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30)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


믿음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또는 누군가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받드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신비지만 생각과 질문이 없으면 맹신과 미신에 빠진다. 질문이 제거된 신앙은 맹신에 빠지기 쉽다. 질문은 사유의 영역을 넓히고 사유는 진리에 이르러 믿음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킨다. 묻고 답하기를 통해 서두르지 않고 참 진리로 이끄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신약성경에 있다.


예수님이 유대 지역을 떠나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했는데,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수가’라는 마을로 들어가셨다. 이곳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깝고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요한복음 4:3-5). 구약 본문에서 야곱이 우물을 팠다는 기록이 없지만, 그가 세겜 땅을 매입한 사실이 언급되었기에(창세기 33:19; 여호수아 24:32) 우물이 있었거나 팠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우물은 그리심 산 기슭에 있고, 수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수님은 피곤했고, 우물곁에 앉았다. 낮 시간 중 가장 뜨거운 정오의 시간(6절), 예수님은 지친 여행자의 모습이다. 그때였다.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다(7절).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주로 저녁 때 물을 길으러 우물로 나오곤 했다(창세기24:11). 이른 아침이나 저녁시간은 더위를 피하는 시원한 시간일 테고, 음식을 만들거나 씻기 위해 물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뜨거운 정오의 시간, 이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다. 집안에 응급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직접적으로 자신이 이혼한 상태여서 현재 남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4:17)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처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마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뜨겁고 더운 시간을 택했나보다. 여자들이 우물가로 모여드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물을 길으러 온 여자에게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청했다(7절). 사마리아 여자는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독자는 기대감이 충족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우물가에서 물을 좀 달라는 요청이 뭐 그리 유별난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거는 행위 자체는 뜻밖의 행동이다. 예수님이 돌출된 행동을 하고 있음이 사마리아 여자의 말에서 곧 밝혀진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을 달라고 말을 거는 예수님에게 분명하게 대답한다.


“당신은 유대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어찌하여 당신은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말씀하십니까?”(4:9)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겁니까?”라는 물음이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렇게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세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다(9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과의 반감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주전8세기 앗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게 되었던 시점으로 소급된다. 앗시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거주하고 정착하면서 생겨난 혼혈인이 사마리아인의 기원이 된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열왕기하 17:24-41). 사마리아 여자는 남북의 기나긴 반감의 역사적 배경과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알았던 터였다. 그러니 여자는 자신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 예수님이 사회적 관례를 위반했다고 말한 셈이다. 겨우 물 한 잔 달라고 했을 뿐인데. 여자의 말은 남북의 문화적인 배타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의 암묵적인 거절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 걸기는 멈추지 않고 물처럼 흘러간다.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더 요청하지 않았지만, 기술적으로 말을 맞받아친다. 한글번역은 상대방을 낮추는 말투로 번역했지만, 예수님이 우리말로 대화했다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와 어법을 취하지 않았을까.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선물과 당신에게 물을 달라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당신은 그에게 구했을 것이고, 그는 당신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오.”(4:10)


예수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답변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내포하는 “하나님의 선물”을 “생수”와 동일시했다. 물은 생명을 이어가는 절대적인 필수 요소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생수의 근원”(예레미야 2:13)이라고 표명하신 바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생수를 주는 자,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자임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여자는 의구심을 풀지 않은 채 질문한다.


“선생님, 당신은 물을 길어 올릴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습니다. 당신이 어디서 그 생수를 얻겠습니까?”(4:11)


이 질문은 아직 예수님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터라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자의 질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야곱의 우물에서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아들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을 마셨는데, 예수님이 말하는 이가 야곱 보다 큰 자인가를 묻는다(12절). 여자는 우물의 긴 역사성을 말하며 “그가 야곱보다 큰 가”를 묻자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과 자신이 주는 물을 비교하여 좀 더 근원적인 영역을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개역개정)


예수님은 질문하는 여자에게 하나님과 자신의 연결된 정체성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자기 자신을 고갈되지 않는 샘물, 곧 영생하는 물이라고 소개하셨다. 이 말씀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는 분(이사야 44:3)이라는 위로의 말씀과 겹쳐진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여자는 “그 물을 내게 주십시오”(15절)라고 요청한다. 다급해보인다. 예수님이 처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주시겠소?”(4:7)라고 했던 상황이 뒤집힌 순간이다. 그녀는 삶의 갈증이 해소되기를 간절히 바랬겠지만, 무엇보다도 다시 이곳으로 물 길으러 오지 않는데 관심이 있었다. 여자는 아직 예수님이 주시겠다는 선물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뜬금없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다. 그녀가 남편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은 그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셨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던 것과 지금의 남편은 내연의 남자처럼 법적인 혼인관계로 묶이지 않은 것을 알고 계셨다(15-17절).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의 과거를 들추어 부도덕한 여자라는 수치심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의 태도에 진정성을 느꼈을 터. 그녀가 예수님의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제 보니 당신은 예언자셨군요.”(19절) 여자는 완전한 진리를 향해 한걸음 차근차근 다가서고 있었다. 희미한 깨달음이었다. 여전히 그녀의 궁금증은 멈추지 않았다. 여자는 적합한 예배 장소에도 관심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20절) 여자는 예수님을 향해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유대인들 중 한 사람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여자에게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민족중심적인 배타적 태도를 벗어난 예수님의 답변이 돌아왔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오.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당신들이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를 것이오.”(4:21)


예수님은 나름의 역사적 정통성이나 민족적인 편견을 해체시키는 발언을 하셨다. 그럼에도 “구원이 유대인에게서”(22절) 온다는 것과 예배에 관한 선언적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3-24, 개역개정)


예수님은 구약 전통에서 매우 희귀한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다윗 왕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했을 뿐인데(시편 89:26), 예수님이 언약의 계보에 따른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사마리아 여자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자가 대답한다. “나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불리는 이가 오실 줄을 압니다. 그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25절) 사마리아 여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공유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순간을 포착하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라.”(26절) 예수님은 찬찬히 대화를 주도하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여자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시키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 그것도 소외된 여자에게 먼저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이 중대한 시점, 예수님의 제자들이 돌아왔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여자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27절). 랍비 저작들에 의하면, 당시 남성은 길거리에서 여성과 대화를 나누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자기 아내와의 대화도 금기시했던 사회적 분위기였으니 다른 사람의 아내와 대화하는 것은 타인들의 공론거리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노상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누구도 예수님께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라고 묻지 않았다(27절). 제자들 때문에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그때 사마리아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와서 보라! 내가 말한 사람이 그리스도 아닌가!”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의 첫 마디였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로 갔다(30절).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당하지 못했던 여자는 구원의 선물 “생수”를 그녀의 이웃들과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39절). 사마리아 여자는 자신의 개인구원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구원을 위한 발걸음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내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자아의 변화까지 경험한 것이다. 사마리아 여자와 그녀가 속한 마을 공동체는 더 이상 예수님 사역 밖의 외부자들이 아니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는 남북의 오래된 배타적이고 민족적인 감정을 넘어 사마리아인들 가운데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 탄생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뜨거운 한 낯의 열기 아래 질문을 멈추지 않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기꺼이 대답하시는 예수님. 우물곁에 있는 둘의 대화 장면이 상상되는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요, 생수라는 것, 영과 진실함으로 드리는 예배에 더해진 배움이 있다. 사마리아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는 민족적인 배타성과 사회적 통념을 깨는 만남이요, 서로 존중하는 묻고 답하기는 새로운 깨달음과 예수 공동체를 세우는 아름다운 발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맹신이 아니라 질문하며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요, 완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의 신학적인 증오와 대립을 혁파하는 본보기다.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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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29)


절박했던 어머니 하갈, 하늘의 약속을 받다


살다보면 동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더러 끝내 헤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이 당당히 국가로 발돋움하기 사백년 전쯤(창세기 15:13),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12:2). 그러나 아브람 아내의 불임은 약속을 성취하는데 걸림돌이었다. 그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10년쯤 되었을 때다. 그는 아내 사래의 여종이었던 이집트 사람 하갈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한다(16:1-3). 사래의 제안이 먼저였지만, 사람의 계획이 어찌 자기 뜻대로 흘러가던가. 하갈이 임신하자 사래를 멸시하기 시작했다(4절). 아브람의 두 아내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갈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지 사래에게서 도망쳐 나온다(6절).


임신 중에 도망쳐 나온 하갈이 광야의 샘 곁에 앉았을 때였다. 여호와의 천사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어온다. 그는 여호와이며 하나님이셨다(9, 13절). 여호와는 하갈의 이름을 부르며 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시지만(9절), 아브람처럼 동등하게 대응해 주신다. 그녀의 후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10절). 약속의 내용이 아브람에게 주신 것과 비슷하다(12:2). 이뿐만이 아니다. 천사는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지어준다(11절).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16:11, 개역개정)


이른바 ‘수태고지’ 장면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주로 영웅 탄생과 관련된다. 이후 삼손(사사기 13:3-5), 요시야 왕(열왕기상 13:2), 예수님의 탄생이 그렇다(누가복음 1:31). 하갈은 어떤가.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 처음으로 유일하게 여호와의 천사가 이름을 불러준 인물이다. 더욱이 족장 아브라함처럼 태어날 아들 이름과 신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하갈이 사래의 학대로 도망쳤지만, 그녀는 천사와의 만남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를 얻었을 테다.


그러나 약간의 긴장은 남아있었다. 하갈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뜻의 ‘이스마엘’이 들 나귀 같아서 모든 사람을 치고,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 것이라는 신탁의 말씀을 듣는다(12절). 약속과 신탁을 받은 하갈은 자신이 앉았던 샘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른다(13절). 그리고서 그 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 곧 “나를 보시는 살아계신 자의 우물”이라고 지었다(14절). 그녀가 우물에 붙인 이름은 살피시는 하나님과 약속받은 아들 이스마엘에 대한 감사의 신앙고백인 셈이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아브람과 사래는 여호와로부터 약속의 확증과 함께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으로 개명된다(15:5, 15). 아브라함이 75세에 후손을 약속받았지만(12:4), 백세의 노쇠해진 몸이 되어 아들을 얻었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고지 받은 대로(17:19)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불렀다(21:3). 그런데 하갈이 이스마엘 출생약속을 받았을 당시 신탁내용의 현실화 조짐이었을까. 약속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아브라함이 젖을 뗀 이삭을 위해 전치를 열었을 즈음이다. 아브라함이 86세 때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이(16:16) 이삭을 놀렸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청한다. 이 일은 아브라함에게 큰 근심거리였다(21:9-11). 사라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상속을 공유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이삭과 이스마엘은 동거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의 고민을 하나님이 아셨다. 하나님은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셨지만, 하갈의 아들도 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다만 여호와는 이삭이 아브라함 언약의 상속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21:12-13). 결국 다음날 이른 아침 아브라함은 빵과 물을 하갈의 어깨에 메어주고 이스마엘과 함께 내보낸다. 얼마나 떠나왔을까. 십대 소년 이스마엘과 하갈은 인적이 드문 ‘브엘세바’(맹세의 우물) 광야에 이르렀다. 가죽부대의 물은 바닥났다. 하갈은 아들을 관목 덤불 아래 있게 했다(14-15절). 흙먼지 날리는 건조한 땅에서 자라난 관목의 그늘이 뜨거운 한낮의 열기를 충분히 식혀주지 못했으리라.


하갈은 아이의 죽음을 차마 볼 수 없다며 소리 내어 울었고, 하나님이 소년의 울음 소리를 들으셨다(16절). 아들이 죽을까 염려하는 절박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광야는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장소다. 해설자는 하갈의 울음만을 기록했는데, 큰 소리로 우는 엄마를 보며 아들도 울었나 보다. 긴장된 순간이었지만 하나님의 들으심이 독자의 마음을 이완시킨다. 이때였다.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의 이름을 불렀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21:17-18, 개역개정).


하갈이 아브라함처럼 땅을 약속받는 것은 아니지만, 족장 아브라함이 약속을 재확인 받은 것처럼 하갈역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재확인 받았다(16:10; 21:18). 하갈이 아브라함 족장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약속의 담지자가 된 셈이다. 마치 여자 족장처럼 보이지 않는가?


바로 그때였다. 물을 찾지 못했던 하갈이 샘물을 발견했다. 하나님이 보게 하셨다. 위험한 광야길, 탈진으로 인한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이후 하나님이 소년 이스마엘과 함께 계셨고, 그는 바란 광야에 거주하면서 활 쏘는 자로 성장했다(20절). 아브라함 약속의 성취 과정에서 신실하지 못했던 부부 때문에 발생했던 가족갈등의 문제를 결국 하나님이 해결하셨다. 그리고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이삭만큼의 동일한 수준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 안에 살게 되었다. 하갈은 더 이상 사라의 종이 아니다. 자유인이다.


이후 하갈은 이스마엘을 위해 이집트 출신 여자를 아내로 얻어주었다(21절). 하갈은 구약에서 아들의 아내를 구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아브라함이 고향 땅에 자신의 늙은 종을 보내 이삭의 아내를 구한 것처럼(24장), 하갈은 아브라함 족장의 역할과 많이 닮았다. 더욱이 하갈이 머물렀던 브엘세바는 이후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왕이 서로 언약을 맺은 장소요(21:22-23), 하나님이 이삭과 야곱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한 장소가 된다(26:22-33; 46:1-5). 한 마디로 하갈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브엘세바’는 이후로 이스라엘 족장들이 하나님을 만나 약속을 받는 거룩한 땅이 된다. 하갈이 사라의 학대를 피해 도망쳐 나와 머물렀던 수르 광야의 ‘브엘라헤로이’도 마찬가지다(16:14). 이후 이곳에서 이삭이 머물게 된다(24:62; 25:11). 놀랍게도 비천한 노예출신의 하갈과 하나님이 만났던 장소는 이스라엘 족장들의 중요한 장소가 된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하갈의 인연은 간단치 않다. 하갈은 아브라함 집안의 자식을 낳아주는 대리모, 그 이상이었다. 하갈이 이집트인 종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아내’(히브리말, “잇샤”, 16:3; 개역개정, “첩”)였다. 하갈은 위기 순간마다 찾아오신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거듭 받았으니 아브라함과 비슷하다. 하갈이 노예 신분으로 아브라함 집안에 들어왔으나 하나님은 그녀를 자유인으로 바꾸셨다. 죽음의 위협이 도사린 광야에서 하갈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는 이스라엘 족장 역사에서 언약을 확증하는 신성한 장소였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남 경험은 지리적, 혈통적 경계를 넘어 이집트인 여종 하갈에게도 적용되었다. 하갈의 관점에서 약자의 편이 되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오롯하다. 하여 하갈 이야기는 노예, 추방된 자, 여자, 과부, 억울한 자들 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다. ‘구속역사’라는 성경의 거대담론에서 단절과 소외를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선의가 어떻게 발휘되는가를 보여준 희망의 이야기다. 헤어짐이 끝이 아니라 모두의 공존이 허락되는 공존의 아름다움이 움트는 이야기다.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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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8)


왜 여자 예언자 훌다인가?


    한 사람의 의인이 패역한 나라에 내려질 재앙을 막을 수 있는가? 올바른 지도자 한 사람이 국가의 위기를 모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가? 일시적이지만, 악행에 대한 심판의 연기는 가능하다. 국가적 재앙위기를 타개할 기회의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주전 7세기 남 유다 땅의 요시야 왕이 그 본보기다. 요시야 왕은 할아버지 므낫세 왕의 악행을 종결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으로 잘 알려졌다(주전640-609년). 그가 어떻게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을까. 왕의 과감한 개혁의지만으로 가능한가? 요시야 왕 통치시간 동안, 개혁 실행에 결정적 추진력을 제공했던 여자 예언자 훌다가 있었다. 훌다의 기록은 이스라엘 왕국 역사 한 귀퉁이 작은 일화로 존재할 뿐이지만(열왕기하22:14-20; 역대기하34:22-28), 새봄을 알리는 전령처럼 낮은 땅의 풀꽃으로 왔다갔다. 훌다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몇 안 되는 여자 예언자들(미리암, 드보라, 이사야의 아내, 노야다)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왕실의 기득권층 틈바구니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요시야 왕은 겨우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았다(열왕기하22:1). 우상숭배를 걷어내지 못한 그의 아버지 아몬 왕이 신복들의 반역으로 암살당한 이후 왕위에 올랐으니 그 길이 쉬웠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여호와 눈에 정직하고, 다윗의 길로 행하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는 행보를 보여준 왕으로 평가받는다(2절). 그의 출생이 남달라서였을까? 실제로 그가 태어나기 약 3세기 전(주전10세기)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이 벧엘에 신당을 짓고 제사할 때, 그의 출생은 유다 출신 익명의 예언자에 의해 예고되었다(열왕기상13:1-2).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은 요시야가 통치한 시기, 주변 국가들의 상황은 때마침 북이스라엘을 파멸로 이끈 앗시리아가 제국의 자리에서 바벨론에 의해 퇴출당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가나안 지역의 작은 나라인 남 유다는 일시적인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 통치의 모범이어야 할 이전 이스라엘 왕권의 타락은 국가적 파멸을 향해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었다. 때문에 왕실 권력과 종교권력의 타락을 꾸짖고 고발한 예언자들의 활동은 각종 권력의 중심부와 복잡하게 얽혀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언자의 출생 예고에 따라 어긋남 없이 태어난 요시야 왕이 20세 갓 넘은 때였다. 그가 서기관 사반을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성전 보수공사를 시작했다(3절).  요시야 왕의 지시에 따라 성전 보수공사를 하던 중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한 귀퉁이에서 “율법책”을 발견한다(8절). 이 책을 서기관 사반이 읽고 충격을 받아, 왕에게 가져가 왕 앞에서 낭독했다(10절). 왕은 사반이 읽어주는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으며 애통해 했다(11절). 요시야 왕은 대체 율법책의 어떤 내용 때문에 이토록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을까? 

   학자들은 이 책의 정체를 놓고 여전히 논쟁 중에 있지만, 이른바 율법서 오경을 일컫는 “그 율법 책”(히브리말, “쎄페르 핫토라”)이라는 표현은 신명기, 여호수아서, 느헤미야서에서 발견된다(신명기28:61; 29:21; 30:10; 31:26; 여호수아1:8; 느헤미야8:3). 책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히지 않지만, 모세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성문화된 언약의 가르침이 오랜 동안 준수되지 않고 성전 구석에 방치된 채로 긴 세월 지나온 것만은 확실하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책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그는 힐기야 대제사장과 서기관 사반, 사반의 아들 아히감,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왕의 수행원 아사야에게 명령하기를(12절), 그 책 내용에 대해 여호와께 물어보라는 것이다(13절). 그러니까 요시야는 “이 율법책”에 대한 신성한 승인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누군가의 안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여자 예언자 훌다를 찾아간다. 이 일행들 중 아히감은 이후 심판과 회개를 외치는 예레미야 체포와 기소, 살해의 위협에서 구해준다. 이때 악볼의 아들도 이 일에 관여한다(예레미야26:22, 24). 왕의 명령을 받고 훌다를 찾아간 사람들의 기록이 충분하지 않지만, 거짓 예언자들과 싸우며 회개를 외치는 참 예언자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와 지식의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이 찾아간 훌다는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했던 살룸의 아내였다(14절). 훌다의 남편 살룸의 직업이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역대기하34:22).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의복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책무를 맡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왜 그들은 훌다를 찾아 갔을까. 당시 예레미야(예레미야1:2), 스바냐 예언자가 활동하고 있었다(스바냐1:1). 이들이 여자 예언자 훌다를 찾아온 이유가 생략되었지만, 대제사장을 비롯해 왕실의 사람들이 그녀의 학자적이며 예언자적인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일 테다. 남성중심의 권력 엘리트 집단에 속했던 다섯 명의 남자들이 예복 관리인의 아내였던 예언자 훌다를 찾아간 장면을 상상해 보라. 어떻든 자초지정을 들었을 훌다는 자기를 찾아온 대제사장과 왕이 보낸 사람들 앞에서 왕에게 전할 말을 일러준다. 훌다는 말 그대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말씀, 곧 “예언”을 정확하게 전한다. 

   훌다는 유다의 왕이 읽은 책의 내용대로 예루살렘과 그곳의 거주민들에게 재앙과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한다. 그녀는 이곳을 향해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않을 것과 그 이유를 밝힌다.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여호와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는 신탁의 말씀이다(15-17절). 그리고서 유다 왕 요시야에게 줄 신탁의 말씀은 조금 달랐다.

내가....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19-20절)


훌다 예언자는 앞으로 일어날 바벨론에 의한 멸망을 기정사실화했지만, 요시야 왕만큼은 비폭력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러니까 심판의 때가 닥칠 것이지만, 적어도 요시야 통치기간 중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로였다. 훌다가 국가적인 심판이 내려질 것을 전했지만, 국가의 최고 권력을 가진 통치자의 신실함이 심판을 연기시킬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이때 훌다는 하나님 말씀의 대행자요, 성전에서 발견된 책을 판독한 해석자 곧 율법학자였던 셈이다. 그러니까 열왕기와 역대기 저자에 의해 훌다는 요시야 왕이 읽은 책이 거룩한 문서라는 것을 승인한 처음 사람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제 훌다 예언자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전해들은 요시야 왕은 이스라엘의 개혁을 서두른다. 요시야 왕은 제사장들, 선지자들, 유다 모든 사람들, 곧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성전으로 불러 모아 발견한 언약책의 말씀을 낭독한다. 거기 모인 온 회중은 여호와 말씀 앞에서 마음과 뜻을 다해 순종하고 언약의 말씀대로 살 것을 다짐한다(23:1-3). 요시야는 마치 그 먼 옛날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 “마음과 뜻을 다해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6:5) 권고한 것처럼 백성들과 함께 마음을 새롭게 했다. 

    물론 반 가나안적인 개혁을 시도한 왕이 요시야만은 아니었다. 북이스라엘 요아스(열왕기하12장), 예후(9-10장), 히스기야(18장)가 있지만, 성전 재정비와 함께 거룩한 문서의 발견과 승인과정은 남달랐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뜻과 정경의 확실성을 보증한 훌다 예언자의 말을 듣고 백성들과 언약갱신의식을 행하고, 곧바로 종교개혁에 착수했다. 하지만 훌다는 이후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 시대 개혁의 물꼬를 열어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도구로 쓰임 받았을 뿐이다. 동시대 예언자였던 예레미야와 스바냐처럼 책을 남겼거나 더 이상의 활동기록이 없지만, 요시야의 개혁에 불을 지피고 가담했을 것은 자명하다. 

    왕실권력과 제사장, 그리고 예언자 역시 남성중심으로 조직화된 사회의 한복판에서 훌다는 낮은 땅에 피는 새봄의 꽃처럼 왔다가 사라졌지만 훌다의 후예들은 멈추지 않고 어두운 시대의 봄꽃을 피울 것이다. 지금도 훌다의 후예들은 남성 중심의 위계적이거나 폐쇄적인 신학의 영토에서 이름도 없고 빛난 영광도 없지만, 조용히 시대의 어둠을 뚫고 작은 촛불로 타오를 것이다. 언젠가 훌다의 후예들을 통해 조국 교회의 치우친 지도력의 불균형이 조정되는 때를 기대해본다.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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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7)


최초의 여성 예언자 미리암을 잊지 마오


사람이든 사건이든 기억은 약속과 다짐을 동반하곤 한다. 지나간 역사의 인물을 기억하여 지금여기로 불러내는 것은 현실의 경험을 새롭게 하여 공공의 반성적 성찰을 위함이다. 주전 8세기 폭력과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미가 예언자가 기억해낸 인물들이 있었다. 12 소예언서들 중 가장 중심에 위치한 미가는 ‘남왕국의 아모스’, 또는 ‘작은 이사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남 유다의 사회정의를 파탄으로 몰고 간 당대의 정권(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 미가 1:1)을 향해 거침없는 고발을 퍼부었던 예언자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변론하겠다는 여호와의 뜻을 전하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묻혔던 첫 여성 예언자 미리암의 존재를 사람들의 잠자던 기억 속에서 불러낸다. 모세의 누이로서 출애굽과 광야의 여정이후 언급되지 않았던 이름 미리암이 거명된다. 그것도 모세와 아론의 이름과 함께 나란히(6: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종노릇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미가 6:4)


이 신탁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예언 전통에서 미리암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계시의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한 예언자였음을 똑똑히 밝힌다. 그러나 대체로 신앙의 독자들은 미리암을 모세의 누이로만 기억할 뿐, 그녀가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활동한 것을 지나쳐버리곤 한다.


왜 우리는 미리암을 최초의 여성 예언자로 즉시 기억해내지 못할까? 미리암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자로 기록되었지만(출애굽기 15:20), 사사시대의 예언자이며 사사였던 드보라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경 이야기에서 일곱 번 등장하지만, 모두 간결하게 언급되고 무대에서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출애굽기 2:4, 7-9; 15:20-21; 민수기 12:1-16; 20:1; 26:59; 신명기 24:8-9). 그러나 비록 작은 분량의 기록일지라도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미가 예언자의 입을 통해 다시 전해진 것처럼, 미리암의 예언자적인 사명은 가볍지 않았다.





미리암의 이름은 그녀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듯 보이는 구원의 중요한 시점들을 서로 연결시킨다. 미리암의 정확한 히브리말 발음은 “미르얌”이다. ‘쓰다’ 또는 ‘모질다’라는 뜻의 “마르”와 ‘바다’라는 뜻의 “얌”의 합성된 형태가 “미르얌”이다. 출애굽기 내러티브 흐름에서 ‘물’은 중심적인 은유다. 미리암은 어릴 적부터 물과 인연을 끊을 수 없는 모질고 혹독한 바로의 폭압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성장했다. 이집트의 바로가 히브리 노예들의 폭발적인 인구성장에 두려움을 느끼고 인구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태어나는 모든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나일 강물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다(출애굽기 1:22). 바로의 영아대학살 정책이 실행되는 절체절명의 시점, 어떤 레위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다(2:2).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모세였다


레위인 부부는 바로의 명령에 불복종했지만, 더 이상 아기를 숨길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아기의 어머니는 갈대 상자를 만들어 방수 처리하고, 거기에 아기를 눕혔다. 그리고 남자 아기의 누이는 상자를 나일 강에 띄우고 따라가며 지켜보았다(2:4). 아슬아슬한 상황, 마음 조리며 따라갔을 아기의 어린 누이는 결정적 순간을 만나게 된다.


때마침 바로의 공주가 강가에 나와 있었다. 공주가 갈대상자에서 울고 있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를 발견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것을 지켜보던 소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주에게 가서 유모를 소개하겠다고 제안한다(2:6-8). 소녀는 대담했다. 한참 후에나 이름이 밝혀질 소녀 미리암이 대화의 주도권을 갖고 공주를 설득했고, 자신의 어머니를 공주에게 소개시켰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소녀 미리암의 민첩한 판단력과 지혜는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할 어린 생명을 구했다. 그뿐인가, 단절될 뻔한 가족관계를 묶어주는 도구였다.


이후 미리암은 이야기 중심에서 사라졌다가 ‘홍해’(히브리말, “얌-쑤프”, ‘갈대의 바다’, 13:18)를 건넌 후에 다시 등장한다. 이때 미리암은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했고(15:19),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15:20)으로 소개된다. 미리암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기록으로 남은 여성 예언자들(사사기 4:4, 드보라; 열왕기하 22:14, 훌다; 이사야 8:3, 이사야의 아내; 느헤미야 6:14, 노아댜) 중에 첫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대의 다른 여성들과 달리 독특했다.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결혼한 여성이며 남편과 자녀를 두었기에 이무개의 아내나 어머니로 소개지만, 미리암은 결혼한 여성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은 이른바 ‘바다의 노래’(15:21)를 부르며 여성들을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예언자였고 음악가였다. 예언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탬버린)를 잡고 나서자 모든 여인들이 탬버린을 들고 동그란 원을 그리며 함께 춤췄다(15:20). 이때의 현장을 상상해 보았는가? 고단했을 두 발은 진흙으로 더러워졌지만, 구원과 자유를 얻은 최고의 순간에 미리암의 인도를 따라 모든 여성들은 춤추기로 작정했다. 이때 미리암이 회중을 향해 노래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양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5:21)


백성이 바다를 건넌 후 모세가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노래를 공동체와 함께 불렀을 때, 모세가 불렀던 첫 마디는 미리암의 노래와 같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5:1) “내가 찬송하리니”로 시작된 모세의 찬양은 미리암의 인도에 따라 공동체가 함께 불러야할 구원의 벅찬 감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름에 ‘바다’(“얌”)를 품었던 “미르얌”, 그녀는 히브리 노예의 어린 생명들에게 죽음의 강이었던 나일 강에서 동생 모세를 구하려고 민첩한 지혜를 발휘했던 소녀였다. 이제 그녀는 예언자가 되어 위협적인 바다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기뻐하며 회중을 인도하고 있다. 그녀는 확실히 모질던 옛 세월과 현재의 구원을 연결시키는 물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단한 광야 여정 때문에 이스라엘 후손들이 선물로 받은 자유와 구원의 감격은 시들해졌는가. 지금까지 조화로운 지도력을 보여준 모세, 아론, 미리암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이것은 미리암과 아론이 구스(에디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취한 모세의 결혼을 비방한 일에서 시작되었다(민수기 12:1). 모세의 아내는 미디안 족장의 딸 십보라였기에 모호하다. 마치 모세가 두 번째 아내를 맞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세의 두 번 결혼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해석자들은 십보라가 구스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여겨 구스 여자와 십보라를 동일인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뒤늦게 모세의 결혼을 문제 삼았을까. 문제는 모세의 결혼이 아니었다. 아론과 미리암의 속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가 흥미롭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12:2)라고 말한다. 지도력 문제를 둘러 싼 가족 간의 갈등인 셈이다. 이 말을 여호와가 들으셨다. 이 때문에 여호와는 세 사람을 회막으로 부르셔서 모세를 “나의 종 모세”라고 칭하시며 모세의 독보적인 지도력을 확인시키셨다(12:4-8).


아론과 미리암에게 진노하신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피부병을 앓게 하셨다(12:9-10). 미리암은 모세의 중보로 회복되지만, 이스라엘의 캠프 밖에서 일주일 동안 격리되어야 했다. 이때 백성들은 그녀가 다시 캠프로 돌아올 때까지 행진하지 않고 기다렸다(12:15). 이후로 이스라엘이 신 광야의 가데스에 머물렀을 때 미리암이 죽고, 거기에 매장된다(민수기 20:1). 그때 거기서 마실 물이 없어 온 회중이 불평했고,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쳐서 샘물이 솟아나 짐승들까지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로 아론과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통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 이른바 므리바 사건이다(20:5-13).


이후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입성하기 직전 모세의 지위는 여호수아에게(신명기31:7), 아론은 엘르아살에게 계승된다(민수기 20:26). 구원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예언자였던 미리암을 누가 계승했는가? 드보라에 이르기까지 기록이 없다. 미리암의 선지자적인 활동의 직접적인 기록이 없어 신앙의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거나 기억되지 않지만, 그녀는 모세와 아론과 나란히 백성들을 인도하며 지도력을 발휘한 예언자였다. 다행히 이것을 기억한 미가 예언자의 기록이 남았기에 우리는 다시 결혼하지 않은 자매, 최초의 여성 예언자 미리암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미리암의 뒤를 이어 예언자적인 소명을 간직하고 하나님 말씀을 나누는 벗들과 구원의 감격을 구성지게 노래하고 싶다. 그때 혼돈의 바다를 마른 땅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구원을. 그 후 1,500년의 세월 지나 죽음과 어둠의 장막을 뚫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그리고 또 다시 4월, 부활의 소망을 기다리며 혼돈과 어둠의 시간을 견디는 모든 이들과 함께.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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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6)


모든 살아있는 자의 어머니, 하와 다시 읽기


한국의 모든 교회와 신학교에 묻고 싶다.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가?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가? 남자와 여자를 편 가르기 하거나 여성이 남성에게 적대적 감정을 갖도록 부추기거나 남성에게는 우월감을 여성에게는 열등감을 갖도록 조장하려는 질문이 아니다. 인류를 구성하는 남자와 여자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났으며 어떻게 사는가를 다시 생각해보기를 제안하는 물음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계와 하나님의 노동으로 태어난 인류는 하나님 입으로 “좋다”(창세기1:4,10,12,18,21,25,31)라는 말을 반복할 만큼 만족스러운 걸작이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일궈진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리하도록 하셨다. 태생 자체가 하나님의 노동에 근거한 사람은(2:7)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능력을 부여받았고, 애정 어린 돌봄의 대리자가 되도록 명령 받았다. 태초부터 세상을 위해 청지기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은 하나의 성(性), 남성으로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대표되었다(1:27-28).


그러나 인류의 첫 번째 여성 하와의 태생을 다룬 창조 이야기 시점부터 인류로 표현되는 ‘사람’(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처음 의도는 일부 전문적인 독자들(목회자들, 또는 신학자들)에 의해 오랜 역사 속에서 오독되곤 했었다. 감히 오독(誤讀)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류 최초의 여자에 대한 창세기 본문이 가부장제를 정당화시키는 말씀으로 인용되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창조세계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다는 것을 옹호하는 본문으로 읽혀졌다. 더욱이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는 사람으로 읽혀 여자에게 악담이 가해졌고,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다스리는 동등한 대리자가 아니었다. 그러면 창세기 본문이 과연 이것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우주적 관점에서 창조 이야기가 기록된 창세기 1장과 달리 2장의 창조 이야기는(2:4-25) ‘에덴’이라는 장소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남자와 여자)의 창조,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 주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는 장면에서, 인류를 일컫는 남성명사 ‘아담’(사람)은 여성명사 ‘아다마’(땅)의 티끌(개역개정, “흙”)로 만들어졌다고 묘사된다(2:7). 남성명사 ‘아담’보다 여성명사 ‘아다마’가 근원적인 우선권을 갖는 셈이다. 이것은 언어유희처럼 보이지만, ‘사람’(아담)의 근본은 여성명사 ‘땅’(아다마)에 있었다. 고대 언어의 형태와 의미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치우침 없는 중립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남성보다 여성이 열등한 존재로 해석된 이유는 여성이 두 번째 창조된 존재로 읽혔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2:18, 개역개정) 말씀하셨다. 주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suitable helper”, NIV)이 없는 것을(2:20) 안타깝게 여기셨다. 주 하나님은 ‘그 사람’(“하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셔서 ‘그 사람’에게 데려오셨다(2:21-22). 그러자 ‘그 사람’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 자기의 배우자를 향한 인류 최초의 사랑 노래를 부른다(2:23).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가 남자로부터 취해졌으니 여자라(2:23)


히브리말 여자를 뜻하는 “잇샤”는 남자를 뜻하는 “이쉬”의 여성명사다. 어휘 자체에 동등함이 내포되었다. 또한 하나님이 남자에게 주신 여자, “돕는 배필”을 직역하면, 한 쌍으로서 “그의 한쪽 조력자”라는 뜻이다. 곧 동등한 자격자(counterpart)로서의 배필이다. 여자가 남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낸 표현이다. 더욱이 ‘배필’로 번역된 말, “에제르”는 모세가 하나님 이름을 “엘리 에제르”(출애굽기18:4)라고 고백한 이후로도 오랫동안 도우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곳에서 발견되는 말이다(신명기33:7, 26, 29; 시편33:20; 115:10-11; 124:8; 146:5). 이렇듯 하나님은 인류 첫 사람의 혼인을 기획하시면서 남자보다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다.


여자를 남자로부터 파생된 이차적인 열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더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절정이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향해가지만, 창조의 완성은 일곱째 날 하나님의 안식에 있다. 때문에 창조의 절정과 완성을 향하는 과정에서 여자는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들 중 최후의 피조물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되 처음에 남자를 만드시고, 마지막에 여자를 만드신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은 시작과 완성의 만남이지 처음과 두 번째라는 부차적 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유혹자로 생각하는 본문의 오독을 따져봐야 한다. 뱀과 여자의 대화 장면을 꼼꼼히 살펴보면 여자는 유혹하는 자가 아니다. 여자는 뱀의 유혹을 받은 인류의 첫 두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창세기 3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인류의 타락을 묘사하는데, 주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 중에서 뱀이 “가장 간교했다”(개역개정, 3:1). 뱀이 “간교하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번역되었지만, 사전적인 본래 의미는 “통찰력이 있다”, “예리하다”, “영리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뱀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과 근접한 능력을 가진 피조물이었던 셈이다.


들짐승들 중 가장 영리한 뱀이 여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뱀의 생김새 묘사는 없다. 그러나 여자와 매우 정교하고 능숙한 대화를 나눈 것은 분명하다. 이 둘의 대화에서 유혹을 받는 결정적인 말은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3:4)라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뱀은 금지된 열매를 먹으면 전에는 못 보던 것을 볼 것처럼, 더욱이 선악을 아는 일에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해질 것이고, 하나님은 이것을 우려하시는 분처럼 말했다(3:5). 유혹의 본질은 하나님의 지시와 다스림 아래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그름의 근원이 되는 자율성이었다. 곧 자신이 법이 되는 것이다. 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고 남자와 여자는 순종과 거역사이에서 흔들렸다.


여자는 뱀의 말을 들은 후 동산 중앙에 있는 금지된 나무를 보니 먹기에도 좋아 보이고, 눈을 즐겁게 하고, 지혜를 획득할 만한 무엇이 있어보였다. 이때 여자는 그 열매를 따서 먹고, 옆에 있는 자기 남자(남편)에게 주었고, 남자도 먹었다(3:6). 이 결정의 주도권이 여자에게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뱀과 여자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남자가 줄곧 옆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먼저 들었던(2:16-17) 남자는 여자와 뱀의 대화를 듣기만 했을 뿐 끼어들지 않았다. 남자는 침묵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이후 금지된 열매를 먹은 남자와 여자는 두려움, 부끄러움, 고립감을 느껴야했다. 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었을 때, 주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부르셔서(3:7-10) 이유를 물으셨다(3:11). 이때 첫 사람은 책임감을 회피하는 발언을 한다. 그렇더라도 그는 여자의 유혹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좀 더 근원적이다. 남자의 말을 정확하게 읽으면, “나와 함께 하라고 당신이 주신 그 여자가 나무의 열매를 내게 주어서 내가 먹었습니다.”(3:12)라고 대답한다. 여자는 뱀의 유혹 때문에 먹었다고 답변했다(3:13). 뱀의 유혹이 있었지 여자의 유혹은 없었다. 인류의 첫 두 사람의 불순종은 공유된 것이었다. 어느 한 쪽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끝내 주 하나님의 심판이 뱀과 남녀에게 내려졌다. 뱀은 흙을 먹고 기어 다니는 저주 아래 놓였을 뿐만 아니라 여자의 후손의 원수가 된다. 여자의 출산의 고통은 더 커졌으며, 사람에게 축복이었던 신성한 노동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되었다. 이들 부부의 절대적 동등한 관계역시 손상을 입어 지배와 종속 관계로 뒤집혔다(3:16-19). 이때 ‘그 사람’은 자기 아내(여자) 이름을 ‘하와’(생명)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여자는 “모든 살아있는 자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3:20).


남자와 여자의 지배 종속의 문제는 죄가 가져온 결과이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것이 아니었다. 불순종, 곧 반역이 가져온 죄의 영향력은 땅과 사람, 사람과 사람, 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상처를 입히고 비틀어 소외를 불러왔다. 죄는 인간이 다른 동료 인간을, 땅을, 나무를, 강을, 짐승들과의 ‘샬롬’을 파괴하고 착취하고 억압하는 관계로 뒤엎었다. 그러므로 죄의 파괴적인 영향력이 가져온 갖가지 지배 종속 관계는 창조의 원래 목적대로 동등한 관계와 애정 어린 돌봄으로 회복해야할 기독교인의 임무이지 옹호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혹시 농담으로라도 창세기 본문의 오독으로 여성이 열등한 존재나 유혹하는 존재로 비하되지 않아야 하며, 지배와 종속관계로 묶이지도 않아야 한다.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공적인 일에서 단지 여성이라서 부당하게 차별당하는 일이나 오해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남녀차별의 문제를 넘어 돈이나 학벌로 계급화 된 요상한 사회구조, 특정지역 폄하, 신체적 정신적 장애에 가하는 폭력 등등의 문제까지 그 무엇이든 동료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끊어내는 출발이기 때문이다.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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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5)


리스바, 주검을 지키며

가슴이 미어졌을 그대


진실은 왜 희생자들을 통해서 밝혀지는 것일까? 왜 가난한 자들, 박탈당한 자들, 경계에 선 자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인가?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까? 성경은 이따금씩 이상하거나 불편하거나 쓰리거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리스바의 이야기를(사무엘하 21:1-14) 읽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리스바 이야기는 ‘사무엘서 부록’이라고 일컫는 사무엘하21-24장에 포함된 일화다. 다윗이 죽은 사울의 후손들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 희생물 삼은 사건의 절정과 결말에서 리스바가 등장한다. 다윗은 왜 선왕 사울의 아들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이 사건은 다윗 시대 3년 동안의 기근에서 시작된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근의 이유를 묻자 하나님은 사울과 피 흘린 그의 집, 그리고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것 때문이라고 알리셨다(21:1). 그러니까 흉년으로 인한 굶주림의 이유가 사울의 살인죄와 연결되었다는 계시였다. 그런데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왜 사울이 범한 죄 때문에 다윗 시대에 응징을 받고 고통당해야 하는가? 더욱이 사울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실패한 왕으로서 비극적인 죽음까지 맞이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사울은 생존 당시 왜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는가? 문제는 사울의 일생을 다룬 기록에서 기브온과의 사건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든 다윗 혼자만 아는 이 일 때문에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호출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아모리 족속의 생존자들이다(2절a). 일찍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기브온 주민들과 협정을 맺고 그들을 살려주기로 약속했었다(여호수아 9:3-15).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한 사울의 열정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이 보고된다(2절b).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너희를 위해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3절) 물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신중하게 대답한다. 그들은 사울과 그 집안과의 관계에서 돈의 배상이나 죽음으로 보복할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윗은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는 적극적인 응대를 한다(4절). 다윗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왕권으로 일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은 자기들을 학살하고 이스라엘 영토에서 쫓아낸 사람의 후손 일곱 사람을 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이 일곱 명의 후손들을 “목메어 달겠나이다”라고 하자, 다윗은 내주겠다는 즉답을 준다(5-7절). “목메어 달겠다”(개역개정)로 번역된 히브리말은 구약에서 단 한 번 사용된 표현이다. 사전적인 의미는 “사지를 절단하여 벌여놓는다” 또는 불확실하지만 “태양 아래 십자가형”을 뜻하는 매우 끔찍한 표현이다. 이때 다윗은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았다. 다윗은 정적의 후손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일까? 하나님의 권위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다윗이지만(22:1-23:7; 24:11-25), 왕권안정을 위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적인 보복을 묵인한 것처럼 보인다.



이때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살려두었다(7절). 다윗은 사울의 첩으로 알려진(11절) 아야의 딸 리스바가 낳은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다섯 사람을 붙잡아 기브온 사람에게 넘긴다(8절). 다윗의 허락으로 7명의 사울 자손을 넘겨받은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 있는 산에서 끔찍한 형벌로 그들을 죽였다. 때는 첫 보리를 베는 날이었다(9절). 이 끔찍한 일이 여호와 앞에서 시행되었으니, 이들 모두 죽임을 마치 제의적인 경건의 표시나 애국심의 발현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거기다 이 일이 시행된 때가 절묘하다. 마치 사울의 핏 값에 대한 속죄가 기근의 끝을 가져올 것 같은 기대를 암시하지 않는가.


그런데 기브아 사람에 의해 죽은 7명의 사울의 후손들은 장례절차도 없이 매장되지도 않은 채 방치되었던가 보다. 리스바가 두 아들과 사울의 다섯 명의 외손자들 주검이 있는 곳에 와서 굵은 베를 바위에 펴놓고 낮에는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도록 주검을 지켰다. 이 일은 곡식을 베기 시작한 때부터 비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10절). 이 비가 늦은 봄이나 여름비인지 가을비 인지 알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다면, 리스바의 고된 일은 한 달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6개월을 밤낮으로 주검을 지키며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리스바는 이 고행의 시간을 홀로 어떻게 견뎠을까.


폭력적인 행위와 죽음, 혼돈과 파괴의 중심에 섰던 리스바, 그녀 이름의 뜻은 “빨갛게 타오르는 돌”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한때 사울 왕실에서 왕의 총애를 받으며 살았을 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디에도 왕실의 안락함을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아들의 주검이 훼손되지 않도록 밤낮으로 고행을 하고 있다. 그녀는 낮의 새들을 쫓고 밤에는 홀로 타오르는 횃불이 되어 밤의 짐승들과 외롭게 싸우고 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외로운 침묵과 기브온 사람만을 만족시킨 다윗의 결정이 대조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희생자들을 위한 리스바의 고행이 다윗에게 알려졌다(11절). 복수의 희생자요, 죽은 자들의 보호자였던 리스바의 행위가 다윗의 귀에 닿은 것이다. 비로소 다윗은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요나단의 뼈와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어 벧산 거리에 매달린 사울의 뼈를 비밀리에 수습하여 가져왔다(12절). 그리고서 다윗은 죽은 7명의 사울 후손들과 함께 베냐민 땅 셀라 지역에 있는 사울 아버지의 묘지에 매장한다. 이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13-14절)라는 해설로 사건은 종결된다.


리스바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녀의 버려진 두 아들과 사울의 외손자들의 주검을 보호하려는 투쟁은 다윗을 향한 정치적 행위였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의 씨름이었을까. 모호하다.


언뜻 보면 사울 집안을 향한 기브온 족의 해결되지 않은 분노와 다윗의 허락아래 사울 자손을 죽인 후 비가 내린 것처럼 보인다. 마치 사울의 상속자들을 제거한 다윗의 직접적인 책임을 면책하려는 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사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보복의 희생물로 죽어 장례도 치르지 못한 아들과 가족을 위한 어미 리스바의 고독한 싸움은 하늘과 땅을 향한 부르짖음이었으리라. 먼 옛날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세기 4:11) 말씀하셨다. 리스바의 싸움은 참 인간을 대변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녀의 고독한 투쟁에 응답하듯 하늘로부터 비가 내렸다.


하나님은 보복과 증오 섞인 사람들의 행위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자식의 희생을 지키며 밤낮으로 고행을 자처했던 힘없고 약한 어머니 리스바에게 응답하셨다. 끝내 희생자 편에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었다.


리스바의 고독한 투쟁에서, 차갑고 얼어붙은 겨울들판을 지나 봄의 사순절을 통과하는 지금, 십자가의 희생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몸이 무덤에 안치되는 순간까지 마음 조리며 지켜봤을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겹쳐진다. 지나친 확대일까. 아니, 역사의 고비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와 결정을 허용하시고 지켜보시며 당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개입하셨다. 그리고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아들들의 주검을 지켰을 리스바에게서 세월호 희생자들 중 미수습된 9명의 시신을 3년째 기다리며, 침몰된 배 인양을 지켜보았던 가족들의 고행까지 겹쳐진다. 기꺼이 희생자의 편이 되신 주님,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이 봄을 물들이기 전에 속히 수습되도록 도와주십시오.


김순영/구약학/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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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4)


다말, 당신의 위험천만하고 대담한 행동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불편한 이야기들이 종종 눈에 띤다.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 이야기는 입에 올리기 거북한 가정사 중 하나다. 38장의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근친상간의 스캔들로 끝내는가하면, 누군가는 “가족관계증명서”로 읽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증명서 발급자가 다말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시아버지 유다가 주인공이 아니라 다말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세기 38장은 유다,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말, 그녀의 이야기다. 물론 이 말에 불편할 독자도 있겠다. 

    그동안 창세기 전체에서 38장은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아넘긴 사건(37장)과 요셉이 이집트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가게 된 사건(39장) 사이에 생뚱맞게 위치하여 해석자들의 관심거리였다. 더욱이 유다는 도덕적인 흠결이 있음에도 아버지 족장 야곱으로부터 가장 큰 축복을 받았다(49:8-12). 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국가로 발돋움한 후 유다지파 공동체의 조상으로서 다윗왕국을 수립하는 유력한 인물의 조상 아닌가. 이 때문에 38장은 다말의 관점보다는 유다의 관점에서 읽혔다. 여성이 이야기의 주인공 되기 어려운 남성중심 사회의 한계 안에 다말이 살았지만, 다말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어떨까.

    이야기는 “그 후에”로 시작한다(36:1). 야곱의 아들들이 유다의 제안대로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고 난 후였을 테다(36:25-36). 유다가 어쩌다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게 되어 세 명의 아들을 얻었다. 아들들의 이름은 엘(Er), 오난, 셀라였다(1-6절). 유다의 할아버지 이삭과 리브가는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가나안 사람의 멸망을 미리 알리셨던 것에(15:13-16) 근거한 것일 테다. 그런데 유다가 가나안 여자와 결혼했으니 불길한 징조다. 아니나 다를까.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해 다말(Tamar)이라는 여인과 결혼시켰는데, 엘이 죽고 말았다. 이유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이었다(6-7절). 엘의 히브리 발음 “에르”를 뒤집으면 ‘악’이라는 뜻의 히브리말 “라”가 된다. 죽을 만큼의 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알려지진 않았다. 

    이때 유다는 당대의 풍습을 따라 둘째 아들 오난을 형수 다말에게 보내 죽은 형제의 의무를 이행하게 했다(8절). 형의 대를 잇는 ‘계대결혼’이다. 이것은 남편 없이, 아들 없이 살아가는 고대 여성의 생존의 위태로움과 안위를 고려한 일종의 사회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오난은 자신에게 별 이로움이 없다고 생각하고, 죽은 형과 남겨진 형수를 위한 것이라 여겨 잠자리에서 정자를 흘려버렸다(9절). 이것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고, 여호와가 그도 죽이셨다(10절). ‘계대결혼이’ 가족의 의무로서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결혼했다면 책임수행이 뒤따른다. 오난은 무책임했다. 이때 유다의 행동 역시 돌출된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말한다.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이렇게 말한 유다의 속내는 곧 해설자의 목소리로 폭로된다. 유다는 막내 셀라도 그 형들처럼 죽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11절). 유다의 행동 역시 자신의 둘째 아들 오난만큼 이기적이고 무책임했다. 아들들의 죽음이 필시 며느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이즈음 이름도 없이 수아의 딸로만 소개된 유다의 아내이자 다말의 시어머니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채, 죽었다는 보고만 있을 뿐이다. 유다는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자기 양들의 털을 깎는 사람들이 있는 딤나로 내려갔다(12절). 삼손 이야기에도 언급되는(사사기14:1-2) 딤나의 위치는 확실하지 않다. 위치보다 중요한 것은 친정으로 돌아간 다말의 행동이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딤나에 올라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는 에나임 길에 앉았다(13-14절). 에나임의 위치도 확실히 알려지지 않지만, 신체기관의 하나인 “눈들”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시아버지가 “눈들”이 있는 거리에서 자기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창녀’(히브리말, “조나”)로 여겼다니(14-15절), 장소적인 역설에 익살스러움이 더해졌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다가가 하룻밤 동침을 요청하자 다말은 그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인지 묻는다. 유다는 염소 새끼 한 마리로 흥정했다. 유다에게 당장 현물이 없었던지 다말은 담보물로 도장과 도장을 묶는 끈, 지팡이를 요청하여 받았다. 이것으로 하룻밤의 잠자리가 성사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했다(17-18절). 이야기는 신속하게 전개되었다. 다말은 이후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다시 입었다(19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가 유다로부터 받은 도장, 도장을 묶어 목에 메는 끈, 그리고 권위를 상징한다는 지팡이, 모두 값비싼 물건은 아니어도 누구의 것인지를 식별하는 사적인 물건들이다. 다말은 이 일을 위해 주도면밀했다. 

    그렇게 며느리와의 하룻밤을 보낸 유다는 친구에게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보내 담보물을 찾아오려고 했지만, 그 여인을 찾을 수 없었다(20절). 이 남자는 사람들에게 에나임 길에 있던 ‘신전창녀’(히브리말, “케데샤”)를 수소문하지만, 거기에는 신전창녀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21절). 유다는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창녀’라고 했는데, 왜 친구는 ‘신전창녀’를 수소문한 것일까. 신전창녀와의 성관계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가나안 문화의 종교적 관행이었다. 관행에 기대 수치와 책임감을 조금이라도 면피하려는 의도였을까? 

    친구는 유다에게 그곳에 ‘신전창녀’가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자 유다는 부끄러움 당할지 모르니 그냥 두라며,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을 짚어주며 사건을 종결하려고 했다(22절). 그러나 삼 개월 후 며느리가 “행음하였고(잔타), 그 행음함으로(리제누님)”(23절)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 강조점은 유다의 친구가 사용했던 ‘신전창녀’와 관련된 어휘가 아니다. 유다가 사용한 ‘창녀’(조나)라는 말의 어근 동사의 반복 활용이 매우 의도적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접한 유다는 그녀를 끌어내 불태우라고 한다. 유다의 분노는 며느리를 불태워 죽이고 싶을 만큼 컸을 테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한 익명의 어떤 사람은 유다가 말한 ‘창녀’와 관련된 어휘를 사용하고 있으니, 유다를 고발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마치 며느리를 향한 분노가 부당하다고 증언하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결국 다말이 끌려 나올 때,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말을 전한다. 

“이 물건의 주인 때문에 내가 임신하였습니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25절) 


공개적인 자리로 끌려나왔을 다말의 결정적 한 마디는 아마도 유다를 당혹스럽게 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마음 상태를 알리는 묘사는 없다. 유다는 담담하게 담보물들을 알아보고 말했다. 

“그녀가 나 보다 더 옳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26절)


    불편한 이야기 끝에 이르러 다말의 행동이 단지 성적인 일탈행위가 아니었음을 유다의 입을 통해 발설되었다. 유다를 통해 다말은 신의성실을 다해 자신의 결혼의무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이후 유다는 다시는 더 이상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26절)라고 강조하는 해설과 함께 며느리와 시아버지와의 불편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면밀히 살피면, 저자는 ‘창녀’와 ‘신전창기’라는 말을 교묘히 교차 사용하면서 유다의 잘못을 고발하고 강조한 셈이다. 그리고서 끝내 다말이 낳은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27-30절)의 이름에서 밝혀질 중요한 사실 하나를 여운처럼 남긴 채 38장은 끝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베레스는 룻의 남편이 될 보아스의 조상이 되고,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먼 조상이 된다(룻기 4:21-22).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12-50장)의 큰 주제는 후손을 통해 약속의 계보를 이어가는 일이다. 이 약속의 성취 맥락에서, 유다와 다말 이야기는 언약의 계보를 이어가는 연속적인 책임수행을 족장 야곱의 아들 유다가 아니라 다말이 그 역할을 이행했음을 보여주었다. 

    유다와 다말의 시대로 돌아가 생략된 다말의 마음을 꼼꼼히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다윗 왕의 여자 조상으로서(룻기4:21-22) 예수님의 족보에(마태복음1:1-6) 올랐으니 그녀 없이는 보아스와 다윗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여기’ 거룩한 말씀의 행간을 오가는 신앙의 독자로서 다말에게 말하고 싶다. 


‘종려나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다말, 당신의 위험천만하고 대담한 행동이 끝내 메시아 약속의 계보를 잇는 일이 되었군요. 그러나 그때 두렵지 않던가요? 당신은 죽을 수도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의 손에 들려졌던 유다의 지팡이, 슬픈 얼굴의 여자 족장을 상상해봤어요. 결국 당신의 시아버지 유다와 당신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그리고 신비 안에서 숨은 뜻을 이해하고 깨닫기까지 더딘 걸음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고백하게 합니다. 


김순영(구약학/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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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3)


여러 민족의 어머니, 사라


창세기는 태곳적 역사(1-11장)와 아버지 족장들의 이야기다(12-50장).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탄생하기까지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을 위한 약속의 담지자가 된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수메르의 수도 우르에서 살던 아브라함, 그에게 하나님은 땅과 수많은 자손을 약속하시면서 불러내셨다(창세기 12:1-3; 15:5; 22:17). 땅과 후손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서 멈추지 않고 그의 아들 이삭(26:3-5), 손자 야곱(28:13-14; 35:11-12)에게로 이어져 반복되고 확증되었다. 고대 사회의 장자 권리를 타파하고 작은 자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작동하지만, 창세기는 혈통의 부계 권리를 보강한다.


그런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불임이다(11:30; 16:1). 약속의 성취를 맛보기까지 아내 혹은 어머니의 상태가 묘사되지만, 여성들의 등장이 여성의 권리 옹호는 아니다. 여성들은 결정적 순간에 이야기 경계 밖으로,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로 이어지는 약속에서 어머니들은 그저 아버지의 주도권 아래 종속된 존재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는 순간에(12:1-3),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 중대한 국면에서 아내들과 어머니들은 없다.


사라졌던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을 위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것은 고대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신분 보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들 출산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역설적으로 약속의 계보를 이어가야 할 창세기의 어머니들은 모두 불임의 문제를 안고 있지 않은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25:21), 야곱의 아내 라헬에 이르기까지(30:1-21) 아들을 원했지만 쉽지 않았다. 때문에 이들은 다른 여자를 통해서라도 아들을 얻는 방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여성들도 한 사회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회적인 실체이지만, 창세기의 어머니들 묘사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측면들과 일치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이웃하는 나라들은 복잡한 아브라함 가족관계의 서술 속에서 드러난다. 이스마엘, 에돔, 암몬, 모압, 미디안, 동쪽의 아랍 족이 동일한 부계로 통일되지만(26:1-6), 이스라엘만 하나님 약속의 계승자였다. 일부다처제가 용인된 사회의 가족은 아내들 사이의 다툼을 가져왔고, 서로의 이익 충돌은 분열의 원인이었다.


때때로 남성들의 갈등과 지배력 문제들은 여성들을 통해서 결정되기도 했지만, 가족 갈등의 중심에 여성이 자리 잡게 된다. 이스마엘과 하갈은 사라 때문에 쫓겨나야했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어머니 조상들의 적극적인 행동은 자식 편애로 나타나곤 했다. 이것이 가족 관계의 갈등을 불러왔지만, 아버지들도 자유롭지 않다. 에서를 더 사랑했던 이삭, 요셉을 유달리 사랑했던 야곱의 편애는 형제들 간의 불화와 갈등을 만들었다. 여러 갈등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 위기로 이어져도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이 구속 역사의 원동력이었지만, 가족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약속의 위기를 가져오는 이야기들 중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 부부가 처음 등장할 때의 이름은 아브람과 사래다(12장). 그러나 17장에 이르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재확인시키면서 그들의 이름은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뀐다. 이로서 그들은 민족의 아버지(17:5), 민족의 어머니(17:15-16)로 부름 받는다. 하나님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위기에 처해지는데, 그 첫 위기는 사라가 두 번에 걸쳐 이방 나라 왕의 아내로 취해질 때다. 이들이 이집트에 머물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현지인들이 자기 아내를 탐내고 자기를 죽일까 염려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다(12장). 두 번째는 그랄 땅의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원할 때였다(20장).


이렇게 여자 조상인 사라의 위기는 하나님의 약속의 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땅을 약속하셨을 때, 어떻게 아내 사라 없이 자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런데 사라는 여성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남성들에 의해 주고받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사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12:13, 새번역)


사라가 이집트 왕에게 보내지는 과정에서 사라의 반응은 생략되었다. 사라는 아무 말이 없다. 사라는 남자들의 관계에서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사라는 자기 몸의 결정권을 갖지 못했고, 사라의 몸은 남자들끼리의 문제로 넘겨졌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까지 받은 자가(12:2-3) 자기 목숨을 구하겠다고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는 것이 가능한가. 구차해 보인다. 아내를 보호하려는 일에는 관심이 없지 않은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통로가 될 것은 물론이고 땅을 소유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자기 아내를 다른 이방 남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런데 아브라함 때문에 발생한 위기 상황을 하나님이 해결하신다. 이 사건 이후에도 아비멜렉과 사라의 이야기 속에서 본문은 둘 사이에 어떤 성관계도 없었다는 것을 애써 밝힌다(20:4).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사라가 남편 있는 여자라는 것을 알리시고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셨다(20:4-7).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은 아비멜렉의 말과 행동으로 사라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쪽으로 진행되었다(20:16).


다행히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집트(12장)와 그랄 땅(20장)의 이방 왕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녀를 남편에게 되돌려 보냈다. 물론 두 이방의 왕들은 돌려보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이 원인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방 왕에게 재앙을 가져왔거나 죽음과 민족말살의 위협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하여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화해의 선물로 양과 소떼, 남종과 여종, 그리고 땅을 주었다. 그는 아브라함의 은밀한 행동과 달리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아내를 도구삼아 안전을 확보하려고 했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후대의 신앙인들에게 가부장적인 문화 안에서 생겨난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태도를 갖게 했다. 베드로 사도는 사라의 순종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하나님 언약의 담지자로서 남편과 아내의 동등함의 모범으로 사라 부부를 제시한다(베드로전서 3:6-7).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에게 사려 깊은 배려를 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지만, 사라는 칭찬을 받는다. 이 칭찬은 베드로가 살았던 그리스-로마 문화의 강력한 가부장적인 질서에 익숙한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를 하나님 일의 동등한 협력자로서 대우하도록 도전하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남편 된 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연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은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베드로전서 3:7)


이렇게 베드로 사도는 사라를 자기 시대로 끌어내어 신앙 공동체의 남편들에게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은 사람”으로 동등하게 존중하도록 요청했다. 남편 아브라함 때문에 위태로운 순간을 넘겼던 사라가 남편과 동등하게 “여러 민족의 어머니”(창세기 17:16)로서 부름 받은 사실은 후대 신앙인들의 말과 글로 재현될 때에야 묻히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신앙의 독자는 구약성경에 서술된 고대 이스라엘과 구속 역사에 묻어난 문화적인 간격들과 마주해야 한다. 이때 현대 독자의 눈에 납득되지 않는 불편함이 여럿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때로는 ‘불편한 지적질’을 하게 되는데, 불편함을 슬쩍 넘기지 않고 제기하는 것은 사소한 트집이 아니다. 거기서 질문이 생기고, 어쩌면 정곡을 찌르는 답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김순영/구약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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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2)


의로운 매춘부 라합


‘여호와의 종’ 모세의 지도력을 계승한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이 시작되었다(주전 15세기). 여리고성을 시작으로 아이성, 기브온, 하솔 등 여러 도시와 전쟁을 치러야한다(여호수아 1-12장).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광야에서 레바논까지, 큰 강 유프라테스에서 헷족속 온 땅과 서쪽 지중해까지다(1:4). 이미 아브라함에게 이집트 강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신(창세기 15:18) 것처럼, 약속의 성취 시점이 임박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 본격적인 정복전쟁이 시작되기 전, 가나안 땅 여리고성에 거주하는 매춘부 라합의 드라마가 자리 잡고 있다(2:1-24).


전쟁의 거친 함성소리가 들려오기 전이다.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정탐꾼 두 명을 여리고로 보내 은밀하게 요단강 서쪽의 상황을 엿보게 했다. 이때 정탐꾼들이 유숙하게 된 집이 “라합”이라는 “매춘부의 집”이었다(2:1). 현대사회도 그렇겠지만, 고대 사회에서 매춘부는 극심한 가난과 빚에 내몰려 선택하게 되는 생존을 위한 최후 수단이었다. 그런데 하필 정탐꾼들이 유숙하려고 찾아간 집이 매춘부의 집이라는 것이 불편했는지, 주석가들 중에는 히브리말 매춘부에 상응하는 “조나”를 “여관 안주인”(hostess) 또는 “여인숙 주인”(innkeeper)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매춘부라고 번역하더라도 각주에 여인숙 주인으로 명시하곤 한다. 마태복음 1장 5절의 예수님 족보에 라합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아스의 어머니요, 다윗의 조상이니(룻기 4:21) “매춘부”라는 것을 제거하고 싶을 만큼 불편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춘부 라합은 후대 신앙의 세대에 의해 칭송받는 믿음과 행함의 영웅이었다(히브리서 11:31; 야고보서 2:25).



정탐꾼들이 비밀리에 창녀의 집에 들어왔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파이로 잠입해 들어온 사실을 여리고 왕이 듣게 되었다(2절). 어떻게 이 사실이 알려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된 채로 여리고 왕의 부하들이 라합의 집에 들이닥쳐 스파이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할 때는 이미 늦었다. 라합이 두 사람을 숨긴 뒤였다. 그리고 라합은 정탐꾼의 행방을 묻는 자들에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거니와 이미 떠났고, 성문 닫을 때쯤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라합은 그쯤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에게 서둘러 뒤따라가라며 따돌리기까지 한다(3-5절). 그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탐꾼 뒤를 추적하며 요단강 나루까지 갔고, 성문은 닫혔다(7절).


스파이를 쫒는 여리고 왕의 사람들은 성문 밖으로 나간 상황, 쫒기는 자들은 성문 안쪽 라합의 집 지붕에 숨었다(6절). 왕의 사람들을 따돌린 라합이 지붕으로 올라왔다(8절). 가나안 지역 대부분의 집들은 지붕이 평평하여 곡식을 말리거나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몸을 숨길만한 곡식 자루들이 있을 법하다. 이때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고백한다.


“나는 주님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것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이 땅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당신들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2:9, 새번역)


그녀의 말은 두 명의 정탐꾼도 놀랄 일이었지만, 독자도 놀랄만한 일이다. 이 말은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을 찬양한 모세의 노래에 담긴 내용 일부처럼 들리니 말이다(출애굽기 15:15-16). 그녀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홍해를 가르고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옥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듣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다고 말하지 않는가(10절). 라합의 말의 강조점은 가나안 주민이 이스라엘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녀의 결정적인 고백은 남달랐다.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믿음의 고백이며 증언이었다.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위에서, 과연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2:11)


그런데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서 재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처럼 정탐꾼들에게 확답과 맹세를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당신들도 내 아버지의 집안에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주님 앞에서 맹세를 하시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확실한 징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부모와 형제자매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식구들을 살려주시고, 죽지 않도록 우리를 구하여 주십시오.”(2:12-13)


라합의 요구는 구체적이고 강력했다. 그녀의 말에서 그동안의 삶의 고단함과 절실함이 묻어난다. “나의 아버지의 집”과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식구들”로 표현된 가족의 범위는 친척들까지 포함한 구원요청이었다. 라합 집안의 운명이 집안을 대표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오로지 그녀에게 달렸다. 그녀의 요청이 수락된다면, 불가피하게 원하지 않은 딸의 매춘으로 비참한 삶의 결핍을 보충했을 가족은 미천한 딸에 의해 다시 생명 보존의 기회를 얻게 된다. 적어도 그녀의 말에서 가부장적인 집안의 위계질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타파되고 있는 셈이다.


라합은 이집트 제국의 억압아래 노예의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후손도 아니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귀로 들은 하나님의 구원 사실만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라합은 혈통적인 정체성과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는 이방인의 믿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강도 높은 라합의 요구만큼이나 라합에 의해 위기를 모면한 정탐꾼들 역시 목숨을 내놓고라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들은 여호와가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친절과 성실”(새번역; 히브리말, “헤쎄드”와 “에메트”)을 다해 대우할 것을 약속한다(14절). “친절”에 상응하는 “헤쎄드”는 언약적인 충성을 뜻한다. 라합과 정탐꾼들 사이에 신실하게 수행해야 할 계약관계가 수립된 것이다. 무엇보다 “헤쎄드”와 “에메트”는 구약에서 짝꿍 단어로 자주 사용되는데, 하나님의 견고한 사랑과 신실함 곧 지속적인 돌봄을 표현한 개념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자비로운 행위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이렇게 라합은 자기 가족과 친척들의 안전과 보호를 보장받고 성벽에 붙은 창밖으로 정탐꾼들을 탈출시킨다(15절). 그녀의 집 위치는 분명하지 않지만, 성벽 사이에 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변방의 소외된 신분이라는 상징성이 농후하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내려 보내면서 3일 동안 산에 숨었다가 추적자들을 따돌린 후에 돌아갈 것을 당부한다(16절). 라합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된 정탐꾼들 역시 그녀에게 마지막 당부를 한다. 그들은 라합에게 홍색 줄을 건네고 이스라엘 백성이 진군해 오는 날 창문에 매달아 두면, 이 홍색 줄은 라합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모든 친척들에게 희망이 될 것을 약속한다. 단, 누구도 라합의 집밖으로 나가면 안 되고 비밀은 지켜져야 한다(18-20절). 라합은 정탐꾼들의 말대로 “홍색의 희망”을 묶었다(21절).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던 날, 라합이 요구한대로 그녀의 아버지 집안과 그녀에게 속한 모든 가족들은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이스라엘에 거주하게 되었다(6:25)라는 라합의 “홍색의 희망”과 구원 드라마는 ‘지금여기’ 우리에게 왜 전해져야 했을까?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편입되는데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태생적 근거는 라합에게 유효하지 않았다. 매춘부라는 직업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라합의 드라마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히브리서 기자의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을 영접하여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않았다(히브리서 11:31)라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전리품을 챙긴 불순종 때문에 ‘진멸’당한 아간과 그의 자녀들 이야기를(여호수아 7장) 대비시킨다. 이뿐 아니라 야고보 사도는 “행함으로” 라합이 의롭다함을 받았다(야고보서2:25)라고 칭송했다. 신약의 두 본문이 믿음과 행함의 강조점의 차이로 보이지만, 믿음과 행위 중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서로를 보충한 것이다.


그리고 라합의 드라마는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최고 민족으로 부추겨 자칫 승리주의적인 역사관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구원 목적과 범위를 깨닫게 한다.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남성의 성적 욕구해소의 도구였기에 가나안 사회에서도 소외되고 유린당했을 라합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닿았다. 이후 먼 훗날 라합은 온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는 은총을 입는다. 그렇게 라합은 낮고 비천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역사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지금여기’ 기록된 말씀을 듣는 믿음과 행함의 치우침 없는 실행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생산되어 확장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약자가 교회공동체 안에서 환대받고 있는가. 중산층의 교회를 열망하는 아니 이미 중산층의 교회가 된 한국 교회는 낮은 곳을 향한 연민을 잊은 듯하다. 이 땅의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지만 전리품에 눈멀어 불순종했던 아간의 진멸과 같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김순영/구약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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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1)


부조리한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랑 노래를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의 목소리와 그들을 경축하는 합창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묘사 하나 하나가 아름답고 고상하다. 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랑노래에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유달리 많다. 70절의 젊은 여성의 노랫소리와 40절의 젊은 남성의 목소리에 더해 친구들의 목소리가 어울려 있다지만, 눈을 의심하고 귀를 의심하게 된다. 노래 첫 소절부터 젊은 여성의 적극적이고 에로틱한 사랑 묘사가 남다르다. 남녀의 사랑 관계에서 주로 여성이 사랑 받는 수동적인 역할의 고정된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매우 정제된 언어의 품격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연애시 <아가>는 “솔로몬의 아가”(아가 1:1)라는 표제의 예측과 달리 여성의 목소리가 우세하다. 실제로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솔로몬에게 속한 노래인지, 솔로몬이 쓴 것인지, 솔로몬에게 헌정한 노래인지 모호하다. 사랑에서 성 역할의 평등함을 노래한 것일까. 고대의 사랑 노래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이들의 고정화된 시각을 흔들어 깨운다.


내게 입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가1:2).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2:8)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0)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2:10)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2:13)


아가서의 히브리 성경 제목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솔로몬을 위한(솔로몬에게 속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1:1)이다. 그런데 남녀의 로맨틱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앞에 위치한 전도서와 오묘한 역설적 연결이 보인다. 전도서의 저자 전도자(히브리말, “코헬렛”)의 첫 마디, “헛되고 헛되다”(1:2, “하벨 하발림”)라는 ‘헤벨’(헛됨, 공허, 허무, 부조리)의 최상급 표현처럼, 아가역시 최상급의 표현, 가장 아름다운 노래(“쉬르 핫쉬림”)라는 언어적인 연결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삶의 양극적인 일들, 이를테면 삶과 죽음, 지혜와 어리석음, 시작과 끝, 허무와 기쁨, 사랑과 미움, 정의와 불평등 같은 뒤얽힌 현실들의 부조리를 발설한 책, 전도서. 세상사를 면밀히 관찰하고 짚어가며 중용적 가르침을 역설한 지혜 선생 코헬렛의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지극한 사랑 노래가 들려오지 않는가. 역설의 미학이 만나는 경계 같다. 지극히 부조리한 세상 뒤편에 지극히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으니.



주인공 젊은 여성(술람미 여인, 6:13)과 그녀의 연인과의 사랑의 열정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아가. 그런데 사람 몸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성애적인 묘사들을 거침없이 표현한 노래여서 유대교와 기독교 교회 역사 속에서 해석적인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젊은 연인들이 서로를 향해 몸에 대한 찬사를 쏟아놓은 노래와 육체적 사랑에 흠뻑 도취된 언어들이 어떻게 거룩한 정경으로 신앙 공동체 안에 자리 잡았는가는 물론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의 대부분이 에로틱한 표현과 육체적 매력들의 과장된 심상이 묘사되었으니 말이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4:3-5)


이처럼 성(sexuality)과 성적인 욕구의 솔직한 과감성을 드러내도 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앞에 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왜냐하면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이라는 신성한 관계(창세기 2:24) 안에서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가를 노래로 주석해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과 성은 하나님 창조의 일부였기에 남자와 여자를 하나 되게 하는 결혼관계 안에서 혼인을 앞둔 젊은이들은 사랑 표현의 구체성을 아가로 교육받은 셈이다. 그렇게 아가는 고대 이스라엘 신앙인들에게 지혜의 가르침과 배움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아가는 결혼 밖에서의 외설적이고 천박한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신성한 혼인관계 안에서 성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고대근동 국가들은 풍요를 갈구하는 종교들의 신전창기제도가 만연되어 있었고, 도덕적인 기준을 약화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의 태초 목적과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성적인 활동을 혼인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왜곡시켰다. 이러한 이교적 환경에서 아가의 혼인 첫날밤의 성애적 표현은 우아하여 당대의 독자로 하여금 예술적인 심미성을 자극했으리라.


지금도 여전히 고대 젊은 남녀의 고풍적이고 서정성 짙은 아가의 언어들은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내며 사랑을 잊은 이들에게 ‘죽음처럼 강렬한 사랑’(8:6) 노래를 부르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출신성분을 따지고 높은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에 자기계발로 응답하다 지친 젊은이에게, 자식들 뒷바라지와 먹고 사는데 지쳐 서로에게 애틋한 사랑노래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부모 세대에게 사랑의 힘을 잊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흔들리는 사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더라도 사랑의 힘을 과시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처럼.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8:6).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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