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5)

을(乙)의 지형학
-「조선지리소고」 1934. 3 -

 

김교신의 전공은 지리 박물이었다. 19274월 함흥의 영생여자고등학교를 첫 부임지로 하여 이후 양정고등학교, 경기중학교, 그리고 마지막 송도고등학교까지 약 15년 간 강단에 섰다. 양정에서의 12년이 가장 긴 시간이었고, 사상이 의심된다거나 불온하다는 눈초리를 받다 결국 1942<성서조선사건>으로 투옥되면서 교사 생활을 완전히 접게 되었다.

그에게서 지리 박물을 배운 학생들은 회고하기를 그저 딱딱한 지형에 대한 수업이 아니었다고 했다. 특히나 한국 지리를 배울 때면 각 지역에 얽힌 조상들의 얼을 함께 가르쳤으며, 일제가 한글 수업을 금지했음에도 당당하게 조선말로 조선혼을 심어주셨다고 전한다. ‘무레사네라는 모임을 통해 우리 강과 산을 학생들과 함께 탐사하며 땅에 스며든 민족정기를 느끼도록 애쓰기도 했다 한다. 지리 전공자로서 조선의 산천을 바라보며 그가 남긴 짧은 논문인 조선지리소고는 그가 가르치고 싶었고 결국에는 세상에 내어놓고 싶었던 조선의 정신을 노래한 연가(戀歌).

우황 산세와 평야의 배열 균형의 미를 논할진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화에나 비할까, 뉴욕 부두에 높이 솟은 자유의 여신상에다가 비할까. 낭림산 머리 위에 하늘을 향한 좌완을 백두산 저편까지 높이 뻗치고 장산곶 끝까지 우완을 드리워 어루만지려는 듯, 우각의 태백산은 거제까지 굽혀 올리고 좌각의 소백산은 진도까지 뻗쳐 디딘 듯. 지구대는 허리에 잘룩하고 금강산은 가슴에 드리운 노리개인 듯, 몸을 가리운 능라(綾羅)가 동풍에 나부끼어 녹색 평야를 이루었으니 엷고도 가볍다. 선녀 바야흐로 구름 위로 솟아오르려는 자태인가 혹은 자유의 여신이 대륙을 머리 위에 이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형상인가.

나는 전공자가 아니니 김교신의 한국 지형학에 대해 학문적 판단을 할 재량은 없다. 또한 페미니즘적 잣대를 들이대어 여성과 땅의 타자화운운 할 생각도 없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내 마음에 박힌 것은 지배적인 식민사관 아래 한반도의 지형조차 부정적으로 평가받던 시절에, 같은 지형을 저리 아름답고 찬란하게 응시할 수 있었던 김교신의 소망스러움이다. 왜곡이나 맹목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지형에 담은 소망이었다. 땅의 협소함이나 백성 수의 적음, 평야의 부족함과 산천의 작은 규모에 대해서는 부정보다 달리봄을 택했다.

 

대동여지전도 (소장: 숭실대학교 박물관, 연대: 1860년대(김정호 제작), 형태: 목판본, 보물 제850호)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해안선에 대한 묘사에서도, 온대지방에 위치하여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음에도, 김교신은 하나님께 감사에 감사를 더 했다. 아니, 실은 이미 감사하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시선이었다. 강수량이 빈핍한 까닭에 서양보다도 200여년이나 앞서 측우기를 발명할 수 있었고, 공중에 운량(雲量)이 희박한 까닭에 일찍이 천문학이 발달되었다며, ‘화를 복으로 이용하는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칭찬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지형론이 흥미롭다. 지정학적 결정론도 아니요 정신의 승리만을 외치는 관념론도 아니다. 이미 주어진 우리의 땅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이 땅에 살고 있음으로 해서 겪는 모든 일들을 정신으로 승화시켜 복된 땅을 만들자는 주장이니 말이다. 김교신의 지형론은 소위 반도론이다. 반도로서의 우리 땅은 결코 대륙에 붙어 큰 외세에 의지해 살아야만 하는 비주체적 공간도 아니요, 섬나라 일본의 대륙진출 야망에 길목을 내어주는 도구적 공간도 아니다. 고대의 희랍-이태리 반도가, 근대 초기의 덴마크 반도가 가졌던 소통의 활발함을 상기시키며, 김교신은 근대 사상사에서 한반도가 갖는 지형론적 소명을 굳게 믿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닫는다. 겁자에게 안전한 곳이 없고 용자에게 불안한 땅이 없다고. 무릇 생선을 낚으려면 물에 갈 것이요, 무릇 범을 잡으려면 호굴에 가야 한다. 조선 역사에 영일이 없었다 함은 무엇보다도 이 반도가 동양 정국의 중심인 것을 여실히 증거하는 것이다. 물러나 은둔하기에는 불안한 곳이나 나아가 활약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다시 없다. 만약 눈을 돌려 정신적 소산, 영적 생산의 파악에 향한다면 반도에는 특이한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상이나 발명은 모르나 지고한 사상, 즉 신의 경륜에 관한 사상만은 특히 가난하고 약하고 멸시당하고 유린당하여 생래의 교만의 뿌리까지 뽑힌 자에게만 계시되는 듯하다. 동양의 범백(凡百) 고난도 이 땅에 주집(湊集)되었거니와, 동양에서 산출하여야 할 바 무슨 고귀한 사상, 동반구의 반만년의 총량을 대용광로에 달이어 낸 엑기스(精素)는 필연코 이 반도에서 찾아보리라.

제국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이 논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적 단짝이었던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를 함께 읽어야 할 것 같다. 스무 개의 시리즈 논문으로 <성서조선>에 실었던 함석헌의 한국사 풀이가 진행된 시점이 19342월부터이니, 동인이요 편집장이었던 김교신이 함석헌이 주장하는 고난의 메시아적 해석을 함께 나누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함석헌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세계열강의 침략 대상이 되어온 한국의 역사를 세계사를 위해 대신 진 가시면류관으로 표현했었다. 현재의 한반도는 욕심투성이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이 퍼다부은 쓰레기들이 모여 들어오는 세계사의 하수구라고 말했다.(전집1: 73) 뜻 모르고 겪는 고난은 재난이지만, 악이 응집된 이 땅에서 이를 그치려는 정신으로 고난을 승화시킬 수 있다면 이 고난은 옥을 닦는 돌이요 세계를 구하는 힘”(전집1: 303)이 될 것이라, 함석헌은 그리 믿었다. “물러나 은둔하기에는 불안한 곳이나 나아가 활약하기에는 이만한 데가 다시없다는 김교신의 선언이나 동반구의 반만년의 총량을 대용광로에 달이어 낸 엑기스는 필연코 이 반도에서 찾아보리라는 그의 당찬 소망은 함석헌이 믿었던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의 메시아적 선포와 맞닿아 있다.

한 마디로 김교신의 한반도론은 ()의 지형학이다. 그러나 이유 불문 꿇어야하고 제 뜻은 없애고 강자에게 귀속되는 그런 이 아니다. 김교신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른 사상은 몰라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시기를 원하는 질서에 대한 사상이라면, 이를 상상해내고 깨달을 인식론적 특권은 가난하고 약하고 멸시당하고 유린당하여 생래의 교만의 뿌리까지 뽑힌 자들만이 누리는 것임을! 오늘 이 땅에서 당신의 삶의 자리가 의 자리인가? 그렇다면 기뻐하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그대에게 더 가까이 있다. 오늘날의 한국 땅이야 말로, 일찌감치 사라졌어야할 봉건주의적 잔재와, 사람을 갈아 끼우는 기계 부속품쯤으로 여기고 효용가치에 따라 쓰고 버리면서 이를 고용 유연성이라 이름하는 투자-금융자본주의의 폭력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컬어서 세속적 욕망을 포장하는 기업-교회들의 구조적 불의가 그야말로 집약되어 작동하는 공간이니 말이다. 더 이상 물러나 은둔할 공간도 없지 않나. 주저앉아 넋 놓고 당하면 재난이지만, 애통하고 연대하는 주체로 서서 이 비인간적이고 불평등한 현재의 시스템을 극복할 사상을 내어놓을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들 의 위치는 은혜다. 감사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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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4)

버텨라, 버티자
(조와(弔蛙), <성서조선> 1942년 3월)

 

‘한 시간에 740만원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에 주차요원을 꿇릴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던 ‘백화점 모녀’마저 사회정의를 외치는 시절이다.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단다. 한참 동면 중인 ‘개구리’도 들었다면 웃을 이야기다. 그들이 ‘바로 잡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의 사회적 배치 속에서 VIP(아주 중요한 사람)로 자리한 사람에게는 무한 존경과 절대 복종을 표시하는 사회,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바른’ 사회였을까?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는데, 그랬다면 740만원 씀씀이나 남편의 권력에 대한 언급은 불필요했을 일이다. ‘내 남편 한 마디면 너희들 다 잘려!’가 어찌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성을 만들 수 있는 선언일까!

 

세상이 온통 꽁꽁 얼음판이다. 생명이 버텨내기에 너무나 버거운 시절이다. 지난 연말, 새로운 계약을 많이 체결하여 영업능력을 인정받으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2주 동안 시린 손 언 발로 뛰어다녔을 젊은 ‘수습’ 사원들은 정직원 승급 평가가 있던 날 전원 해고되었다. 회사는 모두가 자격미달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이 시절을 온 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우리는 직감적으로 안다. 아, 새로운 계약 건수가 필요했구나, 하여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2주 동안 바짝 뛰어줄 ‘알바’ 인력을 구했던 거구나, 하지만 ‘알바’라 하면 설렁설렁 대충 뛸 터이니 성과를 보고 승급기회를 결정하는 ‘수습’사원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던 거구나! 고용하던 때부터 이미 회사는 ‘쓰고 버릴’ 생각이었고, 이에 더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고용의 기술’을 발휘한 거구나!

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세상이다. 고용주들에게 노동자는 이제 ‘쓰고 버릴 물건’이다. 최근 ‘땅콩 회항’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세간의 화재가 되었던 항공사의 오너 일가는 기내의 직원들을 ‘기물(비행기 안의 사물)’이라 불렀다 한다. ‘쓰이고 너무나 일찍 버려지는’ 까닭에 생명들이 죽어나간다. 스스로 죽고, 남도(가족도) 죽이는 세상이다. 새벽에 일어나 아내와 두 딸의 목을 조르는 가장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허나 그의 참담한 심정이 어떤 것이었을지는 알겠다. 그동안 ‘폼 나게’ 쓰였겠으나 결국은 그도 쓰고 버려진 존재다. 일단 버려지면 하찮은 존재, 실패자로 배치되는 이 사회에서, 그는 현재의 배치와 굴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겠지. ‘쓰고 버려지는’ 참담함을 나 역시 겪어보았기에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마음이 무겁다. 아리다. 하여 결국은 엎드린다. 기도조차 애가(哀歌)다. 한참을 엎드려 있자하니, 김교신의 기도 글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작년 늦은 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만든 성전이다. 이 반상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 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 속에서 암색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에 대변사가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에 접근하는 친구 와군들. 때로는 5-6마리, 때로는 7-8마리.

‘조와(弔蛙)’ 앞부분이다. 늘 기도하던 신앙의 사람이었으니 이 장면이 새로울 건 없다. 다만 1942년이라는 시점과 조용한 산중에서 홀로 무릎 꿇고 그가 했을 기도의 내용들을 상상해보니 그 역시 절절한 애가(哀歌)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가 『성서조선』을 시작한 것이 1927년이었다. 시절이 악하고, 그래서 사람들도 자꾸 악해지거나 약해지지만, 성서에 담긴 자유혼을 외치며 전하다보면 조금씩 소망스런 일들이 생겨날 거라 믿었으리라. 그러다가 1942년! 무려 16년의 긴 세월동안 그가 간곡함을 담아 ‘들어라! 제발 들어라!’ 외쳤던 복음(福音)이 땅에 심기우고 자라기도 전에, 휘몰아치듯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일제의 폭력이 조선인의 마음을 정신을 영혼을 꽁꽁 얼려버리는 사태를 목도했으리라. 하늘로부터 받는 힘과 용기가 그치지 않았으나, 현실을 보며 어찌 애통함과 절망감이 없었을까!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도했다는 그의 표현이 오늘따라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간구하다가 절규하고, 소망을 담다가 순간 절망하고, 바위 위에 엎드린 그는 필시 그랬을 거다.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이 일부일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을 가리운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성서조선>의 외침이 조선인들에게 들리는지 아닌지, 거대한 일제의 탄압에 행여 동면하는 개구리들 마냥 하루하루 생명의 기력을 다해가는 것은 아닌지, 그의 안타까운 심정이 한 구절 한 구절 살아서 전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읽으면서도 몰랐다. 개구리들이 들어봤자 기도와 찬송을 이해나 하나? 뭐, 이런 걸로 일제는 잡지를 폐간하고 12명의 지인들과 함께 1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했나? 그러고 보면 일제의 검열 담당자들은 문학적 이해와 사회학적 성찰이 꽤나 깊었던 것 같다. 행간을 읽어낸 그들은 다음의 마무리에서 이 글의 힘을 제대로 보았다.

봄비가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겨울의 비상한 혹한에 ・・・ 이런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 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두려웠을 일이다. ‘봄비가 쏟아지는 날’ 말이다. 지배자들이 만든 폭력적 시스템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봄비, 그 따듯한 은혜의 비가 살살도 아니고 ‘쏟아져’ 내린다면, 하여 자신들이 곤고하게 설계해놓은 세상의 질서와 사회적 배치가 다 허물어져버린다면, 하여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도 잊고 그냥 숨죽이고 머리 조아리고 동면한 듯 지내던 사람들(조선인들)이 생명의 기운을 얻고 스스로 살아내겠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들에게는 얼마나 두렵고 끔찍한 일일까. 자신들의 위용이 아직 단단한 시절에도 소망을 버리지 않고,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미래를 현재로 불러오며 당당하게 외치는 저 믿음이, 소망이, 각오가 어찌 두렵지 않았겠나! 하여 자신들이 만든 세상을 유지하고 싶었던 이들에게, 김교신의 이 글은 ‘읽혀서는 안 되는’ 내용이었을 거다.

봄은 온다, 어김없이! 생명을 위협하는 단단한 얼음 같은 이 시스템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쓰고 버리는’ 노동력으로 대하는 이 악한 제도도 녹아내릴 것이다, 결국은! 그러니 개구리 같이 미약한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이들이여, 당신이여 나여, 우리여, 버텨라. 버티자. 이 얼음 빙벽의 틈에 봄을 불러오는 팔팔한 산 신앙을 꽂아 넣으며, 이 시스템에 균열을 내며, 기다리자. 어느 날 은총 같이 내릴 봄비를...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애로 서로를 동등하게, 존귀하게 여기며, 함께 모두가 사는 시스템을 건설하게 될 그 날을...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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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 <성서조선>, 19403월호 -

해가 바뀌는 즈음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보니 어느 덧 안산 하늘공원이다. 가늘게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홀로 서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앞에 마주했다. 한 이름, 한 얼굴씩 눈에 새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기도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움이 클수록 또 분했다. 어이없는 죽음이라서, 너무 어린 죽음이라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직함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라서,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납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덧 저 아이들은 마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김교신의 표현이다. 1940, 일제 치하의 막바지에 김교신은 한 일본 무교회 잡지를 읽다가 큰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시즈오카에 사는 한 일본인 쌀장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조선인 근로자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주로 일거리를 따라 1~2년씩 거주하다가 타지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들은 모두 마지막 쌀값을 갚지 않고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쌀장수들은 조선인들에게 쌀을 팔 때에는 아예 그것을 계산에 넣고 저울추를 속여서, 그러니까 말을 적게 되어서 쌀을 팔았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었던 그 쌀장수는 저울추를 속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어서 그냥 정확하게 되어 쌀을 팔았고, 언제나 마지막 쌀값은 받지 못한 채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가 놀라 일본에 있는 지인에게 물은 뒤 김교신의 통탄어린 글이 이러하다.

혹시나 하여 쿠와나시 거주의 지우에게 물었더니 바로 그대로이고, 그 중에는 상당한 자산을 만들어 고향에 토지를 살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하면서도 역시 최후의 쌀값은 미불한 채 도망치는 동포가 상당히 많고, 그 때문에 정직한 사람끼리 누명을 쓰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실로 기막힐 소식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쌀알 하나하나가 지금 성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외친다. 쌀알 하나하나의 대가가 지불되어 이 소리가 멈출 때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라? 김교신은 정통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네!’라며 비난하는 신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현재적 차원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교신의 저 통탄에 찬 외침은 예수께서 성전 중심의 속죄제의 의식을 무력화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과 우러름(信仰))이 구원의 삶을 얻게 할 것이라선언하신 참 의미와 맞닿아 있다.

 

 

예수 당시 평범한 유대인들은 참으로 궁핍하고 처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도, 유대 지방 정부에도, 그리고 유대교 성전에도 삼중으로 세금을 내야하는 까닭에 일상이 늘 빚쟁이이던 삶이었다. 변변치 않은 벌이에 강제로 걷어가는 세금을 채우자 하니 안식일이라고 쉴 형편이 아니었다. 안식일 법을 철저히 지키고 나는 경건하다 떳떳이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은 소위 있는 자들뿐이었다.

누군들 쉬고 싶지 않겠나! 안식일의 정신이 무엇이었나!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숨을 돌리게 하라는 지상명령 아니었나. 숨이 무엇인가? 루아흐, 생기, 하나님께서 무릇 생명을 가진 피조물들에게 불어넣어주신 그 숨을 돌릴 틈을 주는 것, 그게 안식일의 정신이었는데. 예수 시절, 하나의 형식적 규례로 굳어진 안식일 법은 오히려 그 법으로 가여운 평민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숨통을 조이는 올무가 되었다. 죄를 지었으니 죄사함을 위한 제의를 드려야 할 터. 하여 속제제의를 위한 제물이라도 준비하려면 그게 또 돈이다. 준비한 제물이나마 제사장들이 고이 받아주면 좋으련만, 이 양은 흠이 있다. 이 비둘기는 결격이다. 이리 퇴짜를 놓으며 미리 뒷돈을 받은 장사치에게로 이 가여운 사람들을 인도한다. 하여 죄사함을 받기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시세보다 더 많이 주고 제물을 사야하는 사람들. 그만큼의 돈이 없으면 그냥 죄인으로 고개 숙이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이 예수 당시의 이웃들이었다.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죄인 만드는 성전 제사장들을 향하여 예수는 분노하셨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도둑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소리치시고, 장사판을 다 뒤엎으셨다. 죄의 용서는 사랑으로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얻을 것이요, 구원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길로 돌이키겠다는 회개그것 하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삭개오에게 선포된 구원(소테리아)은 그가 주여, 제가 남에게 부당하게 취한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 결단했을 때 도래했다.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하나하나여, 여호와 앞에 호소하기를 잠시 유예하여 다오. 그대들에게 모조리 ・・・ 대가가 지불될 때까지 우리는 천국에의 입장권도 유예하여 노력하리라. 주 예수의 복음에 그 힘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오늘 우리가 저 하늘에, 꽃이 되고 별이 된 아이들에게 해야 할 약속인지도 모르겠다. 김교신의 절절한 고백은 식민사관의 연장선에서 한국인들의 민족성이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구원까지도 유예하면서 노력하겠다는 그의 각오는 회개(돌이킴)’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 구원의 여정과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다시 볼 일 없다고 제 몫의 삶을 정직하게, 책임 있게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찌 구원받은 이의 삶일까! 비단 그리스도인들만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무책임한 삶, 비도덕적인 행위, 탐욕스런 실천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억울한 희생이 있다면, 그 하나하나를 갚아낼 때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적 삶을 그치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예수께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서이미 대가를 지불하신 구원을, 무슨 이유로 천국 입장권마저 유예하며 노력을 하나? 모르는 소리다. 예수께서 단번에 모두를 위해서 이미 지불하셨던 것은 유대교적 속제제의가 담보한다는 죄의 용서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용서를 위해 제의를 드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는 막 살아도 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죄의 용서를 받은 이로써 합당한 삶, 자신이 그동안 이웃에게 행해온 부당함과 억울함을 갚아주고 다시는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하나님의 방향으로 삶을 돌이키는 것! 그것이 구원의 삶일진대, 오늘 우리가 한 생명 한 생명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쌀알은 세월호 아이들이고 송파 세 모녀이며, 곧 그처럼 될 만큼 삶이 위태로운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의 ’()을 도적질하거나 방관하는 한 우리도 구원의 삶에서 멀리 있다. 예수의 복음이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려면, ‘나만 구원받는 사적이고 이기적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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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

 

응답하라. 2015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1927년으로부터 온 편지

- <성서조선> 창간사 -

 

19277, 6인의 조선 젊은이들이 <성서조선>이라는 동인지를 창간했다.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되어버린 세월호 참사 이후 나라의 현재를 암담해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이 시절보다도, 더 희망이 없던 일제치하였다. 동인 중 하나였던 함석헌의 표현처럼 끌려가듯일본 땅에서 낯선 타자로 살며 바다 건너 조국을 지켜보자니, 젊은 지식인이요 신앙인인 이들의 참담한 마음이 더욱 깊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걱정을 같이 하고 소망을 일궤에 붙이는 우자(愚者) 5-6인이 동경 시의 스기나미촌에 처음으로 회합하여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고 매주 때를 기하여 조선을 생각하고 성서를 강해하면서 지내온 지 반년에 누가 동의하여 어간의 소원 연구의 일단을 세상에 공개하려 하니 그 이름을 성서조선이라 하게 되도다. 명명(命名)의 우열과 시기의 적부(適否)는 우리의 불문하는 바라. 다만 우리 염두의 전폭을 차지하는 것은 조선두 자이고 애인에게 보낼 최신의 선물을 성서 한 권 뿐이니 둘 중 하나를 버리지 못하여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 기원은 이를 통하여 열애의 순정을 전하려 하고 지성의 선물을 그녀에게 드려야 함이로다.” (<성서조선> 창간사 중)

 

 

 

 

그랬다. 주저앉아 울 수도, 숨어 탄식만 할 수도 없었던 조선의 청춘 여섯(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유석동)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두 존재를 삶의 기반으로 양 손에 꼭 쥐고 하루씩 살아냈고, 그 치열함을 글로 담아 조국에 선물했다. 자기 실존 안에서 주체적으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스승 우치무라 간조가 두 개의 ‘J’(저팬과 지저스)를 꼭 붙들었듯이, 조선의 젊은이들은 성서조선그 사이에 어느 하나를 버리지 못하고, 실은 어느 하나를 더 사랑할 수 없어서 두 단어 사이에 라는 접속사마저 허락지 않았던 절절한 사랑을 <성서조선>에 담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낭만적일 수 없었다. 때론 폭력으로 때론 회유로, 일제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며 제국이 만든 동질적 시스템에 굴복하기를 강요하고 있었으므로・・・ 하여 <성서조선> 동인들은 자신들의 외침이 열매 맺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걸릴 지를 이미 예감했었나 보다.

 

<성서조선>,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일자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 사람을 기다려 면담하라. 상론(相論)하라. 동지를 한 세기 후에 기()한들 무엇을 탄할 손가( <성서조선> 창간사 중).

 

하루를 버텨내기 힘들었을 그 시절에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은 한 세기 후의 동지를 기다리며 인내했다. 그리고 이제 2015년이다. 김교신이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렸던 우리다. 한 세기 후의 동지들이다. 지금 우리의 시절은 어떠한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적 지배로부터는 독립을 하였으되, 금융 자본주의적 질서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새로운 제국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노동 없는 부()와 정의 없는 권력이 득세하는 이 세상은 여전히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김교신의 시절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있었다면, 우리 시절에는 갑과 을이 있다. 그 시절에 일본인이 판단하고 조선인이 따라야했다면,

 

 이 시절에는 갑이 판단하고 을은 따라야한다. 꿇지 마라! 자유혼으로 스스로 서라! 우리가 아는 성서의 핵심 메시지는 그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귀한 인간이 어찌 다른 인간들의 판단과 명령에 의해 자기 존엄성을 포기하겠느냐. 혁명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다. 자유를 빼앗기고 존엄성을 상실한 이 땅 조선에서, ‘성서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를 새기고 또 새기며 자아의 혁명을 시작하자. 이것이 김교신과 동인들이 <성서조선>을 시작하며 동포에게, 이웃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성서조선>, 너는 우선 이스라엘 집집으로 가라. 소위 기성 신자들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인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의 집에는 그 발의 먼지를 털지어다.” (<성서조선> 창간사 중)

 

뜨끔할 일이다. 어찌 한 세기전 외침일까. 오늘날 한국 교회를 돌아보아도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가 넘쳐나질 않던가! 스스로 기도하고 생각하며 팔딱팔딱 오늘로 살아 돌아오는 말씀을 찾아내려는 주체적 신앙 없이, 그저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전통이 그렇게 가르치니까하며 앵무새처럼 남의 신앙만 반복하는 행태를 향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성서조선>발의 먼지를 털며그런 자들과는 관계없음을 선포한다.

 

<성서조선>, 너는 소위 기독신자보다도 조선혼을 소지한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성서조선> 창간사 중)

 

 

 

 

성서를 평신도에게 건네기 위해, 이를 금하던 교황청을 피해 다니며 죽을힘을 다해 영어 성서를 번역했던 윌리엄 틴데일은 자신했었다. 불가타(라틴어역 성서)를 독점하고 평신도에게 성서 읽기의 권위를 허락지 않았던 교회를 향하여 당당하게 선포했다.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하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하겠노라고, 결국 시골의 소 모는 목동조차도 교황보다 성서의 핵심 메시지를 더 잘 알게 만들 것이라고! 김교신의 소망이 다르지 않았다. 성서는 중심으로 위로 좁아드는 메시지가 아니다. 변방으로, 지평으로 퍼져나가는 자유의 소리다. 그걸 독점하려는 자들은 하나님에 반()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건물에 갇힌 교회교인들의 울타리를 넘어 훨훨 날아라. 하나님은 교회보다 크시다!

 

이 자유의 외침이 선포된 것이 1927년이다. 이 멋진 외침을 외친 산 신앙인들은 백 년 뒤의 동지를 기다렸다. 이들의 메시지가 제국의 기반을 흔든다고 직감하고 1942년 잡지를 강제로 폐간하고 이들을 투옥했던 일본 순사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성서조선> 젊은 신앙인들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산 신앙이, 민족혼이 백년 뒤, 아니 5백년 뒤에라도 싹틀 기반을 마련하는 고약한 놈들이라고 말이다. 그 터를 놓은 신앙의 선배 김교신이 우리를 부른다. 기다렸노라고, 얼굴을 마주하자고, 성서를 논하자고그의 부름은 낡지 않았다. 시대는 여전히 악하므로그러니 응답하라. 2015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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