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꼐(13)


저마다 선 자리에서 등불 하나 밝히라는 것이지요


처음 책을 받아 보고는 훅 빨려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라는 제목 때문이었겠지요. 자고나면 눈 뜨기가 겁나는 세상에,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지나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세상에서,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라니요. 그 책은 마치 저 같은 이들 보라고 쓰인듯하여 책을 잡자마자 냉큼 머리말부터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당신은 초장부터 이렇게 빠져 나가시더군요. 


“어떤 경우에도 내가 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7쪽).


‘흠, 그러면 그렇지. 목사라고 별 뾰족한 답이 있을라구…’


약간은 심드렁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 나가다가 이 대목에서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 세월이 갈수록 그 엄정함과 서늘함으로부터 점점 멀어진 채 순치된 동물처럼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아뜩해집니다. 조금 지친 듯한 느낌입니다.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41쪽).


‘어라? 목사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삶이 지루하다고?’


혹세무민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교회


그러나 사실은 이 이야기가 참 반갑고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저 자신, 젊은 시절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던 많은 것들이 어느덧 세월 따라 흐물흐물해져 가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을 곧추세워 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낡아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됩니다. 분노는 여전하지만 열정은 식어가는 것 같습니다. 승리보다는 패배의 기억이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싸웠던 독한 권력은 이제 상대하기 어려운 복잡한 권력들에 자리를 내어 줬습니다. 정치를 앞장세우고 자신들은 나서지 않으면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옭죄는 거대자본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은밀한 손을 통해 법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었고, 국민의 피땀으로 세워진 멀쩡한 공기업들이 민영화됩니다. 국민 전체의 행복을 추구해야 할 국가가 소수 재벌들과 그에 결탁한 관료, 정치인들의 전유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은 점점 개·돼지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겠지요. 국가의 기강을 유지해야 할 사법부 종사자들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포로가 된지 오래일 뿐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공직을 이용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건지, 죽은 귀신이 된지 오래였어야 할 “유신의 망령”이 다시 현실 속을 배회합니다. 5년짜리 계약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전지전능,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절대군주 같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라와 국민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드 배치 같은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이게 왜 논란이 될 사안이냐?”고 오히려 국민을 향해 호통을 칩니다. 그런 대통령 아래 있는 고위공직자들이 국민을 개·돼지와 같이 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OECD 평균을 훨씬 웃도는 노동시간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해 온 이 땅의 노동자들, 그들의 형편은 여전히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재벌들은 수백조 원을 현금으로 쌓아두고 있지만 그 돈을 만들어 준 많은 국민은 이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고, 일을 한다고 해도 사는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러한데도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은 그 세상 속을 뚫고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모세의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천당, 불신지옥”같은 혹세무민의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돈이 거의 절대 신앙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종교도, 국가기관도 모두 부패와 무능, 무책임에 얽혀 제 역할을 못하는 현실, 그 총체적이고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자신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무능해 보이고,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겉모양으로나마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삶이 참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있음 그 자체’로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갑자기 흥분을 한 것 같군요. 그런 자리가 아닌데 분노의 게이지가 급상승합니다. 어디에 마음 줄 곳도 없고, 마땅히 하소연 할 데도 없는 상태에서 목사님께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폭발하는 것 같습니다.


새삼 목회자로서 갖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살이의 고민과 힘듦을 목사님께 하소연 하겠지요? 때론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느냐는 항의도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데 하느님의 정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고 대드는 젊은 청춘은 없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다 갖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그저 고민을 함께 나누는 정도가 대부분이겠지요. 그러자면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 그 우울함과 피로감은 누구의 몫이 되는 걸까요? 그런 우울을 떨쳐 버리려는 목소리를 이 책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둠을 모르는 빛은 불완전하고, 절망을 모르는 희망은 공허”(97쪽) 하다든가, “성숙한 사람은 흔들림과 젖음을 물리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통해 자기의 유한성을 깊이 자각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합니다”(97쪽).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인용하면서 한 말입니다. 흔들리는 자신과 우리들을 위해 바울사도의 서신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디아서 6:9). “절망의 심정이 깊어지면 그때가 정말 올까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든든히 붙들어야 합니다. 움씨를 뿌리는 농부는 자기 속에 있는 절망을 애써 다독이며 희망을 뿌리는 것입니다”(98쪽).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문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문법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131쪽)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결국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마다 선 자리에서 천년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 하나를 밝히는 마음으로 산다면 이 어둠의 땅에도 결국 새벽이 오지 않겠습니까?”(131쪽)


저는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서산대사의 선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에 踏雪野中去

발걸음 함부로 내딛지 마라 不須胡亂行

오늘 걷는 내 발자국은 今日我行跡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될지니 遂作後人程


자기만의 삶의 문법으로, 선 자리에서 천년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자! 이 자못 비장하게도 들리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이웃을 외면하고 제 앞가림에만 급급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많은데 ‘있음 그 자체’로 길을 찾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는 이들은 많지 않”다 (142쪽)라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나르는 사람들”(143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목사님의 절친(!)이신 법인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향기를 파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 땅의 지식인과 정치인, 노동운동가 등 이른바 사회지도자들이 평소의 가치와 신념을 저버리고 아무 부끄러움 없이 정반대의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역사는 지조를 버린 이들을 변절자라고 부른다. 간혹 서울 나들이를 갔다가 보게 되는 종합편성채널에는 변절자들의 해괴하고 교묘한 논리가 판을 친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분노를 넘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조용히 생각해 본다. 왜 변했을까. 방법은 바꿀 수 있어도 길은 바꾸면 안 되는 것인데, 왜 자신이 평소 걸어오던 길을 바꾸었을까. 결코 놓을 수 없는 권한 행사, 더 풍족한 경제생활, 아니면 그보다는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법인,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293쪽).


속이 뜨끔했습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향기를 파는 일에 유혹을 느꼈던 적은 없었던가?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가? 과연 내 자신, ‘있음 그 자체’로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이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나르고 있는가? 하는 물음 앞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분노는 여전하지만 열정도, 낙관도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밝히는 등불 이전에 자기 마음속을 밝히는 등불 하나도 제대로 켜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습니다.


앞에 인용한 서산대사의 선시는 김구 선생이 인용하여 더 많이 알려지기도 한 시이지요. 선생은 성공 여부가 매우 불투명한 가운데 많은 이들의 반대 속에 남북정치협상을 위해 북행길에 오르면서 이 시를 읊었습니다. 친일파들의 비호 속에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냉전의 기치를 내세우며 정권장악에 매달렸던 이승만과 달리, 그는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시계視界 제로의 북행길에 올랐습니다. 눈발만 휘몰아쳐 올 뿐, 사방에 인적이 끊어진 허허벌판을 걷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길을 걸으면서도 그는 뒤에 오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옳은 일인가, 옳지 않은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그의 고집스러운 행보와도 닮아 있습니다.



순례자의 길


백범 김구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과연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선지자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선지자의 삶을 존경하고 동경하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런 길을 걷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지자의 흔적을 따라 길을 떠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속에서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보려는 이들을 저는 순례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 길 위에 서 있는 이들은 물론이요, 비록 현실에 몸담고 있지만 끝없이 그 길을 동경하는 이들 모두를 저는 순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김 목사님 책에서 순례자들에 대한 언급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특히 이런 구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간과 이익을 다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지만, 순례자들은 길을 잃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220-221쪽).


“떠나는 이들은 언제나 주류적 가치에 사로잡히기를 거절하는 이들입니다.”(222쪽)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하지요.


“중심부에 속하려는 가련한 노력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222쪽).


아마도 김 목사님이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이야기의 핵심은 이런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집요하게(?) 반복되고 있거든요.


“내려놓지 못해 누추해진 이들을 우리는 정말 많이 봅니다. … 찬바람에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을 봅니다. ‘방하착放下着.’ 때가 되면 홀가분하게 떠나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328쪽).


“욕심을 내려놓으면 비루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어 삶이 남루해집니다”(354쪽).


“맑은 향기를 풍기며 사는 이들은 거의 다 자기 비움의 명수들입니다”(383쪽).


이제 이 편지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책은 저자의 것이 아니고 독자의 것이라고 한 말을 이 책을 읽는 내내 곱씹어 보았습니다. 제가 김 목사님의 책을 오독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 없는 확신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편지의 마무리 역시 목사님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희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숨은 불씨를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108쪽). 


그 숨은 불씨로 저마다 선 자리에서 등불 하나 밝히라는 것이지요?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정범구/전 국회의원,  주 독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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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년(다드림교회 목사)/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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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12)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목사님, 인사도 하기 전에 먼저 ‘사람은 참 이기적이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절망 속에서도 아픔을 공감하는 목사님의 능력을 보며 무심한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화들짝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한 문장, 한권의 책을 인용하시는 그 박학다식함에 시샘하며 지루한 읽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발견하고 밀려오는 뿌듯함에 책을 다시 보고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간사함에 놀라고, 그 간사한 사람이 저와 같은 목사라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그냥 제 추측입니다만 제가 언젠가 SNS에 쓴 내용이 목사님의 책에 담긴 내용과 비슷해서 기뻤습니다.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를 넘어


“어느 목사님이 SNS에 쓴 글을 보았습니다. 자기 개인의 아픔에 대해 말하면 은혜스럽다고 하고 세월호 참사나 비정구직 문제 등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아픔에 대하여 말하면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누구나 느끼는 현실입니다.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는 어제와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둥이 기울고 서까래가 삭은 오늘의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을 회복해야 합니다”는 문장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쓰신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거의 뒷부분(367쪽)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사람이 간사하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문장을 발견하고 그 기쁨에 목사님의 책 전체를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가 그 책을 쓴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목사님이 쓰신 그 부분만 반복해서 읽는 겁니다. 이 문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책을 이해하려고 읽었습니다만 이 문장을 발견하곤 기뻐서 읽었습니다. 참 이기적이지요.


‘사사화된 신앙의 문제’를 탓하면서도 정작 저는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사사화된 신앙’적인 태도로 삶을 일관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를 보면서 한탄하다가도 정작 제 자신의 ‘사사로움’에 감동하고 마는 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목사님, 제 안에도 있고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이 치졸하고 악한 인간성에 대해 목사님은 절망하기보다 희망을 발견하셨습니다. 사람이 갖는 관계에 대한 욕구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의 불씨이지요. 이 욕구를 막아서 개인적인 삶에 머물고 자기만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도적으로 틔우려고 해도 사람들이 가진 사회적인 관계의 욕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관계망’ 형성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자도의 의미를 현실화시키고, 우리가 사는 공간을 치유적인 생태계로 복원시키기에 모든 이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저는 아픔을 통하여 관계망이 사람을 살리는 생태계임을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 무엇보다도 교회는 관계망으로 촘촘히 엮인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오히려 성도들이 삶에서 겪는 아픔을 나누고 의식을 공유하면 관제언론처럼 사단마귀가 들었다고 몰아내칩니다. 또 필요를 나누라고 강조하면 게으름을 일상화 시키는 것이라며 ‘인간성’을 탓합니다.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억압하고 억제하는 일에 앞장서서 마치 정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처럼 관계망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개인적인 질병보다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겪는 고통이 더 지속적이고 파괴적임에도 불구하고 더 큰 악으로부터 오는 아픔에는 외면하도록 눈감게 합니다.


목사님, ‘목사는 늘 위로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시달립니다. 이 위로라는 말속에 개인적인 아픔을 고쳐달라는 강한 압박이 담겨있습니다. 목사가 의사도 아니고, 목사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 위로의 압박은 상당하여 때로는 목회를 더욱 무기력하게 합니다. 정말 치유해야 할 것은 질병이 아니라 어쩌면 생각일 것입니다. 혼자, 고립된 신앙 속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이런 신앙 말고 아픔을 삶의 과정으로 수용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질병의 치료보다 더 근원적으로 삶의 의미를 회복하고 위로하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대면한 첫 만남은 <복음과 상황> 지령 300호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늘 글로만 읽던 목사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하였지만 정작 목사님과 가장 가깝게 닿은 것은 눈도 아니고 손이었습니다. 혜안이 가득한 눈 속에 지혜로움이 느껴졌고, 악수하며 잡은 손을 통해 마음의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 악수를 잊지 못합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다는 것, 그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걷는다는 것이 참 아름다운 일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155쪽). 함께 걷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머물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연대하는 그 정신이 손에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걸어가는 삶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손을 잡는 것뿐입니다. 맞잡으면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늦어지지요. 누구의 손을 잡든지 간에 손을 잡는 순간 늦고 더디게 걸어가는 사람의 속도에 맞추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빠른 사람의 힘에 이끌려 딸려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무리하면 얼마가지 못해서 넘어지고 맙니다. 손을 잡는 행위는 더딤을 수용하고 함께 걷겠다는 느림을 수용하는 엄청난 행위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에서 하나님과 아담이 만나는 첫 장면이 바로 손가락의 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 그 손가락은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주잡을 손 하나가 바로 희망입니다”


저는 목사님이 인용하신 고종석 선생님의 “어루만짐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라는 문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픈 아내를 간병한지 12년째인 저는 깜깜한 어둔 밤에 조용히 침대위에 누워 있는 아내의 팔뚝을 쓰다듬습니다. 아이들이 다 잠들어 있고 호흡만 들리는 그 밤에 조용히 아내의 팔뚝을 만지는 제 행위는 아내와 함께하는 성생활과 같습니다. 그건 “당신은 내 아내입니다”하고 속삭이는 언어랍니다. 그러면 아내도 아는지 부부행위를 하는 듯 호흡이 가빠지고 거칠어집니다. 인생이 칠흑같이 어둡고 답답해도 서로를 보살피는 연대의 의미로 이러한 손닿음은 언제나 부부만의 내밀한 언어를 만들어냅니다.


야심한 밤에 아내의 손목을 잡는 행위는 부부로서의 존재만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의 글속에 “마주잡을 손 하나가 바로 희망입니다”는 문장을 읽으며 전 맞는 말이라고 감탄했습니다. 제 아내처럼 말도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하는 중환자를 일상에서 만나는 것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옵니다. 물론 제 아내도 엄청 두려워합니다. 사고의 두려움도 있지만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제가 휠체어에 아내를 태우고 이동할 때 긴 세월동안 저의 모습을 보아온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주민들조차도 쭈뼛거립니다.


그렇지만 늘 같이 지내온 우리 성도들은 제 아내가 교회에 가면 자신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아내의 얼굴을 보듬고, 팔뚝을 쓰다듬으며 재잘거립니다. 그렇게 아내가 머무는 곳에선 웃음꽃이 핍니다. 그렇지만 제 아내는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그것은 참 희한한 만남입니다. 말 못하는 제 아내를 만나는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 평안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탈북 청년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도록 식장을 빌리고, 음식을 차려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온 제 아내를 그 두 사람에게 소개하며 “제 아내입니다”라고 하자마자 그 두 청년이 저를 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사모님이 이런 모습으로 누워계신데 저희를 도왔습니까?”라며 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생사를 걸고 자신들이 살아온 체제와 다른 곳으로 넘어온 청년들은 좀처럼 울지 않습니다. 그 각오의 단단함이 감정마저 얼어붙게 하나 봅니다. 그렇지만 그 탈북 청년들은 그날 그토록 울었습니다.


손길이 닿으면 그 손길이 닿는 제 아내만 치유되는 것이 아니고 손을 내미는 그 사람도 치유의 과정을 겪습니다. 마주 잡는 손 하나가 세상과 접촉하고 생명의 존귀함을 그대로 수용하는 “보살핌이고 연대”입니다. 맞습니다. 손을 맞잡는 것은 제 아내에게는 세상과 접촉이지만 손을 잡는 그 사람은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수용하는 보살핌이 된 것이지요. 손을 잡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 걷는 사람이 상대방의 속도를 인정하고 자신의 삶 속도를 늦출 때만 그렇습니다. 자신의 속도를 부인하는 느림을 선택하고, 휙휙 지나가는 빠름 대신에 ‘천천히’를 선택하여 걸을 때만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자기부인 없이는 결코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포기하고 다름을 선택하고 함께 살 결심을 하지 않으면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연대는 자기부인에서 나옵니다. 자기부인이 없는 연대는 거짓이고, 자기 의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든지, 정부와 노사협상이든지 손잡고 빨리 가자고 말하는 시대인 것 같아서 느림을 선택하고 손을 잡는 자기부인의 시대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목사님,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같이 있을 때는 서로의 어루만짐을 잘 모르다가 함께 있지 않는 ‘부재’의 순간이 오면 그동안의 삶속에 가득했던 ‘일상의 거룩한 순간’들이 생각나서 그리움에 마구 젖습니다.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몇 달 전에 독일로 청빙을 받아서 떠난 후배가 그립습니다. 후배 목사와 함께 한 시간 속에는 나이를 초월하는 우정이 숨어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동토처럼 얼어붙었던 서로의 허물도 있었지만 그가 부재한 뒤에 겪는 그리움은 그걸 모두 녹여버렸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겨울을 맞아도 눈물로 받아주는 이”가 있으면 살아날 수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처럼 제게는 그 후배가 그런 존재였습니다.


사역자로서 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사역에 대한 무지보다도 겨울 같은 인생의 혹독함 속에서도 계절을 모르고 찾아오는 성적인 충동입니다. 제 속에 있던 불만족으로 가득한 제 욕망은 제 감정을 할퀴고 제 언어에 가시를 심습니다. 저의 건강하고 정당한 욕망이 어둠속을 헤매며 저를 괴롭힐 때 저는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눈길 줄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 능글능글 오욕이 불타는 눈길을 받아줄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속사람이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자기 속으로 구부러진 인간의 본능에 전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절망을 나누던 이가 제게서 떠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사님의 편지를 엮은 이 책이 바로 그 후배와 같은 ‘물건’입니다. “저는 어둠을 모르는 빛, 절망의 심연을 거치지 않은 희망, 대가를 치르지 않고 주어지는 은혜, 추함을 외면하는 아름다움, 불화의 쓰라림을 알지 못하는 조화, 흔들림조차 없는 확신, 일상을 떠난 영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든든함을 지향하고, 추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장 속된 것에서 거룩한 것을 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의 길은 흔들리며 걷는 길입니다”(303쪽). 이 문장에 제 눈에 확 꽂혔습니다. 저절로 아멘이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목사님, 고맙습니다. 이기적인 저를 보게 하시고 절망 속에서 신음하는 저에게 “하나님은 더럽고 추하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진정으로 거룩한 분입니다. 속된 것 따로, 거룩한 것 따로인 세상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304쪽)는 말로 저를 바른 길로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에게 절망하지만 절망하는 그 속에 오시고 거하시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밤마다 나의 추함에 통곡하지만 십자가를 볼 때마다 다시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의 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는 저를 보며 그분의 성품에서 소망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후배를 떠나보낸 여정은 참 외롭습니다. 그러나 이 삶에 이 책마저 없었다면 더욱 절망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사람이야 이별이 가능하지만 책은 언제나 손안에 넣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나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거룩한 하나님 같아 보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목사님의 책을 통해 경험합니다. 하여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알고 아픔의 고통을 다시 품고 살아갈 결심을 합니다.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의 길을 만들기에….  


김병년/다드림교회 목사, 《난 당신이 좋아》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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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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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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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파와 움씨

김기석 목사님께 2017.12.20 09:05

김기석 목사님께(11)


움파와 움씨


김기석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편지글을 모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이런 형식과 문체의 글은 처음 읽은 것 같습니다. 무겁지 않아서 굳이 노트를 할 필요는 없지만 곱씹어 읽으면서 제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와 아내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두 살 아래인 아내와 저는 종로구에 있는 오래된 장로교회 출신입니다. 물론 지금도 경기도 일산에 살면서 집 앞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요. 어릴 때부터 ‘그냥’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마치 버릇처럼 말이죠. 그러다보니 저는 어느덧 안수집사가 되었고 아내는 권사로 피택되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주기율표, 하나님이 주신 명함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FM 93.1MHz에 채널이 맞추어져 있는 라디오를 켭니다. 이 채널은 2002년 귀국한 후 아마 한 번도 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식구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어떤 조예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듣는다라기 보다는 그저 틀어놓고 있는 것이죠. 광고 없이 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방해하지 않는 배경음악으로는 딱이거든요.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책을 읽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겐 신앙도 그러합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제 배경에 깔려 있던 것이죠. 특별히 뜨거운 경험을 한 적도 없고 모태신앙에 대한 저항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신앙은 불편하지 않은 배경음악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교회 고등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밤을 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래 2학년이면 대개 임원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각자 자기의 신앙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가 주제였지요. 다를 재밌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온갖 꾀를 내어서 교회로 끌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온 친구도 있고 평소에 찍어놓은 여학생이 다니는 교회라서 나온 친구도 있고 교회 도서관을 공짜로 사용하고 싶은 친구와 교회 다니는 대학생 형들에게 수학문제 푸는 것을 물어보려고 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집안의 전통으로 신앙을 갖게 된 저 같은 친구들은 딱히 할 말이 없었죠.


저희 집이었기 때문에 제가 제일 나중에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홈그라운드 찬스라고나 할까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제 신앙의 근거는 뭘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것이 바로 ‘주기율표’였습니다. 2학년에 들어오면서 배운 주기율표가 제게는 큰 충격이었거든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원소들이 갖고 있는 규칙성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주기율표가 제게는 하나님이 주신 명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는 찬송가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원소,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수소와 헬륨 초신성 폭발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라고 바꿔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찬송가가 지금은 40번 찬송이지만 그때는 79번 찬송이었어요. 79번 원소가 ‘금’이라서 금과 같은 찬송이라고 기억했거든요. (원소기호 40번은 지르코늄이라는 낯선 원소이지요.)



움파의 의미와 우화

그저 배경이었던 신앙이 인생의 커다란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 것은 교회 대학부 생활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연동교회 대학부는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장악되어 있었죠. 이들은 우리 교회 고등부 출신이 아니라 주로 지방출신의 학생들이었습니다. 자주 경찰서와 감옥에 들락거렸고 교회에서 이런저런 말썽을 많이 피워서 교회 어른들의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다행히 고등부의 우리 동기들은 공부를 유난히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교회 어르신들은 이제야 우리 교회 대학부에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되었다고 큰 기대를 했습니다.


대학부에 들어간 첫 날, 선배들은 우리를 데리고 술집에 갔습니다.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도 하기 전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날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배가 ‘고갈비’를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그게 알고 보니 ‘고등어 갈비’였던 것입니다. 모임은 유쾌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쉽게 평생 ‘죄’라고 여겼던 술 문화에 젖었습니다. 도대체 이걸 왜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죄’라고 단정하고 살았는지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특이한 음식이었을 뿐이죠. 지금도 술을 즐깁니다.


그날 난생 처음 들은 단어는 고갈비 말고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움파’입니다. ‘베어 낸 줄기에서 다시 줄기가 나온 파’를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움파가 우리교회 대학부의 별명이었습니다. 움파 1기, 움파 2기, 이런 식으로 기수를 표현했습니다. 당시는 학번을 많이 쓸 때였지만 어떤 친구는 곧장 대학에 가고 또 어떤 친구는 재수, 삼수 끝에 대학에 가고 또 대학에 끝내 가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 대학부는 이런 식으로 기수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움파 14기더군요.


저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요즘이야 파를 좋아하지만 그때는 어려서인지 라면에 파 한 조각만 들어가도 먹지 않았을 정도로 아주 싫어하는 식재료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을 그까짓 파로 표현하다니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필 그때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우화가 나옵니다.


어떤 못된 아줌마가 죽어서 지옥의 불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이때 아줌마의 수호천사가 나타나서 “살면서 단 한 개라도 선행을 베푼 게 있으면 말해봐라, 그러면 내가 하느님에게 잘 말씀드려 볼게.”라고 말했습니다. 아줌마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거지 여인에게 파 한 뿌리를 뽑아서 준 게 생각이 나서 이것을 자랑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하느님은 파 한 뿌리를 아줌마에게 내려주고서는 그것을 잡고 불바다에서 빠져 나오라고 했습니다. 아줌마는 분노했죠. 파를 잡고서 어떻게 지옥에서 빠져나오겠습니까. 파에다가 분노의 발길질을 했습니다. 파는 ‘똑’하고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아줌마는 영원히 불바다에서 나오지 못했지요.


선배들이 움파의 의미를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이 우화를 떠올렸습니다. 아줌마가 지옥에서라도 못된 성격을 꾹 누르고 파를 잡고서 지옥을 빠져 나오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빠져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평생 동안 겨우 파뿌리 하나 준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하나님이 이 여인에게 지옥을 빠져나올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파뿌리에 매달렸다고 해도 아마 지옥의 불바다를 벗어나지 못했겠죠.


교회 어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대학부 선배들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선배들이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 도스또엡스끼 운운하면서 초를 치는 쪼그마한 꼬마의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들어주셨죠. 막걸리도 여러 잔 따라주시면서요. 그러다가 한 여자 선배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움파는 그런 존재야. 겨울 내내 양념으로 쓰기 위해 조금씩 잘라먹는 하찮은 존재지. 하지만 우리는 겨울을 날 거야,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움파라고 부르지. 네가 말한 것처럼 파 한 뿌리는 하늘로 올라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끈일지도 몰라. 우리 각각의 한사람은 그렇게 약하지. 하지만 그게 한 뿌리가 아니라 파 한 단이면 어떨까? 더 강할 거야. 약한 파뿌리도 여러 개가 뭉치면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얘기였죠. 듣고 보니 내가 움파 14기라는 게 은근히 근사해 보였습니다. 움파가 자그마치 14년이나 계속되고 있구나, 앞의 선배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씨를 덧뿌리겠습니다


선배들과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공부도 했지만 철학과 경제 그리고 사회에 관한 것들이 더 많이 공부했죠.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읽으면서 신앙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이 책의 골자는 “신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신은 인간의 투사물이다. 자비롭고 공정하고 현명하지 않은 신은 신이 아니다”라는 것이었거든요. 신이 인간의 투사물인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자비롭고 공정하고 현명한 신의 모습을 세상에 투사해야 한다는 점은 금방 결의가 되었지요.


선배들은 일찌감치 교회를 떠났습니다. 1984년 대학에서 경찰이 철수하고 1987년부터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되자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게 한가롭게 여겨졌기 때문이겠죠. 그러자 교회 어른들은 아주 좋아하셨어요. ‘신앙 없던 그들이 떠난 것’을 아주 후련하게 여기셨죠. 그런데요. 그것은 어른들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요즘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말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던 분들이에요. 상당히 많은 선배들이 나중에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지요. 오히려 자기들이 착한 신앙인으로 잘 키웠다고 생각했던 우리 고등부 출신 청년들 가운데는 신학을 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나중엔 우리가 그들의 골칫거리가 되었지요. 원래 움파가 그런 것이잖아요. 조금씩 조금씩 잘라 먹는 겁니다. 그러면서 겨울을 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선배들이 남겨놓고 떠난 야학을 맡아서 운영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적극적인 후원과 저희의 주일학교 교사를 하셨던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전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교회 어르신들은 때로는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훼방을 놓기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무슨 커다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움파 같은 삶을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걱정이었죠. 움파의 수가 점점 줄었거든요. 움파는 여럿이 같이 있어야만 힘이 있더라고요,


결국 우리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처럼 외국으로 공부하기 위해 떠난 사람도 있고 아예 교회와 담쌓은 친구도 있지요. 이러나저러나 하루하루 살기가 팍팍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IMF 사태가 있었잖아요. 생각해 보면 IMF는 우리나라를 완전히 바꿔놓았죠. 주로 나쁜 방향으로 말입니다. 모든 것은 경쟁과 효율 그리고 이윤으로 판단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전쟁 때를 포함해서 평생 교회를 지키시던 사찰 집사님은 어느 날 용역직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같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젠 아무 때나 나가라 하면 나가야 하는 사람이 된 거죠. 존경을 받던 소사 집사님은 한낱 피고용자가 되었습니다. 여전도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은퇴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어느 날 사표를 강요받고 떠나시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난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더 이상 움파가 없었거든요. 교회 청년들은 자신들은 움파가 아니라고, 자신들은 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교회는 거대한 주식회사가 되었지요.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신앙은 다시 배경음악이 되었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교회에 다닌다고 대답하기는 하지만 내가 먼저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 나서서 전도하는 일은 물론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전혀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구분되지 않으니까요. 그저 또 하나의 친목단체이자 계급사회일 뿐입니다.


목사님의 책에서 「움씨를 뿌리는 마음」이란 제목을 봤습니다. 움씨라는 말에서 움파를 기억해냈습니다. 얼른 사전을 찾아보았지요. ‘뿌린 씨가 잘 나지 않을 때 다시 뿌리는 씨’라는 뜻이더군요. 목사님은 이렇게 쓰셨습니다.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을 때 농부들은 밭에 씨를 덧뿌립니다. 그것을 움씨라고 하는데, 사는 게 이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의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다시 한 번 씨를 뿌리는 용기를 내야 해요. … 움씨를 뿌리는 농부는 자기 속에 있는 정말을 애써 다독이며 희망을 뿌리는 것입니다. 덧거친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덥석 일에 뛰어들었다가는 상처 받고 물러나기 십상입니다(97-98쪽).


김기석 목사님, 목사님은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통해 ‘희망은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아직도 희망이 남아 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일은 거두지 말아야겠지요. 예전에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았지만 다시 씨를 덧뿌리겠습니다. 움씨를 혼자 뿌릴 용기는 없습니다. 농부들을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예전 움파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갈비 안주에 막걸리를 나누고 싶은 날입니다. 목사님께 평화로운 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달력과 권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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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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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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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10)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 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입니다


목사님의 편지 잘 읽었습니다.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따르고 쳐다보는 양으로서는 참 가슴 뭉클한 편지였습니다. 따를 지팡이나 바라볼 막대기 찾기가 이리도 쉽지 않은 시대에 드문 반가움이요, 감동이었지요. 책을 받아 들고 무릇, 목사의 편지란 뻔한 스토리가 펼쳐질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내 지루한 상상을 떠올렸지요. 하지만 문장마다 진정성이요, 소박하면서도 해박한 사유의 깊이와 연민이 일렁이는 글을 대하며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사람을 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음이요, 시대를 바라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음이요,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이따금 제게 비친 목사님의 마음은 거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 직설적인 것보다는 은유적인 것, 극단적인 것보다는 유연한 것에 기운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그토록 선한 천성과 함께, 어떤 후천성이 보태진 대목도 찾아졌습니다. 예컨대 양심을 잃고 폭력에 중독된 작금의 행태에 관하여는, 불의를 담지 못하는 성품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분노 같은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 용산참사 현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평화 운동가들과 함께 추모와 평화의 결의를 다졌던 시간 기억나시지요? 그곳에 검소하고 간편한 배낭을 등에 지고 점퍼차림으로 걸어오시는 목사님을 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서지도 않았고 생색을 내거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어떤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참여하고 마음을 보태는 한 인간으로서의 겸손한 태도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 모습이 김기석이라는 목회자 특유의 이미지로 제게는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참혹한 세상의 현장 앞에서, 사악한 권력이 저지른 만행 앞에서 한 종교인으로, 한 목회자로, 한 인간으로 바람처럼 걸어 들어온 것이지요. 치밀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요, 거사를 도모할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분의 길을 따라 그냥 걷고 있는 이 지구의 선한 신앙인으로 걸어 들어온 것입니다.


‘도’와 ‘레’사이의 수많은 음을 무시하는 시대


어제 저녁엔 단원고등학교를 다녀왔습니다. ‘기억교실’을 이전(존치)하는 문제를 놓고 유가족과 경기도교육청 안산교육청 그리고 중재위원회의 서른다섯 번에 걸친 회의 끝에도 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그 전야제를 했지요. 이 행사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30년 세월 비교적 남다른 경력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저로서도 이 난감한 시간을 지나가기가 퍽 어려웠습니다. 민망하고 무기력하며 분노와 슬픔에 젖은 무대였지요.


개인적 고백을 좀 하자면, 2005년부터 일해 왔던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라는 사단법인의 사태가 꽤 심각하고 추악하게 이르러, 10여년 세월 이 땅에 평화박물관을 지으려는 꿈으로 모금공연을 해왔던 저로서는 여간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단법인社團法’이 ‘사단법인私團法人’으로 변해버린 어이없는 사건이지요. 소위 ‘진보’라는 얼굴의 민낯을 보게 되는 참담한 일입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노래동네’에는 공연이라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곳은 다르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인간’과 ‘역사’를 안고 노래하는 노래 진영에는 웃고 노래하기가 조심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마치 유난스러운 올여름처럼 정지된 시간입니다.


어젠 평생을 한반도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해오신 고 박형규 목사님의 장례식장에서 조가弔歌를 불렀습니다. 북쪽의 땅 개성이 열렸던 날, 함께 기쁨으로 다녀왔던 정이 아니어도, 이 땅에 기독교의 후배들에게 삶 그 자체로 보여주셨던 청년 같은 푸른 생애 앞에 노래밖에 드릴 것이 없는 것을 송구하게 여기며 다녀왔던 길입니다. 94세의 노스승은 돌아가시기 전 며칠 동안을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으시고 그 고결한 삶을 최후의 시간까지 행하셨다고 합니다. 사악한 독재정권들은 ‘긴급조치9호’, ‘민청학련사건’ 등의 사건을 조작하여 수차례 투옥과 온갖 고문으로 옥죄었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으셨던 자유인이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이 사건은 4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법정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런 이 땅에서 노래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한 문장이 또 들어옵니다. ‘해 저문 빛이라도 있으니 고맙다’라는 글입니다. 언젠가 노래하는 선배가 집에 놀러와 다짜고짜 ‘미안하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선배는 몇 년 전, 저의 25년 기념공연에 격려의 글을 보냈지요. “그는 그 오랫동안 이 세상에 들어가 그늘을 걷어내는 노래를 했다”고 써주었습니다. 노래동지들이나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가끔씩 던지는 이런 위로의 말이 사실 제겐 ‘해 저문 빛이라도’ 같은 것입니다. 글쎄요, ‘버티고’ 있다고 말씀 드려도 될는지요?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라는 물음에는 지금 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의 사역은 ‘빗금철폐(유대인/이방인, 남자/여자, 거룩/속됨, 의인/조인, 부자/빈자. 선/악, 미/추 등)’라는 목사님의 표현은 단호하고 깔끔한 비유입니다. 그러면서 흑과 백을 가르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회색빛사회에서 살겠다고 속내를 내비치셨지요? 관습이 만들어놓은 경계선을 가로지르며 사신 예수를 우리는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문득 떠오른 시구詩句가 있습니다. 신동호 시인이 17년 만에 낸 시집에 담긴 글이지요. “농현弄絃은 국악엔 있고 삶엔 없다.” ‘도’와 ‘레’사이의 수많은 음을 무시하는 시대와 관행과 인간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경고입니다. 빗금을 철폐해야 마땅한 종교가 빗금을 재생산하고 또 생산해대는 이 시대를 울어봅니다. 이 눈물이 평화를 데리고 오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의 귀한 편지를 어느 날 또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래서 꽉 찬 책꽂이이지만 보이도록 넣어두겠습니다.


오늘 아침 본 영화에서 외국의 한 어린이가 들려준 독백을 쓰며 인사를 드립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참 멀어요, 두 시간 정도 걸리지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를 갑니다. 중앙로로 가거나 골목길로 가거나 목적지는 같아요. 그러나 그게 크게 다른 점이죠.”


목사님, 설마 그게 희망은 아니겠지요?


홍순관/ 가수, 평화운동가, 《나는 내 숨을 쉰다》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김삼웅/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http://fzari.tistory.com/1036

*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 이정모/ 움파와 움씨 http://fzari.tistory.com/1043

* 김병년/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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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9)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1994년 이후 가장 덮다는 이 여름에 건강하신지요? 최근에 출간된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었습니다. 잠시 조용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머리말에 해당하는 ‘초대의 글’에서 지금까지 즐겨 읽어 온 편지 형식의 작품들을 소개해주셨더군요. 전설로 남은 12세기 중세 수도사와 수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에서 시작하여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본회퍼의《옥중서간》, 그람시의《옥중수고》, 문익환 목사의《꿈이 오는 새벽녘》, 서준식의 《옥중수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셨지요. 재작년에 타계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추모 음악회에서 그의 절친 브루노 간츠Bruno Ganz가 ‘빵과 포도주’를 낭송했기 때문에 목사님이 소개하는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히페리온》은 더 반가웠습니다.


목사님의 이번 책은 제게 특별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지’라는 성서 본문의 의미 파악이나 실용적 효과 그 이상을 이야기하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편지’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혼신의 힘으로 일으켜 세웠던 교회 공동체가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해 흔들릴 때마다 그는 편지를 써서 벗들과 소통하려 했다. 그렇기에 그의 서신은 곡진하고, 열정적이고, 애정에 가득 차 있다. 그의 편지를 회람하면서 초대 교회 공동체는 구부러진 길에서 돌이킬 수 있었다”(6쪽)는 정도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편지란 우리 “영혼이 발하는 발신음”(5쪽)이어서 “누군가의 가슴에 가 닿게 마련”(6쪽)이고, 따라서 ‘오늘의 나라고 하는 편지는 또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거나 불쾌한 소식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요. 목사님은 또한 수십 년 전 부친께서 “호롱불 밑에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신” 편지가 곧 아버지의 존재이자 “아버지의 품”이었다며 그 편지를 “고향의 냄새”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4쪽). 프란츠 카프카를 비롯한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평생을 아버지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사실을 알기에 부친에 대한 목사님의 고백에 놀랐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아버지의 편지가 한 통도 남아 있지 않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그래서 더 뜻밖이었습니다. 주옥같은 편지를 지금 갖고 있지 못한 이유가 혹시 아버지의 편지가 곧 ‘고향의 냄새’이자 아버지의 존재 자체였다는 의식이 어려서는 흐릿했기 때문이었는지요.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이해는 목사님께서 읽은 성서와 여러 작가들이 쓴 편지가 새롭게 형성한 것인지요.


어떤 책인들 안 그렇겠습니까만,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으면서 저는 몸 속 깊게 가라앉아 잘 보이지 않았던 욕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평범함과 진부함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이고(306쪽), “제거할 수 없는 아픔은 품고 가는 수밖에” 없고(316쪽), ‘순례자는 길을 잃을 권리’가 있고(221쪽),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잠시나마 고독 속에 머물러야” 하며(373쪽), “흑과 백으로 갈리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회색빛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37쪽)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그동안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신앙과 도덕을 요구하는 무섭고 매정한 당위의 말들에 꽤나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복음은 이런 공감과 위로의 말들이라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목사님은 가족들이 모일 때 서로 어린 시절의 흉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면서 “스스럼없이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야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일종의 의례”(201쪽)라고 하셨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어른들 중 누구도 ‘흉보기’의 긍정적 측면을 이렇게 포근하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어린 시절을 흉내 내며 깔깔거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청파교회 교인들이 부러웠습니다.



48가지 소리가 들려주는 우주의 장엄한 교향곡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은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였습니다. 이 글은 제가 읽은 목사님의 글 중에 최고였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라는 전제를 서둘러 붙여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목사님께서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글을 과연 쓰실 수 있을까요? 저는 없을 것이라는 데 걸겠습니다. 목사님께 그럴 능력이 없으시다는 뜻이 아니라 소리에 대해 이 정도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할까 싶기 때문입니다.


200자 원고지 20여 매 분량의 길지 않은 편지에서 목사님은 48가지의 소리를 디테일하게 묘사하셨습니다. 시계·자동차·라디오·경적‧옥외 스피커‧층간 소음이나, 정치가의 호언장담‧종교인의 ‘큰 소리’‧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 등을 뺀 나머지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다음은 긴 인용의 충동에 시달릴 만큼 생생한 목사님의 소리입니다.


아궁이에서 솔가리가 탈 때 나는 소리, ‘자작자작’, 밀짚을 태울 때 나는 소리, ‘타닥타닥’, 군불에 묻어두었던 밤 껍질이 터지는 소리, ‘탁탁’, 댓잎을 스쳐온 바람소리, ‘사르륵사르륵’, 솔숲을 거쳐 온 바람소리, ‘솨아솨아’, 비가 그친 후 혹은 볕이 나 지붕 위에 있던 눈이 녹아 내려 섬돌 위에 떨어지는 소리, ‘똑똑똑’ … 닭이 홰치는 소리, 솔개 그림자가 마당귀를 스치면 ‘구구구구’ 소리를 내며 새끼들을 불러 품에 안던 암탉 소리,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린 동녘 하늘을 향해 ‘꼬끼오’ 하고 울어 새벽을 깨우던 수탉의 울음소리, 한낮의 무료함을 깨뜨리려는 듯 혼자 ‘컹컹’ 짖는 누렁이 소리(69-72쪽).


목사님은 그런 연후에 21세기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힌 산업화 이전의 아날로그 세계로 독자들을 데려갑니다. “나무 방망이와 다듬잇돌과 피륙이 이루어내는 리드미컬한” 여인들의 다듬이질 소리, “이불 호청이나 큰 빨래를 둘이 마주잡고 ‘쫙쫙’ 펴는 소리, 다림질하기 위해 입에 머금은 물을 ‘푸푸’ 옷에 뿌리는 소리, 밤이면 벽간에서 울려나던 귀뚜라미 소리에 시선을 돌리게 만드셨습니다.


48가지를 섬세하게 묘사해 내신 것도 대단하지만 저를 더 놀라게 한 건 언어도, 말씀도,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시편 19:3) 세상 끝까지 퍼진 하늘의 소리에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방문했던 베를린 레기나 마르티눔 성당을 회고하실 때는 “자연 조명과 인공조명이 절묘하게 뒤섞인 공간”의 성스러움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감동을 느끼셨다고 했지요(79쪽). 성서에서 들려오는 하갈과 이스마엘의 절규를 듣기 위해 몸을 낮추셨을 뿐 아니라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이 복잡한 도시에서 “폭력적으로 추방당한 작은 소리들에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이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75쪽). 세계에 있는 모든 ‘초월자의 암호’(카를 야스퍼스)를 읽어내고 그것을 해독해 낼 능력을 갖추게 될 때 우리네 심성이 회복된다고도 하셨습니다(53쪽). 작은 것들을 보려면 자꾸 멈춰 서야한다고 하셨지요. “멈추어 서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의 시작”이고 “생명 사랑이란 언제나 작은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과라고 말입니다(281쪽). 세상의 어느 특정한 소리에 편향되지도, 제멋대로 세상의 장엄한 소리들 사이에 위계를 정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


이제는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가 왜 명문인지에 대해 마지막 이유를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사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나 까마득해진 옛날 사람들의 모습은 시골의 촌로들이 목사님보다 더 잘 알지 모릅니다. 차별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비정규직이나 성소수자들을 위해 투쟁하는 시민운동가들이 더 세밀하게 들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미술이나 음악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이 들려주는 48가지 소리에 흥분하는 것은 우주의 장엄한 교향곡이 다름 아닌 목사, 그것도 서울의 중형교회 담임목사를 통해 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나 시민운동가나 생태주의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된 목사가 하찮게 여겨지던 소리들을 본래의 자리로 복권시켰기에 탄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클래식 콘서트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생각이 났습니다. 말러는 제자 브루노 발터와 숲속을 거닐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장터 소리, 군악대 소리를 듣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소리 들리나? 저것이 바로 폴리포니(대위법적 음악)이며, 내가 폴리포니를 이해하는 방식일세! … 예술가의 일이란 이러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로 통일하는 것일세.


음악 학자들 가운데는 말러의 교향곡 3번을 가리켜 “천지창조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특히 3번 교향곡이란 “모든 기술적인 수단을 강구하여 세계를 이루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때문에 말러는 3번 교향곡을 6악장으로 구성하면서 목장의 꽃들, 숲속의 동물들, 인간들, 천사들, 그리고 사랑이 말러에게 던질 말들을 음악화 했던 것입니다.


말러가 의미하는 자연은 좀 독특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구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을 말할 때 “오로지 꽃이나 작은 새들이나 수풀의 향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왜 자연에 디오니소스나 위대한 목신 판(Pan, 목신)과 연관 짖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교향곡 3번에서 말러는 “끔찍하고 위대하고 한편으로는 사랑스러운 그 모든 속내를 숨기고 있”는 자연,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이 오묘한 자연의 이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디서든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자연의 소리”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스또엡스끼를 멘토 쯤으로 받들던 말러는 “이 땅위에 피조물이 아직 하나라도 고통 받고 있다면 인간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란 근원적 질문에 답하려 했던 음악가였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숲 걷기나 등산 같은 강도 높은 운동을 좋아했지만 생의 말년에 심장에 문제가 생기자 의사는 격한 운동을 금지시켰습니다. 평생 “책상에 앉은 채로만 작곡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짧고 가벼운 산책만 하라는 의사의 요구에 말러는 낙담했습니다. 운동을 할 수 없어 자신이 원하는 작곡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인생 최대의 불행”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목사님과 말러 사이에는 물론 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 자연의 오묘한 이면에까지 들여다보며 모든 피조물의 고통에 반응하려 했던 말러와 목사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작지 않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해야 할 일 혹은 성취해야 할 목표를 인간관계의 중심에 두는 이들”(55쪽)에게 느낀 극심한 피로감만 불평할 게 아니라 “세상의 미세한 것들 속에 깃들어 있는 하늘에 주목”(53쪽)하겠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 세계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마련된 성소(161쪽)에 더 자주 몸을 맡기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양화진’에서는 매미들의 우렁찬 합창이 계속되었습니다. 매미의 합창 소리는 너무 커서 소음처럼 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양화진의 매미들은 왜 솔로가 아니라 합창을 좋아하는지, 합창을 하되 왜 포르티시모로 울어대는지를 관찰해 보겠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이나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까진 못 본다 하더라도(116쪽), “사소한 것들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님”을 만나거나(304쪽), 그것도 어렵다면 목적 없는 무위의 놀이를 통해 욕망의 포박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질 줄 누가 알겠습니까(102쪽).


언제 한 번 양화진으로 놀러 오세요.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많습니다. 목사님의 평안을 빕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 손성현/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http://fzari.com/1030

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 김삼웅/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http://fzari.tistory.com/1036

* 홍순관/ 다만 노을이 되어 내일 아침의 빛나는 태양을 도울 뿐입니다 http://fzari.com/1042

* 이정모/ 움파와 움씨 http://fzari.tistory.com/1043

* 김병년/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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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8)


먹물과 속물 동거시대의 알곡처럼


목사님, 40년 또는 반세기만이라는 불볕더위 속에, 10년은 족히 되는 선풍기마저 고장 난 방에서 목사님의 책,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를 읽었습니다. 참, 책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읽는 맛이 다릅니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8ㆍ15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헬 조선’ 등 세간의 유행어를 매몰차게 비판하던 뒤끝이라 목사님이 펴내신 책의 이 제목부터가 맘에 끌렸습니다. 모두 아는 바대로 ‘헬 조선’이란 유행어는 박근혜 정부 시기에 나온 ‘민중의 소리’인데, 여전히 남 탓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헬 조선’은 자살율 세계1위, 청년실업, 빈부격차, 안보불안, 출산율 세계최저, 부패지수 세계최고 등의 현실에서 생긴 말입니다.

하긴 100g에 수백만 원씩 하는 송로버섯, 바닷가재, 훈제연어, 칠갑상어알 샐러드, 상어지느러미찜, 한우갈비 등으로 오찬을 즐기는 그들에게 ‘헬 조선’은 이해하기 어렵고, 불온하기 그지없는 말일 것입니다. 그들만의 ‘지상낙원’을 모르는 채 ‘더위나 먹으면서’ 사는 99%의 ‘개·돼지’들의 나라가 왕조국가인지 공화국인지 헷갈리게 합니다.



원나라 시대의 학자 김이상金履祥이 “글 읽는 사람을 만나면 그 다섯 가지 맛이 섞여 있어서 재미가 진진하다”고 했거니와 김기석 목사님의 책이 꼭 그렇습니다. 52가지 소제를 빼어난 문장력으로 풀고 동서고금 명저에서 솎아낸 다양한 인용문은 청와대 오찬에 나온 값비싼 메뉴와는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문은 인”이라 하여 글은 곧 사람입니다. 글과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글 같은 글, 책다운 책을 만나기란 여간 쉽지 않은 터에, 모처럼 ‘인과 문’이 일치한 글을 만났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그의 시를 읽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면 옳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문은 곧 인’이기 때문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이니까 이런 책을 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이비 문인ㆍ학자ㆍ언론인ㆍ목사ㆍ주교ㆍ승려들이 판치는 시대에 김 목사님은 참 문인이고 신실한 목사라고 생각됩니다. 옛날식으로 하면 참 선비인 거지요. 조선초기의 혁명적 지식인이었던 정도전은 ‘참 선비상’을 다음과 같이 그렸습니다.


첫째, 사는 학지제천지學之際天地하여 음양ㆍ천문ㆍ지리ㆍ생물ㆍ복서卜筮 등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어야 한다.

둘째, 사는 명윤리明倫理하여 오륜을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인간이어야 한다.

셋째, 사는 달어고금達於古今하는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넷째, 사는 지성지본호천명知性之本乎天命하는 성리학자여야 한다.

다섯째, 사는 관인이면서 교육자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시문을 통해 진리를 나누는 벗이어야 한다.

일곱째, 골육지친과 사귀는 벗이어야 한다.

여덟째, 책을 붙잡고 옛것을 뒤적이며 새로운 도덕을 말하는 벗이어야 한다.

아홉째, 생사를 함께하는 벗이어야 한다.

열째, 심장을 가르고 간을 꺼내며 믿게 할 만한 친구여야 한다.


목사님, 한국 사회가 ‘헬 조선’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언론인과 지식인(종교인 포함) 등 이른바 선비들이 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장차관, 국회의원, 검사, 판사 등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머슴들입니다. 그런데 머슴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설치는 적반하장은 일차적으로는 주인인 국민의 책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의와 진리를 존재의 사명으로 하는 지식인들이 책무를 다하지 않거나 오히려 권력과 유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슴들이 상전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던 겁니다.


고대로 지식인 사회는 먹물과 속물이 동거하기 마련입니다. 대학 사회ㆍ정계ㆍ언론계ㆍ법조계ㆍ종교계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뒤섞여 있습니다. 속물과 쭉정이가 더 설치고 종교계에서는 그 속물, 쭉정이가 더 선지자 행세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대형교회와 사찰을 짓고 권력자를 우상으로 섬기면서 신도들의 지갑을 털지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설교와 설법으로 기복신앙을 부추겨 종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묶어둡니다.


목사님은 어찌 보면 평범한 기독교 목사이고 문학평론가입니다. 그런데 혼탁한 시대에는 ‘평범’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배세력, 주류 패거리에 섞이지 않으면 ‘찬밥’ 신세가 되거나 ‘이단’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평범함 속에서 진실을 말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고, ‘다섯 가지 맛’이 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과외의 재미와 지식을 준 ‘인용문’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 자주자주 ‘쉼터’를 만나게 됩니다. 그 쉼터는 때론 사막의 오아시스일 수도 있고, 풍성한 과수원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목사님이 책을 통해 보여준 ‘인용문’ 말입니다. 다양한 책에서 발췌하여 그때그때 제시한 인용문은 과외의 재미와 지식, 신선한 석간수, 엄동의 딸기 맛이 납니다. 마음에 와 닿는 인용문 및 편을 골라보았습니다.


십자군은 자기네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한테 손을 내밀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이슬람한테서 배우려는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의 공포와 원한을 다스릴 줄도 몰랐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죽이고 망가뜨리고 태우고 모독하고 부수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들의 도덕성을 무너뜨렸다. 아우슈비츠는 그런 의도된 증오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서양인이 계속해서 이슬람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 볼 경우 오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카렌암스트롱, 《마음의 진보》, 435-436쪽).


인간이 어쩌면 저렇게 눈멀 수 있단 말인가? 형제의 흠을 찾아내는 데는 아르고스의 백 개의 눈을 가진 자가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저렇듯 완전히 눈멀 수 있단 말이냐? 저자들은 구름 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너그러우라고 호통을 치면서 자신들은 불꽃을 휘두르는 몰록처럼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교하면서, 팔순의 눈먼 노인은 문밖으로 내모는 족속들이다. 탐욕 부리지 말라고 아우성치면서, 금붙이에 눈이 멀어 페루인들을 말살시키고 이교도들에게 짐승처럼 수레를 몰게 한다(프리드리히 폰 실러, 《도적패》, 119쪽).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시편 19:1-4).


어찌해서 당신들은 여기 수도원에 편히 앉아 가난한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빚어진 빵을 먹으면서. 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백성들과는 동떨어져서. 저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기는 커녕 고지식한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들 보고 이리떼로부터 양들을 지키는 어진 목자들이 되라 하셨는데. 어떻게 당신들은 양들을 잡아먹는 이리 떼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당신들은 가난 속에서 평생도록 헌신적인 삶을 살기로 굳게 맹세하고 또 서약하고서도 당신들이 한 말은 모두 잊어버린 채 안락한 생활을 할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종교가 뜻하는 모든 것을 다 저버릴 수 있습니까?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어떻게 수도를 한다는 것입니까? 당신들은 겉으로는 당신들의 육신을 죽이는 체하나, 속으로는 당신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세상의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질색인 양하면서도 속마음은 탐욕으로 부풀어 있습니다. 스스로백성의 지도자요. 스승이라 자처하나.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들은 강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칼랄 지브린, 《반항하는 정신》, 22-24쪽).


시의적ㆍ감성적인 문장


김 목사님은 또한 대단한 문장가입니다. “보기 좋은 떡은 먹기도 좋다”는 격언대로 아무리 천하의 경륜을 담았대도 글이 난삽하면 읽히지 않지요. 좋은 글이란 읽기 쉬우면서도 논리적이고 시의적이면서 감성적이어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쓴 본문 중에서 몇 대목을 골라봤습니다. 한 번 더 읽고 싶어서입니다.


세상이 온통 부정한 돈 냄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치권에 유입되는 부정한 자금은 가진 자들만의 리그를 조성하는데 활용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돈은 문화계, 경제계, 언론계, 종교계 할 것 없이 모두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는 말씀을 지금처럼 처절하게 실감하는 때가 또 있을까요? 저는 늘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우정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서로 함께’의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선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돈의 전능을 해체하라」, 130쪽).


지난 시절에는 우리 의식 속에 동두렷이 떠오르는 별들이 있었습니다. 시절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분들이 계시기에 절망 속에 유폐되지 않을 수 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마른 목을 축이는 새들처럼 그분들의 말씀을 경청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권위에 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정신이 사라졌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지만, 들으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중력에 이끌릴 뿐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 마음이 망실되었기 때문일 겁니다(바라보아야 할 별 하나」, 143쪽).


손이 아름답던 한 사람을 압니다. 예수입니다. 그는 나병에 걸려 사랑하는 이들과의 접촉의 기쁨을 포기한 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열병에 시달리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기도 하셨습니다. 바다 물결 속에 잠겨들던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끌어올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깨어났습니다(마주 잡을 손 하나」, 158쪽).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인간을 ‘서로 함께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지낸다는 것이 늘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함께 지내다 보면 연애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상대방의 낯선 모습에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낯섦을 품어 안을만한 여백이 없을 때 불처럼 타올랐던 사랑은 차가운 재만 남긴 채 꺼져 버리기도 합니다. 사랑의 위기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그러한 낯선 모습이야말로 두 사람의 사랑을 크고 깊게 만들기 위한 기회라는 사실을 말입니다(둘이서 함께 걷는 길」, 176쪽).


누군가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돌이킬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큰 사람입니다. 아무리 맞아도 돌이킬 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으니 말입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이 가끔은 “장군죽비가 되어 어깨를 후려치는 것 같았고. 때로는 싸리비로 마당을 정갈하게 쓸어내는 것 같기도 했고. 때로는 양철북 소리처럼 쟁쟁하게 들려왔다”고 하셨지요? 세월이 흘러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얼굴을 붉히실 때, 오히려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저의 말과 삶의 괴리를 누구보다 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씀을 따라 살아보려는 애는 쓰지만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배는 그만 먹으라고 하는 데도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몸과 마음에 밴 습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삽니다. 그렇다고 하여 지레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인생은 ‘오늘’의 점철」, 345쪽).


일상적인 세계, 상식의 세계. 예측 가능한 세계가 무너질 때 삶은 혼돈으로 변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런 무난한 세계에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 일탈의 욕망은 그렇게 나타납니다. 이런 일탈의 욕망이 없다면 인간 세계는 지루함 때문에 지옥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타자를 물화시키거나 그의 존엄을 훼손하기 시작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종교는 그런 과도한 욕망을 경계하는 나팔소리여야 합니다. 종교가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세상 도처에서 괴물들이 나타납니다(인간보다 이상한 존재는 없다」, 215쪽).


의를 살리는 루터의 길을


목사님, 내년 2017년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루터가 만크펠트에 있는 부모를 방문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나게 됐는데, 그때 번개가 그의 옆에 있는 숲을 때렸다고 하지요. 그는 죽음의 공포에서 자신도 모르게 광부들의 수호성인 안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수도사가 되기를 서원했습니다.


루터는 이와 더불어 어느 날 신약성서 로마서 1장 10절의 “하나님의 의는 복음 속에 나타나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바울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고 ‘의의 길’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위대한 출발이었지요.


김기석 목사님, 종교개혁의 주체이던 기독교(개신교)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시대에, 김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한국기독교 개혁의 선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목사님의 편지 글인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가 루터의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이를 명백히 할 목적”으로 쓴 ‘95개 조항’과 같이 ‘의에 목마른’ 시대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건필 하십시오.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김남주 평전》 저자


* 곽건용/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요 http://fzari.com/1027

* 김근수/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http://fzari.com/1028

* 법인/ 이상동몽(異床同夢), 대동소이(大同小異)의 길을 가는 수도자 http://fzari.tistory.com/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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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숙/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http://fzari.com/1031

* 이명행/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http://fzari.com/1032

* 민영진/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http://fzari.com/1033

* 지강유철/ 목사님은 소리의 신학자이자 소리의 철학자이십니다 http://fzari.com/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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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년/ 아픔에 부딪히는 능력이 희망을 만드는 길임을 http://fzari.com/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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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7)


한 때 당신은 나의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당신의 학생입니다


나는 감신대학에서 4년 동안은 당신의 교수였지요. 그러나 당신이 감신대학을 졸업하고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걷는 동안 나 역시 교수직을 떠나서 성경 번역에 몰두해 온 지가 벌써 서너 성상이 지났습니다. 최근 20여 년 동안은, 내가 당신의 학생이고 당신이 나의 교수라고, 나는 주저 없이 고백합니다. 현재까지 20여권이나 되는 당신의 저서를 통해서 배운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저서들은 내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그때그때마다 나를 생각해서 챙겨준 것도 아닌데, 마치 누군가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내게 일러바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면, 내가 당신의 책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아는 내 주변의 극히 소수 중에 어느 누군가가 그 책들을 내게 줄곧 보내주었습니다. 하여 나는 그 책들 속에서 당신의 육성을 들으면서, 당신이 목회자로서의 당신 잘못을 뉘우칠 때(「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 147-152쪽 특히 151쪽), 나도 그와 똑같은 나의 잘못을 뉘우쳤고, 당신이 하는 기도(병상에 누운 그의 손을 마주 잡은 채 나는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나의 손을 통해 주님께서 그의 손을 잡아 달라’고, 159쪽)를 엿들으며 난처한 처지에서도 어떻게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또한 당신 덕분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발견하였고, 성도의 교제에서 함께 나눌 메시지도 얻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목사안수례를 앞둔 이에게 주는 조언(109-117쪽)은 백미입니다. 나는 그런 조언에는 늘 실패해 왔습니다. 신학을 지원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지레 겁먹도록 예레미야가 소명을 거절했던 것(예레미야 1:6; 20:7)을 상기시키면서 신학 지원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겁박했는가 하면, 목회의 길로 들어선 둘째 아들이, 어릴 적, 암병동에서 사경을 헤맬 때는 하나님께 이 자식 제발 빨리 데려가시든지 빨리 살려주시든지 어서 결정해주시라고 기도했었지만, 그 아이가 목사 안수 받던 날은 이 아비는 이 자식이 당신을 섬기다가 거기에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말은 목사 안수를 받는 아들을 격려한 것도 아니고 축복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오히려 위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목사 안수례를 앞둔 후배에게 해준 격려의 말들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다혈질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도자의 자세를 가지라고 한 것, 묵상과 기도를 위한 시간의 지성소를 만들라고 한 것, 파당을 짓지 말라는 것, 설교 언어에서 매너리즘을 피하라고 한 것 등은 그렇게 살아온 선배가 아니고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조언이 아니지요.



이번에도 독자들은 당신의 글을 탐독하면서 당신이 인용한 여러 철학자(사상가, 하이데거 외 13인), 신학자와 교회지도자(디트리히 본회퍼 외 10인), 시인(강은교 외 국내 시인들 32인, 칼릴 지브란 외 외국 시인들 10인) , 여러 분야 작가(법인 외 한국작가들 10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외 외국 작가들 22인), 화가(렘브란트 외 10인), 오르겔 마이스터, 피아니스트, 사진작가, 영화감독 작곡가, 가수 수녀 등 각 분야 전문가(홍성훈 외 7인)를 만나서, 그들의 창작 세계가 주는 감동을 전달 받기도 합니다. 별도로 당신이 “아름다운 영혼의 성좌”(이용도, 루쉰, 토리, 김약연, 강순명, 마더 테레사, 톨스토이, 토마스 아퀴나스, 최홍준, 이세종, 토마스 머튼, 함석헌, 디트리히 본회퍼, 마하트마 간디, 원경선, 가가와 도요히코, 우찌무라 간조, 김교신, 김구, 전우익, 로제 수사, 이승훈, 앨버트 슈바이처, 이현필, 프란체스코, 이찬갑, 권정생, 윤동주, 유누스, 문익환, 안창호 등 245쪽)라고 일컫는 이들은, 당신의 신앙과 지성의 원천이기 이전에, 당신의 책을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이끌어준 이들이고, 생명의 빛을 반사한 별들이지요.


당신이 인용한 이들을 보다가 우연히 당신이 읽는 도서 목록을 정리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나라 안팎 어느 곳을 방문하든지 늘 그곳 역사와 관련된 인물을 찾는 당신에게서 우리는 우리에게 희망을 가지게 한 이들을 만나는 것도 은총입니다(예를 들면, 통영 방문기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에서는 유치환, 백석, 김춘수, 김상옥,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이중섭).


이뿐만 아니라 책에서 당신이 조형한 아포리즘만 거두어도 결실이 풍요롭습니다. 몇 가지 예만 들어봅니다. 문맥을 떠나서도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생명은 스러져도 이야기는 죽지 않는 법, 이야기를 불멸로 만드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기억에의 의지다.”(90쪽), “척박한 환경을 자기 삶으로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내면에 꽃이 피어나는 법이다.”(97쪽), “시혜자의 자리에 서는 순간 선한 뜻은 공적 쌓기로 전락하고 만다.”(100쪽), “칭찬을 구하는 이들은 실망을 추수하게 마련이다.”(100쪽), “희망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숨은 불씨를 찾는 것이다.”(108쪽),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이다.”(126쪽),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오실 분의 삶을 이 땅에서 재현하며 사는 것이다.”(164쪽), “자기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 신앙 고백은 허망한 것이다.”(216쪽), “신앙은 ‘떠남’과 ‘따름’ 사이에서 형성된다.”(337), “과도한 욕망의 길 끝에는 수치가 있다.”(355쪽)


시절을 적는다, 세상을 읽는다


당신의 글을 읽다가 매 챕터마다 당신이 절기 코드를 적어 넣은 것을 발견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당신의 글을 <겨울 편>(14-82쪽), <봄 편>(83-189쪽), <여름 편>(190-264쪽), <겨울 편>(265-383쪽), 이렇게 넷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겨울 편>에서는 “소한에서 대한으로 넘어가는 이즈음”, “대한이 지났는데도”, “소한 추위가 지나더니”, “입춘이 지난 후”와 같은 언급을 봅니다. 당신이 당신의 글을 우리의 24절기에 맞추어 정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봄 편>을 보면, “접동새 우는 4월에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세월호 참사자들이 떠오르고, 5월이면 1980년 광주에서 죽어간 넋들을 떠올리게 되고, 6월에는 이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전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32쪽)고 하여 땅의 사건을 읽고 있고, <여름 편>에서는 다시 “장마철이 되어서인지…”, “소서가 코앞이어서”, “이제 본격적 무더위가…” “여름의 끝자락” 같은 코드를 숨겨 비와 바람과 태양의 열기를 읽고 있습니다. <가을 편>에도 “백로가 지나서인지”, “이 가을 날, 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추석연휴 기간 중에…”, “한로를 앞둔 절기여서…” 등을 언급하면서 하늘과 땅의 변화를 읽습니다. 어쨌든 당신의 글이 <겨울, 봄, 여름, 가을> 이렇게 네 계절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골고루 편집이 되어 있는 것이 재미있군요. 대림절부터 시작되는 교회력을 따른 것 같기도 하고… 잊혀가는 24절기를 당신에게서 다시 찾는다는 것이 소중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당신이 의식했든 안 했든 독자들은, 기후와 우리의 삶 우리의 생각이 참으로 밀접하다는 것도 당신의 글에서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이 공간 위의 삶과 역사를 관찰하면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하늘과 시절을 읽는 당신이 이번에는 돋보였습니다.


얼마 전, 내가 속한 독서회에서 조지 기싱의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을 읽는 적이 있습니다. 조지 기싱이야 영문학계에서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니까 그의 여러 저서 중 하나를 읽나보다 했지만 책 제목에 나오는 ‘헨리 라이크로프트’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이어서 왜 우리가 그의 수상록을 읽어야 하나, 왜 또 그의 수상록을 조지 기싱이 써주었나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펴보니, 목차가 <봄, 여름, 가을, 겨울>입니다. 그의 유고 뭉치를 읽으면서 기싱은 적습니다. “나는 라이크로프트가 하늘의 상태와 계절에 순환에 언제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 작은 책을 계절에 따라 네 개의 장(章)으로 나누기로 마음먹었다”(13쪽). 읽다가 보니 이 책은 조지 기싱이 죽기 전에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가상의 인물, 발음도 하기 힘든, 헨리 라이크로프트를 내세워 하고 있습니다. 자서전에 소설적 허구를 넣자니 그렇고 안 넣자니 무엇이 빠진 것 같아 아쉽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친구의 수상록 써주기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이미 당신의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에서도 당신이 “하늘의 상태와 계절의 순환에 언제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이번에 다시 읽어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함께 읽으며 2016년 봄과 사순절과 부활절을 함께 보낸 우리에게 준 메시지, 따로 인용하여 우리의 믿음을 성찰하고 싶습니다.


엄벙덤벙 살다보니 벌써 사순절 순례여정을 마감하고 부활절을 맞이하게 되네요.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고난과 슬픔과 연약함을 부둥켜안음으로 더 깊은 세계를 지행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삭발식을 거행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죽은 자들의 억울함을 신원해주는 것이 산 자의 의무일진대 그들은 그 길조차 막혀 있어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자기만족에 겨운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거추장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을 모욕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103쪽).


「길을 잃으면 어때」라고 하는 마지막 장이, 이성복이 말하는 ‘장난끼’(285쪽)와는 얼마만큼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자못 심각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긴장했던 (당신은 늘 독자를 긴장시키죠.) 우리 독자들을 크게 웃게 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무장해제 하듯 하는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인연을 생각하면 길 잃음이야말로 은총이 유입되는 통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381쪽). 이 말에서 우리는 큰 위로를 받고 동시에 또 꺼지지 않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토박이말을 발굴하는 재미


당신의 최근 저서들을 읽을 때마다 나의 일차적 관심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보다는 당신이 활용하는 우리 토박이말들을 정리하고 익히는 것입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이것이 저자의 저술 목적이 아닌 줄 알지만, 아마 최근의 당신의 저서들, 《아슬아슬한 희망》, 《말씀의 빛 속을 거닐다》, 《광야에서 길을 묻다》 등을 읽으면서부터 생긴 내 버릇인 것 같습니다. 이번 책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이번에도 또 어떤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이 책에서 활용되었는가 하는 것을 먼저 관찰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사하면 더 많겠지만 책을 절반까지 읽으면서 내가 찾아낸 토박이말 활용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이미 아는 것은 빼놓고 아직 처음 본 듯한 것들만 적어 봅니다.


시난고난 애끓이지는 않을 겁니다”(18쪽), “마음을 도스르지 않으면”(26쪽), “자꾸 틀리게 부른다고 지청구를 듣곤 했습니다.”(33쪽), “신산스러운 삶의 경험이 없었다면”(36쪽), “요즘은 무지근한 어깨 통증 때문에”(49쪽), “오늘도 희떠운 소리가 많았습니다.”(59쪽), “나뭇잎은 이미 오가리 들어 있고”(65쪽), “선들어진 발걸음으로 걷는 젊은이들”(67쪽), “어른들의 모습도 오련하게 떠오릅니다.”(69쪽), “그 소리를 따라 무람없이 걷다보면”(73쪽), “진동한동 다니느라 거칠어졌던 호흡이 가지런해지고”(77쪽), “특별한 장식이 없기에 그 공간은 오히려 깔밋하게 보였습니다.”(79쪽), “나는 그분의 느르심을 흔감하게 경험하였습니다.”(79쪽), “울가망하던 마음이 조금은 거늑해졌습니다.”(79쪽), “단정하고 뜸숙한 글씨는”(80쪽), “마당가의 살피꽃밭을 살피게 됩니다.”(83쪽), “앙버티던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90쪽), “엄부렁한 내 삶의 실상을”(92쪽), “여전히 여줄가리에나 집착할 뿐 깊은 곳에 당도하지 못한 채 어뜩비뜩 걷고 있는 내가”(92쪽), “서리 내린 밭에 남아 있는 희아리”(93쪽), “움씨를 뿌리는 마음”(95쪽), “아무리 겨울의 뒤끝이 무작스럽다고는 해도”(125쪽),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입니다.”(126쪽),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너름새가 절로 드러난다.”(139쪽), “무작스런 말본새와 태도로 남의 속을 건드리는 이들”(139쪽), “저는 목사님을 뒤흔들었던 혼돈을 아령칙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140쪽), “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147쪽), “툽상스러운 듯하나 씩씩하기 이를 데 없는”(148쪽), “그 동안 현실 주변을 베돌기만 한”(148)쪽, “무작스럽게 쇄락의 방향으로 나를 잡아채는”(152쪽), “내 정신노동이 힘겨웠노라 언거번거 말할 수 없습니다.”(158쪽) “더덜뭇한 성격 탓에 삶의 비애만 가중되고(162쪽), 불쾌한 일들로 인해 오갈든 마음을 미소로 어루만지십시오.”(165쪽), “요셉의 눈길은 지며리 예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172쪽) 등등.


언젠가 한 번 내게 말해준 적이 있지요? 당신도 이런 토박이말을 만나면 어느 경우에 어떻게 쓰는 말인지 충분히 알아서 예문들을 많이 만들어서 사용해 보고, 그래서 어색함이 없을 때 자신의 글에 활용한다고…. 내가 아는 문인 중에 시나 수필 전문을 토박이말로만 쓰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번역본이 따로 있어야 읽겠던데, 당신의 경우는 독자들이 토박이말에 흥미를 가지고 다가가며 배워보겠다는 끌림을 주니, 대단히 교육적인 면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토박이말 사전(<재미있고 순우리말 사전>,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 및 단어 모음>)에도 안 나오는 낱말들은 당신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책으로 엮어 보낸 편지를 읽다보니, 이처럼 여러 좋은 대목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번 기꺼이 당신의 학생이 되어 배울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같은 시공간에 이처럼 배움을 나누는 당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그리하여 내게 즐거움입니다.


올 여름이 뜨거운 만큼 다가오는 또 다른 계절은 그 아니 좋지 않겠습니까? 부디 좋은 시간 속에서 함께 만납시다. 만나 즐거울 때까지 안녕하기를.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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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6)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


목사님이 쓰신 편지글을 읽으며, 지난 한 주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홀로 지내는 공간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지셨다니, 수도자로서의 금욕이 목사님에게는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글 「움씨를 뿌리는 마음」 편에서 ‘‘흔들림’과 ‘젖음’은 우리를 존재의 근원과 연결 시켜주는 촉매인지 모른다”고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내게도 그런 것이 있지 않았을까. 그것을 읽으면서 살짝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래된 일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그 얘기를 서두에 놓습니다.



절망의 핏빛 노을


1967년, 초등학교 4학년 초봄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저는 어떤 일로 홀로 귀가하던 중에 텅 빈 신작로 위에서 노을이 져 온통 붉어진 세상을 만났습니다. 미루나무가 촘촘히 늘어선 신작로 저 끝 지평선 아래에서 태양이 터져버린 것처럼 세상은 온통 붉었습니다. 생전 처음 본 광경이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무슨 계시이고, 거기에서 무엇인가 뜻을 발견하지 못하면, 곧 내려질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뻘건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신작로 저만치 어딘가에는 내가 살던 동네가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나는 망연히 그 지평선 끝을 바라보며 서늘한 공포 속에 서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그곳을 향해 가야 하는지, 그곳에 내가 가야할 집이 있기는 한 것인지. 처음 맞닥뜨린 거대한 공포였습니다. 물론 그 정경만이 자아낸 공포는 아니었지요.


저는 교회 옆집에서 자랐습니다. 교회와 우리 집 사이에는 호박돌을 넣어 흙을 빚어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토담이 있었습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 고풍스러운 담장이 어느 해 장마 때 기와 사이로 빗물이 스몄던지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담이 무너지는 큰 일이 벌어졌는데도 웬일인지 아버지나 어머니는 무심했습니다. 교회와의 사이에 있던 담이 무너졌으니 축복이었을까요? 담이 무너지고 난 뒤 그 흙더미가 치워졌을 뿐, 한동안 교회와 우리 집은 서로 트인 채로 지냈습니다. 그 전에도 담장 위로 떡 접시나 계란 꾸러미 같은 것이 넘나들곤 했습니다. 그랬던 그것들이 이제는 당당히 뒷마당을 가로질러 걸어서 넘어 다니게 된 것이죠. 아버지나 어머니는 교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네와는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담이 무너진 뒤 저는 간혹 트인 교회 쪽을 흘깃거리며 지냈는데, 어느 날인가 마당을 쓸고 계시던 목사님이 저를 보더니 넘어 오라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마 계시 받은 손짓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은밀한 손짓에 홀렸습니다. 그리고 넘어간 그 길로 ‘교인’이 되었습니다. 돌아올 때 제 손에 성경책과 찬송가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 신자가 아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한히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 나쁜 짓은 못할 것’이라고 소곤거리시는 걸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손짓에 홀렸으므로 그것은 제가 선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책임질 일 없는 손짓이었고, 손해 볼 일이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그 절망의 핏빛 노을 속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낮잠을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출근을 하셨고, 어머니마저 집에 안계셨으므로 아주 심각하게 늦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다급했으므로 ‘어제’ 메고 온 가방을 그대로 멘 채로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너무 일찍 온 모양이더군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여유가 생겼습니다. 게을러 지각을 밥 먹듯 하던 저로서는 그 망중한이 꿀처럼 달콤했습니다. 창 가득 들어오는 햇빛을 돋보기로 끌어 모아 습자지를 그슬리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해는 점점 짧아졌고, 습자지에 들이민 돋보기에서도 햇살은 멀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시간을 의식하자 어리숙한 영혼은 혼란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늪처럼 갈앉은 의식을 헤집어 가까스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 하나를 거두었습니다.


어두운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 나의 의식을 가득 장악한 이 날의 ‘아침’과 ‘저녁’의 혼란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착각한 것을 인정할 수 있었으면 간단했겠지요, 하지만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오는 동안 저는 여전히 그 ‘현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섭게 붉어진 노을을 마주하고서도, 아침에서 저녁으로 건너뛰고 낮은 여전히 실종된 상태였습니다.


미망. 무엇인가가 닥쳐왔는데, 모른다는 것. 이것이 내게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내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을 보았고, 그것이 바로 ‘미망’이었습니다.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빠져 있는 것. 목사님의 편지글을 읽다가 전율이 일었던 것은 그날 그 미망의 깊이가 주었던 두려움이 저의 존재의 근원과 연결시켜주는 촉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무슨 보상처럼 타지에 나가있던 가족들이 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이고, 일찍이 출가했던 누이들과 도시에 유학 중이던 형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설날이거나 추석이었으면 이해할 수 있을 일이었습니다.



칼 세이건이 인용한 <욥기>


얘기를 하다 보니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활성화 신호를 기다렸던 억압된 기억’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난 사건입니다. 그것은 1980년 5월 광주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입대를 앞둔 청년이어서 영장을 받아들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초입은 언제나 광주역이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광장으로 나왔을 때 그곳에 서 있던 탱크를 보았습니다. 그걸 바라보며 서 있는데, 중년의 한 사내가 달려와 저를 낚아채 택시에 태웠습니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그의 말을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창백한 정경들이 그것의 답이었습니다. 택시는 제가 가리킨 광주 발산의 누이 집으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누이는 택시기사와 똑같은 목소리를 내며 저를 작은 골방에 밀어 넣고는 꼼짝 말고 거기 자빠져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는 누이의 명령대로 하룻밤은 꼼짝하지 않고 지냈지만, 여전히 그렇게만 자빠져 있을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서 광주천 뽕뽕다리를 건너 큰길로 나가니, 제 앞에 트럭 한 대가 와서 멈춰 섰습니다. 트럭 뒤에는 피투성이가 된 시신 두 구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저는 바로 뒤따라온 버스를 타고 도청 앞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이틀을 더 있었고, 그곳에서 듣고 본 것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 5·18 광주 민주화운동 – 으로 저의 입대가 미뤄졌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곳에서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온 저는 1980년 그 늦봄, 서울의 그 평화가 낯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낯설고 또 낯설었습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조용한지요?” 하고 외치고 싶은 것을 참아내느라 가슴에 응어리가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시점에,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그 평화가 아니라 홀로 공포에 사로잡힌, 세상의 질서에서 비껴 앉은 저 자신이 아닌가 싶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교회 주일 예배에 앉아서도 저는 홀로 섬처럼 낯설었습니다. 1967년 그날 그 운동장에 깔리기 시작했던 땅거미처럼 두려웠습니다. 저는 낯선 그것과 맞서서 점점 더 큰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그 속에서 질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진실은 오래전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었던 ‘아침’과 ‘저녁’처럼 멀리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공허만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핏빛 노을 속에 있었습니다. 미망迷妄입니다. 헤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령’이나 ‘부활’의 기호 안에서는 고백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일이었으니, 그 안에 들어 있을 복잡한 질서들을 경외할 뿐이지요. 그것을 체험한 고백은 제게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들은 신앙을 자신들의 지배에 효율적이게 하는데 이용해 왔습니다. ‘믿고 받드는 마음’을 조작해 내는 데에 그 신비한 무엇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미륵이나 재림 예수까지를 말하지 않아도 작은 것들이 숱하게 우리 현실 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저지른 짓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신앙에 견고한 무엇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그 미망을 깨는 일에 유용했던 것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데이비드 아텐보로의 《생명의 신비》나 리차드 리킨의 《오리진》 같은 책이었습니다. 제 이십 대의 동반자들입니다. 그것이 질서를 잃어버린 나에게 준 것은 어떤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메시지를 거기에서 읽었습니다. 미망을 걷어내는 데에는 그 메시지가 매우 효율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질서를 말하고 있었고, 그 질서와 질서 사이에 숨어 작동하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법을 제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느냐? 어둠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빛과 어둠이 있는 그 곳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빛과 어둠이 있는 그곳에 이르는 길을 아느냐?(욥기 38:18-21).


칼 세이건이 인용한 <욥기>입니다. 내게는 그 빛이 그날의 아침이고, 그 어둠이 그날의 저녁이었습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습니다. 오직 점이었습니다. 그 점에 관해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념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중략)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하나님이 칼 세이건을 통해 이 말을 제게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이 엄청나고 강고한 질서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구원이었습니다. 그것에 제가 겪었던 그 미망에 대응할 답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충직한 손발 엔텔레키아의 신비입니다. 봄이 되어 한 포기의 풀이 자라고, 그것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는 질서가 주는 메시지를 아주 절실하게 느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족입니다만, 저는 위에서 1967년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 가득 가족들이 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집에 어머니가 안 계셨던 것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둘째 형의 전사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하러 가셨기 때문이었고, 가족들은 그 부음을 듣고 온 것이었습니다. 내가 잃어버렸던 그 낮 동안 ‘창백한 푸른 점’에서 벌어진 혼돈 속에서 형이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님께 드리는 제 첫 편지입니다. 목사님께 드리는 첫 편지에서 이런 신앙고백은 마땅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 저는 이 표어 덕분에 무엇인가를 정해야 하는 판단을 앞두면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제게 큰 축복입니다. 미망을 밝힐 등대니까요. 이 더위 속에서도 서재의 에어컨은 꺼져 있을 때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이명행/소설가, 《대통령의 골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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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5)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강렬한 햇빛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한여름 오후입니다. 멀리서 여름새가 청량한 울음소리를 가끔 낼 뿐 시골의 한 여름은 고요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두루두루 편지를 보내셨고, 세상사 질곡 속에서도 희망을 묻곤 했던 저 또한 이 편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한여름 해바라기처럼 샛노란 표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목사님을 처음 만났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아스라한 청파동 거리의 추억


김삼웅 선생님이 쓰신 《김남주 평전》이 마침내 발간되고 난 뒤, 출판사에서는 북 콘서트를 기획했었지요. 김남주 시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광주에서 한 차례 열린 북 콘서트는 서울에서도 한 차례 열렸었지요. 서울에서의 북 콘서트는 목사님이 계시는 ‘청파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저나 김남주 시인 둘 다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기독교 관련 책을 많이 출간하는 출판사, 것도 목사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김남주 시인의 평전을 낸 데다가 교회에서 북 콘서트까지 하게 되니 저로선 이 일들이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어느덧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이십여 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잊힌 인물이라 생각했고, 또 투쟁과 혁명을 이야기 하던 세태도 한물갔으니, 지금 시점에서 그에 관한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7, 80년대와 같은 저항과 혁명의 시대에나 읽히던 시인의 삶을 담은 평전을, 더구나 극단적으로 보수화되어가고 있는 사회 분위기상 그의 평전이 읽힐 것을 기대하는 출판사가 있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꽃자리출판사의 한종호 목사님은 선뜻 책을 내 주셨고, 출간기념 북 콘서트까지 한다는 것은 저로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김남주 시인에게 이런 홍복이라니요! 그런데 북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가 청파동에 있는 교회라는 말을 듣고는 저는 잠깐 흥분했습니다. 청파(靑坡)! 지금은 고루하고 낡은 이름처럼 들리지만 빛나던 청춘의 한때, 저를 성장시키던 장소가 청파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북 콘서트뿐만 아니라 수십 년 만에 청파동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참 많이 설레었습니다.


목사님도 저처럼 젊은 날을 추억할만한 장소가 있으시겠지요. 백발을 머리에 인 지금 생각해보면 유년기와도 같았던 스무 살 적. 그때는 고뇌조차도 참 예뻤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양 손에 책을 들고, 저는 미술관과 음악회를 찾아 털털거리는 버스를 탔더랬지요. 저의 무수한 발걸음이 찍혀 있을 긴 청파언덕…, 그 언덕을 더듬거리며 추억해 보면 여지없이 스무 살, 그 빛나던 청춘의 시절로 돌아갑니다.


가난한 여대생이라 눈요기로만 훑어보던 예쁜 옷을 팔던 옷가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남아 있는 교문 앞에서 사 먹곤 했던 오무라이스…, 그땐 작은 일에도 참 만족해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젊은 날의 그 시절은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지요. 4년 내내 툭하면 계엄령이고, 여차하면 닫히던 교문 앞에서 터트리던 울분과 한숨의 나날도 빼곡히 기억 속에 스며있습니다. 닫힌 교문을 뒤로 하고 들어선 음악다방에서 전 무엇을 그리도 기다렸던가요? 그 기다림 속에서 툭툭 터져 나오던 속울음 같은 그 외로움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그 청춘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전 북 콘서트가 열리는 ‘청파교회’ 거리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거리와 동네가 거대해지고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로만 존재가 가능한 서울에서 아직 동(洞)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청파동과 청파언덕 길은 크게 달라보이진 않았습니다. 예전보단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차 숨이 좀 막힌다는 것 외엔 그다지 낯설지도 않았어요.


갈월동 길도 여전했고요. 그 길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면 서울역이었지요. 학교에서 쭉 걸어 내려오면 남영동 버스 정류장이 있고…, 아 그리고 극장이 있었지요. 남영동 금성극장이었던가!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빠와 처음 같던 곳이 바로 그 극장이었습니다. 전 거기서 <마음의 행로>, <황태자의 첫사랑> 등의 영화를 봤었지요.


지금도 그 극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전철역이 들어섰고 남영전철역 곁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창문 없는’ 검은 건축물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거기, 한 줄기 빛조차 숨죽여 들어가게끔 설계된 창문과 완벽한 방음 시설을 갖춘 ‘검은 건축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거기서의 비명과 죽음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왔는지는 그 건축물 곁을 스치는 무심한 전동차도 다 아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오빠들과 함께 자취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청파동이었습니다. 여상 출신이 어쩌다 대학시험을 보게 되는 바람에 4년간 긴 청파언덕을 오르내리게 되었고, 질식할 것만 같은 70년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한 목소리를 보태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 끝에 도착한 곳도 청파동 아랫동네인 남영동 그 창문 없는 검은 건축물이었으니, 참 저에겐 인연이 깊은 ‘청파’고, 고유명사로 남아 있는 ‘남영동’입니다. ‘청파’교회 앞에 서니 만감이 회오리바람처럼 제 몸을 휘감더군요. 그 쓰라리던 기억을 또 떠올리게 하던 청파동이었습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도


김 목사님, 저는 교회와는 무관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이나 시골이나 교회 혹은 절이 어디나 널려 있어 몇 발짝만 옮기면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될 수 있는 게 현재 우리나라의 종교 형편이지요. 제가 시골생활을 한지가 20여 년인데 옆집 아주머니는 지금도 호시탐탐 저를 교회에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이십니다. 또 저의 집에서 차를 타면 십 분 거리에 절들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에만 절에 가는 날라리 불교 신자이긴 하지만 큰 스님에게 수계를 받은 적이 있으니 저는 불교 신자에 가까운 편이지요. 아무튼 신앙을 갖는다는 건 엄청 부지런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전 게으르기 짝이 없으니 진정한 의미의 신앙인이 되기는 글렀다고 치부하며 제 자신을 합리화해 봅니다.


아무튼 《김남주 평전》 북 콘서트 덕분에 교회도 가고 목사님들도 만나고, 또 김 목사님과 손석춘 교수님이 주고받은 글을 책으로 엮은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도 받는 혜택도 받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저는 북 콘서트 공간이던 청파교회, 한 뼘도 안 되는 낮은 강단의 오래되고 작은 교회가 주는 감동을 가슴에 품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김 목사님과 손 교수님이 주고받은 서간집을 곧바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세상을 바꾸려는 분들이 계시구나 하는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거기에 동감하는 마음에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기에 이번에 목사님이 펴내신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란 책을 받아 읽으니 왜 청파교회가 김남주 시인을 받아주었던가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 목사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읽는 동안 소슬한 가을바람 같은 청량감이 드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목사님의 사유와 문학, 기독교적 실천을 통한 목회자로서의 고뇌가 오롯이 표현된 편지글들은 제게 그런 감동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한편으론 목사님의 문장도 제겐 충격이었습니다. 표준어로만 사고하고 글을 쓰는 세태 속에서 예스런 표현의 낱말을 곳곳에 품은 글을 읽으니 제 마음이 마치 무장해제 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더욱이 목회자의 사유를 통한 시적 언어와 간간이 스며있는 고유어들은 마치 중세 고음악을 듣는 듯한 고아함과 격조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목회자의 글을 거의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이 책이 주는 감동은 조금 남달랐습니다. 마치 시를 조곤조곤 읽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나뭇잎에 내리는 가랑비 같은 음성으로 성경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또 안개가 잔뜩 낀 아득한 도로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 희망만을 얘기할 수 없어서인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도 같다고나 할까. 목사님의 편지글을 읽는 동안 뜨거운 더위가 무색하게 서늘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것은 중학교 3년간 다닌 미션 스쿨의 기억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정신의 편력과 독서의 이력이 겹쳐져 반갑기도 했습니다. 함석헌, 돔 헬더 까마라, 본회퍼, 김수영, 테니슨의 시, 토카타와 푸가, 몰리에르… ‘청파교회’가 장소에 대한 기억이었다면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 책은 저에게 문학과 종교, 학교와 사회,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추억을 담은 앨범 같은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새카맣게 잊고 있었더군요. 제가 한때 밤을 새워 성경을 읽었다는 것을요. 빨간 줄을 쳐 가면서 말이죠. 그것도 열다섯 살 때 말입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그때 저는 교과서보다, 아니 고교진학 공부는 안중에 없었고, 어떻게 하면 일 년 간 신약과 구약을 다 읽을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곤 했던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간 중학교가 기독교 학교라서 수업 시간에 성경을 배웠고, 수요일엔 교시에서 토요일엔 대강당에 모여 전교생이 예배를 보았습니다. 교회가 뭔지도 몰랐던 저는 ‘아멘!’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서 ‘아멘’하곤 했었지요. 성경을 배우는 시간은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토요일 대강당에서 예배를 보는 것은 수업시간이 적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배시간엔 큰 언니들이 앞에 나가 배에다 잔뜩 힘을 주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 - 소프라노, 엘토 이런 것을 그때 알았지요. - 이 있었는데, 그 시간은 그냥 좋았습니다. 그때 노래를 참 잘했던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나중에 유명한 메조소프라노 가수가 되었고,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미션스쿨에서 이러한 예배를 보는 것이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쯤 지날 무렵 저는 점차 회의가 들고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볼 때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쩌구 저쩌구…”하는 내용을 들으면 저같이 신앙심이 없는 애들은 “으악!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란다!”하면서 귓등으로 설교를 듣기 시작했지요. 목청을 높여 “우리 죄인들은…” “우리 원죄를…” “회개하고 회개하라…”며 부르짖던 부흥회는 소녀들의 가슴에 새겨지려던 신심을 외려 달아나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러한 풍경은 저를 중 3학년이 되자 예배시간에 가지 않기 위해 꾀병을 부리는 짓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만들었지요.


저에게 있어 성경읽기란 순전히 오기로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서울의 학교로, 오빠들 곁으로 보내려고 했었는데, 저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서울로 안 가게 될 것이라 생각해 공부대신 성경읽기를 택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소설처럼 재밌지는 않았지만 공부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것 마냥 술술 진도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선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글 행간마다 자꾸만 의문부호들이 떠올라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왜 그렇게 화를 잘 내실까? 불의 심판은 왜? 예수님은 귀신을 왜 돼지에게?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수업시간에 왜 이스라엘 역사를 배우는 거야? 그리고 목사들은 왜 우리에게 죄인이라고 하는 거지?…그런 질문들이 성경을 읽을수록 생겨났습니다.


구약을 삼분의 이쯤 읽었을 때 저의 중학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서울의 상업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구약읽기를 다 끝내지는 못했으나 성경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들이 저를 놓아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입시공부를 하지 않는 상고생의 지루한 일상은 책으로도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가끔 교회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으로 빠져든 것만큼 교회에 빠져들지는 않더군요. 교회조차도 소심했던 저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루하고 긴 저의 상고생의 3년이 흘러갔고, 선생님은 제게 왜 상고에 왔냐며, 대학진학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션스쿨에 다녔던 3년간의 기억이 어쩌면 남다른 생각을 하게 한 계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을 때 전 제가 받았던 초벌교육(중학교 교육)의 현장인 그 시골 중학교를 늘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사학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문득 수십 년 전의 그 미션스쿨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전교생이 다 들어가는 대강당이며 그랜드 피아노가 있던 음악실, (그 음악실에서 입학 후 첫 음악시간에 슈베르트의 <마왕>을 들었지요. 음악대학을 나온 선생님이 레코드를 틀며 설명해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일은 제게 서양음악을 좋아하게 하는 단초가 됐던 것 같습니다.)각각의 방에 따로 피아노가 있는 다섯 개의 레슨실, 큰 교실에 가득했던 책들, 전 거기서 하이네 아뽀르네에르 같은 시인을 알게 되었고, 《전쟁과 평화》같은 소설을 읽었습니다. 미술실에서는 미술반 언니들이 그림을 그렸고, 우린 때때로 학교 뒤편에 있는 향교로 야외 스케치를 나가곤 했었지요. 발레를 전공한 체육 선생님 덕분에 연말에 열리던 추수감사절과 성탄 행사에 무용반 언니들의 발레 공연도 볼 수 있었지요. 아 그리고 체육 행사 때에는 고등학생 언니들이 포크댄스 경연대회를 열었던 것도 기억납니다. 이처럼 저의 중학교 생활은 음악과 미술을, 역사와 문학에 흠씬 젖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에 대한민국의 어떤 중고생들이 ‘백조의 호수’에 맞춰 무용을 하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던가요? 훗날 들은 바에 의하면 그때 제가 다녔던 학교가 경기도내에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여학교라 근동의 여학생들이 선망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지방학생을 위한 기숙사와 여학생 예절을 위한 수련관을 따로 마련한 곳, 여학교에 맞게 발레 전공자를 체육 교사로 채용하는 세심함을 갖춘 곳이 어디 그 시절에 흔했을까요?


그런데 한편 당시 교장 선생님은 그 지역에서 욕을 많이 먹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향한 욕은 주로 미국사람한테 잘 보여 목사가 되고 교장이 됐다는 것이고 교장이 되더니 너무 거들먹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안 되었을 때인데, 목사가 되고 교장이 된 그에게 돈 많은 미동북부 북 감리교 할머니들이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엔 늘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그분들은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고, 대강당에서 그 할머니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합창, 발레, 성극 등을 공연하고 시화전 그림전시를 하고는 했습니다. 당시 그 교장이 예수를 팔고 하나님을 팔아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서 돈을 끌어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명색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육 사업을 하는 현재의 사립학교 운영자들과는 비교조차 안 될 겁니다. 교회나 목회자들이 운영하는 사립학교들이 지금 어떤 프로그램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온갖 부패와 부정의 온상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그때 그 학교 교장을 ‘코빨갱이’라고 욕하고 비난했던 그 읍내 사람들의 비난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울 것입니다.


햇살이 좋던 오월, 옛 성터에 올랐던 봄 소풍, 그 산정에서 듣던 교장선생님의 기도와 설교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그때 그 교장 선생님은 설교 중에 이 성서 구절을 들었지요. “저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아라. 심고 가꾸지 않아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고…” 이 구절은 제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언제 들어도 참 좋습니다.


그때 산정에서 보았던 그 풍경, 발아래는 저 멀리 근동의 온 들판이 펼쳐져 있었지요. 그때 저는 열세 살, 갓 피어난 새싹이었습니다. 어리고 여리던 그때 내 머리에 쏟아져 내린 예술의 축복, 교육의 세례는 지금의 저를 키워낸 원형질이 되었습니다.


읍내 한 가운데 우뚝 선 교회 첨탑에서 울려 퍼지던 <저 높은 곳을 향하여>란 찬송가는 제가 좋아하던 곡이었습니다. 그 찬송가는 저의 정신의 지향점을 위로 향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지금도 그 노래는 끝까지 따랄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간에 들린 귀신을 돼지한테 쫓아낸 예수님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때 든 그 의문들은 종교와 신앙, 세상살이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의문들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그 의문들 때문에 숱한 밤을 지새우고, 책을 찾아 읽었었지요. 그리고 그를 통해 아픔의 현장을 외면하지 않으리라던 그때 그 다짐이 제 생의 길목에 흔적으로 꽃피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김 목사님, 지면을 통해 이렇게 다시 불러봅니다. 목사님이 주신 편지 덕분에 추억의 한 자락을 펼쳐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끝인사를 드리려니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 아쉬움은 반쯤 접어두겠습니다. 이 팍팍한 시절, 무심한 듯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이 세상에 아직도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을 찾아 다시 일으켜 세우시려는 목사님의 간절함이 들릴 듯합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마당가로 나가 흙바닥에 주저앉아 풀을 뽑습니다. 어느새 웃자란 풀들을 하나씩 뽑으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무념무상無念無想. 나쁘지 않습니다. 오늘은 바람조차 없네요. 어느 새인가 마당가에 백합화가 소담스럽게 피었습니다. 백합화의 달콤한 향이 따가운 햇살 속에서도 살며시 전해집니다. 목사님께도 백합화의 은은한 향이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더운 여름에 지치지 마시고, 늘 건강하시길….


박광숙/고 김남주 시인 부인, 《빈 들에 나무를 심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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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께(4)


독수리, 깊이 날아 뜻을 품다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지 못했습니다. 도무지 ‘내 삶’에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절박한 물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네요. 유학 생활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내면을 옥죄고 있을 때, 나 자신에 대한 실망스러움과 공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끈질기게 갈마들면서 영혼을 갉아먹고 있을 때, 그때 받은 목사님의 편지를 오늘 다시 읽어 봅니다. 그저 ‘나의 삶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의 주저앉은 마음을 북돋워 주었던 글입니다. 그 편지를 천천히 읽고 또 읽다 보면 마음이 가지런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솜씨 좋은 농부의 호미질이 지나가면, 어지럽게 뭉그러져 있던 흙더미들이 단단하고 단정하게 북돋워진 이랑이 됩니다. 목사님의 편지를 읽는 일이 꼭 그런 일입니다.


글에서 들려오는 ‘몸의 소리肉聲


고전어라는 산을 다 넘기도 전에 조급증에 시달리던 저의 마음을 목사님의 편지는 다정하게 타이르셨지요.


“너무 서두르지 말게. 서두른다고 빨리 가는 건 아니더라구. 물론 목표는 잃지 말아야 하지만, 무딘 도끼로 나무를 찍는 것보다는 날을 세워서 찍는 것이 지혜 아니겠는가? 마음을 잃고 건강을 잃으면, 남는 건 자기연민이거나 분노이기 십상이지.” “지극정성이란 결국 ‘지금 여기’에 마음을 모으고 살아가는 것이겠지. 점 하나 하나를 찍어 형태를 이루는 점묘법처럼 우리의 하루가 충실해야 인생도 충실해지는 법인데….”


그러면서 목사님의 글은 슬며시 나의 시선을 나의 문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유도하셨지요.


“어제는 산에 다녀왔네. 고난주간이긴 하지만 그저 사무실에 있으면 울적해질 것 같아서였어. 도심에 가깝긴 하지만 산에 피어난 꽃들은 어쩌면 그리 맑고 고울까. 종일 노랑제비꽃과 눈맞춤을 하면서 산을 걸었네. 우리의 삶은 자연을 향해 계속 걸어가야 온전해질 수 있음을 몸으로 느꼈네.”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를 듣다가 그 한음 한음이 이루어내는 어울림에 사로잡혔다네.”


이윽한 귀 기울임, 곡진히 사람을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목사님의 충고는 차라리 기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에 자신을 고스란히 내맡긴 사람만이 드러낼 수 있는 담담한 심경은 그 자체로 노래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글을 읽는 사이에 조금씩 온기를 되찾은 저의 내면을 향하여 매번 힘찬 응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눈 밝고, 귀 밝은 사람이 필요한 법이라지. 우리 정신 차리고 사세!” “히브리어와의 연애에서 얻은 기쁨이 무더위를 넉넉히 이기는 힘으로 전화되기를 비네.”


독일의 작은 대학도시 튀빙겐의 허름한 기숙사에서 목사님의 편지를 읽고 있던 저는 젊기만 했습니다. 당장 희망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써주신 희망의 ‘목소리’는 저의 눈빛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부치신 편지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편지 속에서 어떤 솔깃한 대안이나 정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희망을 끄집어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다만,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편지글을 따라 읽어가는 사람마다 그 글에서 들려오는 ‘몸의 소리肉聲’에 문득 눈빛이 밝아짐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눈으로, 머리로 읽기를 멈추고 편지글을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저만치 어딘가에서 온몸으로 어둠과 부딪쳐 파란 불꽃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가슴에 돋아나는 절망을 도려내고 다시금 길을 떠날 용기를 얻습니다(341-342쪽).



세속 먼지 뒤집어쓴다 해도 정신은 흩어지지 않는 법


목사님, “편지를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라고 하셨죠? 그러면서 그 “그리움은 ‘너’의 빈자리가 강하게 환기시킨 마음의 공허”(5쪽)라고 적으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유대인 사상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나와 너Ich und Du》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온 존재를 기울여 말 건넬 수 있는 ‘너’와의 만남 혹은 관계, 그것은 목사님의 많은 편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붉은 줄 아닐까요? 편지를 비롯하여 모든 형태의 글쓰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만 목사님은 그 언어보다 근본적인 것, 곧 “서로의 마음에 가 닿으려는 절실함과 진정성”이야말로 부버가 말하는 ‘근원어Grundwort’일 거라고 진단하셨지요(339쪽). ‘나-너’의 관계와 ‘나-그것’의 경험으로 구성되는 근원어의 균형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세상에서 인간다움의 온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안전 불감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유일무이한 ‘너’를 느끼지 못하는 증세가 더 큰 문제입니다. 공감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전’은 오히려 섬뜩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안전해 보여도 “그곳은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죽음의 벌판”(143쪽)입니다.


목사님의 편지들을 읽다가 다시 한 번 《나와 너》를 펼쳤습니다. 아예 목사님의 편지글과 포개놓고 읽었습니다. 제2부 〈사람의 세계〉에서 마르틴 부버는 ‘너’의 세계가 마비된 ‘그것’의 세계를 구석구석 소개해줍니다. ‘그것’에 갇혀 사는 사람들, ‘그것’의 세계에 만족하는 삶의 면면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이용하려는 욕망만 있지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힘은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특수성을 탐닉하고 자기라는 허상에 집착하며 그것을 숭배합니다. 참된 ‘너’를 만나지 못하는 ‘나’는 순간적인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꼭 우리시대 도시인들의 모습 같다고 느꼈습니다.


놀랍게도 《나와 너》 초고가 나온 해가 1916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의 일이네요. 온갖 갈등과 모순이 끔찍한 전쟁으로 터져 나온 시기에 부버는 인간다움의 알짬을 ‘나-너’ 근원어에서 찾아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처럼 지독한 ‘나-그것’의 세계에 포박된 우리가 어떻게 ‘나-너’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부버는 말합니다. “오직 일찍이 들어본 일이 없는 ‘전환Umkehr’ 곧 ‘돌파Durchbruch’가 있을 뿐이다.” 이 말은 결정적인 방향 전환을 뜻하는 히브리어 ‘테슈바(תשובה Teshuvah)’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전환은 아무래도 수평적 차원의 돌이킴이 아니라 저 하늘을 향한 온 존재의 솟구침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테슈바’를 묵상하다가 나에게 와락 닥쳐온 시구가 있었습니다. “세속 먼지 뒤집어쓴다 해도 정신은 흩어지지 않는 법 / 자신 속으로 밀리게 될 때는 돌파하라, 위를 향해!”(요한 볼프강 폰 괴테, 〈타리스만〉 중에서) 장쾌한 시어입니다.


아등바등 일상을 기고 있는 것 같은 마음에 홀연 비상飛上의 의지를 일깨우는 글들이 있지요. 제게는 목사님의 글이 그랬습니다. 때로는 먼저 힘차게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독수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아득한 고공비행을 앞두고 시계視界를 조망하는 독수리의 눈매가 저를 상쾌하게 긴장시켰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고진하 목사님의 시 〈독수리〉를 처음 읽었을 때(1997년)나 지금이나, 거기 ‘김기석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독수리는 지상의 온갖 번뇌에서 

잠시 발을 뗀 은수자처럼 보인다, 막 

털갈이를 끝낸 듯 야윈 몸뚱어리에서 

번져 나오는 은은한 광채!


어쩌면 목사님은 이 시 앞에서 손사래를 치시면서 ‘그거, 다 젊을 때 얘기야.’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썩은내 풍기는 사체 속에 부리를 / 처박고 사는 生일지언정, 드러난 부분보다 / 감춰진 것이 많은 것이 삶인 것을” 치열하게 증언하는 목사님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청년의 기백, 감투敢鬪의 기상이 서려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젊은 날의 영문 모를 열정과 작별하지 못한 것”(315쪽) 같다고 하셨죠? 그런 목사님이 친근하고 좋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있다면 길들여진 젊음”(323쪽)일 것 같다고 하셨죠? 그런 목사님의 매서운 질타를 양약良藥으로 받아들인 젊은이는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자기만의 날갯짓을 훈련할 것입니다. 시인은 막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김 목사님에게 헌정된 시를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아직 날아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푸르고, 넓고, 깊은 하늘을, 정적靜寂을

겹겹이 접어 잿빛 날개 속에 묻고 있을 뿐

(고진하, 《우주배꼽》, 세계사 1997).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이 바야흐로 높이 날아오르셨다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날고 있었지. 깊게 더 깊게, 지금도 독수리는….’



번역 시학詩學 poetics의 미학


그런 목사님 곁에서 꽤 일찍부터, 꽤 오랫동안 목사님의 목회를 보고 배웠지만, 저는 3년 전 비로소 늦깎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시작한 지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지요. 제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할머니께서는 제가 주님의 ‘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는데 마흔을 넘긴 나이에 안수를 받았으니 나름 버틴다고 버틴 셈입니다.


목사님께서도 “부름 앞에서 주저하며 자꾸 뒷걸음치던”(112쪽) 마음이 있었다고 하셨지요. 목사가 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까 심각하게 궁리할 때마다 제게 떠오르던 직업은 번역가였습니다. 알량한 외국어 실력이었지만 제 삶에 이력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그것밖에는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치열한 번역 노동은 제가 수년 간 경제적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알뜰한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세계를 치고 들어가 정신의 다리를 놓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우울한 일상 속에서 느슨해진 정신의 나사를 바짝 조이는 데도 단단히 한 몫을 한 것이 번역입니다. 그러니 ‘번역’ 얘기가 나오면 저의 눈과 귀가 번쩍 뜨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목사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번역’은 외국어의 자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고스란히 우리말로 옮겨놓는 일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기꺼이 하고 싶어 했던 그 일, 곧 번역은 훨씬 웅숭깊은 차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배운 번역 신학, 혹은 번역 시학詩學 poetics이라고나 할까요?


목사님의 편지글에 나타난 그 번역 이론을 저 나름대로 한 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진리가 몸과 마음에 배어들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법입니다. 그러니 방심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조급증을 내서도 안 됩니다. 공부는 문자 공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일쑤 말씀을 삶으로 번역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진짜 공부는 그런 것입니다(113쪽).


진리의 말(씀)을 구체적인 삶으로 옮겨내기 위한 정성스러운 노력studium이 번역이군요. 바로 이 일을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이 줄어들 때 종교는 하늘과 사람을 엮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엮어주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허울뿐인 제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가장 뛰어난 가르침宗敎’은 또한 ‘가장 뛰어난 다리宗橋’의 기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처럼 단절과 소외가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공동체적 삶을 통해 번역”(244쪽)해내는 일이었어요. 혼자서 진리를 삶으로 잘 옮겨내는 일도 소중하지만, 그 정신을 “공동체적 삶”으로 구체화하는 일은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목사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언뜻 “공동체”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허약한 영혼들의 패거리 짓기를 참 싫어하셨지요.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소수의 약자들에게 악마적 이미지를 덧씌워, 대중의 억눌린 폭력성이 그들을 향해 분출되도록 유도하는 우리 시대의 윤똑똑이,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들을 고발할 때 목사님의 문체는 허위의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화살을 닮았습니다. 주님께서 갈고 닦으신 화살, 그분의 화살 통에 감춰져 있다가 교만한 이들을 향해 곧게 날아가 꽂히는 예리한 화살(이사야 49:2) 말입니다. 하지만 참된 진리를 ‘공동체’적 삶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목사님의 편지에서는 햇살의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따스함이 또 애틋합니다. 아무래도 목사님이 오늘 우리 시대에 바라보고 있는 공동체적 연대의 뿌리가 ‘슬픔’인 탓인 것 같습니다.


슬픔이야말로 ‘너’에게로 건너가는 다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고통이 그냥 ‘나’만의 고통에 머물 때 감상 혹은 애상에 빠지기 쉽지만 그것이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화할 때 그 고통은 보편적 의미를 획득합니다(277쪽).


목사님은 ‘희망’의 존재 여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섣부른 희망이나 위로가 아닌 슬픔의 연대야말로 우리가 인간임을 재확인하는 길” 아니겠느냐고 되묻고 계십니다(278쪽). 그러므로 진리의 정신을 공동체적 관계로 번역해내는 일에 복무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타인의 아픔을 ‘차마’ ― 이것도 목사님이 참 아끼는 표현이지요 ― 외면하지 못하고 그들의 필요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136쪽)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삶을 회복할 수 있겠지요? 다시 한 번 부버를 인용하자면 모든 낱낱의 ‘너’에게서 “영원한 ‘너’의 나부낌”을 들을 수 있는 능력, 모든 낱낱의 ‘너’를 통하여 “영원한 ‘너’의 옷자락”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능력으로 말입니다.


‘번역飜譯’이라는 말을 연거푸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정성스러운, 그러면서도 탁월한 번역에 감사드리면서 저의 답장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목사님의 편지글 한 장 한 장이 그 번역의 산물이지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 그 넓고 깊은 하늘을 목사님은 쉼 없이 날고 날아서〔〕 풍요로운 성찰과 대화의 가능성을 한보따리 나눠 주십니다. 특히 사유하는 인간의 무늬〔人文〕가 아로새겨진 문예의 아름다움은 김기석이라는 번역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생생하게 스며듭니다. 그 뜻을 발견하여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품고 오래오래 날아와서 그 뜻을 기다려온 적잖은 사람들의 삶에 양식으로 안겨주는 어미 독수리! 목사님 덕분에 저는, 그리고 목사님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아름다움 앞에 자꾸 서보고, 그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 깊어갈 때 자기중심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88쪽) 있게 되었지요. 앞으로도 한참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은 땅의 현실에만 눈을 돌리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하늘을 잊고 살아갑니다. 큰 정신이 나오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요? 있음 그 자체로 다른 이들의 좁장한 마음을 넓혀주고, 시야를 확장시켜 주는 사람이 몹시도 그리운 시대입니다(141쪽).


그렇습니다. 바로 그래서 목사님이 몹시 그립습니다. 벌써 오래 되었네요, 목사님과 흔흔하게 북한산에 올랐던 때 말입니다. 아무리 바쁘셔도 시간을 내주시리라 생각해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함께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백일홍이 다 지기 전에….


손성현/창천교회 청년부 목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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