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과 영화의 만남 2

아버지의 상처

창세기 22:1-19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예,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느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다음에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느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그들이, 하느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이르러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제 자식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느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서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창세기 22:1-19).


처음에는 부녀 사이인 줄…….


오늘은 아버지주일(Father’s Day)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주일부터 ‘시편과 영화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설교하고 있어서 가급적이면 아버지날과 이 주제를 맞춰서 성서본문을 택하려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편 가운데서 본문 택하기를 포기하고 창세기 22장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 했던 이야기 말입니다. 구약성서 이야기들 중에서 에덴동산의 선악과 얘기와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얘기가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얘기할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입니다. 저는 19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그의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이후의 영화들, 특히 그가 감독, 주연을 동시에 맡은 영화들 중에는 좋아하는 영화가 여럿 있습니다. 그 중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까지 네 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매기가 프랭키의 숨겨진 딸인데 나중에 가서 밝혀지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줄 알았습니다. 제가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던 거죠. 



한 허름한 권투 체육관을 운영하는 프랭키와 거기서 청소하면서 생활하는 스크랩은 과거에 권투경기 중에 지혈사와 선수 사이였습니다. 스크랩이 타이틀전을 하는 도중에 눈 주위에 출혈이 심해서 프랭키는 경기를 중단시켰어야 했습니다. 스크랩의 트레이너는 전날 과음을 해서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므로 그 결정은 프랭키가 내려야 했는데 그는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크랩은 피가 눈으로 흘러들어가 한쪽 눈을 실명하고 맙니다.


이 체육관에 서른한 살짜리 여자 매기가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운동을 합니다. 프랭키는 여자는 기르지 않는다며 냉정하게 그녀를 물리쳤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혼자 묵묵히 운동을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 죽었고 오빠는 감옥에 가있고 어머니와 여동생과 조카가 트레일러에서 정부보조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매기는 열세 살부터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몰래 가져다가 먹으면서 번 돈으로 살아갑니다. 번 돈의 일부를 가족들에게 보내주면서 말입니다.


서른한 살 나이에 권투를 시작하는 건 너무 늦었다는 말에 매기는 “그럼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응대하고 누가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훈련에 몰두합니다. 결국 스크랩이 슬쩍슬쩍 도와준 데 힘입어서 그녀는 프랭키의 지도를 받아 선수가 됩니다. 그렇게 둘은 파트너가 되어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연전연승했고 결국 타이틀전을 벌이는데 거기서 매기는 상대방의 반칙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부상을 당합니다. 병상에 누운 그녀는 다리가 썩어 들어가 한쪽 다리를 잘라내기까지 합니다. 그녀는 프랭키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사정하지만 그는 차마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 거절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두 번이나 혀를 깨물어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녀는 말도 못하게 된 겁니다. 이에 프랭키는 고민하다 그녀의 부탁대로 어느 날 밤에 몰래 병실에 가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냅니다.


영화와 성서이야기가 교차하는 지점


이 영화에는 중간 중간에 의미 있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 영화가 하려는 얘기는 매기와 프랭키가 연전연승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녀가 하반신마비가 되어 병상에 눕게 된 이후에 담겨 있습니다. 그 중 매기의 아버지가 관련된 두 가지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매기가 돈을 벌어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집을 사서 선물합니다. 하지만 집을 가지면 정부보조금이 끊긴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싫어합니다. 매기는 가족들과 다투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어렸을 때 아버지가 기르던 개를 묻어준 이야기를 프랭키에게 합니다. 하루는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는 개를 아버지가 차에 싣고 나갔는데 거기 삽이 들어 있더라는 얘기였습니다. 훗날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할 걸 미리 암시한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또 그녀가 병상에 누웠을 때 프랭키에게 자기가 태어났을 때 심각한 저체중이어서 살아남지 못할 줄 알았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역시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걸 암시한 얘기였고 거기에 프랭키가 아버지 캐릭터로 연결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영화는 프랭키와 매기를 부녀 사이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영화와 아브라함, 이삭 이야기에는 연결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죽여야 하는 상황을 그린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차이점들이 있긴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얘기에는 단순한 아버지와 자식 관계를 넘어서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삭이 하느님의 약속에 의해서 부모가 매우 늙었을 때, 그래서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났던 데 반해서 매기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나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떴고 남은 가족들은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막장입니다. 하반신마비로 병상에 누워있는 매기를 찾아와 돈 문제 서류에 사인하라고 들이대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이삭 얘기는 서두에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고 해서 사건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 데 반해, 영화는 아무 이유나 목적이 없이 우연히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얘기 사이의 차이를 찾으라면 더 길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책 《알 수 없는 분》에서 창세기 22장을 각각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각에서 읽고 해석해서 썼으므로 오늘 반복하지는 않겠고 오늘은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얘기하겠습니다.


침묵의 언어들


아브라함, 이삭 얘기의 정수(精髓)는 모리아 산에 이르러 수행했던 종들을 뒤에 남겨놓고 칼과 불을 든 아브라함과 장작을 멘 이삭, 둘만 산 위로 오르는 대목입니다. 이삭은 “아버지!”라고 아브라함을 불렀고 아브라함은 “얘야, 왜 그러느냐?”라고 말합니다.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들리게 이렇게 번역했지만 원문은 “내가 여기에 있다.”(Here I am)입니다. 이삭은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도 묻습니다. 참 난처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고 아브라함은 잠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한 다음 이렇게 대답합니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느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또 아무 말 하지 않고 걸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번제물을 마련하시리라는 아브라함의 대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장차 일어날 일을 이미 내다보고 그렇게 말했을까요? 아니면 엉겁결에 둘러댔을까요?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 감정을 모두 갖고 대답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는 사흘 길을 아들과 함께 걸으면서, 그리고 종들을 남겨두고 단 둘이 산에 오르면서 수백, 수천 번 생각했을 겁니다. 하느님은 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 약속의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아들을 번제로 바쳐야 하나? 이 녀석도 이상하다고 눈치 챘을 텐데 왜 이 녀석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걸까? 아들이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겠지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정수(精髓)는 사고 난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라고 앞에서 얘기했습니다. 상영시간도 그 부분이 절반 정도 차지합니다. 창세기 22장의 얘기는 15장에 나오는 얘기와 연관시켜서 읽어야 합니다. 15장에는 하느님과 아브라함이 언약 맺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거기서 하느님은 제물의 몸통을 둘로 쪼개서 서로 마주보게 차려놓으라고 아브라함에게 명하셨습니다. 밤이 되자 연기 나는 화덕이 나타나서 쪼개놓은 제물 사이로 지나갔답니다. 이 얘기는 언약을 깨는 편은 쪼개진 제물처럼 처참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일은 하느님이 약속을 지키리라는 걸 어떻게 믿겠냐고 의문을 제기한 아브라함의 요청에 의해 벌어졌습니다. 곧 하느님이 약속을 지킨다는 증표를 아브라함이 보여 달라고 해서 벌어진 일이란 겁니다. 그렇다면 약속을 깨뜨리면 쪼개질 제물 꼴이 될 쭉은 누구입니까? 물론 양편 모두 같은 신세가 되겠지만 그래도 징표를 원한 쪽이 아브라함이므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이 꼴이 될 쪽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이 약속을 깨면 쪼개진 짐승 꼴이 될 거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15장을 잘 읽어보면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심지어 학자들도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마 하느님이 그런 꼴이 되겠어? 그게 말이 되나?’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창세기 22장을 15장과 연관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5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시험했다면 22장에서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할 차례이기 때문입니다.


프랭키의 자리에 아브라함과 하느님을 대입해보다


매기와 프랭키를 창세기 22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입해봤습니다. 이삭은 매기에게, 아브라함은 프랭키에게 대입시켜 본 겁니다. 프랭키는 1년 반 동안 가까이서 매기를 지켜봤습니다. 그녀는 서른한 살이란 나이는 권투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말에 “서른한 살이 늦었다면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뭘 보나 권투는 그녀의 전부였습니다. 돈 때문이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불행한 처지에서 살다가 드디어 자기가 잘 하는 걸 찾아낸 겁니다. 그녀 곁에서 아버지처럼 돌봐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자기에게 권투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었습니다. 병상을 찾아와 막장을 부린 가족들은 그녀가 퇴원하면 돌아갈 현실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매기는 프랭키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하지만 프랭키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거절합니다. 자기는 그렇게 못 한다고……. 그러자 그녀는 두 번이나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합니다. 이젠 말도 하지 못합니다. 결국 프랭키는 밤중에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갑니다. 그녀에게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고 더 빨리 잠들라고 혈관에 충분한 양의 주사액을 주입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프랭키의 자리에 하느님을 대입해봤습니다. 하느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이 질문에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살리면 되지!’라고 대답할 사람과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뭐든 할 수 있는 ‘전능한’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을 벌어지기도 전에 모든 걸 미리 아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아들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자기 명령을 수행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보려 했던 겁니다. 시험을 하기 전에는 하느님도 몰랐다는 겁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은 “내가 이제 알았다!”(Now I know)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느님이 프랭키였다면 어떻게 하셨을지는 여러분 각자 생각해보시고 답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뭘까요? 대체 ‘믿음’이란 게 뭡니까?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가리켜서 믿음이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는데, 대체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그게 없는 사람입니까? 또 사람들은 믿음이 ‘크다’ 또는 ‘깊다’거나 믿음이 ‘작다’ 또는 ‘얕다’고 말하는데 어떤 사람이 믿음이 크거나 깊으며 작거나 얕습니까? ‘하느님이 이런 것까지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것까지는 못 할 거야.’라거나 ‘내가 믿는 하느님이 옳고 네가 믿는 하느님은 틀렸어!’라거나 ‘내 하느님이 더 힘이 세거든!’ 따위의 생각을 올바른 믿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초등학생도 아닌데 말입니다.


믿음이 깊어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심정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느님의 깊은 곳에 있는 마음과 생각과 심정을 조금씩이나마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이 자란다고 부릅니다. 흔히 사람들은 하느님이 어떻게 아버지더러 아들을 자기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명령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명령을 하는 하느님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명령을 하셨을까? 조폭 두목이 부하의 충성심을 시험해보려고 누굴 죽이라고 명령하는 그런 심정으로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명령하셨을까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해보는 것, 그래서 그 마음의 작은 한 구석이라도 붙잡아보는 것, 그게 믿음이라는 겁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특히 마지막에 프랭키가 말도 못하는 매기의 눈을 바라보면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고 주사를 놓는 장면을 보면서 이삭을 향해 칼을 든 아브라함의 심정을, 더 나아가서 그런 명령을 아브라함에게 내린 하느님의 심정을 생각해봤습니다. 그것들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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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과 영화의 만남 1


노래하는 이유, 찬양하는 까닭

시편 145:1-13


“나의 임금님이신 하나님, 내가 주님을 높이며 주님의 이름을 영원토록 송축하렵니다. 내가 날마다 주님을 송축하며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렵니다. 주님은 위대하시니 그지없이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 위대하심은 측량할 길이 없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대대로 칭송하고 주님의 위대한 행적을 세세에 선포하렵니다. 주님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내가 가슴 깊이 새기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두려운 권능을 말하며 나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렵니다. 사람들은 한량없는 주님의 은혜를 기념하면서 주님의 의를 노래할 것입니다. 주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다. 주님은 모든 만물을 은혜로 맞아 주시며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주님, 주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주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며 주님의 성도들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님의 위대하신 행적을 말하는 것은 주님의 위대하신 위엄과 주님의 나라의 찬란한 영광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함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의 다스리심은 영원무궁 합니다”(시편 145:1-13).


하느님은 창조 전엔 뭘 하셨을까?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기 전에 뭘 하고 계셨을까요? 저는 이런 게 궁금할 때가 있는데 여러분은 안 그렇습니까? 요즘은 이럴 때 다들 구글(google)을 검색하지요. 그래서 저도 해봤는데 실망했습니다. 구글은 성서 이곳저곳을 인용하는 것 외에 별다른 답을 주지 않더군요. 그것들은 구글이 내린 대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대답을 구글이 모아놓은 것이지만 말입니다. 예컨대 요한복음 1장 첫 구절,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말씀’(Logos)인 예수님이 천지창조 이전에도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글을 소개하더군요. 또 창세기 1장 첫 구절,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느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를 인용하면서 ‘하느님의 영’은 신약성서의 ‘성령’과 같다면서 창조 이전에 하느님은 성령과 함께 계셨다는 등의 답이 고작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의 ‘하느님의 영’(루하흐 엘로힘)을 보혜사 성령과 동일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해석입니다. 구글이 인용한 두 구절을 합치면 삼위일체가 되어 성부 하느님은 성자 예수님(로고스), 성령 하느님(하느님의 영)과 함께 계셨다는 얘기가 됩니다. 제 질문은 창조 이전에 하느님이 ‘누구와 함께’ 계셨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인데 그에 대해서 구글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구글이 모르는 것도 있네요.


유대인들 농담 중에 이런 게 있답니다. 한 아이가 랍비에게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기 전에 뭘 하고 계셨어요?”라는, 제가 가진 것과 똑같은 물음을 했더니 랍비는 “너 같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녀석 맴매하려고 회초리를 만들고 계셨단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아이의 물음에 성의껏 대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비교육적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농담은 아니고 ‘나름의’ 신학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아이들이 쓸데없는 상상이나 추측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읽지 못하게 하는 성서구절들이 있는데 창세기 1장 1절도 그 중 하나라고 합니다. 오래 전에 그 명단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창세기 1장 첫 절 외에 에스겔의 여러 구절이 거기 포함된다고 기억합니다. 그 구절들을 못 읽게 한다는 말은 공식적인 예배 때 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읽는 것이야 막을 수 없지요. 금지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니 개인적으로는 더 많이 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서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말하는가?


흔히 성서가 말하는 창조를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n out of nothing, 라틴어로 creatio ex nihilo)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이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성서가 정말 그것을 말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이들은 창세기 첫 장 첫 절만 봐도 성서의 창조가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느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욥이 “제가 왜 이렇게 정당하지 않은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라고 하느님께 따져 물었을 때 하느님은 욥에게 이렇게 반문하셨습니다. “네가 천지가 창조될 때 그 자리에 있었느냐?” 이렇게 물으면 그렇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창조 때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성서의 창조이야기에 따르면 창조 때 아무도(nobody) 없었던 것은 맞지만 아무 것도(nothing) 없지는 않았습니다. 창세기 1장 첫 절에 나오는 ‘혼돈’ ‘공허’ ‘어둠’ ‘깊음’ 등의 말은 추상명사이니까 제쳐두더라도 ‘땅’과 ‘물’은 명백하게 물질명사입니다. 성서는 창조 때 “‘땅’이 혼돈하고… 하느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창조 이전에도 뭔가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적어도 ‘땅’과 ‘물’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서의 창조를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보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초대교부들이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내놓은 주장으로서 성서의 창조이야기와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믿어온 ‘무로부터의 창조’와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상당히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창세기 1장의 창조는 말하자면 일종의 ‘가르기’와 ‘질서 세우기’입니다. 창조 첫째 날에 하느님은 빛과 어둠을 나눴고 둘째 날에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눴으며 셋째 날에는 육지와 바다를 나눴고 넷째 날에는 낮과 밤을 나눴으며 다섯 째 날에는 동물들을 공중동물, 육지동물, 바다동물을 나누는 등, 창조는 혼돈스럽게 뒤섞여 있던 것들을 구별해서고 나누어 질서를 세워나가는 과정이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창조가 7일 만에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조는 과거 어느 한 때에 완전한 모습으로 완성된 게 아니라 현재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일종의 ‘과정’이라는 겁니다. 세상은 과거에 완성된 채로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만들어져가는 중입니다. 오래 전 서울에 살 때 한 서점에 갔다가 제목을 보고 깜짝 놀라서 거금을 주고 구입한 책이 있습니다. 유럽 신학자 에버하르트 윙(Eberhard Jüngel)엘이란 분이 쓴 <God’s Being Is in Becoming>이란 책이 그것입니다. 번역하면 ‘하느님의 존재는 형성되는 중이다, 만들어지는 중이다’ 쯤이 되겠습니다. 지금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에 관한 책인데 성서가 말하는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라기보다는 ‘가르고 나눠서 질서를 세우는 과정으로서의 창조’라는 주장도 거기서 읽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찬양’은 예배의 필수요소


우리는 지난 4주 동안 레위기를 읽으면서 제사의식, 곧 예배의 중요성과 의미와 기능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그때는 주로 희생제사에 관해 얘기했지만 예배에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요소는 ‘찬양’(讚揚, praise)입니다. 찬양의 역사는 예배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됐습니다. 찬양이 없는 예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찬양은 예배에서 필수적입니다.


찬양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화적, 종교적 배경에 따라서 다릅니다. 주로 음악이 사용되지만 다른 예술형식도 사용됐습니다. 음악의 경우도 사람의 목소리뿐 아니라 다양한 악기들이 사용됐습니다. 때론 요란하고 열광적으로 찬양하기도 했지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도 찬양했습니다. 침묵도 찬양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렇듯 형식은 다양하지만 예배에서 찬양이 빠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성서의 대표적인 찬양이 시편인데 무려 150편이나 되는 많은 시편이 있다는 사실은 예배에서 찬양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래 시편에는 가락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시편을 읽지 않고 노래합니다. 현란한 멜로디와 화려한 애드리브는 없고 음정의 높낮이 변화도 크지 않았지만 시편은 분명 노래, 곧 찬양입니다.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경험한 후에 그에 대한 응답으로 부른 노래라고 주장한 학자는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구약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사건에 대한 사람의 반응, 응답, 특별히 노래로 한 응답이 시편의 찬양이라는 겁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하느님이 구원사건을 벌일 때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그 일이 마무리된 후에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는 겁니다. 하긴 히브리 노예들이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파라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하느님이 내린 열 가지 재앙을 겪은 후에, 특히 모든 장자가 몰살당하는 참변을 겪은 후에 비로소 히브리인들을 내보냅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한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홍해가 갈라졌을 때도 두려워한 것 말고는 한 게 없었고 여리고 성이 무너졌을 때도 뿔 나팔 부는 사제들 뒤를 따라서 성 주위를 걸은 것 외에는 한 게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느님이 일으킨 구원사건이 끝난 다음에 노래를 지어 하느님이 하신 놀라운 구원의 사건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축하했다는 것이 폰라트의 주장입니다.


그보다 약간 후대 학자인 크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시편의 찬양은 단순히 하느님의 구원사건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감사의 노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예배에서 했던 찬양은 과거 어느 때 벌어졌던 구원사건을 단순히 기억해서 되돌아보고 노래한 게 아닙니다. 하느님이 태초에 세상을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하셨고 사람은 타자로서 그걸 향유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은 혼돈(카오스)을 갈라내고 질서를 세우심으로써 창조사역을 계속하고 계시고 사람은 거기에 파트너로서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구원사건에 대해서도 사람은 그것과 떨어져서 객체로 머물지 않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동반자로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마당이 바로 예배이고 그 중에서도 찬양이라고 베스터만은 주장합니다. 찬양은 늘 변조되어왔고 편곡되어 왔습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하느님의 구원사건을 같은 가락과 같은 노랫말로 반복해서 부르는 게 아니라 변조된 가락과 노랫말로 편곡하고 개사해서 부름으로써 지금 여기 자신들의 얘기를 담아냈습니다. 그들은 찬양을 하면서 ‘다른 세상’을 꿈꾸고 봤고 경험했던 겁니다.


어거스트의 음악은 곧 찬양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태어난 줄도 몰랐고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는 중에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 아이가 사실은 죽지 않고 누군가에게 입양됐다가 고아원으로 옮겨져 거기서 자랐습니다. 그는 나이 많은 원아들의 놀림을 받으며 자랐지만 언젠가는 부모가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부모가 자길 찾으러 오지 않자 그는 스스로 부모를 찾아 나섭니다. 이 아이는 보통사람 이상으로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고 그 소리들을 음악으로 들을 줄 아는 비상한 탤런트를 가졌습니다. 그는 음악이 자기를 부모에게 데려다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많은 소리들을 듣습니다. 우연히 만난 아이를 통해 몸을 의지하러 찾아간 곳이 하필 아이들을 거리로 내보내 ‘앵벌이’ 시키는 나쁜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어거스트는 거기서 자신이 천재적인 음악재질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한 교회에 찾아든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하느님의 섭리 같은 것이었을까요, 그는 거기서 피부색 짙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그 광경을 조금만 볼까요?


http://www.youtube.com/watch?v=8DwW0dCQHPQ


그가 줄리아드에 들어가고 곡을 만들어 공원에서 연주하고 그것을 통해서 부모를 만나는 줄거리는 전형적인 해피엔딩 스토리요 할리우드 스타일이지만 그런 걸 감안하고 봐도 감동적입니다.


긴 세월 교회생활을 하는 동안 제일 듣기 싫은 말은, 그래서 저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말이 ‘준비찬송’ 또는 ‘준비찬양’이란 말입니다. 찬양은 뭔가를 준비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찬양은 예배의 메인이벤트를 하기 전에 하는 오픈게임처럼 벌이는 행사가 아닙니다. 찬양은 말씀을 듣기 전에 예배자의 감정을 달아오르게 하려고 벌이는 퍼포먼스도 아닙니다.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서 무슨 말에든 ‘아멘!’ 하고 화답하게 만드는 수단도 아닙니다.


찬양은 꿈을 꾸는 행위입니다. 찬양은 다른 세계를 꿈꾸는 행위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찬양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하신다고 믿고 그 일에 우리를 동반자로 부르셨다고 믿는 사람이 찬양합니다. 오랫동안 이 땅의 흑인노예들이 매를 맞아가면서 ‘우린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부른 것은 그 노래가 자기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고 고통을 잊게 만들어줬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찬양을 부르면서 실제로 자신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실현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니, 그 찬양을 부르면서 그들은 실제로 그 행진에 참여하여 그 대열 안에 있었습니다.


찬양은 세상을 바꾸는 역동적인 시(詩)


찬양은 지금 주어진 세상(status quo)은 별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산문’(散文)의 언어가 아닙니다. 찬양은 지금 나의 삶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운명이나 팔자로 받아들이고 입 다물고 사는 맥없는 산문의 언어가 아닙니다. 나는 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 세상은 바뀔 수 있다, 하느님은 나와 세상을 지금 이대로가 아니라 바른 방향으로 바꾸시려 한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나를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온 맘과 온 영혼과 온 몸을 바쳐 외치는 시(詩)적 언어입니다. 나의 삶은 내가 희망하는 대로 바뀔 수 있다, 나는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터뜨리는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시적 언어입니다.





우리에게는 도덕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도 해결해야 합니다. 매일의 일상이 무겁기만 하고 그 안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위로의 말씀도 필요합니다. 그뿐인가요,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르침(교리)도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모두 ‘힐링’을 외치는데, 사실 한 주간 세상에서 부대끼면서 사는 몸과 마음과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 못지않게, 아니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지금 현재 나의 삶을 더 낫게 바꾸겠다는 의지요 희망이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입니다. 나와 내 후손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하느님나라의 이상에 좀 더 다가가고, 외롭고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 물질로나 정신, 영혼으로나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희망,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입니다. 찬양할 때 그런 희망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찬양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노래이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행위입니다. 찬양은 그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이른바 현실이라는 것과 기존질서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줍니다.


어린 어거스트 러쉬는 음악에서 그걸 봤습니다. 저는 그의 천재적 음악 재능이 그걸 보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으로 보면 비현실적인 그의 천재적 재능은 부모를 빨리 만나게 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궁극적으로 그가 부모를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음악에 담겨 있는 찬양의 힘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찬양시간에 때로는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아닌 이른바 ‘세속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걸 불편해 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심각하게 그에 대해 제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찬양을 찬양으로 만드는 게 뭘까? 그냥 노래와 찬양은 뭐가 다를까? 예수님, 하느님, 믿음, 은총 등의 언어가 가사에 담겨 있는 노래는 다 찬양일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나라를 꿈꾸고 그걸 실현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굳어 있는 현실을 바꾸겠다는 믿음을 가장 적절한 멜로디와 노랫말로 표현하는 노래가 찬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찬양시간에 더욱 힘차게, 열정적으로 찬양합시다. 그냥 노래에 취해서 찬양하지 말고 내가, 우리가 이 찬양을 부르면서 새 술을 낡은 부대에서 새 부대로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찬양합시다. 그렇게 한다면, 저는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생이 달라질 겁니다.


곽건용/LA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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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늦봄 문익환, 그 이름 석 자는 이 나라 신학과 운동과 역사에 박힌 빛나는 보석이다. 퇴색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요, 늘 푸른 힘을 주는 생기이다. 책상물림으로 앉아 있던 구약성서학자가 들판에 나와 광야의 소리로 변신하자 역사는 꿈틀거렸고,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리고 고난의 시대를 기운차게 뚫어내었다.


이 나라 신학과 운동과 역사에 박힌 빛나는 보석


그 문익환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산천은 변했으나 그 맑은 미소와 청아한 꿈은 아직도 여전히 우리에게 뜨거움으로 있다. 목사이면서 목사로만 머물지 않았으며, 시인이면서 시인으로 그치지 않았고 학자이면서 학자로 멈추지 않았다.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야욕이 없었고, 존경의 상석 위에서 교만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내면에 쏟아져 내린 하나님의 영과 시대의 소리에 맞추어 자신을 던졌고, 그로써 역사로 존재하게 되었다. 모두가 지쳐 스러질 때에 우뚝 선 우리의 마음이 되었고, 막히지 않은 길이 되었으며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떠난 20년의 세월이 먼 듯 하지 않으며,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 같기만 하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존재의 모습은 모두 그러한가 보다.


‘재야인사(在野人士)’라는 말이 주었던 무게가 시대를 울렸던 때가 있었다. 백발 휘날리며 포효하듯 민중의 마음을 흔들었던 그의 모습 한 자락이라도 보이면 권력이 긴장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가 노년의 몸을 청년처럼 움직이면 모두가 어느새 일제히 일어나 오만과 독선, 그리고 독재의 성채를 향해 진군했던 역사가 있다.


손에 수갑을 차고 옥에 들어서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옥 밖에 있는 이들을 도리어 위로하던 그의 넉넉한 웃음이 우리 모두를 기쁘게 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가 두 팔을 벌리고 소리를 토해내면 그것이 곧 역사의 육성이 되고, 그가 훌쩍 발걸음을 옮기면 그것이 곧 역사의 한 걸음이 되었던 충격이 있었다. 그리하여 문익환은 시대의 선봉이었으며, 우리 모두의 횃불이었고 내면의 감격이었다.


1989년, 김일성 주석과의 전격적인 만남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으나 그 놀라움은 사실 그의 순수한 꿈의 연장이었다는 것, 그래서 김일성 주석과의 뜨거운 포옹이 그 어떤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라 그의 몸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사랑과 삶의 모습이었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그에게 가해진 고통은 그에게 역설적으로 힘이 되었고, 달려갈 길을 줄기차게 달려가는 자로 만드는 동력이었다.


어찌 그 만남 하나로 통일이 되고 남북이 통하며 세상 천지가 바뀌겠는가 만은, 누군가 앞장서서 길을 내지 않으면 결국 길은 언제고 영영 생기지 않는 법. 문익환은 없는 길을 만들어 뚫었고, 그 뒤로 무수한 사람들이 줄을 이어 그 길을 밟았으니 역시 선각자는 달리 있던 것이었다.


소년 문익환을 길러낸 자양분


1918년, 만주 북간도 명동에서 문재린, 김신묵의 첫아들로 태어난 문익환은 민족에 대한 사랑과 새로운 시대의 문명에 대한 깊은 일깨움이 있었던 그곳 이주 조선인촌에서 이미 장래의 문익환으로 자라난다. 북간도 명동은 일제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그곳으로 떠난 일군의 선비들이 모여 만든 동네.


그곳에서 교육과 기독교의 열정은 소년 문익환을 길러내는 자양분이었다. 목사인 아버지 문재린의 모습을 통해서 그는 평생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목사임을 자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자신에 대하여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성서를 통해서 만나게 된 믿음의 사람들은 소년 문익환에게 꿈을 불어넣었고, 그로써 그는 성서의 세계에 일찍 탐닉하게 된다. 무척이나 성숙한 소년이었다.


민족혼이 강렬했던 명동의 분위기에서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과 신앙의 세계가 하나가 되는 가장 기초적인 훈련을 그때 하게 된다.


그런 명동인지라 이후 이곳에서는 민중 신학 교육자로서만이 아니라 민중을 위한 정치에 나섰던 그의 아우 문동환, 이후 민중신학의 태두가 되는 안병무 등이 배출된다. 명동은 아이들에게 민족의 존엄을 배우게 한 현장이었고, 기독교 신앙이 역사와 하나로 어울려야 함을 일깨운 자리였던 것이다.

물론 그가 처음 접한 기독교는 그가 이후 구약성서의 예언자적 전통에 서서 외쳤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로 치면 보수적 신앙의 원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신앙의 틀에서 그의 뼈대는 굵었고, 웬만하면 물러서지 않는 강단이 생겨났다. 이것은 그가 오랜 세월 동안 한눈팔지 않고 히브리 성서를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한 힘이었고, 결국 그런 예언자적 삶으로 살아가게 한 근력이 되었다.


일본 동경의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그곳에서 신학수업을 했고, 만주 북간도에서와는 다른 자유로운 사상적 흐름 속에 있게 되었다. 일본 동경시대의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보수적 신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그로써 한 단계 발전한 신학적 이론의 토대 위에 설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학병 소집을 거부, 만주 봉천 신학교로 이적하여 만보산 한인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게 된다. 아직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그러나 공부에 관심이 깊은 젊은 청년 신앙인이었다.


해방 직전인 1944년, 그는 평생의 가약을 맺은 박용길과의 삶이 시작되고, 해방 후 한국신학교의 전신인 조선신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학구열은 중단되지 않아 목사 안수를 받고 난 이년 뒤인 1949년,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1950년대의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프린스턴에서 수업하던 그는 6.25 전쟁이 터지자 귀국, 그가 배운 영어실력 탓으로 꼬박 3년을 판문점과 동경의 유엔 사령부에서 근무한다.


남북 대결과 전쟁, 그리고 분단의 현장에서 보았던 역사는 그가 이후 통일의 길을 향해 가게 되는데 중요한 밑거름의 경험이 된다. 3년간 계속된 전쟁이 휴전으로 미완성된 종결을 하자, 그는 마치지 못한 학업에 대한 열망을 주체치 못하고 다시 유학길에 올라 프린스턴에서 석사 학위를 끝낸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당시 “프린스턴 신학대”라는 이름이 차지했던 영광을 떠올려본다면 청년 문익환이 전란에 휩싸였던 조국에 돌아와 신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처지가 어떤 것이었을까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신대와 연대에서 구약학을 강의하는 한편, 한빛교회의 목회자로서 어찌 보면 얌전한 길을 걸었던 그에게 1965년에서 1966년의 유니온 신학대 유학은 의미 있는 충격으로 남는다. 민권운동이 한참이었던 그 시기에 유니온 신학대학은 흑인 해방신학의 산실이었으며,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요람이기도 했다.


구약의 예언자적 전통의 흐름과 이 해방신학의 만남은 그에게 역사의 지평을 열어주었고, 이후 실천의 능력을 갖도록 하는데 있어서 매우 소중한 체험이 되었다.

 

 


 

밀실에서 시대의 광장으로


이후 그는 십년간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 책임 위원으로 살면서 히브리어와, 그 언어의 세계를 통해서 성장했던 예언자들의 삶 속에 그대로 푹 파묻힌다. 시대의 중심에 살면서 소용돌이치듯 세월을 보냈던 윤동주, 장준하의 꿈속에서의 부름도 마다한 채, 그는 히브리 성서의 번역에 미친 듯 몰두했던 것이다.


그가 윤동주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열등감을 이후 고백하지만, 그의 구약 성서 번역 작업은 그러한 열등감의 극복을 넘어 그에게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주게 된다. 아무튼, 그는 1976년에 이르기까지 일찍 일본과 미국에 유학을 하고 온 탁월한 성서학자였고, 히브리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예술적 재능을 가진 한 목회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독재 체제는 그의 이러한 신학적 헌신의 세계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예언의 언어를 번역하고 있기만 해서는 말씀이 육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우시기나 하시려는 듯, 역사는 문익환을 성서번역의 외로운 밀실에서 시대의 광장으로 전격 불러낸다. 진정 부름을 받은 것이었다.


이른바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이라고 불린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연루된 그는 처음으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다. 애초에 이 사건은 그가 연루되지 않게 기획되어 있었다. 필력이 좋은 그가 구국선언문을 기초한 사실은 아무도 불지 않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구약성서의 번역작업이 거의 다 마쳐가고 있다는 중대과제가 있기에, 이 일과 관련되었던 이들은 모두 그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우 문동환은 고문의 고통 속에서도 문익환 이름 석 자가 나오지 않도록 인내했던 동지들의 아픔이 더 이상 계속될 수는 없다고 판단, 형의 이름을 내놓는다.


다른 누가 그리했으면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 되었겠지만, 아우가 동지들의 고통을 덜고자 형을 역사의 현장에 끌어들였으니 이를 어찌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이 시기에 이르기까지만 해도 재야 민주화 투쟁의 지도급 인사는 오히려 그의 아우 문동환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졸지에 엮이게 된 문익환은 그간 히브리 성서 번역의 과정과, 해석의 훈련 속에서 다져온 믿음의 내공을 이른바 초식으로 펼쳐보이게 된다.


1977년 전주교도소에서의 24일간 옥중 단식은 약골로만 여겼던 문익환 목사에 대한 당국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재야 민주화 운동을 그를 중심으로 하는 판으로 집결시켜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가 재야인사로서 뒤늦게 입문하여 스스로를 늦봄이라고 불렀고, 그 사로잡힘의 자리에서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알렸으니 그야말로 사도 바울의 모습대로 산 셈이다.


옥에 가둘 수 없는 영혼


1977년, 기독교계에서 존경받는 그를 더 이상 구속 수감할 수 없어, 박 정권은 그를 형 집행 정지로 석방시켰으나 이내 그는 유신 헌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형 집행 정치 취소로 재수감 된다. 이렇게 해서 그의 감옥 생활의 긴 세월이 시작된다.


첫 투옥이 22개월, 형 집행 정지 취소로 재수감 되어 박정희 암살사건으로 유신체제 붕괴에 이르기까지 옥살이는 한 것이 15개월, 1980년 5월 광주 연루혐의로 이른바 “내란 예비음모죄”로 세 번째 투옥되어 31개월 만에 출옥하게 된다.


1985년에는 5.3 인천항쟁사건으로 네 번째 투옥되어 형 집행 정지로 26개월 만에 나오고 1989년 평양을 다녀왔다는 죄목으로 국가보안법에 걸려 다섯 번째 투옥, 형 집행 정지로 19개월 만에 출옥한다.


1991년, 이른바 분신정국에서의 활동 혐의로 형 집행 정지로 여섯 번째 투옥되어 21개월 만에 옥에서 나오게 된다. 이렇게 1976년에서 1993년까지, 17년 세월 동안 그가 옥에서 보낸 세월은 도합 134개월, 그러니까 11년이 넘는 시간을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랜 세월의 투옥 생활도 그의 총기와 열정을 잠재우지 못했다. 아니, 도리어 그는 투옥의 고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강한 존재가 되어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도무지 옥에 가둘 수 없는 영혼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펄펄 넘치는 “자유청년”이었다.


그러기에 그에게서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힘겨운 영어(囹圄)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디에 갖다놓아도 불길이었고, 역사의 산 현장이 되었으며 곳곳에서 시대를 일깨우는 소리요, 무딘 마음을 깨는 타고난 교사였다.


그래서 그가 수감되면 그 자체로서 역사는 격동했다. 문익환을 감옥에 집어넣는 시대가 그냥 온전하게 자기보신을 하고 지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가 온 몸으로 부딪혀 깨려는 어둠의 장벽은 그렇게 하나하나 무너져내려갔다.


그를 가두는 횟수가 늘어나면 날수록 민중은 그로써 깨어났으며, 현실의 모순을 명확하게 보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몸으로 이 시대의 눈을 뜨게 했다. 눈 먼 시대를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개안(開眼)시키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문익환의 명망(名望)은 민주주의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어갔다. 그의 명성은 개인적 출세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시대의 고난을 뚫고 가려는 이들에게 자랑이요 용기가 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마치 열정의 암호처럼 사람들의 영혼에 와 박혔던 것이다.


문익환이 하는 일이라면, 문익환이 하는 말이라면, 문익환이 가는 곳이라면 문익환이 목숨을 거는 일이라면, 그것은 곧 이 시대가 반드시 해야 하고 귀 기울여야 하며 함께 가야하고 그로써 생명을 거는 사건이 된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혼신을 다한 뜨거움과 그 어떤 위협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사는 모습은 이 시대의 예언자가 과연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모두에게 성찰할 수 있는 재료를 주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삶을 껴안고 평생을 살아왔던 그가 어느새 그 자신의 형상을 예언자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늦봄 문익환 기념사업 이사장 이재정 신부는 문익환의 발걸음을 “가나안땅을 향하여 모진 고난을 무릎 쓰고 걸었던 모세의 길이었으며, 마른 뼈로 뒹굴며 죽어 있던 동족을 살려내기 위하여 골짜기를 헤매던 에스겔의 길이었고, 정의를 위하여 권력에 맞서 몸을 던졌던 예레미야의 길이었으며, 살라진 민족을 다시 하나로 만들어 남북을 통일하려고 설파하던 아모스와 호세아의 길이었다”고 회고한다.


민중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 한번 열지 않으며 거동조차 하지 않은 무수한 기독교계 지도자들과는 달리, 그는 하나님이 외치라는 소리만 있으면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토해냈던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미 그 안에 십자가의 죽음과 삶을 품고 있는 그를 물러서게 할 수 없었으며 죽기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데 무엇으로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많은 회유와 협박에도 그가 끝까지 자신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러한 예언자 정신의 삶과 믿음 때문이었다.

자신은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그 말씀을 대언할 뿐이라는데, 실로 무얼 가지고 그를 꺾을 수 있었겠는가?

 

                                     


미래의 역사를 감격으로 전망


그렇게 살았던 그에게 1992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그건 그에게 감사였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안 받고 가 문제가 아니라, 이 땅의 현실이 인류사회로부터 주목받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역사의 한계를 밀어나가는 것이 인류에게 평화의 꿈을 나누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


그것이 그에게 감사의 이유였다. 1989년 그가 북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만났던 일도 다 이렇게 고난의 민족에게 살 길을 열겠다는 심정 하나로 이루어낸 일이었으며, 그로 인해 고초를 겪었어도 그것이 그에게 아무 상처와 좌절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것 자체로서 그는 기뻤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는 믿음이 더욱 깊어갔던 것이다.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 마지막 투옥 생활을 마치고 난 1993년, 그는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운동을 제창하였다. 그에게 통일은 이미 온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이미 맛보는 복”과도 같은 개념이었다.


기도하면 이미 주어진 것이니,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도 아직 오지 않았으나 이미 온 것으로 받아, 통일된 조국의 삶을 살아내는 연습과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언제나 앞서 있었다.


사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우리의 현대 민족사의 반성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1945년 해방은 왔으나, 그 해방을 맞이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우리는 혼란과 위기, 그리고 마침내 분단의 세월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느 때인가 통일의 역사가 열리면, 그것이 우리에게 혼란과 위기로 치닫는 일이 되지 않도록, 그래서 통일된 나라의 백성답게 성숙하고 힘 있게 현실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 건너지 않은 요단강 저편의 가나안을 미리 보고 산 위에서 이미 기뻐한 모세처럼 그렇게 미래의 역사를 감격으로 전망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여생의 사업으로 바로 이 일을 해야겠다고 팔을 걷어 부친다. 통일을 부르짖지만, 각기 방식과 노선이 달라 분열되어 있던 통일운동을 하나로 묶어내고, 그로써 “새로운 통일 운동체”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정세(政勢)에 대한 인식도 서로 다르고, 운동방식에 대한 생각도 차이가 나며 인적 구성이나 조직의 내력도 틀린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가면서 통일 운동의 핵을 키워나간다는 일이 어찌 쉬운 것이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에스겔의 계시에서처럼 두개로 나뉘었던 막대기가 하나로 이어지는 그 통일의 꿈을 결코 포기할 수 없어 주변의 오해나 때로의 중상모략, 그리고 비난에도 마다하지 않고 한 길로 뚜벅 뚜벅 나간다.


그의 가슴에는 이미 가야 할 땅이 보였고, 그 땅을 가기 위한 대열만 정비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일의 열매는 그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후대가 맛볼 열매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그에게 상관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진심을 이 시대가 이해하고 그로써 통일의 기운이 대세가 되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새로운 통일 운동체”를 꾸리는 것은 흩어졌던 통일운동의 기운을 견고한 하나의 힘으로 만드는 일이었고, 통일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준비였던 것이었다.

그는 이 일에 밤낮으로 매달렸다. 주변에서는 그의 건강을 걱정했고, 때로 그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모략과 중상을 걱정했다.


문익환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그러던 중, 1994년 1월 그는 갑자기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고통을 한 바탕 겪더니, 잠을 자고 있던 중 심장마비로 인해 그가 그렇게 사랑하고 뜨겁게 열정을 쏟았던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난다. 모두에게 놀라운 충격이었고, 한 시대의 통곡이 그의 죽음을 향해 쏟아 부어졌다.


님이 가신 것이었다. 어두운 역사의 밤을 지새우며 예수의 길을 따라, 좁은 길만 찾아다니고 그로써 형극(荊棘)의 삶을 마다하지 않던 그가 졸지에 우리 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어디 떠난다고 떠나지는가? 문익환은 그저 떠나고 만 것이 아니라, 이 분단의 시대에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도록 하였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이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능력을 주시는가를 보도록 하였다. 민족의 현실과 만난 신앙이 어떤 불꽃을 피워내는가를 목격하게 하였다. 그로써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일깨웠던 것이다.


한반도의 정세가 새로운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이 때에 , 문익환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것 또한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일신의 영달이나 개인적 야망, 또는 출세의 자랑을 모두 접고 한 시대의 절절한 요구 앞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을 던질 줄 아는 “아름다운 이”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그의 삶이 이 땅에 뿌린 그 무수한 씨앗이 보이지 않게 여기저기서 싹을 틔우며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 그래서 민중의 거대한 함성이 그날 그때에 울리면 “역사의 여리고성”은 무너지고 만다는 것. 그것을 우리는 믿는다.


문익환, 그는 바로 그렇게 그 날을 준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전령(傳令)이자, 그리스도의 날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였던 것이다. 그가 흔든 깃발, 우리도 뒤따라 흔들어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고자 하니, 한 시대의 스승으로 그를 가진 우리는 정녕 복 받은 존재들이 아닌가?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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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이길용의 말씀 안으로(10)


말세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가 13:3~13)


요즘 들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기상이변 현상이 자주 반복됩니다. 십 수 년 전부터 엄청난 자연재해가 반복적으로 현대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현 세계 최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미국도 지진과 허리케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만 갑니다. 지난 1989년 진도 6.9로 캘리포니아 지역을 강타한 지진은 27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큰 나라인지라 전국토의 초토화는 없었지만, 당시 미국인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자연의 거대한 용트림은 진지한 공포가 되어 그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에 편승한 언론들은 앞 다투어 지진의 피해로 지쳐버린 가련한 국민들의 마음에 더 큰 양념의 공포심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서부지역의 강진이 지나간 후에, 이제 금세기 안에 내지는 수십 년 안에 미국대륙은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남부와 북부가 동강 나누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그 당시 3류 공포언론의 주제였습니다.


당시 그리 긴 시간이 흐르기 전에 미국인의 공포가 아시아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바로 일본 열도에 떨어진 날벼락 같은 자연의 경고였습니다. 바로 1995년 고베 지역을 강타한 지진이었습니다. 당시 황색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이제 일본 열도가 해수면 밑으로 잠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몰락>이라는 종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고베 지진은 일본인을 멸망의 공포로 몰아넣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엎친대 덮친 격이라고 그 당시 유럽은 전후 최대의 홍수사태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2008년 스촨성 대지진, 2011년 일본 해일로 인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2015년 네팔 지진, 그리고 요즘 반복되는 우리나라의 지진 현상까지... 이런 사고의 연속은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분명한 설명과 또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자기이해를 강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상이변의 원인은 엘니뇨(El Niño)현상 때문이니, 혹은 라니냐(La Niña) 때문이니 하며 사계 전문가의 다양한 고견들이 앞 다투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전문가들의 견해 못지않게 이런 유의 사고가 날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드는 또 다른 설명이 있습니다. 바로 ‘말세’라는 종말론적 시각입니다. 이런 자연 재해와 엄청난 사건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이렇게 소리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거봐라! 말세여! 두말하면 잔소리지, 말세란 말이야! 성서를 봐! 성서를 보란 말이야!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다고 했고, 또 노아의 홍수를 생각 허면 이건 분명히 말세의 징조란 말이지. 이제 끝장이야! 새로운 시대가 온 거란 말이지!”


그분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분명 말세는 지진과 기근 같은 실제적 표상과 함께 도래하며, 또 그런 내용이 성서에 들어있긴 합니다. 오늘 그분들이 인용하는 성서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성전 건너편 올리브산에 앉아 성전을 바라보고 계실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찾아 와서,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다 이루어질 무렵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장차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그리스도다!’하고 떠들어대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 여러 번 난리도 겪고 전쟁 소문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황하지 말아라.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날 터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또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흉년이 들 터인데 이런 일들은 다만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라. 너희는 법정에 끌려 갈 것이며 회당에서 매를 맞고 또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우선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희를 붙잡아 법정에 끄고 갈 때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그 시간에 일러주실 것이니 그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형제끼리 서로 잡아 넘겨 죽게 할 것이며 아비도 제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들도 제 부모를 고발하여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가의 이 구절은 복음서에 기록된 말세에 대한 내용 중 원래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됩니다.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마가복음 13장은 장 전체가 하나의 작은 묵시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의 묵시문학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1세기 사이에 이스라엘 사회에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묵시문학이 유행을 타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시리아 정권의 박해와 로마제국의 압제 아래 수많은 유대인이 고통 받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적 환경과, 또 그에 따라 깊은 체념 속에 절망하고 있는 유대 동족을 위해 종교적 희망이나마 전해주고자 했던 당시의 묵시 문학가들은 새로운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묵시 작품들입니다. 


그들의 역사관은 지금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대한 분명한 이분법적인 구조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발붙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철저한 비하를 감행합니다. 이 세상은 아담이 사탄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취했을 때부터 이미 죄악과 타락으로 그득한 세상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는 계속해서 죄악으로 퇴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악이 넘치는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계를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이고 이런 생각은 그들이 남긴 묵시문학 작품 속에 수시로 발견됩니다.


이러한 당시의 묵시문학적 분위기는 예수에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오늘 읽은 마가복음의 말세 예언에 관한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흔히 사용하시던 빈번한 주제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나라’도 실상은 묵시문학계통에서 즐겨 쓰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분이 사용하셨던 ‘죽은 자의 부활’, ‘심판’, ‘영생’, ‘영벌’ 등도 역시 묵시 문학계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묵시문학의 용어들을 빌려 오셨지만 내용만은 자신의 색깔로 채우셨습니다. 대부분 묵시문학적 전통 하에 서있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포함하여, 다가올 종말의 날에 대한 엄정한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오늘 당장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곧 그들의 역사관 속에서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인간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의 종말에는 따뜻한 구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심판과 종말의 가르침에는 늘 ‘구원하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에게는, 심판이란, 종말이란 끝장내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요청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분의 우리를 향한 연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둔다면 마치 자신의 날이 오기라도 한 것처럼 큰 목소리로 “말세!”를 외치는 이들의 그림은 왠지 낯설어 지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예수의 말세관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오늘 읽은 성서로 돌아갑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서를 살펴보면, 말세의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 역시 자연의 재해와 기후의 이상 현상 등을 종말의 징조라 읽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세 읽기는 거기에서만 끝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거짓 구원자가 등장하고, 전쟁이 소문이 들리며, 민족과 나라가 서로 싸울 것이며,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이지만 이것은 조짐일 뿐. 말세의 본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의 말세 인식은 후반부에 보다 정확하게 등장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주고 아비도 자식을 그렇게 하고, 자식 또한 부모들에 들고 일어나 부모를 죽일 것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가 이해한 말세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의 눈에 자연의 재해와 이상 현상은 말세의 본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말세는 바로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예수는 경고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흘러갈 때, 서로에게 있어야 할 신뢰가 파괴되었을 때, 바로 그 때가 말세의 절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마태는 보다 정교한 언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태 24, 4-12)


마태복음에 연속해서 등장하는 예수의 종말 읽기를 자세히 뜯어보면 막판에 열쇠가 있음을 눈치 채게 돕니다. 즉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 말세의 본모습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바라 본 종말은 자연이 아니라 ‘인위의 재난’입니다. 인위의 재난이 자연의 재난보다 더 파괴적이며 무서운 것이고 이 세상의 종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을 예수는 분명히 읽고 있습니다.

“추락한 인간성이 종말을 재촉할 것이다!”


예수의 선포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의 재난은 종말의 서론이고,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좋아 날뛰며, 그것을 통해 인간의 사이를 갈라버리는 파괴적 이념으로 무장한 이들이 출현하는 것, 그것이 종말의 본론인 셈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지구촌 구석구석 여러 자연 재해로 어려움을 당한 이들이 속히 생의 희망을 얻어 재기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절망치 않고 함께 힘을 모아 재난의 때를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바람이 있습니다. 제발 이런 저런 재해 속에서도 힘겹게 일어나 재기하려는 민초들 머리 위에 말세의 저주를 퍼붓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하나 희망하기는 우리 기독인들이 그들에게 구체적인 희망으로 자리하는 것입니다. 그들 옆에서 말세의 언성으로 훈수드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상처 난 가슴을 위로하며 힘을 보태는 동료의 모습, 즉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리고 참 위로를 주는 친구 같은 기독인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이길용/서울신대 교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017년 세종교양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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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섬, 끝자락에서 일구는 가없는 사랑

- 40평생 누워 있는 아들 돌보는 한 노모의 애절한 사연


전남 여수 앞 바다의 거문도(巨文島). 이름하여 “큰 글을 닦은 섬.” 옛날 중국인들이 이 섬에 우연히 상륙하여 필담(筆談)을 나누다가 의외의 지식수준에 놀라 부른 이름이 내려오게 되었다는데 글 잘하는 것이 못하는 것보다야 자랑스럽기는 하겠지만 다른 말로 뒤집자면 중국 문화의 영향이 이 섬에까지 파고들은 것이라고나 할까? 남의 나라 글을 아무리 잘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글이요,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것은 아니니 만큼 그 거문도라는 이름은 어떻게 보면 이 섬의 ‘소외된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찾아볼 이 섬의 한 늙은 어머니와 그 늙은 어머니 못지 않게 늙어버리고 병든 아들의 기막힌 사연은 그 운명의 실타래 속에 버려진 채 우리의 마음에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거문도는 우리의 근대사에서 19세기 후반, 중국을 집어삼키고 있던 영국이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강점한 역사로 유명한 섬이다. 하고 많은 섬 가운데서 그 조그만 섬을 우리의 허락도 없이 차고앉아서 러시아가 내려올 뱃길을 가로막겠다고 수를 둔 저 멀리 서양(西洋)의 섬나라 영국과 이 동방의 작은 섬이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는 것은 이 섬사람들의 삶의 간단(間斷)없는 풍파를 말해준다. 역사에 등장할 정도로 주목되었던 땅이었으나 정작 그곳에 사는 이들은 역사의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그저 이름 없는 백성들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른 누군가의 이해타산을 위해 자신의 운명이 잠시 볼모로 잡혔던 그 섬은 여수에서 뱃길로 2시간, 한려수도(閑麗水道)를 펼쳐내는 복잡한 곡선의 남해(南海), 그 언저리에 외롭게 떠있다. 그리고 그 섬 안에 살고 있는 조경백이라는 60이 넘은 아들은 꿈쩍도 못한 채 2평 짜리 비좁은 방에서 오늘도 몸을 한 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40년 이상 누운 그 자세로 80대 중반에 접어든 노모의 눈물겨운 수발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매어있는 사랑의 볼모일까? 누구도 상대를 포기하지 못한 채 살아온 세월은 어찌 보면 기한 없는 형벌이고 인고(忍苦)의 슬픔이다.


이춘덕, 조경배 씨 모자의 기구한


어머니 이춘덕(85세, 거문교회 집사)씨가 아들에게 ‘꽁꽁 묶이게’ 된 것은 46년 전, 스물 셋의 아들이 류마티스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병균을 막아야 할 항체가 제 몸의 관절 세포를 나쁜 세균으로 인식해 공격하고 파괴하는 질병이 닥쳤다. 엉덩이뼈와 다리뼈를 잇는 고관절에 처음 증세가 나타난 아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후 병마는 계속 퍼져서 지금은 목 아래 모든 뼈마디가 오그라들고 비틀어진 채 굳어버렸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나날을 보내왔다. 그렇게 46년… 전신마비로 46년 동안 문밖을 나서보지 못한 아들. 어머닌 그 아들의 손발이 되어 반평생을 사셨다. “진작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한국 전쟁이 막 끝난 당시 2남 4녀를 둔 이 씨 부부는 “끼니 때울 일을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했다. 남편은 조각배로 고기잡이를 하고 자신은 떡을 빚어다 팔았다. 거문도에는 지금처럼 보건지소도 없었고, 1000km 남짓 떨어진 여수항까지 여객선도 없었던 때여서 아들 치료에 도저히 엄두를 못냈다고 했다. 무슨 병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아들은 16살 때 발병했다. 반년쯤 누워 있다 일어났지만 3년 뒤 더 심하게 재발했고, 쑥뜸을 여러 날 맞고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세번째 병이 닥치자 아들은 하늘을 원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이 무렵 떡방아에 머리를 부딪혀, 지금까지도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어머니를 괴롭히는 두통. 약도 소용없다며 어머닌 늘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 외진 섬에서 어머니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이마에 훈장처럼 파스를 오려붙이는 일뿐이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이제 아들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대나무 꼬챙이를 움직여 공중에 매달아 놓은 성경을 보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 보다 책장을 넘기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아들. 그래도 조경백 씨는 신구약 성경을 여덟 번이나 읽었다. 요즘은 하루에 20장씩의 성경을 읽으며 보낸다. 욕창 방지한답시고, 10cm 높이의 간이침대에 누워 천장에 매달려있는 성경책을 읽고 있는 조 씨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늙은 어머니. 훅하고 바람이 불면, 두 분 다 그대로 재가 되어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조경백 씨는 요즘 아침, 저녁 하루 두 번만 식사를 한다. 한 끼 식사에 걸리는 시간은 30분.그건 허리 아픈 어머니에겐 너무나 큰 무리이다. 그래서 아들은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점심을 거르기로 했다. 어머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흰머리가 나지 않는다. 당신이 늙지 않아야 자식을 건사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는 어머니. 머리가 허연 아들은 어머니의 검은 머리가 그래서 또 가슴 아프다. 좋은 일도 많고 나쁜 일도 많은 넓디넓은 세상. 그러나 아들은 그 세상을 바라만 볼 뿐 만질 수가 없다. 그래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아들은 버릴 수가 없다. 두 평도 채 안 되는 비좁은 방안. 그 속에 갇혀 사는 아들에게 어머닌 유일한 말동무고,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다.


조경백 씨는 새벽 4시면 하루를 맞이한다. 첫 아침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이 눈을 뜨면 처음 맞아주는 것이 샛별의 반짝거림입니다.” 그렇게 시리도록 별을 보고 눈이 맑아져서 밝아오는 아침, 한밤 내 긋던 별똥별만큼 많아진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과 커다란 광주리 하나 가득 세월 이시고 홀로 서신 어머니를 바라본다. 우리는 누구나 엄마의 풍 안에서 늘 세상이 따뜻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늘 바람 부는 쪽으로 등을 돌리고 계셨던 어머니의 세월은 늘 등이 시리지 않았을까. 외딴 섬 거문도, 그 속에서 또 다른 섬처럼 외롭게 살아온 모자의 방에 불이 꺼지면 또 하루가 지나간다.


어머니는 당신 것보다 먼저 아들의 수의를 마련해 놓으셨다. 당신께서 먼저 가면 돌봐줄 이 없는 아들 생각만 하면 어머니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저 사람이 먼저 가야 내가 마음놓고 갈텐데… 내가 먼저 가면 어떡하나. 그 생각하면 내가 잠이 안오요.” “또 나가 만일 어쩌고 보면… 너가 나 앞에 가야 할 것인데…” “불쌍한 말로 나 앞에 가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눈을 감고 간다.” 아들을 앞서 보내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가 없다는 어머니. 그러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말을 듣지 않는 몸. 어머닌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들의 마음일까. “어머니가 먼저 가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자식에 대한 동물적인 사랑으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어머니가 아프시면 성경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밝은 모습이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아들에게 늙고 초라한 어머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모진 세파 속에서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아들을 지켜온 어머니. 46년! 세상은 참 무섭게 변했는데, 모자의 46년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어머닌 또 내일 아들을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실 거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비탈거미는 일생에 단 한번 40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초여름,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온다. 어미는 커다란 곤충들을 잡아먹어 스스로의 몸을 살찌운다. 추운 겨울이 되고 먹이가 줄어들면, 어미 거미는 수 십 마리의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뜯어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배 밑에 새끼를 놓고 톡톡 두드리면서 주위를 환기하는 것이다. 굶주린 새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미 위에 올라타고, 어미의 몸을 뚫어 독액과 소화액을 주입한다. 어미는, 어미는, 순식간에 우글거리는 새끼들의 밥이 된다. 비탈거미는 더 이상 생식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비정한 운명을 잘 알고 있다. 하여 의미 없는 육체를 새끼들의 자양분으로 헌납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극한의 사랑이다. 거문도의 사연은 ‘비탈거미’를 생각나게 한다. 어머니가 감당한 두터운 세월의 무게에 한숨을 몰아쉬며, 지독한 사랑이라 생각했다.


고개조차 마음대로 돌릴 수 없이 꼼짝 못하고 누운 그의 모습은 인간으로서 동물과 구별되는, 일어설 직립 능력을 박탈당한 식물인간적 상태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인간으로서 계속해서 살아갈 의미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처지는 비극적이다.


건장하고 활기 넘치는 시기를 보냈어야 했을 그는 이 병마의 시련 속에서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과한다. 누구도 그의 삶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지팡이 하나를 갖고 하나님에 의존해서 홍해를 가르고 바위의 물을 낸 모세와 다를 바 없이 오로지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인생을 살아낸다. 모세와 그가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세는 히브리 노예들의 삶을 해방시키는 일에 부름 받았다면 조경배, 그는 무엇보다 그 자신의 병든 육신에 갇힌 영혼의 자유를 찾기 위해 몸부림 쳤다.


그의 광야의 삶은 처절했고 그 처절함이 그를 성서와 신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 육신의 지독한 질고(疾苦)가 끝나는 날, 그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유일한 소망으로 견디고 있다. 그런데 그 견딤은 좌절의 종점에서 피할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견딤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의 85세의 늙은 어머니 이춘복 집사의 사랑과 헌신의 삶이다.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


자신의 고통도 심하건만 어머니는 아들의 삶을 지켜내는 것을 스스로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들 노모자(老母子)의 삶은 그래서 마치 섬 가운데 또 하나의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섬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의 바다이다. 그 바다의 깊이만큼 생긴 부력(浮力)은 그 섬을 가라앉지 않게 하고 있다. 그로써,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은가 라는 세상의 판단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어떤 생명도 그 생명이 끝나기 전에 먼저 저버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 바다를 출렁이게 하는 파도이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 파도와 만나고 있는 것일까? 이들 두 노모자의 모습은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밝고 편안했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모르는 평안이 있었다. 세상은 이들의 삶을 외면하고 소외시켰지만, 이들 노(老)모자는 그 소외의 섬, 끝자락에서 생명의 시간을 일구어 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 아파하는 자의 삶의 자리에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들 두 노(老)모자는 바로 그런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고난은 이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의 실마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렇게 말하기는 쉬워 보여도 얼마나 간단치 않은 일인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들의 장래를 소망스럽게 기원하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날벼락이 떨어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어머니는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육신, 그리고 자신의 영혼까지 아들의 삶에 쏟아 부어 왔다. 세상이 보기에는 도저히 가망이 없고, 그래서 그 사랑의 헌신이 결과적으로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이 어머니의 병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꺾일 줄 모른다. 자신의 생애 절반을 송두리째 바친 지난 세월이 그녀에게 한과 억울함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는 이 어머니는 아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한다. 방 한 켠에 덩그라니, 마치 오래된 짐처럼 놓여 있는 아들의 육신은 이춘복 집사에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의 무게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어머니는 그 무게를 능히 지고도 아무런 불평과 탄식이 없다. 세상에 진정한 강자가 있다면, 바로 이런 어머니가 아닐까? 이 어머니의 사랑을 무너뜨리게 할 것이라고는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어떤 좌절스러운 현실이 맞닥뜨린다 해도 어머니는 그러한 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달 두 달도 아닌 무려 46년의 세월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성인이 된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온갖 시중을 들면서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는 늙은 어머니가 현실에서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에 제기되는 모든 하찮은 불평과 불만을 잠재우고 만다. 평범한 시골 아낙네에 불과했던 이 어머니에게서 그렇게 강한 힘이 솟아 나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가누지 못하는 몸을 건지는 생명줄


자신의 이러한 신세를 한탄하고 눈물을 쏟을 듯 한데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결국 그 아들에게 영원히 평안한 자리로 가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세상사는 것이 잠시의 고난이나, 그 고난의 강을 건너면 이제까지의 고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감사가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육신으로 사는 아들의 하루하루가 감사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뿐이다. 어머니가 손을 놓는 순간, 그 아들은 지옥을 경험할 것을 아는 어머니는 혼신을 다해 그 아들의 삶에 더 이상의 고통과 아픔이 가해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몸이 곧 자신의 몸이요, 아들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인 이 어머니에게 하여, 사랑은 가누지 못하는 몸을 건지는 생명줄이다. 생명줄을 놓아버리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될 것인지 아는 어머니는 세상의 동정이나 세상의 어쭙잖은 조언에 대하여 조용히 눈과 귀를 닫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한 가닥이라도 남은 생명의 힘이 있다면 그 힘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그로써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인 것을 그녀는 은연중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자신에게 이 고통은 설명될 수 없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주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의 생명과 삶은 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상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에 이어지는 잠시의 통로이다. 그 통로로 들어가는 길이 힘겹다 해서 하나님의 처사에 비난을 더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멀어지는 첩경일 뿐이다. 세상의 눈으로는 사는 의미가 어디에도 없는 듯 하지만, 이러한 육신을 지니고 이러한 고난을 겪는다해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들은 안다. 그 앎이 이들에게 믿음의 뿌리이다.


그리고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에 닿아 있는 감격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셨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지경에 있는 자신들에게조차 다가오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앞서는 것이다. 실로, 온전한 육신을 지니고 있어도 그 영혼이 병들고 하나님 나라와는 인연이 없이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에게 이들 두 노 모자는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는 하나님의 사자(使者)이다.


그 어떤 생명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버림받지 않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들의 삶이 이 절망과 좌절의 시대에 희망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게 하는 힘이 되는 이유이다. 하여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세상의 외면과 방치 가운데 외딴 섬에 갇혀 지내는 상황일지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과 평안의 힘을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신앙에서 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이들 두 모자는 서로에게 볼모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건지는 은혜의 터이다. 그리하여 세상은 소외시키나 하나님은 품으시는 이 놀라운 사랑의 현장은 끝없는 하나님의 바다를 보여준다. 모든 아픔과 고난을 품으시고 그것을 생명의 힘으로 나누어주시는 하나님 말이다.


거문도의 밤은 바닷바람이 차가 왔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에 끝까지 의지하는 이들 두 모자의 존재로 하여 마치 별이 빛나는 느낌이었다. 아, 누가 인생에서 실망할 것인가? 아, 누가 자신의 삶을 저주할 것인가? 거문도에 가보라.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결코 놓지 않으시는 사랑의 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끈에 매어 있는 배는 인생 어디에서도 표류하지 않을 것을….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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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말아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밑 빠진 둑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탓이 어디 있다고 보느냐?” 


“그야, 있다면 저한테 있겠지요.” 


“옳은 말이다만, 정직한 대답은 아니구나.” 


“……” 


“탓이 너한테 있다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네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밑 빠진 독 같아서 그래서 힘들다는 얘기 아니냐?” 


“그렇군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사랑받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탓’이 너한테 있다는 말이 옳다고 한 것이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힘들지요?” 


“너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사랑이 힘든 것이다.”

“예?”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주거나 누가 누구한테서 받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무엇이 아니라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런 사랑을 누구에게 주고 또 받으려 하니, 그것은 마치 사람이 땅을 어깨에 메고 다니려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거늘, 어찌 힘들지 않겠느냐? 하면 할수록 힘들 것이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루아침에 사랑을 깨칠 수 있겠느냐? 조급하게 굴지 말아라, 지금 잘하고 있다.” 


“……” 


“봄이 되면 땅이 새싹을 땅거죽 위로 밀어올리느냐?” 


“그건 아니지요. 그렇지만 땅이 없으면 어찌 새싹이 돋겠습니까?”


“사랑이 그와 같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이 사랑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는 하겠습니다만,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지금 잘하고 있다지 않았느냐? 

하늘이 모든 것을 덮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바꿔놓거나 젖혀두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하늘과 같다. 

땅이 모든 것을 싣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싫어하거나 밀쳐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땅과 같다. 

해와 달이 모든 것을 비춘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등지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일월과 같다.” 


“그렇지만, 분명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그를 덮어주고 실어주고 감싸주어야 합니까?” 


“전에 내가 들려준 ‘집 떠난 아들 이야기’를 기억하느냐? 

둘째 아들이 아비의 집을 떠날 때 아버지는 그의 가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또한 그의 귀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의 집 떠난 아들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몸은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늘 아들 곁에 있었다. 만약에 아버지가 억지로 아들을 집에 붙잡아두거나 아들을 따라서 도시로 갔다면, 그렇게 해서 아들을 자기 곁에 두거나 아들 곁에 있기를 고집했다면, 그것은 아들의 ‘출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요, 따라서 아들은 끝내 귀향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 


“지금 누가 네 눈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기억해 두거라, 그는 그렇게 ‘잘못된 길’을 갈 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아버지 품 아닌 데가 없어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걷는 길은 짧게 보면 출가행(出家行) 또는 귀가행(歸家行)으로 두 길이 서로 반대 방향이지만, 그러나 길게 보면 출가는 귀가의 씨앗이요 귀가는 출가의 열매일 뿐이고 따라서 모든 길이 결국 귀로(歸路)인 것이다.” 


“……” 


“누구를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없이, 소리 없이, 흔적도 없이, 아무 바라는 것도 없이 그와 함께 있어라, 

거듭 말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곁에 없는 듯 있는 것이다. 

하늘이 땅을, 땅이 초목을, 일월이 만물을 대하듯이 그렇게,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이아무개 지음, 『지금도 쓸쓸하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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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현경장(解弦更張)


굳이 프랙탈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우리의 일생을 닮게 마련이다. 인생은 오늘의 점철이라지 않던가? “이 세상 뭘 하러 왔던고?/얼굴 하나 보러 왔지,/참 얼굴 하나 보고 가잠이/우리 삶이지.” 요즘 들어 함석헌 선생의 시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삶이 부박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살아오는 동안 마주쳤던 그 많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맑고 고운 얼굴, 따뜻하고 고요한 얼굴, 수심 가득한 얼굴, 비굴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 독기 어린 얼굴…. 그러다가 문득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아뜩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길을 걷다가 창문에 얼비친 자기 모습이 낯설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얼굴을 ‘얼의 골짜기’라고 설명한 분도 계시지만, 우리 얼굴은 정확하게 우리 내면을 반영한다. 옛날 초상화가들은 대상의 외모만 그린 게 아니라, 그들의 내면의 풍경까지도 그리려 했다 한다. 전신사조(傳神寫照)가 그것이다.


말이 장황해졌지만 내게도 아름다운 얼굴이 한 분 계시다. 민영진 박사님(이하 민영진)이다. 20대 초반에 만나 60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그 얼굴은 내게 시종 맑고 환하게 기억된다. 민영진은 학문의 즐거움과 엄정함을 가르치면서도, 학생들로부터도 배우려는 태도를 시종 견지하신다. 그런 학생 정신이야말로 그 얼굴에 깃든 맑음의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몰강스러운 세태조차 민영진을 후락(朽落)의 자리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어지간하면 열정 따위는 시드럭부드럭 스러질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명징한 인식과 표현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신 듯하다. 성서신학자와 성경번역자로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도 언어에 예민하였기에, 그 여정이 시로 귀결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시인들은 일상적인 언어를 재배치하여 놀라운 이미지와 의미의 세계를 드러낸다. 언어의 올가미로 영원을 잡아채는 것, 바로 그것이 시적 순간이다.


민영진의 시는 과잉을 모른다. 놀랍고 기발한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심상에 떠오르는 것들을 관념으로 비틀거나 베일로 가리지 않고 직정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고 하여 나이브하지 않다. 그 언어는 정갈하고 고요하다. 성품이 시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에게 시는 삶의 진실과 진정을 드러내는 통로이고, 삶은 시의 자양분이 된다. 지금 민영진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과 일상의 성스러움, 성경, 언어 등이다.




민영진의 삶은 아내인 김명현과 함께 빚어온 작품이다. 그에게 아내는 “하나님의 숨/흙에 닿아 한 점 혈육/우주 바꾸고 몸 바꾸어”(<만물의 어머니> 중에서) 나타난 존재이다. 함께 걸어온 긴 세월을 민영진은 기꺼움과 고마움으로 돌아본다. 유학생활 중에 잃었던 태중의 아기에 대한 기억과 슬픔이 그 둘을 든든하게 이어주는 정서적 밑절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일어날 법한 소소한 일상을 엿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것은 그 속에 담긴 따스한 정과 유머 때문이다. 깔끔한 아내와 털털한 남편, 추위 타는 남편과 더위가 싫은 아내, 사랑의 표현을 갈구하는 아내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은 늘 티격태격한다. 손톱 발톱을 깎다가 궤도를 이탈한 녀석 때문에 방청소를 하던 아내에게 지청구를 듣고, 한밤중에 소변을 보고 변기 깔개를 내려놓지 않았다가 타박을 당할 때면 남편은 애꿎은 친구들을 기억 속에서 불러낸다.


여보, 당신도 알지 그 친구,

거 왜 가끔 그 모임에 나오는 그 키 큰 친구

요즘, 손톱 발톱이 다 빠졌대

면역력 결핍증이라나 뭐라나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대, 멀쩡했잖아,

손톱 발톱이 없으니까

손가락도 발가락도 제 구실을 못하고

폐인(廢人) 같아 보여

- <손톱 발톱> 중에서


여보, 당신, 내 친구 김 아무개 알지?

비만이라고 걱정하던

그 친구 요즘 소변을 못 본대

터질 듯 마려운데 안 나온다나?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바지가 다 젖어있다나 뭐라더라?

- <쉬> 중에서


나이 듦의 애잔함이 능청스러움과 버무려져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소소한 일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장성한 자식들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온 그 놀라운 손님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자못 따스하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신비이다. 손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우리에게 보내주신/한 편의 시(詩)”(<손자>)이고, 손녀는 “당신 품에 안고 있던 딸/예쁘게 키우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존재(<편지>)이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태에서 태어난 거룩하고 신비한 존재(<아이들아>)이다. 아이들은 생명의 신비함과 거룩함을 가리키는 징표로 우리 가운데 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 안에서라면 늙어감조차 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회한조차 없을 수는 없다. 주어진 시간을 한껏 살아내기는 했지만, 어떤 일도 완전할 수는 없기에, 못다 한 일에 대한 회한이 그림자처럼 영혼에 드리우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은 맡겨진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하나님이 툭 치고 지나갈 때마다 익숙했던 모국어가 서툴러지고, 그 때문에 메시지를 적절한 언어로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청중들에게 익숙한 구문론이나 문법을 지킬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음과 하기 싫음 사이의 경계선에서 바장이다가 그는 자신이 “늘 모국어를 배반하는 설교”를 해왔다고 자책한다(<날 건드리더라>). 짐짓 해보는 겸양의 말이 아니라, 준엄한 자기 성찰에서 빚어진 말이다.


그는 “광야의 포효(咆哮)”가 되지 못하고, 볼모로 잡혀온 이후부터 “침묵한 덕분에/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했”(<볼모>)다고 말한다. 민영진은 ‘그래도 이만하면 잘 해온 것 아닌가’ 하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 엄정한 심판관이 되어 자신의 허물을 폭로한다. 그는 “번역자는/오늘도/의미의 바다를 표류한다”(<표류>)고 노래한다.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의미의 심연을 드러낼 적절한 언어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좌절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막막함을 견디며 그는 살아왔다.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인은 떠날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산다. 인생의 마지막 날은 유예된 집행일 뿐, 그날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울 때는 울면서 왔었습니다만

돌아가는 날은

당신을 부르며 갈 것입니다

당신께서 오라 하실 때

쇠약해진 이 몸 당신 품에 안기어

깊은 잠, 푹 들게 하여 주십시오

- <새 하늘, 새 땅> 중에서


시인은 이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것들임을 절감하며 만물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식물, 동물, 바위, 흙과의 대화를 꿈꾸는 것이다. 우주의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처럼 그는 삼라만상에 빼곡히 적힌 글을 해독하고 싶어 한다(<사파리>). 그것은 인간의 오염된 언어 혹은 분절된 언어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어 너머의 언어가 필요하다. 구상 시인은 마음의 눈만 뜬다면 “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베란다의 봄 국화가 시든 화분에/제풀에 돋아난 애기똥풀이나/그 옆 수챗구멍 질척한 쇠그물에/오물거리는 새끼 지렁이를 보려므나!//어느 곳에나 신비는 충만하고/어느 곳에나 생명은 약동한다”고 노래했다(<마음의 눈만 뜬다면>). 민영진이 당도한 세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그에게 세계는 신비의 정원이다. 마음의 눈이 열리자 늘 밥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이 희생제물임을 깨닫게 된다(<나물>). 몸 안에 들어와 우리의 몸을 이루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나물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호명 행위를 통해 그 나물들은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라 생명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 보아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때가 되면 피어났다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스러지는 야생화 역시 그 생명 세계의 일원이다. “부레옥잠화, 금낭화, 물봉선화, 모싯대 꽃, 노루귀꽃, 등(燈)꽃….” 낯설기는 해도 그 귀한 야생화가 그곳에 있기에 세상이 온전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시인은 은근한 소망을 피력한다. “구름패랭이, 꿩의비름, 말나리 꽃, 뻐국나리, 솔나리, 금꿩의 다리, 천일홍(天日紅)…/내 이름도 너희들 사이 어디쯤에 넣어볼까/다시 태어나는 날, 한번쯤은/너희들과 함께 야생초이고 싶다”(<야생화>).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고쳐 맨다는 뜻이다. 시와 더불어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작(詩作)은 그에게 다른 중요한 일들 사이에 부룩 박은 또 다른 일이 아니라, 성서신학자이자 성경번역자로 살아온 민영진의 삶의 여정 끝에 당도한 세계이다. 하이데거도 생의 말년에 시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았던가? 합리적 언어 혹은 학문적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세계, 오직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보이는 신비한 세계가 그의 시를 통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세상은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다. 상투적인 종교 언어에 식상한 이들의 눈이 민영진의 시를 통해 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 한희철/ 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http://fzari.tistory.com/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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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1968년에 결혼한 후 5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둘만 있어도 깔깔대며 잘 웃는다. 우리 부부의 웃음 묻은 이야기를 가끔씩 이야기하면 재미있다고 글로 써서 책을 내라는 사람도 있고 나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그동안 『민영진 어록』을 발표하라고 한다. 이것이 언제 책이 출간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어 독자 여러분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다. 우리의 이런 꾸밈없는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흠이 될지 욕이 될지도 모를 것 같아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삶이요 나의 사랑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냥 웃음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44년생이고 그이는 40년생이니 나는 그이보다 네 살이나 더 어리다. 결혼 후, 첫 새해를 맞아 남편은 갓 결혼한 새댁을 어른들께 인사시키고 싶었나보다. 어른들께 세배를 간다기에 치마저고리에 두루마기까지 차려 입고 거기에 걸맞도록 머리를 위로 올리는 업스타일을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자가용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이는 동안이고 날씬해서 어리게 보였고 나는 살이 통통(?)해서인지 더 늙게 보였나 보다. 택시기사가 나보고 누나냐고 묻는 게 아닌가! 난 너무 당황하고 화나고 기분이 안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에게 내가 간 빼 놓고 살아서 아마 늙어졌나보다며 이제부터는 당신이 간 빼 놓고 살라고 명령(?) 하였다. 그랬더니 그이 하는 말 “지금 누나 정도면 괜찮은 거지, 우리가 이 다음에 더 늙게 되면 제자들이 와서 “민 선생님, 어머님이 꽤 젊으시네요.” 할 때가 올 거란다. 그 후 20년이 지난 후부터 그이의 머리에는 은가루가 해를 더해갈수록 자꾸 자꾸 많이 뿌려진다. 난 너무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절대 염색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은 머리가 희어갈수록 멋도 더해진다고 아주 근사하다고 속삭여준다. 바로 로맨스 그레이 그 자체라고.


그이는 한복 입기를 즐겨 해서 신정이면 두 주간을 거의 한복을 입는다. 교회 갈 때도 마찬가지고, 어느 주일날 그이가 한복을 입으니 나도 한복을 입었다. 예배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힘들게 한복 입었는데 그냥 집으로 가기는 아까우니 근사한데 가서 커피라도 마시자고 했다. 우리는 어느 고급 호텔의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 사방을 보니 선보는 팀들이 많았다. 수상한 관계의 남녀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이에게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을 무슨 관계로 볼까?” 하고 물었다. 그이의 말 “목사와 여신도 사이로 보겠지.”


《지구별에서 노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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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대만신학자 송천성은 어머니를 가리켜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라 말했다. 생명을 낳아 기르는 행위의 소중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날이 갈수록 그 말이 실감난다. 현대문명은 끝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의 폐쇄회로에 갇힌 이들은, 기쁨을 누릴 줄 모른다. 이웃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합리성과 효율이 최상의 가치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삶은 부박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마음 내려놓을 곳을 몰라 방황한다. 고향 상실, 안식 없음이 지금 우리 삶의 실상이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말했다. 여성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여성적인 것이 대체 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관계 지향적인 공감능력을 가리킨다는 말로 이해한다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시절 여성들은 주체로 살기보다는 남성 중심 사회의 객체처럼 살아왔다. <씨알의 소리> 1978년 5월호에 실린 함석헌 선생의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은 “나야 뭐“였다. 함 선생은 아내 황득순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의 삶을 ‘나야 뭐’라는 말로 요약했다. “먹을거나, 입을거나, 뭣에서나, 자기는 늘 빼놓으면서 늘 하는 말의 첫 머리가 ‘나야 뭐……’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여인들의 삶이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를 지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 말이다. 지금은 세월이 달라졌다. 여성들은 더 이상 객체의 자리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런데 주체가 된다는 것이 곧 외로운 단자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주체는 다른 이들과의 창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한 존재가 아니던가.



김명현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주체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공부한 신학을 자양분 삼아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지속해왔다. 교회갱신을 위한 헌신, 여성들의 권익과 지도력 개발을 위한 활동에서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긴장을 해소시키는 건강한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가정생활이야말로 바깥에서의 활동을 가능케 한 생명의 묘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속성을 돌봄, 존경, 지식, 책임이라 했다. 김명현 선생님은 그러한 사랑의 좋은 예이다. 가끔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표정과 말 속에 배어있는 남편에 대한 아낌없는 신뢰와 사랑은 곁에 있는 이들을 가만히 미소 짓게 만든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들이다. 두 아들에 대한 존중과 신뢰, 그리고 손자 손녀들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은 실답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사는 것은 어쩌면 이 가없는 사랑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어제도 오늘도 마을 어귀를 지키며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맞아주는 품 넓은 느티나무를 닮아가고 있다.


민영진 박사님과 함께 걸어온 50년의 세월을 회고하고 또 경축하기 위해 마련한 이 글 모음집에는 배꼽 빠지게 만드는 웃음, 아련한 아픔,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가 넘실거린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비근한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장엄한 명분을 붙드는 것보다 거룩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도 일상의 일들 속에서 깃든 하늘나라의 광휘에 주목하시지 않았던가. 코헬렛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이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전도서 5:18).


우리의 영원한 중심이신 그분의 마음에 당도하기까지 몸 성히, 마음 성히, 잘 지내시기를 빌고 또 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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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고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하여 신학의 걸음마를 배울 무렵, 저는 선생님께 구약을 배웠습니다. 과목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몇 과목이나 되었는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께 배운 가장 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목회의 길을 걸으며 내내 마음에 두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수도원을 연상시킬 만큼 강의실 분위기는 진지했는데, 말씀 한 구절을 읽는 모습을 통해서도 말씀을 허투루가 아니라 공손하게 대하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대하는 가장 마땅한 자세가 경외심이라는 것을 저는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

두어 해 전 감신대 동기들이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남해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학생들의 머리에도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그날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요. 그날 우리는 밤이 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살아갈수록 모르겠는 것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데 딱히 물어볼 만한 분이 궁했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진솔한 대답을 들려주셨고요. 경청과 진솔함이 가장 좋은 대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덤처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마감하며 드렸던 마지막 질문은 “그동안 가장 이기기 힘들었던 시험은 어떤 것이었나요?”였습니다. 선생님은 잠깐의 생각 끝에 대답을 하셨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는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내가 가르치거나 전하는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인지, 지금도 고민을 합니다.” 세 번이라 하셨던가요,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쫓겨난 적이 ‘겨우’ ‘세 번밖에 없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와락 웃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큰 찔림이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동이 틀 때까지 천사와 씨름을 했던 야곱처럼 평생 말씀을 붙들고 씨름을 하셨구나, 나도 모르게 선생님의 어깨에 눈길이 갔습니다.



오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쓴 시를 읽습니다. 식물과 곤충과 동물, 온갖 나물과 야생화, 나무와 물과 공기, 심지어는 방사능까지, 그 모든 것을 향해 건네는 언어의 수화(手話)를 지나, 가족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인사와 축원을 지나, 마침내 <초상(肖像)>에 이르렀을 때, 저의 글 읽기는 점점 더뎌지다가 굳어지다가 마침내는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텅 빈 여물통과 가득 찬 여물통’의 만남을 ‘즐거운 해후’(邂逅)(<범일동 아이>)라 했지만, 그 기가 막힌 역설에도 차마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난 시절 먹을 것을 찾아 취사장 구정물이 쏟아지는 수챗구멍을 뒤지던 하얄리아 캠프, 기차에서 뛰어내릴 때를 놓쳐 결국은 군수품 도둑이 되고,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했던 통역을 동반한 문초, 그 때 그 일을 성서 번역자로서의 첫 걸음으로 인식하는 모습 앞에서 말씀을 모시는 근원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땅의 숱한 아픔과 상처와 모순을 말씀으로 품어 오신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 마음은 말씀의 오지를 향하게 되고, 한국의 영진(泳珍)은 라오스의 영진(永珍), ‘아잔 비엔티나’(Mr. Vientiane)란 빛나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영진>).


‘무덤에서 돋는 연한 풀을 뜯어먹으려고 아무데나 주둥이를 박는’ ‘입이 말은 못해도 포식 기능은 완성한’ 눈 먼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풀 뜯는 설교자>는 영락없는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 손사래를 치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아픈 초상이었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직시하며 한 자 한 자 적는 설교가 얼마나 웅숭깊고 향기로울까 싶은데도 밀려오는 메시지를 도저히 언어로 바꾸지를 못한다며 ‘내 설교는 늘 모국어를 배반한다’(<날 건드리더라>)고 고백할 때, ‘스스로 실성하여 침묵한 덕분에 운 좋게도 도살만은 피한’(<볼모>) 제물(祭物)로 스스로를 자책할 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를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만나는’(<장수>) 즐거움을 누릴 때, 평생 연구하고 기록해 온 자료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을 텐데도 저울에 올려놓아도 아무런 무게 없는 입김과 속임수로 돌리며 ‘날 떠난 너 흙과 물에서 노닐다가 문득 바람 속에서 낯익은 먼지 하나 만나거든 옛날 옛적이었다고 해라’(<문패>) 하며 평생의 수고를 흔쾌하게 비울 때, ‘번역은 말씀의 빙산일각(氷山一角)’이어서 ‘의미의 바다를 표류’하지만 ‘이 작업도 힘겨울 때는 당신 품에 안기렵니다’(<생일유감>) 겸허하게 기도할 때, 시(詩) 속에 담긴 선생님은 다른 말로는 대체할 수가 없는 ‘말씀의 사람’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곁을 말씀으로 찾아오신 한 사람을 압니다. 그 분은 말씀이 곧 삶이었고, 삶이 곧 말씀이었습니다. 평생을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오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을 봅니다. 사람의 몸을 입은 말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삶이 얼마나 지극하고 지순해야 비로소 말씀이 몸을 입는지를 배웁니다. 시(詩)와 삶이 얼마든지 말씀이 될 수 있음을, 아니 그리 되어야 함을 나직한 목소리로 일러주시는 선생님,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과 고마움이 이리도 큽니다.


한희철/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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