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4)


다말, 당신의 위험천만하고 대담한 행동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불편한 이야기들이 종종 눈에 띤다.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 이야기는 입에 올리기 거북한 가정사 중 하나다. 38장의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근친상간의 스캔들로 끝내는가하면, 누군가는 “가족관계증명서”로 읽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증명서 발급자가 다말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시아버지 유다가 주인공이 아니라 다말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세기 38장은 유다,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말, 그녀의 이야기다. 물론 이 말에 불편할 독자도 있겠다. 

    그동안 창세기 전체에서 38장은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아넘긴 사건(37장)과 요셉이 이집트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가게 된 사건(39장) 사이에 생뚱맞게 위치하여 해석자들의 관심거리였다. 더욱이 유다는 도덕적인 흠결이 있음에도 아버지 족장 야곱으로부터 가장 큰 축복을 받았다(49:8-12). 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국가로 발돋움한 후 유다지파 공동체의 조상으로서 다윗왕국을 수립하는 유력한 인물의 조상 아닌가. 이 때문에 38장은 다말의 관점보다는 유다의 관점에서 읽혔다. 여성이 이야기의 주인공 되기 어려운 남성중심 사회의 한계 안에 다말이 살았지만, 다말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어떨까.

    이야기는 “그 후에”로 시작한다(36:1). 야곱의 아들들이 유다의 제안대로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고 난 후였을 테다(36:25-36). 유다가 어쩌다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게 되어 세 명의 아들을 얻었다. 아들들의 이름은 엘(Er), 오난, 셀라였다(1-6절). 유다의 할아버지 이삭과 리브가는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가나안 사람의 멸망을 미리 알리셨던 것에(15:13-16) 근거한 것일 테다. 그런데 유다가 가나안 여자와 결혼했으니 불길한 징조다. 아니나 다를까.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해 다말(Tamar)이라는 여인과 결혼시켰는데, 엘이 죽고 말았다. 이유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이었다(6-7절). 엘의 히브리 발음 “에르”를 뒤집으면 ‘악’이라는 뜻의 히브리말 “라”가 된다. 죽을 만큼의 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알려지진 않았다. 

    이때 유다는 당대의 풍습을 따라 둘째 아들 오난을 형수 다말에게 보내 죽은 형제의 의무를 이행하게 했다(8절). 형의 대를 잇는 ‘계대결혼’이다. 이것은 남편 없이, 아들 없이 살아가는 고대 여성의 생존의 위태로움과 안위를 고려한 일종의 사회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오난은 자신에게 별 이로움이 없다고 생각하고, 죽은 형과 남겨진 형수를 위한 것이라 여겨 잠자리에서 정자를 흘려버렸다(9절). 이것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고, 여호와가 그도 죽이셨다(10절). ‘계대결혼이’ 가족의 의무로서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결혼했다면 책임수행이 뒤따른다. 오난은 무책임했다. 이때 유다의 행동 역시 돌출된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말한다.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이렇게 말한 유다의 속내는 곧 해설자의 목소리로 폭로된다. 유다는 막내 셀라도 그 형들처럼 죽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11절). 유다의 행동 역시 자신의 둘째 아들 오난만큼 이기적이고 무책임했다. 아들들의 죽음이 필시 며느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이즈음 이름도 없이 수아의 딸로만 소개된 유다의 아내이자 다말의 시어머니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채, 죽었다는 보고만 있을 뿐이다. 유다는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자기 양들의 털을 깎는 사람들이 있는 딤나로 내려갔다(12절). 삼손 이야기에도 언급되는(사사기14:1-2) 딤나의 위치는 확실하지 않다. 위치보다 중요한 것은 친정으로 돌아간 다말의 행동이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딤나에 올라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는 에나임 길에 앉았다(13-14절). 에나임의 위치도 확실히 알려지지 않지만, 신체기관의 하나인 “눈들”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시아버지가 “눈들”이 있는 거리에서 자기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창녀’(히브리말, “조나”)로 여겼다니(14-15절), 장소적인 역설에 익살스러움이 더해졌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다가가 하룻밤 동침을 요청하자 다말은 그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인지 묻는다. 유다는 염소 새끼 한 마리로 흥정했다. 유다에게 당장 현물이 없었던지 다말은 담보물로 도장과 도장을 묶는 끈, 지팡이를 요청하여 받았다. 이것으로 하룻밤의 잠자리가 성사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했다(17-18절). 이야기는 신속하게 전개되었다. 다말은 이후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다시 입었다(19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가 유다로부터 받은 도장, 도장을 묶어 목에 메는 끈, 그리고 권위를 상징한다는 지팡이, 모두 값비싼 물건은 아니어도 누구의 것인지를 식별하는 사적인 물건들이다. 다말은 이 일을 위해 주도면밀했다. 

    그렇게 며느리와의 하룻밤을 보낸 유다는 친구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보내 담보물을 찾아오려고 했지만, 그 여인을 찾을 수 없었다(20절). 이 남자는 사람들에게 에나임 길에 있던 ‘신전창녀’(히브리말, “케데샤”)를 수소문하지만, 거기에는 신전창녀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21절). 유다는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창녀’라고 했는데, 왜 친구는 ‘신전창녀’를 수소문한 것일까. 신전창녀와의 성관계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가나안 문화의 종교적 관행이었다. 관행에 기대 수치와 책임감을 조금이라도 면피하려는 의도였을까? 

    친구는 유다에게 그곳에 ‘신전창녀’가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자 유다는 부끄러움 당할지 모르니 그냥 두라며,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을 짚어주며 사건을 종결하려고 했다(22절). 그러나 삼 개월 후 며느리가 “행음하였고(잔타), 그 행음함으로(리제누님)”(23절)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 강조점은 유다의 친구가 사용했던 ‘신전창녀’와 관련된 어휘가 아니다. 유다가 사용한 ‘창녀’(조나)라는 말의 어근 동사의 반복 활용이 매우 의도적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유다는 그녀를 끌어내 불태우라고 한다. 유다의 분노는 며느리를 불태워 죽이고 싶을 만큼 컸을 테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한 익명의 어떤 사람은 유다가 말한 ‘창녀’와 관련된 어휘를 사용하고 있으니, 유다를 고발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마치 며느리를 향한 분노가 부당하다고 증언하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결국 다말이 끌려 나올 때,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말을 전한다. 

“이 물건의 주인 때문에 내가 임신하였습니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25절) 


공개적인 자리로 끌려나왔을 다말의 결정적 한 마디는 아마도 유다를 당혹스럽게 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마음 상태를 알리는 묘사는 없다. 유다는 담담하게 담보물들을 알아보고 말했다. 

“그녀가 나 보다 더 옳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26절)


    불편한 이야기 끝에 이르러 다말의 행동이 단지 성적인 일탈행위가 아니었음을 유다의 입을 통해 발설되었다. 유다를 통해 다말은 신의성실을 다해 자신의 결혼의무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이후 유다는 다시는 더 이상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26절)라고 강조하는 해설과 함께 며느리와 시아버지와의 불편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면밀히 살피면, 저자는 ‘창녀’와 ‘신전창기’라는 말을 교묘히 교차 사용하면서 유다의 잘못을 고발하고 강조한 셈이다. 그리고서 끝내 다말이 낳은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27-30절)의 이름에서 밝혀질 중요한 사실 하나를 여운처럼 남긴 채 38장은 끝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베레스는 룻의 남편이 될 보아스의 조상이 되고,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먼 조상이 된다(룻기 4:21-22).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12-50장)의 큰 주제는 후손을 통해 약속의 계보를 이어가는 일이다. 이 약속의 성취 맥락에서, 유다와 다말 이야기는 언약의 계보를 이어가는 연속적인 책임수행을 족장 야곱의 아들 유다가 아니라 다말이 그 역할을 이행했음을 보여주었다. 

    유다와 다말의 시대로 돌아가 생략된 다말의 마음을 꼼꼼히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다윗 왕의 여자 조상으로서(룻기4:21-22) 예수님의 족보에(마태복음1:1-6) 올랐으니 그녀 없이는 보아스와 다윗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여기’ 거룩한 말씀의 행간을 오가는 신앙의 독자로서 다말에게 말하고 싶다. 


‘종려나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다말, 당신의 위험천만하고 대담한 행동이 끝내 메시아 약속의 계보를 잇는 일이 되었군요. 그러나 그때 두렵지 않던가요? 당신은 죽을 수도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의 손에 들려졌던 유다의 지팡이, 슬픈 얼굴의 여자 족장을 상상해봤어요. 결국 당신의 시아버지 유다와 당신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그리고 신비 안에서 숨은 뜻을 이해하고 깨닫기까지 더딘 걸음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고백하게 합니다. 


김순영(구약학/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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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3)


여러 민족의 어머니, 사라


창세기는 태곳적 역사(1-11장)와 아버지 족장들의 이야기다(12-50장).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탄생하기까지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을 위한 약속의 담지자가 된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수메르의 수도 우르에서 살던 아브라함, 그에게 하나님은 땅과 수많은 자손을 약속하시면서 불러내셨다(창세기 12:1-3; 15:5; 22:17). 땅과 후손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서 멈추지 않고 그의 아들 이삭(26:3-5), 손자 야곱(28:13-14; 35:11-12)에게로 이어져 반복되고 확증되었다. 고대 사회의 장자 권리를 타파하고 작은 자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작동하지만, 창세기는 혈통의 부계 권리를 보강한다.


그런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불임이다(11:30; 16:1). 약속의 성취를 맛보기까지 아내 혹은 어머니의 상태가 묘사되지만, 여성들의 등장이 여성의 권리 옹호는 아니다. 여성들은 결정적 순간에 이야기 경계 밖으로,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로 이어지는 약속에서 어머니들은 그저 아버지의 주도권 아래 종속된 존재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는 순간에(12:1-3),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 중대한 국면에서 아내들과 어머니들은 없다.


사라졌던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을 위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것은 고대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신분 보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들 출산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역설적으로 약속의 계보를 이어가야 할 창세기의 어머니들은 모두 불임의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25:21), 야곱의 아내 라헬에 이르기까지(30:1-21) 아들을 원했지만 쉽지 않았다. 때문에 이들은 다른 여자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얻는 방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여성들도 한 사회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회적인 실체이지만, 창세기의 어머니들 묘사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측면들과 일치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이웃하는 나라들은 복잡한 아브라함 가족관계의 서술 속에서 드러난다. 이스마엘, 에돔, 암몬, 모압, 미디안, 동쪽의 아랍 족이 동일한 부계로 통일되지만(26:1-6), 이스라엘만 하나님 약속의 계승자였다. 일부다처제가 용인된 사회의 가족은 아내들 사이의 다툼을 가져왔고, 서로의 이익 충돌은 분열의 원인이었다.


때때로 남성들의 갈등과 지배력 문제들은 여성들을 통해서 결정되기도 했지만, 가족 갈등의 중심에 여성이 자리 잡게 된다. 이스마엘과 하갈은 사라 때문에 쫓겨나야했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어머니 조상들의 적극적인 행동은 자식 편애로 나타나곤 했다. 이것이 가족 관계의 갈등을 불러왔지만, 아버지들도 자유롭지 않다. 에서를 더 사랑했던 이삭, 요셉을 유달리 사랑했던 야곱의 편애는 형제들 간의 불화와 갈등을 만들었다. 여러 갈등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 위기로 이어져도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이 구속 역사의 원동력이었지만, 가족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약속의 위기를 가져오는 이야기들 중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 부부가 처음 등장할 때의 이름은 아브람과 사래다(12장). 그러나 17장에 이르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재확인시키면서 그들의 이름은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뀐다. 이로서 그들은 민족의 아버지(17:5), 민족의 어머니(17:15-16)로 부름 받는다. 하나님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위기에 처해지는데, 그 첫 위기는 사라가 두 번에 걸쳐 이방 나라 왕의 아내로 취해질 때다. 이들이 이집트에 머물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현지인들이 자기 아내를 탐내고 자기를 죽일까 염려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다(12장). 두 번째는 그랄 땅의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원할 때였다(20장).


이렇게 여자 조상인 사라의 위기는 하나님의 약속의 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땅을 약속하셨을 때, 어떻게 아내 사라 없이 자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런데 사라는 여성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남성들에 의해 주고받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사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12:13, 새번역)


사라가 이집트 왕에게 보내지는 과정에서 사라의 반응은 생략되었다. 사라는 아무 말이 없다. 사라는 남자들의 관계에서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사라는 자기 몸의 결정권을 갖지 못했고, 사라의 몸은 남자들끼리의 문제로 넘겨졌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까지 받은 자가(12:2-3) 자기 목숨을 구하겠다고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는 것이 가능한가. 구차해 보인다. 아내를 보호하려는 일에는 관심이 없지 않은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통로가 될 것은 물론이고 땅을 소유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자기 아내를 다른 이방 남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데 아브라함 때문에 발생한 위기 상황을 하나님이 해결하신다. 이 사건 이후에도 아비멜렉과 사라의 이야기 속에서 본문은 둘 사이에 어떤 성관계도 없었다는 것을 애써 밝힌다(20:4).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사라가 남편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리시고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셨다(20:4-7).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은 아비멜렉의 말과 행동으로 사라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쪽으로 진행되었다(20:16).


다행히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집트(12장)와 그랄 땅(20장)의 이방 왕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녀를 남편에게 되돌려 보냈다. 물론 두 이방의 왕들은 돌려보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이 원인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방 왕에게 재앙을 가져왔거나 죽음과 민족말살의 위협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하여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화해의 선물로 양과 소떼, 남종과 여종, 그리고 땅을 주었다. 그는 아브라함의 은밀한 행동과 달리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아내를 도구삼아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후대의 신앙인들에게 가부장적인 문화 안에서 생겨난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태도를 갖게 했다. 베드로 사도는 사라의 순종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언약의 담지자로서 남편과 아내의 동등함의 모범으로 사라 부부를 제시한다(베드로전서 3:6-7).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에게 사려 깊은 배려를 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지만, 사라는 칭찬을 받는다. 이 칭찬은 베드로가 살았던 그리스-로마 문화의 강력한 가부장적인 질서에 익숙한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를 하나님 일의 동등한 협력자로서 대우하도록 도전하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남편 된 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연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은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베드로전서 3:7)


이렇게 베드로 사도는 사라를 자기 시대로 끌어내어 신앙 공동체의 남편들에게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은 사람”으로 동등하게 존중하도록 요청했다. 남편 아브라함 때문에 위태로운 순간을 넘겼던 사라가 남편과 동등하게 “여러 민족의 어머니”(창세기 17:16)로서 부름 받은 사실은 후대 신앙인들의 말과 글로 재현될 때에야 묻히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신앙의 독자는 구약성경에 서술된 고대 이스라엘과 구속 역사에 묻어난 문화적인 간격들과 마주해야 한다. 이때 현대 독자의 눈에 납득되지 않는 불편함이 여럿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때로는 ‘불편한 지적질’을 하게 되는데, 불편함을 슬쩍 넘기지 않고 제기하는 것은 사소한 트집이 아니다. 거기서 질문이 생기고, 어쩌면 정곡을 찌르는 답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김순영/구약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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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2)


의로운 매춘부 라합


‘여호와의 종’ 모세의 지도력을 계승한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이 시작되었다(주전 15세기). 여리고성을 시작으로 아이성, 기브온, 하솔 등 여러 도시와 전쟁을 치러야한다(여호수아 1-12장).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광야에서 레바논까지, 큰 강 유프라테스에서 헷족속 온 땅과 서쪽 지중해까지다(1:4). 이미 아브라함에게 이집트 강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창세기 15:18) 것처럼, 약속의 성취 시점이 임박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 본격적인 정복전쟁이 시작되기 전, 가나안 땅 여리고성에 거주하는 매춘부 라합의 드라마가 자리 잡고 있다(2:1-24).


전쟁의 거친 함성소리가 들려오기 전이다.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정탐꾼 두 명을 여리고로 보내 은밀하게 요단강 서쪽의 상황을 엿보게 했다. 이때 정탐꾼들이 유숙하게 된 집이 “라합”이라는 “매춘부의 집”이었다(2:1). 현대사회도 그렇겠지만, 고대 사회에서 매춘부는 극심한 가난과 빚에 내몰려 선택하게 되는 생존을 위한 최후 수단이었다. 그런데 하필 정탐꾼들이 유숙하려고 찾아간 집이 매춘부의 집이라는 것이 불편했는지, 주석가들 중에는 히브리말 매춘부에 상응하는 “조나”를 “여관 안주인”(hostess) 또는 “여인숙 주인”(innkeeper)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매춘부라고 번역하더라도 각주에 여인숙 주인으로 명시하곤 한다. 마태복음 1장 5절의 예수님 족보에 라합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아스의 어머니요, 다윗의 조상이니(룻기 4:21) “매춘부”라는 것을 제거하고 싶을 만큼 불편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춘부 라합은 후대 신앙의 세대에 의해 칭송받는 믿음과 행함의 영웅이었다(히브리서 11:31; 야고보서 2:25).



정탐꾼들이 비밀리에 창녀의 집에 들어왔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파이로 잠입해 들어온 사실을 여리고 왕이 듣게 되었다(2절). 어떻게 이 사실이 알려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된 채로 여리고 왕의 부하들이 라합의 집에 들이닥쳐 스파이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할 때는 이미 늦었다. 라합이 두 사람을 숨긴 뒤였다. 그리고 라합은 정탐꾼의 행방을 묻는 자들에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거니와 이미 떠났고, 성문 닫을 때쯤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라합은 그쯤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 서둘러 뒤따라가라며 따돌리기까지 한다(3-5절). 그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탐꾼 뒤를 추적하며 요단강 나루까지 갔고, 성문은 닫혔다(7절).


스파이를 쫒는 여리고 왕의 사람들은 성문 밖으로 나간 상황, 쫒기는 자들은 성문 안쪽 라합의 집 지붕에 숨었다(6절). 왕의 사람들을 따돌린 라합이 지붕으로 올라왔다(8절). 가나안 지역 대부분의 집들은 지붕이 평평하여 곡식을 말리거나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몸을 숨길만한 곡식 자루들이 있을 법하다. 이때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고백한다.


“나는 주님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것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이 땅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당신들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2:9, 새번역)


그녀의 말은 두 명의 정탐꾼도 놀랄 일이었지만, 독자도 놀랄만한 일이다. 이 말은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을 찬양한 모세의 노래에 담긴 내용 일부처럼 들리니 말이다(출애굽기 15:15-16). 그녀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홍해를 가르고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옥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듣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다고 말하지 않는가(10절). 라합의 말의 강조점은 가나안 주민이 이스라엘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녀의 결정적인 고백은 남달랐다.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믿음의 고백이며 증언이었다.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위에서, 과연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2:11)


그런데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서 재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처럼 정탐꾼들에게 확답과 맹세를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당신들도 내 아버지의 집안에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주님 앞에서 맹세를 하시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확실한 징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부모와 형제자매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식구들을 살려주시고, 죽지 않도록 우리를 구하여 주십시오.”(2:12-13)


라합의 요구는 구체적이고 강력했다. 그녀의 말에서 그동안의 삶의 고단함과 절실함이 묻어난다. “나의 아버지의 집”과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식구들”로 표현된 가족의 범위는 친척들까지 포함한 구원요청이었다. 라합 집안의 운명이 집안을 대표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오로지 그녀에게 달렸다. 그녀의 요청이 수락된다면, 불가피하게 원하지 않은 딸의 매춘으로 비참한 삶의 결핍을 보충했을 가족은 미천한 딸에 의해 다시 생명 보존의 기회를 얻게 된다. 적어도 그녀의 말에서 가부장적인 집안의 위계질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타파되고 있는 셈이다.


라합은 이집트 제국의 억압아래 노예의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후손도 아니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귀로 들은 하나님의 구원 사실만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라합은 혈통적인 정체성과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는 이방인의 믿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강도 높은 라합의 요구만큼이나 라합에 의해 위기를 모면한 정탐꾼들 역시 목숨을 내놓고라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들은 여호와가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친절과 성실”(새번역; 히브리말, “헤쎄드”와 “에메트”)을 다해 대우할 것을 약속한다(14절). “친절”에 상응하는 “헤쎄드”는 언약적인 충성을 뜻한다. 라합과 정탐꾼들 사이에 신실하게 수행해야 할 계약관계가 수립된 것이다. 무엇보다 “헤쎄드”와 “에메트”는 구약에서 짝꿍 단어로 자주 사용되는데, 하나님의 견고한 사랑과 신실함 곧 지속적인 돌봄을 표현한 개념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자비로운 행위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이렇게 라합은 자기 가족과 친척들의 안전과 보호를 보장받고 성벽에 붙은 창밖으로 정탐꾼들을 탈출시킨다(15절). 그녀의 집 위치는 분명하지 않지만, 성벽 사이에 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변방의 소외된 신분이라는 상징성이 농후하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내려 보내면서 3일 동안 산에 숨었다가 추적자들을 따돌린 후에 돌아갈 것을 당부한다(16절). 라합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된 정탐꾼들 역시 그녀에게 마지막 당부를 한다. 그들은 라합에게 홍색 줄을 건네고 이스라엘 백성이 진군해 오는 날 창문에 매달아 두면, 이 홍색 줄은 라합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모든 친척들에게 희망이 될 것을 약속한다. 단, 누구도 라합의 집밖으로 나가면 안 되고 비밀은 지켜져야 한다(18-20절). 라합은 정탐꾼들의 말대로 “홍색의 희망”을 묶었다(21절).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던 날, 라합이 요구한대로 그녀의 아버지 집안과 그녀에게 속한 모든 가족들은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이스라엘에 거주하게 되었다(6:25)라는 라합의 “홍색의 희망”과 구원 드라마는 ‘지금여기’ 우리에게 왜 전해져야 했을까?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편입되는데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태생적 근거는 라합에게 유효하지 않았다. 매춘부라는 직업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라합의 드라마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히브리서 기자의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을 영접하여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히브리서 11:31)라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전리품을 챙긴 불순종 때문에 ‘진멸’당한 아간과 그의 자녀들 이야기를(여호수아 7장) 대비시킨다. 이뿐 아니라 야고보 사도는 “행함으로” 라합이 의롭다함을 받았다(야고보서2:25)라고 칭송했다. 신약의 두 본문이 믿음과 행함의 강조점의 차이로 보이지만, 믿음과 행위 중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서로를 보충한 것이다.


그리고 라합의 드라마는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최고 민족으로 부추겨 자칫 승리주의적인 역사관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구원 목적과 범위를 깨닫게 한다.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남성의 성적 욕구해소의 도구였기에 가나안 사회에서도 소외되고 유린당했을 라합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닿았다. 이후 먼 훗날 라합은 온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는 은총을 입는다. 그렇게 라합은 낮고 비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역사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지금여기’ 기록된 말씀을 듣는 믿음과 행함의 치우침 없는 실행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생산되어 확장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약자가 교회공동체 안에서 환대받고 있는가. 중산층의 교회를 열망하는 아니 이미 중산층의 교회가 된 한국 교회는 낮은 곳을 향한 연민을 잊은 듯하다. 이 땅의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지만 전리품에 눈멀어 불순종했던 아간의 진멸과 같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김순영/구약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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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1)


부조리한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랑 노래를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의 목소리와 그들을 경축하는 합창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묘사 하나 하나가 아름답고 고상하다. 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랑노래에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유달리 많다. 70절의 젊은 여성의 노랫소리와 40절의 젊은 남성의 목소리에 더해 친구들의 목소리가 어울려 있다지만, 눈을 의심하고 귀를 의심하게 된다. 노래 첫 소절부터 젊은 여성의 적극적이고 에로틱한 사랑 묘사가 남다르다. 남녀의 사랑 관계에서 주로 여성이 사랑 받는 수동적인 역할의 고정된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매우 정제된 언어의 품격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연애시 <아가>는 “솔로몬의 아가”(아가 1:1)라는 표제의 예측과 달리 여성의 목소리가 우세하다. 실제로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솔로몬에게 속한 노래인지, 솔로몬이 쓴 것인지, 솔로몬에게 헌정한 노래인지 모호하다. 사랑에서 성 역할의 평등함을 노래한 것일까. 고대의 사랑 노래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이들의 고정화된 시각을 흔들어 깨운다.


내게 입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가1:2).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2:8)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0)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2:10)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3)


아가서의 히브리 성경 제목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솔로몬을 위한(솔로몬에게 속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1:1)이다. 그런데 남녀의 로맨틱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앞에 위치한 전도서와 오묘한 역설적 연결이 보인다. 전도서의 저자 전도자(히브리말, “코헬렛”)의 첫 마디, “헛되고 헛되다”(1:2, “하벨 하발림”)라는 ‘헤벨’(헛됨, 공허, 허무, 부조리)의 최상급 표현처럼, 아가역시 최상급의 표현, 가장 아름다운 노래(“쉬르 핫쉬림”)라는 언어적인 연결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삶의 양극적인 일들, 이를테면 삶과 죽음, 지혜와 어리석음, 시작과 끝, 허무와 기쁨, 사랑과 미움, 정의와 불평등 같은 뒤얽힌 현실들의 부조리를 발설한 책, 전도서. 세상사를 면밀히 관찰하고 짚어가며 중용적 가르침을 역설한 지혜 선생 코헬렛의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지극한 사랑 노래가 들려오지 않는가. 역설의 미학이 만나는 경계 같다. 지극히 부조리한 세상 뒤편에 지극히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으니.



주인공 젊은 여성(술람미 여인, 6:13)과 그녀의 연인과의 사랑의 열정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아가. 그런데 사람 몸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애적인 묘사들을 거침없이 표현한 노래여서 유대교와 기독교 교회 역사 속에서 해석적인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젊은 연인들이 서로를 향해 몸에 대한 찬사를 쏟아놓은 노래와 육체적 사랑에 흠뻑 도취된 언어들이 어떻게 거룩한 정경으로 신앙 공동체 안에 자리 잡았는가는 물론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의 대부분이 에로틱한 표현과 육체적 매력들의 과장된 심상이 묘사되었으니 말이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4:3-5)


이처럼 성(sexuality)과 성적인 욕구의 솔직한 과감성을 드러내도 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앞에 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왜냐하면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이라는 신성한 관계(창세기 2:24) 안에서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가를 노래로 주석해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과 성은 하나님 창조의 일부였기에 남자와 여자를 하나 되게 하는 결혼관계 안에서 혼인을 앞둔 젊은이들은 사랑 표현의 구체성을 아가로 교육받은 셈이다. 그렇게 아가는 고대 이스라엘 신앙인들에게 지혜의 가르침과 배움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아가는 결혼 밖에서의 외설적이고 천박한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신성한 혼인관계 안에서 성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고대근동 국가들은 풍요를 갈구하는 종교들의 신전창기제도가 만연되어 있었고, 도덕적인 기준을 약화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의 태초 목적과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성적인 활동을 혼인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왜곡시켰다. 이러한 이교적 환경에서 아가의 혼인 첫날밤의 성애적 표현은 우아하여 당대의 독자로 하여금 예술적인 심미성을 자극했으리라.


지금도 여전히 고대 젊은 남녀의 고풍적이고 서정성 짙은 아가의 언어들은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내며 사랑을 잊은 이들에게 ‘죽음처럼 강렬한 사랑’(8:6) 노래를 부르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출신성분을 따지고 높은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에 자기계발로 응답하다 지친 젊은이에게, 자식들 뒷바라지와 먹고 사는데 지쳐 서로에게 애틋한 사랑노래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부모 세대에게 사랑의 힘을 잊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흔들리는 사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사랑의 힘을 과시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처럼.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8:6).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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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0)

 

 금식의 날은 축제의 날이 되어, 에스더(2)

 

하나님의 부재는 현존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했던가. 때로는 보응의 원리와 도덕적 확신마저도 깨뜨리시며 철저히 자유로우신 하나님. 세상의 모든 일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유일한 원인자 아니신가.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시고,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시는 분(이사야 45:7; 욥기 5:18),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시는 분이다(사무엘상 2:6-7). 그 하나님이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아래 억압받는 소수민족 유대인의 남은 삶을 어떻게 이끄실 것인가.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교수대를 만든 그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궁중실록을 읽게 했다. 이때 왕은 자신을 향했던 암살 음모와 그 일을 고발한 모르드개의 기록을 듣게 된다(6:1-2). 왕이 측근 신하들로부터 모르드개를 위한 어떤 보상도 없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즈음, 때마침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한 허락을 받으려고 궁 바깥뜰에 와있었다(3-5절). 왕은 하만에게 특별 대우할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자 하만은 그 수혜자가 자기 자신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6절). 그러나 운명을 가르는 반전의 상황이 일어났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은 그렇게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정되는 것일까.

 

착각에 취한 하만은 의견을 내놓았다. 왕이 높이고자 하는 사람에게 왕복과 왕관을 씌우고 말에 태워 거리를 누비며 왕의 존귀를 입은 사람은 이런 처우를 받게 됨을 알리라는 것이다(8-9절). 왕은 즉시 하만에게 명령을 내린다.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왕의 옷과 관을 씌우고 말에 태워 거리로 나가 모르드개가 존귀한 자임을 외치라는 것이다(10-11절). 하만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그는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 놓였다.

 

하만은 왕과 함께 예정되었던 에스더의 잔치에도 참여해야 했다(7:1). 왕은 술 마시며, 왕후 에스더에게 이전처럼 소원을 묻는다(2절). 에스더는 가장 적합한 때를 기다린 만큼 기회를 지혜롭게 적극 활용했다. 그녀는 정중했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다면…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3절).

 

에스더는 진실을 말할 때를 놓치지 않았다. 탄원에 가까운 청원이었지만 처음부터 하만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다. 먼저 왕의 이름으로 공포한 칙령을 인용하여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4절; 3:13)을 당하게 된 자신과 민족의 현실을 호소했다.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만일 우리가 노비로 팔렸다면 잠잠하였으리이다…(4절).

 

 

 

에스더는 차라리 노예로 팔렸다면 침묵했겠지만, 왕에게 큰 손실이 될 것처럼 정치적인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인양 노련했다. 그리고서 에스더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릴 가장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그런 일을 꾸민 자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밝히라는 왕에게 비로소 에스더는 대답했다. “대적과 원수는 악한 하만입니다.”(6절) 왕은 노하여 잔치 자리를 떠났고, 하만은 왕후의 자비를 구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때였다. 왕의 내시들 중 한 사람이 왕의 암살음모를 고발한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하만이 준비한 교수대가 있음을 보고한다. 보고를 들은 왕은 즉시 명령을 내렸고, 하만은 자기가 만든 장대에 매달려 죽게 되었다(7-10절). 자신이 판 웅덩이에 자신이 빠지고 말았다.

 

 

왕은 하만의 재산을 몰수하여 왕후에게 주고, 왕은 하만에게 주었던 인장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맡겼다(8:1-2). 그러나 하만에 의해 이미 작성된 유대 민족 학살 칙령은 해결 과제로 남았다. 에스더는 왕의 발 앞에 엎드려 하만의 악한 음모가 실행되지 않도록 탄원한다(3절). 그녀는 왕에게 “나의 겨레가 화를 당하고, 나의 친족이 망하는 것을 어찌 눈뜨고 볼 수 있겠습니까”(6절)라며 용감하게 말했다. 에스더 왕후의 말을 듣고 왕은 행정 권력을 모르드개에게 이양하여 새로운 법령을 위한 조서를 작성하게 했다(8절). 이것은 곧바로 왕의 서기관들에 의해 기록되어 인도에서 이디오피아에 이르는 127지방에 흩어진 유다 사람들과 대신들, 총독들, 귀족들에게 신속하게 보내졌다(9-10절). 유대 민족의 죽음을 알리는 칙령은 생명을 구하는 조서로 바뀌었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고, 죽음의 날은 생명의 날이 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권력구조는 언제든 변경될 수 있고, 확실해 보였던 어떤 힘도 영구적일 수 없다.

 

이 사건은 유대 민족에게 합법적인 원수 갚는 날을 준비하는 칙령이 되었다(13절). 왕명을 시행하는 12월 13일, 이날은 본래 하만에 의해 유대인들이 죽게 되었던 날이었지만, 모든 상황은 역전되었다. 고대 이스라엘 지혜자의 말처럼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었다(잠언 16:33). 유대 민족이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 아래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신앙적인 용기, 지혜, 올곧음은 민족의 안전과 운명을 바꾸는 도구였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돌봄이 사람의 협력과 만나는 지점이었다. 온당치 못한 힘의 사용은 꺾였고, 사익추구가 아니라 민족의 위기를 위해 지혜롭게 사용된 힘은 선한 일들을 창조해냈다.

 

이렇게 학살 위기를 넘긴 유대 민족은 12월 14일을 공휴일로 제정하고 구원을 경험한 축제의 날로 삼았다(9:17-18). 공포의 13일은 뒤바뀐 운명 속에서 안전하게 지나갔다. 하만의 악한 음모는 도리어 유대인들의 연대의식과 공동체성을 강화시켰다. 하만이 유대인을 진멸하려고 “푸르”(제비, 또는 주사위; 개역개정, “부르”)를 뽑던 날, 에스더 왕후는 왕 앞에 용감하게 나섰고, 하만의 악한 음모를 폭로하고 뒤엎어 그를 나무에 매달은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모든 가족과 모든 세대는 해마다 이 날을 지키기로 했다(20-27절).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전권을 가지고 “푸림”(“푸르”의 복수형)에 관련된 글을 써서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는 제국의 127지방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보냈다. 그들의 언어는 평화와 진실한 언어였다. 이 사건은 법적으로 인증되고 문서화되었다(28-31절). 이렇게 왕후 에스더의 요구에 따른 유대 민족이 금식과 탄식의 시간은(4:16) 삶을 경축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날이 되었다.

 

“푸림”축제를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은 아니지만, 모세 또는 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대리자를 통해 수립된 것도 아니지만, 에스더의 명령에 따라 법규로 정해진 이 기록은 절망과 애통의 날이 축제가 된 일을 기억하게 하는 증언이 되었다(9:20, 26. 29, 32). 에스더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삶을 사는 수동적인 소녀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급격한 변화와 성장을 경험했다.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문화에서 그녀는 남성이 지배하는 체제를 노련하게 이용하여 목적을 성취했다. 에스더서는 에스더의 지혜롭고 능숙한 행위들을 언급할지언정 하나님의 뜻을 직접적으로 진술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진전시키는 일을 수행한 셈이었다. 하여 에스더는 억압 받는 소수를 위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유대인의 영웅으로 기꺼이 채택된 것이다. 물론 현대의 시각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폭력의 사용은 비난받을 일이지만, 에스더가 살았던 시대적 환경에서 직면해야 했던 일이었다.

 

모든 지리적 경계를 넘어 신앙의 후속 세대들은 에스더의 이야기를 통해 이전 세대가 경험한 구원을 기억할 것이다. 이스라엘 조상들의 출애굽처럼 가시적인 하나님의 기적과 혁혁함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과 곤란함 중에 있을 때 거기 함께 계셨다는 것을. 하여 하나님은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사람들을 통해 조용히 완벽하게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끝내 악한 대적자의 식탁은 엎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고통의 현장이 축제의 자리로 바뀌는 날이 되도록 누군가는 지혜와 신앙적인 용기를 삶의 덕목으로 삼고 실천할 것이다. 아니 우리 모두 그러하기를.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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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9)

 

에스더, 민족의 위기 앞에 침묵하지 않고 행동했다(1)

 

고대 이스라엘 포로기 역사 속에 ‘하닷사’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적인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별’이라는 뜻의 페르시아 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녀의 히브리 식 이름 ‘하닷사’는 팔레스타인이나 지중해 연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색 꽃을 피우는 화석류 나무를 뜻한다. 향을 품은 이 나무는 잎을 찧을 때 향기를 뿜어내는 허브 종류의 관목이다. 이 나무는 백향목, 소나무와 함께 종말론적 희망과 회복을 상징하는 식물로 언급되기도 한다(이사야 41:19; 55:13).

 

에스더는 페르시아 제국 아하수에로 왕(주전486-464)의 왕후 와스디가 왕의 잔치 참여를 거부한 불복종 때문에 폐위당한 후 왕의 분노가 누그러지는 시점에 등장한다(에스더 2:1). 자기애로 가득 찬 경박한 왕의 권력에 불복한 와스디가 폐위되고, 이후 왕의 젊은 측근 관료들은 왕을 기쁘게 해줄 새 왕후를 찾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했다. 곧바로 관료들은 아리따운 젊은 처녀를 찾기 위해 미인대회를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절대 권력자 아하수에로 왕의 지혜로운 통치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에스더 이야기 역시 앞선 와스디 왕후의 일화만큼이나 정치적 풍자가 농후하다.

 

에스더의 등장에 앞서 바벨론 느브가넷살 왕이 유다 왕 여고니야를 포로로 잡아갈 때 예루살렘을 떠나야했던 베냐민 자손의 유대인이 등장한다. 모르드개다. 그는 사울 왕의 아버지였던 기스의 증손이고(사무엘상 9:1), 사울 왕을 열렬히 후원했던(사무엘하 16:5) 시므이의 손자이며, 여일의 아들이었다(5절). 이 유력한 가문 출신의 모르드개의 사촌 여동생이 에스더이다. 에스더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딸처럼 양육했다. 에스더는 용모가 곱고 아름다운 젊은 처녀였다(7절). 에스더의 아름다운 외모 묘사는 제국의 왕실이 주관하는 미인 대회의 자격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슬쩍 제시한 셈이다.

 

드디어 왕의 측근들이 기획했던 미인대회 조서가 반포되었고, 에스더 역시 지원자로 나섰으며, 선택된 여러 젊은 처녀들과 함께 12개월 동안 궁녀를 관리하는 헤개의 수하에 있게 된다. 헤개는 7명의 시녀를 에스더에게 붙여주고, 가장 좋은 숙소를 제공하는 등 무슨 이유로 에스더를 남다르게 대우했는지 알 수 없으나 히브리 소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9절).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행하시는 신실한 사랑과 친절을 이방인 관리가 실행한 셈이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지시대로 자신의 국적에 따른 출신성분을 밝히지 않았고(10절), 다른 소녀들과 함께 왕 앞에 가기 위한 절차들을 따랐다(12-14절). 그러니까 페르시아 제국의 궁에서 자신의 민족적, 신앙적인 뿌리와 정체성을 숨긴 셈이다. 이후 에스더가 왕 앞에 가게 된 것은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 7년째였다(16절). 왕후 와스디가 폐위 된지 4년 후쯤이다. 왕은 에스더를 보고 완전히 압도당했다. 왕은 그 어떤 젊은 여자들보다 에스더를 사랑했고, 에스더는 왕의 총애와 은총을 받고 와스디를 대신해 왕후가 된다(17절).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권력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에스더의 아름다움이 엄청난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다.

 

 

 

왕은 에스더를 위한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왕은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해줄 뿐만 아니라, 이 날을 공휴일로 선포하기까지 했다(18절). 제국의 왕과 포로민 유대 소녀와의 결혼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이다. 이것은 요셉이 바로의 궁으로, 다니엘이 느브가넷살의 궁으로 들어간 일들처럼, 에스더 역시 억압 받는 신분으로서 왕과 긴밀한 관계로 묶여진 사건이다. 이렇게 포로민이며 고아였던 유대인 젊은 여성과 이방 왕의 결혼은 역사의 새로운 국면을 이어간다. 유대인 젊은 여성을 왕후로 맞이한 왕에게 정치적 위기가 닥쳤다. 때마침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는 가신들의 음모를 듣게 되고(21절), 모르드개는 이 일을 에스더에게 알렸다. 에스더는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려 조사를 착수하게 했고, 암살 음모는 좌절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삶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중대한 동인이 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왕은 대신들 중 아각 사람 하만이라는 자를 가장 높은 장관으로 임명한다(3:1). 이때 궁궐 문의 모든 신하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하만에게 엎드려 절했지만 모르드개만은 예외였다(2절). 모르드개는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지나친 충성을 요구하는 명령을 부당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명령에 불복종했다. 단지 이것 때문이었을까? 하만의 조상 아각은 아멜렉의 왕이었고, 아각이 모르드개의 조상 사울의 대적이었던 것도(사무엘상 15장) 한몫했으리라. 하만은 모르드개를 향한 치밀어 오르는 개인적인 분노를 민족적인 혐오로 확대시켜 잔인한 방식으로 발산한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는 모든 나라에 흩어진 유대 민족을 파멸시킬 대량학살을 획책한다. 이때가 아하수에로 왕 통치 12년째 되는 해였다. 페르시아의 궁정은 연례적으로 상서로운 달을 결정하는 제비뽑기 행사를 열었는데, 하만도 참여했다. 그는 기회를 엿보다가 왕에게 접근해 왕의 법을 지키지 않는 민족이 있다는 거짓되고 악의적인 보고를 한다(5-8절).

 

거기다 하만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제공하겠다는 제안까지 하니(8-9절). 왕은 인장 반지를 하만에게 내주면서 행정적인 최고권위를 부여한다. 권력을 거머쥔 하만은 왕의 칙령을 선포하는데, 이것은 서기관에 의해 작성되고, 각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국에 반포되었다. 그 칙령 내용은 12월 13일 하루 동안 유대인이라면 젊은이, 늙은이, 여인,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하라는 것이었다(10-13절). 유대인을 증오하는 잔혹한 권력자의 손에 유대인의 운명이 기로에 놓였다. 무자비한 권력 때문에 대량학살 위기에 처해진 유대 민족은 슬픔과 공포의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이때 모르드개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공개적인 장소인 성문 앞 광장 에서 대성통곡했다(4:1). 각 지방의 유대인들은 납득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조복을 걸치고 울부짖으며 금식했다(3절). 이때 왕후 에스더는 시녀와 내시들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듣는다. 또한 왕에게 자비를 구하여 민족을 살릴 수 있도록 탄원해 주기를 요청하는 모르드개의 말을 전해 듣는다(4-9절).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에스더는 30일 동안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 상황이었고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왕 앞에 나갈 수 없었다(10-12절).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14절)라는 말을 전했다.

 

이때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전한 회신 내용은 민족의 위태로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운명을 걸고 용기와 믿음으로 맞서는 말과 행동계획이었다. 에스더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3일 동안 금식을 요청하고, 자신도 금식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규례를 어길지언정 왕에게 나갈 결심을 전했다(13-16절). 이제 주도권은 모르드개가 아닌 에스더에게로 넘겨졌다. 수산 궁 안에 있는 에스더는 궁 밖에 있는 자신의 공동체와 함께 금식하면서 잔혹하고 부당한 일 앞에 침묵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설 것을 밝힌 것이다. 이제 유대 민족의 유일한 희망은 이 젊은 여인에게 달렸다.

 

금식 3일째 되는 날, 에스더는 왕의 명령 없이 왕 앞에 나섰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왕후의 예복을 갖추고 왕궁 뜰로 갔다. 왕은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보고 기뻐했고. 오랜만에 왕후를 만난 왕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주겠다(5:1-3)라며 과장된 말로 자신의 권력 자랑도 모자라 사랑마저 과시한다. 에스더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잔치에 왕을 초대하고 싶다면서 자기 민족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 하만의 동행을 요청한다. 왕은 그녀의 요청대로 하만이 잔치에 참여하게 했다(4-5절). 왕은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왕이 와스디 왕후를 왕의 잔치에 초대했던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잔치는 시작되었다. 술 마시며 잔치가 무르익어갈 즈음, 왕은 에스더의 소원을 묻고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런데 에스더는 왕에게 내일 다시 여는 잔치에 하만과 함께 참여하면, 소원을 말하겠다는 것이다(6-8절). 에스더는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려는 것이었을까. 에스더의 숨은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한 하만은 무엇인가 대단히 착각하고 마음이 흐뭇해져 궁을 나선다. 하만은 가족들에게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왕과 함께 초대받은 것을 자랑하며 떠들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모르드개의 행동은 여전히 눈에 거슬렸다. 때마침 이것을 지켜보던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이 조언한다. 그들의 조언은 23미터 높이의 장대에 모르드개를 매달도록 왕에게 청하고 잔치를 즐기라는 것. 하여 하만은 곧바로 교수대가 될 장대를 세웠다(9-14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끼어들었다.

 

에스더의 이야기에는 인간의 행위만 있을 뿐,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는다. 여호와 신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율법, 언약, 성전도 없다. 하나님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꺼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 페르시아 제국 수산 궁의 에스더, 모르드개, 그리고 유대민족의 운명을 누가 알겠는가?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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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8)

 

왕의 권력을 조롱한 왕후 와스디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권력의 드라마는 그 권력 아래서 대항하는 행위와 증언으로 나타나곤 한다. 권력과 관련한 구약의 이야기들은 약한 타인을 희생물 삼아 특정 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힘의 과시에 두지 않고 섬김을 그 바탕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제국의 역사 어디를 들여다봐도 권력은 힘의 과잉을 추구하고 축적하여 민중을 억압했을 뿐이지 섬김의 지도력은 아니었다. 구약성경은 창조사건 이후로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민족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고대근동의 작은 도시국가들과 제국들과의 각축전 속에서 펼쳐지는 구속 역사의 드라마다. 이 거대한 드라마에 작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장차 정치적 음모와 권력의 칼끝이 유대민족을 향하는 학살의 위기가 닥쳐오기 전, 왕의 권력에 불복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 이야기다.

 

때는 페르시아 제국 아하수에로 왕이 인도에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던 때였다(에스더 1:1). 왕이 즉위한지 3년 된 시점(주전 483년), 왕은 수산 궁에서 지방의 귀족들과 관료들을 위해 잔치를 열었다. 잔치는 180일 동안 이어졌고, 왕은 왕궁의 부유함과 위엄, 그리고 혁혁한 공로들을 자랑하려고 보물 전시회까지 열었다(3-4절). 도성의 주요 인물들을 소집한 것은 통치 기반의 기초를 다져 세력 강화를 꿈꾸는 왕의 열망과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셈법으로 보인다.

 

이후에 왕은 왕궁의 뜰에서 귀천을 막론하고 수산 도성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위해 7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5절). 고급스러운 청색의 휘장을 비롯해 대리석 기둥, 금과 은으로 만든 의자들, 진귀한 갖가지 돌로 만든 모자이크 바닥위에서 왕의 호사스러운 잔치는 계속되었다. 금과 은으로 만든 잔, 끝없이 오가며 건네지는 왕의 술잔, 손님은 마시고 싶은 대로 마셨다(6-8절). 사치와 향락이 물씬 베어난 왕의 잔치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거둬들인 조공과 조세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때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 와스디 역시 왕궁에서 여인들만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9절). 왕은 술에 취해 왕실의 내시 7명에게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가 왕후의 관을 쓰고 왕 앞에 나오도록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왕은 자기 왕후의 아름다움을 뭇 백성과 지방 관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9-11절). 잔치에 취해서 자기도취적 영광에 흠뻑 빠진 왕은 지금껏 자신의 위대함을 자랑한 것처럼 왕후 역시 자기 소유물처럼 자랑거리로 삼으려 했을 터. 그러나 상황은 왕이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왕후는 왕이 벌여놓은 잔치참여를 거절한다. 그러자 왕은 와스디 왕후의 불복종에 격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왕은 “마음속이 불붙는 듯 했다”(12절).

 

본문은 왜 와스디 왕후가 잔치를 따로 열었는지, 왕의 명령에 불복종 했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왕후의 거절은 사치와 쾌락으로 버무려진 왕의 잔치에 찬물을 쏟아 붓는 역할이 되고 말았다. 왕후의 불복종은 제국의 왕이 누리는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왕보다 위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제국의 왕이 왕후의 불복종 때문에 조롱받게 된 셈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자만과 영광을 자랑하려는 잔치였지만, 도리어 술에 취해 앞뒤분간 못하는 경박한 왕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제국의 영광을 자처하는 왕의 권위가 왕후의 불복종 때문에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제국의 권력이 주는 단맛에 흠뻑 취해있던 왕은 왕후의 거절과 불복종에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서 왕은 전례에 따라 전문적인 법률적 조언을 듣기 위해 현자들을 불렀다. 이들은 행정을 돕는 학자적인 보좌관들인 셈이다. 왕은 그들에게 왕명에 복종하지 않은 왕후 와스디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물었다(13절). 이때 왕의 기색을 꼼꼼히 살피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있었으니 므무간이라는 자였다. 그는 왕국의 최고 실세였던 일곱 명의 지방관 중에서도 왕의 최측근 인물이었다(14절). 그는 왕후의 문제 행동을 짚어가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째, 왕명에 불복종한 왕후 와스의 행동이 여염집 여인네들에게 알려지면 남편을 멸시할 것이고, 귀부인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단정하며 확대해석한다(16-18절) 므무간은 여인들의 연대 행위에 따른 불안감을 바짝 조성한다. 그러니까 므무간의 말은 왕후 와스디의 불복종이 왕실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국 전체의 반역의 기운을 불어넣는 조짐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뜻이다. 사적인 왕실의 문제가 국가적인 혼란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므무간의 예측은 왕을 긴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둘째는 해법 제시다. 므무간은 왕의 조서를 내려 제국의 법률에 기록하고, 왕후가 왕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할뿐더러 왕후의 자리를 박탈하고, 왕후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내용의 조언이었다(19절). 왕은 조서가 전국에 반포되면 모든 여인들이 각자의 남편을 존경할 것이라는 므무간의 조언을 받아들였다(20절). 그리고 모든 지방에 남편이 집안을 주관하는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각 민족 언어로 선포하게 했다(22절). 한마디로 이 칙령은 왕후에게 인정받지 못한 권위와 자존심 회복을 원하는 왕에게서 시작된 것으로서, 모든 남편들이 아내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라는 법령인 셈이다. 제국의 왕이 자신의 왕후에게 굴욕당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조언자의 법령에 만족해하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인가. 권위를 상실한 권력자의 안쓰러운 민낯이다. 최고 권력자의 눈치만을 살피는 최측근 관료의 한마디 말만 믿고 곧바로 법률로 정하는 경박하고 무능한 왕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치스럽고 무능한 제국의 왕에게 불복종한 왕후 와스디의 행동은 또 다른 유대인 왕후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머지않아 이 사건은 왕후 와스디를 뛰어넘는 용기로 민족의 죽음위기를 타개하는 에스더의 출현을 예고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건과 삶의 배후에서, 때로는 너절한 일들 사이에서 뜻을 이루시기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다. 그리고 이것은 강함이 아니라 연약함 뒤에서 새 일을 기획하시는 하나님의 교묘하신 숨은 돌봄, 곧 섭리 앞으로 우리를 불러들일 것이다.

 

제국의 최고 권력을 자랑하는 사치스러운 잔치는 역설적으로 왕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의문은 더 큰 권력자의 힘이 아니라 좀 더 연약해 보이는 자의 불복종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권위는 힘을 옳은 것을 위해 사용할 때 빛나는 것이지 자기만족을 채우는 힘자랑에 있지 않다. 이것은 끝내 치욕으로 귀결될 뿐이다. 사건 배후에 숨어계시면서 인간의 그릇된 권위의식과 권력욕을 비웃고 계실 하나님이 그려지지 않는가.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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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7)

 

지극히 평범한 한나, 비범한 노래를 부르다

 

2016년 12월의 대한민국, 평범한 시민들은 광장의 평화로운 촛불 혁명을 이끌고 있다. 평범함은 지리멸렬하지 않았고 지배 세력들의 사악한 동맹과 결탁을 부끄럽게 만들며 비범함을 드러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광장의 촛불이 비범함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사무엘서의 한나의 기도와 중첩되었다. 한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었다. 때는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가 거의 끝나고 왕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역사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끝자락은 암울했다. 안으로는 영적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의 타락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였고, 밖으로는 강력한 철제무기로 무장한 블레셋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제사장들은 올바른 예배에는 도무지 관심 없었고, 물질적인 욕심과(사무엘상 2:12-17) 그릇된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에 바빴다(2:22-26). 이 혼란의 시대를 뚫고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세워진다. 새로운 시대를 잉태한 위대한 인물 뒤편에는 불임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견딘 여성 한나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사회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의 슬픔은 고통이었건만, 한나의 남편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로 인해 그녀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었다. 그녀의 괴로움과 간절한 기도는 사무엘의 출생으로 응답되었다.

 

 

 

 

이후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일평생 여호와를 섬기도록 하나님께 드리기로 다짐한다. 놀랍게도 그녀의 기도는 개인적인 감격과 감사를(2:1-5) 넘어 새로운 시대를 선포하고 예고하는 노래가 되었다(2:6-10). 그래서였을까. 한나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훗날 ‘마리아 송가’(누가복음 1:46-55)의 원형이 된다. 그렇게 한나의 기도는 신앙공동체 속에서 읊조리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이며 노래였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2:6-10).

 

사무엘의 출생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렸던 감격의 기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며, 주님의 구원으로 인해 기뻐하는(2:1) 목소리는 불임의 고통을 끝내고 삶의 반전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노래였다(2:5).

 

그러나 그녀의 기도 후반부는 개인적인 고통의 경험을 넘어서 기존의 세상 질서를 엎으시고 반전의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 선포로 확장된다. 한나에게 여호와는 “행동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이다(2:3). 때문에 그녀에게 여호와는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교만한 자들의 삶을 엎으셔서 평등과 균형을 만드시는 분이다. 풍족하던 자들, 많은 자녀를 가진 자들, 귀족 계층들과 대비되는 넘어진 자들, 임신하지 못하던 자들, 굶주리던 자들, 가난한 자들, 빈궁한 자들의 삶이 반대로 뒤집혀진다. 기존의 사회 질서와 권력을 옹호하는 자들에게는 혁명적이다. 그러나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2:6) 여호와는 인간의 체제 안에 갇히신 분이 아니라 언제든 자기 뜻에 따라 반전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이다.

 

한나는 기존질서를 해체시키려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타락의 민낯을 드러낸 제사장들의 수치스러운 행태들이 빚어낸 현실을 지켜보며 변화의 주도적 힘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노래했다. 한나는 삶의 밑바닥에서 도무지 탈출할 수 없는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행동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했다. 그녀는 “땅의 기둥은 여호와의 것”(2:8)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으니 새로운 변화의 바람도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는 새로운 질서 개편이 있을 것을 꿈꾸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악인들을 암흑 속에서 잠잠하게 하실 여호와, 그러나 경건한 자들을 지키시는 여호와를 한나는 믿는다. 하여 한나는 자연의 힘을 통제하시는 여호와가 재판관이 되셔서 땅 끝까지 심판하실 것을 선포했다. 그녀의 기도 끝에 느닷없이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2:10)라는 선언이 이상하지만, 이 말에는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는 혜안이 담겼다.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해 높아졌다”(2:1)라는 첫 절의 고백과 어울리게 기도의 끝맺음은 장래 일을 기대하는 선포적인 언어였다.

 

아직 왕이 없던 시대였지만, 한나는 장차 세워질 왕을 기대한 것이다. 그녀는 기름부음 받은 왕이 누구라고 이름을 지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엘서 끝에 이르러 다윗 집안을 통한 영원한 왕권을 약속받은 다윗의 노래는(사무엘하 22:1-51)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듯 마주보고 있다. 결국 한나의 기도는 불임이라는 개인적인 문제 해결과 감사를 넘어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악한 질서를 재편하실 하나님을 선포하는 기도가 되었다. 그리고 겹겹의 세월을 지나며 억압당하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 좌절되지 않도록 위대한 기도로 우리 곁에 남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시대(3:1), 평범했던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서 두 시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지금 찬바람 몰아치는 광장에는 평범함이 모여 비범함을 낳고 있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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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16)

 

밧세바는 강간당한 것인가, 유혹한 것인가

 

“모호하게 보이는 것들에서 우리는 뭔가를 깨달을 수 있다”라고 말한 자끄 라깡의 한 마디처럼 모호함은 텍스트 해석의 실마리가 되곤 한다. 모호성은 일상 언어와 과학의 영역에서 환영받지 않지만, 문학의 옷을 입은 텍스트의 모호성은 독자를 미묘한 언어게임의 장으로 불러들인다. 예컨대 다윗의 드라마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큰 문제였던 이른바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에서도 모호성이 포착된다. 단 한 절만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사무엘하 11장 전체 맥락에서 왕의 권력을 남용한 다윗의 일방적인 강간행위는 아니었는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다윗의 간음 이야기는 이스라엘과 암몬과의 전쟁이 진행되는 폭력의 상황 가운데(10장; 12:16-31) 다윗의 궁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전쟁 상황,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지만 다윗은 자신의 궁에 머물러 있었다. 온 이스라엘 군대는 랍바를 에워싸고 전쟁 중이었지만(11:1), 다윗은 저녁 시간 침상에서 일어나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보게 된다(2절). 왕이 전쟁터에 군사들을 보내놓고 한가로이 저녁 산책하는 모습은 불안하고 불길하다. 군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있어야 할 왕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직무유기다.

 

 

 

옥상을 거닐던 중 다윗 왕의 눈에 들어온 한 여인,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2절).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본다. 심부름을 다녀온 사람이 “그녀는 엘리암의 딸이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아닙니까?”(3절)라는 질문형식의 답변을 한다. 다윗이 이미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힌 셈이다. 우리아는 다윗의 37명의 용사 중 한 사람이고(23:39), 엘리암 역시 다윗의 용장이었다(23:34). 다윗은 밧세바의 신원을 확인하고도 그녀를 호출한다.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4절, 개역개정).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 그 여인을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그 여인과 정을 통하였다(그 여인은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4절, 새번역).

 

개역개정과 새번역의 미묘한 차이는 문장의 모호성을 반영한다. 히브리 문장의 동사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다윗이 주도하는 형태다. 다윗은 여자에게 전령들을 보냈다. 그가 그녀를 취했고 그녀는 그에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함께 누웠다(4절). 두 명 이상의 전령이 다윗의 명령에 따라 밧세바에게 갔을 때, 그녀는 자신이 왜 왕의 호출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 채 명령대로 다윗에게 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밧세바의 저항이나 불복종의 묘사는 없다. “정을 통했다”라는 번역은 둘의 합의된 성관계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목소리 없는 밧세바의 수동적인 태도와 대조되는 다윗의 적극적인 행동과 왕으로서 강제력 행사의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의 간격과 모호성의 긴장이 있다. 밧세바의 수동적인 태도와 정황에 해석자들이 관심을 두었다면 다윗을 강간범으로 고발하지 않았을까?

 

해석자들은 밧세바의 자리로 이동하여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상상해보려 하지 않았다. 왕의 지위가 요구하는 강제력과 명령을 받는 밧세바의 복종 사이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없는가? 몇몇 해석자들처럼 이 여인이 저녁 시간에 목욕하고 있었던 것을 문제 삼아야 하는가? 밧세바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목욕하고 있었던 것인가? 한 여자가 목욕하고 있고, 왕이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다윗을 볼 수 없다. 그녀는 단지 누군가에 의해 관찰 당했을 뿐이다. 본문은 그녀의 의도와 감정을 단 한 줄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욕을 유혹하려고 추파를 보내는 행위처럼 해석하는 주석가들이 있다. 이것은 목욕하는 여성을 남성의 성적인 도발을 자극하려고 유혹한 것처럼 죄를 덮어씌우려는 의도다. 이러한 해석은 밧세바를 가부장적인 위계질서의 틀 안에서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동시에 여성을 향한 ‘동료인간’으로서의 연대의식이 결여된 차별적인 태도다.

 

밧세바가 목욕한 것을(2절) 생리로 인한 부정한 기간이 끝나 정화하는(4절) 제의적인 정결예식이라는 해석은 접어두자. 또 다른 문제가 이 여인의 임신에서(5절) 시작되니까. 11장에서 밧세바가 처음 소개될 때를 제외하면, 그녀는 실명이 아니라 “그 여자” 혹은 “우리아의 아내”로만 불린다. 다윗 왕의 지위와 권력 앞에서 밧세바의 목소리는 없다. “내가 임신했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뿐이었다. 그녀 역시 다윗처럼 사람을 보내 임신 사실을 알렸을 뿐이다. 이것은 우리아의 아내로서 다윗과 동침한 위험성을 감지한 대처다. 동시에 그녀의 임신은 다윗의 범죄행위를 드러내는 증거다.

 

밧세바의 임신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자신의 충실한 장군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러들여 밧세바와 성관계를 갖도록 책략을 짜냈지만 실패하고 만다. 다윗은 밧세바의 뱃속 아기를 우리아의 아기처럼 위장하여 죄를 은폐하려 했지만, 우리아는 다윗의 숨은 의도를 좌절시켰다. 우리아는 왕에게 장군님과 모든 군대가 벌판에서 야영중인데, 어찌 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아내와 동침할 수 있겠냐며 그럴 수 없다고 했다(11절). 다윗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죄를 감추기 위한 시도가 실패하자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칼에 맞아 죽도록 요압 장군에게 명령을 내리는 방식을 선택했다(15-17절). 그는 은밀하게 비열했다.

 

밧세바는 자기 남편의 죽음이 다윗 왕의 비밀스러운 계획에 근거한 것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아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애도의 시간이 끝나자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이 여인은 다윗의 아내가 되고, 아들을 낳았다. 저자는 다윗이 저지른 일에 대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라고 평가했다(26-27절).

 

다윗의 죄악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여 간음했고,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어도 우리아의 죽음을 사주했다. 때문에 11장의 본문은 다윗의 행위를 비난하지만, 밧세바를 비난하지도 죄인 취급하지도 않는다. 간음은 행위 대상자인 남녀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밧세바가 아니라 다윗에게만 죄의 책임을 돌린다. 왜일까. 저자는 이 사건을 왕의 권력과 지위를 남용한 성범죄행위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남자의 아내를 바라보는 욕망을 비난해야지 벗음을 상상하게 하는 밧세바의 목욕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이유는 없다.

 

신앙과 신학적 교훈이 담긴 본문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의 모호성에서 질문하며 사유할 자유를 허락했다. 그러면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져야하는 부담과 책임은 무엇일까. 다윗은 권력을 남용한 왕으로서 품위를 잃었고, 마음의 법정인 양심을 버렸으며, 죄는 또 다른 죄를 낳는다는 교훈의 증거가 되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더라도, 성경은 그의 도덕적인 죄를 덮어두지 않았다. 이 맥락에서 우리 시대의 ‘목회자 성윤리’ 의식도 따져볼 일이다. 목사의 영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가 의혹제기로만 끝나거나 피해 여성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도록 공동체의 책임의식이 절실하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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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15)

 

아비가일, 아름답고 총명하고 노련했다

 

다윗에게는 아름답고 총명한데다 용감하고 민첩한 아내가 있었다. 한때는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이다(사무엘상25장). 때는 주전11세기 사울 왕의 통치 시대였지만, 이미 그의 시대는 기울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적하던 끝자락에서, 그는 다윗이 차기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을 시인했다(24:20-21). 이즈음 사울을 왕으로 세웠던 예언자 사무엘의 죽음과 그의 장례식이 있었다. 이후 다윗은 시내 반도 북쪽 바란 광야로 이동한다(25:1).

 

이때 다윗이 사울을 피해 은신처로 이용한(23:24) 마온에는 큰 재산가 나발이 살고 있었다. 그는 목초지 갈멜에서 양 삼천 마리, 염소 천 마리의 털을 깎고 있었다(2절). 그는 갈렙 족속의 사람이고,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아비가일을 아내로 두었지만, 완고한데다 행실이 악한 사람이었다(3절). 다윗은 마온 광야에서 나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4절). 그는 나발에게 자기 사람들을 보내 양떼를 보호해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후원을 요청했다(6-9절). 그러자 나발은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라는 말로도 부족했는지 다윗을 주인 떠난 일꾼 취급하며 무례하게 제안을 묵살해버렸다(10-11절).

 

다윗의 사절단으로 나발에게 갔던 자들이 돌아와 그대로 보고하자(12절), 다윗은 칼을 찬 400명을 데리고 나발을 치러간다(13절). 다윗의 분노가 또렷이 드러난 셈이다. 무력적인 행동태세를 취한 다윗이 위태로워 보인다. 나발의 무시에 분노가 치밀었을 다윗, 그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순간이었다. 이때 나발의 하인들 중 한 명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다윗이 보낸 사절단에게 주인 나발이 모욕을 주었다는 내용이었다(14절). 왜 하인은 나발이 아니라 아비가일에게 보고했을까. 집안일의 책임이 아비가일에게 있었음은 물론이고 평소 여주인의 일처리 능력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인은 아비가일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한다. 그동안 다윗의 사람들이 밤낮 양치는 사람들의 담이 되어주었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주인 나발이 “불량한 사람”이라서 말해야 소용없다는 듯 보고했다(15-17절). 주인 나발이 불량배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하인의 말을 들은 아비가일은 마음이 바빠졌다. 그녀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황급히 빵과 포도주, 고기, 곡식 등의 먹거리를 준비해서 하인들 편에 보낸 후 나귀타고 뒤따라간다(18-19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아비가일을 향해 내려오던 중이었고, 그들은 마주쳤다(20절). 다윗은 나발이 선을 악으로 갚았다는 생각으로 나발 집안을 몰살시키겠다고 맹세한 상황이었다(21-22절).

 

다윗 일행을 만난 아비가일은 황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엎드렸다(23절). 그녀의 신속한 상황판단만큼 행동역시 민첩했다. 그녀는 자신을 “당신의 여종”으로 낮추고, 다윗을 “나의 주인”으로 높여 부른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분노를 달래기라도 하듯 남편의 허물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리고는 다윗에게 자기 남편은 “불량한 사람”이고, 이름처럼 “미련한 사람”이니 개의치 말라고 한다(24-25절).

 

 

 

그리고서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내 주의 손으로 친히 보복하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한다(26절).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에게 폭력의 칼을 휘두르려고 했던 다윗의 마음을 짚어주면서 동시에 남편을 욕해준 셈인데,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윗 왕권의 수립을 예고하듯 여호와께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입니다”라고 축복한다(28절). 그녀는 자기 남편의 무분별한 말을 주워 담아 다윗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준 셈이 되었다. 아비가일의 말은 한걸음 더 나간다. “사람이...내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29절). 이 말은 오랜 시간 사울의 추적을 피하며 고된 도망자의 삶을 살았던 다윗을 향한 위로다.

 

아비가일의 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넘어 다윗이 무죄한 피를 흘리거나 보복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남기면 안 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마지막으로 아비가일은, 여호와께서 내 주를 왕으로 세우시는 날이 오면 “당신의 여종을 기억해주세요”(31절)라고 말하며 자신의 안위를 부탁한다. 아비가일은 일관되게 자신을 낮추고 다윗을 “나의 주”라고 높여 부르지만, 말의 주도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에 설득되었다. 다윗은 피의 복수극을 막은 아비가일을 축복한다(33-34절). 그녀의 호소력 넘치는 말들은 남편 나발과 대조적인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각인시킨 것은 물론이고 지혜로움과 직관력을 돋보이게 했다. 결국 그녀의 민첩한 행동과 지혜로운 말은 피로 얼룩질 폭력과 집안의 몰살위기를 막았고, 다윗의 임박한 왕권수립을 예고했다.

 

이후 아비가일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윗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묵살했던 나발은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만족함에 흠뻑 취해 있지 않은가. 아비가일은 그런 남편에게 아침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36-37절). 나발은 자기 집안을 향한 복수와 죽음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노심초사했을 지혜로운 아내와 달랐다. 아비가일은 남편이 술에서 깬 후에야 있었던 일들을 말한다. 그러자 나발은 “심장이 멎고”(새번역; “낙담하여”, 개역개정), 돌처럼 되었다(37절). 히브리말 “마음”과 “심장”은 같은 형태의 단어다. 아마도 돌발적인 심장질환으로 임박한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셔서 죽었다”(38절)라는 한 마디는 죽음의 직접적 원인을 하나님께 돌린 것이다. 결국 다윗의 복수를 하나님이 갚으신 셈이 되었다.

 

다윗은 나발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서 여호와가 자기의 모욕을 갚아주셨다며 찬양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아비가일에게 사람을 보내 청혼한다(39-40절). 아비가일은 다윗이 보낸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 서둘러 나귀타고 떠나 다윗의 아내가 된다(41-42절). 다윗과 아비가일의 신속한 결혼이 좀 의아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비가일의 행동은 다윗과의 만남에서 언제나 재빨랐다. 그녀는 “급히” 음식을 준비했고(18절),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렸고(23절), 다윗의 사람들을 맞이하고는 “급히” 일어나 나귀를 탔다(42절). 그녀의 민첩한 행동이 다윗을 감동시켰을 테지만(34절), 궁극적으로 다윗과 아비가일의 결혼은 다윗의 왕권수립과 안정을 준비하는 요긴한 자원이었다. 다윗의 첫 번째 아내 사울의 딸 미갈처럼.

 

아비가일은 많은 재산을 소유한 과부였고, 다윗에게 그녀의 재산은 그의 군대를 위한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었을 것이다. 이뿐인가. 강력한 갈렙 족속과의 혼인은 현실적인 정치적 힘을 획득하는 터전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해석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아비가일이 다윗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즉위식이 있기까지 그녀를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27:3; 30:5; 사무엘하2:2; 3:3)이라고 부른다. 하여 사무엘상 25장 나발-아비가일-다윗 이야기는 남성중심적인 정치적 이익의 의도를 교묘히 폭로하면서 동시에 남편의 권위에 갇힌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의 가치를 드높인 본보기였다.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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