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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두런두런'

창날 위를 맨발로 걷듯

by 한종호 2015. 4. 28.

한희철의 두런두런(8)

 

창날 위를 맨발로 걷듯

 

 

아랫마을 단강리에 살고 있는 분 중에 한효석 씨가 있다. 부론을 나갈 때면 자주 만나게 되는데, 만나면 꼭 차를 사신다. 한문은 물론 동양사상이나 동양종교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도 해당되는 구절이 있으면 원문을 줄줄 외우신다. 그 모든 것을 독학으로 이뤘다니 놀랍기만 하다.

 

얼마 전 원주를 다녀오며 흥호리에서 버스를 같이 타게 되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 분은 ‘실천’이란 말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거나 믿고는 있는데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실’(實)은 ‘갓머리’와 ‘어미 모’(母)와 ‘조개 패’(貝)가 합해진 말이라 했다. 갓머리는 ‘하늘’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어미는 하나님으로 풀어도 어색하지 않고, 조개는 옛날의 화폐, 합하면 ‘’은 ‘하나님이 주신 보물’이라는 것이었다.

 

와~, 열매라는 말이 하나님이 주신 보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니,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자식도 하나님이 주신 보물이요, 쌀 한 톨 콩 한 알 작은 깨알 하나까지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보물인 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는 것이었다.

 

‘천’(踐)이라는 글자가 궁금해졌다. ‘踐’은 ‘발 족’(足)과 ‘창 과’(戈)라는 글자가 거듭 합해진 글자라고 했다. ‘창날 위를 맨발로 걸어간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결국 ‘실천’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보물을 맨발로 창날 위를 걷듯이 지키는 것’이었다.

 

‘실천’이란 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듯 그 뜻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누가 창날 위에 올라가 함부로 장난을 치거나 뛰거나 할 수 있겠는가? 창날 위를 걸어야 한다면 필시 발이 벨까 나비처럼 바람처럼 한껏 조심해서 걸어갈 것이 아니겠는가.

 

함부로 말을 하거나 말로 때우는 것이 실천이 아니었다. 뭔가를 하는 척 흉내를 내는 것 또한 실천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보물을, 그것이 믿음이든 말씀이든 양심이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 실천인 것이었다.

 

‘실천’이란 말은 마치 나를 창날 위에 맨발로 세우듯이 두렵고 떨림으로 다가왔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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