 하면서 그를 처단했습니다. 이를 마태는 장터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곡조에 따라 춤추고 울어대는 아이들을 비유 삼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진중함 없이, 신중치 않게 그저 주변 환경의 변화와 옆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반성 없이 따라가는 사람들이 결국 요한과 예수님을 내치고 말았습니다. 앞에 서신 분의 참 모습을 살피며 따라가려하기 보다는 기존 자신들이 갖고 있던 선입견에 끼워 맞춰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일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겉에만 충실하고 속에는 무감한 이들. 예수님의 참 모습보다는 포장되고 각색된 이미지에만 충실한 우리들의 모습도 저들 유대인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진지함도 받아내지 못하던 이들이 예수님의 유쾌함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는 먹기를 탐하며 포도주를 즐기던 분이었고 그들이 생각하던 ‘경건’과는 너무도 큰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예수를 포기합니다.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 없이 예수를 처단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위한 구세주를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욕하며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외치는 사이비 하나를 처단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만의 고집과 선입견 속에 구축한 신앙관에 의해 처단한 그분, 먹기를 탐하던 예수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을 줄이야!


또 다시 고난의 날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도 고정된 우리의 선입관으로 또 다시 예수를 다시 십자가, 고난의 길로 몰아세우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또 다시 고난절입니다. 유쾌했던 예수의 참 의미가 우리 가슴에 진득이 묻어나길 기원합니다. 단지 고난만 남고 그의 오신 참 뜻은 실종되는 수난절이 아니라, 주께서 왜 우리와 함께 계셨고, 무엇을 위해 우리 곁에 계셨고,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의 모든 것을 내 몸과 심장 안에 새겨보는 속 찬 고난의 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길용/서울신대 교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17년 세종교양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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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순례(7)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 수난곡

No. 8 이 향유는 나의 눈물입니다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그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에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복음서 본문에는 예수의 말씀에 대한 여인의 반응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칸더와 바흐는 이 부분에 알토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그 여인의 마음을 남깁니다. 알토 솔로의 서창은 코멘트 역할을 하고 있고 이어지는 아리아는 ‘기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곡은 시인과 작곡가가 이루어낸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콜라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향유는 나의 눈물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레치타티보의 첫 부분 가사를 통해 예수와의 ‘Ich und du’의 관계를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이 레치타티보 가사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So lasse mir inzwischen zu,

Von meiner Augen Tränenflüssen

Ein Wasser auf dein Haupt zu gießen.


부디 나에게 허락하소서

나의 눈에서 넘쳐흐르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당신의 머리에 뿌리게 하소서.


이 가사를 처음 본 순간 저는 완전 무방비상태에서 충격을 받고 왈칵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딱딱할 줄로만 알았던 바흐의 교회음악에 이토록 깊은 감성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신앙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인격적이고 감성적이고 표현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여인과 예수의 사랑의 관계를 몰랐기에 이 여인의 행위를 물질적으로만 해석했습니다. 우리들 역시 제자들처럼 여인이 평생 모은 전 재산이니 뭐니 하면서 이 여인이 깨뜨린 향유를 돈으로 계산하지 않았던가요? 아니면 은근히 헌금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여인의 이야기를 사용하지 않았던가요? 이 여인의 향유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발단된 회개가 마음을 찢을 때 흘러내린 진심어린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뿌려 준 향유였고, 자신을 친구로 대해 주었던 단 한 사람 예수를 위해 모든 계산을 뛰어 넘어 내어준 사랑의 보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 준 그 분의 사랑의 향기로 남기에 합당한 고귀한 희생이었습니다.


That’s why


문득, 자주 부르던 복음성가 한 자락이 떠오릅니다. ‘You gave me Love’라는 곡으로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라는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미국의 팝 가수 B. J. Thomas의 곡입니다. 대중적 인기의 허무함을 느낀 그가 예수를 친구로 만난 은혜를 노래한 곡이지요. 이 베다니 여인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You gave me time when no one gave me time of day

당신은 내게 시간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아무도 내게 시간을 주지 않을 때에


You looked deep inside while the rest of the world looked away

당신은 내 마음 깊은 곳을 보셨습니다 다른 이들이 나를 외면했을 때에


You smiled at me when there were just frowns everywhere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모든 이가 나를 행해 얼굴을 찡그릴 때에


You gave me love when nobody gave me a prayer

당신은 내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아무도 날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에


That's why I call You Saviour

그것이 바로 내가 당신을 구세주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That's why I call You Friend

그것이 바로 내가 당신을 친구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You touched my heart

당신은 내 마음을 만지셨고


You touched my soul

당신은 내 영혼을 만지셨습니다


And helped me start all over again

그리곤 내가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셨죠


That's why I love You, Jesus

그것이 바로 내가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That's why I'll always care

그것이 바로 내가 항상 간직하는 이유입니다


You gave me love when nobody gave me a prayer

당신은 내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아무도 날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에


플롯이 흘리는 눈물방울 소리


이어지는 아리아는 두 대의 플롯이 시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바흐는 왜 이 아리아에서 플롯을 사용했을까요? 그 비밀은 가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아리아의 가사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마태수난곡 1부 6번

6

기도

알토

아리아

Buß und Reu

Knirscht das Sündenherz entzwei,

Daß die Tropfen meiner Zähren

Angenehme Spezerei,

Treuer Jesu, dir gebären.

참회와 후회의 마음이

죄지은 이 마음을 짓이기고 찢을 때

그렇게 떨어진 나의 눈물방울이 고여

향기로운 향유가 되었습니다.

오 신실하신 예수여, 당신께 드립니다.


그 날, 베다니 시몬의 집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전주가 흐릅니다. 아름다움과 슬픔과 거룩함이 혼재된 그 방의 공기가 아리아의 전주에 스며있는 듯합니다. 노래 중간 부분에서 ‘그렇게 떨어진 나의 눈물방울이 고여 향기로운 향유가 되었습니다/Daß die Tropfen meiner Zähren Angenehme Spezerei,’라고 노래하는 부분의 기악파트를 유심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의 놀라운 영감에 바흐가 더 놀라운 음악적 영감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두 대의 플롯이 스타카토로 연주하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향유와 여인의 눈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 마태수난곡 악보에는 이 페이지 위편에 ‘아, 지고한 아름다움이여!’라는 메모가 적혀 있습니다.


알토아리아 악보 중 ‘나의 눈물방울이 고여 향기로운 향유가 되었습니다‘라고 노래하는 부분. 맨 위 스타카토로 표현된 부분이 플롯 파트임.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이 부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분과의 인격적인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태수난곡을 재생시켜야 할 음악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노래의 멜로디가 아름답기 때문에 텍스트와의 조화를 생각하지 못하고 이 곡을 매우 빠른 템포로 끌고 갑니다. 성악가 입장에서도 이곡은 빠른 템포가 노래하기 좋습니다. 그러나 이 곡의 핵심은 눈물방울이 한 방울 씩 떨어지는 플롯 파트입니다. 예수와 이 여인만이 알고 있는 사랑과 용서와 은혜의 관계 속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함과 그 여인의 진지함과 아름다운 사랑의 동작에 압도되어 얼어 버린 제자들이 만들어 낸 적막 속에서 귀한 향유가, 회개의 눈물이 예수의 머리 위로 한 방울 한 방울 똑 똑 떨어집니다.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템포를 매우 늦게 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표현한 것은 칼리히터의 58년 음반뿐입니다. 지휘자 칼 리히터가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이며 영적 메신저였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아래에 소개해 드리는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노래는 원전연주로서 이 곡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대표적인 연주입니다. 원전 연주에서는 바흐시대의 전통을 따라 여성 알토 대신 남성 카운터 테너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아래에 링크한 칼 리히터의 58년 음반과 비교해서 들어보시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https://youtu.be/y5Xuc_Q4IW4 (안드레아스 숄이 노래하는 ‘Buß und Reu’)

https://youtu.be/8y6x1wj0bxM (칼리히터의 58년 음반, 17분27초에 시작)


첫 목회지에서 헌금 봉투를 만들어야 했을 때 마태수난곡의 이 구절을 빌렸습니다. 재생지로 만든 봉투였는데 그 앞면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이 향유는 나의 눈물 입니다”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음악공부와 선교활동을 하였다.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고 이후 국립합창단 단원을 역임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의정부 낮은자리 믿음교회 담임으로 목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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