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6)

 

메르스와 왕조 바이러스

 

 

중동발 호흡기 증후군이 한국사회의 민낯을 어김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그중 압권은 6월 11일 국회 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나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의 외마디였다.

 

“국가가 뚫린 겁니다. 이것은!”

 

 

 

 

위 선언은 메르스 환자에 대한 삼성병원의 미숙한 초동대처가 사태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질타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것이다. 뉴스를 통해 젊은 의사의 이 같은 외마디 선언을 듣고 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최고 학부를 나오고, 배울 만큼 배웠고, 거기에 더해 국내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 과장 자리에 있는 이른바 우리 사회의 엘리트 입에서 저런 문장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런데 더더욱 놀란 것은 저 발언 이후에 나온 우리 사회의 반응이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의심했고, 또 무엇에 놀란 것일까?

 

우선 나는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이고, 아울러 균형 잡힌 시민교육을 시행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슈퍼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이의 입에서 ‘국가’란 단어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발설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사전적 뜻은 다음과 같다.

 

“일정한 영토를 보유하며, 거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가진 집단”

 

뭐 이 정도야 초등학생 수준만 되어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국가의 3요소를 댈 수도 있다. 바로 국민, 영토, 주권이다. 그렇다면 국가란 단어는 기본적으로 영토를 포함한 집단 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즉 추상적인 사회적 개념이 바로 국가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으로 말하자면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들을 영토로 하고, 거기에 거주하며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집단이 국가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젊은 의사는 ‘국가’가 뚫렸다고 한다. 그때 그가 말한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보다 더 정확히 뜻을 새기자면 그가 하고픈 이야기는 국가라기보다는 ‘정부’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감염내과 과장은 뜻을 한 번에 새기기에는 매우 불편한 길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과의 논박 속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려다보니 부지불식간에 제대로 된 단어를 선택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도 쉽게 통용되는 우리 사회의 ‘국가=정부’라는 의식은 우리가 제대로 된 민주적 시민교육을 시행하고 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부는 주로 행정부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정부는 행정부와 더불어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를 통괄한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공적 기관이다. 그렇게 정부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고, 그 운영의 주체도 국가를 구성하는 주권자의 선택에 의한 임시적인 것이다. 왕정이 아니기에 시민사회의 권력은 시한이 있으며, 또한 주권자의 공정하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주기적으로 교체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뚫릴 수 없다! 만약 뚫렸다면 그건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특정한 공적 기관이 뚫린 것이다! 그러므로 삼성병원 감염내과 과장의 저 발언은 우리 사회가 지닌 복고적 사회의식의 한 단면을 적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헌데 더 놀라운 것은 저 발언 이후에 보여준 우리 사회의 반응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무반응’이다. 다들 저런 수사가 익숙한 양 젊은 의사의 왜곡된 우리말 사용을 지적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시민이 주권의 원천이 되는 공화국이다. 군주가 통치하는 왕정국가가 아니다. 만약 이것이 올곧게 우리 사회에 자리하고 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 ‘국가가 뚫렸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은 튀어 나왔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해되고 통용되고 있다는 것! 내가 의아함을 넘어 놀라기까지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왕조 마인드의 주술 안에 있다는 반증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많은 미디어와 그곳에 똬리를 틀며 각종 다양한 이슈마다 참견을 해대는 평론가에 논객이라 하는 이들도 이 선언엔 별다른 언사를 더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왕조 바이러스는 심각하게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오염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납세자요 주권자로서 스스로 주체적 행위자로 자리매김해야 할 시민들이 오히려 복종자가 되고, 을이 되어 우리가 택하고, 돈을 내어 지원하고 있는 공복들의 종이 되는 코미디가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2015년의 메르스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알리는 바로미터가 되어 간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posted b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