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1)

 

“나는 25살, 비니를 쓴 김도엽입니다”

 

 

도엽이를 처음 소개받은 것은 4월 6일 한 선배를 통해서였다. 선배의 교회 지인이 대학병원 의사인데, 그곳에 안구암을 앓고 있는 청년이 있다는 것이었다. 청년의 몸 상태는 현재 좋지 않은 편이라 했다. 달리 말하면, 의학적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이 청년은 책을 남기고 싶어 한다고 했다. 선배는, 내가 그 일을 해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망설여졌다. 3년 전 폐암 말기 환자와 전국 자전거 여행을 동행하며 책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책이 출간되기 2주 전, 주인공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쓴 책의 주인공이, 그것도 수개월간 함께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인터뷰를 했던 주인공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는 느낌이란 게 어떤 건지를 생생하게 경험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다시 겪을 수도 있는 작업을 굳이 내가 맡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 제안을 건네 준 의사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도엽이는 30대 중반의 그 의사 선생님과도 말이 매우 잘 통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20대 중반의 청년이라 했다. 21살 때 암이 재발했고 암은 제거되지 않았다고 했다. 도엽이의 상황을 건네 듣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좀더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내 앞에 산재한 일상의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그런 일들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며 생각을 지우려 했다. 그러나 기도를 할 때마다 도엽이에 대한 부담감은 점점 더 마음속에 차올랐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다시 의사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내 보았다. 작가를 구하셨냐는 질문을 했다. 구해 보려 많이 노력했지만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답이 바로 왔다. 내가 한 번 해 보겠노라고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테지만 이 작업은 나의 작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길을 가보겠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첫 만남

 

180이 훌쩍 넘는 큰 키. 깔끔한 무늬의 남색 셔츠, 그리고 거기에 잘 어울리는 카멜색 바지. 옷차림도 센스 있는 한 사람이 눈앞에 등장했다. 큰 키를 지탱하느라 그런가, 아니면 이제 가족과 몇 명의 친구 외에는 유일한 눈과 귀가 되어 주는 스마트폰에 집중해서 그런가, 도엽이의 목은 아주 약간 앞으로 굽어 있었다.

 

도엽이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도엽이보다 훨씬 키가 작으신 어머니가 제과점 2층으로 도엽이의 허리를 붙들고 올라오고 계셨고, 도엽이는 한 팔로는 어머니의 어깨를 붙들고 한 손으로는 계단 난간을 더듬거리며 올라왔다.

 

25세 청년 도엽이의 머리는 비니로 가려져 있었다. 오랜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도, 눈썹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새하얀 얼굴에 두 눈은 감겨 있었다. 도엽이가 세상의 빛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지는 이제 10개월이 되었다.

 

거리에서 시각장애인을 본 적은 꽤 있어도, 가까이서 대화를 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지 못하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도엽이와 가까워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빵을 집어 드는 것을 도와주고, 의자의 위치를 손으로 직접 알려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디 있는지도 도엽이의 손목을 잡아끌어 알려 주고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워 자리를 옮길 때에도 의자에 자리 잡도록 했다. 그런 식의 도움을 받는 것에 도엽이는 별 자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편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잘 받는 사람은 건강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인데, 도엽이는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달걀형의 작은 얼굴에 총명해 보이는 이목구비, 그리고 어른스러운 점잖은 어투. 지금 한창 데이트를 하고,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진로 걱정을 하고,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영화를 보러 다닐 나이에, 도엽이의 인생은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바깥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고, 내가 하는 영화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도엽이는 <어벤져스>를 무척 보고 싶었지만, 갑작스레 실명이 되는 바람에 보지 못했다. 나는 별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다고 하니 그는 하하, 하고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영화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아는 것은 오히려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욕망은 금지된 것에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모두 다 얼마나 소중한가요

 

도엽이는 생후 100일 때 망막모세포종으로 오른쪽 눈을 잃었다. 그때 이후로 쭉 의안을 했다. 도엽이는 그때 어떻게 아팠는지도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한쪽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못하진 않았다. 그는 선천적으로 좀 게으름이 있는 것 같다고 웃지만, 게으른 것치고는 늘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마침내 대학에 들어갔다. 어른스러운 성품에,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있던 도엽이에겐 다가오는 친구도 많았다. 이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마음껏 대학생활을 누리고 싶었다. 실제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렸다. 그런데 대학 입학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코에 골육종이 발병했다. 망막모세포종에 걸린 사람들이 쉽게 걸리는 병이라 했다. 3년간의 지난한 항암치료를 거치고, 두 번의 끔찍한 수술, 골수이식까지 했다. 그 지긋지긋한 고통을 버티게 해준 건 희망이었다. 이것만 하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 이것만 잘 버티고 나면 다른 사람처럼, 다른 친구들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희망은 순순히 도엽이의 것이 되어 주지 않았다. 골수이식만 하면 완치된다고 했던 의료진의 예상과는 달리 암은 3개월 만에 재발되었고, 도엽이의 몸에 안착해 버렸다. 이제 병원에선, 더 이상 답이 없다고 말한다. 암은 도엽이의 몸 안에서, 문득 천천히 걷다가, 다시 빠른 걸음을 하다가, 그렇게 몸의 주인도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있다. 지금은 귀에 물이 차 한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다.

 

다른 시한부 환자들은 여행을 가고 싶다든가, 추억을 쌓아가고 싶다든가 하는 소원이 있는데, 도엽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책 한 권을 갖고 싶다는 소원이 있다. 이제 그 길로 향하는 걸음을 조심스레 한 걸음 떼게 되었다.

 

“가끔 보면, 사람들이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르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왜 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 같아요. 제가 가족들이나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 소중한 것들이 바로 옆에 있을 거라는 거. 공기처럼 늘 내 옆에 숨 쉬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모두 다 얼마나 소중한가요. 하나하나 잃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처음 만난 날, 도엽이가 내게 해준 말이다.

 

도엽이의 이야기로, 도엽이가 가진 마음의 눈으로, 건강한 눈을 가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으로 건강한 마음의 눈을 뜨게 된다면,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병과의 외로운 싸움을 해 와야 했던 도엽이가 응원을 얻는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는 실현된 것이라 믿는다.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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